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0화
고문에 가까운 킹스메이커의 치료가 끝날 즈음, 마담은 건강해진 모습으로 제 발로 서는 게 가능해졌다. 그는 품속에서 손수건을 꺼내 얼굴로 흘러내린 포션을 닦아냈다. 익숙해 보이는 손놀림이었다.
어느 정도 겉으로 보기에 정갈하다 싶을 정도로 정리가 돼서야 마담은 이곳에 온 목적에 맞게 일하기 시작했다.
쿵-!
마담이 인벤토리에서 꺼낸 것은 거대한 서류의 산이었다. 조금이지만 순간적으로 땅이 흔들릴 정도의 양을 한 번에 꺼냈음에도 마담의 손놀림은 주저 없었다.
그는 서류의 산에서 필요한 정보만 쏙쏙 꺼내 의뢰자들에게 넘겼다. 서류의 산이 무너지지 않을까 조마조마해하는 것은 그 자리에 희연과 악령이와 넬밖에 없었다.
“이건 네 길마를 위한 정보. 거인국과 조인족의 최근 관계도. 천공섬의 고도. 이건 그쪽이 보내 달라고 했던 로첼라와 아이셴 간에 국제 교류 현황. 그리고….”
마담이 새롭게 꺼낸 서류 뭉치가 향한 곳은 킹스메이커도 청산가리도 아닌, 희연이었다.
“…….”
“의뢰했던, 그쪽 악령이라 추정되는 사라진 아이들의 정보 리스트. 추가금 받아야 할 정도로 빠르게 처리해주었으니까 그쪽 정보 판 거에 대해서는 이걸로 갚았다 쳐요.”
“…네.”
희연은 조심히 서류를 받았다. 그녀의 손에 쥐어진 서류는 결코 얇지 않았다. 차례차례, 작고 세밀한 글씨로 쓰여있는 여러 이름을 보며 희연은 말문이 막히는 것 같았다.
“악령아. 네 이름이야?”
“…우리의 이름이야.”
서류를 채우고 있는 이름이 너무 많았다.
희연은 조심조심, 이름의 한 글자 한 글자를 손으로 훑었다. 아이들의 이름 옆에는 지명이 적혀 있었다. 시드론, 에빌론. 위헬브, 암베르니아. 익숙한 이름들이 보였다. 로첼라와 셰온. 낯선 이름도 보였다.
한동안 아무도 말을 하지 않았다. 서류를 살피느라 여념 없는 희연을 누구도 방해하지 않았다. 그 배려와 침묵 속에서 희연은 이름을 모두 읽어내렸다.
한 번 본 것만으로 그 이름들 전부를 외울 수 있는 건 아니었다. 그러나 희연은 마치 의무라도 되는 것처럼 차례로 모든 이름을 읽었다.
마침내 희연이 서류를 덮고 고개를 들었을 때, 마담은 입을 열었다.
“길을 잃은 아이들, 그 건에 대해 그쪽한테 개인적으로 한 가지 제안하고 싶은 게 있어요.”
“…뭔데요?”
“그전에 물을 것도 있고요. 선구자 자리, 계속 차지하고 있을 생각인지부터 말해봐요.”
“…….”
희연은 마담이 무슨 의도로 그런 걸 물어보는지 짐작 가지 않아 인상만 조금 찌푸렸다.
“무슨 의미로 하는 말인지 솔직히 잘 모르겠어요.”
“그쪽 때문에 지금 메인 퀘스트가 진행되지 않는 걸지도 모른다는 말을 하는 거예, 윽…!”
순식간에 마담의 머리에 다시 종이비행기가 꽂혔다. 그는 말을 미처 끝내지도 못하고 쓰러져 버렸다.
“이런, 손이 미끄러졌잖아?”
뺨에 손을 얹은 킹스메이커가 가증스러운 어조로 말했다. 희연은 당황한 얼굴로 그런 킹스메이커와 바닥에 쓰러진 마담을 번갈아 바라보았다.
그리고 청산가리 역시 어처구니없다는 표정으로 킹스메이커를 바라보았다. 종이비행기의 원주인이었기 때문이다.
남의 무기로 마담을 해치운 킹스메이커만이 태연했다. 그녀는 별님을 만나러 떠나는 중인 마담을 억지로 일으켜 말을 예쁘게 하겠다는 약속을 세 번쯤 받아낸 다음에야 종이비행기를 회수해 갔다.
희연이 보는 앞에서만 두 번이나 목숨의 위협을 받았음에도 다시 살아난 마담은 굳건했다. 그는 죽어가기 전과 그리 다를 것 없는 태도로 다시 희연과 대화를 시도했다. 물론 킹스메이커와의 약속 또한 어느 정도 지키기는 했다.
“선구자가 가만히 있기 때문에 퀘스트의 추가적인 진행이 안 되는 것 같다 감히 한 말씀 올려도 될지요?”
“…편히 말씀하세요.”
희연의 말에 마담은 킹스메이커를 한번 힐끗거리기는 했지만, 괴상한 높임말을 그 이상 사용하지는 않았다. 대신 그는 돌려 말하지 않고 좀 더 직접적인 단어를 사용해 설명했다.
“이대로면 고의적 트롤로 찍혀서 언제 어디서 죽을지 모른다는 소리를 하는 거예요.”
“트롤… 이요?”
고개를 갸웃거리는 희연에게 킹스메이커가 설명을 덧붙여주었다.
“남의 게임 방해하는 쓰레기를 트롤이라고 불러요. 예를 들어 땃쥐 미 같은 그런 사람들이요.”
“아…. 그런데 제가 그 트롤이에요…?”
희연은 다른 사람을 고의적으로 방해한 적이 기필코 단 한 번도 없었다. 약간의 억울함과 불만이 섞인 얼굴을 보며 마담은 고개를 저었다.
“일부러든 아니든, 어쨌든 방해가 된다 싶으면 다 트롤이라고 불러요. 그리고 메인 퀘스트 같은 경우는 선구자라는 시스템도 있어서 더 문제가 되는 거고요.”
“…….”
“이미 선구자가 있는 상태면 어느 특정 지점까지는 선구자가 스토리를 이끌어야 하는데, 만약에 그 선구자라는 사람이 스토리를 제대로 못 밀면… 그 자리에서 밀려 나가게 되는 거죠.”
희연은 마스커레이드에서 나눴던 마담과의 대화를 떠올렸다. 선두 주자를 제치는 가장 쉬운 방법은 그 선두 주자를 없애버리는 것이라 했다.
“스토리 진행하려고 노력했는지 안 했는지 사람들은 몰라요. 시간이 오래 지나도 변화가 없으면 그냥 고의적으로 트롤 짓 하는구나 여길 뿐이죠. 그 반대로, 잘하고 있다 쳐도 목숨의 위협은 받을 거예요. 좋은 건 원래 뺏고 싶은 게 사람의 심리니까요.”
“…….”
“본격적으로 메인 퀘스트가 진행되지 않은 지금이 마지막 기회라는 거예요. 지금 선구자 자리에서 안 비키면 소소한 거 타령하면서 게임할 생각은 접는 게 좋을 거다, 미리 말해주는 거라고요.”
희연은 악령이를 바라보며 곰곰이 생각해보았다. 위협은 이미 한번 당해봤다. 땃쥐 미처럼 뱀 집단의 편에 든 유저가 앞으로도 희연을 노릴 거고, 마담의 말마따나 선구자라는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덤비는 사람들도 늘 것이다.
킹스메이커는 말했다. 굳이 희연이 아니더라도 결국엔 누군가가 길을 잃은 아이들의 이야기를 끝맺을 거라고 말이다. 희연은 선구자라는 위치도 그 대단하다는 보상도 그리 필요치 않았다.
하지만….
“…선구자 자리를 안 죽고 포기하려면 앞으로 전 악령이와 관련된 일은 아무것도 하면 안 되는 거죠?”
“네. 그렇게 하면 그쪽보다 앞서가는 사람이 금세 나올 거고, 그렇게 선구자 자리는 다른 사람이 대신 차지하게 될 거예요.”
“…….”
악령이의 일이었다. 희연은 악령이의 일을 남한테 다 떠맡기고 자신은 아무것도 모른다는 양 가만히 있고 싶지 않았다. 희연은 앞으로도 악령이와 관련된 단서들을 외면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니 선구자 자리에서 비킨다는 건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렇다면 희연에게 남은 선택지는 실상 하나밖에 없었다.
“저 선구자 계속할 거예요.”
단호한 희연의 답에 마담은 고개를 삐뚜름히 했다. 무언가 고민하는 듯한 기색이었다. 그 모습에 희연은 다급히 말했다.
“혹시 제가 스토리 빨리 진행 못 해서 그 트롤이란 거 될까 봐 걱정하시는 거면….”
“아뇨, 별로. 은근히 사건 사고를 몰고 다니던 행적을 보면 고의적으로 스토리 안 뺄 가능성이 낮다는 건 진즉 알고 있었거든요.”
“그렇게 사건 사고를 몰고 다니지는 않았는데….”
억울해하는 희연의 말을 흘려들으며 마담은 잠시 뜸을 들이더니 서류의 산에서 새로운 서류 하나를 끄집어냈다. 그것을 훑어 내리며 마담은 물었다.
“지금 당장 스토리 진행할 수 있어요?”
“네…?”
“선구자의 의무죠. 남들도 참여할 수 있을 만큼 스토리를 나가던가, 그도 아니면 빨리 이 메인 스토리를 끝내버리던가. 후자는 불가능해 보이고, 전자는 어떻죠?”
희연의 얼굴은 어두워졌다. 안 그래도 그녀 또한 악령이의 이야기를 어떻게 이끌어나가야 할지 고민하던 차였다. 그 탓에 방 꾸미기를 할 때도, 인벤토리 정리를 할 때도 집중하지 못했다.
답이 없는 희연을 힐끗 바라본 마담은 들고 있던 서류의 가장 위의 장을 훑으며 다시 물었다.
“본격적으로 메인 퀘스트에 참여한 건 뒷골목에서 만나기 전이죠? 마리아랑도 만났던 날 말이에요.”
“네….”
“그때도 악령은 있었고, 그러면… 그쪽이 뱀과 관련된 퀘스트에 엮이게 된 첫 번째 장소는 헬르벨과 만난 달빛 요람의 숲 맞아요?”
희연의 시선은 저절로 악령이 쪽으로 움직였다. 뱀과 관련된 첫 번째 사건, 사고. 사실 그건 악령이와의 만남은 아니었다. 희연은 인벤토리 정리를 하며 보았던 배지를 떠올리며 고개를 저었다.
“아뇨. 저는 그것보다 더 예전에 뱀 쪽 사람이랑 만났어요. 티티…, 그러니까 산골 꼬마 요정들이랑 만날 때요! 요정들을 납치하던 사냥꾼들 사이에 있던 유저가 뱀 배지를 가지고 있었거든요. 굳이 따지면 그때부터일 거예요.”
그로부터 제법 많은 시간이 지났지만 희연은 여전히 그때 만났던 유저 딕톤의 이름을 기억하고 있었다. 그는 희연에게 잊지 못할 기억을 선사했던 존재였기 때문이다.
“아, 그때 그 미스.”
“…….”
그 자리를 함께했던 청산가리도 딕톤을 기억한다는 듯 아는 척을 해왔다. 희연은 묵묵히 고개만 끄덕였다. 당시 구금당한 터라 미스 사건을 모르는 킹스메이커와 뉴비 없지가 무슨 의미냐며 청산가리를 재촉했다. 청산가리는 그저 하하 웃기만 했다.
그 틈을 타 마담은 희연에게 조금 더 자세한 이야기를 요구했다.
“요정 납치범 중에 뱀 쪽 인사가 있었다는 뜻이에요?”
“조금 애매해요. 그때 사냥꾼이 그랬는데, 딕톤이라는 그 사람은 급전이 필요하다며 일하게 해 달라고 한 거라고 그랬거든요. 그런데….”
“유저는 급전이 필요하면 사냥을 돌지 요정 납치 같은 거 안 하죠.”
“그렇죠….”
요정과 뱀. 두 존재의 상관관계를 생각해보던 희연은 요정이라는 점에서 또 다른 사건 역시 기억해냈다.
“힐두르….”
요정의 성 오미크론에서 일어났던 사건도 뱀으로 인해 일어난 사건이었다. 어쩌면 요정이라는 종족 자체도 뱀과 긴밀하게 연관된 걸지도 몰랐다.
“힐두르?”
“그…, 잠시만요.”
마담의 물음에 답하려던 희연은 일단 킹스메이커에게로 가 작은 목소리로 질문했다.
“오미크론에서 있었던 일 마담한테 말해도 돼요?”
“마담이 정보를 다른 데 팔아치울까 봐 걱정돼서 그래요?”
“…네.”
이미 한번, 아니 여러 정황이 있으니 경계하지 않기란 어려운 일이었다. 희연의 눈앞에 있는 킹스메이커 또한 일단은 마담의 속살거림에 속아 정보를 사게 되었다는 선량한 피해자였고 말이다.
“이래서 평소 행실이 중요하다고 하나 봐요.”
“네…, 뭐, 그렇죠….”
조금 떨떠름해 하는 희연에게 킹스메이커는 답을 알려주었다.
“지금은 믿어도 돼요.”
“지금은요?”
“마담은 제 몸값 높이는 방법을 잘 아는 친구거든요. 제 정보를 바탕으로 메인 퀘스트를 깨게 만들었다? 이것만큼 정보상의 이름을 드높일 기회가 또 있을까요? 마담이 조금 전에 말한 제안도 이 얘기였을 거예요.”
“…….”
“오리 님이 선구자 자리를 공고히 하겠다고 한 이상 마담은 어떻게든 제 정보를 바탕으로 오리 님이 메인 퀘스트를 깨게 만들 거예요. 물론 그에 대한 값은 치러야 하겠지만… 그건 나랑 마담 간에 오고 가야 할 합의니까 신경 쓰지 말고요.”
킹스메이커는 마음 놓고 실컷 말하라며 희연의 등을 떠밀어 주기까지 했다. 덕택이라 할지, 희연은 일단 오미크론에서 있었던 일을 마음 놓고 마담에게 이야기할 수 있었다.
“요정이라….”
희연의 이야기에 마담은 고심하는 듯했지만 끝내 답을 찾을 수 없었는지 인상을 찡그리고 말았다.
“요정과 뱀 간의 연관 관계는 나중에 생각하도록 하고, 일단은 고문하든 설득을 하든 간에 정보를 뽑아먹을 수 있는 상대가 둘이나 있다는 점에 주목하도록 하죠. ”
마담이 말하는 두 사람은, 명백한 뱀 집단의 일원인 땃쥐 미와 용의자 딕톤이었다.
“땃쥐 미 쪽은 던전에서 한바탕한 이후로 현상금이 너무 많이 걸려서 종적을 감췄다 싶을 정도로 몸 사리고 있으니 잡기 힘들 거고…, 딕톤 쪽이 잡기는 더 쉬울 것 같긴 하네요. 그러면 일단 딕톤의 행적부터 찾는 거로….”
“그 미스 찾는 거면 어디 있는지 대략적인 위치는 제가 아는데요?”
마담의 말에 끼어든 것은 청산가리였다. 생글생글 웃음 짓는 그녀를 보며 희연은 의아하다는 듯 물었다.
“그걸 어떻게 아세요?”
“그야 되살아난 걸 잡아다 제가 손수 좋은 곳으로 보내줬으니까요.”
“…?”
“그때는 그랬거든요. 킹이랑 부길마가 언제 또 구금돼서 저를 오리 님의 임시 보호자로 데려다 앉힐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나중에 귀찮아질까 싶어 그 미스를 돌아오기 조금 힘든 곳으로 미리 보내버렸죠.”
“세상에 초코 님….”
청산가리의 이야기에 킹스메이커는 감동했다.
“그것참, 훌륭한 생각이었네요!”
“뭘요. 결국 킹은 그 뒤로 구금 안 됐는걸요. 제가 너무 킹의 인성을 나쁘게만 본 것 같아 나름 반성도 했어요.”
“에이, 반성까지야.”
대화의 흐름을 따라잡을 수 없어 희연은 필요한 내용 외에는 모두 흘려들었다. 어쨌든 간에 현재 정보를 빼내야 할 대상 딕톤은 청산가리가 손수 험난한 곳으로 보내버렸다는 의미였다.
진즉 필요한 정보만 정리한 마담은 곧바로 청산가리에게 질문했다.
“어디로 보냈는데요?”
“사막이요.”
“조금 더 정확하게 말해봐요. 사막 어디, 셰온인지, 로쿠투스인지. 아니면….”
“돌아올 수 없는 길목이요.”
“돌아올 수 없는 길목이면… 죽음의 사막?”
죽음의 사막이라는 말에 희연의 품에 안겨있던 악령이가 눈에 띄게 움찔거렸다. 희연은 그 움직임에 의아함이 담긴 눈으로 인형을 바라보아야 했다.
희연이 악령이에게 잠시 정신이 팔린 사이에도 마담은 청산가리를 붙잡고 조금 더 정확한 정보를 캐내기 위해 고군분투했다.
“이름 말고 다른 정보 아는 거 없어요?”
“음… 인상이 좀 흐릿했죠. 별로 특색 있는 인간은 아니라 기억이 잘 안 나요.”
“레벨은, 하다못해 직업도 기억 안 나요?”
“아… 뭐더라.”
악령이를 살피면서도 대화에 집중하고 있던 희연은 레벨이란 말에 퍼뜩 고개를 들었다.
“레벨은 제가 알아요! 178이요!”
공격 미스의 충격이 제법 컸던지라 희연은 딕톤의 레벨은 정확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희연이 아는 정보가 있다는 건 기쁜 소식일 터인데 마담의 얼굴은 딕톤의 정보를 듣기 전보다도 더욱 어둑해졌다.
“그 레벨이면 살아서 제 발로 사막은 못 나왔겠는데….”
“좋네요. 사막에서만 찾으면 되니까.”
“지금 좀 짜증 나려고 하니까 조용히 좀 해주죠?”
마담의 타박에 청산가리는 순순히 입을 다물었다. 희연은 그런 그의 모습을 보며 안 좋은 소식인가 싶어져 조심히 물었다.
“사막에서만 찾으면 되는 거면 그나마 조금 쉽지 않을까요? 땃쥐 미보다는….”
땃쥐 미의 경우 대륙 전체 단위로 숨어 돌아다니기 때문에 행적을 쫓는 데 오랜 시간이 걸릴 예정이었다. 반면 딕톤의 경우 그가 있는 곳이 비록 사막이기는 하나 ‘돌아올 수 없는 길목’이라는 정확한 지명까지 알고 있으니 비교적 쉬워 보였다.
나름 희망을 담아 말하는 희연을 마담은 바로 타박했다.
“로쿠투스도 못 갈 레벨로 죽음의 사막은 무슨….”
“어라? 지금 우리 이정보가 뭐라고 말한 거지?”
“그런 험악한 햇빛 아래에 네 소중한 뉴비를 데려다 놓으면 녹아 없어질까 걱정되어 죽을 것 같다고.”
“포장하기엔 너무 늦었어.”
마담에게 가벼운 응징을 가한 킹스메이커는 비실거리는 연약한 정보 상인을 뉴비 없지에게 맡기며 희연을 돌아보았다. 뒤꿈치를 들고 어깨에 손을 올리려 하는 그녀의 모습에 희연은 무릎을 조금 굽혀주었다.
“사막 얘기도 좋고, 메인 스토리 얘기도 다 좋지만, 이 얘기부터 해야죠. 자, 여기서 문제. 지금 오리 님이 잊고 있는 중요한 일은 무엇일까요?”
“어… 방 꾸미기?”
“하우징 좋죠. 하지만 아니에요. 힌트는 오리 님이 할 수 있는 한 최대한 제일 마지막까지 밀어두고 싶어 하는 일이라는 거예요.”
그게 뭘까 곰곰이 생각해보던 희연은 마담의 비꼼을 떠올리며 그 답을 찾아냈다.
“…아.”
“네. 악마와의 내기. 그거 안 끝내면 오리 님은 레벨도 더 못 높이고 사막도 못 가고 메인 퀘스트 진행도 못 해요.”
“…….”
“원래 일은 싫어하는 것부터 차례로 해야 하는 법이랍니다 오리 님. 악마에게 신성한 채찍질의 힘을 보여줘야죠!”
“꼭 채찍일 필요는….”
우는소리 하는 희연에게 단호히 고개를 저은 킹스메이커는 이 일에 관하여 처음으로 진지한 태도를 보여주었다.
“마탄의 사수의 능력의 원주인은 자미엘이니까요. 사격으로 승부를 보게 되면 오리 님한테는 승산이 없어요.”
자미엘이 총을 쏘는 모습을 본 적이 없었기에 희연은 이 능력을 누가 처음 내려준 것인지 잊고 있었다. 심각해진 낯의 희연을 보며 킹스메이커는 마저 말을 이었다.
“재수 없으면 오리 님은 패시브 스킬 없이 온전히 오리 님만의 실력으로 자미엘이랑 승부를 보게 될지도 모른다는 거예요. 그러니까, 이런 내 마음 알아줄 거죠?”
마지막은 장난스럽게 끝맺었지만, 킹스메이커의 말에는 반드시 희연을 편술의 마스터로 만들겠다는 각오가 담겨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