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4화
모짜렐라는 그 뒤로도 한참을 씩씩거렸고 결국 그가 들고 있던 먹거리는 모두 악령이의 입속으로 들어갔다. 악령이만 행복한 결말이었다.
희연이 공복도를 꽉꽉 채우고 악령이도 빈 봉투 안에 머리를 넣으며 아쉬워할 때쯤, 모짜렐라도 어느 정도 기분이 풀렸기에 그들은 제법 평화로운 분위기 속에 수도 구경을 할 수 있게 되었다.
에빌론과 딜라일의 가장 큰 차이점을 말하라고 한다면 희연은 주저 없이 각 도시의 거주민들이라고 말할 것이다.
에빌론의 사람들은 이방인에게 익숙했다. 조금 다른 말을 하고, 조금 다른 옷을 입고. 조금 어설프게 굴어도 어느 정도 용인하고 웃으며 지켜보았다.
딜라일의 사람들은 자신들과 다른 점이 뚜렷하게 느껴지는 이방인을 경계했다. 수도의 거리를 걷는 내내 희연은 그 이방인이라는 자신의 위치가 참 선명하게 느껴진다고 생각했다.
힐끔거리는 시선은 끊이지 않았고 몇몇은 그들을 보며 혀를 차기도 했다. 그들만의 사회에 입성하지 못한 이들에게 딜라일의 사람들은 매정히 굴었다.
그리고 그런 종류의 시선은 대체로 희연과 모짜렐라에게 향했기에 처음 희연은 저 사람들이 설마 레벨로 차별하는 건가 싶어 수도의 매서움에 기가 질렸었다.
그러나 이어 하얀 옷을 입은 이들 중 몇몇이 뉴비 없지에게 고개 숙여 인사하는 것을 본 이후로는 단순히 레벨만 갖고 그러는 게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하얀 옷을 입은 사람들은 희연과 모짜렐라에게도 나름 친절히 굴었다. 희연의 시선은 자연스레 하얀 옷감 쪽으로 향했다. 흰색은 신을 모시는 이들이란 표식이었다.
“종교인으로 같이 묶여서 친절한 건가?”
어찌 보면 종교 차별이었고, 어떻게 보면 종교라는 이름으로나마 일종의 사회적 지위를 증명받은 셈이었다.
종교인 NPC에게서 희연이 눈을 떼지 못하자 뉴비 없지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어보았다.
“왜 그래요 오리 님?”
“아뇨, 그냥… 수도에는 유난히 종교인으로 보이는 사람들이 많다 싶어서요.”
“아아. 수도에는 대신전이 있어서 그래요. 외곽 쪽으로 나가야 가볼 수 있는 곳인데 제법 볼만해요. 말 나온 김에 대신전 견학 갈까요?”
열의 넘치는 뉴비 없지의 모습에 희연은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그런 성스러운 곳에 가면 악령이와 넬의 목숨이 위험했다.
“그것보다는….”
희연은 이제 슬슬 그만 돌아가자고 말하려고 했다.
이방인으로 감내해야 하는 차별적 시선이 질려서도 있지만, 매일매일 온갖 사건 사고가 일어나는 스펙타클 에빌론에서의 삶이 나름 익숙해진 희연에게 수도 딜라일은 아기자기한 것 외에는 별다른 재미가 없는 장소였기 때문이다.
게다가 지금쯤이면 킹스메이커가 두 사람의 싸움을 대충 정리했을 시간이었다.
사실 이후 있을 이세인과 마리아의 힐러 수업만 생각하면 희연은 여전히 한숨만 나왔다. 이세인은 계속 힐러는 힐을 해야 한다며 세뇌하듯 같은 말을 반복할 것 같았고, 마리아의 경우에는 어떻게 해서든 한 번은 희연을 레이드로 보낼 것 같아 무서웠다.
전자는 어느 정도 무시할 자신이 있는 희연이었지만 마리아의 힘 스텟 앞에서는 굴복할 수밖에 없으리란 걸 알고 있었다. 킹스메이커가 그런 마리아를 말려주지 않을까 마냥 기대하기에는 무리가 있다는 것도 말이다.
마리아는 킹스메이커에게 유한 게 아닌 돈에 의해 유해지는 사람이었고, 킹스메이커 또한 말만 안 할 뿐이지 은근히 희연을 레이드에 보내고 싶어 했다.
다만 킹스메이커는 나중을 기약하며 참고 있을 뿐이었다. 그 점에 나름 안도하긴 했으나 희연도 마리아의 입에서 레이드는 의무 교육이란 소리까지 나온 이상 마냥 조별 과제가 싫다며 피할 수는 없다는 걸 인지하고 있긴 했다.
레이드라는 건 또 어떻게 해야 하는 건가 고민하던 희연이 걸음을 멈춘 것은 성큼성큼 앞서 걸어가던 뉴비 없지가 갑작스레 걸음을 멈추었을 때였다.
희연은 깜짝 놀라 모짜렐라를 붙잡고 뉴비 없지의 뒤에서 벗어났다. 하마터면 연약한 힐러 두 명이 성기사랑 충돌하는 사고가 날 뻔했다.
오늘도 반질반질 빛나는 위험한 뉴비 없지의 갑옷에서 시선을 뗀 희연은 충돌사고의 원인을 찾아 뉴비 없지를 올려다보았다.
“없지 님?”
“잠시만요 오리 님. 킹이 연락해서…, 잠깐 저기 앉아서 기다려주세요!”
뉴비 없지는 다급하게 허공에 이리저리 손을 놀리다 입을 틀어막았다. 얼핏 비참함을 느끼는 것 같은 모습이었다.
그 일련의 과정을 얼결에 구경하게 된 희연은 무슨 일인지 잘 모르겠지만 위로를 해줘야 하는 건가 싶어 머뭇거리며 손을 뻗었다. 그런 희연을 모짜렐라가 붙잡았다.
“어….”
“저기 있으라잖아. 이리 와.”
내내 뉴비 없지에게 으르렁거린 것치고 모짜렐라는 말을 잘 들었다. 두 사람이 벤치에 나란히 앉을 때쯤엔 뉴비 없지는 참지 않고 머리를 싸매고 발을 동동 굴리는 등 바쁘게 움직였다.
그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희연은 고개를 기울이며 입을 열었다.
“설마 아직도 싸우나?”
킹스메이커한테 연락이 왔는데 뉴비 없지가 저렇게 질색팔색한다면 이유는 하나밖에 없었다. 모짜렐라도 희연의 의견에 동조했다.
“아직까지 싸울 만한 주제니까.”
“…….”
“왜. 뭐.”
“아니… 그냥 본인의 직업에 진지하게 임하는구나 싶어서?”
“내가 말하는 게 겜창 같다고?”
“그렇게 욕처럼 말하지는 않았는데….”
말랑말랑하고 부드러운 이미지의 닉네임과 달리 모짜렐라는 말을 험악하게 하는 구석이 있곤 했다. 희연이 모짜렐라를 조금 서먹하게 대하는 사이 킹과의 채팅이 끝난 뉴비 없지가 서둘러 둘에게로 달려왔다. 뉴비 없지는 울먹이고 있었다.
“오리 님 어쩌죠…, 오늘 수업은 그른 것 같은데요….”
“무슨 일인데요?”
단순히 마리아와 이세인이 싸우고 거기에 킹스메이커가 한 손 좀 보탰다고 해서 수업을 못 하게 된 건 아닐 터였다.
뉴비 없지는 눈치를 보듯 눈을 데굴데굴 구르며 시선을 피하다 결국 실토했다.
“그게… 마리아가 이세인이랑 말다툼하다가 결국 채찍을 들었는데 킹이 그거 막아주겠다고 낫 들었다가 실수로 이세인을 공격했대요.”
“…?”
실수로 공격?
눈을 가늘게 뜨는 희연의 모습에 뉴비 없지는 다시 슬쩍 시선을 피했다. 본인이 생각해도 실수로 공격이라는 게 말이 되지 않음을 아는 거였다.
“그러다가 때마침 수도에 있던 오리 님 오빠분께서도 오게 되었고 그렇게 아주 작은 싸움이 일어나며 소란이 조금 커졌는데….”
“아….”
백희준의 등장이라는 말에 희연은 자연스레 탄식을 뱉었다.
“평소에도 킹과 오리 님의 오빠분께서 너무 자주 싸워서 시드론의 왕이 수도 내에서 두 사람의 싸움을 금지했거든요. 지금 상황이 왕명을 어긴 거로 처리되어서….”
“…그래서요?”
“넷 다 지금 왕성에 불려 갔대요. 내일까진 왕성에 체류될 것 같다고 합니다….”
희연은 담담히 고개를 끄덕였다. 놀랄 것 없었다. 그저 어딜 내놔도 왠지 모르게 부끄러워지는 혈육의 이야기일 뿐이었다. 다만 이번에는 거기에 킹스메이커까지 함께할 뿐이었다.
“…하아.”
깊은 한숨을 내쉬는 희연의 모습에 뉴비 없지는 본인이 더 안절부절못하다 애써 밝은 척 쾌활하게 말을 걸었다.
“이, 이렇게 된 거 우리 수도 구경 한번 제대로 해볼까요? 제가 제대로 모시겠습니다 오리 님!”
“괜찮아요. 이미 다 구경했는걸요.”
“오리 님…!”
수도에 와서 좋은 적 한 번 없던 희연은 오늘도구나 싶어 그저 수도랑 자신이 잘 안 맞는다고 생각하기로 했다. 에빌론의 비평화적인 풍경이 왠지 모르게 그리워져 희연은 마음이 착잡했다.
스스로가 마귀굴 에빌론을 그리워하게 되었다는 점에 눈에서 생기를 잃은 희연을 보며 뉴비 없지는 이대로는 못 보낸다는 생각을 했다. 뉴비 없지는 딜라일의 지도를 꺼내 희연에게 내밀었다.
“그러지 말고 수도의 관광 명소라도 가보는 게 어떨까요! 여기 이곳을 보면…!”
희연은 노력하는 뉴비 없지를 위해 애써 웃으며 이야기를 들어주기는 했지만 왕성으로 끌려간 이들만 생각하면 도저히 태평하게 놀러 다닐 기분이 들지 않았다.
지도 위를 이리저리 옮겨 다니는 뉴비 없지의 손끝만 멍하니 바라보던 희연에게서 다른 반응이 나온 것은 지도 끝자락에 시선이 닿았을 때였다.
그러한 희연의 반응을 빠르게 눈치챈 뉴비 없지가 눈을 빛내며 물었다.
“가고 싶은 곳이 생겼어요?”
희연은 조금 머뭇거리다 고개를 끄덕였다. 뉴비 없지는 어서어서 편히 말해보라며 희연을 재촉했다.
“정확한 위치는 잘 몰라서요.”
“오리 님, 제가 있잖아요! 에빌론이 제 앞마당이라면 수도는 제 뒷마당! 어디든 제가 데리고 가드릴게요!”
자신 있어 하는 뉴비 없지의 모습에도 희연은 섣불리 말하지 못했다. 그곳이 가기 어려운 장소이기만 해서 그런 건 아니었다. 희연이 가고자 하는 곳은 무척이나 슬픈 장소였다. 희연은 손을 들어 지도의 어느 한 곳을 가리켰다.
“수도 외곽?”
모짜렐라의 물음에 희연은 고개를 끄덕였다. 희연이 가리킨 곳의 의미를 아는 것인지 방긋방긋 웃던 뉴비 없지도 웃음을 그쳤다.
“그레텔의 집에 가보고 싶어요. 수도 외곽에 있다고 했으니까 여기까지 온 김에 한 번쯤은 가보는 게 좋지 않을까 해서요….”
악령이 된 그레텔은 아무것도 남기지 못했기에 비석에 이름을 새기는 것으로 만족해야 했다. 그러나 남매가 살았던 집에는 어쩌면 함께 묻어줄 수 있을 만한 것이 있을지도 몰랐다.
잠든 악령이 옆에 얌전히 앉아 있던 넬이 슬그머니 희연에게 몸을 기댔다. 희연은 씁쓸히 웃으며 그런 넬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
[지식의 나라 <시드론>
: 사시사철 따뜻하며 큰 변화 없는 기후를 가진 시드론은 과거에는 수로를 이용한 교역으로 부를 쌓았으나 강이 메마르며 상업의 발전이 멈추었다. 교역으로 쌓은 부로 키운 군인들은 와해되었으며 왕권과 종교 간의 잦은 마찰 등의 문제로 내전 또한 잦아 부강한 나라가 되지는 못했다.
땅에서 나고 자라는 자원이 풍부하지도 않았던 시드론은 사람으로 이룰 수 있는 가장 큰 자원인 기술을 발전시켰고 나아가 지식과 기록의 중요성을 나라의 업으로 여기게 됨으로써 지금의 모습에 이르게 되었다.
수도 딜라일은 나라의 건국 당시 큰 역할을 했던 이들의 이름을 기리며 세 개의 구역으로 나뉘게 되었다.]
[지식과 기록의 나라 <시드론> - 수도 <딜라일> : 제1구역 론도의 거리, 제2구역 루에타의 거리, 제3구역 라느의 거리 / 치안도 : 좋음, 보통, 조금 나쁨 / 인구수 : 복잡 / 도시 발전도 : 높음]
희연은 대충 훑고 말았던 시드론의 정보를 다시 읽으며 눈앞의 거리를 살펴보았다. 제3구역 라느의 거리. 치안도가 조금 나쁨에 해당하는 구역이었다.
에빌론의 뒷골목이 뒷골목이라는 이름에서 느껴지는 그 분위기와 고정 관념에 맞추어진 콘셉트 장소 같았다면 라느의 거리는 조금 더 현실적인 무언가를 자극하는 것이 있는 장소였다.
론도의 거리 거주민들은 귀족이었다. 그들은 냉정하며 단정했다. 루에타의 거리 사람들은 일상의 사람들이었다. 그들의 거리에는 활기가 돌았다. 라느의 거리는 죽은 곳이었다. 낯빛 하얀 사람들이 오늘을 살기 위해 돌아다녔다. 오늘만 사는 듯 구는 사람들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었다.
“오리 님이랑 오리 님 친구분. 저한테서 멀리 떨어지지 마세요.”
뉴비 없지는 별 설명도 하지 않고 경고만 했다. 희연과 모짜렐라가 이유를 묻지도 않고 그런 그에게 바짝 붙은 모습만으로도 두 사람이 이 장소의 위험함에 대해 얼마나 경각심을 가지고 있는지 드러났다.
라느의 거리 사람들은 겉으로 보기에는 오랫동안 햇볕을 쬐지 못한 꽃처럼 시들거려 별 위협이 되는 모습은 아니었다. 그러나 그 텅 빈 눈을 한 번이라도 본다면 누구라도 이곳이 안전하다고 말하지 못할 것이다.
뉴비 없지는 발 빠르게 움직였다. 점차 안쪽으로 들어가는 그의 모습에 희연은 조금 불안해졌다. 그건 희연보다 레벨만 조금 높을 뿐이지 더 연약한 모짜렐라 역시 마찬가지였다.
“?”
망토 자락을 움켜쥐는 두 손길에 뒤늦게 뒤를 돌아본 뉴비 없지는 겁먹은 희연과 독기 오른 모짜렐라의 얼굴에 그제야 입을 열어 설명을 해주었다.
“라느의 거리는 오히려 안쪽으로 들어가야 치안이 좋아요. 오래전에 왕이 빈민 구제 명목으로 거리 개발을 한 적이 있는데 그게 실행된 곳이 이 안쪽이었거든요.”
“개발을 했는데 왜….”
“여러 가지 갈등으로 개발이 늦춰지다가 전쟁까지 나면서 아예 뒷전으로 밀리게 됐다나 봐요.”
희연은 자연스레 시드론의 왕을 머릿속에 떠올렸다. 세상의 그 무엇도 즐거움이 되지 못한다는 듯한 따분한 얼굴을 하고 있던 빛바랜 왕.
왕자 시절 썼던 저서와 빈민 구제 사업 같은 한때는 열정적이었던 왕의 이야기는 왠지 모르게 씁쓸했다. 라느의 거리 사람들의 비틀거리는 걸음이 그때의 흔적이기 때문일 터였다.
오늘을 살아가는 저들 또한 언젠가는 내일, 그보다 더 먼 미래를 그린 적이 있었을 것이다. 이제는 없어진 왕의 열정과 함께 침몰한 과거였다.
희연은 그 이상 라느의 거리에 대해서 물어보지 않고 묵묵히 뉴비 없지의 뒤만 따르며 걸음을 옮겼다. 안쪽으로 갈수록 도리어 안전하다고 하던 그의 말마따나 점차 길목이 정리되고 사람들의 얼굴에도 웃는 모습이 스치기 시작했다.
햇빛이 조금 더 잘 들게 만들고 낡은 건물을 보수하며 색을 밝게 한 것만으로도 분위기가 달라졌다. 비록 인적은 드물어 조금 을씨년스러운 분위기가 흐르긴 했지만 중간중간 조성된 초목이 이곳이 사람의 손길이 닿은 곳임을 증명했다.
희연은 어렵지 않게 헨젤과 그레텔의 집 위치를 알아낼 수 있었다. 어린 남매가 살던 집에 대해 물으니 거리의 주민 모두가 한 곳을 가리켰기 때문이다.
다만 헨젤과 그레텔의 집을 알려줄 때마다 주민들의 표정은 썩 좋지 못했다. 그 이유는 목적지에 도착하자마자 알 수 있었다.
“…예상 못 한 건 아니긴 한데 직접 보니까 조금 그렇기는 하네요.”
희연은 침음을 흘리며 말했다.
라느의 거리는 치안이 안 좋다. 아무리 그 안쪽이 그나마 낫다고 해도 조금 낫다는 거지 확연히 다르다는 게 아니었다.
주인 잃은 빈집, 심지어 그 집의 원래 주인이 어린 남매다. 치안이 그리 좋지 못한 곳에 위치했으나 나름 자리를 잡았던 상인이 살던 집. 안에 있을 물건은 낡은 집과 달리 질 좋은 물건이었을 것이다.
헨젤은 제 죄책감을 푸는 방식으로 그레텔에게 유복한 환경을 제공하려 했으니 가능성이 높았다.
한때는 소담히 피어난 들꽃으로 덮인 작은 정원이 제법 보기 좋았을 집은 폐가가 되었다. 창문은 깨졌고 문은 누가 뜯어갔는지 집 안으로 들어가는 바람 한 자락을 막아내지 못했다.
굳이 들어갈 필요도 없었다. 저 안에는 아무것도 없을 게 뻔했다.
“혹시 모르니까 들어가 볼까요?”
“아뇨…. 굳이 그럴 필요는 없을 것 같아요.”
차라리 헨젤의 일이 정리되자마자 바로 와볼 걸 그랬다 싶어 희연은 조금 후회되었다.
정원에 핀 꽃이라도 가져가 그레텔의 무덤에 심어줄까 고민하던 희연은 갑작스러운 고함에 깜짝 놀라 뉴비 없지의 망토를 붙잡았다.
“이 좀도둑들! 아직도 이 집에서 가져갈 게 있냐! 이 남의 집 지붕도 내다 팔 것들아…!”
고함을 지른 노인은 지팡이를 들어 위협을 하는 등 헨젤과 그레텔의 집에서 떨어질 것을 경고했다. 뉴비 없지가 있는 만큼 지팡이에 맞을 걱정은 없었기에 희연은 망설이지 않고 상대에게 대화를 시도해 볼 수 있었다.
“저희는 뭐 훔치러 온 게 아니에요!”
“그러면 왜 빈집 주위를 어슬렁어슬렁거려! 거짓말하지 마라, 이 고얀 것!”
“그레텔 일로 온 거예요!”
“그레텔?”
노인은 그레텔과 아는 사이였는지 고함을 멈추었다. 지팡이에 의지해 천천히 걸어온 노인은 희뿌연 눈으로 희연과 눈을 맞추며 물었다.
“그레텔을 알아?”
“일단은요….”
“헨젤 그 애도 알고? 그 애들한테 무슨 일이 있었는지도?”
“…….”
침묵하는 희연에게 노인은 한 발자국 더 가까이 다가왔다. 노인은 희연과 뉴비 없지 모짜렐라를 차례차례 살펴보더니 고개를 천천히 끄덕였다.
“이제 보니 이방인들이었군. 에빌론에서 왔어, 그렇지? 불쌍한 그레텔의 무덤에 바칠 것을 찾으러 온 거야….”
노인이 그레텔의 소식을 안다는 점에 희연은 놀랐다. 그런 희연의 기색에 노인은 껄껄 웃었다. 힘없는 웃음이었다.
“우리는 말이지, 바람을 타고 흐르는 이야기를 듣곤 하지. 때론 전혀 마음의 준비를 하지 못한 그런 이야기들도 듣곤 해. 이번에도 그랬을 뿐이니 그런 표정 짓지 말게나 젊은 이방인 친구.”
“…….”
“그래…, 우리 사이엔 지팡이와 고함 대신 다른 것이 필요한 것 같군그래. 가령 쑤시는 무릎을 달래 줄 의자와 소리 지르느라 쉬어버린 목을 위한 따뜻한 차를 놔둘 테이블 같은 것들 말이야.”
노인은 지팡이를 들어 어딘가를 가리켰다. 헨젤과 그레텔의 집과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는 작고 소담한 집이었다.
“이방인 자네들. 내가 손에 힘이 빠져 이 차가운 바닥을 구른다고 한다면 당연히 가여운 마음이 들겠지? 내가 그 마음을 편하게 만들어주도록 하지.”
“아….”
노인은 그 이상의 이야기를 듣지 않고 지팡이에 의지해 천천히 걷기 시작했다. 얼결에 그 뒤를 따라 걷는 일행에게 노인은 쉬어버린 목소리로 속삭이듯 말했다.
“바람의 이야기 말고 자네들의 이야기를 들려주게나. 의자와 테이블과 이런 화창한 오후에 어울리는 레몬차를 곁들여서. 슬픔은 바람이 싣고 갔으니 위로는 필요 없네. 이 나이에 그런 건 구질구질하거든.”
노인은 껄껄 웃었다. 구질구질하다는 슬픔 따윈 전혀 느껴지지 않는 모습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