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1화
우연일 리가 없다. 모두가 설계된 스토리와 설정일 것이다. 그렇다면 왜 하필 열다섯 살을 기준점으로 잡은 것일까?
차라리 성인과 미성년의 나이를 기준으로 잡았으면 오히려 이해하기 쉬웠을 것이다. 메르헨 호라이즌은 성인 모드도 지원하기 때문이었다.
고민이 깊어질수록 희연의 표정은 굳었다. 그에 레이는 상냥한 미소 대신 걱정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괜찮으신가요 이방인님? 낯빛이 좋지 않군요.”
“…괜찮아요, 아무것도 아니에요.”
희연은 손사래 친 뒤 서둘러 퀘스트를 승낙했다. 뱀과 관련되었다는 것은 악령이와 관련되어 있다는 뜻이었다. 찝찝하다고 해서 거절할 수는 없었다.
악령이는 자신을 바라보며 애써 웃는 희연을 보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희연이 인형의 표정을 모두 읽을 수 없는 것처럼 어린 악령에게도 미소는 그저 미소였다.
“따로 준비해야 할 게 있을까요?”
“글쎄요…. 되도록 이른 시일 내에 헨젤에게 도움을 주신다면 좋겠지만, 따로 준비해야 하는 사안에 대해서는 저 또한 언질 들은 것은 없답니다. 굳이 고르라고 한다면… 도움을 줄 수 있을 만한 분과 함께 가는 것?”
“파티 퀘스트구나….”
조건은 특수 스텟 신성 보유자일 것. 그렇다면 함께 갈 수 있는 사람은 정해져 있었다.
『그레텔의 악몽』
“핫-! 역시 갓직! 이게 바로 성기사의 위엄이다, 이 사악한 흑마법사…!”
함께 퀘스트를 해줄 수 있냐는 희연의 물음에 뉴비 없지가 보인 반응이었다.
그는 머리를 넘기며 멋들어진 자세를 취하고는 킹스메이커에게 자신의 직업을 뽐냈는데, 신성과는 거리가 먼 흑마법사의 입장에선 약 오를 수밖에 없는 모습이었다.
그에 킹스메이커가 뉴비 없지를 응징한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뉴비 없지의 머리 바로 위로 낫질을 시도하는 킹스메이커의 모습에 놀랐던 희연도 처음 몇 번만 그랬을 뿐 응징의 시간이 길어질수록 점차 다른 것에 신경을 쓰기 시작했다.
바로 이름 없는 그분이 주고 간 스킬북을 익히는 거였다. 이런 식의 선물이 달갑기만 한 건 아니었지만 이왕지사 생긴 좋은 기회를 놓치지 않기로 한 것이다. 다행히 저번 <독독>과 달리 이번에 익히는 스킬들은 모두 습득 조건이 쉬운 편이었다.
“음….”
희연은 손에 든 펜을 까딱거리다가 다시 빈 페이지 위로 선을 쭉쭉 그었다. 그런 그녀의 앞에는 다람쥐 한 마리가 손을 번쩍 든 자세를 취하고 있었다.
길드 성의 온실에 거주 중인 다람쥐였다. 즉, 닉이 테이밍 한 동물이라는 뜻이었다.
이름 없는 그분이 준 스킬북은 총 세 권으로 셋 모두 제작자가 같았다. 그 탓인지 습득 조건 역시도 같았는데, 모두 스킬 명에 어울리는 그림을 그려달라는 것이 조건이었다.
닉은 희연이 스킬 <람쥐썬더!!!>를 얻기 위해 그림을 그려야 한다는 말에 선뜻 다람쥐를 불러주었다. 다른 두 개는 굳이 모델을 불러와야 할 정도로 어려운 그림이 아니었기에 희연은 빠르게 스킬 세 개를 습득할 수 있었다.
“다 그렸다.”
[람쥐썬더!!!(액티브) : 빛나는 도토리를 지키기 위해 다람쥐는 강해졌다. MP 소비 100.
제작자(테이머 상향 기원)의 한 마디 : 작은 다람쥐를 무시하지 마세요]
[몹시도 화가 난 뱁새(패시브) : 황새와 비교당해 몹시도 화가 난 뱁새가 적을 무섭게 위협하고 있다. 적으로 마주하는 대상의 레벨이 더 높을 시 일시적으로 공격력이 상승한다.
제작자(테이머 상향 기원)의 한 마디 : 뱁새는 전깃줄을 타고…]
[네모네모 멈뭄미(액티브) : 당신은 네모네모 멈뭄미의 친구가 되어 네모네모 저주를 걸 수 있게 되었습니다. 저주의 대상자는 일정 시간 동안 동그란 글자가 들어간 스킬을 사용하지 못합니다. MP 소비 500, 재사용 대기시간 1시간.
제작자(테이머 상향 기원)의 한 마디 : 담신믄 네모네모 멈뭄미뫄 눈미 마주치고 말맜습니다, 담신믄 미제 네모네모 멈뭄미믜 저주로 돔그란 글자를 쓸 수 멊습니다 멈멈!]
뉴비 없지를 믿지 못하는 것은 아니었지만 이번에는 킹스메이커도 함께 가지 못하는 만큼 희연은 만반의 준비를 하고 싶었다. 뱀과 연관되어 있을 확률이 높은 과자의 집 안에서 어떤 일이 일어날지 몰랐다.
희연이 준비를 끝내고 자리에서 일어났을 즈음, 뉴비 없지는 패배를 인정하고 빈사 상태로 킹스메이커의 앞에 누워 있었다.
“…….”
희연은 뉴비 없지를 믿었다. 정말로….
“아, 맞다.”
쓰러진 뉴비 없지를 털실 인형들을 이용해 치우고 있던 킹스메이커가 문득 생각났다는 듯 입을 열었다.
“오리 님. 헨젤 말인데요, 혹시 하는 마음에 여기 오기 전에 요른한테 들러서 물어봤거든요?”
“헨젤이 에빌론 사람이었어요?”
“아뇨 아뇨. 헨젤은 수도 쪽 사람이에요. 수도와 에빌론을 오고 가는 상인인데 주 거래처가 요른이라나 봐요. 어쨌든 도움 될까 싶어서 한번 요른한테 물어봤죠.”
희연은 기대하는 심정을 담아 킹스메이커를 보았다. 그 시선에 그녀는 상당히 묘한 미소를 짓다 어깨를 으쓱이곤 답했다.
“요른의 말로는 선량한 청년이라나 봐요. 가난한 나무꾼 아버지 밑에서 태어나 어린 동생을 알뜰히 살피고 우연히 생긴 돈을 바탕으로 성실히 일해 작지만 수도에 제집을 마련한 부지런하고 선량한 청년.”
전형적인 동화의 주인공이 맞는 해피엔딩보다는 조금 자본주의에 가깝다는 감상평으로 들리기는 했지만 문제 되는 사안은 없었다. 그러나 킹스메이커는 걸리는 것이 있단 표정이었기에 희연은 물었다.
“무슨 문제가 있어요?”
“음…, 세상은 녹록지 않거든요. 성실하고 선량한 사람이 수중의 돈을 잘 굴려 수도의 집 한 채 마련했다는 이야기는 너무 동화 같잖아요. 그래서 요른한테 헨젤이 어떻게 돈을 굴렸냐고 물어봤죠,”
“…….”
“영리한 아이라 가능했다고 하는데… 영리함과 선량함 그 둘이 어떻게 공존할 수 있겠어요. 영리해서 선량한 척한 거면 모를까.”
억측인 것 같으면서도 묘하게 설득되는 말이었다. 희연은 애매하게 웃음만 지었다. 킹스메이커의 의심이 사실일지 아닐지는 만나봐야 알 수 있을 것이다.
***
과자의 집의 위치는 레이가 알려주고 퀘스트 창의 설명에도 쓰여 있었기에 찾는 것이 그리 어렵지는 않았다. 일단 킹스메이커나 뉴비 없지처럼 지역의 특징 몇 개만 말해줘도 아 거기, 를 외치는 사람이 둘이나 있는 이상 어려울 수가 없었다.
이름부터 단내가 날 것 같은 숲 스위니티는 던전 <이름 없는 자들의 설움>이 있는 산 하나를 건너야 진입할 수 있었다. 여전히 낡은 병장기 같은 것이 굴러다니는 산의 길목을 지날 때면 희연은 조금 기분이 착잡해졌다.
정작 넬은 아무 신경도 쓰지 않는다는 것처럼 희연의 머리 위와 악령의 머리 위를 왔다 갔다 하기 바빴지만 말이다.
드래곤을 타고 이동하자니 그리 멀지 않고 걸어서 가자니 산길 위를 아무렇지 않게 뛰어다니기엔 아직 희연의 스텟이 높지 않았기에 그들은 각자의 탈것에 올라탔다.
에흐테와 녜디아가 나란히 걸었고 낫 위에 올라탄 킹스메이커가 그 뒤를 따랐다. 뉴비 없지는 어김없이 킹스메이커의 뒷자리에 얻어탔다.
저렙용 던전이 있는 길목답게 이동 중 드문드문 수수한 차림새의 유저들을 마주칠 수 있었다. 그때마다 킹스메이커와 뉴비 없지는 저렙 유저들에게 아이템과 금화를 뿌렸다.
얼결에 하늘에서 떨어지는 것들을 줍게 된 유저들의 얼굴에는 기쁨과 혼란스러움이 공존했다. 소소한 취미 생활을 하는 두 사람에게선 아까워하는 기색이 조금도 보이지 않았다.
저들은 누가 자신들에게 아이템을 뿌리는지도 모를 텐데 말이다. 희연은 물었다.
“물건은 왜 뿌리는 거예요?”
희연의 질문에는 그렇게 해봤자 남는 것도 없지 않냐는 물음도 담겨 있었다.
“재밌으니까요!”
“별거 아닌 아이템 주우려고 애쓰는 거 보면 귀엽잖아요.”
“아, 네….”
재미만 남으면 그만이라는 태도였다. 옛적에도 비슷한 문답을 나눴던 것을 떠올리며 희연은 그러려니 하기로 했다.
더 이상 보이는 사람들도 없고, 병장기의 비릿함 대신 갓 구운 빵 냄새, 쿠키의 진한 버터 향, 설탕물의 단내 같은 것이 느껴질 때쯤 그들은 스위니티 숲 입구 앞에 도착했다.
에흐테의 위에서 내려온 희연은 눈 앞에 펼쳐진 광경에 입이 벌어졌다.
“우와…!”
스위니티라는 달콤한 이름이 아주 잘 어울리는 숲이었다.
나무는 풍성한 잎 대신 온갖 알록달록한 사탕이 열매처럼 주렁주렁 매달린 솜사탕으로 덮여 있었는데, 몸통마저 바삭한 과자로 이루어져 있었다.
설탕 공예로 빚어진 풀과 꽃이 햇빛에 녹아 반짝이는 설탕물을 뚝뚝 흘렸고, 숲길 곳곳에는 바위나 돌 대신 커다란 쿠키나 젤리, 막대사탕 같은 것들이 굴러다녔다.
더더욱이 신기한 것은 숲을 날아다니며 노래하는 새와 꽃을 찾아 헤매는 나비, 작은 사탕을 끌어안고 나무를 타는 다람쥐까지도 모두 달콤한 것들로 이루어졌다는 것이었다.
사방을 둘러보느라 바쁜 희연의 모습에 킹스메이커는 나뭇가지 하나를 뚝 부러트리더니 솜사탕 잎 뭉치에 집어넣고는 팔을 휘적거렸다. 그렇게 해서 만들어진 사탕이 콕콕 박힌 솜사탕을 킹스메이커는 희연에게 내밀었다.
“짠! 한 번 먹어봐요 오리 님!”
“이거 먹어도 돼요?”
“그럼요. 여기 숲에 있는 건 다 먹어도 돼요. 땅도요. 코코아 가루거든요.”
희연은 냉큼 솜사탕을 한 입 베어 물었다. 스위니티 숲에 도착한 순간부터 내심 먹어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단 걸 그리 좋아하지 않아 원래라면 솜사탕 같은 것에 입도 안 대는 그녀였지만 과자 숲 앞에서 기호는 그리 중요하지 않았다.
“달다….”
그러나 신나서 먹은 것 치곤 희연의 반응은 영 시원치 않았다. 막상 먹고 나니 역시 기호는 중요하다는 걸 다시 깨달은 얼굴이었다. 예상하긴 했지만, 몇 번 먹지도 않았는데 입안이 아려왔기 때문이다. 놀라움도 입맛의 기호를 이기지는 못했다.
시간이 지나도 사라지지 않는 단맛에 입천장을 혀로 문지르던 희연은 솜사탕 대신 솜 사이로 삐쭉 튀어나온 나뭇가지를 톡톡 부러트려 입안에 넣었다.
다행히 과자 쪽은 담백한 맛이었기에 단맛을 잘 중화시켜 주었다. 그러나 단맛의 충격 때문인지 마냥 좋아하며 주변을 둘러보기 바빴던 희연은 얼마 지나지 않아 진해지는 단내에 질리기 시작했다.
그런 희연과 달리 악령이는 잔뜩 신이 나 있었는데, 용케 에흐테의 위에서 혼자 내려오는 것에 성공한 인형은 머리 위에 악령을 이고 돌아다니며 이것저것을 뜯어먹기에 바빴다.
커다란 쿠키에 매달려 입만 우물거리던 인형은 희연에게 잡혀 그녀가 먹다 만 솜사탕을 손에 넣은 뒤에야 돌아다니던 것을 멈추었다.
땅 위를 굴러다니는 것이 흙 알갱이가 아닌 코코아 가루라는 말이 사실이었는지 인형의 발이며 옷자락이 모두 얼룩덜룩해져 있었다. 희연은 그 모습에 헛웃음을 흘렸다.
그 잠깐 새에 사고를 친 악령이는 입안에 든 것을 다 삼킨 뒤에야 입을 뗐다.
“이상해!”
“?”
“배가 안 불러!”
악령이의 말에 희연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단순히 그렇게 먹고도 배가 부르지 않아서 하는 말 같지는 않았다. 희연은 눈을 굴려 스위니티 숲을 다시 둘러보았다.
그런 희연을 보며 빙그레 미소짓고 있던 킹스메이커가 입을 뗐다.
“오리 님, 상태 창 열어봐요.”
“?”
“여기서 문제. 오리 님의 상태 창에서 바뀌지 않은 건 무엇일까요?”
바뀌지 않은 것?
희연은 서둘러 상태 창을 열어 쭉 훑어보았다. 스텟 같은 걸 두고 물어보는 질문은 아닐 것이므로 그쪽은 자세히 보지 않았다.
그러나 킹스메이커가 말하고자 하는 바가 무엇인지 끝내 알 수 없었던 그녀는 결국 아무거나 골라 답할 수밖에 없었다.
“…자미엘의 저주?”
“아깝다! 맞출 수 있었는데. 거의 비슷했어요. 답은 공복도예요.”
어디가 비슷하다는 거지…?
묘해지는 희연의 표정에도 개의치 않고 킹스메이커는 그녀가 답에 거의 근접했음을 주장했다.
“이 숲에선 얼마나 많은 과자를 먹든 공복도는 차지 않아요. 맛과 향 그 모든 게 진짜 같지만 실제로는 배가 안 차는 거죠. 여기 있는 모든 게 마법으로 만들어진 환상에 가까우니까요.”
“이게 다 환상이라고요…?”
희연은 손에 묻은 코코아 가루를 문질러 보았다. 고운 입자가 살갗에 닿는 느낌이 선명했다. 당혹스러움이 느껴지는 표정을 한 희연을 보며 킹스메이커는 설명을 이어갔다.
“이 숲 밖으로는 어떤 것도 가지고 나갈 수 없고 여기서 맛보게 된 것도 숲을 나가면 맛이 기억나지 않게 되어요. 어떻게 보면 여긴 저주받은 숲인 셈이죠.”
“…….”
“자 그러면 이제 과자의 집과 헨젤을 찾아볼까요?”
희연은 앞서가는 킹스메이커의 뒤를 쫓으면서 손에 잡히는 것을 아무거나 인벤토리 안으로 집어넣어 보았다. 그러나 인벤토리 안에 실제로 담기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정말로 이 모든 게 환상이라는 뜻이었다.
그러면 이 환상이 끝났을 때 이곳에 남는 건 무엇일까. 그 의문에 대한 답을 들려줄 수 있는 것은 퀘스트의 의뢰자, 헨젤일 것이다.
과자의 숲에 더없이 잘 어울리는 커다란 과자의 집이 솜사탕 나무 사이로 빼꼼히 모습을 드러냈다. 대부분의 동화책에서 볼 수 있는 삽화 속 과자의 집은 화려한 색과 달리 단순한 집 모양을 하고 있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나 실제로 구현된 과자의 집은 실제 집에 가까운 모습을 하고 있었다. 설탕 냄새보다는 버터 냄새가, 달콤한 사탕과 젤리보다는 배를 채울 빵이 주를 이뤄 만들어진 과자의 집은 화려하다기보단 담백했다.
그 앞에 서 있는 청년은 그 과자의 집처럼 담백한 외양을 하고 있었다. 머리카락 색은 나무 같은 고동색이었고 눈은 이 숲에서는 볼 수 없는 상록의 색이었다.
키가 크고 호리호리한 청년의 눈은 눈꼬리가 축 처져 있는 편이라 살짝 미소 짓는 것만으로도 선해 보였고 선량해 보였으며, 한편으로는 유약하다는 감상이 들게 했다.
머리에 쓰고 있던 모자를 벗어 그들에게 인사하는 청년의 얼굴은 조금 핼쑥했다. 걱정과 근심으로 살이 빠진 사람 특유의 느낌이 들게 만드는 얼굴이었다.
경계심 탓에 어깨가 굳었음에도 눈이 마주쳤다는 이유만으로 꼬박꼬박 인사를 한다는 점에서 기가 센 사람들 위주로 만났던 희연에게 헨젤은 나름 신선했다.
희연은 얼결에 같이 인사하며 자신을 소개했다.
“안녕하세요. 레이의 말을 듣고 왔는데요…. 혹시 민원 신고 하셨나요?”
그녀의 말에 청년의 초록색 눈에는 물기가 어렸다. 다리에 힘이 풀려 주저앉은 그는 기어이 흐느꼈다.
“아, 감사합니다 이방인님…. 정말로, 정말로 와주셨군요….”
당황한 희연은 서둘러 그에게 다가가 부축해 주었다. 울컥한 감정에 허덕이던 그는 다행히 얼마 지나지 않아 감정을 추슬렀다.
“감사합니다. 못 볼 꼴을 보여드렸군요….”
“괜찮아요! 그런데 혹시 무슨 일인지 자세히 설명해 주실 수 있나요? 자세한 이야기는 몰라서요.”
그는 고개를 끄덕이며 다시 고개 숙여 인사하더니 자신을 소개했다.
“저의 이름은 헨젤, 수도 딜라일에서 소소하게 물건을 파는 상인입니다. 제가 에빌론에 도움을 바란 것은 제 동생 그레텔 때문입니다.”
헨젤의 설명은 이러했다. 헨젤과 그레텔, 동화의 이야기가 그렇듯 마녀를 무찌르고 보물을 안고 집으로 돌아간 남매는 행복하게 살았다. 배 곯지 않고, 숲속에 버려질 걱정 없이 말이다.
영원할 것 같던 남매의 행복이 깨진 것은 그레텔이 악몽을 꾸기 시작할 때였다.
“그레텔은 매일 밤 악몽을 꿨습니다. 꿈에 마녀가 나오고, 우리를 숲에 버리자는 대화를 했던 부모님이 나오고…. 저와 함께 헤매던 숲속에 홀로 남게 되는 그런 악몽을요.”
“…….”
“과자의 집에서 돌아온 이후 매일 그랬죠. 그 아이는 점차 사람을 만나는 것을 꺼려하고 집 안에만 있더니 나중 가서는 방에 틀어박혀 저와의 대화마저 단절하고자 했습니다. 제가 할 수 있는 건… 정말, 아무것도 없었죠. 달래고, 화내고, 빌고…. 그러나 그레텔은 끝까지 방에서 나오지 않았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열다섯 살 생일을 앞두고 그레텔이 사라졌다. 헨젤은 동생을 찾으려 했지만 사라진 그레텔의 흔적조차 찾을 수 없었다.
그는 작다곤 해도 어엿한 상점의 주인이었고 밑에 직원도 데리고 있었다. 그레텔을 찾기 위해 마냥 상인의 일을 손 놓고 있을 수도 없었다. 생계유지를 위해서도, 그레텔을 찾는 데 들이는 돈을 위해서라도, 제 밑에서 일하는 이들을 위해서라도 말이다.
헨젤은 그레텔을 찾는 것을 중단하고 다시 일을 시작했다. 일하는 틈틈이 그레텔의 행적을 찾았다. 그 과정에서 우연찮게도 이곳 스위니티 숲에 대하여 알게 된 것이다.
마녀가 만든 과자의 집에 그레텔이 있다. 누군가 알려준 것처럼 헨젤은 확신할 수 있었다.
“이 숲은 어린 시절 저희 남매가 살았던 곳이자, 길을 잃고 헤맸던 곳이며, 동시에 그레텔의 악몽의 근원지인 과자의 집이 있던 곳입니다. 최대한 이곳에 대하여 잊고 싶었기에 신경 쓰지 않았었는데… 그러면 안 되는 거였습니다.”
스위니티 숲은 원래 평범한 숲이었다. 헨젤과 그레텔 남매가 이 숲을 떠나고, 그레텔이 악몽을 꾸기 전까지는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