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9화
원작의 동화는 끝났고 이제부턴 오로지 이 세계의 헨젤과 그레텔의 삶이었다. 온갖 근심 걱정 없고 더할 나위 없이 행복하게 살 기회는 이미 사라졌다.
그레텔의 악몽은 마녀를 물리친 것으로는 끝나지 않았다.
흠칫 고개를 든 뉴비 없지가 나무 장난감 하나를 손에 쥐는 것을 본 희연은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잠겼던 문이 열리며 남매의 아버지가 어색한 웃음을 짓고 방 안으로 들어왔다.
그의 손에는 따뜻하게 데운 우유와 빵이 한가득 담긴 바구니가 들려 있었다. 창문을 막아놓은 판자 사이로는 환한 빛이 어른거렸다. 어느새 낮이 된 것이다.
바꿔 말하면 남매의 아버지는 간신히 집으로 돌아온 아이들을 하루가 지나도록 가둬두었다는 말이기도 했다. 어쩌면 하루가 아니었을지도 모른다.
빵 바구니를 바닥에 내려놓고 데운 우유는 뉴비 없지의 손에 쥐여 준 그는 울먹이는 얼굴로 희연의 두 손을 잡았다. 고개를 숙이며 흐느끼는 그의 등이 떨렸다. 희연은 그 모습을 보며 생각했다.
이 빵은 어디서 사 온 것일까? 우유는?
이 집안에는 이런 게 없었다. 없어서 헨젤과 그레텔은 팔리고 버려졌다. 그들을 이 방안에 가두고 최소 하루가 지날 동안 남자는 무엇을 했을까. 뻔했다.
“마을에 갔다 온 거죠?”
희연의 물음에 남자의 등이 움찔거렸다. 그 모습에 그녀는 삐딱한 감정이 그득 담긴 헛웃음을 흘렸다.
마을에 간 남자가 무슨 이야기를 듣고 돌아왔을지 예상 가능했다. 부활한 법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을 것이다. 열다섯 미만인 아이들을 보호한다는 대륙법 말이다. 헨젤은 아니지만 그레텔은 이에 해당했다.
혹여나 나중에라도 자신의 잘못이 들킬 것을 걱정한 남자는 헐레벌떡 마을에서 이곳까지 뛰어왔을 것이다. 아이들을 살살 달랠 부드러운 흰 빵, 고소한 우유 같은 것들을 사 들고 말이다.
그녀도 알아차린 사실을 영리한 헨젤이 몰랐을 리 없었다.
희연은 거칠게 손을 빼냈다. 헨젤의 의지였다. 달래고 어르며 회유하려 했던 남매의 아버지는 헨젤의 거부를 잘 알아먹었다.
초조해진 마음 때문이었는지, 눈치를 보는 듯하던 남자가 다시 가증스러운 다정함을 갖다 버렸다. 그러나 이번엔 헨젤이 이를 가만히 당하고만 있지 않았다.
다툼이 오고 갔다. 온 힘을 다해 부딪히는 희연 탓에 남매의 아버지는 넘어졌다. 마을과 이곳을 오고 가며 체력을 크게 소모한 탓인 듯했다.
희연은 비틀거리면서도 뉴비 없지의 붙잡은 손을 끝까지 놓치지 않았다. 그 또한 헨젤의 의지였다.
열려 있는 방문을 통과한 그들을 스치고 지나간 의자 하나가 출입문에 부딪히며 나무 파편을 흩뿌렸다. 부서지는 의자가 주는 위협에 희연의 몸은 움찔거렸다.
두 사람은 집안을 빙 둘러 부엌을 향해 달렸다. 어쩔 수 없었다. 그새 자리에서 일어난 남자가 출입문 쪽으로 의자를 던진 것도 모자라 어느새 성큼, 바로 뒤에 도달해 있었기 때문이다.
먼지 쌓인 부엌 안으로 들어가 헤매던 희연의 눈에 문득, 이 집에서 가장 날카로운 것이 들어왔다. 비록 손잡이는 낡았을지언정 그 날은 결코 무시 못 하게 형형한 물건이었다.
뉴비 없지를 따라 희연이 부수는 것을 시도해 보았으나 결코 금 하나 가지 않았던 그 칼이었다. 부엌에 있는 수많은 물건 중 하필이면 왜 그게 눈에 띄었을까. 부엌칼은 그렇게 눈에 띄는 위치에 있지는 않았다.
성큼, 희연의 발은 그녀의 의지와 상관없이 그 칼을 향해 움직였다.
거기서 끝. 희연과 뉴비 없지는 눈앞이 새까매지는 것을 느꼈다. 그들이 다시 눈을 떴을 때는 하늘에서 새빨간 불티와 회색의 재가 흩날렸다.
희연은 뺨이 차가운 것을 느꼈다. 물기 어린 풀이 뺨에 닿고 있었다. 비틀거리며 자리에서 일어난 그녀는 바로 옆에 강을 보았고 그곳에 비친 모습을 보며 놀란 마음을 감추지 못했다.
물에 비친 아이의 눈매가 선했다. 그녀의 눈이 아니었다. 과자의 집에 들어서기 전에 보았던 청년 헨젤을 빼닮은 얼굴이었다.
원래도 기억에 따라 몸의 주도권을 빼앗겼지만 지금의 상황은 조금 달랐다. 마치 그녀가 헨젤의 몸속으로 들어온 것 같은 감각이 생소했다.
“헨젤….”
헨젤의 고개가 돌아갔다. 그에 따라 희연의 시선 역시 자연스럽게 그를 따라 움직였다. 그을음으로 얼룩덜룩해진 얼굴의 여자아이가 두려움 가득한 눈으로 헨젤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 여자아이가 바로 희연이 그리도 찾아 헤맸던 이 악몽의 주인, 그레텔이었다.
그레텔은 상냥함과 유약함으로 빚어진 것 같은 아이였다. 그런 아이의 얼굴에는 두려움이 가득했다. 제 오빠와 같은 색의 눈은 연신 상대의 얼굴과 옷차림새를 바라보기 바빴고 작은 아이의 고사리손은 덜덜 떨렸다.
헨젤은 그레텔의 시선에 천천히 고개를 숙였다.
아.
희연은 속으로 탄식을 뱉었다. 헨젤의 옷은 붉은색으로 얼룩덜룩했다. 그 자신이 흘린 피는 아니었다. 옷소매에 묻은 그의 피는 이미 오래된 것처럼 그 색이 짙게 변했기 때문이다.
마른 시기가 다른 핏자국. 불에 타는 집. 물가로 도망 온 두 아이. 그 이상의 설명은 필요하지 않았다.
헨젤은 그레텔을 꼭 껴안았다. 그는 울었지만 웃었다. 울며 웃으며 제 동생에게 고백했고, 자신의 죄를 부정했고, 자신이 정당했음을 변명했다.
“이제 됐어, 이제 됐어 그레텔…. 우리는 살았어. 네가 나를 마녀로부터 살렸듯, 나 또한 너를 살린 거야….”
동생을 마녀에게 밀어 넣으며, 아버지로부터 동생을 구해내며 얻은 모든 죄를 헨젤은 그렇게 변명했다.
***
헨젤은 동생 그레텔을 데리고 숲을 떠났다. 수도 딜라일로 갔다. 그는 뱀눈 사내에게서 들은 대륙법을 잘 이용하였다. 여덟 살 그레텔을 앞세우면 섣불리 그들에게 사기를 치거나 불합리한 일을 시키려는 이들이 없었다.
헨젤의 주머니에서 나온 보석과 진주는 제값을 받을 수 있었고, 나라에선 남매를 위한 임시 거주지를 주었다. 풍족하진 않지만 세 끼 먹을 식사도 매일 제공되었고 간단한 교육도 받을 수 있었다.
특히나 교육에 있어 지식의 나라 시드론은 매우 관대했다. 신분의 고하를 막론하고 모두가 지식을 얻을 수 있었다. 영리한 헨젤은 빠르게 수도 생활에 적응해갔다.
반면 그레텔은 말을 잃었다. 헨젤과 대화하기를 거부했다. 헨젤은 그런 그레텔을 보며 두려워했다.
어느 날, 그레텔이 내가 아버지를 죽였다고 고하면 어떻게 되는 거지?
헨젤의 두려움은 숲속에 버려지리라는 것을 알게 된 직후의 것과도 닮아 있었다. 그나마 찾아온 안정 속 즐거움이 끝났다. 헨젤은 꿈에서 벗어난 기분으로 현실을 보았다.
숲속에서는 충족하지 못한 지식의 갈망? 그것도 이렇게 당당히 한낮의 태양 아래 서 있을 수 있을 때나 즐길 수 있는 거였다.
그레텔을 설득시켜야 한다. 그레텔을 납득시켜야 한다. 그를 위해 필요한 것은 아주, 정말로 아주 안전한 곳이다.
그래서 헨젤은 돈을 벌기로 했다. 수중의 돈을 이용해 상인의 일에 끼어들었다. 그는 셈이 빨랐고 일머리도 있었다. 상인으로서의 헨젤은 나름 성공했다. 그는 수도 외곽에 집을 샀다.
어엿하게 돈을 벌고 집을 마련한 헨젤은 남들 보기에도 문제없는 그레텔의 보호자가 되었고, 나라의 관리는 그들 남매에 대한 관심을 서서히 꺼트렸다.
헨젤은 열심히 살았다. 공주님처럼은 아니어도 그레텔에게 남부럽지는 않은 제법 풍족한 환경을 제공했다. 살아남았기에 이루어낸 결과물이 그는 애틋했다.
더할 나위 없이 행복하다고 남들에게 말할 수 있을 법한 삶이었다. 그러나 나날이 그레텔은 메말라갔다. 그녀는 매일 밤 꿈을 꾸었다. 악몽이었다.
그레텔은 어느 날, 헨젤에게 말했다. 그날은 헨젤의 기분이 아주 좋은 날이었다. 악몽에 취한 소녀와 취기에 비틀거리는 청년의 대화는 끝이 좋지 못했다.
“나, 나, 이대로는 못 살겠어….”
“무슨 말을 하는 거니 그레텔. 또 악몽을 꿨나 본데, 오늘은 내가 조금 피곤해. 미안하지만 오늘은….”
“그런 게 아니야…!”
희게 질린 그레텔은 거칠게 숨을 몰아쉬며 헨젤의 팔을 붙잡았다. 제 이야기를 들으라 주장하는 그녀의 모습은 헨젤을 두려움에 떨게 했다. 이런 날의 그레텔은 언제나 헨젤이 무서워하는 이야기를 했기 때문이다.
“우리는, 벌을 받아야 해…. 아빠, 아빠가 꿈에서 매일 말해. 너무 뜨겁다고 말해, 살려달라고….”
“그레텔.”
“나, 나도 같이 잘못한 거라고 말할 게 헨젤. 그날 나도 잘못한 거라고 말할게. 너 혼자 벌을 받지 않게 할게. 그러니까 헨젤, 우리 잘못을 빌러 가자. 제발….”
그레텔은 누군가 그들에게 벌을 주기를 바랐다. 헨젤은 그레텔을 이해했다. 상냥한 동생을 알아서였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이제 와 뒤늦은 벌을 받고 싶다는 것은 아니었다.
그날 헨젤은 정말로 기분이 좋았다. 그래서 그 좋은 기분을 두려움으로 뒤바꾼 그레텔이 원망스러웠다. 똑같은 짓을 저질러 놓고 여전히도 상냥하고 유약한 동생이 그는 미웠다.
“나 혼자 벌을 받지 않게 하겠다고 하다니. 너도 참 못됐구나.”
“…무슨 말을 하는 거야 헨젤?”
“애초에 너는 내 죄에 대한 벌을 함께 받지 못해. 내 죄보다도 네 죄가 먼저잖아. 벌을 받는다면 네가 먼저겠지. 내가 아버지에게 한 짓과 네가 마녀에게 한 짓이 뭐가 다르지?”
다르다는 것 정도는 헨젤도 알고 있었다. 그러나 헨젤은 그 사실을 알면서도 같은 두려움은 되어야 그레텔의 입을 막을 수 있으리라고 믿었다.
“그건….”
“아버지는 우리를 팔았어. 어머니는 우리를 버렸지. 너는 마녀를 죽였고, 나는 아버지를 죽였어. 우리 가족은 모두 똑같은 거야 그레텔. 모두 다 나빴고 못된 사람들인 거지.”
“…….”
“너도 알잖니, 그레텔. 우리 가족에게 일어났던 모든 상황에서 더 나은 사람이 되는 법을 택하는 사람들도 있다는 것을 말이야. 그리고 우리는 아니지. 아닌데, 너도 나랑 같으면서 왜 나만 나쁜 사람으로 만들어.”
헨젤은 믿었다. 그레텔이 더 이상 이 일을 이야기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이다. 그러나 모두가 제 안위가 먼저였던 가족 내에서 유일하게 진심으로 남이 먼저였던 그레텔은 헨젤과는 정말 다른 사람이었다.
“…맞아, 네 말이 다 맞아 헨젤. 나도 나쁜 사람이야. 난 그 점을 인정해. 그날 분명, 마녀를 죽이지 않는 방법도 있었어. 그렇지만 내가 마녀를 죽였어. 나도 벌을 받을 거야.”
“…….”
“더 나은 사람이 될 수 있는데, 그러지 않는 게 더 나쁜 거잖아. 내가 먼저 벌을 받을게. 그러니까 헨젤….”
헨젤은 여전히 두려운 것이 많았다. 조금 더 나은 사람이 되고자 그 두려움을 현실로 만들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그는 상냥한 그레텔을 방에 가두기로 결정 내렸다. 그 옛날 그들의 아버지가 남매를 방에 가둔 것처럼.
“꺼내 줘 헨젤! 헨젤!”
그레텔은 매일 문을 두들기며 하나밖에 남지 않은 제 가족을 불렀다. 헨젤은 외면했다.
사고가 일어난 것은 우연이었다.
그레텔이 죽었다.
헨젤은 그레텔에게 음식을 주기 위해 문을 열었다. 그레텔은 그 틈을 놓치지 않고, 예전에 헨젤이 그랬던 것처럼 그를 밀어내며 달아나려 했다.
그레텔의 방은 2층이었고, 오랫동안 갇혀 있느라 힘이 없었던 그레텔은 그만 계단에서 넘어지고 말았다. 시끄러운 소리를 내며 그레텔이 계단 아래로 굴렀다. 동그란 머리가 어딘가에 부딪히며 둔탁한 소리를 냈다.
아버지로 인해 다쳤던 헨젤의 상처는 회복하기 어렵지 않았다. 그러나 그레텔이 입은 상처는 회복할 수가 없는 종류였다.
헨젤은 허무하다면 허무하게도 자신의 죄책감이자 책임감이며 유일한 가족이었던 그레텔을 그렇게 떠나보냈다.
“…그레텔.”
그는 이런 것을 바라지 않았다.
첫날 헨젤은 그레텔을 붙잡고 울었다. 둘째 날은 멍하니 있었다. 셋째 날은 배가 고파 그레텔의 몫으로 접시에 올려두었던 퍼석한 빵을 씹었다. 넷째 날은 잠이 왔다. 다섯째 날에는 생각했다.
그레텔은 열다섯 생일을 맞이하지 못했다. 그레텔은 혼자 계단에서 넘어진 것이지만, 그것이 정말로 그녀 혼자만의 일이 아니었다는 것을 헨젤은 알았다.
모두가 그를 범인으로 지목할 것이 분명했다. 그레텔은 어리다. 잘도 이용해 먹었던 빌어먹을 대륙법이 그의 목에 줄을 거는 것 같았다. 직접적인 그녀의 죽음에 일조하지 않았다고 해도 벌을 받을 가능성이 있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헨젤의 죄책감은 옅어졌다. 헨젤은 영리했다. 자신의 잘못이 아니라 합리화하는 것도 빨랐다.
왜 이렇게 되어버린 것인가 생각하던 헨젤은 이제 어떻게 해야 하는가를 생각했다. 그는 어린 시절 받았던 배지를 떠올렸다. 큰 도움을 주겠다고 말하던 그들 남매를 샀던 것으로 추정되는 뱀눈의 사내를 찾아야 한다는 결론을 내렸다.
헨젤은 그 길로 바로 딜라일의 뒷골목, 빈민가를 찾았다. 인적 드문 그곳에서 간신히 찾아낸 검은 천막의 상인에게 배지를 넘겼다. 상인은 배지를 확인하곤 헨젤에게 돌려주며 집에서 기다리라는 말을 했다.
뱀눈 사내가 알려주지도 않은 그의 집에 나타났을 때, 헨젤은 조금도 놀라지 않았다. 온기 없는 동물을 닮은 눈이 그레텔에게 향할 때도 개의치 않았다.
“역시 너를 살려주길 정말 잘한 것 같다 꼬마야. 너는 정말 재미있는 아이야.”
“…….”
“그래, 내가 약속을 했었지. 크게 도와준다고. 그러고 보니 내 소개도 하지 않았구나.”
뱀눈 사내는 그레텔을 안아 들며 노래하듯 말했다. 그런 그의 목에는 이전에는 보지 못했던 얇은 관악기가 걸려 있었다. 헨젤의 시선을 느끼며 뱀눈 사내가 말을 이었다.
“내 이름은 파이퍼. 누군가는 나를 피리 부는 남자라고도 부르지. 내가 지나간 자리엔 쥐와 아이가 없단다. 너는 아이가 아니구나 헨젤. 그래서 너는 여기 남고, 그레텔은 그러지 못하는 거야.”
“…….”
“이 엉망진창인 세상에서 어른이 된 것을 축하한다.”
뱀눈 사내 파이퍼는 그렇게 떠났다. 헨젤은 그가 떠난 지 얼마 안 되어 관청에 그레텔에 대한 실종 신고를 넣었다. 어린 동생이 없어진 헨젤을 모두가 가엽게 보았다.
나날이 얼굴에 살이 내리는 그를, 동생을 찾는답시고 일을 쉬는 그를, 매일 밤 몸에 맞지도 않는 술을 마시는 헨젤을 그 누구도 의심하지 않았다.
나라에서 의무적으로 그레텔을 찾아주는 것도 그 애 나이가 열다섯이 지나지 않기 전까지만이었다. 곧 그 기간이 끝났다. 마지막 기회라는 것처럼 딜라일은 자유 도시 에빌론에 헨젤의 민원을 전달했다.
불시착한 이방인들. 헨젤은 그들이라는 고난만 넘기면 되었다.
그러면 정말로 끝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