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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비세스 메이커 (152)화 (152/251)

152화

그러나 희연은 그 점에 대해서는 조금도 신경 쓰지 않았다. 현재 그녀에게 중요한 건 백희준의 잔소리에서 벗어나는 거였다.

백희준은 희연이 그를 모른 척한 거로도 모자라 도망까지 가려고 했다는 점을 매우 고까워했다.

“너 왜 모른 척해.”

“갑자기 아는 척하면 이상하잖아…!”

“가면 벗을 때까지 못 알아본 거겠지.”

“어떻게 알았…, 아니, 가면 썼는데 어떻게 알아봐!”

“…….”

“물론 알아볼 수도 있지만….”

희연은 멋쩍어져 눈만 데굴데굴 굴렸다. 생각할수록 희연은 백희준이 자신을 알아본 것이 신기했다.

백희준이 평소에 껄렁하게 입는 것과 달리 단정한 제복 차림에 머리도 길어지고 색도 달라진 것처럼, 희연 역시도 현실의 모습과는 상당히 동떨어져 있었다.

백희준이 관찰력이 좋았던 거지, 결코 자신이 이상한 게 아니란 결론을 내린 희연은 웅얼거리며 억울하다는 듯 굴었다.

“이희준이라 해서 아닌 줄 알았단 말이야….”

“이름이 같으면 의심을 해야지 왜 아니라는 결론이 나오는데.”

“그럴 수도 있지! 안 그래요?”

“네?”

어쩌다 남매의 대화에 끌려들어 온 킹스메이커는 두 사람을 번갈아 바라보다 크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요. 누가 멀쩡한 성씨를 개명할 거라고 생각하겠어요. 이건 이희준이 잘못한 거죠. 멀쩡한 백씨 성 놔두고 왜 연관 없는 남의 집 성씨를 썼담. 잘못했네, 잘못했어. 그렇지 없지 없지?”

“어? 어어? 그… 렇지! 나도 우리 형이 성씨 개명하고 나타나면 누구냐고 할 건데, 이건 오리 님 잘못이 아니다…!”

“길마님도 어서 한마디 해요!”

“…….”

“이희준이 잘못했다 하네!”

희연은 백희준을 돌아봤다.

“거봐!”

“백희연.”

“…잘못했습니다.”

낮은 목소리로 불리는 제 이름에 희연은 빠르게 꼬리를 말았다.

눈에 띄게 시무룩해져 고개를 숙이는 희연을 보며 백희준은 못마땅하다는 듯 눈살을 찌푸렸다.

사실, 백희준은 별로 화나지 않았다. 알아봤으면서도 모른 척한 것이 빈말로도 섭섭하지 않다고 하면 거짓말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굳이 굳이 밖에서까지 아는 척해 주기를 바란 건 또 아니었다.

밖에서는 아는 척하기 싫었군, 하고 넘어가면 그만인 일 갖고 무어라 하는 이유는 그의 신경을 거슬리게 만드는 게 따로 있었기 때문이다.

“왜 우리 오리 님 기를 죽여!”

희연에게 찰싹 달라붙어 쫑알거리는 킹스메이커. 그녀가 백희준을 고까워하는 것만큼이나 그 역시도 그녀가 썩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런데 하필이면 가장 껄끄러운 인간이 동생을 데리고 쎄쎄쎄하며 놀고 있다고 하니 영 신경에 거슬릴 수밖에 없었다.

저걸 어떻게 떼놓지?

백희준은 아주 자연스럽게도, 희연과 킹스메이커를 분리할 방법을 생각했다. 희연이 알았다면 엄마 아빠도 뭐라 안 하는 교우 관계에 어깃장을 논다고 말했을 생각이었다.

그러나 희연은 백희준이 머릿속으로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몰랐다. 말없이 자신을 내려다보는 모습에 고개만 갸웃거렸다. 그러다 희연은 료한과 시선이 마주쳤다.

놀라움과 당혹스러움이 뒤섞인 표정을 짓던 료한은 희연과 눈이 마주치자 얼굴을 확 붉혔다. 희연의 앞에서 백희준을 찬양한 것이 뒤늦게 부끄러워진 탓이었다. 덕분에 희연은 조금 미안해졌다.

희연의 시선을 따라 백희준 역시도 료한을 보았다.

“료한이랑 아는 사이야?”

“같이 던전 돌았어.”

“그래? 둘이 동갑이니까 친구 하면 되겠네.”

“동갑….”

백희준의 말에 희연은 더더욱 료한에게 미안해졌다. 료한은 백희준의 데뷔전부터 팬이었다고 말했다. 데뷔전 당시 백희준의 나이는 열일곱. 료한이 희연과 동갑이라는 뜻은 열 살 때부터 백희준의 팬이었다는 뜻이었다. 참으로 지독하고 지고지순한 사랑이었다.

“일부러 숨긴 건 아니었어요….”

“아, 알아요.”

료한은 여전히 얼굴이 새빨갰고 말까지 더듬었다. 그에 희연이 어쩔 줄 몰라 헤매는데, 내내 백희준의 뒤편에 오도카니 서 있던 일행들이 저들끼리 소곤거리다 대표로 누군가를 밀어냈다.

대표로 뽑힌 사람은 한참을 망설이다 조심히 백희준을 불렀다.

“희준아, 우리 여기서 노닥거릴 시간 없는데….”

“기다려 봐. 급한 일 아니잖아.”

“아닌데? 충분히 급한데? 나 지금 마음이 너무 불안해서 눈물까지 날 것 같은데?”

눈물의 호소가 통했던 것인지 백희준은 마뜩잖다는 듯한 표정을 짓긴 했지만 몸을 틀었다. 희연에게 한 마디 덧붙이는 것도 잊지 않았다.

“…백희연, 너 이따가 다시 얘기해.”

할 얘기가 더 있나?

희연은 의아함을 담아 백희준을 보았다. 백희준은 희연의 표정이 무슨 의미인지 알면서도 답을 알려주지 않고 일행을 데리고 자리를 떠났다. 료한을 놔두고.

“료한아.”

“네…!”

“얘랑 좀 놀고 있어.”

“네!”

“그래. 착하다.”

그게 끝이었다. 료한의 머리를 대충 몇 번 쓰다듬은 백희준은 그러고선 제 일행을 따라 가던 길을 갔다. 가타부타 설명도 없는 말이었음에도 료한은 착실하게 그 말을 따랐고 말이다. 오히려 희연이 당황해 물었을 정도였다.

“어…, 같이 안 가도 돼요?”

“괜찮아요. 길드 간부 사람들이 다 함께 움직인다는 건 길드 일이라는 뜻이거든요.”

“같은 길드잖아요….”

레벨 낮고 제비뽑기로 오게 된 길드원이라고 따돌리다니. 이건 백희준이 나빴다. 희연은 그렇게 생각했다. 그 말 그대로 입 밖으로 내뱉었다면 그거 아니라며 료한이 펄쩍 뛰었을 생각이었다.

나쁘다 백희준, 못됐다 백희준. 희연이 백희준에 대해 속으로만 툴툴거리던 것을 멈춘 것은 문득 궁금하다는 듯 닉이 물었을 때였다.

“그런데, 이희준이 가족이면 다른 길드를 찾을 필요가 없던 거 아니에요? 만나지만 않았을 뿐이지 같은 게임을 하고 있었다는 것 자체는 알고 있던 것 같아서요.”

얼결에 떠맡았다고는 하나 엄연히 길드 마스터의 직책을 갖고 있는 그가 물어볼 법한 질문이었다. 물론 닉은 순수하게 궁금해서 물어본 거였다.

희연의 입에서 나올 대답이 더 궁금한 건 닉이 아니라 킹스메이커와 뉴비 없지였다. 희연은 두 사람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네? 집에서도 보는데 게임도 같이하라고요? 왜요?”

“그렇죠, 그렇죠. 우리 길마님이 형제가 없어요. 외동은 모르는 그런 게 있는데 말이죠.”

킹스메이커는 냉큼 말을 받았다. 희연이 윈으로 떠날 마음이 조금도 없는 것 같아 그녀는 무척이나 안심되었다. 뉴비 없지 역시도 마찬가지였다.

“오리 님, 만약에 이희준이가 자기 길드로 들어오라고 하면요….”

“악마의 속삭임에 귀 기울이지 말라고요?”

“네! 바로 그겁니다 오리 님!”

애초에 백희준은 누굴 꼬시겠다 속살거리는 인간도 아니었고, 그 대상이 희연일리도 없으며, 만약 그런다 해도 희연은 소름 끼쳐 견딜 수 없었을 것이다.

가끔 이상하다고 생각하기는 해도 나름 정든 길드를 떠날 생각이 조금도 없는데, 길드의 중역들은 여전히 그녀를 못 붙들어 매 안달이었다.

폴짝폴짝 기쁨의 춤을 추는 두 사람을 뒤로하고, 희연은 방치되다시피 옆에 서 있던 료한에게 다시 말을 걸었다.

“만약에 괴롭히면 말해주세요. 게임에서는 못하겠지만 집에서는 때려줄게요!”

“…백희준 선수는 저 괴롭힌 적 없어요. 오히려 무척 친절하신걸요.”

“아, 네에.”

“정말인데….”

물론, 희연은 료한이 하는 말이 진실이라는 건 알았다. 백희준은 원래부터가 자기보다 어리고 키 작은 사람에게 유한 구석이 있었다. 문제는 백희준은 무척이나 키가 큰 편이고, 자기보다 나이가 많다고 해서 딱히 안 귀여워하는 건 또 아니라는 점이었다.

귀여워한다는 것도 사실은 무심하게 구는 행동의 일환이긴 했지만 말이다. 백희준은 오해 살 짓을 많이 하곤 했다.

대충 윈이라는 길드 내에서 백희준이 어떻게 하고 다닐지가 예상되어 희연은 설렁설렁 답한 거였다. 료한은 백희준의 인성을 칭찬하고 싶어 했지만 희연은 그에 대해선 일말의 관심도 없었다.

부끄러워하던 것이 무색하게도 료한은 희연과 백희준에 관하여 조금 더 이야기 나누고 싶다는 티를 냈다. 희연은 그저 웃으며 모른 척했다.

대신 그녀는 궁금한 게 많아 보이는 악령이를 상대했다.

“오빠? 가족?”

“오빠. 가족.”

악령이는 희연에게 가족이 있다는 게 그리 신기한지 동글동글한 눈을 빛냈다. 정작 관심을 보여야 할 사안에 대해서는 영 집중을 못 하는 모습이었다.

시드론의 왕이 제대로 된 단서를 줘야 하는데….

오히려 희연의 속만 더 타들어 갔다. 그런 희연에게는 다행히도 사라졌던 왕과 왕녀는 오랜 시간이 지나지 않아 다시 연회장에 모습을 드러냈다.

그 짧은 시간 동안 무슨 회의라도 한 것인지 두 사람의 뒤로 나라의 중역들로 보이는 자들이 뒤따랐다.

백희준 역시 제 일행을 데리고 왕의 주변을 서성이고 있었는데, 백작이라는 작위가 단순 명예직이 아니라는 것을 증명하듯 주변의 귀족 NPC들은 제법 호의적인 눈으로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결과적으로는 자신을 곤란하게 만든 것이 백희준이였음에도 시드론의 왕 역시 그와 허물없다는 듯 굴었다. 가벼운 핀잔에는 어떤 공격성도 경계심도 없었다.

바로 옆에 서 있는 공작님을 대할 때와는 다른 눈빛들이었다. 그에 희연이 묘한 눈으로 바라보자 킹스메이커는 서글프다는 듯 손으로 뺨을 감쌌다.

“더러운 신분제 사회. 아득바득 밑에서부터 기어오른 사람이 자기들보다 꼭대기에 자리 잡았다는 걸 인정 못 하는 거죠.”

“그… 렇구나….”

희연은 대충 수긍해 준 뒤 고개를 바로 했다. 푸른 융단이 깔린 단상 위로 왕이 올라가고 있었다. 백희준은 바로 그 단상 아래 한쪽 무릎을 꿇고 앉아 왕을 올려다보았다.

왕의 입이 열렸다.

“길을 잃은 아이들이 있다. 아이들이 길을 잃게 하는 자들이 있다.”

악령이의 몸에 힘이 들어갔다. 희연도 마찬가지로 힘주어 인형을 꽉 끌어안았다.

“저 먼 곳에 있는 나의 땅에서 길 잃은 아이들을 찾을 수 있었으나 그들 모두 온전히 돌아오지는 못했다. 그 배후에 있는 자. 감히 나를 능멸하고, 나의 백성을 유린하고, 숭고한 대륙법을 짓밟은 자. 이단이라 칭해도 이상할 것 없는 그자. 주목하라, 이방인들이여.”

[대륙의 메인 퀘스트가 시작됩니다. 이 땅에 불시착한 이방인 여러분, 여러분의 손으로 이야기를 만들어 주세요.]

[길을 잃은 아이들 : 아이들의 의무는 세상을 궁금해하는 것이고, 아이들의 권리는 세상을 알아가는 것입니다. 새로운 하루를 맞이했어야 할 아이들이 길을 잃었습니다. 단서를 찾아 해결해 주세요.

‘우리가 조심한다고 모든 것이 해결되지는 않아요’]

[퀘스트 조건 : ???]

[보상 : ???

(실패 시 메인 퀘스트는 파괴되며 대륙에 크나큰 변화를 줍니다.)]

“그대들이 진실을 밝혀라.”

말을 끝내는 왕을 보며 희연은 약간의 허무함을 느꼈다. 시드론의 왕이 가지고 있는 건 겨우 단서 따위가 아니었다.

왕이 퀘스트를 내려주어야 비로소 이야기가 시작되는 거였다.

[<길을 잃은 아이들>의 단서를 가지고 있습니다! 당신은 선구자입니다.]

[‘시드론의 왕’이 당신에게 관심을 갖습니다.]

***

“…공작의 새 수집품이라 했던가?”

겁도 없이 자신을 노려보는 희연을 마주하며 시드론의 왕은 답을 할 대상을 정하지 않은 허공에 질문을 던졌다. 왕녀가 그에 놀란 듯 어깨를 움찔거렸지만 왕의 시선은 여전히 희연에게 박혀 있는 채였다.

썩 마음에 차지 않는다는 표정을 짓고 있는 것과 달리 시드론의 왕은 희연이 제법 흥미로웠다. 바람이 들려주는 이야기가 그녀가 이 이야기의 선구자임을 알려주고 있었기 때문이다.

시드론의 왕은 기회주의자였고, 앞서 나가는 자들을 퍽 좋아했다. 과거의 자신을 생각하게끔 만드는 저돌적이고 멍청하며 용기 있는 자들을 볼 때면 결핍 어린 즐거움을 느꼈다.

마땅한 능력도 없으면서 남들의 도움을 받아 이곳에 서 있는 희연을 원래라면 왕은 흥미로움은커녕 불순한 것을 보듯 대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녀는 선구자였다. 날고기는 자들을 제치고 선구자로서 지금 이 자리에 있었다. 이 순간만큼은 희연은 시드론의 왕에게 있어 참으로 흥미로운 인사가 아닐 수가 없었다.

왕은 물었다. 이번에는 질문의 대상자가 정해진 물음이었다.

“너는 누가 먼저 이 이야기의 종지부를 찍을 것 같으냐.”

“제 사사로운 의견이 감히 전하께 폐를 가할까 두려우니 말을 삼가겠습니다.”

“재미없기는. 이럴 땐 네 동생이 참으로 그립다.”

“재밋거리로 삼을 이야기가 아니니까요.”

바른 소리만 하는 왕녀를 왕은 흘겨보았다. 흥이 가신 왕은 희연에게서 시선을 떼고 여전히 부동의 자세로 자리를 지키고 있는 백희준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수군거림으로 소란스럽던 연회장에 다시 왕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백작. 그대에게는 내 친히 다른 일 또한 맡길 것이다.”

“…….”

“우리는 진실을 모르지. 마쉬멜 자작이 그 불순한 무리와 연관되어 있을 거라는 건 오로지 백작 그대의 생각이다. 어쩌면 마쉬멜 자작은 억울한 죽음을 맞게 된 걸지도 모르네.”

단상에서 천천히 내려온 왕은 백희준의 어깨를 격려하듯 두들기며 말을 이었다.

“그러니 자네가 자작의 진실을 밝혀주게나. 그 또한 나의 백성. 이 땅에 우는 자가 없게 해주어야지.”

“…알겠습니다.”

“그래. 내 백작 같은 신하가 있어 참으로 든든해. 누구와는 전혀 다르지.”

시드론의 왕은 잊지 않고 리퍼 공작을 깎아내린 뒤에야 백희준을 놓아주었다. 더 이상 이 자리에 있을 필요는 없었다.

수군거리는 사람들이 갈라지며 길을 만들어냈다. 유유히 그 길을 걸어 연회장을 떠나는 그에게 들러붙는 끈덕진 시선이 많았음에도, 시드론의 왕은 단 한 번을 돌아보지 않았다.

“쯧.”

그 시선의 주인 중 하나인 킹스메이커는 대놓고 혀를 찼다. 왕이 너무 재수 없어서였다. 더불어 조금 곤란해진 상황 때문이었다.

열심히 머리를 굴리던 킹스메이커가 생각의 늪에서 빠져나온 건, 그녀 옆에 서 있던 희연이 누군가를 불렀을 때였다.

“…오빠.”

반쯤 잊고 있던 백희준이 다시 등장했다. 그 사실에 킹스메이커는 인상을 찡그렸다. 애지중지 아끼는 뉴비의 친오빠라 할지라도 어쨌든 마음에 안 드는 상대라는 건 변하지 않았다.

백희준 역시도 자신을 노려보는 킹스메이커에게 똑같이 굴었다. 희연은 무척이나 한심한 것을 보는 눈으로 백희준을 보았다.

“왜 저래 진짜….”

그러면서 희연은 자연스럽게 슬금슬금 뒤로 물러났다. 그런 희연의 반응에 료한은 저가 더 섭섭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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