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8화
***
한창 마할라틴 성에서의 전투가 시작된 그 시각, 희연은 료한을 설득하고 있었다.
“들어보세요 료한 님.”
“이런 말 하면 듣지 말라고….”
“…짜증 나 백희준.”
물론 소용없었다.
그쯤에서 반쯤 포기하게 된 희연은 이젠 모르겠다는 식이 되었다. 그녀는 터덜터덜 걸어 창 앞에 서서 밖을 내다보았다. 그런 희연의 뒤를 료한은 약간의 거리를 두고 따라붙었는데 여전히 총구는 희연에게로 향해 있었다.
제 뒤를 따라오는 총의 존재에도 희연은 긴장하지 않았다. 료한이 진실로 공격할 생각은 없다는 걸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희연은 주위를 살피는 것에 집중했다.
이곳이 수도 딜라일이라던 존성대명의 말대로 창밖으로 보이는 풍경은 영 낯설지만은 않았다. 마스커레이드 때 루로를 타고 내려다본 풍경이었기 때문이다. 다만 위에서 내려다보던 그때와는 달리 지금은 전에는 보이지 않던 것들이 눈에 들어왔다.
에빌론은 제한된 땅에 높은 성벽을 두르고 그 안에 모든 것을 집어넣겠다는 계획을 세우고 만들어진 것 같은 도시였다. 높게 지어진 건물이 많았고 건물과 건물 사이의 거리가 제법 가까웠으며 그로 인해 온갖 샛길이 만들어졌다.
신전 같은 특수한 건물 외에는 모두 비슷한 느낌의 건물이 많았으며 사람들 간에 신분적 차별이라던가, 빈부 격차가 크게 느껴지지 않았다.
반면 수도 딜라일은 넓은 땅을 바탕으로 구역을 나눌 때 그 기준이 명확했다는 것이 느껴질 정도로 사람들의 빈부 격차가 생활하는 공간에서부터 노골적으로 차이가 났다.
제1구역 론도의 거리가 건물마다 거리가 제법 되고 길이 정갈하게 포장된 대신 조금 삭막한 구석이 있는 반면, 조금만 멀리 내다보면 보이는 구역은 알록달록한 지붕이 동화 속 풍경 같은 단층 주택이 주를 이루는 곳이었다.
그보다 더 멀리, 건물 꼭대기 층에서 내다봐도 잘 보이지 않는 더 먼 곳은 모든 것이 까맣고 때가 탄 것 같았다. 마치 풍요로운 도시의 치부인 것처럼 구석에 숨겨져 있어 자세히 보지 않으면 알아채기 힘들 정도였다.
빈부의 격차가 확연히 느껴지는 수도 딜라일의 구역별 공통점은 하나였다. 무슨 일을 겪은 것처럼 모두 반파된 구석들이 있다는 것이었다. 희연은 그 흔적들이 이전 몬스터 웨이브의 결과물이라는 것을 어렵지 않게 예상할 수 있었다.
희연이 수도 딜라일을 자세히 보는 이유는 도망갈 구석이 없나 살펴보기 위함이었다.
에흐테를 소환해 날아가기에는 료한의 무기가 총이라는 점이 걸렸다. 백희준의 길드 하우스를 벗어나 어딘가 숨은 뒤 길드 귀환 스킬을 사용하는 것이 가장 이상적인 방법이었다.
창밖으로 뛰어내리기만 해도 그녀의 계획은 절반 정도 성공하는 거였다. 다만 희연이 곧바로 실행에 옮기지 못하는 이유는 하나였는데, 이전에 뉴비 없지가 지형지물로 인한 피해는 장비로도 막지 못한다는 말을 한 것 때문이었다.
현재 그녀가 있는 방은 시드론의 궁전 테라스의 위치보다 높았고 몸이 그때보다 튼튼해진 것도 아니었기에 곧바로 뛰어내리는 것이 조금 망설여졌다.
희연이 고민하는 사이 료한은 그녀의 머릿속이 훤하다는 듯 창문을 닫아버렸다. 그에 희연의 표정은 저절로 찌푸려졌지만 료한은 아예 창 앞에 서서 희연의 접근마저 막았다.
그에 희연이 이참에 창문 말고 문으로 나갈까 고민하며 발을 떼려던 순간, 그녀는 료한의 뒤로 무언가가 바람을 타고 날아오는 것을 보았다.
“어….”
“?”
“료한 님!”
“네?”
료한을 자신에게 집중시키면서 희연은 빠르게 눈을 굴려 날아온 것의 정체를 확인했다. 그건 종이학을 타고 날아온 고양이 인형이었다. 메이드 인 킹스메이커 뜨개 인형 말이다.
희연에게는 잊을 수 없는 기억을 선사해 준 인형이기도 했다. 여전히 장난스러운 얼굴을 가진 고양이 인형을 바라보며 희연은 이전에 킹스메이커가 했던 말을 떠올렸다.
온갖 사고를 치는 고양이 인형을 만든 이유를 그녀는 이렇게 말했다. 공성전 할 때 상대측 열 받으라고 만든 인형이라고.
백희준은 말했다. 빈집털이를 즐기던 것은 원래 킹스메이커라고. 희연은 먼저 사실 확인에 들어갔다.
“료한 님. 오빠가 지금 마할라틴 성을 공격하러 간 거 맞죠?”
“일단은요.”
“그러면요… 그, 길드전을 할 때 서로 빈집털이하는 것도 가능해요?”
상식적으로, 자기 구역 버리고 상대 쪽 본거지를 똑같이 털어주겠다는 마음가짐을 갖는 경우가 흔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킹스메이커는 흔한 생각을 하고 사는 사람이 아니었다.
백희준의 함정에 빠져 자신이 부재한 사이 성이 공격당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남들의 생각 범위 안의 상식적인 선택을 할 것 같지 않다는 소리였다.
실제로 희연의 말에 료한은 멍한 표정으로 눈만 깜박였다. 그녀의 말이 이해되지 않는다는 얼굴이었다.
“보통은 빈집털이 당하는 중인 자신의 구역을 지키려고….”
냐옹!
“!”
자신의 말을 끊고 끼어드는 이질적인 고양이 울음소리에 깜짝 놀란 료한이 뒤를 돌아보았다. 그곳에는 어느새 바글바글 늘어난 고양이 인형들이 창문을 두들기며 눈을 빛내고 있었다. 료한이 방심한 틈을 놓치지 않고 희연은 총을 들었다.
탕-!
창문이 깨지며 그 틈새로 고양이 인형들이 침입하기 시작했다. 한때 희연의 속을 뒤집어 놓았던 고양이 인형은 제 친구들을 이끌고 더 화려하게 날뛰었다.
료한은 인형들로 인해 온갖 것이 깨지고 망가지고 날아가는 상황에 적응 못 하고 굳었다. 희연은 그런 료한에게 속으로 심심한 위로를 보내며 문은 활짝 열었다.
“잠깐….”
방 안의 것들을 모두 박살 낸 인형들은 거기에 만족하지 않고 더 많은 것들을 부수기 위해 문밖으로 달려 나갔다. 백희준과 함께 모두 떠난 건 아니었는지 윈의 길드 하우스 이곳저곳에서 곡소리가 울려 퍼지기 시작했다.
짐작도 했고 이미 알고도 있었지만 고양이 인형의 용도가 정말 이런 용도였다는 점에 희연은 묘한 표정을 지었다. 백희준의 명령에 그녀를 붙잡는 것도 잊고 멍하니 서 있는 료한을 보니 더더욱 그랬다.
폴짝 달려와 옷자락을 붙잡는 악령이와 넬을 확인한 희연은 더 지체할 것도 없이 곧바로 창문으로 뛰어내렸다. 넋이 나가 있던 료한은 한 박자 늦게 그런 희연을 붙잡으려고 했지만 이미 늦었다.
“에흐테…!”
창문으로 뛰어내리기 직전 희연은 확실하게 료한의 총을 눈에 담았다. 소환된 유니콘의 위로 안착하자마자 희연은 총을 들었고 한 번의 망설임 없이 방아쇠를 당겼다.
“윽…!”
총격을 버틸 만큼 료한은 힘 스텟이 좋지는 않았다. 하나 있는 무기를 떨어트린 료한을 보며 희연은 이제 됐다며 웃었지만 그것도 잠깐뿐이었다. 료한은 정말 당황한 얼굴로 무기도 챙기지 않고 희연에게 손을 뻗었다.
“그쪽으로 가면 안 돼요!”
“…!”
무언가 잘못됐다는 것을 희연이 깨달았을 때는, 그녀의 귀에도 낯선 금속음이 들린 뒤였다. 마치 총의 장전을 하는 것 같은 그 소리의 근원지는 그녀의 머리 위에서부터 시작되었다.
윈의 길드 하우스 꼭대기에는 거대한 석궁 발리스타가 여럿 설치되어 있었다. 놀랍게도 인력이 필요 없는 자동화 탑재 기능이 있는 그 거대한 무기는 모두 희연을 노리고 있었고, 그녀가 그것들 모두를 피하기엔 거리가 너무 가까웠다.
이래서 창문으로 못 나가게 했구나….
희연은 뒤늦게 료한이 창 앞을 막았던 이유를 깨달았다.
장전이 끝난 발리스타는 망설임 없이 모조리 희연을 향해 발사되었다. 자신을 향해 쏟아져 내리는 거대한 화살 비를 보며 반사적으로 희연의 눈가가 움찔거렸다.
그런 그녀의 눈이 끝까지 감기지 않았던 것은 바람 소리 사이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서였다.
“전부터 말하려고 했는데, 위험할 때 눈 감는 거 아니에요 오리 님.”
“…!”
희연이 고개를 들었을 때 그녀가 보게 된 건 모조리 반 토막 나 맥없이 우수수 떨어지는 화살과 검은 낫을 휘두르던 자세 그대로 추락하기 시작한 킹스메이커였다.
킹스메이커는 그 날랜 몸으로 떨어지는 화살의 잔해를 밟으며 뛰어오르더니 료한이 서 있던 창가에 발을 디디는 것에 성공했다.
“뒤로.”
그러고는 검은 낫을 휘둘러 창가를 완전히 부수어 입구를 새로 만들어냈다. 여유롭게 윈의 길드 하우스에 입성한 킹스메이커는 그제야 뒤돌아서며 희연에게 활짝 웃어 보였다.
“오리 님, 잘 있었죠?”
“어… 네에….”
“오랜만에 이희준이 재밌는 짓 좀 벌여서 오는 게 조금 늦었어요!”
부서진 잔해를 배경으로 두고 아무렇지 않은 일상 이야기를 하는 것처럼 구는 킹스메이커의 모습은 기이할 정도로 혼자 분리된 것 같은 모습이었다.
희연은 일단 에흐테에서 내려와 다시 방 안으로 들어섰다. 마지막에 나름 자비를 베푼 거였는지 료한은 상태가 썩 좋아 보이지는 않았지만 용케 별님을 보러 떠나지 않았다.
앓는 소리를 내는 료한의 모습에 주춤거리는 희연을 보며 킹스메이커는 입을 열었다.
“오리 님, 하나만 물어볼게요.”
“네? 뭘요?”
“혹시나 해서요. 만약 내가 이희준을 친절하게 별님 앞으로 보내 버리면 나 미워할 거예요?”
킹스메이커는 질문하면서도 그러지 말라 선을 긋는 것처럼 답지 않게 불쌍한 척하는 표정을 지었다. 친절하게 별님 앞으로 보내 버린다는 말 자체가 성립되지 않는 말이라는 점은 신경 쓰지 않는 것 같았다.
희연은 조금 당황한 얼굴로 킹스메이커를 바라보다 천천히 대답했다.
“안 미워할걸요…?”
“그래요? 잘 됐다. 다행이네.”
희연은 킹스메이커가 진심으로 하는 소리인지 긴가민가했다. 애초 그녀는 남이 자신을 싫어한다거나 좋아한다거나 하는 기호에 관하여 관심 없는 사람 같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검은 낫에 기댄 채 희연을 물끄러미 바라보는 킹스메이커는 더 이상 웃고 있지 않아서 다행이라고 말하는 게 진심인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그것도 잠깐이었다. 킹스메이커는 언제 자신이 무표정했느냐는 듯 방긋방긋 웃음 지었다.
“아, 물론 진짜로 이희준을 죽이겠다는 뜻은 아니었어요. 무슨 생각으로 일 쳤는지도 알 것 같거든요. 그러니 오늘은 봐 주려고요.”
“?”
“간단하게 이희준 길드 기둥 서너 개만 뽑아가는 거로 오늘 일은 봐줘야겠다!”
그러고선 다시 낫을 휘두르기 시작했다. 희연은 차마 료한을 그 난장판 한복판에서 떨게 만들 수는 없어 빈사 상태에 빠진 그를 질질 끌어 안전한 곳으로 이동시켜 주었다.
“하하하핫하핫하핫…!”
솔직히 말해 웃으면서 온갖 곳을 향해 낫질하는 킹스메이커의 모습은 무척이나 광적이었다. 길드 하우스에 남아있던 윈의 길드원들이 달려왔지만 아무도 킹스메이커의 앞을 막지 못했다.
낫질 한 번에 우수수 떨어져 나가는 사람들을 뒤에서 바라보던 희연은 그녀의 낫질이 잠시 멈추었을 때가 되어서야 궁금했던 것을 질문했다.
“그런데 혼자서 오신 거예요?”
“아이 참, 오리 님도.”
킹스메이커는 무척이나 섭섭하다는 얼굴로 희연에게 답했다.
“주요 인물 다 빠진 길드 하나 털러 오는데 나 혼자면 됐지 뭐 하러 줄줄이 이끌고 와요. 멋없게.”
“…그렇구나.”
자연스럽게 백희준을 저격한 킹스메이커는 다시 광란의 낫질을 시작했다. 기둥을 뽑아 먹겠다는 말이 빈말이 아님을 보여주는 그 모습에 희연은 잠시 백희준이 안됐다는 생각을 하긴 했지만 애초에 그가 자초한 일이니 이 정도 대가는 괜찮다는 결론을 내렸다.
만족할 만큼 낫질을 끝낸 킹스메이커는 상쾌한 얼굴로 돌아서며 희연에게 손을 내밀었다.
“자 그러면 이제 백희준에게 공략당하고 있는 우리 성을 다시 탈취하러 가 볼까요?”
곤란하다는 듯 웃긴 했지만 희연은 손을 잡는 것을 망설이지 않았다.
***
“이희준은 독선적인 경향이 있죠. 자기 확신적이고, 계획대로 돌아가는 걸 좋아하는 컨트롤 프릭 같은 경향도 있어요. 그래서인지 다른 사람의 의견을 수용하긴 하지만 고집 센 건 어쩌지를 못해요.”
“되게 잘 아시네요.”
“성격을 파악하는 건 싸울 때 제법 도움이 되니까요.”
킹스메이커와 희연은 에흐테를 타고 마할라틴 숲을 이동하는 중이었다. 처음에 희연은 킹스메이커의 이동 수단 선택에 의문을 가졌다. 길드 귀환 스킬이 있음에도 시간이 오래 걸리는 비효율적인 방법을 택한 것이 이해되지 않아서였다.
그러나 그녀와 이야기할수록 희연은 왜 킹스메이커가 이런 방법을 택했는지 이해되었다.
“방해 요소의 발을 묶어두고 움직이는 건 이희준이 타렌 할 때부터 갖고 있던 버릇이죠. 하지만 그런 건 인원, 스킬, 아이템, 시간, 공간이 제한될 때나 써먹어야지 온갖 변수가 즐비하는 게임에서 써먹기엔 썩 좋은 전략이 아니거든요.”
“…….”
“아무리 날고 긴다 해도 방심하면 안 되는 이유예요. 타렌에선 뒤통수치기 따윈 없었겠지만 메르헨 호라이즌은 다르죠. 엄연히 종목이 다른 게임인데 이번 건 백희준이 너무 섣부르게 행동했어요.”
마지막 말에는 희연도 동의했다. 섣부른 행동. 이번 납치부터 빈집털이, 길드전까지 모두 백희준이 주도했다고 보기엔 너무 서두른 감이 있었다.
“진짜 놀린 것 때문에 삐져서 그런 건가…?”
“앗! 루나 백작 했구나?”
“네에….”
희연은 킹스메이커가 그렇게 소리 내서 웃는 건 처음 봤다. 너무 웃느라 에흐테에서 떨어질 뻔하기까지 한 뒤로도 킹스메이커는 한참을 진정하지 못했다.
“그런데 우리 조금 서둘러야 하지 않을까요? 오빠가 길드전 한다고 떠난 지 제법 됐는데….”
“아… 어차피 아직 길드 성 안으로는 발도 못 들이밀었을 거예요.”
“?”
여전히 웃음기가 가시지 않은 목소리로 킹스메이커는 노래하듯 말했다.
“생각해 봐요 오리 님. 고작 이 인원으로 우리는 지금까지 어떻게 그 커다란 성을 지켰을까요? 어째서 마할라틴의 숲에 사는 동물 중에는 돌연변이가 많을까요?”
“…….”
“내가 그 성을 개조한 건 온실밖에 없어요. 그렇다면 왜, 마할라틴의 성 지하에는 그렇게 커다란 마법사의 공방이 있었을까요?”
킹스메이커는 희연에게 몸을 기대며 말을 이었다.
“전에 말했죠? 난 왕녀의 편을 들지 않았다고. 고작 왕녀의 편을 드는 것만으로는 마할라틴 성을 가질 수가 없었기 때문이에요.”
“…그렇게까지 해서 꼭 가져야 하는 이유가 있었어요?”
“물론이죠. 이 대륙에서 죽음의 사막 다음으로 가장 많은 마법이 잠든 땅. 마할라틴 숲은 일종의 거대한 마법진이고 성은 그 중심이에요. 마할라틴 숲 자체가 거대한 마법사의 공방이라는 뜻이죠.”
희연은 이런 걸 자신이 알아도 되는 건가 싶었지만 킹스메이커는 말하는 것을 멈추지 않았다.
“그 땅의 주인이라는 칭호가 꼭 필요했어요. 그래서 머리 좀 굴려봤죠.”
“전에 청산가리 님은 킹 님이 뺏은 영지 돌려주는 대가로 받아낸 게 숲과 별장이라고 했었는데요….”
“아, 그거…. 공식적으로는 그렇게 알려지긴 했는데, 처음부터 내 목적은 오로지 마할라틴이었는걸요?”
태평하게 말하는 그 모습에 희연은 그제야 백희준이 말한 것의 의미가 무엇인지 깨달았다. 이상하게 구는 걸 모르겠냐고 했던 말은 이런 점을 두고 한 말이었을 것이다.
세세하게 계획을 짜고, 판을 짜고. 주변 사람들은 장기 말 다루듯 하는 것.
별로 친하지 않은 상대가 이런 성향이 있다는 걸 알았다면 어쩔 수 없이 조금 꺼려지기는 했을 것이다. 그러나 이제 와 그런 점이 꺼려지기엔 함께한 시간이 제법 되었고 더군다나….
“…킹 님, 저희 오빠랑 좀 닮은 것 같아요.”
“으엑.”
컨트롤 프릭이라는 말은 백희준이나 킹스메이커나 둘 모두에게 해당하는 말이었다. 그리고 희연은 그런 사람이랑 어쨌든 10년 넘게 살아온 사람이었다. 그래서 제법 익숙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