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1화
조금 전의 그 기사였다. 굳게 닫혀 있던 문이 열리며 외부와 단절시키던 커튼도 모두 거두어졌다.
희연은 중앙에 서 있었다. 문이 열리며 등장한 백작이 사슬에 칭칭 묶인 회색 덩어리를 질질 끌고 들어오는 것을 고스란히 볼 수 있는 명당이었다.
“아….”
희연의 옆에 서 있던 료한은 백작의 입장을 바라보며 탄식을 흘렸다. 아쉬운 감정이 듬뿍 담긴 그 단말마에 희연은 왜 그러나 싶어 고개를 기울였다. 자연스레 시선은 료한에게서 탄식을 자아내게 만든 백작에게로 돌아갔다.
백작은 혼자가 아니었다. 마치 시드론의 왕이 입장했을 때처럼 사람들을 뒤에 거느리고 등장했다. 다른 점은 전원 유저라는 점 정도였다.
기사들의 절도나 위압감 대신 자유분방한 분위기가 흐르는 일행 앞에서 당당하게 걷는 백작은 한 손으로 끌고 오는 것의 무게 따윈 전혀 느끼지 못하는 것처럼 보였다.
희연은 사슬에 묶여 끌려오는 회색 덩어리를 보며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
“…저게 뭐예요?”
“바다흐. 황무지의 고지대에 사는 타락한 요정이에요. 부모님 말씀을 듣지 않는 아이들을 잡아먹는다고 알려진 몬스터죠.”
킹스메이커는 한 번의 망설임 없이 설명해 주었다. 희연은 타락한 요정이라는 말에 집중했다. 그녀가 아는 요정들과 대조해 봐도 바다흐라는 저 요정은 너무나 동떨어진 외양을 가지고 있었다.
반짝반짝했던 힐두르나 자연 친화적인 외양의 산골 꼬마 요정들과 비교해 봤을 때 바다흐는 요정이라기보단 같은 황무지 출신인 스낼리개스터 같은 동심을 깨는 쪽의 몬스터에 가까웠다.
그로테스크한 구석이 있는 회색 덩어리의 모습에 시선이 가느라 희연은 정작 그 몬스터를 잡아 온 백작을 뒤늦게 보았다. 내내 백작에게서 눈을 떼지 못하는 료한과는 정반대되는 모습이었다.
푸른 천으로 포인트를 준 하얀 제복을 입고 시드론의 왕만큼이나 흰 금발을 길게 길러 하나로 묶은 그는 키가 큰 편이었다. 장식용, 혹은 의장용처럼 보일 정도로 얇고 화려한 검을 매달고 다니는 것과 달리 차림새는 단정한 편이었다.
“…NPC 같다.”
희연은 백작을 그렇게 평했다. 하얀 제복, 옅은 색 머리칼의 남자는 오래된 것들의 고상함으로 버무려진 이 연회장에 지나치게 잘 어울렸다.
본인의 무기만큼이나 화려한 가면을 쓴 그의 시선이 잠시 그녀 쪽으로 향했다. 정확히는 희연의 옆에 서 있는 료한에게, 이어 킹스메이커에게 닿은 시선이었다.
희연의 시선도 절로 킹스메이커 쪽으로 움직였다. 그녀는 매우 가소롭다는 얼굴로 백작을 마주 보고 있었다.
“오리 님, 이쪽으로 와요. 옆 친구도 어서어서.”
고래 싸움에 등 터지지 말라며 뉴비 없지가 희연과 료한을 끌고 뒤로 물러났다. 그러나 가끔 이성 없는 것처럼 구는 킹스메이커와 달리 백작 쪽은 평상시에도 이성적인 사람인 것인지 그는 시비에 시비로 대응하지 않고 무시하는 것을 택했다.
희연에게는 참 다행인 일이었다.
백작이 왕에게 도달할수록, 연회장의 사람들은 누구도 제지하지 않았음에도 스스로 입을 다물고 정숙을 표했다. 모두가 백작을 바라보았다.
고요한 시선에 숨이 막힐 법도 한데 백작은 그러한 종류의 무게감 따위 전혀 느끼지 못한다는 것처럼 거침없는 발걸음으로 왕의 앞에 섰다.
백작은 간드러진 아부와 말솜씨를 뽐내는 것과 거리가 먼 사람이라는 걸 깨닫기란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인사말, 가벼운 대화 그런 건 없었다.
시드론의 왕에게 고하는 백작의 말 한 마디, 한 마디에는 빠르게 이 일을 처리하고 말겠다는 의지 외에는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았다.
“종을 울린 죽은 자는 마쉬멜 자작입니다. 인적 드문 휴게 공간에서 살해당했습니다. 당시 방 안에 있던 것이 이 바다흐며, 벽난로와 이어진 굴뚝을 통해 들어온 것으로 판단됩니다.”
의외라 할 점은 시드론의 왕이 그러한 백작의 태도를 썩 나쁘게 보지 않았다는 점이다. 오히려 남들 놀 때 일을 한 충신을 바라보는 시선에 가까웠다.
“그래. 왜 남들 다 연회장에 있을 때 얼굴 한 번 안 비치나 했더니 남모르게 수고로운 일을 해주고 있었군 백작. 자네 같은 이방인도 있어 매우 흡족스러워.”
시드론의 왕이 한 말에 킹스메이커는 작은 목소리로 투덜거렸다.
“저 꼰대. 한 번을 그냥 안 넘기고 꼭 나한테 시비 건다니까.”
“…….”
희연은 못 들은 척했다. 다행히도, 백작의 발언에 연회장 안에 있던 NPC들 역시도 빠르고 낮게 속삭이느라 킹스메이커의 말은 묻혔다.
“마쉬멜 그 친구가 죽었군.”
“유약한 자였어.”
“욕심은 많았지.”
“어린애 같은 구석도 있었고.”
“그러니 바다흐에게 죽었겠지. 어린애들만 잡아먹는 저 괴물에게!”
어린애만 잡아먹는 괴물. 그 말에 희연은 다시 회색 덩어리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두툼한 꼬리가 조금 움찔거리고 있었다.
“저거 살아 있어요…!”
“…아, 짜증 나.”
“?”
“예상했지만 진짜 안 넘어가네.”
희연은 킹스메이커가 하는 말을 이해할 수 없었다. 그사이, 백작은 메고 있던 화려하고 얇은 검을 꺼내더니 조금씩 움직이기 시작한 바다흐의 목 위로 겨누었다.
“그러나 이 바다흐는 마쉬멜 자작을 죽인 범인이 아닙니다. 증명하죠.”
보석과 금박, 칼날 중 무엇이 빛을 반사해 반짝거렸는지 알 수 없었다. 희연이 눈부심에 눈가를 움찔거렸을 땐 이미 바다흐의 목이 동강 난 뒤였다. 여전히 종소리는 울렸다.
바다흐가 범인이 아니라는 뜻이었다.
이쯤에서 희연은 듣지 못했던 질문을 머릿속에 떠올렸다. 청산가리는 어디 갔을까?
킹스메이커와 청산가리는 조금 전, 어디로 갔던 걸까.
“…….”
킹스메이커가 범인인가?
너무나 자연스럽게 든 생각에 희연은 입안의 여린 살을 꽉 깨물었다. 차마 킹스메이커에게 대놓고 당신이 이 사건의 범인인가요, 라고 물어볼 수는 없었다.
여기서 문제는 백작과 킹스메이커의 사이가 나쁘다는 거였다. 왕의 신뢰를 듬뿍 받는 것 같은 백작이 용의자로 킹스메이커를 지목할지도 몰랐다. 그에 희연은 초조함을 느꼈지만 정작 용의자 킹스메이커는 무척이나 태평했다.
그리고 마침내 백작이 입을 열었을 때 희연은 안도감과 의아함을 동시에 느꼈다.
“안타깝군요. 범인이 밝혀지지 않아서. 마쉬멜 자작의 억울함이 영원히 종을 울릴 겁니다. 그가 정말로 억울한 자라면 말이죠.”
“…….”
백작은 무언가를 꺼내 왕에게 내밀었다. 멀어서 자세히 보이지 않는 희연을 위해 킹스메이커는 그의 손에 들린 것이 무엇인지 알려주었다.
“뱀 배지. 오리 님도 갖고 있는 그거에요.”
“…죽었다는 그 사람도 뱀이랑 관련 있었던 거예요?”
“네. 악당이죠.”
두 사람이 소곤거리는 사이 백작은 마저 말을 이었다.
“바다흐는 아이들을 잡아먹지 않습니다. 잡아갈 뿐이죠. 그리고 자작은 이전부터 몬스터를 길들이고 새로운 품종을 만들어내는 것에 관심이 많았습니다.”
“…….”
“이 바다흐는 자작이 만들어낸 인공 몬스터입니다. 자작은 억울하지 않아요. 억울함에 종을 울리는 사람은 따로 있죠.”
백작의 말이 끝났을 때, 무료함 가득했던 왕의 얼굴은 눈에 띌 정도로 굳었다. 그런 왕의 옆을 언제부턴가 왕녀가 지키고 있었는데, 그녀는 제 아버지와 달리 은은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귀족들은 이번에도 수군거렸다. 희연은 그들의 말에 귀 기울였다. 에빌론, 스위니티, 헨젤, 백골. 사라진 아이들.
“잘됐네요 오리 님.”
“…….”
“이로써 시드론의 왕은 뱀 집단과 얽혀 실종된 아이들을 외면하지 못해요.”
“혹시….”
일부러 일이 이렇게 풀리도록 판을 짰냐는 질문을 희연은 애써 삼켰다. 백작을 이용해 먹은 거냐는 질문을 하기엔 바로 옆에 존경을 담아 눈을 반짝이는 료한이 있었다.
희연은 시드론의 왕의 입에서 나올 말을 기다렸다. 그녀뿐만이 아니었다. 귀족 NPC들이 하나둘, 가면을 벗기 시작했다. 마치 왕에게 진실을 요구하고 재촉하는 것 같은 모습이었다.
백작 역시도 가면을 벗었다. 뒷모습뿐이라 희연의 눈에는 그의 얼굴이 보이지 않았다.
혀를 찬 시드론의 왕은 결국 내내 외면하던 일을 입에 담았다.
“그러고 보니, 최근 기이한 집단이 아이들을 납치한다 했던가. 에빌론, 그곳에서 보고가 올라온 것도 같군.”
됐다.
희연은 악령이를 끌어안은 팔에 힘을 주었다. 일이 이 지경이 되었는데도 왕이 모르쇠로 나왔다면 희연이 단서를 얻을 길은 영영 요원해질 뻔했다.
그러나 나라의 온 귀족들과 힘깨나 있는 이방인들 사이에서 공론화되자 기어이 왕은 제가 외면했고 해결하지 못한 일에 대하여 공식적으로 인정했다. 드디어 사건이 수면 위로 올라왔다.
킹스메이커가 판을 짠 게 분명함에도 만약 백작이 기꺼이 그 판에 어울려주지 않았다면 이뤄지지 않았을 결말이었다. 희연의 시선은 저절로 백작 쪽으로 움직였다.
“…….”
어라?
희연은 고개를 기울였다. 멀어서 잘 보이지 않았지만 가면을 벗은 백작의 얼굴이 익숙해서였다. 머리카락 색 조금, 스타일 조금 다르다고 못 알아보기엔 너무 오랫동안 봐온 얼굴이었다.
“…백희준?”
성씨 개명을 한 가족이 눈앞에 있었다.
당황스러움에 굳어버린 희연을 보며 킹스메이커가 의아하다는 듯 물었다.
“응? 오리 님 백희준 알아요?”
“알… 죠.”
모르면 안 된다. 그러나 희연의 사정을 모르는 킹스메이커는 아주 의외라는 태도를 보였다.
“오리 님 이 게임 하기 전에 타렌 했어요? 그래서 RPG에 어색했나?”
타렌이란, AOS, 그리고 FPS 게임의 특성이 섞인 가상 현실 게임으로 출시된 지 10년 가까이 됐음에도 여전히 인기 좋은 게임의 이름이었다. 물론 희연은 이름만 아는 게임이었다.
희연의 입장에선 사실 이름을 알 수밖에 없는 게임이기도 했다.
“아뇨… 전 게임 안 했어요….”
“그래요? 뭐… 백희준은 게임 안 했어도 알 수 있긴 하죠.”
“…….”
모른 척할까?
이제 와서 아는 척하는 것도 이상했다. 희연은 모른 척하기로 마음을 굳혔다.
그러나 희연이 마음먹은 것이 무색하게도 바로 옆에서 답지 않게 료한은 백희준에 대해 이야기를 늘어놓았다. 덕분에 희연은 화제를 돌리는 데 실패했다.
“타렌에 관심 있었어요?”
“아뇨.”
“하긴, 백희준 선수는 타렌을 몰라도 이름이 많이 알려진 분이죠.”
“그래요…?”
“저는 초등학생 때부터 백희준 선수 팬이었거든요. 데뷔전부터 은퇴식까지 모두 봤는데, 은퇴 이후 아무 소식 없다가 메르헨 호라이즌을 시작했다는 말 들었을 때부터 같이 게임 하는 걸 바랐어요.”
“와아… 멋진 꿈이다….”
“백희준 선수는 베타 테스터로 시작했더라고요. 닉네임도 본명이랑 다르게 사용해서 이희준 님이 백희준 선수라는 것도 너무 늦게 알려졌고, 그래서 과연 같은 길드에 들어갈 수는 있을까 걱정했는데….”
“그렇구나.”
중간부터 희연은 료한이 하는 말을 제대로 듣지 않았다. 노골적인 혈육의 칭찬은 다소 낯간지럽고 거북했다.
“오리 님, 이제 가면 벗어도 돼요.”
“저 가면이 취향인 것 같아요.”
“네?”
영혼 없는 희연의 대답에 킹스메이커는 왜 그러냐는 듯 쳐다보았다. 뉴비 없지도 닉도, 백희준을 찬양하는 료한도 가면을 벗는 와중에 희연은 곧 죽어도 가면을 벗지 않겠다는 의지를 보여주었다.
악의 없는 공격에 정신적인 타격을 입은 희연은 시드론의 왕과 왕녀가 보이지 않는다는 것도, 백희준이 제 일행을 이끌고 가까이 오고 있다는 것도 알아차리지 못했다. 그래서.
“여기서 뭐 해.”
“…!”
왜 못 알아들었나 싶은 익숙한 목소리가 바로 옆에서 들렸을 때는 화들짝 놀랄 수밖에 없었다. 희연은 킹스메이커를 지나 뉴비 없지와 닉 뒤로 몸을 숨겼다. 두 사람 다 그녀보다 키가 컸기에 숨기에 안성맞춤이었다.
반면 희연보다 머리 하나 하고도 반절은 작은 킹스메이커는 그 갑작스러운 행동의 의미를 알 수 없어 고개만 갸웃거렸다.
백희준이 말을 건 상대는 료한이었다. 그의 시선은 당연하게도 료한에게 향해 있었고, 그 옆에 서 있다 도망간 희연은 아주 눈에 띄었다.
“뭐야. 누군데 사람을 대놓고 피해?”
시드론의 왕과 대화할 때는 나름 격식을 차려 고상하게 굴던 것이 무색하게 백희준은 약간의 짜증이 섞인 말투를 사용했다. 희연은 익숙한 그 어투에 더 간절히 뉴비 없지의 망토 자락을 붙잡았다.
“…우리 오리 님이 수줍음이 조금 많은 편이라서.”
상황이 이해되지 않았지만 킹스메이커는 일단 희연의 편을 들어주었다. 태평스러운 그 대꾸에 백희준은 인상을 찡그렸다.
“수줍은 게 아니라 뭔가 켕기는 게 있는 사람인 거겠지.”
“엇, 이러지 마세요!”
성큼성큼 다가오는 백희준에 뉴비 없지는 손을 들어 올렸다. 그러나 백희준은 힘겨루기를 할 생각이 없었다. 현재 이 자리에 있는 사람 중 가장 높은 민첩 스텟을 가지고 있던 그는 뉴비 없지의 손을 손쉽게 피한 뒤 희연을 붙잡았다.
저항 한 번 못하고 백희준의 손에 이끌려 나온 희연은 백희준이 그녀를 못 알아보기를 바랐지만, 그 바람은 이뤄지지 않았다.
“도대체 누군데….”
“…….”
희연과 눈이 마주친 백희준은 잠깐 놀란 표정을 짓더니 곧이어 사납게 얼굴을 일그러트렸다.
“…백희연.”
“헙…!”
어떻게 알았지?
가면을 써도 생각이 고스란히 드러나는 희연을 보며 백희준은 붙잡았던 어깨를 놔주었다. 그런 그의 손을 악령이가 물고 있었다.
“이건 또 뭐야.”
“악령아…!”
희연은 서둘러 악령이를 붙잡아 백희준으로부터 떨어트렸다. 백희준은 거슬리는지 물린 손을 힐끔거렸지만 그에 대해 꼬투리를 잡을 생각은 없다는 듯, 정확히는 희연에게 할 말이 많다는 듯 그에 대해서는 넘어갔다.
“백희연, 너 일단 가면부터 벗어.”
내키지 않는다는 티를 폴폴 내며 희연은 천천히 가면을 벗었다. 그런 두 사람의 모습을 주변에 서 있던 이들은 무척이나 당황스럽다는 얼굴로 지켜보았다.
특히 킹스메이커가 그랬다.
백희연, 백희준. 누가 봐도 가족 관계 증명서에 함께 기재될 것 같은 이름이었다. 킹스메이커는 애써 웃으며 희연에게 물었다.
“오리 님…. 백희준이랑 관계가…?”
“…2촌 관계요.”
“아하, 남매…?”
초록색 눈이 빠르게 두 사람을 번갈아 보았다. 머리색이야 그렇다 치고, 나란히 서 있는 상태에서도 희연과 백희준은 별로 닮은 구석이 없었다.
키가 크다는 것과 둘 다 눈꼬리가 올라간 고양이상이라는 게 그나마 공통적인 부분이었지만 전체적인 인상은 확연히 차이 났다. 한쪽이 애옹거릴 것 같은 고양이라면 한쪽은 언제나 킬 각을 재는 고양잇과 맹수다. 백희준에게선 희연에게는 느낄 수 없는 독기 스텟이 느껴졌다.
게다가, 백희준은 길이길이 이름이 남을 프로게이머였고 희연은 상태 창도 볼 줄 모르던 뉴비니 두 사람을 혈연관계로 엮어 생각하기란 쉽지 않은 일이었다.
닉네임 센스도 달랐다. 이희준, 눈오리의 돌격.
킹스메이커는 일단, 중요한 점을 먼저 짚고 가기로 했다.
“오리 님. 이희준과의 관계가 혹시 어떤지 들을 수 있을까요? 사이 나쁘죠?”
그러기를 꼭 바란다는 어투였다. 희연은 조금 당황스럽다는 듯 데굴데굴 눈을 굴리며 말했다.
“네? 어, 그렇게까지 나쁜 편은 아닌데요….”
“상대가 이희준인데 좋은 관계를 유지해왔다고요?”
“오빠가, 솔직히 많이 재수 없는 편이긴 하지만 그렇게 나쁘지는 않아요…. 정말로….”
희연의 답에 킹스메이커는 속으로 혀를 찼다. 희연의 앞에서 백희준의 욕을 너무 많이 한 것이 이제 와 걸려서였다. 사이라도 나빴다면 욕한 것 정도는 그냥 넘어갈 수 있었는데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