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뉴비세스 메이커 (188)화 (188/251)

188화

그렇게 한 사람과 한 부두 인형이 묘한 대치를 이루는 사이 뉴비 없지와 대략적인 이야기를 끝낸 희연이 돌아왔다. 희연은 눈싸움하고 있는 둘의 모습에 왜 그러고 있나 싶어 조심스레 접근했다.

“무슨 일 있어? 혹시 악령이가 뭐 잘못했어?”

“…안 했어.”

혹여나 악령이가 입을 벌리며 모짜렐라를 잡아먹겠다는 위협이라도 했나 걱정한 희연은 그런 류의 사고는 없었구나 싶어 안도했다.

“악령아, 뭐 가져갈지 골랐어?”

희연의 부름에 상자 안에서 꼼지락거리던 악령이가 모습을 드러냈다. 안아달라며 양팔을 뻗는 인형을 안아 든 희연은 그새 지저분해진 뺨을 옷 소매로 닦아주었다.

간지럽다며 까르르 웃던 악령이는 뺨을 다 닦아 멀어지는 소매에 매달리며 외쳤다.

“이걸로 할래!”

“그래?”

모짜렐라를 고뇌하게 만든 귀한 보물을 내다 버린 악령이가 선택한 것은 알록달록한 틴케이스였다. 곳곳에 칠이 벗겨진 오래되고 낡은 물건이었다.

그 선택에 모짜렐라는 더욱더 양심이 아파지는 것 같아 얼굴을 와락 구겨버렸다. 그 모습을 본 희연은 영 걱정이 되어 악령이에게 다시 물어보았다.

“악령아, 진짜 아무 일 없었어?”

“어….”

악령이는 눈을 깜박이다 뭐라도 대답해야 하는 건가 싶어 모짜렐라를 다시 바라보았다. 악령이가 모짜렐라에게 대해 할 말은 하나밖에 없었다.

“있잖아, 쟤 무지무지 약….”

“쉿, 그런 말 함부로 하는 거 아니야.”

희연은 악령이의 발언에 모짜렐라가 상처라도 받을까 싶어 서둘러 작은 입에서 나올 말을 막았다. 그러면서도 모짜렐라의 이상 반응을 떠올리며 혹시 악령이가 이미 한 번 모짜렐라를 놀렸던 것은 아닌지 의심했다.

희연이 확신하지 못하는 것은 모짜렐라의 성격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모짜렐라의 성격상 악령이가 그런 말을 했다면 귀신 들린 인형 주제에 누굴 놀리냐며 진즉 역정을 내지 이렇게 풀이 죽지는 않았을 거라 더 헷갈렸다.

그렇게 모짜렐라는 고뇌하고 희연은 의아해하며 악령이는 즐겁고 뉴비 없지는 자기 빼고 또 무슨 대화를 했을까 싶어 조금 섭섭해하는 것으로 도박판의 첫 방문은 끝났다.

악령이가 고른 틴케이스를 인벤토리에 집어넣고 나머지를 다시 반납한 희연은 1골드 도박꾼에게 그렇게 살지 말라며 나름 경고도 했다. 물론 상대는 울부짖을 뿐 회개하지 않았지만 말이다.

뉴비 없지는 도박판이 벌어졌던 암시장을 나오면서 희연에게 신신당부했다.

“제가 암시장이라던가 도박판에 데리고 왔다는 건 킹한테는 비밀로….”

“알면 안 좋아하실까요? 퀘스트 때문에 온 건데….”

“아뇨, 그런 쪽이 아니라 본인이 데리고 온 게 아니라는 점에 아쉽다며 저를 잡을 것 같아서요.”

“아….”

희연은 뉴비 없지의 무사 안녕을 위해 꼭 비밀로 하겠다며 손가락을 걸고 약속했다.

“오리 님 친구분도 마리아한테 비밀로 좀…, 마리아가 알게 되면 어떻게든 킹 귀에 들어갈 수도 있거든요.”

“…….”

“…오리 님 친구분은 아직도 제가 싫은가 봐요.”

넋 나간 채로 걷느라 뉴비 없지의 말에 대답도 못 하는 모짜렐라의 모습에 희연은 오묘한 표정을 지었다.

“그쪽 아니야.”

“어어….”

제대로 된 방향으로 모짜렐라의 몸을 틀어 준 희연은 이제는 진심으로 걱정되기 시작했다. 빠릿빠릿하던 모짜렐라의 넋 나간 모습은 조금 무서울 지경이었다.

“없지 님이 싫어서 저러는 게 아니라… 그냥 아까부터 계속 저랬어요.”

“왜 그러지? 도박판에서 무슨 일 있었어요?”

“아뇨 별일 없었는데…, 혹시 상태 이상에 걸린 거 아닐까요?”

“저런 상태 이상은 없는데…?”

마침내 뒷골목에서 나올 때까지도 모짜렐라의 상태는 나아지지 않았다. 희연과 뉴비 없지는 그 모습에 고민하다 뉴비 없지가 모짜렐라를 들쳐 메고 다니는 것으로 합의를 봤다.

에빌론은 유동 인구가 많았기에 넋 놓고 다니는 건 위험했기 때문이다. 특히나 12시의 모짜렐라처럼 연약하고 말랑한 방어력의 힐러는 더 조심해야 했다.

“이거…!”

비록 모짜렐라가 아주 잠깐 반항하긴 했지만 풀리지 않는 고민 탓인지 그는 금세 수그러졌다. 그렇게 다소 기묘한 모습으로 세 사람과 두 악령은 에빌론 동문에 있는 묘지로 가게 되었다.

놀랍게도 에빌론을 돌아다니는 사람들 중 누구도 그들의 모습에 의문을 가지지 않았다. 사람 하나 들쳐 메고 다니는 건 마귀 굴 에빌론에서는 흔한 일이었다.

***

별 탈 없이 묘지에 도착한 일행은 그레텔의 무덤 앞에 선 뒤에야 중요한 문제를 놓치고 있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 문제를 먼저 짚은 건 희연이었다.

“그런데… 무덤을 파도 돼요?”

아무리 빈 무덤이라 할지라도 남의 무덤을 함부로 파헤치는 것은 원래라면 하면 안 되는 짓이었다.

“네에…?”

지난날 도굴 퀘스트는 물론이고 상자가 보인다 싶으면 부수고 빈 저택을 발견하면 들어가 보물을 갖고 나오는 등 즐거운 플레이 시간을 가졌던 뉴비 없지는 갑작스러운 희연의 질문에 당황해 말을 더듬었다.

“퀘, 퀘스트 설명에서 그렇게 하라고 했으니 되겠지요…?”

뉴비 없지는 말하면서도 자신의 인성에 크게 문제가 있는 것처럼 느껴져 심란한 표정을 지었다.

원래 무언가를 해결하거나 찾기 위해서 땅부터 파거나 남의 집 상자와 항아리를 부수고 보는 건 RPG의 고전적인 해결 방법이었으나 파릇파릇한 뉴비 둘 앞에서, 하필이면 무덤을 파려고 하니 갑작스레 그의 마음 깊은 곳에 있던 양심이 아파지기 시작했다.

언제나 함께하던 친구 킹스메이커였다면 무덤을 보는 순간 빨리 파라 이 노예야, 하고 말했을 것을 알았기에 뉴비 없지는 물들어버린 자신의 인성에 조금 눈물을 흘렸다.

“그런가….”

별로 수긍한 것처럼 보이지 않는 희연의 모습에 뉴비 없지는 뒤늦게나마 말을 바꿀까 고민했다. 그러나 또 다른 뉴비인 모짜렐라가 입을 여는 게 먼저였다.

“그냥 파. 여기까지 와서 뭘 빼고 있어.”

희연과 달리 모짜렐라는 냉정하다 싶을 정도로 거침없었다. 톡 쏘는 듯한 말투에 희연은 조금 삐쭉거리기는 했으나 모짜렐라의 말도 틀린 건 없다고 생각했기에 고개를 끄덕이며 수긍했다.

제 수고를 덜어 준 모짜렐라에게 뉴비 없지는 반짝이는 눈빛을 보냈다. 물론 모짜렐라는 무시했다.

“흑, 차가워라….”

“없지 님, 혹시 삽 있어요?”

“물론이죠 오리 님! 저는야 준비된 노예!”

“네에….”

매정한 모짜렐라의 모습에 뉴비 없지는 조금 풀이 죽을 뻔했지만 희연을 바라보며 애써 힘을 냈다. 역시 뉴비는 파릇파릇해야 한다는 생각을 하면서 말이다.

인벤토리에서 삽을 꺼내려다가 희연의 힘 스텟을 고려해 모종삽 두 개를 꺼낸 그는 하나를 희연에게 건넨 뒤 먼저 땅을 파기 시작했다.

이어 희연 또한 뉴비 없지의 옆에 쪼그려 앉아 조심히 땅을 팠다.

“음….”

희연은 땅을 파면서 지금이 사람이 별로 없는 저녁 시간이라 다행이라는 생각을 했다. 솔직히 말해 현재 그들의 모습은 상당히 수상해 보였기 때문이다.

조합도 하필이면 성기사 하나에 신관 둘이라 전부 새하얀 옷을 입고 있어 눈에 띄었다. 만약 오고 가는 사람이 제법 있는 낮 시간대였다면 누군가는 그들을 신전에서 보낸 도굴꾼들이라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그런 오해를 받는 것은 원치 않았기에 희연은 혹여라도 누가 올까 싶어 더욱 서둘러 땅을 파기 시작했다. 뉴비 없지는 이유도 모르면서 희연을 따라 손을 더욱 빠르게 놀렸다.

희연과 뉴비 없지가 열심히 땅을 파는 동안 그레텔의 물건은 악령이가 맡았다.

하나하나가 제 몸만 한 나무 장난감이 든 상자 위에 오도카니 앉은 인형은 발을 동동거리며 두 사람을 구경하다 도중 모짜렐라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볼 거라곤 무덤과 땅 파는 사람 둘과 노을밖에 없는 풍경밖에 없었기에 고뇌하는 모짜렐라는 악령이에게 있어 조금 재밌는 구경거리였다.

“왜 저러는 걸까?”

삐잇!

제가 버린 것을 꼭 쥐고 고뇌하는 모짜렐라의 모습을 보며 넬과 의미 없는 대화를 나누던 악령이는 그 맹한 얼굴로 나름 고민해 보았다.

“악령아!”

“응!”

그러나 그것도 잠시 저를 부르는 희연의 목소리에 악령이는 언제 자신이 모짜렐라에게 그렇게 관심이 많았냐는 듯 냉큼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 정도만 파면 되겠죠? 악령아 그것 좀 이리 줄래?”

“응!”

짧은 팔로 상자를 밀어 희연의 앞으로 이동한 악령이는 칭찬해달라며 제자리에서 폴짝폴짝 뛰었다. 희연은 악령이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뉴비 없지가 악령이가 옮겨 온 상자를 구멍 안에 넣는 동안 악령이는 희연의 품에 안겨 조잘조잘 이야기를 했다.

“있잖아, 조금 이상해!”

“뭐가?”

“쟤! 내가 버린 거 꼭 쥐고 고민해!”

“?”

희연은 악령이의 말을 이해 못 해 그저 웃고 말았다. 그새 흙투성이가 된 발을 정돈해 주는 것도 잊지 않았다.

악령이가 이야기를 꺼낼 때부터 긴장하고 있던 모짜렐라는 너무나 쉽게 넘어가고 마는 희연의 모습에 결국 양심의 가책을 이기지 못하고 버럭 소리를 질렀다.

“야…!”

“응?”

“넌 사람이 왜 그렇게 무심해!”

“어… 내가?”

“됐어! 가져가!”

“뭘…?”

모짜렐라는 답하는 대신 들고 있던 것을 힘껏 던졌다. 그것을 가볍게 잡아챈 희연은 뭔가 싶어 고개를 갸웃거리다 손에 쥔 것을 살펴보았다.

크기가 넬 정도 되는 정제되지 않은 자그마한 광석이었다. 불투명한 흰빛의 그것은 마치 오팔이나 자개처럼 오색빛깔로 반짝였다.

“돌? 보석인가?”

“그거…!”

“?”

때마침 상자를 묻은 구멍을 모두 메우고 돌아온 뉴비 없지가 희연이 손에 쥔 것을 보고는 소스라치게 놀라며 소리를 질렀다. 심지어 광석을 가리키는 그의 손은 덜덜 떨리고 있기까지 했다.

뉴비 없지의 등장이 무언가의 끝이라도 되는 것처럼 모짜렐라는 자리에 주저앉아 우는 것처럼 몸을 들썩였다. 상반되는 두 사람의 모습에 희연은 도대체 이게 뭐길래 이러는 건가 싶어졌다.

“울어? 울어?”

어느새 희연의 품에서 뛰어내린 악령이가 모짜렐라에게로 가 몸을 기울이며 물었다. 만약 모짜렐라가 정말로 우는 중이었다면 어쩔 수 없이 약 올랐을 모습이었다.

“울겠냐! 울겠냐고! 저리 안 가!”

까르르 웃으며 즐거워하는 악령이를 서둘러 잡아챈 희연은 장난치면 안 된다 경고를 준 뒤 모짜렐라의 앞으로 조심히 움직였다. 모짜렐라는 울지는 않았지만 그 이상으로 괴로워하고 있었다.

속 쓰려 죽을 것 같다는 모습이었다. 희연은 혹시나 하는 마음에 들고 있던 것을 모짜렐라에게 내밀며 물어보았다.

“이거 줄까…?”

마치 우는 애를 달래는 것 같은 말투였다. 그에 울컥한 모짜렐라는 다시 버럭 소리를 질렀다.

“미쳤어! 이게 얼마나 귀한 건데!”

“오리 님 그거 그렇게 막 함부로 주고 그러면 안 돼요!”

곧바로 돌아오는 격렬한 반응에 희연은 조금 당황했다. 더불어 뉴비 없지는 그렇다 치고 배 아파 죽을 것 같다는 태도를 보이면서도 끝까지 안 받아가는 모짜렐라는 이해조차 되지 않았다. 결국 희연은 직접 물어보았다.

“그렇게 샘난다는 표정 지을 거면서 이걸 왜 준 거야…?”

“네…, 네 인형이….”

“악령이, 뭐 했어?”

“나 안 했어!”

힘찬 악령이의 대답에 모짜렐라는 더더욱 괴로워했다. 이쯤 되니 그가 준 게 뭔지 궁금해진 희연은 알아서 물건의 정보를 확인했다.

[특별한 이야기의 조각을 얻었습니다!]

“?”

희연은 시스템 창이 고장 난 건가 싶어 반투명한 창을 손으로 몇 번 두들겼다. 그러나 변화는 없었다. 시스템이 제공하는 정보는 그걸로 끝이었다.

성의 없는 그 한 줄의 설명에 희연은 저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잡템인가?”

“그게 잡템이겠냐…!”

물건의 진가를 알아보지 못하는 희연의 모습에 모짜렐라는 허탈하다는 듯 머리를 싸매더니 괜히 줬다며 중얼거렸다. 그새 희연의 품에서 다시 탈출한 악령이가 그런 모짜렐라에게 쪼르르 달려가더니 짧은 팔로 그를 톡톡 두들기며 위로를 해 줬다.

“울지 마 울지 마.”

“너 때문이야, 너….”

“악령이는 아무것도 안 했는데!”

모짜렐라는 악령이를 붙잡은 채 손을 부들부들 떨었지만 악령이는 방긋방긋 웃기만 했다.

잠시 그런 악령이를 모짜렐라에게 맡겨두기로 한 셈 친 희연은 뉴비 없지에게로 몸을 틀며 들고 있던 것에 대해 물어보았다.

“이게 그렇게 좋은 거예요?”

뉴비 없지는 마치 물어보기만을 기다렸다는 것처럼 흥분한 채 설명했다.

“물론이죠! 이거 없으면 최종템을 만들어도 의미가 없다는 말이 나올 정도라고요 오리 님!”

“강화 아이템… 그런 건가 보네요?”

“그런 거랑은 비교도 안 되죠! 이거 심지어 구하기도 엄청 어려워서 게임사에서 아예 시작할 때 맛보기로 하나 쥐여주는 수준의 아이템이라고요 오리 님! 대부분이 평생 그거 하나 이상을 손에 못 쥐는 수준의 아이템이에요!”

“아….”

뉴비 없지의 말에 희연은 그제야 들고 있던 보석을 이전에 한 번 스치듯 본 적이 있다는 것을 떠올렸다. 사막여우의 퀘스트 보상 중에 특별한 이야기의 조각이라는 이 아이템을 하나 받은 적이 있었다.

워낙에 오래전에 있던 일이기도 하고 그 뒤로 사건이 줄줄이 터져 당시에는 대충 확인하고 말았다. 인벤토리 정리를 할 때도 대충 쓸어 담은 것들 중에 섞여 있어 제대로 보지 못했던지라 떠올리는 데 시간이 걸렸다.

아무튼 엄청 귀한 것.

희연은 특별한 이야기의 조각이라는 아이템을 대충 그렇게 판단 내렸다. 뉴비 없지가 희연의 속내를 알았다면 그게 맞지만 그게 아니라며 절망했을 생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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