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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비세스 메이커 (155)화 (155/251)

155화

“…….”

모짜렐라는 자신이 언제 툴툴거렸냐는 듯 입을 꾹 다물었다. 잠깐의 침묵 동안 하늘색 눈동자가 이리저리 바쁘게 움직였고 희연은 슬금슬금 총을 찾아 손을 움직였다.

총은 공격 속도가 빠르고 사정거리가 길다는 장점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그것도 손에 들고 있을 때나 발휘되는 장점이었다.

정석 힐러로서 언제나 지팡이를 손에서 놓지 않는 모짜렐라가 스킬을 사용하는 것이 더 빨랐다.

“<떡갈나무의 분노>!”

“어…!”

평평했던 땅에서 새하얀 나무가 빠르게 자라나더니 희연의 다리에 뿌리가 엉켜 들었다. 이전에 땃쥐 미를 잡을 때 마리아가 사용하던 스킬이었다. 뒤늦게나마 벗어나기 위해 움직였지만 희연은 옥죄어 오는 뿌리에 걸려 그대로 넘어지고 말았다.

“모짜렐라 님! 아니, 치즈 님!”

“치즈라 부르지 마요!”

쓸데없는 말에만 착실히 대답한 모짜렐라는 그대로 온실을 빠져나가기 위해 달리기 시작했다. 올스텟 마력 투자, 정석 힐러의 달리기는 희연보다도 느렸지만 그녀는 묶인 상태였다.

아무리 애써도 뿌리에서 벗어날 수 없음을 깨닫자마자 희연은 기꺼이 치사해지기를 택했다.

“닉 님!”

멀리서 나무에 물을 주고 있었다 뿐이지 처음부터 모든 상황을 관망하고 있던 닉은 가벼운 손짓만으로 모짜렐라를 제압했다. 닉의 옆에서 꼬리를 살랑이고 있던 녜디아가 모짜렐라에게로 달려든 것이다.

“악…! 야, 저리 가! 뼈 누르지 마! 진짜 치사하게, 끼어드는 게 어딨어요!”

녜디아에게 잡혀 땅을 구르게 된 모짜렐라는 쭉쭉 닳는 피에 도망갈 생각도 못 하고 자가 회복하는 것에 집중했다. 문제는 희연도 마찬가지라는 점이었다.

옥죄는 뿌리는 발을 묶을 뿐만 아니라 미약하지만 지속적인 피해도 주었다.

스스로를 치료하며 상황을 살피던 희연은 이대로면 끝이 안 난다는 생각에 총구를 제 머리에서 모짜렐라 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이렇게 된 거 모짜렐라를 빈사 상태로 만들어 도망가지 못하게 하기로 결정을 내린 것이다.

“<회개하세요>, <회개하세요>, <람쥐썬더!!!>, <람쥐썬더!!!>, <람쥐썬더!!!>!”

“아, 진짜…! <치유의 빛>!”

모짜렐라는 회복량 자체가 동레벨의 힐러보다 뛰어났다. 희연 역시도 공격 속도 면에서는 발군이었다. 희연이 빠른 속도로 공격을 가하면 모짜렐라는 스킬의 쿨타임이 돌 때마다 회복을 했다. 정석 힐러와 공속 메타 힐러의 싸움은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저들만의 치열한 싸움을 하느라 바쁜 두 힐러를 보며 닉은 그제야 물뿌리개를 거두었다. 둘이 싸워봤자 결판은 나지 않을 것 같다는 게 닉의 판단이었고 실제로도 그랬다.

저대로 두면 본인들만 지칠 거라는 생각에 그는 나서서 싸움을 말리기로 했다.

“루로. <서리 숨결>.”

먓!

루로의 입에서 흘러나온 냉기에 머리가 식다 못해 온몸에 서리가 낀 뒤에야 희연과 모짜렐라는 의미 없는 싸움을 그만뒀다. 사실 둘 다 얼어서 못 움직이고 피가 닳아 빈사 상태에 이르렀기에 강제로 중단된 것에 가까웠다.

“그만 싸워요.”

닉의 말에 희연과 모짜렐라는 답하지 못하고 앓는 소리만 냈다. 그러나 닉은 안 싸우고, 안 도망가겠다는 약속을 기어이 받아낸 다음에야 동결 상태를 풀어주었다. 각각 입안에 포션을 넣어주는 것도 잊지 않았다.

상태 이상, 동상의 후유증으로 덜덜 떠는 두 힐러를 녜디아의 품속에 밀어 넣고 그 위에 메우메우를 앉혀 뒷수습을 한 뒤에야 닉은 희연의 잘못된 선택에 관하여도 이야기했다.

“조금 전에 사용한 공격 스킬은 확률적으로 마비를 걸고 발동 속도가 빠르기는 하지만 공격력 자체가 낮아서 안 쓰는 게 좋아요.”

“람쥐썬더요? 어쩐지….”

모짜렐라가 전류가 흐르는 도토리를 그렇게 많이 맞았음에도 멀쩡했던 이유가 있었다. 희연은 덜덜 떨면서도 닉의 말에 긍정의 뜻을 담아 고개를 끄덕였다.

통각 수치는 낮아도 추위 같은 감각은 그대로 느꼈고, 상태 이상이 풀려도 추위나 더위 같은 감각은 바로 끝나는 게 아니었다.

희연과 모짜렐라는 꾸물거리며 녜디아와 메우메우의 품속에 더 파고들었다. 그 모습에 닉은 얼리는 건 좀 너무했었나, 하는 생각을 했다. 힐러는 너무 약했다.

추위가 좀 가신 뒤에야 두 사람은 다시 대화를 이어나갈 수 있었다.

“마담이 말해준 거죠?”

“…….”

“진짜구나….”

희연의 시선은 메우메우의 구름 같은 털 속 사이를 헤집고 다니는 악령이와 넬에게 향해 있었지만 어쩐지 모짜렐라는 그녀가 자신을 보고 있는 것 같은 기분을 느꼈다.

그는 결국 사실을 털어놓았다.

“그 사람, 그러니까 마리아가 정보상한테서 정보를 샀어요. 난 그냥 옆에 있다가 얼결에 같이 들은 거고요.”

“저 죽일 계획이래요?”

“그건 잘 모르지만… 여차하면 그럴 수도 있겠죠.”

희연은 눈을 데굴데굴 굴리며 이전에 보았던 마리아의 모습을 떠올렸다. 힐러라는 것이 무색하게도 강했다. 힘, 민첩, 경험. 그 어느 것 하나 부족하지 않았다.

“역시 힘을 찍었어야 했나?”

“뭐라는 거예요.”

바로 옆에서 핀잔이 돌아왔지만 희연은 못 들은 척했다. 마리아를 어떻게 상대해야 하나 고민하기에도 바빴기 때문이다.

가장 쉬운 방법은 몸을 사리는 것이다. 이전에 마담이 들려준 이야기와 모짜렐라의 말을 종합해 결론을 내리면 마리아가 원하는 바가 무엇인지는 쉽게 알 수 있었다.

그녀는 메인 퀘스트의 선구자가 본인이기를 바랐다. 그 조건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일단 현재의 선구자인 희연의 발을 묶어야 했다. 가장 쉬운 방법은 희연을 계속 죽임으로써 게임 진행을 하지 못하게 막는 거였다.

희연은 마리아가 무서워서라도 피해 다닐 의향이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아니었다. 적어도 당장은 지금보다 더 몸 사릴 수는 없었다. 악령이의 메인 퀘스트 때문이라도, 악마와의 내기를 끝내기 위해서라도 그럴 수는 없었다.

희연은 모짜렐라를 돌아보았다. 그는 케이아일과 친구들 파티 때와는 비교 못 할 고급스럽고 화려한 신관복을 입고 있었다. 또한 그때는 사용하지 못하던 스킬까지 사용했다. 희연은 아직 사용하지 못하는 스킬이기도 했다.

“레벨 몇인지 물어봐도 돼요?”

“63이요.”

현재 희연의 레벨은 42였다.

<이름 없는 자들의 설움> 던전을 돌 때도 모짜렐라가 더 레벨이 높았지만 이렇게까지 차이가 나지는 않았다. 그만큼 희연은 의도했든 아니든 평소에도 몸 사리는 생활을 했다는 뜻이다.

솔직히 말하자면, 희연은 레이드도 안 돌았고 던전도 그 이후로는 돈 적이 없었다. 사냥은 마스커레이드에 가기 직전에나 사람들에게 치여 죽는 건 피하고 싶어 아주 잠깐 했다.

지금까지 게임을 하면서 이따금 하게 된 스토리성 퀘스트가 아니었다면 그녀는 경험치를 얻을 구석도 없었다고 봐도 무방했다. 지금의 레벨에 도달한 게 용하다는 뜻이다.

상태 창을 불러온 희연은 여전히 새빨갛게 물든 저주를 속으로 읊은 끝에 결론을 내렸다.

“어쩔 수 없죠. 일단은 신경 안 쓸래요.”

메인 퀘스트를 깨려면 움직여야 했고, 원활하게 움직이기 위해서는 악마의 저주부터 해결해야 했다. 한참의 고민 끝에 나온 결과가 외면이라는 점에 모짜렐라는 인상을 찡그렸다.

“그러다가 훅 가도 몰라요.”

“그럴지도 모르지만…. 그때는 킹 님이 복수해주지 않을까요?”

희연은 닉을 바라보았고, 닉은 짧게 고개를 끄덕여 긍정을 표했다. 희연은 그것 보라며 웃었다. 모짜렐라는 더더욱 마음에 안 든다는 표정을 지었지만 마땅한 해결책이 없다는 건 그 역시도 알고 있었다.

“몰라요. 알아서 해요.”

“그래도 걱정해줘서 고마워요.”

“걱정한 적 없어요!”

“그렇구나.”

모짜렐라는 짜증 난다는 듯 발을 굴렀다. 그 탓에 들썩이게 된 메우메우가 불만스러운 울음소리를 낸 뒤 하늘로 날아가 버렸다. 떠나버린 구름 양의 온기가 아쉽기는 했지만 마침 몸이 다 녹았기에 희연도 모짜렐라도 미련 없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할 말도 끝났고 억지로 끌고 온 장본인인 마리아도 떠났으니 희연은 모짜렐라가 이 길로 그의 길드로 돌아가리라 생각했다. 그러나 그런 희연의 예상과 달리 모짜렐라는 한참을 미적거렸다.

“혹시 더 할 말 있어요?”

조심스러운 희연의 물음에 모짜렐라는 인상을 확 찡그리며 말했다.

“…던전 안 가요?”

“네? 어… 굳이?”

“보스 잡으러는요.”

“저 보스 잡아본 적이 없는데….”

“사냥.”

“사냥… 나중에 킹 님이 추천하는 곳에 가려고요. 이 근처에선 좀….”

뭘 말하든 미적지근한 희연의 반응에 모짜렐라는 다시 버럭 소리를 높였다.

“하는 게 뭐예요!”

“저 하는 거 많아요! 많았어요 계속!”

남들 다 하는 걸 안 해서 그렇지 희연은 정말 바쁘게 살았다. 그러나 그걸 일일이 설명할 수도 없는 노릇이라 말뿐인 주장을 내세울 수밖에 없었다.

티격태격 다시 의미 없는 싸움을 하는 두 사람의 모습에 닉은 다시 중재에 나섰다.

“미안하다는 뜻으로 뭐든 도와주고 싶어서 그러는 것 같은데요.”

“킹 님 친구분이 저 노리는 거요? 그거 안 미안해도 되는데요.”

“안 미안하거든요!”

“…루로.”

“미안해도 돼요.”

“나도 미안한 것 같아요.”

닉의 부름에 루로가 고개를 들자 희연과 모짜렐라는 빠르게 악수를 나눴다. 둘 다 다시 동상 상태로 돌아가고 싶지는 않아서였다.

희연은 조금 늦게 자신의 말이 뭔가 이상했다는 걸 깨달았지만 상대가 지적하지 않아 그녀 역시도 넘어가기로 했다.

어찌 됐든 희연에게 미안하게 된 모짜렐라는 그 감정을 빠르게 풀고 싶어 했다.

그러나 희연은 던전도, 사냥도, 레이드도 시큰둥했고 그런 방향으로 도움을 주는 건 의미가 없다 여긴 모짜렐라는 결국 자신의 길드 마스터와 같은 방식으로 접근하기에 이르렀다.

“필요하거나 갖고 싶은 건요? 그건 있죠? 물욕도 없단 식으로 말하기만 해봐요.”

“당연히 물욕이 없지는 않죠. 그렇지만… 치즈 님한테는 아무것도 안 받을 거예요.”

희연의 거절은 말 그대로의 의미였다. 이름 없는 그분이나 킹스메이커가 쥐여주는 값진 것들을 거절하는 것과는 다른 이유였다.

만약 모짜렐라에게서 뭐든 받으면 이후 그에 대한 대가를 치러야 할지도 모른다는 걱정 때문에라도 희연은 그에게서 뭐든 간에 받지 않을 생각이었다.

싫다 싫다 티를 내도 결국 모짜렐라는 마리아와 같은 길드이고 그녀와 더 많은 시간을 보내는 사람이라는 사실은 변하지 않기 때문이었다.

적어도 마리아가 더 이상 그녀를 노리지 않는다는 확답을 받을 때까진 어느 한쪽이 손해 보는 것 같은 거래는 이뤄지지 않을 것이다.

웃지 않고 진지하게 말하는 희연의 모습에 모짜렐라 역시 무언가 깨달은 바가 있는지 입을 꾹 다물었다.

은근히 불같은 성격인 모짜렐라가 축 처진 모습을 보이자 희연은 어쩔 수 없다는 듯 그제야 슬며시 웃었다. 그녀는 잔정 많은 사람을 싫어하지 않았고, 싫어하지도 않는 사람에게 냉정하게 대하는 건 못 할 짓이라 여겼다.

“저 천 사러 에빌론에 갈 생각인데 그거 같이 골라주는 건 받은 거로 안 쳐줄 거죠?”

“…그렇게 양아치 같은 짓은 안 하거든요.”

툴툴거리며 말하긴 했지만 안 간다는 말은 아니었다.

“진짜 솔직하지 못하다….”

“지금 뭐라고 했어요?”

“닉 님도 같이 가실래요?”

희연의 부름에 닉은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고양이들처럼 툭하면 자잘하게 싸우는 두 힐러 사이에 끼고 싶지 않아서였다.

닉의 거절에 아쉬워하던 희연은 문득 든 생각에 모짜렐라를 다시 돌아보았다.

“아! 그런데 치즈 님은 에빌론까지 어떻게 가요? 여기 있는 길드 포탈은 못 쓰잖아요.”

“나도 길드 있거든요? 거기로 이동해서 포탈기 쓰면 돼요. 그리고 아까부터 은근슬쩍 치즈라고 부르는데 그렇게 부르지 말죠?”

“눈오리라고 불러도 돼요.”

“그쪽은 원래 그렇게 불렸잖아요!”

한참 설전이 오고 간 끝에 결국 모짜렐라가 포기하는 것으로 결론이 났다.

“도대체가 왜 다들 치즈라고 못 불러서 안달이야 진짜….”

“반응이 재미있어서 아닐까요?”

“…일부러 내 반응 보려고 그렇게 말하는 거죠?”

“글… 쎄요?”

“맞잖아…!”

희연은 모짜렐라의 반응에 결국 소리 내어 웃었다. 모짜렐라는 웃지 말라며 희연의 팔을 붙잡고 흔들었지만 놀랍게도 소용이 없었다. 레벨은 낮아도 정석 힐러보다는 희연이 더 힘이 좋았던 것이다.

그 사실이 왠지 모르게 더 웃겨 희연은 거의 흐느끼다시피 웃었고, 악령이가 이상하다며 그녀의 목에 매달린 뒤에야 겨우 진정할 수 있었다.

그사이 골이 난 모짜렐라는 무척이나 불량한 자세로 나무 둥치에 앉아 희연에게 거리를 두었다. 그 모습에 또 웃음이 나올까 싶어 희연은 닉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눈이 마주친 닉은 묘한 눈길로 희연을 보고 있었다.

“왜 그렇게 놀려요?”

순수한 궁금증이 담긴 닉의 질문에 희연은 그제야 멋쩍어졌다. 그녀는 으르렁거리듯 인상을 확 구긴 모짜렐라를 한 번 힐끔 쳐다보고는 닉에게만 들릴 작은 목소리로 답했다.

“일부러 그런 건 아니에요. 전에는 안 이랬고요. 아니라고 우기지만 미안하다는 티가 자꾸 나서 더 그러는 것 같긴 해요.”

던전에서 만났을 때의 모짜렐라는 파티의 리더였고 상황 파악이 빠른 실력 있는 힐러였다.

그러나 사적인 상황에서 만나게 된 모짜렐라는 매사 투덜거리긴 해도 은근히 정이 많은 사람이었다. 끝내 특성 퀘스트를 넘겨준 것도 그런 성격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희연은 그런 모짜렐라가 싫지 않았다.

자리에서 일어난 희연은 모짜렐라에게로 걸어가 그에게 물었다.

“이렇게 된 거 그냥 말 놓을까요?”

조금 전 흥분해서 냅다 말을 놔 버린 자신의 행동을 두고 하는 말에 모짜렐라는 마음에 안 든다는 표정을 지었다. 몇 번 보지 못했지만 희연은 그의 성격을 생각보다 잘 파악했다.

모짜렐라는 지는 것을 싫어했다.

“나중에 나보다 나이 많네 어쩌네 하면서 말 까라고 한 거 취소하기만 해봐… 요.”

“…….”

“…웃지 마.”

희연과 모짜렐라가 에빌론에 가기까지는 조금 시간이 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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