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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비세스 메이커 (146)화 (146/251)

146화

***

버스 닉과 루로의 도움으로 딜라일로 이동하기로 한 것은 옳은 결정이었다.

희연은 하늘길을 통해 이동하는 내내 바짝 긴장했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지만 가장 큰 이유는 에빌론 주위에서 보던 몬스터와는 달리 딜라일로 가는 여정에 즐비한 몬스터의 최소 레벨이 150이었기 때문이다.

마할라틴 숲의 몬스터들 역시 낮은 레벨은 아니었지만 길드 성 인근의 것들은 모두 희연이 처리 가능할 정도의 레벨이었다. 이곳과 달리 말이다.

게다가 밤에 봐서 그런지 몬스터는 모두 하나같이 눈이 시뻘게져 지나가는 사람 누구 하나 없나 하며 입맛을 다시고 있었다.

희연의 입장에선 슬라임 역시도 선공몹이었었다. 그러나 진정한 선공몹이란 그들 밑에서 어슬렁거리고 있는 저런 것들이었다.

시뻘게진 눈의 몬스터들은 정말로 눈에 뵈는 게 없는 건지 루로가 그들 머리 위를 지나갈 때면 하나같이 고개를 치켜들었다. 그것도 모자라 드래곤에게 울부짖으며 도발 스킬까지 걸었다.

희연은 가소로운 도발에 화가 난 루로가 몸체를 뒤집으며 낙하하는 것은 아닌가 조마조마해하며 킹스메이커의 드레스 자락을 온 힘을 다해 붙잡았다.

다행히 루로는 닉의 손길 아래 평화를 잃지 않고 날지도 못하는 몬스터의 도발 따위는 가뿐히 무시했다.

“안 떨어지니까 그렇게 겁 안 먹어도 돼요, 오리 님.”

“네에….”

답하는 것과 달리 희연의 손은 킹스메이커를 놔주지 않았다. 밤바람에 몸이 식어서인지 잔뜩 움켜쥔 손끝이 굳어가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 때쯤 희연의 뺨에 아롱거리는 불빛의 온기가 닿았다.

수도의 중심에 세워진 왕국, 그리고 그 주위를 에워싸듯 세워진 다양한 건물에서 만들어낸 불빛은 하늘에도 빛으로 만든 경계선을 만들어냈다. 그 불빛 안으로 진입할 때쯤 루로는 고도를 높였다. 수도 사람들의 시야에 잡히지 않기 위해서였다.

높다란 하늘에서 내려다보는 한 나라의 수도란 그 나라의 문화가 어떻든 얼마나 발전하였든 상관없이 아름답게 보이는 법이었다. 사람과 사람이 모이는 중심점이기 때문이었다.

묘하게 불그스름한 빛깔이 뒤섞여 따뜻하게 느껴지는 마법등과 마법등의 빛에 감싸인 도시의 풍경에 바짝 굳어 있던 희연도 몸에서 힘을 조금 풀었다. 동화 같은 풍경이 오는 내내 만났던 붉은 눈의 몬스터들을 모두 잊게 만들었다.

“예쁘다….”

희연의 감탄을 들은 킹스메이커는 동화는 동화라 단정 짓는 듯이 말했다.

“예쁜 쓰레기에 속지 말아요 오리 님. 한강 뷰가 아름다운 이유가 늦은 밤 사람들의 노동력이라면 딜라일의 아름다움은 세금이니까요. 불타올라 흩날리는 세금.”

“…….”

남의 꿈과 희망을 깨버렸으면서 킹스메이커는 방긋방긋 웃기만 했다. 희연은 시드론 주민의 세금과 함께 불타 재가 된 자신의 감성에 조용히 묵념해주었다.

눈에 띄게 삭막해진 희연의 얼굴에 뉴비 없지가 킹스메이커를 타박했다.

“그런 건 굳이 말 안 해도 되잖아….”

“감성팔이에 속아 어두운 진실을 모르는 것보단 아는 게 좋잖아?”

“하얀 거짓말을 해주세요….”

킹스메이커는 그저 웃기만 했다. 뉴비 없지의 말을 들어 줄 생각은 없어 보였다. 그러나 그녀 역시도 자신의 진실된 발언에 희연의 감성이 불타버렸다는 것 정도는 알고 있었다.

잠시 무언가를 가늠해 보던 킹스메이커는 지금 상황에서 희연이 가장 좋아할 만한 소식을 들려주었다.

“여기서부터는 에흐테 타도 돼요. 루로는 돌려보내야 하거든요.”

“루로는 같이 못 가요?”

“이렇게 커다란 모습으로는 출입 금지죠 아무래도.”

“아…. 그러면 언제 에흐테 부를까요?”

“음, 오, 사, 삼, 이….”

“에흐테…!”

희연은 냉큼 루로의 위에서 뛰어내리며 에흐테를 소환했다. 익숙한 유니콘에 탑승하는 것을 성공했음에 안도하며 그녀는 다른 이들을 살폈다.

밤하늘을 가리던 거대한 하얀 드래곤이 사라진 자리에는 각자의 탈것에 올라탄 일행이 유유히 날아다니고 있었다. 청산가리는 예의 종이비행기였고 킹스메이커와 뉴비 없지는 낫 위에, 닉은 메우메우 위에 루로와 함께 올라탔다.

아슬아슬했다 생각하며 희연 또한 일행이 있는 쪽으로 에흐테를 이동시켰다. 오랜만에 만나는 것 같은 메우메우의 복슬복슬한 털을 쓰다듬어 주는 것도 잊지 않았다. 악령이와 넬도 그런 희연을 따라 메우메우를 잔뜩 쓰다듬어 주었다.

한 사람과 두 악령은 희연을 부르는 목소리를 들은 뒤에야 사심을 채우는 행위를 멈췄다.

“오리 님.”

“네?”

“초코 님이랑 같이 먼저 내려가 있을래요? 메우메우는 나는 속도가 느려서 다 내려가려면 시간이 좀 걸리거든요. 내가 같이 가면 내려가자마자 바로 왕국 입장이라 주위 구경해 볼 시간도 없을 거예요.”

멀리는 못 가더라도 왕국의 외관이라던가 그 주위 광경 정도라도 보고 싶었던 희연은 킹스메이커의 의견에 냉큼 고개를 끄덕였다.

청산가리 역시 메우메우와 함께하는 느긋한 시간이 내키지 않았던지라 그녀의 의견에 긍정을 표했다.

구름 양의 비행이란 하늘을 난다기보다는 떠다닌다는 개념이라 그 속도가 느릿느릿하지만 에흐테와 종이비행기는 그와는 완전히 반대되는 존재였다. 순수 속도 면으로는 이중 유니콘과 무게감 없는 종이비행기가 가장 빨랐다.

청산가리와 희연은 거의 동시라 할 법한 속도로 왕국의 땅에 발을 디뎠다.

드디어 도착했다는 마음과 말로만 듣던 수도의 중심이 궁금하다는 생각에 희연은 땅을 밟자마자 주변을 살피려 했다. 그런 희연에게로 날카로운 창이 날아왔다.

챙-!

“아…?”

“앞을 잘 봐야죠.”

청산가리가 막아주지 않았다면 희연은 땅을 밟자마자 별님을 만나러 떠났을 것이다. 사실 희연은 종이비행기에 가로막힌 창끝을 보면서도 현재의 상황이 이해되지 않았다. 공격당할 만한 이유가 없었기 때문이다.

혼란스러워하는 희연과 달리 청산가리는 무척이나 대수롭지 않다는 얼굴로 창을 밀어내고 찌그러진 종이비행기를 하늘로 날려 보냈다.

고작 종이비행기에 일격이 막혔다는 것에 분노한 것인지 희연을 공격한 상대의 얼굴은 무서울 정도로 딱딱하게 굳었다.

원래라면 희연도 총이라도 들어 저를 위협하는 상대를 견제하려 했을 것이다. 그러나 이번에는 섣불리 무기를 들 수가 없었다. 그녀를 공격한 것은 다름 아닌 왕국의 입구를 지키는 병사였기 때문이다.

희연은 일차적으로 생각해 보았다. 이제 막 수도에 발을 디뎠을 뿐이지만 그 과정에서 어떠한 범법 행위를 저지른 것이 아닌가 하고 말이다.

그러나 단순히 그런 종류의 문제라고 보기엔 상대에게서 느껴지는 기세가 너무나 흉흉했다. 마치 적이라도 마주 보고 선 것 같은 상황은 에빌론에서는 느껴본 적 없던 적의였다.

그제야 희연은 에빌론의 병사와 수도 딜라일의 병사를 같은 선상에 두고 생각하면 안 된다는 것을 깨달았다.

에빌론의 병사들은 갑옷을 입었다고 해도 수더분한 느낌을 주며 동네 주민 느낌이 났다. 그러나 같은 병사, 같은 갑옷임에도 왕국 앞에 서 있는 이들에게선 날 서린 창 같은 분위기가 흘렀다.

이름 모를 왕국의 기사가 말했다.

“이름과 소속을 대라 이방인.”

“어….”

“말하지 말아요.”

무어라 답하려는 희연을 툭 치며 청산가리가 만류했다. 곧바로 답하지 않는 두 사람의 모습에 병사들이 다시 한번 공격을 가하려는 기세였지만 청산가리는 여전히 가만히 있었다.

희연은 저 가면 속에 얼굴이 무슨 표정을 짓고 있을지 궁금했다. 여유만만한 것 같은 태도에 비해 청산가리의 손에는 새롭게 꺼낸 종이비행기가 들려 있었다.

확실히, 유저가 중심인 자유 도시 에빌론과 수도 딜라일은 확연히 다르다. 희연은 그 사실을 뼈저리게 느꼈다.

킹스메이커는 딜라일의 병사들이 이렇게 나올 것이란 걸 모르고 두 사람을 먼저 내려보낸 것일까? 킹스메이커의 의중을 고민해 보던 희연은 생각을 뒤로하고 다시 앞을 보았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병사의 창이 두 사람을 찌를 정도로 분위기가 나빠지기 직전 킹스메이커가 드레스 자락을 휘날리며 그들 앞으로 착지했다.

타이밍 좋은 그 등장에 희연은 어떻게 된 건가 싶어 고개를 들었다. 아직 착지하려면 한참 남은 메우메우의 발을 꼭 붙잡은 뉴비 없지가 보였다.

분위기가 영 좋지 않은 것을 발견한 킹스메이커가 뉴비 없지를 버리고 밑으로 내려온 듯했다.

“소속과 이름 말하래요.”

청산가리의 말에 킹스메이커는 당당히 말했다.

“이 나라 공작과 그 일행.”

그게 끝이었다. 허무할 정도로 당당한 그 자기소개에 병사들은 얼굴이 희게 질리더니 서서히 물러나기 시작했다.

희연은 거의 등장과 동시에 문지기를 치워버리는 걸어 다니는 프리 패스권 킹스메이커를 신기하다는 눈빛으로 쳐다보았다.

그런 희연의 눈빛에 킹스메이커는 고개를 치켜들었다.

“이게 바로 권력의 맛이에요 오리 님. 이러려고 내가 그 고생을 해서 작위를 얻은 거죠.”

무척이나 뿌듯해 보이는 모습이었다. 희연은 손뼉을 쳐주는 것으로 킹스메이커에게 맞춰 주었다.

그사이 닉과 뉴비 없지 역시도 땅에 착지했고, 일행이 모두 모이자마자 킹스메이커는 왕국으로 성큼성큼 입장했다. 그런 킹스메이커의 뒤를 따라 걸으며 희연은 물었다.

“궁금한 게 있는데, 소속이랑 이름이요. 킹 님이 공작이라는 것 외에는 말하면 안 되는 거였어요?”

“아, 그거. 안 되는 건 아닌데 최대한 숨기는 게 좋기는 해요. 이렇게 해야 오늘 왕국에 출입한 명부에 우리 이름이 안 들어가거든요.”

“…?”

잘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듯한 희연의 반응에 킹스메이커는 추가적으로 설명해 주었다.

“시스템상으로는 길드의 누구누구, 이렇게 인원이 체크가 되죠. 하지만 왕국의 명부에 오늘 기록되는 건 ‘공작과 그 일행들’ 이렇게 한 줄 뿐이에요. 일종에 꼼수인 거죠.”

굳이 그런 꼼수가 필요한 상황이었나?

희연은 자신을 포함한 다른 이들의 이름이 굳이 신원 조회 되지 않아야 하는 이유가 있나 싶어 고개만 갸웃거렸다.

“안내인이 왔네요. 자, 그러면 들어가 볼까요?”

말을 돌리려는 의도가 느껴지긴 했지만 킹스메이커의 말은 사실이었으므로 희연도 그 이상 그녀의 의중을 파악해보려 하지 않았다.

무례와 적의는 왕국으로 들어오기 전 불필요한 인사를 치워내기 위한 거름망이었다는 것처럼, 입성 이후에는 대우가 달랐다. 기다렸다는 듯 정갈한 차림새의 시종이 나타나 그들을 안내했다.

희연을 제외하곤 모두 왕국 출입을 한 경험이 있는 듯, 사방을 둘러보느라 바쁜 건 그녀 혼자뿐이었다. 정확히는 그녀의 양어깨에 매달린 악령이와 넬도 왕국 안을 둘러보느라 바빴다.

오래된 고성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흔적은 그만큼의 시간을 지켜낼 수 있는 문명을 이룬 나라의 자랑이었다. 낡고 오래됨을 역사라 주장할 수 있는 건 그 나라의 국력이었다.

시드론은 충분히 그런 나라라 할 수 있었다. 그 사실을 궁전 하나로 표현할 수 있는 나라였다. 유저들의 기부금을 쪽쪽 빨아먹어 만들어진 에빌론의 신전 같은 화려한 멋은 없었지만 고성의 웅장함과 묵직한 평화가 물씬 흐르는 궁은 사람을 긴장하게 만들었다.

지식과 기록의 나라라는 이름이 주는 편견이 우습게도 내궁 안에 경비를 선 기사들에게선 사람을 위축시키는 기세가 흘렀다. 군사적으로도 약한 나라 같진 않았다.

그래서 희연은 의문이었다.

이런 나라면서 왜 에빌론의 사람들은 그토록 불행 속에 살아야 했고, 상실을 겪어야 했던 것인지. 이런 나라면서 왜 에빌론은 복구해주지 않고 유배지로 삼았는지.

이런 나라의 왕이면서 왜, 그토록 많은 사람을 방치해 슬프게 만든 것인지 말이다.

“…시드론의 왕은 어떤 사람이에요?”

앞서가는 시종의 눈치를 살피며 조그마한 목소리로 희연은 물었다. 킹스메이커는 목소리를 낮추지 않았다.

“기회주의자 꼰대요.”

“…….”

“아주 앞뒤가 꽉 막힌 인간이에요. 그리고 필요할 때면 아주 비정해지는 사람이기도 하죠.”

“그렇구나….”

“…오리 님이 게임 시작하기 전 마지막 메인 퀘스트가 뭐였는지 모르죠?”

“?”

시종의 눈치 따위 보지 않던 킹스메이커가 처음으로 목소리를 낮추며 말을 이었다.

“후계자 선정이요. 시드론의 왕에게는 왕자와 왕녀가 하나씩 있었죠. 그 둘이 세력 싸움을 했고, 유저들은 원하는 진영을 선택해 반대쪽을 제거해야 했어요.”

후계자를 고르는 방법이 퍽이나 고상했다. 희연은 다소 배배 꼬인 생각을 하며 물었다.

“누가 이겼어요?”

“그거야 이 문을 열면 알 수 있는 사실이죠. 내가 말하고자 하는 바는 이거예요. 내가 공작 작위를 받은 건 그 후계 싸움의 전리품이라는 거요. 그리고….”

시종의 발이 멈췄다. 문틈 새로 마치 온갖 화려한 새처럼 치장하고 가면을 쓴 이들이 고개를 돌리는 것이 보였다.

이제 막 문을 열고 연회장으로 입성한 그들이 누구인지 궁금하다는 호기심이 서린 시선들이었다. 시종이 뒤로 물러난 틈을 타 킹스메이커는 희연에게 몸을 기울며 속삭였다.

“난 왕녀를 선택하지 않았어요.”

“?”

희연은 킹스메이커가 무슨 의도로 그런 걸 알려주는지 알 수가 없어 그녀를 멀뚱멀뚱 쳐다보았다. 의미 모를 말을 했으면서 킹스메이커는 비밀이라는 듯 손을 입가에 가져다 댔다.

“자! 어서 들어갑시다 오리 님!”

“네에….”

뉴비 없지가 희연의 등을 밀며 재촉하지 않았다면 그녀는 호기심에라도 한번은 그 의미를 물어봤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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