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뉴비세스 메이커 (123)화 (123/251)

123화

마음을 먹은 합법 도박의 작업 속도는 굉장히 빨랐다. 애당초 가장 중요한 주재료를 킹스메이커에게 받아두었기에 준비 과정이 수월한 덕을 본 것이다.

그러나 매끄럽게 진행되는 중에 브레이크가 걸릴 때면 그 모두가 킹스메이커가 제공한 재료 때문이라는 점이 아이러니였다.

“진짜 이거 쓸 거예요? 최종 장비도 아니고 렙 30을 위한 장비인데 다시 생각해 보는 게….”

“괜찮아요, 괜찮아. 애초에 왜 회로를 최소 열다섯 줄 넣어달라고 했겠어요.”

“그건 그렇지만…, 저 사람은 여기 들어가는 게 드래곤의 가죽이랑 드래곤 뼈라는 거 알아요?”

“모르죠.”

“…….”

합법 도박과 킹스메이커의 대화에 귀 기울이던 희연은 정작 중요한 주재료가 무엇인지 듣지 못했음에 속으로 탄식을 뱉었다. 대체 뭐길래 재료 이름을 말할 때는 목소리까지 죽인 걸까.

주변을 기웃거리며 엿들으려 하는 희연을 보며 킹스메이커는 생글생글 웃었고 합법 도박은 어깨를 한 번 으쓱이고는 고개를 저었다.

두 사람 다 그녀에겐 알려 줄 생각이 없다는 의미였다. 조금 뾰로통해진 희연을 두고 합법 도박은 본격적인 작업에 들어갔다.

“<구둣방 요정들의 밤>!”

익숙한 효과음과 함께 꼬마 요정들이 우르르 나타났다. 이미 한 번 봤던 광경이기에 대수롭지 않은 표정을 짓고 있던 희연은 눈앞에 나타난 요정들의 모습에 언제 그랬냐는 듯 놀란 표정을 지었다.

“어, 요정들이….”

“이 집 요정들은 우락부락하네요.”

뉴비 없지와 달리 희연은 태연할 수가 없었다.

뉴비 없지의 말대로 합법 도박이 소환해 낸 요정들은 말쑥한 차림새에 털실 양말을 신은 요정들이 아니었다. 아니, 생긴 것은 비슷했지만 하나같이 한 덩치 한다, 하는 말이 절로 나오는 모습을 하고 있었다.

게다가 말쑥한 차림새는커녕 구멍 난 양말에 여기저기 불에 탄 흔적이 남은 가죽옷을 입고 있었는데, 대장장이인 합법 도박과 비슷한 차림새였다.

희연이 요정들에게서 눈을 못 떼자 옆에 앉아있던 닉이 손을 내밀며 스킬을 사용했다. 요정들에 대한 설명을 보다 쉽게 이해시키기 위해서였다.

“<구둣방 요정들의 밤>.”

닉이 소환해 낸 요정들은 하나같이 동물 귀와 꼬리가 달린 복슬복슬한 두건이 달린 케이프를 두르고 있었다. 그들은 깡충깡충 뛰며 닉의 손 위로 차례로 올라탔다.

“…귀엽다.”

“장비 제작을 해주는 요정들은 커스터마이징이 가능해요.”

“커스터마이징이요? 게임 시작할 때 외모 꾸미라고 하는 그거요?”

희연의 물음에 닉은 고개를 기울였다. 잠시간 고민하던 그는 적절한 설명을 떠올린 뒤에야 다시 입을 열었다.

“아무런 설정도, 능력도 없는 요정을 키워나가는 거라고 보면 돼요. 어떤 장비를 주로 만들게 하냐에 따라 모습이 바뀌고, 주 속성 같은 것도 바뀌니까요.”

“일종에 장비 제작은 요정 키우기 콘텐츠이기도 하다는 말이죠!”

뉴비 없지가 냉큼 끼어들며 추가로 설명해 주었다.

희연은 신기해하며 닉의 요정들을 다시 살펴보았다. 묘하게 오만하던 킹스메이커의 요정들이나, 거친 성정을 보여주는 합법 도박의 요정들과 달리 그들은 매우 온순한 모습을 보여주었다.

요정도 주인의 성격을 따라가는 걸까? 희연은 조심히 하얀 고양이 두건을 쓴 요정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요정은 낯선 손길에도 방긋 웃었다.

“겨우 그 정도 실력으로 대장간의 주인이라 말할 수 있나! 더더욱 손을 놀려라!”

“드베르그의 이름이 운다! 운다! 운다! 운다!”

합법 도박을 재촉하는 요정들과는 정말 다른 모습이었다.

닉의 손에서 데굴데굴 굴러다니는 요정들에게 빠져 한참 구경하며 놀던 희연이 자리에서 일어난 것은 더 이상 철을 두들기는 소리가 들리지 않을 때였다.

어느새 풀무질을 하고 이리저리 망치를 들고 뛰어다니던 합법 도박의 요정들도 돌아간 뒤였다. 합법 도박과 킹스메이커는 낮은 목소리로 대화를 나누며 머리를 맞대고 있었다.

희연은 조심조심 걸어가 그들의 작업을 훔쳐보았다. 총의 틀은 잡힌 상태였고, 합법 도박이 하는 작업은 총 안에 미로 같은 회로를 새겨넣는 거였다.

슬쩍 훔쳐보기만 했는데도 어찌나 복잡하던지 뚝뚝 떨어지며 꼬인 선들이 징그러워 보일 정도였다.

회로는 시리게 빛났다. 너무 밝아 맨눈으로 보기 힘들 정도였다. 합법 도박과 킹스메이커는 용케도 눈 한번 깜박이지 않고 함께 회로 작업을 해나갔다.

“와, 그걸 거기다 잇는다고요? 정말? 진짜로? 그게 최선일까요?”

“…….”

정확히 말하면 킹스메이커는 옆에서 합법 도박에게 뭐라 하는 역할이었다. 합법 도박은 순박하면서도 험악해 보이는 얼굴을 일그러트리며 울듯이 말했다.

“그냥… 혼자 작업하게 해주시면 안 되는 건가요?”

“도박 님… 회로 작업 망했을 때 혼자 망한 거면 그 책임이 어디로 갈지도 잘 알죠?”

“함께하니 작업 능률이 아주 좋네요! 계속 그렇게 저를 뒤에서 쪼아주세요!”

척 보기에도 오래 걸릴 것 같은 작업이었기에 희연은 다시 자리로 돌아왔다. 옆에서 괜히 알짱거리다 어려워 보이는 작업에 방해될까 걱정되었다.

그사이 닉이 소환했던 요정들도 일감이 없는 것을 눈치채고는 돌아갔다. 희연은 약간 아쉬운 마음으로 텅텅 빈 닉의 손을 보다 어떻게 시간을 보낼까 생각했다.

평소였다면 언제나 심심한 악령이들과 가벼운 대화를 주고받거나 그들을 놀아주며 빈 시간을 채웠을 것이다.

그러나 아나토의 눈에도 보이는 힘을 사용한 것, 그런 힘을 사용할 정도의 힘을 뺏긴 것 때문인지 두 악령 모두 기절하듯 잠든 상황이었다.

희연은 손을 내려 허벅지 쪽에 메인 홀스터의 파우치 부근을 더듬어 보았다. 아직 총이 들어가지 않은 빈 파우치 안을 두 악령들이 차지했고, 홀스터의 투명화 효과는 둘에게도 적용되었다.

반응이 없는 것으로 보아 아직도 자고 있는 듯했다. 희연은 손을 떼며 잠시 짧은 고민을 했다. 총을 넣고 나면 두 악령을 어떻게 데리고 다니나 하는 생각이었다.

에흐테처럼 <즐거운 나의 집>에 넣을 수 있다면 좋을 텐데…. 악령도 펫으로 쳐 주나?

생각하느라 멍하니 있던 희연의 모습을 심심해서 그렇다고 생각한 뉴비 없지가 그녀의 어깨를 톡톡 두들겼다.

“?”

“오리 님 많이 심심해요? 회로 작업 끝나면 인챈트 작업도 해야 하는데…. 이참에 장비 제작을 하며 시간을 보내는 건-.”

“아뇨. 저 그렇게 심심하지 않아요.”

단호한 희연의 대답에 뉴비 없지의 어깨가 축 처졌다. 그런 그에게 조금 미안했지만 희연은 정말로 빈 시간을 장비 제작이나 강화를 하며 보내야 할 정도로 인생이 심심하진 않았다.

물론 장비 제작이 요정 키우기라는 점에서 조금 끌렸던 것도 사실이지만 역시 함부로 시작하면 안 되는 콘텐츠라는 생각은 여전했다.

혹여나 또 그의 입에서 제작이라거나 강화라거나 하는 험한 말이 나올까 싶어 희연은 대화 주제를 바꾸었다.

“장비 제작하지 말고, 그 얘기 해주시면 안 돼요? 옛날에 있었다는 역사적인 사건이요.”

“아, 맞다 맞다. 그 얘기를 안 했었죠?”

뉴비 없지는 희연의 의견을 냉큼 물었다. 희연은 박수를 치며 호응을 한 뒤 그의 입에서 나올 이야기에 집중했다. 흠흠 헛기침하며 목을 가다듬은 그는 천천히 이야기를 시작했다.

“어디서부터 얘기해야 하려나…. 일단, 옛날에 게임사 홈페이지를 들어가면 사건, 사고 게시판이라는 게 있었어요. 줄여서 사사게라고도 불렀는데, 쉽게 설명하면 저격 게시판이었죠.”

“저격 게시판이요?”

“파티 내 트롤러, 문제 있는 행동을 한 유저를 내 선에서 끝내는 것이 아닌 공개적으로 박제시키겠다는 마음가짐 가득한 사람들이 모였던 전쟁터죠.”

“오….”

“그래 봤자 나중에 보면 그냥 개싸움이나 다를 것 없고, 솔직히 말하면 진짜 피해자인지 가해자인지 구별하기도 힘든 글들이 다수였어요. 정치질인 경우도 많았으니까요.”

뉴비 없지는 그 당시는 정말 지옥이었다면 몸서리쳤다.

“그러다가 사사게가 완전히 사라지게 된 사건이 일어났죠. 유저가 GM 저격 글을 올린 거예요.”

“…?”

“사건의 전말은 이러했습니다.”

과거, 메르헨 호라이즌의 특색이라고도 볼 수 있는 직업과 무기의 자유성 패치가 되지 않았던 시절. 그 당시 이방인인 유저들을 향한 NPC들의 텃새는 지금보다도 심했다.

자유 도시 에빌론은 그때에도 그나마 이방인들에게 우호적이었지만 물건에 대한 가격은 우호적이지 않았다. 사실 우호적이고 말 것도 없이 초기의 에빌론은 도시가 아닌 마을이었다. 그것도 전쟁의 상흔을 다 메우지 못한 마을.

사고팔고 할 물건 같은 것도 얼마 없었다는 뜻이다. 결국 유저들은 스스로 시장을 만들어나가야 했고 그 방식의 주를 이뤘던 것은 당연하게도 유저와 유저 간의 물물 교환이었다.

이때, 한 몫 단단히 벌 수 있었던 것이 제작직 유저들이었다. 그들은 밖에 나가 사냥을 한다든가 하는 방식의 플레이를 즐기기는 어려웠지만, 그만큼의 다른 재미는 누릴 수 있었다.

문제는 공급자가 언제나 정해져 있다는 점이었다. 사냥을 주 재미로 삼은 유저들은 포션이나 장비를 만들 수 없었기에 시장에 관여할 방법이 없었다. 그 점에 대해서 갑이 누구인가는 매번 정해져 있었지만 처음부터 만들어진 문화에 전체적으로 수긍하는 반응이 다수였다.

그러나 월급과 성적 빼고 모든 것이 오른다고 했다. 그것은 메르헨 호라이즌의 물가 역시도 마찬가지였다. 수급되는 골드 양은 똑같은데 물가만 쭉쭉 올랐다.

분명 제작 직업들끼리 말 맞추는 거다, 하며 불만을 토로하는 이들은 많았지만 이를 먼저 공론화하는 사람은 없었다. 증거를 찾고, 따지고 기 싸움을 하기엔 마을 밖의 모험이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찬란한 모험을 뒤로한 채 모든 전투 직업 유저들을 위해 나선 이가 있었다. 익명의 영웅은 알려진 정보가 없었지만 어렴풋이 모두가 직업이 탱커였으리라고 믿었다. 어그로를 잘 끌었다.

영웅은 게시판에 글을 올렸다. <교환 불가 아이템 교환할 수 있게 만드는 버그 발견함>. 모두가 글을 읽을 수 있도록 배려한 어그로 성 제목이었다.

효과는 굉장했다. 유저는 물론이고 운영진의 심장마저 철렁이게 하며 클릭하게 만든 것이다. 그리고 글을 본 운영진은 다시 심장이 철렁 내려앉는 경험을 해야 했다.

제목 어그로 낚시는 그 누구도 신경 쓰지 않았다. 그 정도로 글을 구성하는 내용이 알찼다. 서두 없이 본론뿐인 글은 글자 수도 몇 안 됐는데, 그도 그럴 것이 일부의 제작직 유저들이 시세 조작을 주도했다는 증거물을 사진과 영상으로 올렸기 때문이다.

다들 암암리에 알고 있었던 사실이지만 제대로 된 증거물과 함께 거론되는 것과 그냥 자기들끼리 혹시, 하며 추측하던 것은 다른 차원의 파급력이었다.

그 게시물이 올라온 지 딱 한 시간 만에 메르헨 호라이즌의 홈페이지는 터졌다. 문의함은 닫혔다. 분노한 전투직 유저들은 제작직이다 싶으면 무분별한 PK를 시도했다. 마을 안에 있어서 못 죽이면 마을 밖으로 끌고 가서 죽였다.

개입이 필요하다는 판단하에 게임사는 긴급 점검을 핑계로 게임을 셧다운시켰다.

“와….”

“악수였습니다. 욕 더럽게 먹었죠. 물론 그 상황에서 게임 연결을 아예 끊어버리지 않았으면 일이 더 커졌긴 했겠지만요. 그나마 다행이라고 할 점은 그 당시 게임사에서 내민 슬로건이 소통이었다는 점이죠.”

정확히 두 시간 후 게임은 다시 제대로 작동되었고, 게임사의 공지가 올라왔다.

갑작스러운 점검에 대한 사과와 보상, 제작과 전투로 콘텐츠를 완전히 가른 것으로 인해 일어날 법한 사건을 미리 생각하지 못한 운영진의 실책에 관한 내용이었다.

또한 유저들과의 소통을 통해 이 사건에 대한 제대로 된 해결책을 찾겠다는 의지를 피력했다.

그들이 선택한 소통의 방식은 면대면이었다. 충분히 이 사건에 대해 공감을 하고 있으면 양측의 의견 모두 듣고 참고하겠다는 의지를 담아 양측에 GM을 보냈다. 그들이 바로 GM 룰루, 랄라였다.

GM 룰루는 제작직 유저들을 찾아가 그들 나름의 고충을 들었고 GM 랄라는 전투직 유저들을 찾아가 그들의 억울함을 들었다. 여기서 다시 문제가 생겼다.

“GM들이 공감을 너무 잘 해줬어요. 유저들끼리 편 갈린 것도 머리 아픈데 GM들까지 편이 갈린 거예요.”

“어쩌다….”

“게임사에서는 부랴부랴 아무나 내보낸 것이 아니다, 라는 걸 증명하기 위해 평소에도 메르헨 호라이즌을 하던 제작, 전투 쪽 사람을 하나씩 GM으로 선정했는데 그게 문제였죠. 유저들이 제시한 문제점을 두 GM도 평소에 느끼고 있었던 거예요.”

“아….”

“그땐 매일이 살벌했어요. 제작직은 마을 밖으로만 나가면 바로 PK 당하고 전투직은 포션 없어서 빌빌거리는 몸으로 돌아다니고. 그때가 힐러 주가의 최고치였죠. 마리아가 그때 힐 알바로 벌었던 금액 생각해 보면 그때의 암흑기가 얼마나 수렁이었는지 알 수 있을 정도라니까요.”

“결국 해결을 하긴 한 거죠?”

“그렇죠. 지지부진한 상황이 마음에 안 들었는지 누가 제대로 일을 하나 터트려줬거든요. 우리는 그 사람도 영웅이라 부른답니다.”

“뭘 했는데요?”

“GM 룰루를 PK 했어요. 이것이 바로 GM 사사게 박제 사건의 서두였죠.”

당시 GM 룰루를 PK한 유저는 폴리곤이 되어 사라지는 그의 모습을 찍어 사사게에 박제했다. 계속 일 이딴 식으로 질질 끌면 목이 붙어 있는 날이 없을 거라는 협박과 함께 이래서 제작 직업은 안 된다는 직업 비하 발언은 덤이었다.

다음 날 GM 랄라도 PK 당했다. 제작직 중 가장 많은 사랑을 받던 연금술사들이 단체로 독약을 만들어 GM 랄라에게 뿌린 것이다. 회복 물약이 없었던 GM 랄라는 찔끔찔끔 대미지를 입다 결국 죽었다. 그 역시도 독약에 절어 죽는 모습이 사사게에 박제되었다. 협박 내용은 비슷했다.

기껏 만들어진 시장은 무너졌고 유저들은 화가 났고 사사게에는 GM들이 박제되었다. 메르헨 호라이즌의 사건은 매일같이 온갖 커뮤니티에 올라가며 조롱거리가 되었다.

이보다 나빠질 수는 없다는 판단하에 게임사는 특단의 조치를 취했다. 직업을 포함한 게임의 전체 개편에 들어간 것이다.

제작직의 불만, 우리는 사냥도 못 하고 어쩌고저쩌고. 그래서 게임사는 제작직도 사냥 나가라고 공격 스킬을 주고 무기 자유권도 주었다.

전투직의 불만, 우리는 맨날 제작직들이 만든 물건 입 다물고 사야 하고 어쩌고저쩌고. 그래서 너희도 이제부터 제작하라며 제작 스킬을 제공하고 제작직에게만 주어졌던 기술 배움 기능을 제공했다.

더불어 메르헨 호라이즌을 즐기고 사랑하는 모든 유저분들께 감사하며 게임 내 타인에게 피해를 주는 일을 좌시하지 않기 위해 만들어진 사건 사고 게시판이 올바르게 사용되지 않는 것 같다는 점에 안타까움을 느낀다는 말과 함께 사건 사고 게시판을 영구 삭제시켰다.

일 처리 더럽게 못 한다며 초반에 욕먹었던 그 게임사가 맞나 의심될 정도의 추진력이었다. 순식간에 모든 직업이 개편되고 온갖 기능이 추가되었다.

그렇게 메르헨 호라이즌은 유저들과의 소통을 통해 원하는 모든 것을 이뤄주고 높은 자유도를 주는 대신 게임의 기본 틀을 하드 모드로 만들어버렸다.

개편된 사안을 익히고 주어진 것을 받아들이고 새로운 것을 찾아내느라 바빠진 유저들은 더 이상 싸우지 않았다. 아니, 설령 싸운다 해도 알려지지 않았다. 사사게가 없어지며 알리는 곳도 없어진 것이다.

게임사는 그 뒤로도 분위기가 과열될 틈을 주지 않았다. 틈만 나면 이벤트를 하고, 뭐만 하면 메인 퀘스트를 진행하며 유저들의 혼을 쏙 빼버린 것이다.

그렇게 본의 아니게 온갖 MSG 같은 자극에 단련된 그 당시의 유저들은 시간이 지나 지금의 훌륭한 고인물이 되었다.

“후…, 정말 그때는 하루하루 여론이 바뀌고 시세가 뒤집히던 시절이었죠. 거의 주마다 직업별 밸런스 패치를 했는데 글 몇 줄로 갓직이 망직이 되고 망직이 갓직이 되고….”

“…….”

“일요일 밤이 되면 설레서 잠을 잘 수가 없었죠! 다음 날에 눈 뜨면 내 직업이 떡상하지 않을까? 더 망했으면 어쩌지 하는 생각에 날밤 새우던 그때! 우리는 주마다 나락과 극락을 오가는데 디렉터는 우리의 눈물이 보이지 않는다는 것처럼 매일 칼춤을 추고 팔다리 잘랐다 붙였다 난리가 나고…!”

“그랬구나….”

뉴비 없지는 깊은 한숨을 내쉬며 흥분한 자신을 달랬다.

“후…. 지금의 평화가 지나치게 심심한 건 그때의 스펙터클하던 시절 때문이겠죠…?”

그러니 새로운 자극을 찾아 뉴비세스 메이커 같은 걸 하는 것일 터였다. 희연은 생각만 하고 입 밖으로 내뱉는 실수를 저지르지 않았다. 다만 평화로운 지금의 시대에 게임에 입성해서 다행이라 생각했다.

그녀는 고개를 돌려 닉을 보았다. 그는 이 과거를 알고 있었는지 덤덤한 표정을 하고 있었는데, 차분한 얼굴과 달리 주먹 쥔 손에는 힘이 잔뜩 들어가 있었다. 그에 희연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뉴비 없지는 눈가를 쓸며 말했다.

“우리 길마님…. 디렉터의 칼춤에 테이머는 그때부터….”

“조용히 하세요.”

“넵.”

테이머는 칼춤의 결과물이 안 좋게 나왔나 보다. 희연은 닉에게 심심한 위로를 건넸고 뉴비 없지도 안쓰러움의 눈물을 흘렸다.

두 적폐 직업의 위로에 닉은 눈을 질끈 감았다. 조금도 위로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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