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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비세스 메이커 (186)화 (186/251)

186화

당장에 백희준은 없었지만 지금 이 자리에는 킹스메이커의 방식이 익숙하지 않은 사람이 한 명 있기는 했다. 배운 거 잘 따라 한다고 박수 치는 뉴비 없지 옆, 떨떠름한 얼굴을 한 모짜렐라였다.

“너… 너희 길드장이랑 하는 짓이 똑같다.”

“…….”

“그래, 마리아처럼 부수고 시작하는 것보다는 낫네.”

킹스메이커는 사실 돈으로 해결하기보다는 낫을 들 때가 더 많아 마리아보다 더하면 더하지 결코 낫다는 소리를 들을 사람이 아니기는 했다.

그 점을 일단 함구한 희연은 나름의 변명을 내놓았다.

“언제 킹 님이랑 다 나와서 수업 시작할지 모르니까 빨리 해결하려고 그런 거지 나도 원래 이런 식으로는 안 해.”

“그런 것치고는 돈부터 붓고 시작하는 게 익숙해 보이던데.”

“그건 자주 봐서….”

최근에도 희연은 킹스메이커가 그녀의 부족한 레벨을 돈으로 해결하려 하는 모습을 본 적이 있었다. 비록 그 상대가 답지 않게 신실한 르센 신의 종 루시페라제라 실패하기는 했지만 말이다.

하여간에, 당장에 중요한 것은 세상은 돈이면 다 되는 건가 하는 고뇌가 아니었다. 희연과 모짜렐라가 암시장에 입성하는 데 성공했다는 점이 중요했다.

그들이 라느의 거리를 벗어나기 전 노인 릴리는 상세한 설명을 들려주었다.

라느의 거리에서 빈집털이는 문화처럼 자리 잡아 반복해서 벌어지는 행위지만, 훔치는 사람들도 그것이 장물이라는 자각은 있었다.

가구 같은 생활감 있는 물건은 본인들의 집으로 가져가 사용하고 장식품 같이 값나가는 것은 암시장에 내다 팔아 돈으로 챙겼다. 그들은 훔쳐 온 물건을 밖으로 내보냈을 때 생기는 문제들을 이런 식으로 완전히 차단했다.

릴리가 말했던 그레텔의 장난감은 굳이 챙기기도 애매하고 값이 나가는 것도 아니었다. 그러나 그런 돈 안 되고 별 쓸모도 없는 기타 잡다한 것까지도 싹싹 긁어가는 것이 수도 딜라일의 어둠, 라느의 거리였다.

그러면 그 잡다한 것들이 어떻게 되는가 하니, 푼돈을 주고 그런 것들을 정기적으로 사가는 장소가 존재한다 했다. 대놓고 상품으로 팔기에는 애매하나 가벼운 내기 거리로는 적절하기 때문이었다.

“찾았다!”

릴리는 그곳을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을 거라 말했다. 그 주위는 항상 도박꾼들의 울음으로 시끄러워서였다.

그리고 그 도박꾼 대부분은 인생 한 방을 노리고 찾아온 유저들이었다.

“이 정도 실패했으면 다음 건 성공하겠지? 이 정도까지 했는데 안 나온다? 삐약, 바로 건의함 테러해 버린다….”

“자, 봐봐. 성공 확률이 26%라잖아. 지금 내 앞에 애들이 다 실패했거든? 그렇다면 쟤네가 실패할 확률 74% 대신 실패해 줬다는 거잖아. 그러면 이제 내가 성공한다는 거 아닐까?”

“내가 봤다고! 내가 봤다고! 방금 손장난 치는 거 내가 봤다고! 야 엎어, 엎어…!”

어디선가 본 것 같은 눈앞의 모습에 희연은 눈을 가늘게 떴다. 참 정서에 나쁜 콘텐츠는 다 있구나 싶어서도 있었고, 이 와중에 도박 확률이 강화 확률보다는 좋다는 점이 어이없어서이기도 했다.

유저들의 꿈과 희망을 갈취하며 낄낄 웃던 도박꾼 NPC가 새로운 얼굴의 등장에 손을 살랑살랑 흔들었다.

“거기, 신전에서 온 이방인 친구들. 자네들도 한판 할 텐가? 초보자라면 여기 이 색깔 맞추기 게임을, 좀 더 큰 한 방을 노린다면 여기 이 룰렛을. 아니다, 나는 내 지식을 뽐내고 싶다 싶으면 여기 이 카드 게임을….”

“사격이요.”

“응?”

“도박 말고 사격하러 왔어요.”

희연의 말에 도박꾼은 얼굴을 와락 구겼다. 그 모습에 희연은 자신이 잘못 찾아온 건가 싶어 조금 고민했지만 이어진 상대의 말에 내심 속으로 안도했다.

“에잉. 그런 재미없는 건 뭐 하러 한다고 귀찮게시리. 이봐! 여기 사격 한판 하신단다! 준비해 드려라!”

도박꾼의 외침에 유저들의 등골을 뽑아먹던 다른 도박꾼 중 몇몇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들은 한쪽 구석에 정차해놓은 짐마차에서 부피가 큰 짐을 차례로 꺼내기 시작했다.

낡고 긴 테이블에 조잡한 총이 올려지고 제법 거리가 되는 위치에 이런 어두운 장소에서 보기엔 조금 곤란한 빛바랜 과녁이 차례로 설치되었다.

그리고 이어 한 도박꾼이 과녁판 옆에 무언가가 잔뜩 든 상자를 내려놓았다. 멀리서 봐도 그것이 이 조잡한 사격장에 내걸린 상품이란 걸 알 수 있었다.

희연은 상자에 워낙 잡다한 게 많아 그레텔의 물건을 못 찾으면 어쩌나 걱정을 했지만 도박꾼 NPC는 의외의 친절을 발휘함으로써 그런 희연의 걱정을 종식시켰다.

“이 중에 따로 원하는 게 있으시면 말씀하셔요.”

성의 없는 말투였지만 원하는 바가 뚜렷한 희연에게는 반가운 제안이었다.

“나무 조각 장난감도 있나요? 그렇게 정교한 물건은 아닐 거예요.”

“예에, 뭐 그런 걸 본 것 같기도 하고. 이봐 나무 장난감 있나 한 번 확인해 봐!”

나무 상자를 들고 있던 도박꾼은 귀찮다며 투덜거리기는 했지만 착실하게 희연이 원하던 물건을 찾아냈다.

“나무 장난감은 저것밖에 없다는 데 저거 맞나?”

“맞아요.”

맞는지 아닌지 구별하는 건 희연에게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헨젤이 제 아버지가 만들어준 것을 본떠 만들었다는 말을 들었고, 희연은 이미 그 장난감을 직접 본 적이 있었기 때문이다.

“딱 봐도 낡고 별 쓸데도 없는 물건인데 여기까지 찾으러 오시고, 제법 귀하게 여기는 물건인가 보네요?”

“네에, 뭐….”

말을 흐리는 희연의 대답에 고개를 기웃거리던 도박꾼은 무슨 생각을 했는지 갑자기 야비하게 웃기 시작했다. 그 수상해 보이는 모습에 희연은 빨리 일을 처리하고 가는 게 낫겠다 싶어 서둘러 과녁 앞으로 움직이려 했다.

“어허, 잠깐잠깐! 사격 게임을 진행하기 전에 우리 사이에 오고 가야 할 이야기가 있을 텐데?”

“돈이요?”

사격 비용을 내라는 건가 싶어 희연은 인벤토리를 열었다. 그러나 도박꾼은 고개를 저었다.

“겨우 푼돈 얼마 받겠다고 바쁘신 분들을 이리 귀찮게 하는 거겠습니까? 다만 이렇듯 우리가 굳이 굳이 수고로운 준비를 해드렸는데 먼저 오고 가야 하는 게 있지 않나 하는 거지요 이방인 친구들.”

“…….”

그게 돈이라는 거 아닌가…?

미심쩍은 표정을 지으며 긴가민가하는 희연과 달리 뉴비 없지는 상대의 말뜻을 제대로 알아들었다.

“사격 하고 싶으면 그전에 도박 먼저 하라는 뜻이에요 오리 님.”

“네? 왜요?”

“콘텐츠 권장…?”

사행성 콘텐츠도 콘텐츠랍시고 권장한다는 말에 희연은 인상을 찡그렸다. 그건 모짜렐라 역시 마찬가지였다. 다만 모짜렐라는 대놓고 도박의 길로 꼬시는 NPC에게 으르렁거린다는 점이 조금 달랐다.

“아휴 뒤에 신관님, 그리 노려보시면 저희는 겁이 많아 이거 다 들고 도망칠 수밖에 없습니다? 자자, 화내지 마시고, 설마하니 우리가 연고 없는 자네들 돈을 갈취할까 싶어서? 우린 이래 봬도 어! 법 딱딱 지키고, 어! 한 달에 한 번 신전에 기부금도 바치는 그런 사람들이야!”

신전에 기부금을 바친다고 해서 딱히 신실하거나 성실하거나 한 사람을 의미하는 건 아니었다. 도박꾼의 말에 따르면 킹스메이커는 이미 교황이 되어야 했다.

미적지근한 반응을 보이는 희연의 모습에 도박꾼은 야비한 웃음을 버리고 사근사근해진 말투로 다시 접근을 시도해왔다.

“우리도 다 이거 먹고 살려고 하는 짓 아니겠습니까! 그렇다고 해서 우리가 막 사기 치고 그러지도 않으니 오해 마시고, 그냥 사격을 하기 전에 원래 이곳의 목적인 가벼운 게임을 먼저 하시지 않겠냐 한 번 물어보려 그러는 거죠!”

“…어쨌든 사격 하고 싶으면 도박 한 판 하라는 거잖아요.”

“아이고! 그런 식으로 말씀을 하시면 꼭 내가 협박이라도 하는 것 같지 않습니까! 이건 그냥, 그 뭐냐 준비 게임 같은 거죠! 사격을 하기 전에 몸도 좀 푸시고!”

“몸을 풀고 싶으면 도박이 아니라 그쪽 머리에 총을 들이밀었겠지.”

“아이고 뒤에 계신 신관님은 입이 좀 걸걸하셔! 어찌 됐든 간에, 하실 거지요?”

능청스레 구는 도박꾼의 모습에 속으로 혀를 차며 희연은 뉴비 없지를 돌아보았다. 의외로 그는 조금 곤란해 보이기는 해도 가벼운 표정을 짓고 있었다.

“오리 님 이게 말이죠, 도박은 도박인데 사실 그렇게 사행성 있는 도박은 아니에요.”

“…?”

따뜻한 아이스 아메리카노 같은 소리에 희연은 얼굴을 찌푸렸다.

“말 같지도 않은 소리 같기는 한데 진짭니다 오리 님! 뭐라고 해야 하지… 아! 게임 안에 미니 게임 정도로 봐줄 만한 정도의 도박이에요!”

여전히 의구심과 의심이 풀리지는 않았지만 희연은 일단 뉴비 없지의 말을 믿고 도박판에 참여하기로 했다. 도박꾼은 어서 오라며 방긋방긋 웃고는 설명을 시작했다.

“자자, 일단 하루에 걸 수 있는 돈은 총 50골드입니다! 연속으로 진행할 수 있는 건 딱 사흘이고요, 이틀 정도 쉬다가 다시 와주셔야 합니다. 중독 방지를 위한 정책이니 부디 잘 따라주시기를 바랍니다.”

“…?”

도박치고는 걸 수 있는 금액이 너무 적었고 뭔가 이상했다. 희연이 긴가민가한 기분에 고개를 갸웃거리는 사이 도박꾼은 카드로 현란한 손놀림을 보여주는 등 도박과는 거리가 조금 있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어떤 게임으로 진행하시겠습니까?”

“…제일 쉽고 빨리 끝나는 거요.”

“그렇다면 여기 이 색 맞추기가 최고죠! 이 구슬로 말하자면 마탑의 공식 인증을 받은 깜빡이 구슬로….”

“설명은 괜찮아요.”

도박꾼은 대놓고 실망한 표정을 지으며 구슬을 희연에게 넘겼다.

“?”

“이 게임이 사기가 아님을 증명하기 위하여 진행 내내 구슬을 손에 쥐는 것은 손님입니다. 여기 이 검은 천을 덮고 치울 때마다 구슬의 색이 붉은색 아니면 푸른색으로 변할 겁니다. 천을 치우기 전에 무슨 색인지 맞추면 돼요, 어렵지 않죠?”

“네에….”

“첫판에 승리하면 건 돈에 20%를 얹어주고 두 번째 판에 승리하면 첫판에서 늘어난 돈의 25%를 더. 그런 식으로 총 열 번의 게임을 진행하면 되고 언제든 도중 멈추고 딴 금액을 받아 갈 수도 있습니다. 자, 그러면 얼마를 거시겠습니까?”

희연은 부담스러울 정도로 반짝이는 도박꾼의 눈을 물끄러미 바라보다 입을 열었다.

“1골드요.”

“…1? 1? 1?”

“네.”

“이거 참, 허, 참 겁 많은 손님이시네….”

“천은 이거 덮으면 돼요?”

“예에….”

희연은 구슬을 쥔 손에 검은 천을 덮자마자 입을 열었다.

“빨간색이요.”

“예, 확인을… 아이고 파란색이네요…. 손님이 거신 1골드는 네, 제가 가져가지요….”

“그러세요. 그러면 저 이제 사격해도 되는 거죠?”

“예…, 뭐… 그렇지요….”

돈을 벌었지만 번 것 같지 않은 기분에 착잡한 얼굴이 된 도박꾼을 뒤로하고 희연은 조잡한 총이 놓인 테이블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그런 희연의 뒤를 쫓아오며 뉴비 없지가 말했다.

“오리 님, 비록 어쩔 수 없이 도박을 하게 됐지만 도박은 나쁜 거예요! 돈이 필요하다면 사냥이나 레이드를! 아니면 저나 킹한테 말하고, 만약 스릴을 즐기고 싶은 거면 도박 말고 장비 강화를…!”

“…….”

같은 열 번이라고 했을 때 색 맞추기 게임이 오히려 장비 강화보다 성공 확률이 높았다. 잃는 돈도….

그러나 악령이도 듣는 이야기인데 장비 강화보다 도박이 낫다고 말할 수는 없었기에 희연은 그저 웃는 것으로 답을 대신하고는 원래의 목적에 집중하기로 했다.

“어차피 과녁에 맞춰야 하는 건데 원래 제 총 쓰는 건 안 될까요?”

“당연히 안되지요!”

1골드의 여한에서 벗어난 도박꾼이 뉴비 없지 대신 답하며 희연의 앞으로 뛰어왔다. 그 다급한 모습에 희연은 직감했다. 저 조잡한 총에 무슨 장난질을 쳐놨구나 하고 말이다.

“사격 게임 한 판당 비용은 500골드 되겠습니다!”

“…왜 비싸요?”

“아이구, 이게 상품을 마음대로 고를 수 있는 거라 저희도 어쩔 수가 없습니다! 저 중에는 500골드? 그 푼돈보다 비싼 물건도 널려있거든요!”

“그래 봤자 남의 집에서 훔쳐 온 거면서….”

“자자, 여기 있습니다!”

희연은 시간이 지날수록 저 도박꾼이 참 마음에 안 든다 생각하며 총을 손에 쥐었다.

느낌이 확실히 다르기는 했다. 초반에 썼던 초보자용 권총 외에는 헬르벨의 총이라던가 킹스메이커와 합법 도박의 야심작만 손에 든 희연에게 암시장의 조잡한 총은 불편하기만 했다.

그러나 그래도 총은 총이었다. 백발백중의 패시브는 장난감 총일지라도 그 위엄을 과시했다.

“…?”

그러나 낭만의 프라이쉬츠가 이끄는 대로 몸을 틀면서 희연은 평소보다 더 높게 올라가는 총구에 의문을 느꼈다.

낭만의 프라이쉬츠는 기술을 몸에 익히게 해주는 스킬이라는 킹스메이커의 말마따나 희연도 나름 총을 다루는 법이 몸에 익고 눈이 생겼기에 알 수 있는 변화였다.

설마….

희연이 혹시나 하는 생각을 하는 사이 그녀의 몸은 고정되었다. 이런 상태에선 절대 과녁을 명중시킬 수 없다는 걸 알면서도 희연은 방아쇠를 당겼다.

탕-!

“헙…!”

도박꾼이 숨을 들이마시는 소리를 냈다. 희연의 얼굴에는 짜증스러운 기색이 슬금슬금 드러났다. 자세를 풀고 총구를 확인하려 하는 희연의 모습에 도박꾼이 서둘러 끼어들었다.

“제한 시간 10! 9! 8…!”

탕-, 탕, 탕, 탕, 탕, 탕, 탕-, 탕-! 탕!

“7….”

숫자는 더 이상 이어지지 않았다. 의미가 없었기 때문이다.

“후우….”

희연은 연속으로 총을 발사하며 자연스럽게 참게 된 숨을 내뱉었다. 결과는 확인할 필요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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