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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비세스 메이커 (121)화 (121/251)

121화

***

에빌론 동문 밖은 으스스한 곳이라는 평가를 받곤 했다. 관리되지 못한 거대한 저택 때문이었고, 유난히 메마른 땅 때문이었으며 수많은 전사들과 영웅들이 눈은 감은 무덤이 모인 공동묘지가 그곳에 있었기 때문이다.

특히 무덤가의 경우 매일 안개가 아주 짙게 끼었다. 과거 그곳에서 숨어 살던 산골 꼬마 요정들은 햇볕을 쬐고 싶으면 언덕으로 나와야 했을 정도였다.

희연은 그 무덤가에 있었다. 가장 가장자리에 작게 만들어진 무덤 앞에 서서.

급하게 만들어진 하얀 비석은 다른 것들에 비해 밋밋했다. 비석 앞의 땅은 다른 곳들처럼 불룩 튀어나오지도 않았다.

비석에 적을 말이 없고 그 아래 묻힐 존재가 없어서였다. 희연은 땅에 편지를 묻었고 그 위에 검을 꽂음으로써 비석을 장식했다.

언제나 무덤가를 덮었던 안개를 킹스메이커의 도움을 받아 없앤 참이었다. 덕분에 희연은 한참을 무덤 앞에 앉아 있는 동안 붉은 하늘에 별이 뜨기 시작하는 광경을 고스란히 볼 수 있었다.

그 옆에는 두 악령이 함께하고 있었다. 희연은 간신히 구해온 설탕 제비꽃이 든 봉투를 바라보다 그중 몇 개를 꺼내 검 옆에 놔두었다.

“안 올까?”

희연의 물음에 설탕 제비꽃 하나를 해치운 악령이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 모습에 슬그머니 미소 짓던 희연의 입꼬리가 내려간 것은 뒤에서 발소리가 들렸을 때였다.

레몬의 말처럼 요른은 상당한 수다쟁이였음이 증명되는 순간이었다.

“…아나토.”

“…….”

바람에 흐트러진 것인지 처음 봤을 때보다 헝클어진 머리카락이 바람을 타고 살랑살랑 움직였다. 붉기만 하던 하늘에는 어느새 어둠이 드리워지고 있었다.

아나토는 말없이 걸어왔다. 희연의 옆에 앉았다. 희연은 약품 냄새와 로즈마리 냄새를 동시에 맡을 수 있었다.

그녀는 한동안 아무 말 하지 않다가 달싹이는 숨결이 진정될 때쯤에 떨리는 손으로 꽃 한 송이 피지 않은 푸른 줄기의 로즈마리 한 묶음을 검 앞에 두었다. 아나토는 덤덤한 얼굴을 흉내 내며 말했다.

“꽃집이 모두 문을 닫았더군요. 나한테 있는 꽃이라곤 공방에 있던 것밖에 없었습니다. 망자에 대한 실례일까요?”

“아닐 거예요….”

대화가 끊기며 침묵이 감돌았다. 아나토의 손은 여전히 덜덜 떨리고 있었다. 아나토는 울지 않았다. 그래서 희연도 구태여 위로하지 않았다.

석양이 스멀스멀 사라지고 길게 늘어진 땅거미가 땅 전체를 덮을 때쯤이 되어서야 아나토는 다시 입을 열었다.

“사실, 사실은… 알고 있었어요. 모두.”

“…….”

“내 말은 단 한 번의 위로가 되지 못했다는 것도, 나와의 약속은 살아야 할 구실이었고, 돌아오지 않음의 의미가 단순히 아주 먼 곳에 있어서 그런 게 아니라는 것도.”

“…….”

“차라리 우리의 이야기가 흔해 빠진 사랑 이야기 같은 거였다면, 시시덕거릴 수 있는 추억이었다면…, 누구 하나가 죽는 일 따윈 없었을 텐데….”

날이 어두워졌다. 이제는 밤이었다. 안개 한 점 없는 하늘이 얼마나 맑고, 달은 밝았는지 한 줄기 눈물방울 하나 놓치지 않았다. 그래서 희연은 고개를 돌렸다. 오로지 검만 보았다. 아나토도 검만을 보았다.

그녀는 눈앞의 검에게 물었다. 한탄이었다.

“내 말은 조금도 닿지 않았나…?”

답은 희연이 했다.

“그건 아니라고 생각해요.”

“…….”

“정말로, 그건 아니에요….”

병사 악령이 본인의 입으로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다고, 소년병을 찾아 복수하는 것도, 아나토를 찾아 변명하는 것도 하고 싶지 않다고 했음에도 희연이 그녀를 찾아온 것은 아나토가 유일한 퀘스트의 단서이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비화. 소년병이 밉고, 전쟁이 밉고. 왕과 세상, 자신마저 밉다 했던 병사가 유일하게 미워하지 않은 존재. 쉬고 싶다면서도 끝까지 머릿속에서 잊지 않았던 상대. 그게 아나토였다.

그래서 희연은 아나토를 찾을 수밖에 없었다.

“…꽃 같은 거, 안 갖고 와도 됐어요.”

“네….”

“어차피 그깟 꽃 같은 거 봄만 되면 아무 곳에나 피는 건데, 모른 척 빈손으로 와도 됐는데 왜 그걸 못 해서….”

“…….”

“머물 곳이 되어주겠다고 한 건 난데, 그 말 때문에 난 평생 이 땅을 떠날 수 없게 되었는데…, 돌아올 사람이 없어요.”

주먹 쥔 손에 힘이 들어갔다. 희연은 서럽게 젖어가는 회색 눈을 보다 고개를 돌렸다. 언제부터인지 옷자락 속에 숨은 병사 악령의 붉은 눈에서 방울방울 눈물이 흐르고 있었다.

유저가 아닌 NPC에게는 기본적으로 악령의 존재가 보이지 않았다. 수준 높은 신관인 헬르벨처럼 특출난 능력을 갖고 있지 않는 한 말이다.

덕분에 편하게 악령들을 데리고 다녔던 희연이지만 지금, 이 순간만큼은 아나토에게 악령이 보였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붉은 눈물을 물끄러미 바라보다 희연은 입을 뗐다.

“아나토.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저는 했으면 좋겠어요.”

“그게 무슨 의미가 있죠?”

행위의 의미를 묻는 말에 잠시 머뭇거리던 희연은 간신히 답을 찾아 천천히 내뱉었다.

“뒤늦게나마 닿는다면 그건 그것대로 의미가 있는 거잖아요…. 적어도 후회는 되지 않게….”

희연의 말이 통한 것일까. 아나토는 입안의 말을 고르듯 멍하니 앉아 있었다. 그러다 나온 첫마디에 희연은 조금 당황했다.

“…멍청이.”

소리 없이 울던 병사 악령의 눈물마저 뚝 그치게 만드는 말이었다. 아나토는 자신을 보는 희연의 시선에도 개의치 않고 말했다. 그건 일종에 결심 같은 거였다.

“나는 살 거야. 아주 오래도록. 머무를 곳이 없어 헤매는 일 없이. 그렇게 살 거야. 아주 재미없고, 그래서 아주 오래오래 사는 그런 사람으로.”

“…….”

답을 전해줄 수라도 있으면 좋을 텐데. 희연은 그런 생각을 했다. 그러나 힘을 잃은 병사 악령은 희연에게조차 제 뜻을 전달하지 못했다.

희연은 손을 뻗어 병사 악령을 안아 들었다. 눈물 흘리는 붉은 눈은 이제 정확히 아나토를 바라보았다.

병사는 울었고, 아나토는 울지 않았다. 둘 모두 진심이었다. 아나토는 슬픔을 묻는 것을 택했다. 진실은 파헤쳐졌지만 결국 묻는다는 점은 같았다.

그러니 바뀌는 것은 사실 없었다. 아나토는 여전히 슬프고 병사 역시 여전히 슬펐으니까. 꽃은 없고, 돌아갈 곳에 돌아올 이를 기다리는 사람만이 남았다.

희연은 아나토에게 뒤늦게나마 닿는 것에도 의미는 있다고 했지만, 같은 장소에 있더라도 서로 보지도 못하는 지금을 과연 닿았다고 정의해도 될지 의문을 느꼈다.

괜한 짓은 아니었을까. 희연이 자신의 행동에 후회가 들 때쯤, 이변이 일어난 것은 그때였다. 희연의 품에 힘없이 안겨 있던 병사 악령이 악령이에게 달려든 것이다.

“?”

“으앗!”

붉은 입이 쩍 벌어지며 악령이의 팔을 물어뜯었다. 희끄무레한 무언가가 인형의 팔에서 흘러나와 병사 악령의 입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그와 동시에 병사 악령의 몸이 처음 봤을 때처럼 거대해지더니 넓게 퍼지며 주변을 감싸기 시작했다. 다른 점은 그 색이 검지 않고 보통의 안개처럼 희었다는 점이다. 안개가 사라졌던 무덤가는 다시 안개로 덮였다.

“꽃…?”

아나토의 말에 희연은 고개를 돌렸다. 아나토가 가져왔던 로즈마리에 연보라색 꽃망울이 가득 피어 있었다.

그리고 이어 무언가 툭, 툭 쏟아져 내리기 시작했다. 희연은 고개를 들었고 아나토는 다시 주저앉았다. 머리 위로 내려앉는 것의 정체를 확인한 희연의 입가는 울음과 미소 그 어딘가의 감정으로 떨렸다.

안개에 뒤덮인 무덤가에 떨어지는 것은 아주아주 새파란 제비꽃이었다. 이어 보라색 제비꽃이, 분홍색 제비꽃이, 노란색, 분홍색 색색의 모든 제비꽃이 비처럼 쏟아져 내렸다.

꽃과 함께 돌아오라는 말에, 비록 꽃이 되어 돌아온 병사는 이렇게나마 아나토에게 그녀의 말이 닿았음을 알렸다.

말을… 전해줘….

안개 속에서 흐릿하게 들리는 목소리의 주인을 희연은 어렵지 않게 추측할 수 있었다. 던전에서 들었던 목소리였기 때문이다. 검은 안개 사이에서 나타난 희뿌옇게 빛나는 인영이 그녀를 바라보았다.

인영은 희연보다 키가 조금 컸고, 이리저리 뻗친 곱슬머리는 길이가 일정하지 않아 중구난방이었다. 가죽을 덧댄 낡은 방어구, 입가에 남은 제법 커다란 흉터, 덥수룩한 앞머리 사이로 슬그머니 엿보이는 순한 눈매 같은 것. 희뿌옇게 빛나는 인영으로부터 얻을 수 있는 정보 전부였다.

희연은 그 모습에 잠시 놀란 표정을 지었지만, 그 이상 놀랄 틈도 없이 입을 열어야 했다. 병사의 말을 전하기 위해서였다.

아나토. 친애하는… 아나토….

“…친애하는 아나토. 당신의 말이 언제나 내게 위로가 되어줬고, 나를 살렸어요.”

“…….”

“언제나 방황하던 당신이 더 이상 방황하지 않게 되었음에… 나는 기쁩니다. 그러니 살아요, 아나토. 길을 잃지 말고 헤매지도 말고….”

이제 덧없는 바람은 묻고, 그 땅에 피어날 꽃에 아주 가끔만 눈길을 주며… 나의 친애하는 아나토.

***

“솔직히 말하면요… 저는 그 무덤에서 병사 악령이 성불할 줄 알았어요.”

희연의 말에 반응하듯 꼼지락거리던 작은 머리가 휙, 고개를 치켜들었다. 그 움직임을 따라 짧은 토끼 귀가 팔랑거렸는데, 이는 병사 악령이 두른 털실 망토의 모자 장식으로 킹스메이커가 만들어준 물건이었다.

악령이가 몸을 차지한 메리 인형이 그러하듯 병사 악령이 뒤집어쓴 망토 역시도 해가 쨍쨍한 시간대에도 악령들이 버틸 수 있도록 도와주는 역할을 했다.

원래 킹스메이커는 병사 악령이 얼마 안 있어 떠날 존재라고 생각했기에 악령이 때와는 달리 도움을 줄 물건을 만들지 않았었다.

그러나 톨러가 만들어 준 무덤, 그곳에서 아나토와 제대로 된 작별을 고했음에도 병사 악령은 사라지지 않았다. 희연에게 퀘스트 완료 문구가 뜸과 동시에 보상까지 쥐어졌음에도 말이다.

그에 킹스메이커는 병사 악령 역시도 아주 오랫동안 희연의 곁에 머물겠구나 하는 예감을 느꼈기에 망토를 만들어 준 것이다.

다만 악령이와 달리 병사 악령의 경우 부두 인형의 몸을 차지할 정도의 힘은 없었기에 햇빛으로부터 몸을 가려 줄 망토로 만족해야 했다.

“…망토 쓰니까 귀여운 것 같기도 한데.”

병사 악령이 움직일 때마다 팔랑거리는 하얀 토끼 귀는 객관적으로 봐도 귀여운 게 사실이었다. 킹스메이커의 미적 감각과 손재주는 뛰어났기 때문이다.

테이블 위를 뽈뽈 돌아다니는 병사 악령을 구경하던 희연에게 털실을 정리하던 킹스메이커가 물었다.

“이렇게 된 거 이름을 정해야 하지 않을까요? 악령이 둘인데 둘 다 악령이라고 부를 수는 없잖아요.”

“아무래도 그렇죠…?”

악령이라는 호칭이 나름 귀엽기도 하고 잘 어울리기도 했기에 가벼운 마음으로 그리 불렀던 희연이지만 일이 이렇게 되고 보니 제대로 된 이름의 필요성을 느끼던 참이었다.

두 사람의 대화에 악령이에게서도 반응이 왔다. 병사 악령에게 물어뜯기며 힘의 일부를 뺏겼던 탓에 기분이 안 좋았던 악령이었다.

덕분에 병사 악령은 아나토와 제대로 작별을 할 수 있었다지만 힘을 뺏겼던 것이 타격이 컸던 건지 악령이는 여태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있었다. 그러나 이름이라는 말에 악령이는 자신이 언제 그랬냐는 듯 냉큼 희연에게 말했다.

“나는 악령이가 좋아!”

지금까지처럼 불러 달라는 요구였다. 희연은 좋았다. 다만 남들이 보기에도 괜찮은가 싶어 이야기를 꺼냈던 킹스메이커 쪽을 힐끔 바라보았다. 그 시선에 킹스메이커는 웃으며 말했다.

“그건 대머리 독수리의 이름으로 대머리 독수리야~, 하고 지은 거랑 같은 거란다 악령아.”

예시가 왜 하필이면….

희연은 난색을 보이며 악령이를 보았다. 괜찮게 느껴졌던 악령이란 호칭이 킹스메이커의 말을 들으니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그러나 악령이의 고집도 무시 못 할 거였다.

“악령이가 좋아.”

“악령아, 다른 이름 예쁜 것도….”

“악령이가 좋아.”

“…….”

“악령이가 좋아.”

“그래….”

악령이는 악령이로 결정됐다. 희연은 인형의 머리를 대충 쓰다듬어 준 뒤 병사 악령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악령이에게서 빼앗은 힘을 아나토와의 이별을 위해 모조리 써먹은 병사 악령은 다시 손가락 마디만 한 크기로 돌아온 이후로 대화가 불가능해졌다. 의견을 구할 수 없다는 뜻이었다.

희연은 아주 신중한 고민 끝에 입을 열었다.

“령이?”

“…나 오리 님이 이름 짓는 방법이 뭔지 좀 알 것 같아요. 만약 악령이 아니라 귀신이었으면 신이라고 지었을 거죠?”

“…….”

“에흐테흐가 닉네임을 잘 지어놔서 다행이네요.”

희연은 다른 사람의 의견을 구해보기로 했다. 그 대상은 테이머 닉이었다.

“닉 님. 어떤 이름이 좋을까요?”

“저요?”

갑작스러운 지목에 그는 조금 놀란 티를 냈지만, 이 자리에서 희연이 선택할 만한 사람은 실상 닉뿐인 것을 생각하면 그리 놀라운 일은 아니었다.

길드 성의 온실에 옹기종기 모인 사람들의 닉네임만 봐도 그러했다. 킹스메이커는 그리 이상하지 않았지만, 너무 닉네임스러웠다. 느그 집에는 뉴비 없지는… 그랬다.

닉=Nick. 비록 Nick name에서 철자를 차례로 지우다가 얼결에 걸린 닉네임이었지만 나름 예쁜 이름이었고 그가 테이밍한 동물들의 이름 역시도 예쁜 편이었다.

옆에서 뉴비 없지가 왜 자신에게는 물어봐 주지 않는 것이냐며 징징거렸지만 킹스메이커가 제압했기에 희연은 곤란한 답을 피할 수 있었다.

“다른 사람들의 의견을 들어보는 건 어때요?”

“다른 사람들이요?”

“저번에 던전에 갔을 때 사귀었던 사람들이요.”

“아….”

“의견은 많을수록 좋으니까요.”

병사 악령과 인연이 있었던 건 그들도 마찬가지였기에 희연은 좋은 의견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곧바로 실천하기 위해 손을 들었던 그녀는 다시 손을 내려야 했다.

“그런데 한 명 한 명한테 보내는 건 좀….”

“길드 채팅처럼 다 같이 모여서 대화할 수도 있어요.”

“진짜요? 파티도 아닌데 그게 돼요?”

“네, 돼요.”

희연은 닉의 도움을 받아 던전에서 인연을 맺었던 이들에게 연락을 넣는 것에 성공했다.

[그룹1 : 눈오리의 돌격 외 4명

눈오리의 돌격 : 안녕하세요…!

따뜻한 휘핑크림 유자차 : ㅇㅤㅓㅅ! 안ㄴㅤㅕㅇ하세요! 저 지금 ㄹㅔㄷ

따뜻한 휘핑크림 유자차 : 레이드 ㅈㅁㅈㅁ

12시의 모짜렐라 : ㅇ]

희연은 잠시 괜히 연락을 보냈나 하며 후회했다. 다행히 그녀의 문자로 인한 피해는 없었는지 얼마 안 있어 휘핑크림 유자차가 다시 연락을 시도했고 다른 이들도 하나둘 안부를 주고받기 시작했다.

가벼운 신변잡기식의 인사치레가 오가자 모짜렐라는 곧바로 희연에게 본론에 대하여 질문했다. 갑자기 연락한 이유가 무엇이냐는 거였다. 희연은 그 질문에 냉큼 답을 보냈다.

[눈오리의 돌격 : 병사 악령 이름 지어주려고 하는데 고민되어서요

따뜻한 휘핑크림 유자차 : 그 악령 결국 키우는 거예요? 그러면 악령이 어때요?

눈오리의 돌격 : 키우는 건 아닌데 비슷해요! 그리고 그 이름은 이미 주인이 있어요!

료한 : 그러면 갈보리는 어때요?

12시의 모짜렐라 : 그거 우리나라 말 아니죠?

료한 : 네. 히브리어에요.

12시의 모짜렐라 : 오 무슨 뜻이에요?

료한 : 해골이요.

눈오리의 돌격 : ㅎㅎ

사랑은 달콤달콤 : x

따뜻한 휘핑크림 유자차 : 그건 좀..

12시의 모짜렐라 : 다른 건 없나요?

료한 : 넬? 등불이라는 뜻이에요.]

“어…, 좋다.”

시작부터 나온 의견이 해골이라 당황했던 희연은 앞에 것을 잊게 만드는 의견에 냉큼 동의를 표했다.

[눈오리의 돌격 : 예뻐요!

료한 : 친구라는 뜻의 르우도 있어요.

눈오리의 돌격 : 그것도 예뻐요!

료한 : 샬로메 - 평화

눈오리의 돌격 : 오!

료한 : 소알 - 작다

눈오리의 돌격 : 좋다!

따뜻한 휘핑크림 유자차 : 료한 님ㅋㅋㅋㅋㅋ뭐 보고 채팅 치는 거예요? 뜻이 예쁜 히브리어 단어 모음집?

12시의 모짜렐라 : ? 싫은 게 뭐지..

눈오리의 돌격 : 해골이요 ㅎㅎ]

가벼운 대화가 그 뒤로도 쭉 이어졌지만 희연은 이미 마음을 정한 상태였다. 채팅창에서 눈을 뗀 그녀는 병사 악령을 돌아본 뒤 조심스레 물었다.

“내가 이름 지어줘도 괜찮아?”

병사 악령에겐 이름이 보다 더 예민한 문제일 수밖에 없었다.

희연은 조금 긴장했지만, 그 긴장이 무색하게도 병사 악령으로부터 돌아온 답은 봄과 같았다. 희연은 제 손안에 쥐어진 제비꽃 뭉치를 보며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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