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8화
헨젤의 물음에, 남매의 아버지는 이상한 표정을 지었다. 그 무슨 해괴한 말을 하느냐 묻는 얼굴이 아니었다. 그건 상황을 모면하고자 하는 웃음과 죄책감의 일그러짐이 뒤섞인 얼굴이었다.
“아가, 헨젤…. 내, 내 말을 먼저 들어주렴. 내가 너희를 팔다니, 결코 그런 게 아니었단다. 나는 그저 너희를 더 좋은 곳으로 보내주려 했을 뿐이란 말이다…!”
“[그런 사람이 대가를 받나요? 도대체 저희를 팔아서 뭘 받으신 거예요? 도대체, 저와 그레텔, 어머니가 이 숲속에 박혀 있는 동안 마을에서 뭘 하고 돌아다니신 거냐고요!]”
남매의 아버지는 당혹스러움을 감출 수 없다는 듯 거칠게 숨을 몰아쉬었다. 뻘뻘 흐르는 땀이 화상으로 물든 얼굴을 가로질렀다. 벌벌 떨리는 손은 길을 잃은 것처럼 허공을 헤맸다.
“나는, 나는 정말 그런 게 아니었단다 헨젤. 그는 아주 좋은 사람이었어. 너희 같은 아이들을 데리고 가서 맛있는 것도 먹게 해주고 좋은 옷도 입게 해준다고 했어. 남부러울 것 하나 없게 해준다고 했단다.”
“…….”
“헨젤 너도 이런 숲속보다는 근사한 저택이, 말라비틀어진 홍당무보다는 달콤한 과자가, 내가 만들어준 어설픈 나무토막들보다는 귀족 아이들이나 갖고 놀 법한 병정 인형 같은 게 좋지 않니….”
“[그런 것들을 우리 같은 애들에게 그냥 줄 리가 없잖아요! 아버지는 우리를 판 거예요! 변명하지 말아요! 사악한 흑마법사일지, 이교도들일지, 그도 아니면 감히 상상할 수 없는 아주 나쁜 사람들일지 모를 그들의 속삭임에 넘어간 것도 사실이고, 그들이 주는 대가에 혹한 것도 사실이잖아요! 그런 사람들에게 팔려 간 우리의 끝이 좋을 리가 없는데…!]”
“설령 그 끝이 좋지 않다고 해도 잠시나마 호화스럽게 살아가는 게 더 나을 수도 있어! 이런 숲에서 굶어 죽는 비참한 삶보다는 그게 나을 수도 있다고!”
희연은 도저히 분한 감정을 주체할 수 없다는 것처럼 발을 구르고 머리를 헤집고 부산스럽게 움직였다. 그런 희연을 보면서도 남매의 아버지는 뜻을 굽히지 않았다. 진심으로 그게 더 나은 삶이라 굳게 믿는 것 같은 모습이었다.
“[…도대체, 도대체 제가 언제 그런 것들이 좋다고 했죠? 항상 말해왔잖아요! 제가 바란 게 무엇이었는지 알잖아요! 우리를 버리지 말고 함께해 달라는 것이 그리 어려운 요구였냐고요!]”
“그래! 어려웠다! 너희를 사랑하지만, 사랑하는 너희를 키우는 게 어려웠다고!”
주저앉은 남매의 아버지는 섧디섧은 아이처럼 엉엉 소리 내어 울었다.
“너희를 사랑한다. 사랑하지만 더 나은 삶을, 적어도 부족하지 않은 삶을 우리는 줄 수 없어…. 그걸 못 해, 못 해서 그나마 할 수 있는 건 이런 것들뿐이었다. 더 좋은 곳으로 보내주거나, 그도 아니면….”
숲에 버리거나.
제 머리를 끌어안고 우는 아버지란 키 작은 아이에게도 훨씬 작게 느껴지는 존재였다. 흐느낌에 떨리는 등이 왜소했다. 희연은 눈물을 똑똑 흘리다가 다시 입을 열었다.
“[거짓말.]”
“…….”
“[아버지는 지금도 제게 거짓말을 하고 있어요. 우릴 위해 그런 게 아니잖아요. 우리 때문에 가여워진 당신이 이 끝나지 않는 가난의 허덕임에서 벗어나고 싶어 우리를 판 거잖아요. 어머니의 만류에 뜻대로 되지 않아 버리는 것으로나마 타협을 본 거잖아요. 우리한테서 벗어나려고 한 거잖아요.]”
“…….”
“[왜 훌쩍이는 아버지의 주머니에서 나와 그레텔의 주머니에서나 들릴 법한 짤랑이는 소리가 들리는 거죠? 그리고 아버지.]”
희연은 몸을 낮춰 남매의 아버지가 허리춤에 매달아 놓았던 주머니를 풀어냈다. 주머니의 입구를 묶어놓은 끈을 풀고 그것을 거꾸로 뒤집었다. 짤랑짤랑. 이런 숲에서는 쓸데가 없는 돈이 흙 위를 굴러다녔다.
“[…어머니는 어디 계시나요? 왜 집이 이렇게 텅 비었죠? 온기가 느껴지지 않아요. 아버지. 당신은 이 돈을 가지고 혼자 어디로 도망가려고 한 거죠?]”
엎드려 울던 남자가 몸을 일으켰다. 거친 손이 희연의 손을 꽉 움켜쥐었다. 그는 고개를 마구 저으며 자신의 무죄를 증명하려 했다.
“헨젤, 아니다. 그런 게 아니야. 너희 엄마는 아팠단다. 너희를 버리고 온 뒤로 죄책감에 열이 났어. 그것도 아주 심하게 말이다. 약도 없고, 마땅한 해결책도 없었단다. 그래서 그녀는 일찍이 신의 품으로 돌아간 것뿐이야…!”
“…….”
“너희도, 그녀도 없는 이 집이 무서웠단다. 참으로, 참으로 무섭고 외로워 떠나려고 했을 뿐이야. 이상한 오해하지 말거라 우리 아들. 내가 너희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알지 않니.”
“[물론이죠…. 나와 그레텔을 얼마나 사랑하는지 모를 리가요. 당신께선 제 몫의 빵마저 배고플 우리의 입에 넣어주시는 다정한 분이니까요.]”
“그래, 그러니까 헨젤….”
“[그렇지만 정말 공교롭게도, 숲속에서 우린 아버지가 판 것을 받으러 온 남자를 만나고 말았어요. 그래서 제 눈에는 아버지가 그자를 피해 도망가려고 하는 것처럼 보이네요.]”
“…….”
“[그런 게 아니라면, 우리를 정말 사랑한다면… 증명해 주세요, 아버지. 그 남자에게서 받은 것을 다시 돌려주고 우리를 사랑으로 안아주세요. 어머니의 죽음이 그저 안타까운 죽음이라는 걸 보여주세요.]”
“…….”
“[그 남자에게서 받아 온 것이 무엇이든 간에 그대로 있겠죠? 당연히 그럴 거라 믿어요. 아버지는 우리를 팔아치운 값으로 무엇 하나 이 집 안에 들여온 적이 없었으니까요.]”
남자는 더 이상 눈물을 흘리지 않았다. 요목조목 따지는 영리한 제 아들을 흰 눈으로 보았다. 남자는 굴러다니는 돈을 손아귀에 우악스럽게 쥐며 속삭이듯 물었다.
“너와 그레텔의 주머니에 든 것도 이런 돈이니 헨젤?”
“[마녀의 보물이죠. 우리가 직접 쟁취해낸 우리의 목숨값이기도 하고요. 그러니 이건 오롯이 우리만을 위해 사용할 생각이에요. 그러니 이것으로 아버지의 사랑을 증명할 수는 없겠죠. 그러실 리도 없으리라 믿고요.]”
“그래… 그렇구나, 헨젤….”
그 뒤로 남매의 아버지는 한참 동안 말이 없었다. 오랜 시간 꿇어앉은 다리가 저릴 법도 한데 한 번을 움직이지 않았다.
그 모습을 보며 상냥한 그레텔은 마음이 약해졌을 것이다. 뉴비 없지가 앞으로 나서 남매의 아버지를 부축하려고 손을 뻗는 것만 봐도 예상할 수 있었다. 그러나 이후 벌어진 일에 대해서는 그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다.
희연은 헨젤의 미래를 알았다. 그는 마녀의 보물을 기반 삼아 성실하게 일해 수도에 집을 산, 나름 성공한 상인이 되었다. 이 자리에서 아버지에게 보물을 빼앗기지 않았다는 뜻이다.
이대로 가족 간의 연을 끊는 것, 그 정도가 그녀가 예상할 수 있는 가장 이상적인 결말이었다. 그러나 그런 이상적인 이야기는 악몽이라 불리기에는 알맞지 않았다. 희연은 그 점을 잊지 말았어야 했다.
“[그레텔…!]”
남매의 아버지는 자신을 부축하려 주변을 서성이던 딸을 밀었다. 넘어지며 놓친 앞치마가 펼쳐지며 그 안에 가득 들어 있던 진주를 포함한 잡다한 보석이 사방으로 떨어져 내렸다.
그것에 반사적으로 시선을 빼앗겼던 희연은 뒤늦게 그녀의 팔을 붙잡는 거친 손길을 느끼고 고개를 바로 했다. 처음 보는 아주 무서운 표정을 지은 남매의 아버지가 그녀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 뒤로 일어난 일을 설명하라고 한다면, 희연은 정신이 없었다고만 말할 것이다.
집 안으로 내던져지며 희연은 서랍장에 부딪혔다. 그 위에 있던 딱딱한 무언가가 머리 위로 떨어지며 시야가 기울어졌다.
뺨에 차가운 바닥이 닿은 뒤에야 희연은 자신이 쓰러졌다는 것을 깨달았다. 낮아진 시야로 보이는 것은 부산스레 움직이는 사람들의 다리였다. 어른의 다리와 아이의 다리.
그것만 봐도 남매의 아버지가 뉴비 없지를 집 안으로 끌고 들어오는 중이라는 걸 알 수 있었다. 버티는가 싶던 뉴비 없지는 어느 순간 맥을 못 추리더니 희연의 옆으로 똑같이 내던져졌다.
두 사람을 집 안으로 던진 남매의 아버지는 아무도 없는 숲 주변을 괜히 둘러보다 바닥에 떨어진 보석과 진주를 급하게 주워들었다. 끝까지 실망스러운 모습이었다.
기어이 돈과 보석, 진주를 모두 챙겨 든 뒤에야 남자는 집으로 들어오며 문을 닫았다. 문이 닫히기 직전, 희연은 남자의 어깨 너머로 나무 뒤에 서서 빙그레 웃고 있는 뱀눈 사내를 보았다.
“아….”
희연은 탄식을 뱉었다. 그러나 어찌 된 일인지 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그제야 희연은 무언가 이상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집 안으로 내던져지기 직전까지 그렇게 시끄러웠는데 지금은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희연은 일단 손으로 바닥을 짚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무언가 뺨을 타고 흐르는 것이 느껴졌다.
넘어질 때 어딘가 잘못 부딪혀서 그런 것이라곤 생각하지 못했다. 아프지 않았기 때문이다.
머리를 더듬은 손끝에 묻어나는 빨간 액체를 보고 난 뒤에야 희연은 자신이 착각한 것임을 알았다. 평소에 무통에 가까울 정도로 통각 수치를 내려놔 생긴 단점이었다.
이날 헨젤은 어딘가 잘못 부딪혔다. 일시적으로 귀가 들리지 않을 만큼 크게.
남매의 아버지는 피 흘리는 자식의 모습을 보며 처음에는 당황했다. 걱정도 했다. 그러나 희연은 그의 말이 들리지 않았다. 옆에서 뉴비 없지도 무어라 하는 것 같았지만 들리지 않았다.
그 뒤로 그녀가 할 수 있는 건 두 사람의 입 모양과 분위기, 돌아가는 상황을 보며 파악해 나가는 것뿐이었다.
남매의 아버지는 빌었다. 아마 두 사람을 팔아버린 것에 대한 사죄였을 것이다. 뉴비 없지는 울었다. 여덟 살의 그레텔이 할 수 있는 건 우는 것뿐이었다.
희연은 뭐라고 말했다. 입이 움직이는 건 느껴졌지만 그녀 자신의 의지가 아니었고 귀도 들리지 않았기에 뭐라고 하는 건지는 알 수 없었다. 아마도 비난이었을 것이다.
남매의 아버지는 제대로 일어나지도 못하는 희연을 붙잡아 그들 남매의 방으로 질질 끌고 갔다. 희연은 반항하지 못하고 땅에 끌리는 제 발만 보았다.
헨젤과 그레텔은 방에 갇혔다. 이어 유일하게 햇볕이 들어오던 창문에는 나무판자가 더해졌다.
방 안이 깜깜해진 뒤에야 희연은 차분하게 상황을 정리할 여유가 생겼다.
그녀는 일단 옷소매로 뺨을 타고 흐르는 피를 닦았다. 피의 출처는 귀와 이마, 그리고 뒤통수 어딘가였다. 닦아도 닦아도 계속 피가 묻어났다.
뉴비 없지가 들고 있던 앞치마로 피를 닦는 희연을 도왔다. 여전히 아픈 건 아니었기에 희연은 그에게 괜찮다고 말했다. 제 목소리가 들리지 않아 말이 잘 전달됐는지는 알 수 없었다.
대충 정리가 끝난 뒤에야 그녀는 뭐라 바쁘게 말하는 뉴비 없지를 보았고, 그에게 귀가 들리지 않는다는 사실을 전했다.
잠시 놀란 표정을 짓던 뉴비 없지는 방 안을 뒤지더니 낡은 종이를 가져와 숯으로 글을 끄적였다.
‘괜찮아요 오리 님? 안 아파요?’
“진짜로 아프지는 않아요. 통각 수치를 내려놔서…. 그나저나 뭐가 어떻게 된 건지 설명해 주실 수 있어요?”
뉴비 없지는 고개를 끄덕이며 부지런히 글을 적어나갔다.
‘그 아저씨가 이것저것 변명하기는 했는데 정리하면 간단해요. 헨젤과 그레텔을 숲속에 버리자는 말이 나오기 전에 이 집 아저씨는 남매를 팔았어요. 돈은… 도박으로 날린 것 같고요.’
정말 가지가지 했구나. 희연은 그렇게 생각했다.
‘원래는 고아원에 보낸다는 핑계를 대고 숲 밖으로 데리고 나갈 계획이었던 것 같은데 알다시피 여차여차하다가 숲속으로 버리게 된 거고요.’
“그러면 아까 제가, 그러니까 헨젤은 뭐라고 한 거예요?”
희연의 질문에 잠시 머뭇거리던 뉴비 없지가 천천히 글을 써 내려갔다. 그가 쓴 내용을 읽고 난 뒤 희연은 한숨만 내쉬었다.
‘위선자라고 욕했죠. 말하면서도 믿고 싶지 않았대요. 어머니를 죽인 것도 역시 당신이었냐고 했는데… 죽었다는 문구도 그렇고 상황으로 봐선 아마 헨젤 말이 맞을 것 같아요….’
희연은 머릿속으로 남매의 아버지가 보여주었던 이중적인 태도를 떠올렸다.
살갑게 또한 애틋하게 자식을 챙기던 모습. 그러나 숲속에 버리자는 말에 강하게 반박하지 않고, 죽은 나무에 나뭇가지를 매달아 놓던 치밀한 모습.
헨젤의 말대로였다. 그는 위선자였다. 사랑을 베풀 줄 아나 마지막엔 결국 제 안위가 가장 중요한 사람이었다.
방으로 끌려 들어가면서 희연은 집 안을 둘러볼 수 있었다. 그들 남매가 몇 번의 밤을 지새우며 숲을 헤맸는지 정확히 알 수 없었지만 그리 긴 시간은 아니었다.
그러나 그 시간 내에 헨젤과 그레텔의 집은 많은 것이 정리되어 있었다. 변변찮은 살림살이뿐이었지만 사람 냄새 나던 집이 텅 비었다.
그건 단순히 사람 몇이 빠졌다고 생겨난 변화가 아니었다. 남매의 아버지는 이 집을 일찍이 정리하고 있었다. 그는 알았던 것이다. 뱀눈 사내가 올 것을 말이다.
그러나 뱀눈 사내에게 내놓아야 할 헨젤과 그레텔은 얼결에 숲속에 버리고 말았다. 돌려줄 돈은 진즉 써먹었다. 그래서 도망가려고 한 것이고 그 과정에서 남매의 어머니는 아마도 방해였을 것이다.
남매의 어머니는 마지막 남은 식량을 나눠주고 아이들을 숲에 버릴지언정 이상한 곳에 팔아치울 생각은 전혀 없었던 사람이다.
좋은 사람은 아니었다. 좋아질 수가 없는 상황에서 오는 압박감을 저보다 약자인 존재에게 화풀이하는 이를 좋은 사람이라고 말하긴 어려웠다.
그렇다고 해서 방 밖에 있을 남자에게 살해당해도 마땅하다는 건 아니었다. 어찌 보면 동화에서 좋아하는 권선징악이라고 볼 수 있었지만, 그런 건 상대가 행복의 길을 가로막는 아주 대단한 악당일 때나 해당하는 거였다.
남매의 어머니는 좋은 사람이 아닐지언정 대단한 악당도 아니었다. 그럼에도 남매의 어머니는 죽었다. 동화에서 아무 설명 없이 그 한 줄로 끝난 사람이 대단한 악당일 리가 없었다.
악당이 아닌 그녀는 결국 알아냈던 것일까? 제 남편이 저지른 죄를 말이다. 뒤늦게 사실을 알게 되고 언성이 오가다 변을 당했던 걸지도 몰랐다.
희연은 여전히 질척하게 피가 묻어나는 귀를 한 번 꾹 눌렀다 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여기서부터는 그녀도 뉴비 없지도 모르는 이야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