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뉴비세스 메이커 (133)화 (133/251)

133화

“수프 가루가 없어요….”

“이걸로 수프 만들어야 하는 것 같은데요.”

뉴비 없지가 가리키는 것은 밀가루였다. 희연 또한 어렴풋이 밀가루로 수프를 만들 수 있다는 이야기를 들어 본 기억은 있었다.

그러나 그게 밀가루로 수프를 만들 수 있다는 소리는 아니었다.

“우리 망한 거죠….”

“아니에요 오리 님! 일단, 이 밀가루를 끓이면 어떻게 되지 않을까요?”

“그건 그냥 김장할 때 쓰는 밀가루 풀 아니에요?”

“밀가루니까 먹을 수 있… 지는 않겠죠?”

희연은 조용히 고개를 끄덕이다 다른 건 없나 싶어 부엌 찬장이며 구석에 놓인 자루 같은 곳들을 뒤적여 보았다.

그 과정에서 찬장에 묵직해 보이는 주머니를 발견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 안에 든 것은 당장에 먹을 수 있는 게 아니었으므로 희연은 주머니를 다시 원래의 자리에 돌려놓았다.

그렇게 해서 찾아낸 것은 싹이 난 감자 다섯 알과 비쩍 마른 홍당무였다.

일단 홍당무는 먹으면 안 될 것 같았기에 요리 재료에서 제외되었다. 이제 남은 것은 밀가루를 비롯한 빵을 만들기 위한 기타 재료. 버터 조금, 싹 난 감자 다섯 알이었다.

이걸 최대한 안 쓰는 조건으로 네 식구가 먹을 한 끼 식사를 만들어야 한다. 희연은 벌써부터 눈앞이 아득해지는 기분을 느꼈다.

하지만 어떻게든 뭘 만들어내기는 해야 했다. 만일 시키는 일을 제대로 하지 않아 퀘스트를 실패한다면 희연은 억울해서 잠도 못 잘 것이 뻔했다.

뉴비 없지 역시도 여기까지 따라온 이상 절대 소중한 뉴비의 퀘스트를 망칠 수 없다는 심정으로 요리에 힘썼다.

“밀가루를 일단 뭉쳐야 하니까 물이 들어가지 않을까요? 얼마나 넣어야 하지…? 잠길 정도로 넣어야 할까요?”

“여기 소금도 있는데 넣을까요 오리 님?”

“간을 벌써 해요?”

“아. 아닌가…?”

“어? 이거 안 뭉쳐지는데요?”

“어! 저 이거 본 것 같아요. 막 이렇게 밑에다가 밀가루 뿌리고 그 위에 반죽을 올려서 치대면…! 안 되네….”

“흐른다!”

“으아아아악-!”

비전문가 둘이 모이면 얼마나 위험한지 희연은 이번 일을 통해 철저히 배웠다. 가만있으면 반은 간다는 말이 괜히 있는 게 아니었다.

흘러내리는 반죽 비슷한 무언가를 수습하는 것을 간신히 성공한 후 희연은 지친 심정으로 벽에 기대었다. 여기서 뭔가를 더 해봤자 그건 밀가루 낭비일 뿐이었다.

그 잠깐 새에 부엌은 밀가루투성이가 되었는데 그런 것 치곤 얻은 것이 없었다. 희연은 한숨을 내쉬며 엉망이 된 부엌을 둘러보았다.

부엌을 이 꼴로 만든 이상 결과물을 내놓기는 해야 했다.

“…아. 인벤토리에서 물건은 꺼낼 수 있다고 했죠?”

희연은 답을 기다리지 않고 곧바로 인벤토리를 열었다. 다행히 수많은 물건들 사이에 빵이 있기는 했다. 그녀가 꺼낸 것을 확인한 뉴비 없지의 얼굴이 굳었다.

“오리 님…, 악마의 조각을 소환한 건가요?”

“빵이에요…. 저번에 요른의 빵집에서 봤던 분 있죠? 그분 작품인데….”

“워….”

뉴비 없지는 알 수 없는 감탄사를 흘리더니 믿을 수 없다는 눈빛으로 빵을 보았다.

“그 친구 직업이 암살자일지도 몰라요. 빵을 먹게 해서 죽이는 거죠.”

“…….”

“어떻게 이런… 음, 개성적이고 위험한 실력으로 요른의 제자 자리를 차지한 거지…?”

뉴비 없지는 무척이나 흥미롭다는 태도로 빵을 감상하다 부엌칼 하나를 꺼내더니 빵 위로 힘차게 내리찍었다. 그 결과 칼이 부러졌다.

“진짜 이게 빵이래요?”

“네, 뭐….”

요른이 곧 죽어도 이건 파는 것이 아니라 주장하긴 했었다. 그러나 희연이 기념 삼아 가지고 온 이것은 빵이 맞기는 했다.

“안 먹을 거긴 한데, 이걸 상 위에 올릴 거면 칼이 아니라 톱으로 잘라야 할 것 같아요….”

잠시 고민하던 희연은 역시 이건 아닌 것 같다는 생각에 이름만 빵인 무언가를 다시 인벤토리 속으로 집어넣었다.

“이걸 빵이라고 내놓으면 그날로 바로 이 집에서 내쫓길 것 같아요….”

“그렇죠….”

사실 이쯤 되면 뭘 하던 남매의 어머니에게 혼나는 건 기정사실이었다. 부엌 꼴만 봐도 그랬다. 희연은 이 이상 노력하는 것을 포기하고 할 수 있는 것만 하기로 했다.

그녀는 멀쩡한 칼을 찾아 감자의 싹을 제거하고 칼집을 내 그 안에 버터를 넣었다. 그렇게 구워서 만든 감자는 비록 네 식구가 한 끼로 먹기에는 상당히 부족했지만 좋은 냄새는 났다.

“이야기 전개가 빨라지는 건 좋네요.”

희연은 비관적으로 말했다. 이제 남은 식량이 없으니 동화대로 헨젤과 그레텔은 숲속에 버려질 터였다. 뉴비 없지 역시 같은 생각을 했는지 씁쓸하게 웃었다.

남는 시간 동안 더 이상 할 수 있는 게 없다는 판단하에 두 사람은 아예 의자를 끌고 와 앉아 담소를 나눴다. 그런 희연의 손에는 뉴비 없지가 날려 먹은 부엌칼이 들려 있었다.

식량을 동낸 것도 모자라 살림살이까지 망가트렸다는 점에서 그녀는 조금 양심이 찔렸고 걱정도 되었다.

“저 이제 힘 스텟 100 넘는데 저도 힘 조절 안 하면 이렇게 집기 부수나요?”

“이건 부엌칼이 너무 낡아서 그런 건데…. 억울합니다 오리 님.”

부엌칼 탓을 하는 뉴비 없지의 모습에 고개를 갸웃거리던 희연은 감자를 자르고 밀어두었던 칼을 잡았다. 손때 묻어나는 손잡이가 칼이 낡은 느낌을 주긴 했지만 날은 아주 단단했다.

희연은 바로 옆에 있던 기둥 위에 칼을 몇 번 두들겨 보았다. 반복되는 충격에도 칼은 멀쩡했다. 역시 뉴비 없지가 핑계를 댄 것이다. 그도 아니면 빵의 내구성이 아주 높았다는 뜻이 되는데, 아무리 생각해도 희연의 상식으로는 받아들일 수 없는 사실이었다.

그녀가 막 들고 있던 부엌칼을 다시 내려놓을 때였다. 때마침 빨래를 끝내고 돌아온 남매의 어머니가 부엌 꼴을 보며 눈을 부릅떴다.

“세상에 헨젤! 그레텔! 이게 도대체 무슨 꼴이니!”

“그게….”

“너희가 정말 제정신이 아니구나! 안 그래도 당장 내일 먹을 음식도 없어 너네들 아버지는 병든 몸을 이끌고 나무를 하러 갔는데 어떻게 너희는…! 아무리 철이 없다고 해도 그렇지, 너희가 무슨 짓을 했는지 알아?”

남매의 어머니는 사방을 둘러보며 부산스레 움직이다 성큼성큼 걸어오더니 희연과 뉴비 없지를 밀어냈다.

“이 난리를 치고 기껏 만든 게 구운 감자니? 정말로 너희는 이 감자 몇 알로 네 식구 한 끼를 때울 수 있다고 생각해? 그리고 버터를 왜 감자 안에 넣었어! 이 버터로 빵을 만들고 수프를 만들었어야지!”

두 사람은 한참 동안 잘못에 대한 지적을 들어야 했다. 모두 사실이었기에 얌전히 서서 반성하는 태도를 보였다. 그러나 그 시간이 점차 길어지고 잘못을 지적하는 것을 넘어 그저 분풀이가 될 때쯤엔 뉴비 없지는 자리를 벗어날 궁리를 시작했다.

“생각이라는 걸 할 줄도 모르는 것들! 너희 때문에 나와 너네 아버지까지 이 고생을 하는 거야! 차라리…!”

“차라리! 노동을 하겠습니다 어머니!”

“…뭐?”

“네?”

의문을 표하는 남매의 어머니와 희연의 모습에 굴하지 않고 뉴비 없지는 자신의 의견을 표출했다.

“저 그레텔. 건강한 청소년으로서 몸 안에서 확산하는 에너지를 올바르게 사용하겠습니다! 그 방법으로는 첫째! 아픈 몸을 이끌고 나무하러 가신 아버지를 돕기! 둘째! 일단 나무한 다음에 생각해 보겠습니다!”

그러고는 나갔다.

“…….”

할 말을 잃은 희연은 멍하니 있다가 역시나 그녀처럼 멍하니 있던 남매의 어머니를 발견하곤 슬금슬금 움직였다.

“저도… 도우러 갈게요….”

남매의 어머니는 희연을 붙잡지 않았다. 열혈 소녀가 되어버린 그레텔이 감당되지 않는다는 듯 이마를 짚고 의자를 찾아 자리에 앉을 뿐이었다.

만약 진짜 그레텔이 원래는 소심한 성격이라고 한다면 그 충격은 더할 것이 분명했다. 희연은 부디 그레텔이 상당히 발랄한 아이였기를 빌었다.

집을 나오기 전 희연은 헨젤의 방에 잠시 들렸다. 악령이와 넬을 챙기기 위해서였다 문이 넘어지지 않게 조심하며 들어간 그녀가 보게 된 것은 방 안에 있던 장난감을 가지고 얌전히 놀고 있는 두 악령들이었다.

희연을 보자마자 손에 들고 있던 어설픈 나무 장난감을 내던진 악령이가 짧은 팔다리를 휘적거리며 달려왔다.

“얌전히 잘 있었어?”

“응!”

“이제부터 숲으로 들어갈 거야. 조용히 있을 수 있지?”

“응!”

잘 대답하는 것이 대견하다는 듯 인형의 머리를 쓰다듬어 준 뒤 두 악령이 어지른 장난감을 원래의 자리에 돌려놓은 뒤에야 희연은 집에서 나왔다.

다행히 뉴비 없지는 멀리 가지 않은 상태였다. 사실 멀리서도 눈에 띄는 건장한 몸은 좋은 이정표가 되었기에 쉽게 발견할 수 있었다.

뉴비 없지의 앞으로 가자마자 희연은 입을 뗐다.

“저희 이렇게 사고 쳐도 괜찮을까요…. 원래 동화 원작이랑 너무 다르게 행동하면 안 되는 거 아니에요?”

“안 그래도 그것 때문에 조금 걱정이기는 한데…, 일단 어떻게든 이야기를 진행하고 있으니까 괜찮겠죠? 좋은 게 좋은 겁니다 오리 님!”

“안 좋아요….”

단호한 희연의 대답에 뉴비 없지는 멋쩍은 듯 굴었지만, 사실 이제 와서 되돌려 놓을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이제부터 그레텔이 열혈 소녀가 될 수밖에 없었다.

짧은 한숨을 내쉰 희연은 주변을 둘러보았다. 울창한 상록수 사이로 햇볕이 스며드는 숲은 간간이 들리는 새소리, 사박거리는 풀숲 소리 같은 것들이 어우러지며 굉장히 평화로운 분위기를 만들어냈다.

아마도 이 숲이 과자의 숲이 되기 이전의 스위니티 숲일 터였다. 헨젤과 그레텔이 살았고 마녀가 만든 과자의 집이 있는 숲.

“…조용하네.”

희연은 이런 숲의 적막을 알았다. 달빛 요람에서 느낄 수 있던 적막과 같은 종류였기 때문이다.

모든 것이 색이 옅은 달빛 요람과 달리 이 숲의 모든 나무는 진한 녹빛을 띠고 있었지만 숲이 내는 소리 외에 아무것도 없는 그 특유의 분위기 만큼은 똑 닮아 있었다.

악령이 역시 자신이 살았던 숲과 비슷한 분위기라 느꼈던 것인지 연신 사방을 둘러보느라 바빴다.

희연은 머리 위로 떨어진 나뭇잎을 거두며 확신했다. 이 숲에 사는 사람은 헨젤의 가족뿐일 것이라고.

바로 근처에 에빌론이라는 마을을 두고 왜 그들은 이 숲에서 사는 것을 택했던 걸까?

스위니티 숲에서 처음 만난 헨젤은 청년이었다. 약간은 앳된 티가 나나 젖살이 빠진 얼굴은 희연의 나이와 비슷하거나 조금 더 많다는 것을 추측할 수 있게 했다.

그러나 헨젤의 방 안에 있는 물건들. 그것들은 모두 어린 소년, 소녀의 물건이었다.

나무를 깎아 만든 어설픈 장난감과 시든 화관. 빈 벽에 숯으로 그려낸 자그마한 성. 그 그림으로 엿볼 수 있는 소년의 꿈 같은 것들이 이를 증명했다.

나무꾼의 가족이라고 해서 숲에 산다고 하기엔 나무를 한다 해도 네 식구 먹고살기 힘들다는 것을 나무꾼 부부가 가장 잘 알고 있었다.

굶어 죽고 싶지 않다면 이 가족은 숲을 떠나 마을로, 도시로 들어가 다른 일자리를 찾아야 했다.

그렇다면 숲에 숨어 나무꾼으로 살길 택할 수밖에 없는 사정이 있었던 걸까.

청년 헨젤이 성에 사는 꿈을 꿀 정도로 어렸던 시절에 숲에 숨어 살 수밖에 없던 사정. 얼추 들어맞는다. 그러니 이유는 하나다. 전쟁이다. 에빌론의 전쟁.

희연은 생각한 바를 뉴비 없지에게 들려주었다. 그는 예상외로 담담히 희연의 의견을 들었고 수긍했다.

마치 집안 곳곳에 놓인 힌트로 이러한 결과를 도출하는 것이 답이라는 것처럼 두 사람의 앞에 새로운 글자가 나열되었다.

[헨젤과 그레텔이 태어나기도 전의 일이다. 남매의 부모는 전쟁의 화마를 피해 숲에 숨었다. 긴긴 전쟁의 시간을 숲에서 고요히 보냈다. 남매가 태어났고, 남매가 자랐고, 전쟁이 끝났다.

한낱 구두장이도 성벽을 쌓기 위해 동원되는 전쟁에서 도망친 죄를 물을 수 있는 사람은 없었지만, 그것이 비난받아 마땅한 일이라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았기에, 어린 남매를 품에 안은 부부는 감히 숲 밖을 나갈 생각을 하지 못했다.

한평생 함께한 가족과도 같은 이웃들을 버리고 도망쳤다는 건 그런 거였다. 징집을 피한 죄가 그들의 이웃들에게 향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도망을 치더라도 얼마 없는 마을의 물자를 훔치면 안 된다는 것을 알면서도, 당시에는 그들만 그런 것이 아니었다며 당당히 변명했지만 사실 그들도 알고 있었다.

도망치고 싶지만 도망치지 않은 이들 앞에서 그들은 부끄러움을 느껴야 했다는 걸 말이다.

전쟁만큼이나 비난은 무서운 거였다.]

“…….”

희연은 부엌일을 하던 중 먹을거리를 찾다 찬장에서 의외의 것을 발견했다. 돈이 가득한 두둑한 주머니였다.

여전히 물가에 어둡다 할 수 있는 그녀였지만 그 정도 돈이면 싹 난 감자와 말라비틀어진 홍당무 따위를 먹지 않아도 된다는 계산 정도는 할 수 있었다.

돈을 사용할 수 없는 환경이라는 점에서 지금의 시기가 에빌론의 전쟁 시기 혹은 전쟁이 끝난 직후 아직 상처를 회복하지 못한 시기라는 것을 눈치챌 수 있었고, 눈앞에 글자가 사실임을 증명했다.

그제야 희연은 이 세계가 무엇인지 알 수 있었다. 단순히 그레텔의 악몽 따위가 아니었다. 이 세계는 비화였다. 이 세계 자체가 그레텔이 꾸는 악몽, 헨젤과 그레텔의 비화인 셈이었다.

[전쟁 기간에 가장 쓸모없는 것은 돈이었다. 마을에서 기껏 훔쳐 온 돈은 무용지물이었다. 숲속의 땅은 작물이 자라기에 알맞지 않았고, 부부에게는 식량은 있을지언정 씨앗은 없었다. 퇴화한 문명의 마을은 돈 대신 물건을 주고받으며 거래했다.

다행히도, 불을 때려면 나무가 필요했고 겁 많은 부부는 숲에 살았다. 부부는 나무를 해 내다 팔았다. 자신들이 도망친 겁쟁이라는 것을 들키지 않기 위해 남자는 얼굴을 불로 지졌다. 이름 없는 나무꾼이 나무와 바꿔 갖고 오는 것들이 그들 가족의 유일한 먹거리였다.

제대로 치료받지 않은 화상은 곪아가며 남매의 아버지를 아프게 만들었다. 남매의 어머니는 숲에 갇혀 사는 것에 괴로워하기 시작했다. 더 이상 나무만으로는 네 식구가 생활할 수 없게 되었다.

헨젤과 그레텔의 가족 중 행복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고, 영리한 헨젤은 그 점에 괴로워했으며 상냥한 그레텔은 슬퍼했다.

영리한 헨젤은 생각했다.

밀가루 조금, 버터 조금. 감자 다섯 알과 말라비틀어진 홍당무 따위.

저게 모두 없어지면 우리는 어떻게 되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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