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뉴비세스 메이커 (135)화 (135/251)

135화

***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변은 일어나지 않았다. 부부가 잠을 자러 방으로 들어가며 집안의 모든 불을 끄자마자 세상의 시간은 빠르게 흐르기 시작했고 순식간에 다음 날 새벽이 되었다.

아직 해가 떠오르지도 않았는데 남매의 어머니는 그들을 깨우러 방으로 들어왔다. 그 과정에서 망가진 문을 들키게 되었지만 그녀는 화내지 않았다.

기이하고 어색할 정도로 무표정한 낯을 하고 말할 뿐이었다.

“어서 일어나렴. 이 게으름뱅이들아. 오늘은 일찍이 나무를 하러 갈 것이니 어서 나갈 채비를 해라.”

남매의 어머니는 빵 한 덩이씩 희연과 뉴비 없지의 손에 들려주었다. 어제 쓰고 남은 밀가루로 오늘 새벽 일찍 갓 만든 빵은 따끈따끈한 온기를 갖고 있었다.

“너희들의 아침이고, 점심이며 어쩌면 아주 늦은 저녁이 될 수도 있는 소중한 빵이다. 이것 말고는 먹을 게 없다는 걸 명심해. 될 수 있는 대로 아껴 먹어야 한다.”

“…네.”

“[빵을 제게 주세요, 어머니. 제 앞치마에 싸 갈게요.]”

뉴비 없지는 조심스레 빵을 챙긴 뒤 희연에게로 오더니 자그마한 목소리로 속닥였다.

“[조심해 헨젤. 네 주머니에 자갈이 든 걸 눈치챈다면 어머니가 분명 뭐라고 할 거야.]”

“[내 걱정은 하지 않아도 돼 그레텔.]”

뉴비 없지와의 짧은 대화가 끝나자마자 희연은 서둘러 인벤토리에서 꺼낸 하얀 돌멩이 뭉치를 바지 주머니에 쑤셔 넣었다. 준비를 끝내는 것과 동시에 그녀는 다시 몸의 통제권을 빼앗겼다.

몸의 통제권을 빼앗겼던 것은 뉴비 없지 역시도 마찬가지였는지 그는 조금 곤란한 표정을 지었는데, 얼떨떨한 얼굴과 달리 그의 손은 아주 간절하게도 희연의 옷소매를 붙잡았다.

어린 그레텔이 헨젤을 얼마나 믿었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었다.

전날과 달리 남매의 아버지는 어둑한 낯을 한 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네 사람은 말없이 숲속으로 들어갔다. 희연의 손은 중간중간 주머니 속의 돌을 꺼내 밑으로 떨어트리는 것을 반복했다.

그러다 그녀는 발걸음을 멈춰 문득 뒤를 돌아 낡은 나무 집을 보았다. 곧바로 불호령이 떨어졌다.

“뭘 보고 있는 거니 헨젤. 왜 꾸물거리는 거야. 그저 앞만 보고 부지런히 걷도록 해!”

“[전 우리 집 지붕 위에 앉아 있는 하얀 새끼 고양이를 보고 있었어요. 저 고양이가 제게 잘 다녀오라고 작별 인사를 하고 있었거든요.]”

“바보 같은 소리 하지 말렴. 그건 고양이가 아니라 해가 굴뚝 위에서 빛나고 있는 거잖니.”

희연은 어색하게 웃음만 지었다. 희연은 헨젤의 시선을 빌리고 있었기에 헨젤이 왜 괜한 거짓말을 했는지 알았다. 그녀가 자꾸 뒤를 돌았던 것은 이때의 헨젤이 돌멩이를 제대로 떨어트렸는지 수시로 확인했었기 때문이다.

남매의 어머니가 헨젤을 보지 않으려 애쓰는 지금의 순간을 다행이라 해야 할지 그녀는 잘 알 수가 없었다.

그사이 어느새 사방을 둘러싼 나무의 수가 늘고 조금은 어두컴컴했던 새벽이 쨍한 낮이 되었다. 숲 한가운데에 이르렀을 때 남매의 아버지가 처음으로 입을 뗐다.

“헨젤, 그레텔. 가서 땔나무 좀 모아 오너라. 너희들이 춥지 않게 불을 피워주마.”

희연과 뉴비 없지는 착실하게 움직였다. 실상 집을 나선 이후부터 두 사람은 본인들의 의지로 몸을 움직이지 못했다. 익숙한 손놀림이 나뭇가지를 모아 작은 나뭇단을 만들었다.

남매의 아버지가 불을 지펴주었고, 남매의 어머니가 말했다.

“불 앞에 누워 편히 쉬고 있거라. 우리는 나무하러 숲속으로 들어갈 테니까…, 일이 다 끝나면 너희들을 데려가마.”

두 사람은 얌전히 불 앞에 앉아 타닥거리는 불길을 쬈다. 부부의 모습이 사라진 뒤에야 몸의 통제권을 돌려받을 수 있었지만 둘 다, 한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멀지 않은 곳에서 도끼질하는 소리가 들렸다. 그때까지만 해도 희연은 혹시, 하는 생각을 했다. 해가 중천에 뜨고 앞치마에 싸 온 뻑뻑한 빵을 나눠 먹고, 그렇게 시간을 보낸 뒤에야 도끼질 소리를 쫓아 자리를 옮겼다.

“아….”

희연은 탄식을 뱉었다. 도끼질 소리의 정체는 줄에 매달린 나뭇가지가 죽은 나무를 탁탁 두들기는 소리였다. 줄의 높이를 보아 나뭇가지를 매단 것은 남매의 아버지라는 걸 알 수 있었다.

두 사람은 다시 불을 지펴 놓은 자리로 돌아가 앉았다. 그 와중에도 불길이 따뜻해 멍하니 앉아 있다 보니 졸음이 쏟아졌다. 그마저도 이야기에 따라 몸의 통제권을 빼앗겨 생긴 일이었다.

희연이 다시 멀쩡한 정신으로 눈을 떴을 때, 이미 하늘은 칠흑같이 어두워져 있었다. 그 어둠 속에서 뉴비 없지의 황금색 눈동자가 반짝거리는가 싶더니 이내 물기가 어리고 눈물방울이 뚝뚝 흐르기 시작했다.

그 모습에 희연은 깜짝 놀랐지만 이어지는 그의 말에 상황에 맞지 않게도 조금 안심했다.

“[엄마 아빠가 정말로 우리를 버렸어. 어떻게 이 숲을 빠져나가지? 빠져나갈 수 있을까?]”

“[달이 뜰 때까지 조금만 더 기다려 그레텔. 내가 꼭 집으로 돌아갈 수 있게 해줄게.]”

사실 달이 뜰 때까지 기다릴 필요는 없었다. 달빛 요람의 숲에서 가져온 돌은 낮에는 평범한 흰 돌이었지만 약간의 어둠만 더해진다면 더없이 환하게 빛났기 때문이다.

그러나 희연은 구태여 일찍이 움직인다거나 하지 않았다. 뉴비 없지도 그녀를 재촉하지 않았다. 두 사람은 한동안 멍하니 불을 바라보았다. 먼저 적막을 깬 것은 뉴비 없지였다.

그는 한참을 부스럭거리더니 인벤토리에서 꺼낸 것이 분명한 꼬챙이에 꿴 고깃덩어리를 불 위로 올려놓았다. 순식간에 노릇노릇한 고기 익는 냄새가 사방으로 퍼져 나갔다.

갑작스러운 상황이 이해되지 않아 희연은 고개를 갸웃거렸고 그 모습에 뉴비 없지는 대수롭지 않은 듯 말했다.

“이왕지사 먹으면서 하면 좋으니까요. 음! 잘 익었다! 어서 먹어보세요 오리 님!”

뉴비 없지는 자르지도 않고 꼬챙이에 꿴 그대로 고기를 희연에게 넘겼다. 얼떨결에 따끈따끈한 고기를 씹어 먹게 된 희연은 처음에는 알쏭달쏭한 표정을 지었지만 얼마 안 있어 표정을 풀었다.

뱃속에 뭐든 따뜻한 것을 욱여넣으니 일단 기분이 풀리기는 했다. 뉴비 없지 역시도 어느새 하나 더 꺼낸 고깃덩이를 입에 물고 있었다.

“이제 한 번 더 남은 거죠? 헨젤과 그레텔이 숲속에 버려지는 거요.”

“그렇죠? 이제 한 번만 더 참으면 돼요 오리 님.”

“네….”

두 사람이 고기를 모두 해치웠을 때는 이미 하늘 위에 커다란 달이 휘영청 떠올라 있었다. 둘은 숲에 불이 나지 않도록 꺼진 불씨도 다시 확인한 뒤 환하게 빛나는 돌을 회수하며 집으로 돌아갔다.

분명 오는 길에는 그리 많은 시간이 걸리지 않았는데 두 사람이 집에 도착했을 때쯤엔 이미 날이 새고 있었다. 동이 트는 하늘을 보며 희연은 깨달았다.

처음으로 숲에 버려진 날, 두 남매가 집으로 돌아오기까지 걸렸던 시간이 적용된 것임을 말이다. 작은 애들 둘이서 숲을 헤매 집까지 돌아오는 것은 휘영청 뜬 달이 저물고 날이 샐 때까지의 시간이 필요했음을 뜻하는 거였다.

희연은 손을 들어 문을 두들겼다. 어쩐지 집을 나서기 전보다도 문이 더더욱 커다래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래 걸리지 않아 문이 열렸고, 남매의 어머니는 희연과 뉴비 없지를 보며 떨리는 눈을 차마 숨기지 못했다. 표정을 감추려고 애를 쓰는 듯했지만, 뺨 또한 떨리고 있었다.

“…이 못된 것들. 도대체 얼마나 숲속에서 잠을 잔 거니. 너희들이…, 너희들이 너무 깊이 잠들어서…. 우린, 너희들이 다신 못 돌아올 줄 알았다 이 못된 것들…!”

그것으로 끝이었다. 그 이상의 말은 없었다. 남매의 아버지는 울듯 말듯 이상한 표정으로 두 사람을 보았고 남매의 어머니는 외면했다.

[어영부영, 헨젤과 그레텔은 집으로 돌아갔다. 나뭇가지를 손수 죽은 나무에 매단 사람치곤, 남매가 돌아왔음에 남매의 아버지는 기뻐했다. 어머니는 좋아하지 않았다. 크게 싫어하지도 않았다.

그러나 헨젤과 그레텔이 돌아왔다고 해서 갑자기 없던 음식이 생기는 건 아니었다.

처음이 어렵다고, 부부는 더 깊은 숲속으로 아이들을 버리기로 하였다.]

지문을 다 읽자마자 희연은 눈앞이 어지러워지는 것을 느꼈다. 질끈 감은 눈을 다시 떴을 때, 문 앞이 아닌 방이라는 걸 깨닫는 것보다 놀라운 것이 그녀를 기다리고 있었다.

“…없지 님?”

“오리 님…!”

달려오는 작은 갈색 머리 꼬마를 얼떨결에 받아 준 희연은 당혹스러운 표정으로 주위를 둘러보았다. 헨젤과 그레텔의 방이 낯설어서였다. 구조도 물건도 모두 똑같은데 말이다.

오래 지나지 않아 희연은 그것이 눈높이가 달려져 생긴 일이라는 걸 알아차렸다. 꼬마가 된 뉴비 없지를 앞에 둔 것치곤 늦은 깨달음이었다.

“뭐가 어떻게 된 거야….”

눈에 띄는 다홍색 머리에 황금색 눈을 가진 건장한 청년 대신 희연의 눈앞에 있는 건 수수한 갈색 머리에 녹색 눈을 가진 작달만한 아이였다.

당황스럽게도 희연은 어린 뉴비 없지와 그리 크게 차이 나지 않는 눈높이를 갖고 있었다.

풀린 머리카락이 어깨를 조금 넘는 중단발 기장이라는 걸 알아차린 뒤에야 그녀 역시도 나이가 어려졌음을 깨달았다.

앞으로 끌고 와 확인한 그녀의 머리카락 역시도 뉴비 없지와 같은 수수한 갈색으로 물들어져 있었다. 굳이 확인해 보지 않아도 눈 색 역시도 녹색으로 바뀌었으리라 짐작할 수 있었다.

“오리 님은 지금 몇 살 정도예요?”

“머리가 짧은 거 보면 열셋? 열다섯일 수도 있긴 해요. 이맘때엔 키가 비슷비슷했거든요.”

일고여덟쯤의 아이를 옆에 두고 비교하자니 정확한 나이를 가늠하는 것이 어려웠다. 희연은 대략적으로 나이를 짐작해 보다 눈을 빛내고 있는 두 악령의 모습에 고개를 기울였다.

“왜 그렇게 봐?”

“어려졌어!”

“응… 그렇지.”

놀리기라도 하려는 걸까. 희연은 태평하게 생각했다. 매번 자신을 애 취급했던 희연이 어려졌으니 악령이가 그럴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한 것이다.

그러나 이어지는 악령이의 말에 의아함 가득했던 희연의 얼굴은 굳었다.

“안 되는데… 잡혀가는데…. 잡혀갈 거야. 잡혀가면 안 되는데. 나 두고 가지 마! 죽지 마!”

“…….”

희연은 어렵지 않게 악령이의 두려움이 무엇인지 눈치챘다. 뱀이 잡아가는 아이들의 나이는 모두 열다섯 밑이었으니 희연이 잡혀갈까 봐 겁을 먹은 것이다.

아무 일도 없을 거라며 악령이를 달래주기도 전에 문을 두들기는 소리가 들렸다. 희연은 잽싸게 손을 뻗어 폴짝거리며 뛰어다니던 인형을 잡아 끌어안았다.

문이 열리고 여전히 싸늘한 낯을 한 남매의 어머니가 방으로 들어섰다. 어려진 희연은 처음으로 남매의 어머니를 올려다보았다.

이맘때의 헨젤 역시도 그녀와 키가 비슷했는지는 모른다. 다만, 이 나이 때, 이 키로 올려다보는 어른이란 참 거대해 보여서, 버려질 수밖에 없던 헨젤과 그레텔에 대한 감정이 곪아 갈 뿐이었다.

“나가자꾸나. 나무를 하러 갈 거란다.”

두 사람을 재촉하는 남매의 어머니는 빈손이었다. 그에 희연은 당황했다. 원래의 이야기대로라면 두 번째로 숲속에 버림받을 때 헨젤이 이정표로 써먹는 것이 빵이었기 때문이다.

뉴비 없지 역시도 이를 눈치챘는지 짧은 팔을 휘적거리며 남매의 어머니를 붙잡았다.

“어머니! 저희 빵은…!”

“글쎄다. 남은 밀가루가 없어서 말이다. 나도 너희들 아버지도 먹을 게 없어 굶으니 불공평하다고 생각하지 말렴. 혹여나 가는 길에 열매라도 따면 그걸 주마.”

그 말에 희연은 지금의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는 건지 깨달았다. 첫날, 희연과 뉴비 없지가 대책 없이 빵 만들기를 하는 바람에 남은 밀가루가 없어 이야기 전개가 바뀐 것이다.

어차피 집으로는 돌아오지 않을 거니 상관없나 싶다가도 이런 사소한 것들이 모이고 모여 마지막에 이야기를 뒤바꿔 버리면 어쩌나 하는 걱정도 들었다.

고민하던 희연은 일단 악령이와 넬을 챙겨 든 뒤 어려진 뉴비 없지의 작은 손을 꼭 쥐고 집을 나섰다. 남매의 어머니는 희연이 인형을 끌어안고 집을 나서는 것에 대해서는 무어라 하지 않았다.

집을 나선 뒤로는 이전과 같았다. 부부가 앞서 걸었고 어려진 두 사람이 그 뒤를 다급하게 쫓았다. 그 과정에서 희연은 어떻게 해야 하나 싶어 사방을 둘러보았다.

“왜 자꾸 멈춰 서서 두리번거리는 거니 헨젤? 어서 부지런히 걷기나 하거라.”

“네에….”

한참을 고민한 뒤에야 희연은 몰래몰래 손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오리 님 그거….”

“쉿.”

희연이 잘게 잘게 부수어 흩뿌린 것은 이전 요른의 제자에게서 받았던 누네띠네였다. 이런 식으로 사용하게 될 줄은 몰랐지만, 빵도 그렇고 이 누네띠네도 그렇고 그녀가 주었던 것들은 착실하게 쓰였다.

“너희들은 여기 앉아 있도록 해라. 졸리면 눈 좀 붙이고. 우리는 숲에 나무하러 갔다 오마. 저녁에 일이 다 끝나면 저녁에 일이 다 끝나면 데리러 올 테니 기다리고 있거라.”

부부는 돌아보지도 않고 자리를 떠났다. 희연은 부부가 보이지 않을 때까지 기다렸다가 입을 뗐다.

“저희가 어려진 건 스토리 전개가 거의 끝나가서 그런 거겠죠?”

“그럴 거예요! 조금 이따 날이 어두워지면 바로 움직이도록 해요 오리 님.”

“…….”

“왜 그렇게 봐요?”

“아뇨. 그냥… 발음이 조금 새길래….”

희연의 말에 뉴비 없지가 손을 들어 제 입을 막았다. 앞니 두어 개가 빠진 상태라는 걸 그제야 의식한 것 같았다.

“이맘때에 유치가 많이 빠져서….”

“저도 그랬어요.”

조금 멋쩍어하던 뉴비 없지는 어깨를 한 번 으쓱이고는 풀숲 위로 누웠다. 희연도 악령이와 넬을 끌어안고는 자리에 누웠다. 둘 모두 어떻게 해야 지금의 시간이 빠르게 흐르는지 이제는 알고 있어서였다.

두 사람이 다시 눈을 뜨기까지 걸린 시간은 아주 짧았으나 날은 어둑해져 있었다. 이번에는 몸을 따스하게 해줄 모닥불마저 없었기에 둘 다 추위에 입술이 파래졌다.

어려진 모습으로 추위에 덜덜 떠는 꼴까지 하게 되니 누가 보아도 가엽다는 소리가 절로 나올 모습이 되었다. 추위에 소름이 돋은 팔을 쓸며 희연은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누네띠네의 잔해를 찾았다.

당연하지만 새와 벌레가 이미 한참 전에 먹어 치운 것을 찾기란 요원한 일이었다. 원래 상태 그대로 던져놔도 찾기 힘든 것을 새와 벌레가 먹기 쉬우라고 부수어 놓기까지 했으니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일단 아무 곳이나 정해서 걸어볼까요?”

뉴비 없지의 제안에 희연은 흔쾌히 응했다. 두 사람은 숲을 헤매면서 산딸기 같은 것을 따먹으며 나름 지금의 상황에 몰입했다.

익숙하지 않은 숲길에 슬슬 지쳐 쉬고 싶다는 생각이 들 때쯤 풀벌레 울음소리와 사박거리는 풀잎 노래 사이로 낯선 소리가 들렸다.

삐롱-

맑고 고운 새소리였다. 소리의 주인을 찾아 주위를 두리번거리던 희연은 아주 희고 예쁜 새 한 마리를 보게 되었다.

“눈 같네….”

신기하다는 듯 새를 구경한 희연은 금세 고개를 돌려 다시 앞을 보았다. 남매의 어머니가 그렇게 앞을 보고 걸으라고 할 때는 보이지 않던 태도였다.

“어디까지 걸어야 과자의 집이 나올까요?”

“동화에서는 막 단내가 나서 쫓아갔더니 나왔다고 했는데….”

“어? 저는 늑대한테 쫓기다가 과자의 집에 도착하게 되었다고 알고 있는데요?”

“우리 같은 동화 읽은 거 맞죠?”

희연과 뉴비 없지는 서로를 멀뚱멀뚱 보았다. 누구 말이 맞는지 알 수가 없어서였다. 그러던 와중 뉴비 없지가 희연을 올려다보며 다급하게 말했다.

“생각났다! 헨젤이 떨어트린 빵을 먹은 게 미안해서 새가 대신 과자의 집으로 데려가 준다고 했어요!”

“새…? 여기는 새가 말도 하는 세상이에요?”

그 순간이었다. 내내 희연에게 무시당했던 하얀 새가 그녀의 모자를 훔쳐 달아났다. 갑작스러운 공격에 깜짝 놀란 희연은 주춤거리다 키가 작은 뉴비 없지를 보지 못해 그에게 걸려 함께 넘어졌다.

땅을 구르며 순식간에 며칠 동안 숲에서 헤맨 것 같은 꼴이 된 두 사람은 멍하니 있기도 잠시, 서둘러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누가 먼저라고 할 것도 없이 달리기 시작했다.

“저 새 놓치면 안 돼요! 뛰어요 오리 님!”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