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뉴비세스 메이커 (157)화 (157/251)

157화

희연은 그 모습에도 경계를 풀지 않았다. 여전히 굳은 얼굴로 총을 존성대명의 이마에 가까이 한 뒤 입을 열었다.

“일단, 여기는 어디예요?”

“윈의 길드 하우스! 정확한 위치는 수도 딜라일의 땅값 비싸기로 유명한 제1구역 론도의 거리!”

“…….”

그게 어디지…?

수도 딜라일 빼고는 희연은 다 못 알아들었다. 모른다는 티를 내서 좋을 것은 없을 것 같았기에 그녀는 일단 총을 더 들이밀며 다른 질문을 이어나갔다.

“왜 납치했어요?”

“그거야 희준이가 시켜서….”

“그러니까! 왜 시켰냐고요. 아무 생각 없이 다짜고짜 데리고 오라고 한 건 아닐 거 아니에요!”

백희준이 머릿속으로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희연은 알 수가 없었다. 설마하니 어젯밤에 이어 아침에도 저를 놀렸다는 이유만으로 잡아 와라 한 것은 아니겠거니 여기며 희연은 대답을 재촉했다.

“그건 나도 잘….”

그러나 존성대명은 말을 피했다. 희연은 제 위협이 위협처럼 안 느껴지는 건가 싶어 확실한 위험 물질인 악의의 응집을 더 가까이 들이밀었다.

“백희준 어딨어요!”

“너희 오빠는… 던전 갔는데….”

“…….”

희연은 저도 모르게 총을 잡은 손에 힘이 들어갔다. 그녀를 납치하라 친구에게 시켜놓고 본인은 던전을 갔다는 소식에 어이가 없어 웃음도 나지 않았다.

“이 와중에 던전은 가야겠다고 해요?”

“일단 들어 봐! 이번 신규 던전이 얼마 만에 나온 건지 알면….”

탕-!

존성대명은 바로 목 옆을 스치고 지나간 공격에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는 속으로 다시 백희준을 욕했다.

“전 그런 거 모르고, 솔직히 관심도 없어요.”

“…….”

“어쨌든, 백희준이 저 납치하라고 한 건 확실하다는 거죠?”

“그렇지…!”

희연은 눈살을 찌푸리며 작은 목소리로 이것저것 시도를 해보았다. 일단, 길드 귀환 스킬은 사용할 수 없었다. 다른 길드의 개인 공간에 들어와 있는 것 때문이었다.

백희준에게 개인 메시지를 보내자니 희연은 제 오빠와 친구 관계가 아니었기에 불가했다.

“도대체 무슨 생각이야….”

백희준은 고작 어제 못다 한 대화 좀 하자고 이런 일을 벌일 사람은 아니었다. 좀 놀렸다고 괴롭힐 목적으로 이런 짓 할 사람도 아니었다.

목적 없인 일을 벌이지 않는 인간이 이렇게까지 한다는 것은 분명 무슨 꿍꿍이가 있다는 뜻이었다. 자신을 납치 감금한 뒤에야 실행해야 하는 계획이 뭐가 있을까 생각해보던 희연의 표정이 점차 굳어갔다.

“…….”

희연은 들고 있던 악의의 응집을 존성대명의 어깨 위로 내리쳐 깨트렸다. 문득, 불길한 생각이 들어서였다.

“우왁…!”

기어이 온갖 저주 합병 세트를 선물 받게 된 존성대명의 비명을 들으면서도 희연은 흔들리지 않고 총을 쏠 준비를 맞췄다.

“이번에 새로 나온 던전. 파티 몇 명까지예요?”

“여, 여섯…!”

“그러면 던전 간 사람들 제외하고 남은 윈의 길드원 수는요?”

“…….”

“질문 바꿀게요. 지금 남은 길드원으로… 뭔가 할 거예요?”

“일단은 아니, 라고 답할 수 있기는 한데….”

일단?

애매한 답에 희연의 얼굴에 짜증스러운 기색이 흐르던 그때였다.

[신규 던전 <메마른 땅의 귀인>이 최초 클리어되었습니다!]

“아….”

킹스메이커가 갔던 던전이 공략되었다는 소식이었다. 존성대명 역시 그 문구를 보았는지 그의 눈이 허공 쪽으로 움직였다.

희연이 킹스메이커에게 개인 채팅을 보낼까 생각하며 주춤거리던 그 잠깐의 틈을 존성대명은 놓치지 않았다.

“미안!”

“아…!”

존성대명은 희연의 손을 걷어참으로써 그녀의 손에서 무기를 떨어트렸다. 다만 그가 예상 못 했던 것은 희연이 가진 총이 하나가 아니었다는 점이다.

“<독독>!”

“어라…?”

뭔가 잘못됐음을 깨달았을 땐, 존성대명은 이미 상태 이상 빈사로 바닥을 구르게 된 뒤였다. 희연은 그 모습에 혀를 차며 떨어트린 총을 주웠다.

“왜에… 총이, 두, 자루우….”

“궁금해하지 마세요.”

단호하게 말하면서도 희연은 도박성 계획이 성공했음에 속으로 크게 안도했다.

말이 랜덤이지 <독독> 스킬은 제물로 가져가는 피가 99% 확정이 아닌가 싶을 정도의 확률을 보여주었다. 두 번 썼는데 두 번 다 상대를 빈사로 만들었다.

파티 상태에서만 가능하다는 점이 아이러니하긴 했지만 <독독>은 레벨을 무시하고 승패를 가르게 만드는 아주 무서운 스킬이었다.

미스가 뜨지 않는 이상 한 대만 맞아도 정말 죽을 위기에 처한 존성대명이 다급하게 입을 열었다.

“자아… 까, 마안….”

하지만 희연은 이미 존성대명을 별님의 곁으로 보내고 이 길드 하우스를 탈주하기로 마음먹은 뒤였다. 아무리 레벨이 차이 나도 버프 걸고 스킬 쓰면 된다는 마음가짐으로 희연은 총을 들어 올렸다.

“원망은 오빠한테 해요.”

“아, 안돼…!”

탕-!

총소리가 울려 퍼졌다. 그러나 존성대명은 죽지 않았다. 희연은 떨어트린 총을 멍하니 바라보다 뒤를 돌아보았다.

“…료한 님.”

급하게 뛰어온 것인지 연신 숨을 고르면서도 료한의 조준은 완벽했다. 정확히 희연이 들고 있는 총을 노려 떨어트리게 한 것이다.

바닥에 굴러다니는 총을 악령이가 챙기는 것을 확인한 희연은 남은 총 한 자루를 들어 료한에게 겨누며 외쳤다.

“오빠 편들지 마세요!”

“편드는 거 아니에요.”

“이게 편드는 거예요!”

료한은 희연을 공격할 의지는 없다는 듯 총을 들지 않은 반대 손을 들어 올렸다. 그러나 여전히 그의 총구 끝이 향하는 곳은 희연이었다.

희연은 속으로 료한의 레벨을 가늠해 보았다. 모짜렐라와 비슷하거나 그보다 더 높을 수도 있었다. 어찌 됐든 그녀가 이길 가능성은 낮았다.

잠시 고민하던 희연은 두 사람이 대치하는 사이 슬금슬금 기어서 도망가던 존성대명을 붙잡아 그의 머리에 총을 들이밀었다.

“총 안 내리면 쏠 거예요!”

“나아…는, 왜….”

료한은 고민된다는 듯 눈을 굴렸다. 그는 이 상황이 불편하다는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 반면 존성대명은 퍼렇게 질린 얼굴로도 남매 싸움에 끼게 된 자신의 처지를 비관했다.

“백희준… 죽여, 버, 릴 거야….”

“퍽이나 그 꼴로.”

“…!”

묘한 대치에 조용하던 방안으로 훅 끼어든 말소리는 소름 끼칠 정도로 담담했다. 그 소리에 화들짝 놀란 희연과 료한의 모습과는 대비되어 더더욱 그랬다.

하마터면 실수로 존성대명을 별님 곁으로 보낼 뻔한 희연은 방아쇠에서 손을 뗀 뒤 뒤를 돌아보았다. 백희준이 다리를 꼰 채 창가에 걸터앉아 있었다.

언제부터 왔는지 알 수 없었지만 희연은 드디어 이 일의 원흉이 등장했다는 점에 집중했다. 이제는 어설픈 협박의 용도로 쓸 필요가 없게 된 존성대명을 놔준 그녀는 총을 백희준 쪽으로 돌리며 입을 열었다.

“왜 이러는 건데!”

“뭐가.”

“아무 생각 없이 이런 일 한 거 아니잖아!”

백희준은 원래부터가 그랬다. 무언가 결정을 내릴 때는 자신의 계획에 방해될 만한 요소를 모두 묶어 둔 뒤에 움직였다. 그런 그의 성정은 독선적이다, 라는 말을 들어도 무방할 정도였다.

그러고선 일이 모두 끝난 다음에야 자신의 행동을 최대한 중립적인 관점에서 설명하곤 했는데, 뭣 모르던 어린 시절이면 모를까 나이 좀 먹고 백희준이라는 사람이 익숙해진 희연은 사실 그 말 모두 변명과 궤변을 바탕으로 한다는 걸 이제는 알고 있었다.

“일단 들어 봐.”

“안 들어!”

즉, 그냥 안 듣는 게 나았다. 희연은 이번에 그가 묶어 두기로 한 방해 요소가 자신이라 확신했다. 그렇지 않고서야 고작 어제, 아침 좀 놀렸다는 이유만으로 이런 일을 벌였을 리가 없었다.

그리고 백희준이 희연을 묶어 둔 뒤에 할 만한 일이라고 하면, 정황상 하나밖에 없었다. 최근 들어 백희준이 매우 못마땅하게 여긴 일이 무엇인지 생각해보면 더더욱 말이다.

“던전에서 뭘 하고 나온 거야?”

“…쯧.”

백희준은 대놓고 혀를 찼다. 그 반응에 희연은 확실히 그가 일을 쳤구나 싶어 그제야 당황한 티를 냈다.

“진짜 뭘 한 거야? 왜 킹 님이랑 연락이 안 되냐고!”

“안 죽었어. 멀쩡히 살아 있고, 죽어도 마리아가 알아서 살려낼 거니까 진정해.”

희연의 귀에는 백희준의 말이 그가 킹스메이커가 죽을 정도의 일을 쳤다는 말로 들렸다.

핏기가 가시는 얼굴을 보며 백희준은 속으로 다시 혀를 찼다. 여기서 뭘 할지 말이라도 안 해주면 기절할 것 같은 그 얼굴에 백희준은 결국 제 계획을 말해주었다.

“빈집털이.”

“…?”

“길드전 할 거라고. 길드 대 길드 싸움. 공성전, 수성전. 길드끼리 전쟁.”

“아.”

덧붙이는 설명에 희연은 그제야 알아들었다. 그러니까 백희준은, 길드의 주요 인물 모두 없고 성을 지키는 건 닉 혼자뿐인 이 상황에서 우르르 몰려가 싸움을 걸어 길드 성을 꼴깍 삼키겠다는 매우 치사하고 악랄한 계획을 세웠다는 뜻이다.

“쓰레기….”

“네가 애타게 찾던 킹스메이커가 자주 써먹던 방법이야.”

“…….”

희연은 입을 꾹 다물고 조용히 백희준을 노려보았다. 백희준은 가소롭다는 듯이 코웃음 치더니 료한에게 가까이 오라 손짓했다.

“료한아. 얘 로그아웃 못 하게 계속 전투 상태 유지하고 있어.”

“네….”

지고지순한 료한은 백희준의 말에 반항도 못 하고 희연에게 총구를 돌렸다. 여차하면 게임에서 나가 백희준을 캡슐 밖으로 부를 생각을 했던 희연에겐 낭패인 일이었다.

“일어나 성대명.”

“포오셔어어언….”

백희준은 희연이 뭐라 하기도 전에 골골거리는 존성대명을 챙기더니 방을 나가버렸다. 어처구니가 없어 그 꼴을 지켜보기만 한 희연은 방문이 닫힌 뒤에야 료한을 돌아보았다.

“진짜 이럴 거예요?”

“…….”

여기서 더 료한에게 말해봤자 괜한 화풀이일 뿐이었다. 문제는 백희준은 희연이 이런 식으로 나올 거라는 걸 예상하고 료한을 붙였을 게 뻔하다는 점이었다.

“…백희준 짜증 나!”

결국 희연은 발을 구르며 짜증을 내다 자리에 주저앉았다. 어색하게 총을 들고 있는 료한에게도 그만하고 앉으라는 말을 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안 도망갈 테니까 그냥 앉아요.”

“…네.”

희연이 떨어트린 총을 질질 끌며 가져온 악령이도 그녀의 다리 위로 올라와 자리를 잡았다. 작은 천으로 돌돌 말린 넬 역시도 마찬가지였다.

아까는 백희준이 도발하듯 말하고, 예상 못 한 일이 줄줄이 일어나 당황해서 생각 못 했지만 지금은 머리가 제대로 돌아갔다. 그래서 희연은 사실 백희준의 길드 성 침공 작전이 그리 순탄하게만 흘러가지 않으리라는 걸 이제는 예상할 수 있었다.

길드 성에 혼자 있는 건 닉이었다.

그리고 닉의 직업은 대규모 팀킬 가능 망직, 1인 군단 테이머였다.

[길드 <윈>이 길드 <뉴비세스 메이커>에게 길드전을 선포합니다!]

***

평화롭게 온실 속 식물에 물을 주고 마지막으로 플리의 등에 난 꽃에도 물을 주던 닉이 이변을 알아챈 것은 그의 새 피피가 바깥 외출을 끝내고 돌아왔을 때였다.

피피는 마할라틴 숲을 날아다니며 몬스터나 돌연변이 동물들의 털을 채집하는 것을 즐겼다. 덕택에 닉은 피피가 살아남을 수 있도록 제법 높은 레벨까지 키워주어야 했다.

그러나 이는 몬스터로부터 살아남으라는 거였지 사람 머리까지 쥐어뜯어 오라는 의미는 아니었기에 피피의 입에 물린 낯선 머리카락을 발견한 닉은 오랜만에 제법 당혹스러움을 느껴야 했다.

“피피?”

삐로롱-

자신이 저지른 일이 마냥 즐겁다는 듯 울음소리를 낸 새는 닉의 머리카락에서 자라는 나뭇잎 하나를 뜯고는 제 둥지를 찾아 날아가 버렸다.

닉은 손안에 쥐어진 머리카락을 만지작거리다 스킬을 사용했다. 숲에 사람이 있다는 뜻은 그 사람이 침입자라는 의미였다.

“<시야 공유>.”

마할라틴 숲에는 동물도 몬스터도 많았다. 개중 닉이 테이밍하는 것을 성공한 개체 수 또한 적은 숫자는 아니었다. 닉은 평소에 그들을 자유롭게 풀어두었지만 숲에 이상이 생기거나 할 때는 눈으로써 적절하게 사용하곤 했다.

가장 최근에 사용한 거라고 해봤자 희연이 마할라틴 숲에 사냥을 나갔을 때 킹스메이커의 재촉에 못 이겨 쓴 게 전부였지만 말이다.

그래서 닉은, 제법 익숙한 얼굴들이 중무장을 하고 숲에 침입했음을 알았을 때 자신도 모르게 탄식을 뱉었다. 그와 동시에 닉의 앞에 낯설지만은 않은 문구가 떠올랐다.

[길드 <윈>이 길드 <뉴비세스 메이커>에게 길드전을 선포합니다!]

다른 사람 없이 홀로 수성전을 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잠시 고민하던 닉은 리라를 꺼낸 뒤 먼저 줄을 교체했다. 얇은 줄에 매달린 투명한 보석이 이슬처럼 반짝거렸다.

“루로.”

때마침 루로가 성 바깥을 날아다니며 산책을 즐기던 중이라 다행이라 생각하며 닉은 리라의 현을 튕겼다.

한편, 마할라틴 성, 뉴비세스 메이커의 길드 성 앞에 도달한 길드 윈은 넝쿨처럼 성에 매달린 거대한 드래곤을 보며 상황에 맞지 않는 감탄을 내뱉었다.

“테이머는 망직이지만 쟤만 보면 할 만하지 않나, 하는 생각 든다 진짜.”

“그니까. 어차피 인생은 한 방이라는데 낭만 쫓는 욜로 인생으로 살면 안 되나….”

“욜로 하려다 골로 간다. 내가 말했지. 낭만이 밥 안 먹여준다고. 쓸데없는 말들 하지 말고 무기 들어.”

백희준의 일침에 드래곤을 보고 열광했던 윈의 길드원들은 시무룩한 얼굴이 되었다. 그중에는 간신히 살아났다가 마할라틴 성으로 오는 길에 지나가던 피피에게 머리까지 쥐어뜯긴 존성대명 역시 있었다.

보기 싫게 입을 삐죽거리는 친구의 모습에 백희준은 질색했다.

“왜. 뭐.”

“남매 싸움 참 거하게도 한다 싶어서 그런다 왜.”

“남매 싸움은 무슨….”

누가 남매 싸움을 길드전으로 하냐 말하기는 했지만 백희준 역시 지금 이 상황이 그렇게만 보인다는 걸 확실히 인지하고 있기는 했다. 희연 역시 처음에는 어제, 오늘 놀린 건으로 빈정 상한 백희준이 길드전을 걸었다고 생각하고 있는 것처럼 말이다.

하지만 백희준은 진실로, 겨우 남매 싸움으로 길드전을 하는 게 아니었다.

“나랑 걔가 몇 살 차이인데 싸워. 내가 이 나이 먹고 애랑 싸우겠냐?”

“와, 네 동생 의견도 진짜 물어보고 싶게 만드는 발언이네.”

“집중이나 해.”

“그럼 길드전은 왜 걸었어? 너랑 킹스메이커 사이가 나쁘긴 하지만 이렇게 대놓고 싸우지는 않았잖아. 거기다가 하지도 않던 빈집털이까지 하고.”

“…….”

“야 근데.”

“집중하랬지.”

“아니, 들어 봐. 중요한 얘기야. 네 동생… 총을 쏘는 게 아니라 사람 때리는 데 쓰더라.”

처음으로 앞만 보던 백희준이 존성대명을 돌아보았다.

“…그건 또 뭔 소리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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