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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비세스 메이커 (150)화 (150/251)

150화

어떻게 하지? 어쩌지?

정확하게 말을 하는 것으로 보아 상대는 그레텔급의 강력한 악령이었다. 마담의 말마따나 레벨 50도 못 찍은 힐러가 상대할 만한 존재가 아니었다.

뻣뻣해진 목과 달리 희연의 눈은 정처 없이 흔들렸다. 뉴비 없지나 닉을 찾아야 했다. 그도 아니면 사라진 마담이라도 말이다.

“이, 이, 이, 이상하, 하다, 너, 너 나 보이, 는데, 데….”

“…….”

흐릿했던 손이 점차 선명해졌다. 검게 물들어갔다. 희연의 손끝은 움찔거리며 총을 찾아 헤맸다. 총이라도 쏘면 일행 중 누군가는 이곳에 그녀가 있음을 알아줄 것이다.

희연의 손이 총구에 막 닿았을 때였다.

“아. 여기서 만나네요?”

“…!”

누군가의 목소리와 함께 이름 모를 악령이 사라졌다. 희연은 급하게 숨을 들이마신 뒤 제게 말을 건 은인을 찾아 고개를 돌렸다. 새까만 반가면을 쓴 남자가 그녀를 멀뚱멀뚱 바라보고 있었다.

“…누구세요?”

“아, 맞다.”

남자는 본인이 가면을 쓴 것을 잊고 있었다는 듯 뒤늦게 얼굴 위로 손을 올렸다. 살짝 들어 올린 가면 사이로 익숙한 얼굴을 본 순간 희연은 격양된 감정을 담아 상대의 이름을 불렀다.

“료한 님!”

희연을 악령으로부터 구출시킨 건 료한이었다. 놀란 것도 잠시, 희연은 자신의 얼굴을 더듬으며 물었다.

“어… 그런데 저인 줄 어떻게 알았어요?”

그녀는 가면을 쓰고 있었고 착용 중인 장비도 던전 때와는 완전히 달랐다. 단순히 머리카락 색 때문에 알아봤다고 하기엔 이 장소에 검은 머리가 아예 없는 것도 아니었다.

그러나 료한은 희연의 질문에 의아하다는 듯 고개를 기울였다.

“그야….”

“아.”

료한이 손으로 가리킨 것은 악령이었다. 검은 머리칼은 은근 많아도 힐러로 보이는 사람 중 인형을 안고 다니는 사람은 보기 드물었다. 그리고 희연이 바로 그 드문 사람이었다. 희연은 빠르게 납득하곤 고개를 끄덕였다.

어찌 됐든, 다행이라는 말이 절로 나오는 상황이었다. 만약 료한이 악령이를 발견하지 못하고 희연을 지나쳤다면 그녀는 꼼짝없이 죽었을 것이다. 그것도 사정 모를 이들이 보기엔 의문사인 그런 억울한 죽음 말이다.

희연은 네 덕분이라며 악령이를 꼭 끌어안아 주었다. 얘기하다 말고 인형을 꽉 끌어안는 희연이 왜 그러는지 알 수 없어 료한은 멀뚱히 서서 그 모습을 지켜보았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료한은 반쯤 벗었던 가면을 바로 쓰며 희연에게 말했다.

“그러면 저는 이제 그만….”

“잠깐만요!”

“?”

“잠깐만 같이 있어 주세요! 저 혼자 있으면 죽어요!”

악령들의 센세이션인 희연은 살기 위해 료한을 붙잡았다. 료한은 소매를 붙잡고 매달리는 희연에 당혹스러움을 담아 두 눈만 끔벅였다.

그런 료한에게 희연은 서둘러 물었다.

“혹시 지금 바쁘세요?”

“그건 아니에요. 일행이 있는데 아직 안 오셔서….”

“일행분 오실 때까지만 저 살려주시면 안 될까요?”

케이아일과 친구들 파티를 통해 함께한 던전에서의 정이 통한 것인지 료한은 알겠다며 긍정의 답을 들려주었다. 이제 살았다는 마음에 안도한 희연은 그제야 잡고 있던 료한의 소매를 놓아주었다.

“갑자기 붙잡아서 죄송해요. 진짜 죽을 것 같았거든요.”

“조금, 이상해 보이기는 했어요. 바짝 굳어선 혼자 뻣뻣하게 서 있었거든요.”

“제가요?”

“네. 그래서 눈에 띄었는데 익숙한 인형이 보이길래 말을 걸게 된 거예요.”

“…저 혼자 있었어요?”

“네.”

유저라고 해서 모든 악령이 보이는 게 아니었구나….

어쩐지, 아무도 도와주지 않더라.

사람들이 매정해서 그런 게 아니었음을 알게 된 순간이었다. 희연이 세상은 그렇게 더럽고 치열하기만 한 것은 아닐지도 모른다 생각하던 중이었다. 연회장의 문을 담당하는 시종이 무어라 큰 소리로 소리쳤다.

거리도 제법 있고, 그렇다고 해서 신체 능력이 그리 좋은 것도 아닌 희연은 사람들의 웅성거림에 시종이 하는 말이 무엇인지 제대로 듣지 못했다.

반면 료한은 제대로 들은 것인지 가면에 가려지지 않은 얼굴이 설핏 굳는 것이 보였다. 희연이 무슨 말을 들은 것인지 물을까 고민하던 찰나, 료한이 먼저 움직였다.

“?”

“몸을 숙여야 해요.”

희연의 등을 조심히 누르며 료한은 허리를 굽혔다. 주변의 사람 모두가 마찬가지였다. 뒤늦게 몸을 낮추며 희연은 슬쩍 고개만 들어 주위를 살펴보았다.

이건 또 무슨 일인가 싶어서였다.

이 안에서 고개 숙이지 않은 사람은 얼마 되지 않았다. 왕녀와 킹스메이커, 뉴비 없지. 그리고 있는지도 몰랐던 이름 없는 그분과 몇몇 안면 없는 사람들.

대부분의 사람들이 몸을 낮췄기에 희연은 사람들 너머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상황을 파악할 수 있었다.

연회장에 입장할 때 통과했던 문이 열리고 있었다. 새로운 입장객을 맞이하기 위해 사람들이 몸을 낮추는 경우는 하나였다.

시드론의 왕. 이 성의 주인이 드디어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요란하지 않았다. 담담했고 도리어 왕의 입장이라고 하기엔 조금 초라하지 않나 싶었다. 모두가 몸을 낮추는 것도 아니었다. 그럼에도 왕의 행차는 당당했다. 자신이 이 성의 주인임을 잊지 말라는 듯한 거침없는 발걸음으로 시드론의 왕은 연회장을 걸었다.

시드론의 왕은 왕녀와 킹스메이커의 앞에서 걸음을 멈추었다. 흰머리와 뒤섞여 백발로 보이는 금발의 남자는 자신의 딸과 똑 닮은 푸른 눈으로 킹스메이커를 보며 입을 뗐다.

“오늘도 사이가 좋군.”

“별말씀을.”

“…….”

킹스메이커는 가볍게 그 말에 대꾸했고 왕녀는 조용히 고개를 숙였다. 연회장의 불빛 아래 두 개의 왕관이 반짝거렸다.

“그래….”

노쇠한 왕은 어딘가 빛바랜 것 같은 사람이었다. 마치 제게 손을 흔들던 이름 모를 악령과 인상이 비슷하다고 희연은 생각했다.

새파란 눈과 파란 상의, 금실의 수 같은 생동감 넘치는 색이 없었다면 유령이 걸어 다니는 것 같은 느낌마저 들었을 것 같은 사람. 그게 시드론의 왕이었다.

희연은 문득 궁금해졌다. 저 왕은.

“오늘도 억울함이 담긴 악령의 종소리가 울리는구나. 오늘 밤 이 성에서 죽은 자가 하나, 이 성에서 살인을 저지른 자가 하나. 나는 공평한 것이 좋다. 죽은 자를 위로하는 것은 그자를 죽인 자가 되어야 할 것이야.”

돌아오라는 말에도 차마 위로받지 못한 어느 병사가 있었음을 알까?

“지금 이 순간부터 그 누구도, 설령 이방인이라 할지라도.”

자신이 제대로 벌주지 않은 영주로 인해 부모를 잃어야만 했던 아이들이 있다는 걸 알까?

“이 연회장에서 나가지 못한다.”

에빌론의 사람들을, 자신이 져버린 에빌론이라는 마을을 기억은 하고 있을까?

“…짜증 나.”

희연은 시드론의 왕이 싫었다.

그녀의 개인적 유감과는 별개로, 시드론의 왕의 말에 대놓고 반발하는 사람은 이 연회장에 존재하지 않았다. 문이 닫히고 커튼을 묶고 있던 끈이 모두 풀렸다.

완전히 외부와 격리된 연회장 안에서 왕은 천천히 걸어 단상 위 자신의 의자 위에 앉았다. 사람들을 내려다보는 파란 눈이 오만했다.

더 이상 몸을 낮추고 있을 필요가 없음을 알게 되자마자 희연은 자세를 바로 했다. 가면을 쓴 사람들의 시선이 이리저리 움직이는 바람에 장내는 무척이나 소란스러웠다.

죽은 것은 누구고, 죽인 것은 누구인가.

벽에 붙어 상황을 지켜보는 희연의 눈에는 마치 그 장면이 한 편의 극처럼 보였다.

왕과 함께 입장한 기사들이 검을 들고 사람들을 벽으로 몰았다. 연회장의 홀에는 이제 킹스메이커와 왕녀만이 남아 끝까지 그 자리를 지켰다. 차마 그 둘에게는 검을 들이밀지 못하겠다는 심정이 엿보이는 처사이기도 했다.

다닥다닥 붙어 서게 된 사람들이 가면 아래에서 빠르게 입을 놀렸다.

“백작이 보이지 않아. 그는 오늘 밤 단 한 번을 이 연회장 안에서 모습을 보인 적이 없어.”

“그 청렴한 자가 범인일 리가.”

“모두가 잊고 있군. 오늘 이 자리에는 그 공작이 있다고!”

“그 머리 좋은 이가 범인일 리가.”

“그러면 누가 범인이라는 거지?”

“그보다는 누가 죽었는지 알아야겠지.”

귀족 NPC의 말을 엿들은 희연은 발꿈치를 들어 사람들 너머에 있을 킹스메이커를 찾았다. 그들이 말하는 공작은 그녀였다.

료한 역시도 희연의 옆에서 이리저리 고개를 돌리며 누군가를 찾았다. 열심히 제 일행을 찾느라 바쁘던 희연은 뒤늦게 그에게 물었다.

“일행 찾으시는 거예요?”

“네.”

“혹시 저 때문에 못 찾고 있는 거면….”

“그런 건 아니에요. 사람들 말을 들어보니 애초에 아직 입장을 안 하신 것 같거든요.”

입장을 안 한 사람?

희연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현재 사람들의 입에 가장 많이 오르는 이는 둘이었다. 백작과 공작. 입장을 안 했다고 하니 료한이 찾는 사람이 그 백작인 듯했다.

그리고 희연은 백작이라는 호칭을 전에도 들은 적이 있었다. 킹스메이커가 경매장에서 패배한 상대 역시도 백작이었다. 정황상 둘이 다른 사람일 것 같진 않았다.

“혹시 그 백작이라는 사람이랑 많이 친해요?”

희연이 묻는 질문의 요지는 그쪽 백작님과 우리 쪽 공작님이 사이가 나빠 우리 관계도 미묘해질 수 있다는 걱정의 의미였다.

“친하다뇨! 제가 어떻게…. 그런 게 아니라 그분은 저희 길드의 길드장님이에요.”

“…?”

그리고 료한은 희연이 예상하지 못한 반응을 보여주었다. 두 손을 맞잡고 초조한 표정을 짓는 료한의 모습은 이제 겨우 두 번 만나봤음에도 상당히 낯선 모습이었다.

“친해진다거나 하는 그런 걸 바라면 안 되는 사람이에요. 같은 길드 소속이 되었다는 것만으로도 만족해야 하는데 제가 어떻게 그런 걸 바라요.”

친해질 수도 있는 거 아닌가?

희연은 료한의 말이 별로 이해되지 않았지만, 가끔 놀라울 정도로 섬세하게 구는 상대를 위해 말을 골랐다.

“그래도, 료한 님이 여기 온 거 보면 그 백작이라는 분이 료한 님을 제법 좋게 본다는 뜻 아닐까요?”

“제비뽑기였어요.”

“아….”

“뒷말 나오는 걸 싫어하는 분이라 기회를 공평하게 제공하시거든요.”

레벨 낮은 료한에게까지 기회가 돌아왔다는 걸 보면 청렴하다는 평가가 영 틀린 것도 아닌 것 같았다. 희연은 머릿속으로 길드 윈의 마스터는 청렴결백하다 결론지은 뒤 돌아가는 상황을 파악해 나갔다.

사람들을 벽으로 몰은 기사들은 한 명, 한 명 앞으로 불러내 심문을 시작했다. 심문 대상자에 대한 기준이 있는 건지 모두를 심문한 건 아니었다.

일단, NPC는 모두 제외였다. 기사들의 형형한 눈빛과 칼끝은 모두 유저에게만 향했다. 또한 유저라 해서 무조건 심문하는 것 역시도 아니었다.

사람들 틈을 파고든 어느 기사가 희연과 눈이 마주쳤음에도 바로 지나친 것을 보면 특정 조건을 맞춰야만 심문 대상으로 발탁당하는 것 같았다.

기사에게 붙잡힌 유저들이 자신의 결백을 증명하면 서기관들이 받아 적었다. 기사와 서기관들은 마치 여러 번 이런 일을 해봤다는 것처럼 물 흐르듯 작업을 해 나갔다.

차례로 끌려가는 사람들을 바라보다 희연은 도중 고개를 들어 시드론의 왕을 보았다. 노골적으로 NPC와 유저를 구분해 대우하는 왕의 얼굴에 떠오르는 감정은 무심함뿐이었다. 마치 이 상황 자체에 별 흥미를 느끼지 못한다는 것처럼 말이다.

이 와중에도 외부에서 울려 퍼지는 종소리는 아직까지도 이어지고 있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사람들은 지쳐갔다. 왕을 흘겨보는 이들이 늘었다. 볼멘소리가 왕의 귀에도 닿을 정도로 쌓일 때쯤, 드디어 연회장 안에 변화가 생겼다.

“범인을 찾았습니다!”

어느 기사가 외쳤다. 기사들이 모두 검을 거두었다. 모두의 시선은 목소리를 높인 기사에게로 향했다. 다수의 시선이 부담스러울 법한데도 기사는 움츠리지 않았다.

“루나 백작이 현재 범인을 붙잡아 이곳으로 오고 있습니다!”

“백작이 말인가?”

왕의 되물음에 기사는 부복했다.

“예! 감히 즐거운 밤을 망친 자를 손수 제압해 이곳으로 오고 있다 합니다!”

“그래, 어쩐지 그가 보이질 않더군. 과연 충성스러운 자야. 누구와는 달리 말이지.”

허공을 훑던 왕의 시선이 킹스메이커에게 닿았다 천천히 흩어졌다. 무료한 왕은 손을 들어 흔들었다. 이제 더 이상 볼일 없으니 알아서들 하라는 듯한 손짓이었다.

그 명에 따르듯, 다닥다닥 붙어 서 있던 사람들이 흩어지기 시작했다. 그 틈을 타 희연은 료한의 팔을 붙잡고 사람들 사이로 파고들었다.

“료한 님 빨리!”

지금이 아니면 언제 또 일행의 곁으로 갈 수 있게 될지 몰랐다. 다행히 킹스메이커는 여전히 중앙에 당당히 서 있었고 뉴비 없지와 닉도 그 주변을 서성이고 있었다.

눈에 띄는 사람이 셋이나 있으니 인파 틈에서도 희연은 어렵지 않게 그들을 찾아낼 수 있었다. 킹스메이커를 지그시 바라보던 왕녀가 몇 마디를 한 뒤 떠나는 것이 보였다.

왕관에 추가로 덧댄 베일을 막 거두던 킹스메이커 또한 희연을 발견했다.

“아, 오리 님. 그리고 옆에는….”

“같이 던전 돌았던 친구요!”

“기억나요. 마리아네 길드였죠?”

“아뇨… 그건 모짜렐라 님이요….”

“아, 맞다 맞다. 물론 기억하죠. 오랜만이네… 요?”

반갑다며 웃고는 있지만 료한과 악수하는 킹스메이커는 영 흥미 없다는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 료한은 그런 킹스메이커의 모습에 신경 쓰지 않는다는 듯 담담히 말했다.

“괜찮아요. 옛날부터 무신경한 구석이 있다는 걸 몰랐던 건 아니니까요. 누구처럼.”

희연은 료한의 말에 깜짝 놀라 두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런 희연의 반응과 달리 킹스메이커는 그러냐는 듯 담담히 물었다.

“그래요? 어떻게 알았으려나. 누가 내 욕이라도 했나? 마리아? 아니다, 그쪽 길마?”

킹스메이커의 반응을 통해 희연은 그녀가 료한을 일부러 모른 척한 거라는 것을 깨달았다. 설마하니 료한의 길드 마스터가 싫다는 이유 하나로 그러는 건가 싶었다. 그리고 그 설마 하는 생각은 일부 들어맞았다.

“하여간 꼴 보기 싫은 이희준.”

“네?”

“?”

다만 희연이 놀란 가장 큰 이유는 킹스메이커가 내뱉은 이름이 익숙해서였다. 성씨가 다르긴 했지만 제 오빠와 이름이 같으니 상당히 묘한 기분이었다.

왜 그러냐는 눈빛을 보내는 킹스메이커에게 희연은 아무것도 아니라 고개를 저었다.

설마….

백희준의 이름이 흔하지 않은 이름도 아니고, 성씨도 다르니 그저 우연일 것이다. 희연은 그리 생각하며 보이지 않는 이를 찾아 주변을 둘러보았다.

“그런데 청산가리 님은요?”

“아… 초코 님이요?”

킹스메이커는 괜스레 하나로 땋아 내린 머리카락 끝을 손가락에 배배 꼬며 말을 흐렸다. 그에 희연이 수상함을 느끼던 그때였다.

“백작과 범인이 당도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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