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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비세스 메이커 (144)화 (144/251)

144화

『개인 정보를 소중히!』

희연이 악령이에게 약속을 한 그날 이후부터 악령이의 행동 방식은 조금 달라졌다.

작은 인형은 희연에게서 최대한 떨어지지 않으려 했다. 전처럼 온실에서 폴짝폴짝 뛰어다니지도 않았고 좋아하는 달달한 것들을 먹을 때도 꾸역꾸역 희연의 다리 위에 앉아서 먹으려 했다. 일정 거리 이상 멀어지는 것을 거부했다.

그 모습은 꼭 애정을 갈구하는 것 같기도 하고 살려달라 비는 것처럼 보이기도 하는 모습이라 희연은 그 어리광을 모두 받아줄 수밖에 없었다.

때때로 악령이는 자신의 행동이 상대에게 있어 귀찮은 일은 아닌가 확인하듯 희연을 돌아봤다. 그럴 때마다 희연이 해줄 수 있는 건 그저 웃고, 머리나 쓰다듬어 주는 것밖에 없었다.

그러다 가끔은 작은 인형을 손에 올리고 얼굴을 가까이해 속삭이듯 약속을 되뇌었다. 결코 너를 허무하게 보내지 않으리라고 말이다.

그럴 때면 악령이는 몇 번이나 들은 그 말에 안도하듯 꼬물거리며 희연의 품속에 파고들었다.

몇 번이나 되뇐 그녀의 약속이 효과가 있었던 것인지, 악령이가 우울한 마음을 털어내고 그전처럼 돌아오기까지는 그리 긴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충격이 컸던 만큼 우울함이 오래갈 것이라 여긴 희연의 예상보다 빨랐다.

그러나 희연은 그 이후에도 계속 걱정했다. 겉으로 보기엔 괜찮아 보이지만 사실은 슬픔을 꾹 참고 있는 게 아닌가 하고 말이다.

악령이가 정말로 괜찮아졌고 슬픔에서 벗어났음을 희연이 깨닫기까지는 오래 걸리지 않았다.

일단, 새를 잡아 와 희연의 앞에 대령한 것부터가 슬픔을 훌훌 털어냈다는 걸 증명했다.

“내가 잡아 왔어!”

“…그러네.”

그레텔의 악몽 속에서 힘을 회복한 듯 날아다니는 게 가능해진 넬과 달리 악령이는 원래부터 날 수는 있었지만 인형의 몸을 입은 상태에서는 그것이 불가능했다.

그런데 날지 못하는 악령이가 새를 잡아 온 것이다. 그건 제법 놀라운 일이기는 했다. 잡아 온 새가 날카로운 발톱을 가진 맹금류라는 점에서 더더욱 그랬다.

새가 맹금류라는 걸 알게 된 희연은 떨떠름함을 뒤로 하고 순순히 감탄했다. 그런 희연의 반응에 악령이는 더더욱 의기양양한 모습을 보여주었다.

“그래도 위험하니까 놔주자.”

부두 인형도 엄연히 천으로 만들어진 인형이니 맹금류의 발톱에 찢길 위험이 있었다.

“그치만 이 새 안 날아가는데?”

“?”

다친 새였나?

희연은 조심조심 악령이로부터 새를 건네받았다. 맹금류치곤 크기도 큰 편이 아닌 새는 신기할 정도로 얌전히 그녀의 팔 위로 올라와 자리를 잡았다.

조심히 새를 살펴봤지만 다친 흔적은 보이지 않았다. 대신 새의 목에 제법 깜찍한 붉은 가방이 메어 있는 걸 발견할 수 있었다. 보아하니 야생에서 살다 우연찮게 길드 성으로 흘러들어온 게 아닌 누군가 키우는 새인 듯했다.

“닉 님이 키우는 앤가?”

늑대와 드래곤도 키우는 닉이니 맹금류를 키운다고 해서 이상할 것도 없었다. 산책이라도 하다 길을 잃은 건가 생각하며 희연은 팔 위에 새를 얹은 채 조심조심 걸었다.

킹스메이커를 찾아 그녀의 공방 쪽으로 향하던 중이었기에 현재 희연은 길드 성의 복도에 서 있었다. 닉은 언제나 온실 쪽에 상시 거주 중이었으므로 그를 찾으려면 그곳으로 가야 했다.

발걸음을 돌려 온실로 향하던 중 그녀는 열린 창문 하나를 발견했다. 딱 새 같은 동물들이 오고 가기 좋을 정도의 틈이었다.

“여기로 들어온 것 같긴 한데….”

창문이 열려 있다고 해서 망설이지 않고 바로 들어왔다는 점에서 그녀의 팔 위에 자리 잡은 새가 닉의 것이라는 확신에 점점 추가 기울어졌다.

“순하네.”

주인의 성정을 닮은 것인지 새는 얌전했다. 애초에 악령이에게 잡혀 왔을 때부터 가만있던 것을 보면 진즉 알 수 있는 사실이었다. 악령이는 새가 신기한지 연신 그 주변을 알짱거렸다.

희연은 온실 앞에 도착하자마자 머뭇거림 없이 곧바로 문을 열었다. 아무래도 닉의 동물이라 온실이 익숙한지 새는 자연환경과 비슷한 온실의 광경에도 날아가거나 하지 않았다. 희연은 정말 순한 새구나, 게다가 똑똑하기까지 하구나, 생각하며 닉을 찾아 주변을 둘러보았다.

“어?”

그러나 온실에 있던 것은 닉이 아닌 아주 오랜만에 보는 것 같은 청산가리였다. 마지막 만남이 제법 강렬했던지라 평온하게 머핀을 포크로 들쑤시는 모습이 낯설었다.

가면도, 챙 넓은 검은 모자도, 피가 묻었던 복장도 아닌 새까만 정장을 입은 모습은 첫 만남의 모습과도 같았다.

으깨놓은 머핀 위에 포크를 꽂으며 청산가리는 고개를 들었다. 희연이 온실 쪽으로 오는 걸 알고 있었는지 그녀의 반응은 심심했다.

“오랜만이네요. 팔 위에 새는 뭐예요?”

“어… 닉 님의 새 같은데, 복도에서 날고 있길래 같이 왔어요.”

“길마님 새요? 아닐 텐데.”

“?”

청산가리는 자리에서 일어나 희연의 앞으로 성큼성큼 다가오더니 맥 빠지는 웃음을 흘렸다.

“우편 받아줘야죠.”

“우편이요?”

청산가리의 눈짓을 따라 새가 멘 붉은 가방을 보면서도 희연은 어리둥절한 표정만 지었다. 그런 희연의 반응에 설명해 주려는 듯 청산가리는 입을 뗐지만 말이 이어지지는 않았다. 대신 그녀는 손을 들어 허공을 두들겼다.

“킹 올 거예요.”

“…?”

“설명해 주려고 했는데, 생각해 보니까 지금 이 성엔 저 말고도 설명해 줄 사람이 많더라고요. 솔직히 줄줄이 설명하는 거 귀찮잖아요. 할 수 있으면 미뤄야지.”

참 솔직한 대답에 희연은 할 말을 잃었다. 그래도 완전히 방치할 생각은 없는지 청산가리는 희연의 팔에 올려져 있던 새를 데리고 가 테이블 위에 앉혔다.

새가 청산가리가 으깨 놓은 머핀을 쪼아먹는 사이 킹스메이커가 온실에 도착했다. 그녀는 머핀 먹는 새를 구경하는 두 사람의 모습을 보곤 빠르게 상황을 파악했다.

“아, 보상이 이제 왔나 보네요.”

“보상이요?”

“저번에 몬스터 웨이브 있었잖아요. 그거 보상이요. 우편은 새가 가져다주거든요. 그래서 창가를 잘 보라고 하는 거고요.”

웨이브 보상에 대한 설명을 들을 때 창가를 잘 보라는 권유의 메시지를 받긴 했었다. 잠시 며칠 전에 있었던 일을 떠올려보던 희연은 놀란 표정을 지으며 입을 열었다.

“그러면 얘는 닉 님이 키우는 애가 아니네요?”

“길마님이 새를 키우기는 하는데, 그쪽이 아니라 저쪽이에요.”

킹스메이커가 가리키는 방향에 있는 것은 잘 자란 나무였다. 뭐가 있는 건가 싶어 그쪽을 자세히 살피던 희연은 나뭇가지 사이로 머리를 빼꼼 내민 조그마한 새 한 마리를 발견할 수 있었다.

목에 예쁘게 리본까지 맨 새는 관리가 잘 된 티가 났다. 통통하게 보일 정도로 부푼 깃털이 귀여운 새였다.

“작네요….”

배부르게 먹을 거 다 먹고 쉬고 있는 우편 배달부 새보다도 더 작아 옮길 수 있는 거라곤 가벼운 나뭇잎밖에 없을 것 같았다.

“길마님 취향이에요. 귀엽고 예쁜 것들 좋아하거든요. 그리고 좀 목가적인 것들도요.”

“…늑대나 드래곤은 귀엽고 예쁜 건 아니지 않아요?”

“귀여움의 스펙트럼이 넓은 편인 사람이죠, 우리 길마님은.”

“그래요…?”

닉의 취향은 중요한 사안이 아니었기에 희연은 대충 고개를 끄덕인 뒤 그 이야기에 대해서는 마무리 지었다. 대신, 그녀는 지난 웨이브의 보상을 갖고 온 새에게 관심을 보였다.

가방 안에 뭐가 있을까 궁금해 연신 손을 꼼지락거렸지만 희연은 섣불리 새에게 손을 대진 못했다. 그런 그녀의 모습에 킹스메이커가 의아하다는 반응을 보였다.

“오리 님?”

“그게… 물릴 것 같아서요.”

“안 물어요, 안 물어. 물면 그건 버그죠.”

게임사 측에서 보낸 우편이니만큼 물면 버그라는 주장에 힘입어 희연은 조심조심 새가 목에 멘 가방을 벗겨 내려 했다. 그런 희연의 행동에 멀뚱멀뚱 서 있던 새가 뒤늦게 가방끈을 입에 물어 잡아챘다.

“?”

“오리 님, 가방째로 가져가는 게 아니라 가방 열어서 그 안에 내용물만 받는 거예요.”

“아….”

약간의 해프닝이 있었지만 희연은 무사히 보상을 받아낼 수 있었다. 새가 매고 있는 가방을 열자 우편 수령함 창이 나타났다. 기여도 순위가 그리 높지 않았던 만큼 보상에 있어서 희연은 큰 기대를 하지 않았다.

그러나 웨이브 자체가 워낙 큰 이벤트였기에 낮은 순위였음에도 불구하고 희연이 받은 보상은 제법 쏠쏠했다.

“5만 골드나 줬어요!”

“우와. 정말 대단하다.”

“어… 그리고 동전이랑, 동전이랑… 동전?”

“각각 PVP 콘텐츠, 보스 던전 레이드, 일일 퀘스트 코인이네요. 모아서 아이템 교환할 수 있으니까 잘 챙겨둬요.”

각각 검붉은 색, 은색, 연두색으로 빛나는 동전을 잘 챙긴 뒤 희연은 남은 우편을 수령했다.

“그리고 무기 교환권이랑, 초보자를 위한 스타터 패키지요.”

“어.”

희연의 옆에서 간결한 설명을 해주던 킹스메이커로부터 다른 반응이 튀어나왔다. 그녀는 희연의 손에 들린 요란 번쩍한 선물 상자를 보고는 서둘러 손을 들었다.

“오리 님 잠깐만요. 우편 수령함 다시 봐요.”

“아….”

“새가 맨 가방 건들면 떠요.”

희연은 킹스메이커가 시키는 대로 했다.

“거기서 스타터 패키지 수령한 우편 있죠? 그거 읽어봐요.”

“‘메르헨 호라이즌의 신비롭고 아름다운 세상을 모험하는 여러분께 드리는 운영자의 선물! 언제나 즐거운…’”

“발신인은요?”

“발신인이요? 그거야 운영자… 가 아니네…?”

발신자는 ‘운영ㅈr’였다. 혼란스러워하는 희연을 보며 킹스메이커는 에휴, 한숨을 내쉬었다.

“아까 읽다 만 내용 있죠? 마지막 추신 부분 읽어봐요.”

“…‘이름을 말할 수 없는 그분께서 보낸 선물입니다.’”

와….

희연은 속으로 감탄을 흘렸다. 이젠 하다 하다 이런 방법까지 써먹는구나 싶었다. 심지어 추신에는 이런 말도 쓰여 있었다.

‘귀여운 뉴비가 내 선물을 안 받아 준다? 좋은 말로 해도 거래 창을 안 연다? 걱정하지 마세요! 그럴 때 바로 저 운영ㅈr가 있습니다. 레어닉의 힘을 보여주겠습니다. 문의는 우편으로! 신속 정확 배달해 드립니다. ^^7 충성충성! ^^7’

“진짜 별걸 다 하네….”

희연의 반응에 킹스메이커는 재빠르게 맞장구쳤다.

“그러게 말이에요! 하, 정말! 포기할 줄도 알아야지 구질구질하게…!”

희연은 눈앞에 있는 사람이 그 별걸 다 하는 운영ㅈr의 vvip 고객임을 몰랐다. 초보자를 위한 스타터 패키지라는 걸 처음 만든 사람이 그녀라는 것 역시도 말이다.

진실을 모르는 희연은 이름 없는 그분의 집착이 이쯤 되니 단순 장난이 아니구나 하는 생각을 하면서도 킹스메이커 정도면 양호했던 건가 하는 착각을 했다.

결국 남는 것 하나 없이 남 돕는 놀이일 뿐인데 왜 이리 진심으로 구는 걸지 그녀로서는 알 수 없는 노릇이었다.

“비싼 건가…?”

안 그래도 끝내 거절 못 하고 써먹게 된 스킬북 때문에 신경 쓰였는데 또다시 은근슬쩍 선물을 받았다. 이번만은 꼭 거절해야겠다 생각하며 희연은 킹스메이커에게 물었다.

“이거 반송은 어떻게 해요?”

“반송은 따로 없고, 새한테 우편을 부치면 돼요. 지금 말고요. 우편 보내기는 마을에서 할 수 있어요.”

이어지는 말에 새의 가방을 열고 어떻게 상자를 집어넣나 고민하던 희연은 손을 뗐다.

그런 희연과 킹스메이커를 멀뚱멀뚱 구경하던 청산가리가 입을 열었다.

“그런데 그 스타터 패키지, 원래 킹이….”

“초코 님 쉿! 쉿!”

“이제 와서 비밀인 게 의미가 있나?”

“그래도 쉿!”

“그러던가요.”

두 사람의 대화에 희연은 저게 무슨 말인가 싶어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런 그녀의 관심을 돌릴 겸 킹스메이커는 잽싸게 대화 주제를 바꿔 버렸다.

“맞다, 맞다! 중요한 건 그런 어수선한 선물 상자 같은 게 아니에요, 오리 님!”

“안 중요하진 않은데요….”

“혹시 내일모레 시간 돼요?”

“내일모레요?”

희연에게 넘치는 것이 있다면 그건 바로 시간이었다. 그리고 그녀는 그 시간을 게임에 썼다. 킹스메이커가 시간 내라는 듯 말하는 이유는 게임에 들어오라는 뜻일 것임으로 희연은 망설임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저 내일모레도 계속 게임 할 거예요.”

“그래요? 잘 됐다!”

뭘 말하려고 그러는 걸까, 희연이 킹스메이커의 입에서 나올 말을 기다리는 사이 먹을 것 다 얻어먹은 우편 배달부 새는 깃털 하나를 남기고 자리를 떠났다.

킹스메이커는 한참을 인벤토리를 뒤지는 듯하더니 꽃과 레이스, 금박으로 장식된 화려한 편지 한 장을 꺼냈다.

“오리 님, 자미엘 것 말고는 지금 당장 해야 하는 퀘스트 없죠?”

“아뇨, 있어요.”

“네?”

희연의 대답이 아주 의외라는 듯 킹스메이커는 초록색 눈을 동그랗게 떴다. 안 그래도 그 때문에 킹스메이커를 찾아가려 했던 희연은 잘됐다는 듯 먼저 이야기를 꺼냈다.

“저번에 요정 왕국에 갔을 때 요정 왕이 그랬잖아요. 시드론의 왕을 만나라고. 혹시 제가 시드론의 왕을 만날 방법이 있을까요?”

포크를 손안에서 빙글빙글 돌리고 있던 청산가리가 희연의 물음에 대한 답을 먼저 들려주었다.

“당연히 없죠. 눈오리 님 레벨, 명성, 위치로는 네임드 NPC는 못 만나요. 헬르벨이었나? 그런 종류의 특수 퀘스트 NPC라면 모를까, 안돼요.”

“역시 그렇겠죠…?”

그러면 역시 일단은 레벨부터 올려야 하는 걸까.

어쩔 수 없는 실망감에 축 처지는 희연의 어깨 위로 킹스메이커의 손이 올라왔다. 그녀가 들고 있는 편지에선 달콤한 냄새가 나서 희연의 시선은 절로 그쪽으로 돌아갔다.

“만나게 해줄게요!”

“네?”

“시드론의 왕 만날 수 있어요, 오리 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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