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뉴비세스 메이커 (182)화 (182/251)

182화

『✟힐러의 자질✟』

“계속 잊고 있지 뭐하러 기억하셔서 이렇게 부르시나?”

“…죄송합니다.”

사과하는 희연의 모습에도 모짜렐라는 고개를 홱 돌렸다. 매정한 하늘색 뒤통수를 바라보며 희연은 민망함에 고개만 푹푹 숙였다. 희연은 감히 변명조차 하지 못했다.

존성대명에게 납치당하고 백희준과 길드전을 하고 합의 보다 싸우고 등등, 워낙 줄줄이 일어난 일이 정신없었기에 염색 거리에서 애매하게 헤어진 모짜렐라를 완전히 잊고 있었다.

모짜렐라는 헤어지기 직전까지 귀찮은 일도 별 내색 없이 함께해 준 거로도 모자라 존성대명에게 납치당하던 순간에는 레벨 차이에도 불구하고 용감하게 맞서 싸우려 했다.

고맙다고 해도 모자랄 판에 깜박 잊고 말았으니 희연은 할 말이 없었다.

쩔쩔매는 희연의 모습이 보기에 안쓰러웠는지 지켜보던 마리아가 모짜렐라의 어깨에 손을 얹으며 한마디 보탰다.

“그만 받아주지 그래 치즈. 저렇게 미안하다는데. 이렇게 된 이상 두 번은 널 안 잊을 거 아니야. 와 해피엔딩!”

“지금 그걸 말이라고….”

마리아는 왁왁거리는 모짜렐라를 힘주어 제압했다. 생글생글 웃음을 머금은 황금색 눈이 희연을 돌아보았다.

“그렇죠?”

집요한 시선에 희연은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데굴데굴 눈을 굴려 최대한 눈을 마주치지 않으려 했다. 그런 희연의 반응을 상대는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 정확히 말하면 조금 재밌어했다.

“수줍음이 많은가 봐?”

“우리 오리 님이 조금 낯가리는 구석이 있긴 하지.”

그런 거 아닌 거 알면서….

마리아의 말에 맞장구치는 킹스메이커를 잠시 흘겨본 희연은 결국 복잡한 속내 가득한 한숨을 내쉬고 말았다.

희연은 가능한 마리아의 앞에 알짱거리는 일을 최대한 없게 해 괜스레 그녀의 신경을 건드리지 말자 다짐했었다. 그러나 그 결심을 한 지 얼마나 됐다고 그녀는 마리아와 마주 서게 되었다.

이 모든 게 다 전조 없는 킹스메이커에 의해 순식간에 이루어진 만남이었다. 편술의 마스터 마리아와 그런 그녀가 계획을 가지고 키우는 뉴비 12시의 모짜렐라, 그리고….

“…내가 여기 있어도 되나 잘 모르겠네.”

이세인.

일이 이렇게 된 과정을 알기 위해서는 설명이 필요했다.

***

처음 킹스메이커는 희연을 가르칠 재목으로 마리아만 생각했다. 편술의 마스터! 인성을 대신하는 실력! 희연이 힐러로서 앞으로 사람들과 함께 플레이할 경우 어떤 식으로 굴어야 하는지 자세히 알려줄 수 있는 현역!

이만큼 좋은 조건을 가진 스승은 드물었다. 게다가 마리아는 힐만 하는 게 아닌 틈틈이 딜도 넣고 탱커 역할도 하며 심심할 때는 본인이 미끼 역할도 하는 다재다능 하이브리드 만능 힐러였다.

희연에게 힐러라는 직업이 할 수 있는 역할의 다양성을 보여주기에 적합하다는 의미였다.

그러나 마리아는 그 실력이 사랑받을지언정 인성으로는 사랑받지 못할 인간이라는 것을 킹스메이커는 잘 알고 있었다. 희연이 마리아에게 인성질을 배워 오기를 바란 것은 아니었기에 킹스메이커의 고민은 깊어만 갔다.

희연이 마리아에게서 인성질을 배워와 이미 싸늘하게 죽어 별님을 만나러 가는 중인 이들에게 채찍질을 한다면…, 솔직히 말해 상관없었지만 킹스메이커는 희연의 평판이 나빠져 욕을 먹는 상황이 오지 않기를 바랐다.

그러나 마리아에게 배우다 보면 그녀의 인성질 광경을 볼 수밖에 없었고 아무것도 모르는 희연은 그걸 고대로 따라 할 확률이 높았다.

그런 일을 방지하기 위해서라도 킹스메이커는 희연에게 다양한 경험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마리아 같은 변칙 플레이도 좋지만 그 이전에 그 변칙적인 것을 이해할 기본 지식이 있어야 한다는 것 또한 알았다.

변칙적인 것만 배워 실전으로 써먹을 경우 잘해야 괴짜 취급 못 하면 고의성 트롤로 간주 되어 파티에서 강퇴당할 것이 뻔했기 때문이다.

킹스메이커는 자신의 소중한 뉴비가 욕먹고 파티에서 강퇴당하는 꼴만큼은 못 봤다. 그래서 그날, 킹스메이커는 곧바로 백희준에게 편지를 보냈다. 이세인을 보내라고 말이다.

마리아가 변칙적인 플레이와 사람들이 힐러에게 바라는 이상, 그리고 약간의 인성질로 이루어진 혼합체라면 이세인은 말 그대로 완벽한 정석 힐러였다.

마리아가 딜을 넣을 때 이세인은 힐을 넣었다. 마리아가 적진에 뛰어들 때 이세인은 몸을 사렸다. 마리아가 힐을 도발의 용도로도 사용한다면 이세인은 힐을 치료용으로만 사용했다.

매번 어영부영 상황의 흐름에 몸을 맡기고 힐과 딜을 오고 가지만 비전이나 정착된 플레이 스타일이 없는 희연에겐 마리아와 이세인은 좋은 양분이 되어 줄 것이란 게 킹스메이커의 판단이었다.

비록 희연에게 꼴도 보기 싫은 이세인과의 만남을 주선한다는 점에서 아주 조금 미안했지만, 킹스메이커는 지금 당장이 아닌 더 먼 미래를 내다보았다.

어느 분야든 간에 누군가가 남을 가르칠 때는 자신도 모르게 본인의 버릇도 함께 내보이고 만다. 이세인은 희연에게 기본기는 물론이거니와 본인이 싸우는 방식도 함께 가르치게 될 것이다. 사소한 버릇, 약점, 그런 것들.

이게 무슨 말이고 하니 희연은 별 노력 없이도 이세인의 스킬트리는 물론이거니와 싸울 때의 패턴 같은 것도 수고롭지 않게 알아낼 수 있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이후 희연이 이세인과 PVP를 뜨게 될 때 어느 쪽이 유리할 것인지는 굳이 생각해 볼 필요도 없는 문제였다.

이세인 때문에 희연이 울먹이던 것이 얼마 전이었다. 그리 오래되지도 않은 유감이었다. 킹스메이커는 그것을 그냥 넘길 생각은 애초에 없었다.

제 손으로 복수하는 맛도 보고 그래야 또 다른 재미도 느낄 수 있는 거 아닌가?

킹스메이커는 지극히 본인의 기준에서 생각했다.

“혼자 배우라고 하면 싫다고 할 테니까 마리아한테 그 친구도 데리고 오라고 해야겠네….”

킹스메이커는 착착 계획을 세웠다.

***

그렇게 만들어진 것이 지금의 자리였다. 모두의 지리적 요건을 고려해 성사된 수도에서의 만남은 어찌 보면 당연하게도 시작부터 삐걱거렸다.

희연의 취향에 알맞을 아기자기한 맛이 있는 수도의 제2구역 루에타의 거리에 나름 이름있는 맛집. 원래라면 수도 구경 한 번 제대로 안 해본 희연은 주위를 살피느라 바빴을 것이다.

그러나 가게에서 설치한 외부 테이블에 둘러앉은 사람 중 진심으로 웃고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테이블에 있는 요깃거리를 해치워나가는 악령이만 빼고 말이다.

희연은 노골적으로 이세인 쪽으로는 고개도 안 돌리고 마리아는 피하면서 모짜렐라에게 사과하느라 바빴다. 모짜렐라는 이제 됐다며 고개 숙이는 희연을 바로 세우느라 바빴고 말이다.

마리아는 고민하는 기색으로 넬과 악령이를 바라보며 웃었다. 마지막으로 이세인은 무척이나 곤란하다는 듯 웃고 있었지만 딱히 희연에게 미안해 보이지는 않았다.

아슬아슬하게 평화가 유지되고 있는 것 같은 풍경을 바라보며 킹스메이커는 방긋 웃었다. 그녀에겐 백희준까지 이 자리에 있는 게 아니라는 점만 해도 나름 지금의 풍경이 괜찮게 보였다.

“이게… 맞는 걸까…?”

“뭘 이제 와서 그래 없지 없지. 내 계획 들을 때만 해도 오리 님이 이세인 꺾어버린다는 말에 신났으면서.”

“그렇지. 근데 이렇게 처참한 분위기에서 다과를 즐기자는 말은 안 했잖아….”

“날씨 좋고, 이희준 없고, 오리 님은 팔팔하고. 이보다 좋을 수 있나?”

“…….”

뉴비 없지를 조용히 만드는 데 성공한 킹스메이커는 이제 슬슬 나설까 싶어 자리에서 일어났다. 자연스럽게 테이블에 도란도란 둘러앉아 있던 이들의 시선이 킹스메이커에게로 향했다. 물론 악령이는 빼고 말이다.

킹스메이커는 일단 다른 이들은 상대하기 싫어 모짜렐라만 붙잡고 있던 희연과 먼저 대화를 시도했다.

“자, 내 얘기 좀 들어봐요 오리 님. 오리 님은 신관 전용 튜토리얼 퀘스트도 안 했었잖아요. 그때 못 배운 기본 지식은 물론이고 일반적으로 힐러가 어떻게 싸우고 어떻게 플레이하는지 요약본으로 배울 수 있는 좋은 기회예요.”

“그게 꼭….”

“맞아요. 그게 꼭 이세인에게 배워야 한다는 건 아니죠. 하지만 이세인에게 배운다? 정석 힐러로서 어떻게 해야 하는지 쟤보다 더 잘 가르쳐 줄 사람은 없을 거라 확신해요.”

“…….”

희연이 입을 꾹 다물자 킹스메이커는 마치 달래기라도 하듯 굴며 말을 이었다.

“이세인은 오리 님의 성장을 위한 거름일 뿐이라고 생각해요. 실제로 거름으로 만들어버릴 거니까요.”

“…혹시 진짜로 우리 둘 싸움 붙이려고 하는 건 아니죠?”

“아이참.”

…맞구나!

경악한 희연이 무어라 더 말하려고 입을 열었지만 킹스메이커는 쉿, 하고 손을 드는 등 얄망궂게 굴 뿐이었다. 홀로 괴로워하는 희연을 피해 냉큼 자리를 옮긴 킹스메이커는 마리아의 어깨를 짚으며 그녀의 귓가에 작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우리 오리 님 거 뭐 하나라도 뺏으려고 하면 너 바다에 담가버릴 거야.”

“무서워라….”

그렇게 킹스메이커는 하나하나 당장에 급한 문제를 해결해나갔다.

신체 능력의 부족으로 킹스메이커의 속삭임을 듣지 못한 희연은 겉으로 보기에는 정답기 그지없는 두 사람의 모습에 차마 끼지도 못하고 킹스메이커의 의중을 헤아리려 골머리를 앓았다.

그런 희연의 원망은 자연스레 이세인 쪽으로 향했다. 마리아는 조금 무서운 거 빼면 희연에게 잘못한 게 없는 사람이었다. 반면 이세인은 아니었다.

희연이 지금 이 자리가 더없이 불편한 이유는 모짜렐라가 1할 마리아가 3할 이세인이 6할을 차지했다. 오란다고 진짜 온 이세인이 희연은 못마땅했다.

“음….”

이세인은 자신을 원망의 눈초리로 바라보는 희연의 시선에 침음을 흘리며 고개를 돌렸다. 그러자 이번에는 희연을 따라 이세인을 노려보던 악령이와 눈이 마주쳤다.

조그만 인형은 입에 묻은 크림을 닦을 생각도 하지 않고 이세인을 맹한 얼굴로 노려보고 있었다. 할 수 있다면 저주라도 날릴 것 같은 부두 인형의 뜨거운 시선에 결국 이세인은 먼저 입을 열었다.

“너무 그렇게 노려보지 마. 희준이도 동의해서 나도 여기 오게 된 거야.”

“…오빠가 동의했어요?”

“응. 제대로 안 가르치고 돌아오면 날 묻어버릴 거라고 하더라.”

“그 정도 협박은 감수하세요.”

“…그래.”

희연은 이어 조금 투덜거리긴 했지만 킹스메이커에 이어 백희준까지 가담한 것이 지금의 만남이라는 점에 항복의 의미로 한숨을 푹 내쉬었다.

여전히 이세인이 껄끄럽긴 했지만 킹스메이커가 한 말이 틀린 점은 없다는 걸 희연도 알고 있었다.

튜토리얼을 건너뛴 죄로 희연의 신관으로서의 지식은 NPC들과 대화할 때 큰 문제 없을 정도의 수준이었다. 그마저도 야금야금 필요할 때마다 조금씩 배운 정도였다.

킹스메이커가 읽으라고 한 책을 모두 읽었다면 부족한 지식이 모두 채워졌겠지만, 희연 본인이 게으름을 부렸던 것임으로 할 말도 없었다.

더불어 희연 스스로도 본인이 힐러로서 영 부족하다는 걸 잘 알고 있었다.

몬스터 웨이브 때도 마법사는 어떻게 서포트해야 하는지 몰라 헤맸고 그 뒤로도 그전에도 희연은 최소한의 힐러 규칙만 지키며 멋대로 굴었다.

본인의 부족함이 스스로에게만 피해를 주는 거라면 상관없었지만 힐러는 누가 봐도 남들과 함께해야 하는 직종이었다. 자신의 부족함으로 타인에게 피해를 주는 것은 희연도 바라지 않는 일이었다.

더불어 이세인이 그런 방향으로 훌륭한 스승이 될 거라는 걸 이미 알고 있다는 것도 문제였다. 당장에 마리아만 봐도 알 수 있었다.

마리아는 희연에게 잘 싸우는 법은 가르쳐도 남을 잘 치료하는 법을 가르칠 인사는 아니었다. 그녀의 밑에서 12시의 모짜렐라라는 훌륭한 정석 힐러가 나온 게 기적일 정도였다.

결국은 이 모든 게 다 본인의 부족함으로 인해 벌어진 결과물이라는 생각만 들어 희연은 눈에 띄게 시무룩해졌다.

사실 희연이 이렇게까지 머릿속이 복잡한 이유에는 이세인이 움직일 때마다 소매 사이로 엿보이는 팔찌 때문도 있었다. 희연은 여전히 백희준이 이세인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알 수 없었다.

희연은 자신 때문에 백희준의 결함이 돋보이는 건 원치 않았다. 부족한 인간관계라거나 그것의 바탕이 된 성격 같은 것 말이다.

게임에 인생을 건 백희준의 평판을 생각해서라도 이세인과 완전히 끝장을 보는 건 지양해야 했다. 마뜩잖긴 했지만 희연은 어느 정도는 순응하기로 했다. 물론 넘어갈 수 없는 문제도 있긴 했지만 말이다.

“또 악령이 공격할 거예요?”

설령 백희준이 인성 문제로 친구 하나 없다는 말을 듣는다 해도 희연은 이 점은 포기할 수 없었다. 이세인은 미묘한 표정을 짓다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안 그럴 거야. 난 지금보다 더 나빠지는 걸 원하지 않거든.”

“오빠와의 문제를 해결 못 해서 저한테까지 끌고 왔다는 점에서 이미 최악인데요?”

“…그래. 내가 좀 섣부르게 굴기는 했지. 어쨌든 이제는 나한테 배울 생각이 조금 든다고 봐도 되는 거지?”

희연은 느릿느릿 고개를 끄덕였다. 일단은 두고 보기로 한 것이다. 정 이세인이 마음에 안 든다 싶으면 킹스메이커의 말마따나 그를 거름 취급하면 될 일이었다.

악령이도 다시 만난 이세인을 으르렁거리며 경계하긴 했지만 지금은 테이블 위 먹을 것보다도 못한 것 취급을 했다. 이세인이 당장에 그때와 같은 위협만 하지 않는다면 희연으로서도 못 이용할 것도 없었다.

희연은 이세인을 말하는 거름, 내지는 사람 모양 교과서로 보기로 했다. 그런 희연의 시선에도 절대 굴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이세인은 참으로 굳건한 인간이었다.

그 점은 여전히 마음에 안 들어 이세인을 흘겨보던 희연은 자연스럽게 그의 텅 빈 목을 보게 되었다. 머리카락에 가려져 잘 보이지는 않았지만 귓가에는 희연의 것과 디자인이 비슷한 귀걸이가 있었다. 팔찌는 굳이 확인해 보지 않아도 되었다.

킹스메이커의 인벤토리에 있을 목걸이를 떠올리며 희연은 이세인을 떠보았다.

“목걸이 때문에 오빠랑 싸우지는 않았어요?”

이세인은 희연의 물음에 조금 놀란 듯한 기색을 보였지만 이어 흐리게 웃는 것으로 제 곤란함을 숨겼다.

“글쎄. 무슨 말을 하는지 잘 모르겠는데….”

물론 희연은 그가 피할 구실을 주지 않았다.

“오빠가 킹 님이랑 경매장에서 승부 본 목걸이요. 알잖아요.”

내뺄 생각하지 말라며 으름장을 놓듯 희연은 이세인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았다. 아무리 능청스러운 사람이라 해도 부담스러워할 법한 시선이었다.

“음…, 일단 약간의 오해가 있는 것 같아 희연아.”

“오해…?”

“희준이는 그런 수고로운 노력을 나한테 쏟을 정도로 정 많은 애가 아니야. 난 걔한테 그냥… 조금 거슬린다고 내다 버리기엔 아까운 힐러인 거지.”

자신의 처지를 굉장히 비관적으로 말하면서도 이세인은 미소를 잃지 않았다. 그 담담함에 희연은 자신이 아주 큰 착각을 했음을 깨달았다. 이세인의 말이 맞았다. 백희준은 남한테 그리 정을 느끼는 인간이 아니었다.

하지만 그렇게 되면 백희준이 왜 킹스메이커를 패배시켜야 하는 목걸이 쟁탈전을 벌였냐는 의문이 남았다. 그에 희연이 백희준이 왜 그랬을까 생각하며 고개를 갸웃거리자 그 모습을 지켜보던 이세인이 그 답을 알려주었다.

“희준이가 목걸이를 구한 건 너 주려고 그랬던 거야. 듣기로는 약속했었다며? 좋은 물건 주기로 했다고 하던데….”

희연은 자연스레 게임 초반, 힐링 게임이 킬링 게임이 된 것에 대한 분노로 백희준에게 덤볐던 일을 떠올렸다. 백희준은 살아남기 위해 약속을 했다. 레벨 100 찍으면 장비를 비롯한 돈과 기타 등등을 주겠다고 했던 약속이었다.

이세인의 말은 목걸이가 애초에 그 약속의 물건들 중 하나였다는 소리였다. 하지만 그 말에는 명백한 문제가 있었다.

“직업이 신관이라는 말을 한 적이 없었는데…?”

백희준은 희연에게 직업 정보를 물어본 적이 없었다. 게임 내에서 직접 대면하기 전까지는 짐작조차 할 수 없었을 텐데 무슨 수로 그보다 더 먼저 목걸이를 구한 것인지 희연은 알 수가 없었다.

“그건….”

이세인은 뜸을 들이며 테이블 위에 있는 것들 중 유일하게 악령이가 손을 대지 않은 커피를 입에 머금었다. 희연은 일부러 저러는 게 분명하다는 생각을 하며 불만스러운 얼굴을 했다.

한참을 뜸 들이며 오후의 티타임을 즐긴 이세인은 희연이 불만으로 눈살을 찌푸릴 때가 돼서야 입을 열었다.

“직업 구분 없이 죄다 쓸어 담았거든.”

“?”

“네가 무슨 직업인지 모르니까 선택할 가능성이 있다 싶은 직업의 장비란 장비는 죄다 쓸어 모았어. 그만한 돈 낭비도 없었을 거야. 그러는 거 보면 참… 답지 않게 지극정성이야. 그렇지?”

“…….”

…미쳤어 백희준!

희연은 소리 없이 경악했다. 이세인의 말이 진실이라면 백희준은 킹스메이커보다도 더한 인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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