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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비세스 메이커 (112)화 (112/251)

112화

쫘아악-!

날카로운 파공음이 코앞에서 울렸다. 반사적으로 손을 들고 눈을 감았던 희연은 하얀 채찍이 날아와 검을 쳐내는 것을 보지 못하고 소리만을 귀에 담았다.

만약 그녀가 코앞에서 일어난 일을 직접 보았다면 틀림없이 감탄 서린 탄식을 내뱉었을 것이다.

땃쥐 미의 검을 쳐 내고 땅을 한번 쳐 낸 뒤 주인에게로 돌아간 채찍이 어찌나 길고 하얬는지 한 번의 움직임이었음에도 화려한 묘기를 보는 듯했다.

채찍의 주인, 마리아는 묘한 표정으로 희연과 료한을 번갈아 보다 어깨를 으쓱였다. 뭐가 됐든 간에 상관없다는 태도였다. 그녀는 채찍 끝을 만지작거리며 말했다.

“뒤로 좀 물러나 볼래요?”

“네…!”

희연은 빠르게 상황을 파악하고 료한의 팔을 잡아당겼다. 마리아가 그들을 도와줄 기색이란 걸 눈치챈 것이다. 이상했던 것은 어쩐지 바짝 굳은 료한이었다.

“왜 그러세요?”

“…아뇨. 아무것도 아니에요.”

“?”

료한은 결코 말할 생각이 없다는 뜻을 담아 입을 꾹 다물다 못해 슬그머니 희연의 뒤로 몸을 빼기까지 했다. 희연은 마리아와 료한을 번갈아 바라보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아는 사이인가 하기엔 마리아 쪽에서는 반응이 없었다.

희연의 시선을 느낀 마리아가 슬쩍 뒤를 돌아보며 눈을 휘었다. 도리어 마리아의 반응을 보다 더 잘 끌어내는 것은 희연 쪽이었다.

제 착각이겠거니 여기며 희연은 마리아를 살펴보았다. 사제복인 것으로 보아 그녀의 직업은 신관인 게 분명함에도 그녀는 레벨 208 검사를 상대하는 것에 대한 부담감이 조금도 엿보이지 않았다. 마리아는 채찍을 길게 늘어트리며 물었다.

“혹시 우리 꼬마 치즈 본 적 있어요?”

“꼬마 치즈… 요?”

“아, 맞다. 우리끼리 그렇게 부르다 보니 입에 붙었네요. 닉네임에 치즈가 들어가거든요. 하늘색 눈, 머리 한 힐러인데 혹시 못 봤나요?”

“혹시 모짜렐라 님 말하는 거예요?”

“아는구나? 안 죽었죠, 우리 치즈? 걔 친구가 하도 살려달라 징징거려서 오긴 했는데 어째 보이지를 않더라고요.”

아마도 죽지 않았을 거라 희연이 답하려던 차였다. 갑작스럽게 등장한 것도 모자라 그가 내질렀던 검을 가볍게 막아낸 마리아를 경계하던 땃쥐 미가 슬쩍 발을 앞으로 내밀었다.

쫘아악-!

“…….”

“얘기 중이잖아. 가만 못 있어요?”

버릇없는 아이를 꾸짖듯 일갈한 마리아는 금색 긴 머리칼을 뒤로 넘기며 채찍을 손에 감았다. 희연은 조금 아쉽다는 생각을 하며 땃쥐 미를 살폈다.

만약 여전히 그들이 같은 파티였다면 방금의 공격으로 땃쥐 미의 피가 얼마나 닳았을지 확인할 수 있었을 것이다. 다만 땃쥐 미의 표정이 영 좋지 않은 것이 타격이 제법 됐겠거니 짐작은 가능했다.

그런데 아무리 레벨이 높아도 신관의 평타로 고렙 검사에게 큰 타격을 줄 수 있나?

희연은 머릿속에 떠오른 의문에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녀는 레벨이 조금 더 높았음에도 슬라임을 잡는 데 애를 먹은 적이 있었다.

그 사실로 짐작 가능한 것은 레벨이 깡패라도 직업 특유의 연약함이라던가 하는 것은 어쩔 수 없다는 점이었다. 그런데 마리아는 땃쥐 미를 가지고 놀았다.

별다른 스킬 없이 채찍 하나로 그의 공격을 전부 막는 거로도 모자라 반격까지 가했다. 현란한 하얀 채찍이 일으키는 곡예에 넋을 놓았던 희연은 뒤늦게라도 돕기 위해 총을 들었지만 곧바로 제지가 날아왔다.

“그냥 가만있어요. 움직이면 신경 쓰여서 방해돼요.”

“아, 네.”

희연은 마리아의 말에 별다른 생각이 없었다. 채찍이란 무기가 워낙 길고 다루기 힘든 만큼 가까이 있는 그녀가 괜히 움직이면 방해가 될 수 있다는 생각 정도는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료한은 희연이 받아들인 것과는 다르게 받아들였다.

“말을…!”

졸렬한 나뭇잎이 시비를 걸었을 때도 고요하던 료한이 처음으로 낯을 찌푸리며 언성을 높였다. 희연은 조금 놀란 마음으로 앞으로 발을 내미는 료한을 지켜보았다. 그런 그에게 경고하듯 곧바로 마리아의 채찍이 경로를 변경했다.

아슬아슬하게 료한의 발 앞에 채찍이 스치고 지나가며 흙 알갱이와 돌조각을 튀겼다. 마치 보란 듯이 료한의 신발 위로 말이다. 마리아는 굳은 료한의 표정을 보며 슬쩍 웃었다.

희연은 묘한 두 사람의 대치에 입을 다물고 조용히 뒤로 물러났다. 이쯤 되니 두 사람이 아는 사이인 게 분명하다는 결론을 내린 것이다. 분한 듯 입술을 짓씹는 료한의 모습에 희연은 애써 그에게서 시선을 돌려 마리아를 보았다.

료한과 달리 마리아는 태평하기 그지없는 모습으로 채찍을 휘둘렀다. 마치 리듬 체조를 보는 것 같은 가볍고 유연한 움직임이었는데, 다른 점은 다리가 바닥에 붙박인 듯 꼼짝도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러나 화려한 움직임, 노련한 실력에도 힐러의 고질적 문제인 딜량은 어쩔 수 없었던 것인지 땃쥐 미는 채찍질 당한 횟수에 비해 겉모습이 멀쩡했다.

그때쯤에 희연은 왜 마리아가 스킬을 사용하지 않는 건가 하는 의문을 가졌다. 그런 희연의 의문을 충족해주듯 마리아는 활짝 웃으며 그녀에게 말했다.

“제가 잘 돌봐줬다고 꼭 말해줘야 해요?”

“네?”

“<떡갈나무의 분노>.”

중력을 잃고 허공으로 나폴나폴 날아오른 채찍이 물결처럼 부드럽게 움직이더니 순식간에 땃쥐 미의 몸을 조여 맸다. 이어 채찍 위로 빛의 나무뿌리가 생장하더니 땅 밑으로 파고들어 발버둥 치는 땃쥐 미가 더 이상 움직이지 못하도록 그를 구속했다.

곧이어 희연의 앞으로 새로운 경고 메시지가 연속으로 떠올랐다.

[스킬 <죽음이 부르는 노랫소리>에 당했습니다. 일시적으로 공포, 혼란 상태에 빠집니다.]

[스킬 <거짓된 죽음의 장난>에 당했습니다. 모든 버프가 해제됩니다.]

[스킬 <죽음의 품격>에 당했습니다. 5초간 경직, 30초 이내 사망 시 페널티가 추가됩니다.]

땃쥐 미가 내뿜는 이름 모를 무형의 기운과는 비교할 수 없는 공포감이 그녀를 짓눌렀다. 희연은 반항할 새 없이 힘없이 주저앉았다. 그녀의 옆에 서 있던 료한 역시 마찬가지였다.

이름부터 새까만 그 스킬들을 누가 사용한 것인지 희연은 어렵지 않게 눈치챘다. 그러니 이것은 그들을 대상으로 한 스킬이 아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영향의 범위가 얼마나 큰 것인지 아무리 애를 써 봐도 자리에서 일어나는 것조차 할 수가 없었다.

그런 희연의 예상이 맞는다는 듯 수풀을 헤치고 낫을 든 작은 인형이 나타났다. 자신의 키만 한 낫을 들고 움직인다는 것이 믿기지 않는 가벼운 몸짓이었다.

평소였다면 킹스메이커의 등장을 환영했을 희연이지만 이번에는 그러지 못했다. 등장과 동시에 땃쥐 미의 목을 노리고 낫을 휘두르는 그녀의 모습이 보통 살벌한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해를 등지고 뛰어올랐기에 얼굴이 제대로 보이지는 않았지만 평소의 생글거림 따윈 찾을 수 없다는 건 알 수 있었다. 그 표정이 상당히 낯설었다.

검은 새의 우짖는 소리가 짧게 울려 퍼지는 것과 동시에 땃쥐 미의 목은 사선으로 그어지는 낫 끝에 베여 수확됐다.

희연은 게임을 한 이래 처음으로 유저의 신체가 분리되면 어떻게 되는지 알게 되었다. 수확된 땃쥐 미의 머리는 잘려서 날아가거나 하지는 않았다. 오히려 피 한 방울 나지 않고 깔끔했다.

그의 목 위는 엉성한 솜 인형으로 바뀌었다. 노란 단추로 꿰매진 눈이 조금 기괴하긴 했지만 심하게 잔인하지는 않았다. 비성인 모드의 힘을 다시 한번 느끼며 희연은 슬금슬금 자리에서 일어났다.

마리아가 채찍을 거두자 인형 머리를 매단 땃쥐 미의 몸이 옆으로 쓰러졌다. 절단된 부위가 머리라서 그런지 옷 밖으로 튀어나온 그의 몸 전부가 솜 인형처럼 변해 있었다.

이어 머더러 유저의 상징인 붉은 그림자 속으로 인형이 된 땃쥐 미는 끌려갔다. 죽으면 폴리곤으로 변하는 여타 다른 유저들이나 몬스터와는 다른 모습이었다.

킹스메이커는 희연으로부터 뒤돈 채 끝까지 그림자 속으로 사라지는 땃쥐 미의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는데, 자신의 앞에 널브러진 수많은 전리품 따위에는 관심 없다는 듯 낫 위를 손끝으로 툭툭 두들기고 있었다.

괜스레 긴장되는 마음에 눈치를 보던 희연은 익숙한 붉은 머리 성기사의 등장에 눈을 동그랗게 떴다.

“야! 같이 좀 가자고!”

“없지 님…!”

“엇, 오리 님!”

바짝 굳어 있던 숲의 분위기는 뉴비 없지의 등장과 함께 유하게 풀려나갔다. 희연은 오랜만에 보는 것 같은 뉴비 없지의 모습에 반가운 기색을 숨기지 못했다.

뉴비 없지는 유난히 반가워하는 희연의 기색에 잠시 고개를 갸웃거리다 좋은 게 좋은 거다 하며 웃었다. 그러나 그 웃음도 잠시, 그는 극성맞은 기색으로 희연의 옆으로 와 열심히 입을 종알거리며 그녀를 연신 살펴보았다.

“오리 님 무사한 거 맞죠? 갑자기 던전 쪽에 지진 났다는 글에 얼마나 놀랐는데요! 별일 아니겠지 하고 있는데 갑자기 막 월드 메시지로 머더러 떴다고 하고, 오리 님은 던전 끝난 지 한창 지났을 시간인데도 채팅도 안 보고 설마 우리 오리 님이 그 머더러 유저의 손에…!”

“그만. 오리 님이 당황하잖아. 오리 님 괜찮은 거 맞죠?”

“네, 저 멀쩡해요!”

“멀쩡하지는 않은 것 같은데….”

“아….”

가느스름해진 킹스메이커의 시선은 희연의 신관복 쪽에 향해 있었다. 희연은 그제야 제 차림새를 제대로 확인했다. 어두컴컴한 동굴 밖으로 나와 확인하게 된 그녀의 모습은 예상보다도 엉망이었다.

안 그래도 뭐 묻는 거 아닐까 걱정되던 하얗고 정갈하던 복장은 원래의 모습을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망가져 있었다.

전체적으로 흙투성이에 밑단은 모두 헤져 있고 한쪽 소매는 초콜릿 냄새 폴폴 풍기는 빨간 피로 물들어 있었다. 던전 밖으로 나온 뒤에도 몇 번이나 산을 굴러다녔기에 심해지면 더 심해졌지 나아진 구석이 조금도 없었다.

킹스메이커는 희연의 머리 위에 붙은 나뭇잎을 떼주기 위해 손을 들었다. 키 차이로 인해 닿지 않아 희연이 무릎을 굽혀주고 그녀는 발뒤꿈치를 들어야 했다.

“속상해라. 이럴 줄 알았으면 그냥 사냥 나갈 걸 그랬어요.”

“아, 그래도 일이 꼬이긴 전까진…, 음, 어, 나름 재밌었어요…!”

“재밌었던 거 맞죠?”

“나빴던 점을 제외하면…?”

희연은 어색하게 웃으며 눈을 굴리다 료한과 눈이 마주쳤다. 그는 마리아의 옆에서 굉장히 불편한 얼굴을 하고 있었는데 어째서인지 떠나지 않고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저….”

“하실 말씀 있으세요?”

그녀의 물음에 료한은 고개를 끄덕였다. 희연은 마리아 쪽을 한번 보다가 냉큼 그의 앞으로 걸어갔다. 발을 떼기 전 킹스메이커에게 말하는 것을 잊지 않았다.

“맞다. 킹 님 친구분이 도와주신 덕분에 살았어요. 잡히기 직전이었거든요.”

“아, 그래요? 마리아가?”

호명된 자신의 이름에 료한의 옆에서 생글생글 웃던 마리아가 킹스메이커 쪽으로 움직였다. 두 사람이 이야기를 나누는 사이 희연 역시 료한과 이야기를 나누었다.

“다른 분들도 모두 무사하대요. 우리가 있는 쪽으로 온다고 했어요.”

“정말요? 다행이다…. 그런데 어떻게 아시는 거예요?”

“던전에서 친구 신청을 해뒀거든요. 오리 님만 빼고 하려고 한 게 아니라, 미로에서 헤맬 때 우리끼리 남았던 적이 있잖아요. 그때 하게 됐어요.”

“그래요? 그럼 저랑도 해요 친구 신청! 저 길드 사람들 말고는 친구 신청해 본 적 없었어요.”

희연은 길드원을 제외하고 처음으로 생긴 친구 창의 이름을 보며 웃었다. 그런 희연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료한이 헛기침을 하더니 다시 입을 뗐다.

“그리고, 아까 미처 다 말하지 못했는데, 고맙습니다.”

“어…, 죄송한데 뭐가요?”

“사실 저도 설명하기 어려워요. 하지만 고맙다고 말하고 싶었어요.”

“그렇구나…?”

“네. 고마워요.”

어찌 됐든 두 사람은 평화로운 분위기 속에서 웃으며 악수를 나눴다. 그사이 킹스메이커는 마리아의 주머니에 이것저것 찔러넣어 주었다. 희연은 친구가 생겼고 마리아는 활짝 웃는 나름 좋은 결말이었다.

“그런데 저 물건들은 어떻게 처분할 거야?”

“뭐? 아, 저거?”

마리아의 질문에 킹스메이커는 머더러 유저 땃쥐 미를 죽이고 남은 전리품을 쭉 훑어보았다. 무기, 잡템, 재료템 등 다양한 것들이 모여 있었다.

대충 그것들을 살피며 견적을 낸 킹스메이커는 얼마 안 있어 결론을 내렸다.

“액세서리의 보석은 뽑아서 내가 쓰고 잡템 중에 쓸 만한 거 제외한 나머지는 경매장에. 그리고 장비도 경매장에 올릴 건데 보란 듯이 다 녹이고 망가트려서 3배 값으로 올려버릴 거야.”

“재료템은?”

“오리 님 옷 해줘야지. 돈은 너 가져.”

“그 말을 기다렸어, 친구야.”

“수고비이기도 한 거 알지?”

“알지 알지.”

킹스메이커로부터 받은 주머니 안의 돈을 세던 마리아는 자신을 보는 희연의 시선에 어깨를 으쓱였다.

“신전에 내야 하는 기부금이 좀 많거든요. 이런 짭짤한 부수익이 있어야 할 정도로요.”

“기부금도 걷어가요…?”

“아뇨 아뇨. 의무로 낸다는 게 아니라 길드 건물이 신전 안에 있어서 그거 대관료 개념으로 기부금을 내는 거예요. 오해하지 마세요. 미르그 교단은 뇌물 금지입니다. 신 미르그는 오로지 사후 처리 완벽한 뒷말 없는 깨끗한 돈만을 사랑하신답니다.”

깜짝이야.

희연은 놀란 마음을 쓸어내렸다. 설마하니 이 세계의 교단은 신도들에게 억지로 기부금을 걷어갈 만큼 썩었나 싶었던 것이다. 비록 신이 돈을 사랑해도 되는 건가 하는 고민은 여전했으나 뇌물은 고사한다는 점에서 나름 안도할 수 있었다.

그들이 가벼운 대화를 주고받는 사이 케이아일과 친구들 파티의 일행들이 온 것인지 근처에서 웅성거리는 목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가장 먼저 나타난 것은 힐러임에도 거침없는 발걸음으로 등장한 모짜렐라였다. 그는 희연과 료한을 보며 안도한 표정을 짓다 마리아를 발견하고 곧바로 뒤에 있던 휘핑크림 유자차의 뒤로 숨었다.

“우리 꼬마 치즈. 기껏 구하러 와줬더니 뭐 하는 걸까?”

“꼬마 치즈?”

“꼬마?”

“둘 다 조용히 해요. 그리고 길마님은 내가 그렇게 부르지 말라고 몇 번이나…!”

왁왁 소리 지르는 모짜렐라를 귀엽다 귀엽다 하며 마리아는 웃었다. 희연은 그런 둘을 놔두고 휘핑크림 유자차와 사랑은 달콤에게로 가 친구 신청을 걸었다.

“오리 님이 어느 순간부터 안 보여서 걱정했어요. 땃쥐 미 그놈이 유난히 오리 님을 노렸잖아요.”

“그렇죠 아무래도…, 그런데 의외로 제가 제일 안전한 곳에 숨어 있었어요.”

비록 목뼈가 상해서 움직이지 못했지만.

“그래요? 다행이다. 파티까지 깨져서 죽었는지 산 건지 알 수가 없었거든요.”

“그래도 다들 무사해서 다행이에요. 달콤 님도 어디 안 다치셨죠?”

희연의 물음에 사랑은 달콤이 고개를 끄덕였다. 다들 어디 숨어 있었던 건지 알 수 없지만 던전 안에서에 비해 장비가 크게 상한 사람은 보이지 않았다.

겉으로만 봤을 때 가장 고생한 것은 희연처럼 보일 정도였다. 희연은 괜스레 자신의 차림새가 신경 쓰여 괜히 흙투성이가 된 옷자락을 손으로 털어냈다. 그걸로는 턱도 없다는 것을 깨닫고 얼마 안 있어 관두었지만 말이다.

“이거 받아요.”

“?”

손에 묻은 흙은 털어내던 희연의 앞으로 익숙한 검과 편지, 말린 꽃이 내밀어졌다. 그것들을 내민 손의 주인은 모짜렐라였다.

“제가… 검을 안 챙겼었나요?”

“네. 안 챙겼어요.”

“아…. 그런데 이걸 왜 저한테 주시는 거예요?”

“특성 퀘스트 받은 건 그쪽이니까요. 제가 가지고 있어서 뭐해요.”

그것도 그렇지….

희연은 수긍하며 모짜렐라가 내미는 것들을 챙겨 인벤토리 안으로 집어넣었다. 킹스메이커와 뉴비 없지가 그게 무엇이냐는 뜻을 담아 고개를 내밀었다.

그 모습에 잠시 움찔거린 모짜렐라가 슬그머니 발을 빼며 말했다.

“다 해결됐고, 다들 각자 할 일로 바쁜 것 같으니 이만 해산하도록 해요. 엉망진창에 좋았던 구석 하나 없는 파티였지만 수고 많으셨습니다.”

모짜렐라의 인사에 희연도 서둘러 말을 이었다.

“수고 많으셨어요! 어…, 나름 재미있었어요!”

그녀의 뒤를 이어 다른 이들 역시 가벼운 인사말을 나누며 손을 흔들었다. 모짜렐라는 마리아를 따라가기로 했고 유자차와 료한. 사랑은 달콤은 셋이서 도시 에빌론으로 가기로 했다 말했다.

희연은 킹스메이커와 뉴비 없지와 함께 길드 성으로 돌아갈 참이었다. 헤어지기 직전 희연은 말했다.

“다음에 다시 만나면 그때 또 파티해요.”

“그땐 파티 이름 바꿔서 해야죠.”

돌아오는 답이 제법 유쾌해 희연은 소리 내어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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