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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비세스 메이커 (162)화 (162/251)

162화

***

“진짜 미친 거 아니냐고! 누가 길드전을 이따위로 진행하는데!”

서슴없이 막말하는 건 백희준도 마찬가지였다.

희연은 길드전이 끝난 그 날 저녁 그 사실을 알게 되었다. 백희준과 킹스메이커는 이런 면까지도 닮았던 것이다.

그러나 이 사실을 말할 경우 혹여나 열 받은 백희준이 쓰러지기라도 할까 싶어 희연은 입을 다무는 쪽을 선택했다.

게임에서야 담담히 자신의 패배를 인정했다지만 역시, 다 끝나고 곱씹다 보니 화가 났나 보다. 희연은 그 심정을 이해할 수 있었기에 발광하는 백희준을 웃으며 따스하게 지켜봐 주었다.

“빈집털이에 똑같이 빈집털이로 대응하는 또라이가 어딨어! 게다가 남의 길드 하우스는 왜 박살을 내놨냐고 진짜!”

“저런….”

사실은 재미있어서 구경한 것에 가까웠다. 백희준이 이처럼 제 성질을 못 참고 흥분하는 광경은 무척이나 보기 드문 일이었기 때문이다.

백희준이 진정한 것은 아예 주전부리까지 챙겨 온 희연이 그것을 본격적으로 까먹기 시작했을 때였다. 백희준은 지금 상황에 그게 넘어가냐는 힐난의 눈빛으로 희연을 보았다.

그 눈빛에, 대놓고 먹으면서 구경하는 건 조금 너무했나 싶어 희연은 입에 씹고 있던 것을 삼킨 뒤 들고 있던 과자를 백희준에게 내밀었다.

“먹을래?”

“…안 먹어.”

한참을 뒹굴뒹굴하던 침대에서 일어난 백희준은 산발이 된 머리를 쓸더니 그대로 방을 나갔다. 물소리가 들렸기에 희연은 백희준이 얼굴에 찬물이라도 끼얹고 있나 보다 생각했다.

백희준이 돌아온 건 희연이 챙겨 온 과자를 모두 해치운 다음이었다. 아예 머리를 물에 담그고 온 것인지 길게 늘어진 백희준의 앞머리에서 물이 뚝뚝 떨어졌다.

발치로 떨어지는 물방울을 피해 다리를 끌어안은 희연은 그제야 슬그머니 눈을 굴리며 백희준의 눈치를 살폈다. 그는 자신이 언제 난리를 피웠냐는 듯 얌전히 침대에 앉아 있는 상태였다.

백희준은 침착할수록 상대하기 까다로워졌기에 희연은 조금 아깝다는 생각을 했다. 흥분했을 때 빨리 해치우고 끝냈어야 했다는 것이 이제야 생각났기 때문이다.

사실 그녀는 아직도 백희준이 무슨 대화를 하고자 하는 것인가에 대하여 가닥을 못 잡은 상태였다.

킹스메이커는 위험한 사람이다? 당연히 안다. 희연은 바보가 아니었다. 그리고 희연에게 있어 킹스메이커는 좋다의 기호를 가진 사람이었다. 고로 이 이상 백희준과 이에 얽힌 이야기를 하고 싶지는 않았다.

백희준은 침대에 앉아 한참 동안 말을 고르더니 고저 없는 어조로 말문을 열었다.

“이번 길드전에 대해 어떻게 생각해.”

“…어?”

이런 식의 주관식 질문은 희연의 예상에 있던 범위가 아니었다. 조금 머뭇거리던 희연은 일단 느꼈던 것들을 차례대로 말했다.

“정신없었어.”

“그리고.”

“…진짜 왜 그렇게 사람이 치사-.”

“나 비난하는 거 빼고 말해 봐.”

자유로운 발언을 금지당한 희연은 조금 삐쭉거리기는 했지만 백희준이 원하는 바를 일단은 따라주었다.

“안 어울리는 짓 했다고 느꼈어. 원래 그렇게 무계획적으로 달려드는 거 안 하잖아.”

미성숙하던 열일곱 살의 백희준도 안 하던 짓이다. 약간의 힐난이 담긴 말에 백희준은 순순히 인정했다.

“맞아. 내가 할 만한 짓은 아니었어. 진짜 싸우는 게 목적이었다면 마할라틴 숲에서 싸우는 게 아니라 죄다 그 밖으로 끄집어내서 싸웠어야 했고 말이야.”

“알면서 왜 그랬는데?”

희연의 물음에 백희준의 낯은 조금 어두워졌다. 유치하게 길드전으로 싸움 걸어놓고 아직도 지킬 자존심 같은 게 있나 싶어 희연은 삐뚜름한 시선을 보냈다.

도발과도 같은 그 시선에 울컥한 백희준은 결국 제 심정을 털어놓았다.

“너, 마스커레이드에서 있었던 일 기억하지? 자작이 살해당한 사건.”

“자작이면… 그 마, 마, 마시….”

“마쉬멜 자작.”

“마쉬멜 자작이 죽은 거?”

백희준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고민의 기색이 느껴지는 어투로 그날의 진실에 대하여 알려주었다.

“짜고 치는 판이었어. 그날 일은.”

“어…?”

“마쉬멜 자작을 죽인 건 너희 길드의 암살자야. 그 일을 주도한 건 킹스메이커고. 나한테 마쉬멜 자작의 죽음을 왕에게 알리라 한 것도, 그날 길을 잃은 아이들에 대하여 언급하게 만든 것도, 다. 걔가 판 짠 거라고.”

“…….”

마쉬멜 자작의 죽음에 킹스메이커와 청산가리가 연관되어 있다는 것 정도는 희연도 어렴풋이 눈치채고 있었다. 그러나 그 과정에 백희준 역시 함께했다는 건 전혀 모르는 사실이었다.

조금 표정이 굳은 희연을 보며 백희준은 한숨을 내쉬었다. 시야를 가리는 앞머리를 쓸어 넘기며 말을 하는 그의 얼굴에는 약간의 짜증스러움과 답답함이 뒤섞여 있었다.

“왜 죽였다고 생각해?”

“…메인 퀘스트 때문에?”

“그것 하나 때문이면 걘 그렇게까지 대놓고 움직이지 않아.”

“…….”

“마쉬멜 자작의 죽음으로 킹스메이커가 얻은 것들? 아주 많아. 먼저 마쉬멜 자작과 왕녀 레오디아는 정치적으로 적이야. 킹스메이커는 왕녀에게 마쉬멜 자작을 죽여달라는 부탁을 받았지. 일을 달성했으므로 걘 레오디아한테 보상을 받았어.”

그사이 나쁜 왕녀와 킹스메이커 간에 모종의 거래가 있었다는 말에 희연은 놀랐다. 그러나 그녀를 놀라게 할 이야기는 그 뒤로도 더 있었다.

“왕녀뿐일까? 아니. 시드론의 왕도 킹스메이커한테 마쉬멜 자작을 죽이라고 명령했어. 왜? 마쉬멜 자작은 실제로 불법 교배종으로 만든 몬스터로 아이들을 납치했으니까. 왕은 조용히 이 일을 묻고 싶어 했어.”

“…….”

“그날, 걔가 자작을 죽인 범인이라는 게 밝혀졌어도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을 거야. 어찌 됐든 마쉬멜 자작을 죽이라는 왕의 1차적인 명령은 수행했으니까. 시끄럽게 만든 거? 원래 사이 나쁘니 그 정도는 장난이라며 넘길 수 있다는 걸 알고 있었겠지.”

“그러면….”

“그리고, 장난이라 넘길 수 있는 그 소란으로 킹스메이커가 얻은 건 하나 더 있었지. 메인 퀘스트. 왕의 인정이 있어야만 진행되는 메인 퀘스트를 시작하게 만들었어.”

그날 마스커레이드에서 벌어진 사건 모두가 한 사람이 만들어낸 그림이었다는 뜻이다. 희연은 조금 당혹스럽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참 대단하다는 심정도 들었다.

그리고, 그 커다란 판 속에서 희연이 바라는 것 또한 함께 챙기는 것을 잊지 않았다는 점에서 역시 킹스메이커는 참 묘한 사람이라는 생각도 했다.

말이 없는 자신을 뚫어져라 바라보는 시선에 그제야 희연은 뒤늦게 입을 열었다.

“그러면, 오빠는 왜 킹 님이 짠 판에 어울려줬는데? 원래 그런 거 안 좋아하잖아.”

독선적인 백희준은 원래 남이 자신을 조종하려 드는 것을 참 싫어했다. 오죽하면 어릴 적에는 소꿉놀이도 남이 만들어낸 가상의 인물을 흉내 내는 거라며 싫다 거부했을 정도였다.

그런 백희준이 마스커레이드에서 누가 봐도 이용당하는 역할을 맡았다. 희연은 그 점이 의문이었다. 그녀의 말에 백희준의 낯이 단번에 구겨지는 것을 보니 더더욱 말이다.

“그 또라이 진짜…!”

원해서는 아니었구나….

희연은 백희준이 감정을 조절할 때까지 기다려 주었다. 오래 걸리지는 않았다.

“…아주 아득바득, 내가 시드론의 왕한테 고발하는 역할을 맡을 수밖에 없게 했으니까.”

“아….”

어떤 식으로 백희준을 움직이게 만든 것인지는 정확히 알 수 없었지만, 희연은 어렴풋이 정당하고 평화로운 방법은 아니었겠거니 하고 예상했다.

다만 왜 하필 백희준이 고발의 역할을 맡게 했는지는 알 것 같았다. 귀족들과 왕은 백희준에게 청렴하다는 평가를 했다. 평판 좋은 인사의 고발이 아니었다면 시드론의 왕은 길을 잃은 아이들의 이야기를 귀 기울여 들어주지 않았을 것이다.

그에 희연은 킹스메이커가 영 틀린 선택을 한 게 아니었다고 생각했지만 휘말리게 된 백희준의 입장에선 아니었다.

인상이 더러워 보일 정도로 눈을 치켜뜨는 백희준의 시선이 향하는 곳은 희연이었다. 희연은 왜 저를 그렇게 노려보나 싶어 눈만 데굴데굴 굴렸다.

“그 와중에도 또 무슨 수작을 부렸던 건지 왕궁 출입 명부에 킹스메이커를 제외한 네 길드 사람들은 아무도 이름이 안 올라와 있더라?”

“…….”

“암살자가 출입했다는 물증 자체를 없애고 시작하고… 애초부터 철저하게 계획한 것 같던데.”

“그래…?”

킹스메이커의 수작이 맞았다. 마스커레이드가 있던 그 날 희연을 포함한 길드원들은 공작의 일행이라는 명목으로 성에 출입했다. 그리고 그렇게 된 과정은….

“아.”

거기서부터도 수작이었구나.

뒤늦은 깨달음에 희연은 입을 꾹 다물었다. 킹스메이커는 희연과 청산가리를 먼저 성으로 내려보낼 때부터 계획을 실천한 거였다. 이름을 밝히지 않는 두 사람에게 병사가 무기를 겨눌 걸 알았던 것이다.

일행에게 무기를 겨눈 병사에 의해 공작은 불쾌하다. 그런 공작의 심기를 더 건들지 않기 위해 병사들은 순순히 공작의 일행이라는 이름으로 희연을 포함한 일행을 통과시켰다.

그렇게 암살자 청산가리가 성문을 통과했다는 공식적인 기록은 없앴다.

그때는 몰랐던 것들의 의미를 알아갈수록 희연의 표정을 어쩔 수 없이 굳어져 갔다. 킹스메이커의 앞에서 수작 부릴 생각은 절대 하지 말자 속으로 다짐하느라 그런 거였다.

그런 희연에게 백희준은 물었다.

“너. 걔랑 계속 그렇게 놀 거야?”

“어…?”

“지금까지 얘기를 듣고도 느껴지는 게 없어? 걘 필요하면 얼마든 사람을 자기 말로 써먹어. 그리고 필요 없으면 버려. 제멋대로 안하무인처럼 구는 그 모습이 그나마 최대한의 사회성을 발휘한 거야. 그런 인간이랑 어울리는 게 좋다고 봐?”

답을 재촉하는 눈빛에도 희연은 슬쩍 고개를 돌렸다. 조금 생각할 시간이 필요했다.

생각보다도 더, 킹스메이커는 판 짜는 걸 좋아하는 사람이라는 걸 알게 된 지금도 사실 희연이 그녀에게 느끼는 감정에는 큰 변화가 없었다.

애초에 희연은 킹스메이커에게 사회성, 평범함 같은 종류의 것을 기대한 적이 없었다. 이는 뉴비 없지에게도 바라지 않았으므로 킹스메이커만 특별 취급하는 건 아니었다.

“…나는.”

말을 머뭇거리며 희연은 킹스메이커와 나눴던 대화를 떠올렸다. 비록, 킹스메이커는 좋은 사람이라고 평가 내리기엔 어려운 사람이었지만 거짓된 사람은 아니었다. 진심에는 진심으로 부딪히는 사람이었다.

백희준은 킹스메이커를 위험 물질 취급했다. 그 위험 물질은 저 좋다는 말에 기뻐했다. 그건 사실이었다.

그래서 희연은 생각했다. 이 정도면, 괜찮지 않나 하고. 그녀가 백희준이 말한 것처럼 군다고 해도 그랬군, 하며 넘어갈 수 있는 정도라면 사실 희연은 상관없었다.

슬그머니 웃는 희연의 모습에 듣지 않아도 그 답을 깨달은 백희준은 못마땅한 기색을 감추지 못했지만, 이미 늦었다.

희연은 이미 킹스메이커 정도는 괜찮다 여기는 것을 넘어, 그것을 어느 정도 감안할 정도로 그녀가 좋았다.

“아, 맞아. 그런데 조용한 밤이로군! 이거 뭔데….”

“묻지 마.”

“아니, 뭔데 그렇게 싫….”

“묻지 말라고.”

백희준은 그 이상 물어보면 가만두지 않겠다는 표정을 지었다. 희연은 아쉬움을 뒤로하고 궁금증을 참아야 했다.

***

“궁금한 게 있는데요. 만약에 제가 기껏 판 다 짜놓았더니 말을 잘 안 듣거나 거부하거나 하면 설득하기 위해 괴롭히는 것도 불사하고, 막 그럴 거예요?”

“…오리 님은 가끔 참, 사람 당황하게 하는 질문을 던져요.”

킹스메이커의 말에 희연은 자신이 그런 면모가 있나 싶어 고개만 갸웃거렸다.

그 모습에 킹스메이커는 일단 웃기는 했지만 머릿속으로는 온갖 생각을 했다. 길드전이 끝나고 백희준이랑 무슨 대화를 뭘 어떻게 하고 왔길래 하는 질문이 저런 건가 싶어서였다.

그런 킹스메이커의 궁금증을 충족시켜주듯 희연은 거침없이 말을 내뱉었다.

“마쉬멜 자작의 죽음부터 그 과정, 결과까지 모두 킹 님의 손아귀에서 놀아난 거라는 말을 들었는데요.”

“이희준 그렇게 안 봤는데 입이 참 싸네요….”

“저도 그렇게 이용당하고 버려질 수 있다고도 하더라고요.”

“이희준… 짜증 나네요.”

킹스메이커는 길드전 협상으로 백희준을 박살 내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런데 저는 상관없다고 했어요.”

“…그래요?”

킹스메이커는 생각을 바꿨다. 아무리 그래도 박살은 너무한 것 같았다. 다 즐겁자고 하는 짓인데 진심으로 굴 필요가 있나 싶었다.

“제정신이냐고 하더라고요.”

“역시 박살….”

“네?”

“이희준도 참. 어쩜 그렇게 못돼먹었지?”

희연은 자신이 말할 때마다 다채롭게 반응하는 킹스메이커를 보며 이제 놀리는 건 그만해야겠다 생각했다. 잠시 뜸을 들이던 희연은 무척이나 가벼운 어조로 대화의 결과물을 들려주었다.

“그래서 제가 이겼어요.”

“?”

“마음대로 하래요. 그러니까 저 이용해 먹고 버리지 마세요.”

“…….”

희연은 표정 없는 얼굴로 멍하니 그녀를 바라만 보는 킹스메이커를 보며 어색하게 웃었다. 조금 낯간지러웠다.

한동안 말이 없던 킹스메이커는 곤란하다는 듯 웃은 뒤에야 입을 열었다.

“그러니까, 이런 점이 곤란하다니까….”

“그래요?”

“…이게 다 이희준 때문이에요.”

“갑자기요…?”

당황스러워하는 희연을 보며 킹스메이커는 뜻 모를 웃음만 흘렸다. 그녀는 속으로 백희준을 욕했다. 이 곤란함 모두가 백희준의 탓이었으므로 정당한 원망이라 여겼다.

백희연이라는 사람이 남들은 피하고 외면하는 방식을 망설이지 않게 된 이유에는 그녀를 키운 사람의 탓도 있었다. 킹스메이커는 그렇게 판단을 내렸다.

비슷한 사람 밑에서 자란다고 해도 그 결과물은 다르다. 일례로 그녀의 동생은 희연과 전혀 달랐고 그녀와도 사이가 썩 좋지 못했다.

킹스메이커는 자신과 백희준이 뭐 그리 다른 사람이기에 이렇게 결과물이 다른 걸까 하는 생각을 해보았다. 그녀가 보기엔 백희준은 그녀보다는 아주 조금 더, 도덕성과 양심과 사회성이 있다뿐이지 자신과 다를 게 없는 인간 같았기 때문이다.

역시 나이 차가 많아서인가? 킹스메이커가 짚을 수 있는 차이점은 그 정도뿐이었다. 사람 하나 입맛대로 키울 수 있는 환경이 그녀에게도 주어졌다면 결과물은 비슷했을지도 모른다.

“…쯧.”

킹스메이커는 자신도 모르게 반사적으로 혀를 찼다. 만약을 바라며 아쉬움을 느끼는 지금의 제 모습이 마음에 들지 않아서였다. 또한 무척이나 생소하게도 부럽다는 감상이 드는 것이, 하필이면 그 대상이 백희준이라는 점이 짜증 나서였다.

희연이 조금만 덜 솔직한 사람이고, 영악했다면 이렇게까지 그녀의 마음에 들지는 않았을 것이다. 곤란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백희준은 어쩜 이렇게 제 취향에 들어맞게 동생을 키웠나 하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그리고 어쩔 수 없이, 킹스메이커는 자신을 곤란하게 만드는 사람을 키워낸 백희준이 무척이나 짜증 났다.

“곤란하네, 진짜….”

희연은 킹스메이커가 좋다고 말했다. 지금이라면 그녀 역시 그에 대한 답을 들려줄 수 있었다. 킹스메이커는 희연이 마음에 들었다.

애지중지 키우는 뉴비, 백희준을 골릴 수 있는 미끼, 메인 퀘스트를 물고 온 행운의 오리나 소중한 두근두근 이벤트 제조기 같은 거 말고.

사람 대 사람으로서, 장난으로만 대하던 걸 그만두고 조금 진심으로 굴고 싶을 만큼 말이다.

백희준 탓이다. 그리고 못돼먹은 인간에게 부러 진심으로 군 희연의 탓이다, 그리 생각하며 킹스메이커는 웃었다. 짜증 날 정도로 기분이 좋았다.

“솔직히 말하면요 오리 님. 난 그렇게 좋은 사람은 아니거든요?”

“아, 그건 알고 있어요.”

“…이런 걸 보면 현실성이 떨어지는 것도 아닌데.”

킹스메이커는 생각했다. 이런 기회가 또 올까? 흔한가?

뉴비 없지는 노예 생활 중 그녀를 대충 게임 친구로 여기자 순응했다. 청산가리는 싸우지만 않으면 적당히 유지하기 나쁘지 않은 관계로 정의했다.

킹스메이커가 게임 내에서 인간관계를 맺은 모두가 그녀를 약간 비현실적인 무언가, 게임에 포함된 구성으로 보는 것으로 타협했다. 킹스메이커는 그것도 나쁘지 않다 여겼다. 그래도 역시 이쪽이 더 마음에 들기는 했다.

백희준 덕을 보는 날이 있구나 싶어 킹스메이커는 전부터 생각했지만 굳이 이야기하지 않았던 진실에 관하여 희연에게 이야기해 주었다.

“오리 님. 말 나와서 하는 말인데요.”

“네?”

“이희준이 오리 님한테 이 게임 힐링물이라고 했던 거 거짓말 아닐 거예요.”

“…네?”

대화의 흐름이 뜬금없어서, 이 게임이 힐링물이라 킹스메이커가 당당히 말해서 희연은 당황했다. 어리둥절한 기색을 감추지 못하는 모습의 희연을 두고 킹스메이커는 차례차례 이야기해 주었다.

“사냥 안 하고 레이드 안 돌고 보스 안 잡으면 남는 건 힐링 콘텐츠밖에 없거든요.”

“…진짜요?”

“네네. 그럼요. 채집과 제작, 그러니까 꽃 가꾸고 나무 캐고 돌 캐고 뭐 그런 힐링 파트만 남으니까요.”

“…돌 캐는 게 힐링이에요?”

“레이드를 많이 돌다 보면 어느 순간 뇌 쓰지 않는 행위가 힐링처럼 느껴지거든요.”

“…….”

“농담이고. 만약 여우 퀘 할 때 오리 님이 에흐테흐의 숲이 아니라 카나리아 숲에 들어가 평범한 동물 하나 데리고 나오기만 했어도… 제법 힐링 파트를 즐겼을지도 모르거든요.”

유니콘이 없었다면 여우는 직업에 있어 다른 선택지를 주었을 것이고, 그랬다면 희연은 헬르벨도 자미엘도. 악령이도 만날 일이 없었을 것이다.

결국, 희연 스스로 불꽃 길에 자진 입성했다는 소리였다. 아주 뒤늦게야 알게 된 진실에 희연은 혼란에 빠졌다.

“말도 안 돼….”

지금까지의 일들을 곱씹으며 괴로워하는 희연을 구경하며 킹스메이커는 생각했다. 이런 것도 나쁘지 않구나 하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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