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뉴비세스 메이커 (178)화 (178/251)

178화

설마하니 이런 식으로 그날의 유감을 보복하게 될 줄은 몰랐다. 희연은 조금 심란한 표정을 지었다.

전후 사정을 다 알면서도 목걸이를 강탈해 아무것도 모르는 새파란 뉴비에게 걸어줄 생각 만만이었던 킹스메이커가 나쁜 것인지, 제 길드원의 소중한 목걸이를 멋대로 길드전 상품으로 걸어버린 백희준이 나쁜지 감히 우열을 가릴 수가 없었다.

희연은 전에 없던 심각한 표정으로 목걸이를 바라보았다.

“…?”

그런데, 이세인 걸 백희준이 멋대로 넘겨준 게 맞나?

문득 든 생각에 희연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백희준은 가끔 사람이 어떻게 저러나 싶을 정도로 치사해지는 순간이 있긴 했지만 남의 물건을 멋대로 강탈하는 짓은 하지 않았다. 게다가 길드전 협상 당시 백희준은 애초에 본인의 것 내에서 해결을 보려 했다.

결국 이 목걸이는 백희준의 것이지 이세인의 것은 아니었다는 결론이 나온다.

“선물용이었나…?”

백희준은 검사 쪽 관련 직업이었다. 그리고 거룩한 빛의 장신구 세트는 신관 전용 아이템이었다. 길드 윈에는 뛰어난 힐러인 이세인이 있고, 그는 이미 세트 중 두 개를 손에 넣었다.

길드 차원에서 이득이 되는 일이라 생각해 백희준이 이세인에게 주려고 목걸이를 낙찰해 갔던 걸지도 모른다.

이세인과 백희준 사이의 그 미묘한 기류를 생각해본다면 아무리 이득이 있다 해도 선물이 오간다는 것이 희연이 보기에는 상당히 기묘하게 느껴졌지만 말이다.

물론, 백희준이라는 사람이 남을 위해 굳이 굳이 수고롭게 경매장에 가, 훗날 어떻게든 보복이 돌아올 게 뻔한 킹스메이커를 패배시키면서까지 목걸이를 낙찰했다는 점도 마음에 걸렸다.

어쩌면 이세인이 백희준에게 묘한 적대감이 있는 것과 달리 백희준은 이세인에게 긍정적인 감정을 가지고 있는 걸지도 모른다. 희연은 백희준의 빈약한 인간관계를 떠올려 보았다.

얼마 없는 친구인 이세인과 조금이라도 관계 개선을 해보기 위해 선물을 준비했던 거라면…!

“진짜면 어쩌지….”

“오리 님?”

어두워지는 희연의 낯을 킹스메이커는 꼴 보기 싫은 이세인이 떠올라 그런다 판단했다. 목걸이를 보고 좋아서 방방 뛰어도 모자란 소중한 뉴비가 쓸데없는 것 때문에 기분을 망친다? 그녀로서는 납득할 수 없는 전개였다.

킹스메이커는 자신의 잘못도 아닌 타인의 잘못으로 제 것이나 다름없는 뉴비 희연이 게임을 관두는 꼴을 볼 생각이 없었다. 그녀는 일단 희연의 손을 꼭 잡으며 다른 쪽으로 관심을 돌리도록 다른 이야기를 꺼냈다. 이세인에 관한 건 나중에 처리해도 되었다.

“아 참! 그러고 보니까 오리 님, 아까 이희준이 오리 님한테 따로 보낸 선물이 있지 않았나요? 우리 그것도 한번 확인해 봐요!”

“아, 네….”

희연은 킹스메이커의 말에 따라 편지 봉투를 열면서도 백희준의 인간관계를 계속 걱정했다.

생전 선물이라곤 가족 선물 외에는 준비해본 적도 없는 인간인 백희준이 친구에게 주려고 선물을 준비했다는 건 희연에게 그만큼 충격적인 일이었다.

“…?”

그러한 희연의 생각이 끊긴 것은 편지함에서 가장 먼저 튀어나온 물건을 봤을 때였다. 킹스메이커가 무척이나 의외라는 어조로 말했다.

“사슬이네요?”

“…사슬… 이네요?”

얼결에 말을 따라 하면서도 희연은 이게 뭔가 싶었다.

얇고 긴 백금 사슬. 희연은 손 위에 올려진 차가운 금속 물질을 바라보며 이게 무슨 의미인가 생각해보았다.

일단, 이후 백희준을 만난다면 누군가의 환심을 사기 위해 선물을 보내는 건 자중하라 말해줘야겠다는 생각은 들었다. 선물로 사슬을 보내는 인간의 선택을 믿을 수 없어서였다.

적절한 선물이라 여겨졌던 이세인과 거룩한 빛의 조각 목걸이의 상관관계도 의심되게 만드는 선물 선정이었다.

희연이 백희준의 저의를 의심하는 것과 달리 킹스메이커는 사슬 선물을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이희준이 좋은 걸 선물했네요. 신경 많이 쓴 것 같은데, 전부터 느꼈는데 은근히 오리 님한테는 지극정성이네요?”

“…어느 부분에서 그렇게 생각한 거예요?”

떨떠름한 희연의 반응에 킹스메이커는 재밌다는 듯 웃었다. 희연은 자신만 이 선물의 의미를 모르는 건가 싶어 뉴비 없지의 반응도 확인했다.

“내가, 내가 이게 있다는 걸 잊고 있었다니! 알았으면 먼저 선물했을 텐데…!”

뉴비 없지는 희연이 쥔 사슬을 보며 감탄하고 있었다.

“나빠, 나빠, 나빠!”

“그거 아니야 악령아.”

사슬을 보며 나쁘다며 짧은 팔을 휘적이는 악령이를 뒤로 쭉 끌어당긴 희연은 여전히 혼란스러운 얼굴로 사슬을 바라보았다.

그런 희연의 모습에 킹스메이커는 희연이 내려놓은 편지 봉투를 가리켰다.

“설명 써놓지 않았어요?”

“설명이요? 아뇨, 사슬 외에는….”

희연은 편지함에 들어있던 것들을 죄다 꺼내 카펫 위에 늘어트렸다. 책 세 권, 금화가 가득 든 주머니 여러 개, 강화할 때 사용하는 소비용 아이템과 기타 잡다한 것들. 친절한 설명서 따윈 없었다.

텅 빈 편지를 들고 말똥말똥 자신을 바라보는 희연의 시선에 킹스메이커는 고개를 저었다.

“선물 고르는 센스는 좋은데 친절함이 부족하네요.”

희연도 동의하는 바였다. 킹스메이커와 뉴비 없지가 없었다면 희연은 백희준이 사슬을 선물이랍시고 보낸 저의를 제발 얌전히 좀 있어라 하는 은유의 표현일 것이라 여겼을 것이다.

실제로 백희준은 희연이 어릴 때 하도 말 안 듣고 혼자 나돌아다닌다고 손목에 끈을 묶어놓은 적이 있었다. 희연의 인권을 살짝만 무시한다면 미아 하나를 찾아 온 동네를 돌아다니지 않아도 된다는 이유에서였다.

물론 백희준은 공평하게 본인의 손목에도 끈을 묶었다. 이유가 뭐였던 간에 경험이 있으니 의심하는 것도 당연한 일이었다.

그런 의미가 아님은 알게 되어 희연의 표정은 풀리긴 했으나 여전히 사슬을 왜 준 것인진 알 수가 없었다.

이리저리 사슬을 펼치고 접으며 고개만 갸웃거리는 희연의 모습에 킹스메이커가 입을 열었다.

“전에 말한 적 있죠? 이희준은 원래 쌍검사라고요. 그 사슬 원래 이희준이 쓰던 거예요.”

“이게요?”

“네. 이희준이 아레나에서 그 사슬로 온갖 기상천외한 기술을 보여줘서 한동안 무기에 사슬 다는 게 유행하기도 했었죠. 정작 유행시킨 본인은 어디서 이기어검 같은 스킬을 배워와서 사슬을 안 쓰게 되긴 했지만요.”

“아….”

“유행 지난 기술이기는 한데, 오리 님한테 잘 맞긴 할 거예요. 일단, 무기 좀 꺼내 볼래요? 옛날에 도박이가 준 총검도 같이요.”

희연은 착실히 그 말을 따랐다. 희연에게서 총 두 자루와 작은 총검, 그리고 사슬까지 받아낸 킹스메이커는 그것들을 한 대 모아 조립하기 시작했다.

총신 끝에 총검을 끼울 때만 해도 희연은 킹스메이커가 무엇을 하려는 건가 싶었다. 그러나 이어, 백희준이 보낸 사슬을 총의 개머리판에 있던 작은 구멍에 연결하는 것을 봤을 때는 눈을 동그랗게 뜰 수밖에 없었다.

엉키지 않게 사슬을 잘 풀어낸 킹스메이커가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잘 봐요 오리 님. 이건 이런 식으로 쓰는 거예요. 가라 없지 없지!”

“없지 없지!”

뉴비 없지가 뒤로 훌쩍 물러나는 순간, 킹스메이커는 사슬을 잡고 총을 뉴비 없지에게로 휘둘렀다.

차르릉-!

차가운 금속이 부딪힐 때 나는 소리가 빠르게 울려 퍼졌다. 총에 연결된 각 사슬의 끝에 장식되어 있던 참에서 나는 소리였다.

그건 단순한 장식품이 아니었다. 참에서 끝없이 나온 사슬이 기어이 제법 거리가 있던 뉴비 없지에게 닿을 정도로 늘어난 것을 보고도 그걸 장식품 취급할 수는 없었다.

뉴비 없지는 제 머리를 노리고 날아온 총을 팔을 들어서 막아냈다. 총과 건틀릿이 부딪히며 내는 소리는 총소리와도 비슷했다.

공격이 실패했으니 총과 사슬은 당연히 밑으로 떨어지거나 킹스메이커의 손에 다시 회수되어야 했다. 그러나 킹스메이커는 그런 식으로 단순히 움직이지 않았다.

그녀는 사슬을 든 팔에 힘을 주며 제자리에서 한 바퀴 돌아 사슬에 반동을 주었다. 사슬이 출렁이며 그 끝에 매달려 있던 총이 다시 허공으로 날아올랐다.

킹스메이커는 마치 사슬을 채찍처럼 사용했다. 사슬을 다루는 솜씨가 섬세했다. 반동으로 날아오른 사슬은 다시 당겨졌다 풀어졌다, 혹은 어지럽게 움직이며 뉴비 없지를 계속해 공격했다.

총검의 역할도 있었다. 평범한 총이었다면 타격밖에 줄 수 없었을 텐데 총검까지 있으니 타격뿐만 아닌 일종에 베고 찌르는 류의 공격까지도 함께했다.

변화무쌍한 공격의 연속도 잠시, 킹스메이커는 사슬을 잡고 있던 손을 몸과 함께 비틀었다.

이리저리 횡으로 날며 단순한 공격만 가하던 총과 사슬이 마치 살아있는 뱀처럼 뉴비 없지의 팔에 휘감겼다.

“으랏차!”

킹스메이커는 팽팽하게 당겨진 사슬을 제 손목에도 빙글빙글 감더니 힘찬 구령과 함께 뉴비 없지를 제 쪽으로 끌어당겼다. 충분히 버틸 수 있음에도 뉴비 없지는 킹스메이커에게 순순히 끌려왔다.

뉴비 없지는 말 그대로 공중에서 붕 날아왔다. 킹스메이커는 반대쪽 사슬에 매달려 흔들거리고 있던 총을 잡아 그대로 뉴비 없지에게 방아쇠를 당겼다.

탕-! 탕, 탕-!

대부분의 공격은 뉴비 없지의 갑옷에 맞아 요란한 소리만 낸 것이 전부였다. 그러나 지금 이 시연에서 중요한 것은 공격력 같은 것을 보는 게 아니었다.

저런 식으로 묶여서 끌려올 경우 공격을 피할 수가 없게 된다는 것이 중요한 거였다.

킹스메이커는 거기서 멈추지 않고 사슬 위에 발을 올려 무게를 싣더니 반대 발을 사슬에 걸었다.

사슬에 묶인 발이 벽을 향해 휘둘러졌다. 뉴비 없지 또한 그 흐름을 따라 벽을 향해 날아갔다. 킹스메이커는 이리저리 발을 몇 번 비틀어 뉴비 없지의 팔에 휘감겨 있던 사슬을 풀어냈다.

뉴비 없지가 벽을 향해 날아가는 동안 킹스메이커는 사슬을 잡아당겨 총을 모두 회수하는 데 성공했다. 그녀의 양손에 총이 모두 돌아오고 이어 조준하듯 들었을 때, 총의 총구는 정확히 뉴비 없지에게 향해 있었다.

거기서 보여주기 예시는 끝이 났다. 킹스메이커는 들고 있던 양손의 총을 늘어트리며 희연을 돌아봤다.

“대충 이런 식으로 쓰는 거예요, 오리 님. 물론 다른 방법도 많고요!”

“…….”

원래라면 희연은 박수라도 치며 그들의 시연에 대해 대단하고 신기했다 말했을 것이다. 그러나 차마 눈을 빛내는 킹스메이커와 뉴비 없지의 모습에 그녀는 웃을 수가 없었다.

지금 저걸, 나보고 똑같이 하라는 건가…?

희연은 끽해야 총 던져서 상대를 맞추고 사슬을 쭉쭉 잡아당겨 회수하는 것밖에 못 한다. 저렇게 화려하고 노련하게 싸우는 법 따위도 모르고 말이다.

벌써부터 기가 질려 할 말을 잃은 희연을 앞에 두고 킹스메이커는 보여 준 것 외에 활용할 수 있을 법한 전투법에 대하여 이것저것 알려주었다.

“발 묶어서 끌고 오는 식으로 해도 괜찮을 거고, 시야 교란용으로도 괜찮겠네요, 주변의 지형지물을 이용하면 함정 같은 것도 만들 수 있을 거고요.”

“저….”

“이희준이 좋은 걸 주긴 했어요. 보통 이런 사슬 아이템은 최대 길이가 5M 남짓인데 이건 제한이 없거든요. 유행 지난 지 오래라 완전히 잊고 있었는데 용케 기억해서 보냈네요.”

“…….”

“저번 길드전 할 때 총으로 머리 맞았던 게 인상 깊었나? 오리 님은 가끔 마음 급하다 싶으면 총으로 때리고 보니까 이런 식으로 전투 방법을 바꾸는 것도 나쁘지 않을 거예요. 묶어두고 백발백중 패시브로 머리 날리고. 후… 벌써 설렌다.”

“…….”

“?”

평소 같으면 그런 거로 설레지 말라며 우는소리 하던 희연이 조용하자 그제야 킹스메이커는 사슬에서 눈을 떼고 희연을 돌아보았다. 희연은 조금 울먹이는 얼굴을 하고 있었다.

“저, 저는 그런 거 못 하는데….”

“아.”

희연은 헬르벨의 퀘스트를 통해 받은 칭호 스킬 <백발백중 낭만의 프라이쉬츠>를 통해 간신히 총을 사용하는 힐러였다. 그런데 이젠 사슬을 통해 편술을 재현하라 하니 질리다 못해 겁까지 먹은 것이다.

킹스메이커는 당장에라도 도망갈 것 같은 희연의 얼굴에 제 실수를 인정했다. 라이트 모드에서 하드 모드로 뉴비를 이끌 때는 조금 더 조심스럽고도 비밀스러운 접근이 필요하다는 것을 잠시 깜박하고 말았다.

시련은 시련인 줄 모르게 겪어야 하는 건데 말이다. 킹스메이커는 일단 시작도 전에 겁먹은 희연을 달래기 위해 조심스러운 접근을 시도했다.

“오리 님 저 믿죠?”

“…….”

“믿죠?”

“…네에.”

반쯤은 억지로 답하는 것에 가깝긴 했지만 킹스메이커는 그거면 됐다는 듯 웃음 지으며 희연에게 약속했다.

“오리 님을 편술의 마스터로 만들어줄게요.”

“…저 그냥 사격만 하면 안 돼요? 이제부턴 총으로 안 때릴게요.”

“하하, 그럴 리가요.”

킹스메이커의 웃음에는 결코 희연의 요상한 버릇이 고쳐질 리 없다는 확신이 담겨 있었다.

희연이 총으로 총탄이 아닌 구타의 흔적을 남긴다는 것을 본 백희준도 그 모습을 본 건 한 번뿐이면서 그 버릇은 못 고친다고 판단해 사슬을 보냈다.

적어도 게임 내에서는 희연이 싸우는 모습을 백희준보다도 더 오랜 시간 지켜본 킹스메이커도 그와 같은 판단을 내렸다. 희연은 절대 저 버릇 못 고친다고 말이다.

버릇을 못 고친다면 남들과는 다른 방식으로 싸우게 만들면 되는 거였다. 또한 솔직히 말해 킹스메이커의 취향은 총보다는 채찍이기는 했다. 그쪽이 더 낭만 있기 때문이었다.

뉴비 없지도 비슷한 생각을 하기란 마찬가지였다. 쌍권총에 더불어 편술까지 펼친다? 어디 가서 내 뉴비 좀 봐라 이렇게 잘 키웠다 자랑할 수 있을 법한 모습이었다.

뉴비 없지는 눈을 빛내며 희연을 응원했다.

“오리 님은 할 수 있다! 오리 님을 위해서라면 얼마든지 연습용 허수아비가 될게요!”

희연은 뉴비 없지라도 평소처럼 없지 없지, 하고 말해주기를 바랐으나 이쪽은 킹스메이커보다도 헛된 꿈을 꾸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이었다.

팔자에도 없는 채찍질을, 그것도 사슬로 배우게 생긴 것을 백희준을 탓해야 하는 건지 버릇 못 고치고 자꾸만 총을 휘둘러댔던 자신을 탓해야 하는지 알 수가 없었다.

그런 희연을 위로하겠답시고 킹스메이커는 이렇게 말했다.

“이희준이 좋은 선물을 줬으니 강화 건에 대해서는 나도 이 이상 말하지 않도록 할게요. 아직 옵션이 남아 있기도 하니까요. 마력 쪽을 높일까 했는데 민첩이랑 힘도 조금 생각해봐야 할 것 같아요.”

“네에….”

“오리 님은 아까 보여준 것처럼 사슬을 이용해 집어던지는 식이 좋아요, 아니면 치고 빠지는 방식이 좋아요?”

“저는 그냥 사격이 좋아요….”

“아이참.”

안 들어줄 거면서 왜 물어봤는지 모르겠다 싶어 희연은 조금 불퉁한 표정을 지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