111화
목뼈 손상으로 인해 움직이지 못하게 된 희연이 할 수 있는 일은 실상 없다고 봐야 했다. 희연은 묘하게 저릿한 손끝을 보며 목만큼은 다음부터 꼭 보호하겠다는 의지를 다졌다.
게임 속에서 이렇게 아파 본 것이 처음이었는데 그것이 하필 팀킬이었다는 점이 그녀의 속을 쓰리게 만들었다.
“으아아악-! 뭔데, 뭔데, 뭔데!”
“전체 메시지 누가 좀 올려! 사냥꾼 아무나 오라고 해!”
수풀 너머 벌어지는 일을 귀로만 듣고 있으니 마치 재앙을 옆에 두고 저 홀로 평화로운 것 같은 기분이었다. 희연은 착실하게 닳는 MP를 보며 스킬이 잘 걸렸음을 확인했다.
던전을 나오기 직전 모짜렐라는 그녀에게 나가자마자 은신 스킬을 사용하라고 충고했다. 안 챙겨준다는 말과 달리 그는 희연에게 도망갈 방법에 대해 알려준 것이다.
비록 목이 부러져 죽기 일보 직전까지 가긴 했으나 일단 가장 안전한 곳으로 몸을 숨기는 것을 성공했다. 그녀의 눈앞에 떠오르는 채팅만으로도 수풀 너머 어떤 지옥이 도래했는지 짐작이 가능했다.
[월드 메시지 (아기 돼지 삼겹살) : 이름 없는 던전 앞 머더러 출몰. 검사, 200대 추정. 현재 학살 중. 이름 돈 땃쥐 미.]
[월드 메시지 (례혴) : 이름 설움 던전에 머더러 등장. 나 죽음. 삐약뺙뺙삐약 ㄲ 죽이고 인증 시 5만 골드 즉시 지급]
[월드 메시지 (아메리카노 캡틴) : 일괄 지급?]
[월드 메시지 (신데렐라 잠 못 자면 모짜렐라) : 이름 설움 던전 머더러 등장 > 거기 있는 사람 다 죽음?]
[월드 메시지 (12시의 모짜렐라) : 안 죽었ㅇ ㄱR dsgd 살ㄹ]
눈앞에서 빠르게 나타났다 사라지는 메시지 창을 보며 희연은 몸에 힘을 풀었다. 조만간 누구 하나가 머더러인 땃쥐 미를 잡으러 올 것 같았기 때문이다.
처음 땃쥐 미가 머더러 유저임을 드러냈을 때 머더러 유저를 죽여도 페널티가 없다고 떴던 것으로 보아 충분히 머더러 사냥꾼들이 있을 법도 했다. 그중 하나가 온다면 지금의 상황은 정리될 터였다.
“음….”
희연은 손을 들어 자신의 목 부근을 조금 주물러 보았다. 가만히 누워있어서인지 희연의 상태 이상은 빠르게 회복되고 있었다. 조금만 있으면 다시 일어날 수 있을 것 같았다.
나름의 여유를 되찾은 희연은 새롭게 받은 퀘스트를 어떻게 해결할까 잠시 생각해 보았다. 그리고 빠른 결론을 내렸다.
“…병사 악령 어디 갔지?”
사라진 병사 악령부터 찾기로. 상당히 뒤늦은 발견이었다.
분명 던전을 나오기 전에 품에 안고 있었는데 어느 순간부터 그녀는 빈손이었다. 희연은 당황한 마음에 벌떡 일어나려 했지만 덜컥거리는 목이 그것을 방해했다.
“읍….”
꾹 눌러 참은 입속 사이로 앓는 소리가 흘러나왔다. 희연의 모자 속에서 빠져나왔던 악령이가 이리저리 손을 흔들거리며 어쩔 줄 몰라 했다.
“나 괜찮으니까 병사 악령 좀 찾아 줘.”
“죽지 마!”
“안 죽어….”
희연은 악령이를 달래기 위해 그나마 움직이기 수월해진 팔을 들어 올렸다. 머리라도 쓰다듬어주기 위해서였다.
“?”
일부러 피가 묻지 않은 쪽의 팔을 들었던 그녀는 하얀 소매에 옥에 티처럼 묻어난 까만 것을 발견하곤 뻗던 팔을 멈추었다. 먼지투성이이긴 하나 옷이 워낙에 하얬기에 그 작은 검댕이 같은 것이 눈에 띄었다.
손가락 반 마디만 한 까만 무언가는 조금씩이지만 꼼질거리며 움직이고 있었다. 그에 희연이 이건 벌레인가 아니면… 까지 생각하던 그때, 검은 덩어리 위로 빨간 동그라미 두 개가 깜박이며 나타났다.
“병사 악령…?”
삐야.
검은 머리가 흔들거리며 어린아이들이 신는 삑삑이 신발에서나 날 법한 소리를 냈다.
“…왜 이렇게 작아졌지?”
게다가 말도 못 한다. 갑작스러운 상황에 희연은 목이 아픈 것도 잊고 상체를 일으켰다. 다행히 거의 다 낫는 중이었기에 상태가 더 나빠진다거나 하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소매에 간신히 매달려 있던 병사 악령을 손 위에 올린 희연은 혼란스러운 심정이 고스란히 드러난 얼굴로 허둥거렸다.
“왜, 왜 이렇게 작아졌지? 악령이는 안 이랬는데….”
“나도 작아진 건데?”
“어? 어…, 어? 그러네?”
작아진 악령이의 모습이 익숙해서 그렇지 희연이 악령이와 처음 만났을 때 악령이의 크기는 그녀의 무릎 정도는 올 정도였다. 자미엘에게 덤빈 이후부터 쭉 작았기에 그 모습을 기본값이라 생각한 것이다.
“…설마 밖으로 나와서 이렇게 된 건가?”
악령이가 처음 달빛 요람에서 나온 이후로 한동안 힘이 부족해 맥을 못 추렸던 걸 보면 타당한 생각이었으나, 작아진 크기에서 더 작아질 줄은 몰랐기에 희연은 여전히 당황스러운 마음을 다잡을 수가 없었다.
“괜찮은 거 맞겠지?”
손뼉 한번 쳐도 목숨이 위험할 크기에 희연은 불안한 기색을 감출 수가 없었다. 모자 속에 넣고 다니는 것마저 위험하지 않을까 걱정되는 정도의 크기였다.
“아무리 생각해도 너무 작….”
[스킬 <추적의 발걸음>에 당했습니다.]
“…!”
갑작스러운 알림에 희연은 고개를 들었다. 그녀의 머리 위에 눈에 띄는 새빨간 화살표가 둥실둥실 떠올라 있었다. 스킬을 사용한 게 누구일지는 뻔했다.
느긋하게 악령이의 크기를 고찰할 때가 아니었다. 희연은 급한 대로 작은 병사 악령을 악령이에게 맡긴 뒤 그 둘을 모자 속으로 던지다시피 집어 던졌다.
잠시 내려놓았던 총을 챙겨 자리에서 일어나던 희연은 다시 한번 쭉 잡아당기는 목 뒤 무게감에 끌려 뒤로 넘어졌다.
“내가 목은 위험하다고….”
쾅-!
“…살려줘서 고마워.”
머리 위로 날아가 반절 남은 나무 위로 박힌 검을 보며 희연은 빠르게 말을 정정했다. 그녀는 방금 목이 날아갈 뻔했다.
완벽하게 자신을 노린 공격 탓인지 희연의 은신 스킬은 풀린 상태였다. 반투명했던 몸이 원래대로 돌아오는 것을 보며 희연은 침을 꼴깍 삼켰다.
집어 던진 검과는 비교도 할 수 없는 휘황찬란하고 화려한 검을 든 땃쥐 미가 그녀에게로 걸어오고 있었다. 그의 뒤에 줄지어 쓰러진 사람들의 흔적이 전형적인 악당의 배경 같았다.
“안녕 오리 님?”
“…….”
“마폭탄이 제법 아팠어요. 우리 할 이야기도 많은데 그런 식으로 도망가면 안 되죠.”
“저는 없어요!”
“그럴 리가 없는데?”
땃쥐 미는 손을 들어 목 부근을 툭툭 두들겼다. 목걸이를 뜻하는 손짓이었다. 희연은 인벤토리 안에 있을 뱀 목걸이를 떠올리며 물었다.
“땃쥐 님은 뱀 집단 소속인 거죠?”
“글쎄요? 뭘까요?”
말끝을 늘리는 그에게선 자신에게 답을 들을 생각하지 말라는 뜻이 느껴졌다. 그녀를 놀릴지언정 자신의 패나 정보를 보여줄 생각은 없다는 뜻이었다.
어떻게 하지….
희연은 흔들리는 눈빛으로 땃쥐 미의 뒤를 살폈다. 살아남은 유저들은 땃쥐 미의 관심이 희연에게 쏠린 사이 도망가기 시작했다. 그들의 도움을 바랄 수는 없었다.
해체된 케이아일과 친구들 파티원들 역시 땃쥐 미의 손에 당한 것인지 무사히 도망간 것인지 알 수 없었다. 희연은 마음 같아선 에흐테를 타고 도망가고 싶었으나 높다란 벽 끝까지도 스킬을 날리던 땃쥐 미의 모습을 생각하면 시도하기에 영 좋은 생각은 아니었다.
날 수 있는 펫이라는 점에서 에흐테는 귀했지만 이럴 때는 영 효용성 없다는 걸 떠올리면 밸런스 패치 하나는 완벽하다 할 수 있었다.
짧게 숨을 고른 희연은 손을 들어 인벤토리 안에 집어넣었다 뺐다. 차르륵 떨어지는 얇은 금속 줄이 그녀의 손 아래로 떨어졌다.
희연의 손에서 흔들리는 금속 줄을 보며 땃쥐 미가 눈을 빛냈다.
“이걸 원한다는 거죠?”
“맞아요. 그걸 주면 이번 한 번만 죽이는 거로 해줄게요.”
서글서글 휘어지는 탁한 노란 눈을 보며 희연은 팔을 힘껏 치켜들었다.
“가질 수 있으면 가져봐라…!”
“!”
웃는 낯에 금이 갔다. 땃쥐 미가 만들어낸 바닥의 틈 사이로 떨어지는 금속 줄을 보며 희연은 숲속으로 뛰어들었다.
어지간히 뱀 목걸이가 중요한 물건이었는지 땃쥐 미는 도망가는 희연을 쫓지 않고 바닥을 향해 검을 휘둘렀다. 땅을 완전히 뒤엎어 물건을 되찾기 위해서였다.
숲속을 내달리는 희연의 표정은 밝았다. 그런 그녀의 인벤토리 한쪽에는 여전히 맑은 초록빛을 품은 목걸이가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그녀가 던진 것이 애초에 뱀 목걸이가 아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희연이 던진 것은 이전 악령이의 몸을 묶었던 사슬이었다. 킹스메이커의 도움으로 사슬을 끊어냈을 때 그 잔해를 받아뒀다.
사슬 자체가 워낙에 얇고, 장식 줄인가 싶은 모양새였기 때문에 땃쥐 미를 속이는 것이 가능했다. 그래봤자 얼마 안 있어 그녀가 던진 것이 목걸이가 아님을 알아차릴 것이 뻔했기에 서둘러야 한다는 점은 바뀌지 않았다.
정돈되지 않은 날것 그대로의 산길은 험악하다 싶을 정도는 아니었지만 산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이 쉽게 달릴 수 있는 정도도 아니었다.
결국 희연의 발걸음에는 제지가 걸렸다. 굵직한 나무뿌리에 발이 걸리며 넘어진 것이다.
“아야….”
데굴데굴 산비탈을 구른 희연은 어질거리는 시야에 눈을 질끈 감았다 떴다. 꼴이 말이 아니긴 했지만 구른 덕에 빨리 내려왔으니 됐다는 결론을 내렸다.
고개를 드니 저 멀리 도시 에빌론의 높다란 첨탑이 보였다. 에빌론의 서문 밖에 있는 것은 기껏해야 그녀가 갔던 던전 정도이기에 그 앞에 사람이 많진 않았지만 평화를 사랑하는 도시라는 점이 중요했다.
도시 안으로만 들어가면….
그 생각을 하며 희연은 서둘러 자리에서 일어났다.
탕-!
“…….”
“아. 죄송해요. 적인 줄 알고….”
“료한 님….”
눈앞을 스치고 날아가 나무에 박힌 총의 흔적을 살핀 희연은 다리에 힘이 빠져 스르륵 주저앉았다. 그런 희연의 모습에 료한이 서둘러 달려왔다.
“괜찮으세요?”
“네…. 그런데 료한 님은 왜 여기에 계세요?”
“저도 도망치다가 여기로 오게 되었어요. 원래 길을 사용하자니 금방 쫓길 것 같고, 그렇다고 어설프게 남들이 안 쓰는 길을 쓰자니 흔적이 남을 것 같고 해서….”
그래서 아예 사람이 다니는 길이 아닌 쪽을 택했다는 뜻이었다. 희연은 고개를 돌려 자신이 굴러온 길을 살펴보았다. 무언가 지나간 자국은 있었지만 그게 사람의 흔적인지 동물의 흔적인지 구별할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금방이라도 자연과 하나가 될 것 같은 희연의 꼴을 보며 료한은 말했다.
“구르는 것도 좋은 방법이네요. 족적이 안 남을 테니까요.”
그냥 넘어진 건데….
희연은 진실을 알려줄까 생각하다 말았다. 료한이 진심으로 그녀가 흔적을 남기지 않으려고 일부러 굴렀다 믿는 눈치였기 때문이다. 료한은 희연을 부축해 일으키며 말했다.
“그래도 여기까지 도망쳤으니 이제 조금은 안심해도 될 거예요. 땃쥐 미 님도 여기까지는 안 올 것 같으니까요.”
“어… 아뇨. 아마 계속 쫓아 오고 있을 거예요. 제가 약 올리고 도망쳐서….”
“…….”
“고의는 아니었어요. 아마도…. 그리고 땃쥐 미 님이 추적 스킬? 그런 거 가지고 있어서 진짜 멀리 안 가는 이상 어디 숨든 똑같은 것 같더라고요.”
“추적 스킬이요?”
“네. 저도 숨어 있다가 그것 때문에 걸렸는데…. 아.”
“?”
“추적 스킬이… 언제까지 이어지는 건지 아세요, 혹시?”
희연과 료한의 얼굴이 동시에 굳었다. 희연은 다시 한번 목을 짓누르는 감각에 반항하는 대신 료한의 옷깃을 붙잡았다. 그녀의 손길에 의해 함께 구르게 된 료한은 머리 위로 날아가는 스킬의 이펙트를 보며 살짝 입을 벌렸다.
“벌써 기척 감지 스킬도 가지고 있나요?”
“그런 거 없어요…!”
다행히 악령이가 희연의 말을 흘려듣지 않았기에 이번에는 목뼈에 손상은 없었다. 희연은 잘려나간 숲의 흔적을 보느라 정신없는 료한의 팔을 잡아당기며 뛰었다.
“조금만 더 가면 에빌론이니까 거기까지만 뛰어가요!”
“우리 민첩 스텟으로 뛰어봤자 땃쥐 미 님한테서 벗어나지 못해요.”
“부정적인 말만 하지 말고 도망갈 방법을 생각해 주세요!”
“음…. 길드 귀환 스킬이나 로그아웃은 전투 중이라 사용 못 하고, 아까와 달리 나서지 않는 걸 보며 밖에서는 오리 님의 악령? 이 힘을 못 쓰는 거죠?”
희연은 답할 기운이 없어 고개만 끄덕였다. 곰곰이 생각해 보는 것 같던 료한이 달리던 것을 멈춘 것은 그때였다.
”그러면 얼마 안 되겠지만 제가 여기서 시간을 끌어볼게요.”
“왜… 허억, 왜요?”
“어차피 도망 못 갈 것 같은데 가망 없는 희망에 매달려 고생하고 싶지도 않고, 한 번쯤은 죽어보고 싶기도 했거든요. 레벨 조금 깎이는 것 정도는 별로 상관없기도 하고요.”
정말로 도망갈 생각이 없는 건지 그는 뒤돌아 이곳으로 오고 있을 땃쥐 미를 기다리기까지 했다. 그 모습에 희연은 일단 그의 말에 반박부터 했다. 희생정신은 감사하나 그건 희생으로 말미암아 결과물이 있을 때나 의미 있는 거였다.
“료한 님의 반도 안 되는 민첩 스텟을 가지고 있을 확률이 높은 제가 도망갈 수 있을 것 같아요?”
“음…. 솔직히 말하면 아니죠.”
“좀 덜 솔직해도 되는데…. 어쨌든 이상한 희생 같은 거 하지 말고 같이 가요.”
“하지만….”
희연은 그의 말을 더 듣지 않고 팔을 잡아끌었다. 거너라고 해서 힘 스텟이 더 좋은 건 아닌지 그녀의 힘에도 료한은 쭉쭉 끌려왔다.
“그래도 되는 데까진 해야죠. 지레 포기하면 아쉽잖아요.”
“…우리 길드 길드장님이랑 같은 말을 하네요.”
“?”
“길드장님이 저한테 그랬거든요. 넌 너무 생각이 많고, 그래서 지레 포기한다고. 되는 데까지 최선을 다하지 않으면 나중에 후회할 거라고요.”
어쩐지 풀 죽은 것 같은 료한의 모습에 희연은 조금 당황스러운 얼굴을 했다. 그런 희연의 모습에 료한은 미소를 지었다.
“존경하는 사람이거든요. 이 게임이 생기기 전부터 알던 사람인데 같은 길드에나마 소속되고 싶었죠. 어떻게 길드에 들어가긴 했지만 그래봤자 전 일개 길드원 중 하나일 뿐이라…. 이대로면 전 길드에서 제명될지도 몰라요. 노력하지 않는 사람을 싫어하거든요.”
“음….”
“무소유의 삶이나 나눔의 삶을 실천하는 건 쉽지만 어쩐지 욕심을 부리는 건 죄를 짓거나 어리석은 사람이 되는 것 같아 힘들더라고요.”
도망치기도 바쁜 시간에 얼떨결에 고민 상담을 해주게 되었지만 희연은 열심히 그에 응했다. 어쩌면 그녀 역시도 내심 땃쥐 미에게서 도망가는 게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걸 이미 받아들여서일지도 몰랐다.
“어…, 전에 보니까 윈은 제일 순위가 높았는데 거길 들어간 거잖아요. 그것만으로도 이미 최선을 다했다는 뜻이고요. 그리고 저 전에 료한 님 본 적이 있어요.”
“저를요?”
“네. 에빌론에서에요. 그때 료한 님 옷이 전직 전에 입는 초보자용이었고 전 그때쯤에 이미 게임 시작한 지 몇 주가 지난 뒤였거든요. 그런데 저희 레벨 좀 봐요. 료한 님이 더 높잖아요.”
“아….”
“제가 보기엔 이미 충분히 노력도 하고 욕심도 부리는 것 같아서요. 그래서 사실 뭐라고 말해야 하는지 잘 모르겠어요.”
멋쩍어하는 희연의 모습에 료한은 고개를 저었다.
“아니에요. 충분히 도움이 되었어요. 그… 고마….”
“거기 누구야?”
“!”
희연과 료한은 갑자기 들리는 낯선 목소리에 화들짝 놀라 어깨를 파드득 떨었다. 어두운 숲 가지 사이로 누군가 그들을 향해 걸어오고 있었다.
곧바로 도망치지 않은 것은 상대의 목소리를 통해 추측 가능한 성별이 여성이었기 때문이다. 사박사박 걸어 나오는 이의 검은 사제복을 발견한 순간 희연은 눈을 동그랗게 떴다.
“어….”
“그때 킹 님 친구….”
“뒤에.”
“?”
희연은 그 말에 반사적으로 뒤돌았다가 완전히 굳어버렸다. 샛노란 안광을 번들거리는 땃쥐 미의 검이 바로 뒤에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