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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비세스 메이커 (137)화 (137/251)

137화

선량한 인상의 청년이 동생을 구해달라 눈물 흘리던 모습을 아직도 선명하게 떠올릴 수 있는데, 과거의 그는 동생을 팔았다. 동생을 팔고 제 목숨을 구걸했다.

부모에게는 버림받고, 세상에 하나 남은 가족이 자신을 팔아넘겼다는 걸 안 순간 그레텔은 무슨 생각을 했을까. 희연은 모른다.

그 와중에도 그녀의 입은 착실하게 움직였다. 헨젤은 저가 살고 싶다는 마음 하나로 마녀에게 그레텔을 잡아먹는 방법까지 바쳤다.

“[제 말을 한 번만 들어보세요, 마녀님이 그레텔을 잡아먹는 방법은 아주 아주 쉬워요. 저처럼 꾀부리는 아이와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쉽다고요…!]”

“아주 살려고 발악을 하는구나 꼬마야. 어디 한번 그 영악한 머리를 굴려 봐라. 너 같은 애들이 나를 즐겁게 해주는 법이지. 살고 싶다면 재롱을 부려 봐!”

“[가, 간단해요, 정말로…! 그레텔에게 오븐의 온도가 적당한지 봐야 한다 하고 오븐 안으로 기어들어 가라고 하세요…. 그리고… 그리고… 오븐의 문을 닫으면, 그러면 마녀님은 그레텔을 잡아먹을 수 있어요!]”

“그런 말에 속을 리가 있나!”

“[…속을 거예요. 그레텔 그 아이는 정말로 상냥하고 순진하니까…. 그 아이는 마녀님의 말을 철석같이 믿고 따를 거예요.]”

헨젤은 울었다. 그래서 희연도 울었다. 울면서도 그녀의 입은 쉴 새 없이 움직였다. 울먹임 가득한 목소리는 마녀를 설득하려 온갖 애를 썼다. 그리고 마녀는 그런 헨젤을 보며 흡족하게 웃다 기꺼이 재롱에 넘어가 주기로 했다.

“네 말대로 해주마, 헨젤.”

“[흑…, 흐윽…, 흐엉….]”

“그리고 이 사실을 영원토록 기억하도록 해라. 네 동생이 죽는 이유는 너다 헨젤. 네 동생이 불타 죽는 고통을 느껴야 하는 이유는 너야 헨젤. 네가 네 동생 그레텔을 죽이는 거다. 내가 아니라 헨젤 네가!”

깔깔깔, 듣기 싫은 웃음소리를 내며 마녀는 감옥을 나갔다. 희연은 엎드려 한참을 엉엉 울기만 했다.

“[미안해, 그레텔…, 미안해, 미안해….]”

물기가 어려 흐릿해진 희연의 시야에 반짝이는 글자가 하나둘 떠오르기 시작했다.

[마녀는 오븐 앞으로 불쌍한 그레텔을 떠밀었다. 불길이 넘실거리는 오븐을 가리키며 마녀는 그레텔에게 그 안으로 기어들어 가라고 명령했다. 마녀는 그레텔을 구워서 잡아먹으려는 속셈이었다.

그러나 그레텔은 영리한 헨젤과 함께 자란 아이답게 마녀의 꾀를 금세 눈치챘다. 그레텔은 아무것도 모르는 아이처럼 굴었다. 마치 헨젤이 남매의 아버지에게 영원한 가족 운운할 때처럼 말이다.

마녀는 답답하게 구는 그레텔을 밀어내고 오븐의 문을 열었다. 그 순간, 그레텔은 온 힘을 다해 마녀를 오븐 안으로 밀어 넣고 쇠문을 닫았다. 문의 걸쇠를 잠갔다.

못된 마녀는 오븐 속에서 비참하게 타 죽었다.]

밑으로 내려오는 발소리에 희연은 고개를 들었다. 급하게 달려온 것인지 얼굴에 그을음이 묻은 뉴비 없지가 손에 든 열쇠를 들고 창살 앞에 서 있었다.

그는 문을 열었고 희연을 꼭 끌어안으며 그레텔의 말을 전했다.

“[헨젤, 우리는 살았어! 못된 마녀는 죽었어!]”

희연은, 헨젤은 새장 속에서 풀린 새처럼 가볍게 감옥 밖으로 빠져나왔다. 가볍지 못한 것은 헨젤의 마음뿐이었다. 동생을 바치고 자신의 안위만 생각했던 영리한 헨젤은 순진한 숲속의 새처럼 조잘거리는 그레텔의 말에도 웃지 못했다.

두 사람은 감옥을 벗어났다. 헨젤은 영리해서, 마녀의 집에 귀한 것들이 있으리라는 것을 놓치지 않았다.

“[기다려, 그레텔. 이 집에는 보물이 있을 거야. 그것도 우리들은 평생 본 적 없는 그런 보물들이. 그것만 있으면 우린 행복해질 수 있어.]”

“[하지만, 마녀가 없다고 해도 나는 이 집이 무서운걸. 그냥 가면 안 돼? 보물 같은 거 없어도 이제 집으로 돌아가면 행복해질 수 있잖아.]”

“[바보 같은 소리 하지 마 그레텔! 이대로 돌아가봤자 엄마, 아빠는 우리를 다시 버릴 거야! 보물이 있어야 안 굶어! 안 버려져! 그래야 이런 마녀의 집 같은 곳에 다시 안 올 수 있다고!]”

발악하듯 외친 희연은 이어 고개를 마구 저었다. 손을 들어 눈물로 얼룩진 얼굴을 문질렀다. 그녀는 약간 쉰 목소리로 뉴비 없지에게 다정히 말했다.

“[소리 질러서 미안해 그레텔. 내가 너무… 그러니까 이 집이, 마녀가 무서웠나 봐…. 하지만 그레텔, 난 같은 일이 정말로 다시 일어나지 않기를 바라. 우리의 슬픔과 괴로움이 보상받기를 바라. 그러니까 부디 내 말을 따라주렴.]”

“[헨젤….]”

“[내가 꼭, 같은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해줄 테니까…. 보물을 찾으면 그레텔 네게 가장 맛있는 음식을 먹게 해주고, 좋은 옷을 입게 해주고, 이런 숲 말고 더 근사한 곳에서 살게 해줄 테니까….]”

희연의 어조는 흡사 비는 것에 가까웠다. 헨젤은 이런 식으로나마 그레텔에 대한 죄책감을 덜어내려고 한 것이다. 뉴비 없지가 희연의 손을 붙잡았다. 아무것도 모르는 발랄한 아이의 목소리를 들으며 헨젤은 더더욱 마음이 무거워졌을 것이다.

“[나는 물론 너를 믿어 헨젤. 우리 꼭 보물을 찾아서 함께 맛있는 것도 먹고, 좋은 옷도 입고, 근사한 곳에서 늦잠을 자자!]”

“[…그래. 꼭 그러자 그레텔.]”

마녀의 집에서 보물을 찾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감히 집안에 도둑이 들 일도, 이 집에 들어온 사람들이 물건을 훔쳐 달아날 재간도 없다 생각한 것인지 숲의 마녀는 아이들도 손이 닿기 쉬운 곳에 보물을 숨겨놓았다.

보물 상자에는 이런 숲속에서는 보지 못할 온갖 반짝이는 보물이 가득 들어 있었다.

“[이것 봐 헨젤! 진주와 보석이 이렇게 많다니. 이것들 꼭 달빛에 반짝이던 자갈을 닮았어!]”

“[…자갈보다야 진주와 보석이 훨씬 더 좋지.]”

희연의 입을 통해 전해지는 헨젤의 말은 건조했다. 헨젤은 마음이 무거운 만큼 주머니에 보석을 쑤셔 넣었다. 바지와 앞치마 주머니에 보석이 가득 담겨 불룩 튀어나올 때가 돼서야 희연은 자리에서 일어나 뉴비 없지를 채근했다.

“[이제는 이곳을 떠나는 게 좋겠어, 그레텔. 그래야 무사히 마녀의 숲을 빠져나갈 수 있을 테니까….]”

“[헨젤, 아직도 마녀가 무서운 거야? 걱정 안 해도 돼! 내가 마녀를 물리쳤어. 마녀가 나한테 오븐으로 들어가라고 했는데….]”

“[그레텔! 내 말 들어! 우린 당장 이 숲을 빠져나갈 거야!]”

뉴비 없지를 붙잡은 손아귀에 어찌나 힘이 들어갔던지, 제 잘못이 아님에도 희연이 눈치를 봐야 할 정도였다. 뉴비 없지는 곤란해하는 그레텔의 뜻을 전하면서도 눈짓으로 희연에게 괜찮다는 신호를 보냈다.

그에 희연은 다행이라고 생각하긴 했지만, 다른 곤란한 것이 해결되지 않았기에 그녀의 굳은 표정은 풀리지 않았다. 이제 곧 과자의 집에서 나가게 되는데 아직까지도 악령이와 넬을 챙기지 못했다

희연은 온갖 애를 쓰며 과자의 집을 벗어나려 하는 발걸음을 늦추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두 악령은 끝까지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희연과 뉴비 없지가 과자의 집 밖으로 나올 때까지도 말이다.

두 사람이 과자의 집에서 나오자마자 문은 쾅 닫히며 단단히 걸어 잠겼다.

과자의 집 주변에는 설탕물 묻은 흙이 넓게 퍼져 있었다. 단단한 점성을 갖게 된 흙은 제멋대로 움직이는 그들의 걸음을 방해했다.

힘차게 뻗어지는 손과 달리 느릿느릿한 속도에 희연은 반사적으로 탄식을 뱉었고, 덕분에 몸과 달리 입은 자유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그것을 알아차리자마자 희연은 다급한 목소리로 말했다.

“악령이랑 넬이 아직 안에 있어요!”

희연의 말에 뉴비 없지가 서둘러 입을 뗐다.

“오리 님 그 둘 괜찮아요! 진짜로요! 이 과거 회상이 끝나며 같이 나가게 되니까 걱정 안 해도 돼요!”

“정말로요…?”

“네! 원래 던전이나 미궁 종류가 그래요. 깨면은 안에 있는 사람이 다 내보내지는 방식이니까 걱정 안 해도 돼요.”

그 말에 안도한 희연은 그제야 숨을 골랐다. 놀란 마음이 그제야 진정되었다.

마음 같아선 어쩌다 그 둘만 외따로 떨어진 것인지 알아보고 싶었지만 안전이 확보된 이상 뉴비 없지에게 먼저 말해야 하는 것은 따로 있었다.

한참을 말을 고르던 희연은 과자의 집이 더 이상 보이지 않게 되었을 때쯤에야 입을 열었다.

“헨젤이… 마녀에게 그레텔을 잡아먹으라고 했어요. 그 대신 자기를 살려달라고요.”

“아, 그래서 마녀가….”

“마녀가 무슨 말을 했어요?”

“별말은 아니고… 그냥 오누이의 우애가 참 보기 좋네 뭐 그런 말을 하길래 뜬금없이 무슨 말인가 싶었죠….”

그레텔이 악몽을 통해 헨젤의 시점을 재현해 준 이상 끝내 이 진실을 알게 되었다고 보아도 좋았다. 희연은 차라리 이 이야기가 빨리 끝나기를 빌며 낡은 나무 집을 찾아 사방을 둘러보았다. 집에 도착해 아버지를 재회해야 이 동화는 끝난다.

그러나 희연의 눈에 들어온 것은 열심히 찾는 집이 아닌 커다란 강이었다. 그 강 앞에는 새하얀 옷을 입은 사람이 서 있었다.

모자를 깊이 눌러 썼기에 얼굴이 보이지는 않았지만 옷 밖으로 드러난 피부 위로 다닥다닥 붙은 비늘이 엿보였다. 마치 에빌론에서 보았던 의문의 검은 천막의 상인처럼 말이다.

그 점을 깨닫자마자 희연이 반사적으로 총을 찾아 손끝을 움찔거리던 그때였다. 뉴비 없지가 큰소리로 외쳤다.

“[저기 봐 헨젤! 저 사람 옷이 정말로 하얘! 꼭 커다란 오리 같지 않아?]”

“…….”

뉴비 없지는 울먹이는 얼굴로 이는 절대 자신의 의지가 아니었음을 피력했다. 희연은 부디 이름도 정체도 모를 그 사람이 뉴비 없지의 목소리를 듣지 못했기를 바랐지만, 그 바람이 터무니없다는 것을 그녀가 더욱 잘 알았다.

하얀 옷을 입은 사람은 희연과 뉴비 없지에게로 천천히 걸어오며 깊이 눌러썼던 모자를 벗었다. 색이 예쁜 금발이 목덜미에 스쳤다. 옷소매 아래와 목덜미에서 볼 수 있었던 비늘은 그의 눈가와 뺨에도 다닥다닥 붙어 있었다.

삭막한 색의 눈은 동공이 세로로 쭉 찢어져 있는 전형적인 뱀눈이었다.

촘촘히 박힌 속눈썹이나 눈매 같은 것이 워낙에 예뻤기에 상대의 뱀눈은 하나의 매력으로도 보일 수 있었지만 뱀이랑 엮여서 좋았던 적이 없는 희연에게는 아니었다.

“안녕, 꼬마들. 이런 숲속에 왜 어린 애들끼리 있니?”

뱀눈 사내는 말을 할 때면 나긋나긋하게 눈을 휘었다. 희연은 그 모습이 꼭 눈앞에 사냥감을 두고 느긋하고 오만하게 구는 것처럼 보였다.

“[당신은 신관이신가요? 들은 적 있어요! 숲 밖에 신관님들은 구름처럼 하얀 옷을 입고 다닌다는 말을요!]”

희연의 말에 뱀눈 사내는 아주 재미난 것을 들었다는 듯 소리 내 웃었다. 한참을 웃고 나서야 그는 자신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미안하지만 난 신관이 아니란다. 신관과는 거리가 멀지. 무척이나 아쉽다는 얼굴이구나. 신관을 간절히 찾을 이유가 있었나 보지? 고해 성사라도 하고 싶었을까, 우리 꼬마는.”

“…….”

“곤란한 얼굴이 무척이나 재밌구나. 즐겁게 해주었으니 보답을 줄까 하는데… 내 질문 하나만 답해 주겠니?”

“[무슨 질문인데요?]”

“간단한 질문이란다. 얘야. 너 올해로 몇 살이니?”

“[저는 올해로 열다섯 살이에요.]”

“그래? 뒤의 아이는?”

“[그레텔은….]”

말하지 마, 말하지 마, 말하지 마!

희연은 속으로 간절하게 빌었다. 다행히, 헨젤은 영리했다. 비록 그 영리함으로 제 동생을 팔았다는 것이 문제기는 했지만 목숨이 위협받지 않는 선에서 그는 제 동생에게 제법 애틋했다. 동생을 위험으로 몰아넣은 직후인 지금은 더더욱이 말이다.

“[…당신은 왜 그런 걸 물어보는 거죠? 우리 나이는 지금 상황에 전혀 중요하지 않아요.]”

“아니, 아니란다 꼬마야. 나이는 중요해. 어른은 같은 어른보단 아이에게 더 친절해지곤 하거든. 지금의 나처럼 말이다. 특히나 지금 같은 시기엔 더욱 그렇지.”

“[지금 같은 시기요?]”

뱀눈 사내는 아이에게 친절하다는 말을 지키려는 것인지 자세한 설명을 들려주었다. 희연도 아는 내용이었다. 열다섯 미만의 아이들을 지킨다는 대륙법. 그는 그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이미 오래전에 사라진, 있으나 마나 한 법이었지. 그런데 전쟁이 끝나니 최근 들어 다시 그 법이 부활했단다. 그러니 만약 너희 둘 중 하나가 열다섯 아래라 한다면 나도 친절하게 굴어줘야 하지 않겠어?”

그의 말은 이상했다. 마치 열다섯 아래가 아니면 친절해야 할 이유조차 없다는 투였다. 머뭇거렸던 희연의 입은 오래 지나지 않아 다시 열렸다. 헨젤에겐 어른의 도움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부디 우리를 도와주실 수 있나요? 제 동생 그레텔은 이제 여덟 살이에요. 많이 바라지 않아요. 그저 우리가 이 강을 건널 수 있게만 해주세요.]”

“그러마 꼬마야. 마치 내게 작은 배 한 척이 있지. 하지만 너무 작아서 너희를 한 번에 옮기지는 못해. 하나씩 저 강 너머로 옮겨주마.”

먼저 배에 올라탄 것은 뉴비 없지였다. 떠나가는 배를 보며 희연이 할 수 있는 건 멀뚱멀뚱 서 있는 것뿐이었다. 뱀눈 사내와 뉴비 없지는 무어라 대화를 나누고 있었는데, 뉴비 없지의 의지는 아니었는지 재잘재잘 바쁘게 움직이는 입과 달리 그의 눈은 텅 비어 있었다.

그 모습을 보며 희연은 머리를 굴렸다. 뱀눈 사내는 아무리 봐도 수상한 단체인 뱀과 연관되어 있는 것으로 추정됐다. 그런데 헨젤과 그레텔에게 친절을 보였다.

혹시 이 짧은 기회를 틈타 그레텔을 납치하거나 하는 건 아닌가 했지만 강 너머에 뉴비 없지를 무사히 내려주는 그의 모습에선 그런 음험한 속내는 엿보이지 않았다.

강은 깊고 물살이 제법 빨라 맨몸으로 건너기에는 무리가 있었으나 그 폭은 그리 넓지 않았기에 건장한 성인이 이끄는 배가 오가기까지에 시간은 오래 걸리지 않았다.

뱀눈 사내가 이끄는 배는 희연이 생각에 빠진 그 잠깐 새에 그녀의 앞에 도달해 있었다. 그는 친절했다. 열다섯인 헨젤에게도 말이다.

희연은 내밀어진 손을 잡고 흔들거리는 배 위에 올라탔다. 두 명이 마주 보게 만들어진 배였기에 그녀는 강을 건너는 내내 노를 젓는 남자를 보아야 했다.

이대로 별말 없이 넘어가면 좋았을 것을, 뱀눈 사내는 입을 뗐다.

“꼬마야. 너는 이 세상을 어떻게 생각하니?”

“[세상 이야기를 하기엔 전 아는 게 없어요. 평생을 이 숲에서 살았으니까요.]”

“그렇다면 내가 알려주마. 이 세상은 말이다, 엉망진창이야. 의미 없는 전쟁과 뜻 모를 기근, 아이들은 부모 손에 의해 팔려 나가고 어른들은 술이 없으면 제정신으로 못 살지.”

“…….”

“내가 왜 이 숲에 왔는지 아니 꼬마야?”

“[그야, 저는 모르죠.]”

“그렇다면 이 숲에 사는 나무꾼을 아니? 얼굴에 아주 큰 화상 흉터가 있는 자란다. 나무를 내다 팔러 온 나무꾼이 내게 팔고 간 것이 있는데 말이지, 난 기꺼이 큰 대가를 치렀단다. 그런데 어찌 된 일일까? 나무꾼이 내게 판 것을 주러 오지를 않더구나.”

“[그것참, 당혹스러우셨겠군요….]”

“다행히도, 이런 일을 어느 정도 예상했단다. 그자는 무척이나 우유부단하고, 뭐라고 할까… 스스로를 연민하는 이였거든. 제 손으로 팔아치운 것들에 대해 뒤늦은 동정심이 생긴 걸지도 모르고, 혹은 아내를 설득하지 못한 걸지도 모르지.”

“…….”

“그자가 내게 넘기기로 한 것은 그 나무꾼만의 것이 아니었거든. 재밌는 자였지. 잘 먹고, 잘 입히고, 좋은 곳에서 몇 밤 보내게 해주는 것으로 스스로가 좋은 사람일지도 모른다고 착각하더구나. 이런, 무척이나 떨고 있구나.”

물살을 가르던 노가 멈추었다. 희연은 뱀 사내의 말처럼 어깨가 덜덜 떨려오는 것을 느꼈다. 이 떨림은 헨젤의 것이었다.

영리한 헨젤은 이쯤에서 남자의 정체를 유추했다. 그는 부모님의 대화를 기억했다. 남매의 어머니가 남매의 아버지를 비난한 것도 기억했다. 남매의 아버지는 헨젤과 그레텔을 어딘가로 보내려 했다.

어디였을까? 숲속보다 못한 곳, 그곳은 어디였을까.

떨림을 감추지 못하는 희연을 보며 뱀눈 사내는 미소 지었다.

“하지만 너를 보니 조금 마음이 변했단다. 그러니 그리 떨지 말렴. 보기에 안쓰럽구나.”

“[…아버지가 우리를 팔았나요?]”

“그건 중요하지 않아. 중요한 것은 내 마음이 변했다는 거지.”

뱀눈 사내는 폭이 넓은 옷소매에서 반짝이는 무언가를 꺼내 그녀의 손에 쥐여 주었다. 희연은 손에 들어온 물건을 보며 입매를 굳혔다. 그건 배지였다. 녹색 뱀이 새겨진 그 배지.

“나는 영리한 아이들을 좋아해. 욕심 많은 아이도 좋아하지. 머리 굴릴 줄 아는 것들을 볼 때면 아주 즐겁단다.”

“…….”

“잘 가지고 있으렴. 그러다 내 도움이 필요해지면 시드론의 수도 딜라일로 오거라. 수도의 뒷골목에는 검은 천막 아래에서 물건을 파는 상인이 있지. 그자를 찾아. 딱 한 번, 네게 아주 큰 도움을 주마.”

어느새 뱃머리가 땅에 닿았다. 희연은 주저 없이 배에서 내렸다. 그걸로 끝이었다. 뱀눈 사내는 그들을 붙잡지 않았다. 희연은 뉴비 없지의 손을 잡고 질질 끌다시피 하며 그 자리를 벗어났다.

“[헨젤? 헨젤! 왜 이러는 거야! 나 손 아파!]”

“[조용히 해 그레텔! 시끄러워!]”

단 한 번을 쉬지 않고 그들은 달렸다. 희연의 손은 달리는 내내 단 한 번도 펴지지 않았다. 그 안에 쥐어진 금속 배지가 온기로 물들어 더 이상 차갑게 느껴지지 않았다.

[헨젤과 그레텔은 달릴수록 숲길이 익숙하다는 걸 느꼈다. 저 멀리 그들의 집이 보였다. 남매의 발소리, 헨젤의 숨소리, 그레텔의 조잘거림을 들은 것인지 문이 열리고 그 안에서 남매의 아버지가 모습을 드러냈다.

헨젤은 뛰던 것을 멈추었다. 그레텔이 헨젤의 손을 놓고 남매의 아버지에게 달려가 그의 목에 매달렸다.

남매의 아버지는 아이들을 숲속에 버린 뒤 한시도 행복한 적이 없었다. 언제나 초조했고 마음이 불편했다.

그동안 남매의 어머니는 죽어 그는 혼자 지내고 있었다.]

놀라움과 당혹스러움, 죄책감과 기쁨이 뒤섞인 눈에 눈물이 어렸다. 희연은 숨을 몰아쉬며 그 모습을 보았다. 뛰어서 그런 것인지 심장이 과하게 두근거렸다.

남매의 아버지에게서 멀어진 뉴비 없지가 꽁꽁 싸맨 앞치마를 펼치며 보석을 자랑했다. 보석과 진주가 바닥에 툭툭 떨어지며 굴렀다.

[이제 그들을 괴롭히던 온갖 근심 걱정은 모두 사라지고 그들은 더할 나위 없이 행복하게 살 수 있게 되었다.]

영리한 헨젤이 이를 가장 잘 알았을 것이다. 그러나 희연은, 헨젤은 입을 열었다.

“[아버지. 혹시, 우리를 팔았었나요?]”

[헨젤은 궁금했다.

그래서 우리를 버리는 것을 반대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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