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4화
그들이 과거의 발자취를 더듬는 사이 합법 도박과 킹스메이커는 마침내 무기를 완성했다. 총이 두 자루라 작업할 양도 두 배인 것을 생각해 보면 제법 빨리 끝난 거라 볼 수 있었다.
합법 도박은 완성된 자신의 작품을 희연의 앞에 내밀었다. 자랑스럽기 그지없다는 얼굴이었다.
“자! 어떤가요! 어서 감상평을 들려주세요!”
“어… 생각보다 휴대성이 좋아 보이고, 멋있고…, 깔끔한데 화려하네요.”
최대한 쥐어짜내어 말한 것 같았지만 희연의 말은 모두 사실이었다.
그가 만든 소드 오프 두 자루는 일반적인 모습보다 매끈하고 얄팍했다. 게임 내 무기이기에 실제로 총알이 필요하지 않아 총열을 얇게 개조했기에 가능한 모습이었다.
금박으로 무늬를 새겨 넣은 크림색의 가죽에 대비되도록 총열은 아주 짙은 검은색이었다. 그것을 슬쩍 만져 본 희연이 짐작하기론 철은 아니었다. 그보다 더 매끈한, 상아에 가까운 감촉이었다.
“이거 무슨 재료로 만들어진 거예요?”
“아, 그… 건 영업 비밀입니다.”
킹스메이커 쪽을 힐끔 바라본 합법 도박이 입을 꽉 다물었다. 킹스메이커가 준 재료라는 건 확실했다. 총에서 손을 뗀 희연은 긴장 서린 얼굴로 물었다.
“이제… 강화하는 건가요?”
“네? 이미 했는데요?”
“딩딩거리는 소리 못 들었는데요…?”
“그거 설정 들어가면 소리 끌 수 있어요.”
“아….”
희연은 탄식을 내뱉으며 다시 총으로 시선을 돌렸다. 뉴비 없지의 말에 푹 빠져 있느라 옆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몰랐던 희연은 약간 두려움 마음으로 무기의 정보를 확인하려 했다.
그런 희연의 앞으로 작은 손이 쭉 내밀어졌다. 킹스메이커였다.
“아직 인챈트 안 했어요! 그것까지 하고 확인해요, 오리 님!”
혹여나 희연이 부정적인 말을 할까 싶었는지 킹스메이커는 총 두 자루를 들고는 냉큼 구석으로 자리를 옮겼다. 그 뒷모습을 멀뚱멀뚱 바라보던 희연은 어색하게 머리를 긁적이던 합법 도박에게 물었다.
“인챈트가 뭔지는 알려주실 수 있죠?”
“인챈트요? 쉽게 설명하면 보석 박기죠.”
합법 도박은 희연의 앞에 보석 몇 가지를 내밀었다. 하나같이 아기 주먹만 한 보석이었는데 색이 강렬했고 그 위에 그림 같은 문자들이 하나씩 새겨져 있었다.
“이게 룬석이라는 건데, 각각 추가 옵션 능력치를 가지고 있어요. 이걸 무기에 박는 거죠. 무기 업그레이드시키기 같은 거라 보면 돼요.”
“아….”
“무기에 인챈트 홈 하나당 룬석 8개를 박아 넣을 수 있어요. 룬 중첩 효과를 받기 위해서는 홈에 같은 종류의 룬석을 최소 두 개씩 넣는데, 이 홈을 어떻게 채워 넣냐에 따라 능력치가 막 바뀌는 거예요.”
아까 킹스메이커는 그 인챈트 홈을 최소 세 개는 열라고 외쳤었다. 홈 하나당 룬석 8개. 총 24개의 룬석을 박아넣겠다는 소리였다.
“…….”
돈이 많이 들어가는 건가?
룬석의 가격을 모르니 짐작할 수 있는 게 없었다. 희연은 닉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뉴비 없지는 킹스메이커 옆으로 달려가 이게 좋네, 저게 좋네, 의견을 제시하고 있었다.
희연의 시선을 받은 닉은 룬석에 대하여 추가적으로 설명해 주었다.
“룬석은 총 세 번 강화할 수 있는데, 홈 하나에 전부 같은 룬석을 박으면 강화되는 방식이에요. 여덟 개를 사용해 중급 룬석 하나를 만들고 그걸 반복해서 중급 룬석 여덟 개를 만들면 상급 룬석 하나를 만들 수 있는 구조예요.”
“…….”
“강화를 실패하는 경우도 있지만 깨지는 건 돈뿐이라 강화보다는 안전해요.”
“…강화랑 다른 점을 크게 모르겠는데요.”
“강화는… 실패하면 장비가 깨지지만 룬석 강화는 깨지는 게 돈뿐이니까요.”
희연은 계산을 다시 해보았다. 상급 룬석 하나를 만들기 위해 필요한 기본 룬석이 64개고 홈 하나를 상급 룬석으로 채우는 데 들이는 게 512개면 홈 세 개를 채우는데 들어가는 룬석은….
“1536개…?”
“이야…! 역시 인챈트를 해야 장비 때깔이 달라진다니까! 안 그래요?”
합법 도박의 말을 들으면서도 희연은 차마 웃지 못했다. 천 단위로 넘어간 숫자가 무서울 지경이었기 때문이다. 뭐가 강화보다는 낫다고 하는 것인지 알 수가 없었다.
안절부절못하는 희연의 모습을 보던 합법 도박이 인심 쓰듯 해준 이야기가 아니었다면 그녀는 바로 킹스메이커에게 달려갔을 것이다.
“겨우 룬석 천몇 개 좀 썼다고 그러는 것 같은데 저 친구가 자기 무기에 들인 정성 들으면 이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구나 싶어질걸요?”
“?”
“낫 말고, 진짜 무기인 지팡이 쪽. 거기 인챈트 홈 개수 열두 개예요.”
“…….”
홈 열두 개에 들어가는 룬석 수를 헤아려보던 희연은 도중 계산하던 것을 멈추었다. 마음은 충분히 편안해져 있었다.
“완성…!”
그사이 킹스메이커는 인챈트를 끝마쳤다. 그녀의 외침을 들은 희연은 고개를 돌렸다. 마지막 세 번째 홈이 완성된 장비가 찬란한 황금빛을 뿜어내고 있었다.
[<사크룸 루파라 – 소드 오프 샷건 x2 (설화) (제작자 – 합법 도박 / 21세기 킹스메이커)> +15
: 17줄의 마법 회로는 이 땅에 존재하는 가장 위대한 존재를 완벽하게 받아들였다.
Lv. 92 > 32
공격력 +2025 (300 + 1725)
크리티컬 확률 + 20%
경험치 획득량 + 7%
HP / MP : 100 / 600
옵션 1. 물리 공격력 + 20% / 마법 공격력 + 28%
옵션 2. 버프 사용 시 지속시간 추가 + 13%
옵션 3. 디버프 사용 시 지속시간 추가 + 12%
인챈트 1. 공격 속도 증가의 상급 룬 세트 (8) (자세히 보기)
인챈트 2. 치료의 상급 룬 세트 (8) (자세히 보기)
인챈트 3. 민첩의 상급 룬 세트 (4) / 공격력 증가의 상급 룬 세트 (4) (자세히 보기)]
“와….”
탄식에 가까운 감탄이 희연의 입에서 흘러나왔다. 잠시 머뭇거리던 그녀는 조심히 총 두 자루를 손에 잡았다.
처음에 킹스메이커가 총 두 자루를 고집할 때는 그러려니 했던 희연은 막상 완성품을 손에 넣으니 왜 그녀가 고집을 부렸는지 알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일단 쌍권총은 멋있고 폼이 났다.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었다.
장비 덕에 힘 스텟은 충분했다. 수월하게 양손에 총을 잡고 이리저리 둘러보던 희연의 행동이 멈춘 것은 예상하지 못한 시스템 창이 떠올랐을 때였다.
[스킬 <장미 화환의 비둘기>를 사용할 수 있습니다.]
[스킬 <나무 위의 친구>를 사용할 수 있습니다.]
“어, 어…? 킹 님!”
“네?”
“저 스킬 풀렸어요!”
희연의 흥분 어린 외침에 킹스메이커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곧바로 해금된 스킬에 대해 말하려던 희연은 멈칫했다. 합법 도박 역시도 궁금하다는 듯 그녀를 바라보고 있었기 때문이다.
스킬 같은 건 남에게 알려주지 말라고 했던 킹스메이커의 조언을 착실하게 기억하고 있었던 희연은 입을 꾹 다물었고 합법 도박은 그런 희연의 모습에 어깨를 으쓱이고는 상자 하나를 내밀었다.
“기밀 같은 거 막 말하고 다니지 마세요. 이거 먼저 받고요.”
“아, 네….”
합법 도박에게 괜한 눈치를 준 것 같다는 생각에 조금 멋쩍어하던 희연은 손끝에서 느껴지는 묵직함에 비틀거렸다. 합법 도박이 내민 상자가 그리 크지 않아 방심했던 희연의 팔이 덜덜 떨려왔다.
뉴비 없지가 대신 상자를 들어 준 뒤에야 그녀는 상자 안에 있던 것이 무엇인지 확인할 수 있었다. 네 가지 종류의 총알이 상자 가득 꽉꽉 채워져 있었다.
“왼쪽부터 차례로 예광탄, 화염, 빙결, 전격 탄환이에요. 탄환 수집가 스킬은 있죠?”
“네, 있어요.”
“다행이네요. 탄환 변경 스킬이 있어야 그것들도 쓸 수 있거든요. 일반 탄환이나 마법 탄환이랑 다르게 그것들은 소모품이라 다 쓰면 다시 제작해야 해요. 사용법은 그냥 인벤토리에 넣어놓고 탄환 변경하면 사용되고요.”
“아, 네!”
“탄환 가격은 경매장 시세대로 갑니다. 문의는 우편으로 보내주세요. 최소 하루, 최대 삼 일 안에 보내드리며 만일 제가 제작한 물건은 사재기하여 묵혀뒀다가 이후 값이 올랐을 때 뒷거래로 파는 것이 적발될 시 저랑 캐삭빵 할 각오로 PVP 하게 되니 명심해 주세요.”
“네…?”
합법 도박의 말에 당황한 희연을 대신해 킹스메이커가 항변했다.
“우리 오리 님은 그런 거 할 줄 모르거든요!”
“그래 보이기는 하는데 나중에 혹시 모르니까 말하는 거예요. 그 낫 내려주세요. 워워….”
목숨의 위협에서 벗어난 합법 도박은 깊은 한숨을 내쉬다 희연에게 작은 상자를 내밀었다. 이번 것은 아주 가벼웠다.
“첫 고객에게 드리는 서비스 상품입니다. 총검이고, 다른 총기류 액세서리도 주문할 거면 우편으로 문의 주세요. 총기류 액세서리의 경우 기본적으로 기성품이 제공되며 따로 주문 제작할 시 재료부터 스스로 구해오셔야 해요.”
“…….”
“카탈로그는 이후 우편으로 보내드리니 확인 부탁드립니다.”
“네에….”
뭔가 순식간에 지나간 기분이다. 희연은 그리 생각하며 상자 안을 확인했다.
안에는 수리검을 닮은 총검 두 자루가 나란히 놓여 있었다. 희연의 무기가 된 사크룸 루파라, 소드 오프 샷건의 크기에 맞춘 것인지 크기가 그리 크지는 않았다.
총검의 경우 홀스터처럼 따로 장비나 액세서리 판정을 받는 것은 아니기에 스텟을 주거나 하지는 않았다. 장비에 물리 공격 효과를 주는 이유가 있었구나 여기며 희연은 총검 두 자루를 잘 챙겼다.
“…….”
총검까지 끼고 물리 공격하는 거면 그건 더 이상 힐러가 아니라 근접 딜러 아닌가?
뒤늦은 깨달음에 희연이 심각한 표정을 짓는 사이 합법 도박과 킹스메이커는 소곤거리며 일을 마무리 지었다.
“그래서 총금액은….”
“쉿. 우편으로 청구서 보내요.”
“분할 납부 안 되는 거 알죠?”
킹스메이커는 당연하다는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꼬박 하루가 걸린 희연의 장비 업데이트는 그렇게 마무리되었다.
희연은 고생한 합법 도박에게 인사한 후 밖으로 나왔다. 무기를 만드는 것이 제법 시간이 걸렸던지라 보랏빛이었던 하늘은 청명해져 있었다.
광장은 익숙한 소란함으로 가득 찼고 사람들은 바쁘게 움직였다. 그 바쁜 사람들 중에는 에빌론을 순찰하는 경비대들도 있었다.
그들은 척척 절도있게 걸으며 사람들 사이를 빠져나오더니 희연의 일행 앞에 섰다. 희연은 반사적으로 탄식을 뱉었다.
“아.”
그런 그녀의 반응에 반응하듯 경비대는 우렁차게 외쳤다.
“도시 내 펫 사용, 스킬 사용, 공무 집행 방해죄를 물어 자네들을 재판에 회부한다!”
희연의 표정은 일그러졌다. 그녀는 톨러를 급하게 찾아가는 과정에서 있었던 병사들과의 드잡이질을 떠올렸다. 뉴비 없지가 그들의 주머니를 채워줬기에 잘 끝난 일인 줄 알았는데 아니었나 보다.
“…….”
“이런….”
“괜찮아요, 오리 님! 제가 해결하겠습니다!”
순순히 잡아가라 손을 내밀어주는 닉과 달리 킹스메이커는 뻗댔고 뉴비 없지는 주머니를 열 준비를 했다. 희연은 수갑을 차기 위해 들고 있던 총을 홀스터에 꽂고 인형을 끄집어냈다.
바로 그 순간 새까만 무언가가 희연의 앞으로 날아들었다.
“뭐야…!”
희연의 손에 수갑을 채우던 병사가 기겁하며 뒤로 물러났다. 놀란 건 희연도 마찬가지였다. 반사적으로 인형을 앞으로 내밀어 검은 무언가로부터 숨은 그녀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코앞에서 파닥이며 날갯짓하는 것을 보았다.
“…까마귀?”
까악- 까악-
마치 대꾸라도 하듯, 제법 커다란 까마귀는 병사의 머리 위에 자리 잡으며 울었다. 아니, 병사의 머리 위에 자리 잡은 까마귀뿐만이 아니었다.
까악- 까악- 까악-
사방에서 까마귀 울음소리가 울려 퍼졌다. 희연은 소리를 따라 고개를 들었다가 그대로 굳어 버렸다. 쾌청하고 푸르던 하늘이 제대로 보이지 않을 정도의 까마귀 떼가 날아다니고 있었다.
깍깍 우는 소리에 머리가 아플 지경이었다. 희연은 저도 모르게 인상을 찡그리며 손으로 귀를 막으려 했다. 그런 그녀의 손을 킹스메이커가 제지했다.
그녀의 초록색 눈은 어떤 기대감으로 반짝였는데, 비단 희연의 착각이 아닌 것인지 어느새 포박을 풀어낸 뉴비 없지는 손에 무기까지 쥐었다.
심지어 닉마저 두 손의 자유를 쟁취하고 리라를 꺼내 들었다. 그런 그의 어깨에는 오랜만에 보는 것 같은 루로가 매달려 있었다.
“오리 님.”
“네?”
“아까 스킬 풀렸다고 했죠. 공격 스킬이에요?”
“어… 지금 확인해 볼게요.”
희연은 손을 들어 스킬 창을 확인했다.
[장미 화환의 비둘기(액티브) : 상대의 의지, 체력, 속도를 저하시키며 알 수 없는 걱정과 애환에 젖게 만든다. MP 소비 250, 재사용 대기 시간 30분.
‘오늘 밤, 내가 죽는 꿈을 꿀 거야’]
[나무 위의 친구(액티브) : 머리, 심장을 비롯한 약점에 무조건 공격이 적중하며 일시적으로/모든 불행의 대상으로 만든다. MP 소비 500, 재사용 대기시간 30분.
‘오, 불쌍한 친구, 영 좋지 못한 곳을 맞았네그려’]
“어떤 스킬들이에요?”
“어…, 저주 같은 거랑, 무조건 맞추고 저주 거는? 그런 스킬인 것 같은데요.”
“디버프 계열 스킬이라는 거네요. 재사용 대기 시간은요?”
“둘 다 30분이요.”
“타격 심하게 주는 단일 대상 보스용 디버프인가 본데…. 썩 나쁘진 않지만 지금 상황에는 그렇게 어울리는 스킬은 아니네요.”
“지금이… 어떤 상황인데요?”
킹스메이커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무척이나 즐겁다는 얼굴이었다.
뎅-, 뎅- 하며 까마귀 울음소리 사이로 종탑의 종소리가 울려 퍼졌다. 답을 들을 필요는 없었다.
[대륙에 재앙의 불씨가 피어오릅니다.]
[특수 이벤트 몬스터 웨이브가 시작됩니다. 불시착한 이방인 여러분. 이 땅을 지켜주세요.]
[방랑의 몬스터 : 알 수 없는 이유로 대륙의 몬스터들이 술렁이기 시작했습니다. 불특정 다수의 도시, 마을에 몬스터 웨이브가 시작되었습니다.
대상
- 지식과 기록의 나라 시드론의 수도 딜라일
- 신성의 땅 교국 위헬브의 수도 브리엘
- 자유 도시 에빌론
- 국경 도시 암베르니아
- 바다의 보석 로첼라
- 사막의 물길 셰온
…
‘종탑의 까마귀가 울면 항상 불행한 일이 일어나’]
[퀘스트 조건 : 몬스터 웨이브로부터 도시 및 마을 수호 (수호할 도시 혹은 마을을 선택해 주세요.)]
[보상 : 선택한 도시 혹은 마을의 몬스터 웨이브 저지 시 적립된 점수를 통해 보상이 지급됩니다. (보상 목록 자세히 보기+)
(실패 시 선택한 도시 혹은 마을이 파괴되거나 그에 준하는 피해를 입습니다.)]
[수호할 도시 혹은 마을을 선택해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