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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비세스 메이커 (193)화 (193/251)

193화

희연은 마리아가 무서웠다. 겁먹어서 반항할 생각을 못 했다. 모짜렐라는 마리아의 길드원이었다. 반항하기에는 위치가 좋지 못했다. 현재 그나마 마리아한테 반항할 수 있는 건 그녀의 동생이라 밝혀진 료한뿐이었다.

“강요하지 마. 협박도 하지 말고.”

료한 또한 그 점을 알았기에 기꺼이 마리아에게 맞섰다. 그러나 마리아는 동생의 반항을 귀엽게 봐주는 성미가 아니었다.

“세상에 우리 동생, 지금 나한테 개기는 거니?”

심사가 뒤틀리자마자 마리아는 속된 말을 서슴없이 사용했다.

이대로면 료한이 별님을 만나러 떠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희연은 살려달라는 뜻으로 킹스메이커와 백희준을 바라보았다. 이 자리에서 그나마 마리아를 막을 수 있는 대항마라 희연이 생각하는 건 그 둘뿐이었다.

뉴비 없지도 내심 마리아를 무서워했고 이세인은 질 것 같았으며 존성대명은 강한지 잘 몰라서였다.

구조 신호를 보내는 희연의 모습에 마리아는 친절해 보이는 웃음을 지으며 희연에게로 고개를 돌렸다.

“우리 친구는 자꾸 어딜 보는 걸까나? 자꾸 그렇게 나한테 집중 못 하면 바로… 아야!”

“협박하지 말라고 했잖아.”

아프다며 등을 더듬는 마리아의 뒤로 익숙한 갈색 땋은 머리가 보였다. 희연은 살았다는 생각에 안도했다.

“협박 안 했어!”

마리아는 킹스메이커에게 당당하게 말했다. 곧바로 모짜렐라가 거짓말하지 말라 외치긴 했지만 마리아는 들은 척도 하지 않았다. 킹스메이커는 이에 괘씸죄라며 마리아의 등을 몇 번 더 두들겨주며 협박의 정의를 다시 했다.

“우리 오리 님이 겁먹었을 때부터 그건 협박이야. 그리고 그런 말을 할 거면 채찍을 내려놓고 해야 하지 않을까 마리아?”

“편애 봐 진짜…. 내가 더러운 폭력에 굴복할 것 같아!”

“돈에는 굴복하겠지.”

“그건 굴복이 아니야! 합의점을 찾는 거지!”

킹스메이커는 얕은 한숨을 내쉬다 마리아에게 응징을 가하기 시작했다. 마리아는 붙잡힌 채로도 할 말은 다 했다.

“내가 뭘 했다고 이래! 저기 있는 오리 친구가 이유도 없이 나한테 겁먹어서 그런 거지 난 처음 봤을 때부터 친절하게 굴었단 말이야!”

“양심이 없어요, 양심이.”

“진짜라고! 물어보던가!”

마리아가 워낙에 절절히 외쳐서인지 킹스메이커는 희연을 힐끔 바라보았다. 희연은 제게로 향하는 시선에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몰라 슬그머니 눈을 피했다.

마리아의 말은 완전히 틀린 말은 아니었다. 골목길에서 처음 봤을 때 독에 걸린 희연에게 성수도 뿌려줬고, 채찍이 위협으로 보였던 것뿐이지 치료도 해주려고 했다. 심지어 르센과 미르그에 대한 이야기도 들려주었다.

다만 그때의 친절이 무색하게도 메인 퀘스트가 엮이자마자 더없이 무서워졌을 뿐이었다.

마리아의 말처럼 그녀는 아직까지는 무언가를 직접적으로 하지 않았다. 솔직히 말해 희연도 킹스메이커와 뉴비 없지, 백희준까지 있는 상황에서 마리아가 뭔 짓을 할 거라 생각하지는 않았다.

그저 본능적인 공포심을 자극하는 모습에 마리아의 말마따나 지레 겁을 먹었을 뿐이었다.

신관이라는 직업으로 사람이 저렇게 여포 같기도 쉽지 않은 것을 생각해보면 마리아도 참 대단한 사람이라는 점을 부정할 수는 없었다.

그리고 그 마리아와 료한이 남매라는 점에 희연은 유전자의 신비를 느꼈다. 마리아는 곧 죽어도 안 진다는 것처럼 킹스메이커에게 반항했다. 료한은 그새 도착한 백희준에게 시선을 뺏겼다.

이러한 단편적인 모습만 보아도 두 사람의 성격이 얼마나 궤를 달리하는지 알 수 있었다.

킹스메이커가 마스커레이드에서 백희준과 희연이 남매라는 것을 알았을 때 당황했던 이유를 알 수 있었다. 희연의 심정이 지금 딱 그랬기 때문이다.

답 없는 희연의 모습에 알아서 해석을 마친 킹스메이커가 마리아의 입에서 협박과 위협을 안 하겠다는 말을 이끌어 내는 사이, 료한의 머리를 대충 쓰다듬어 준 백희준이 희연에게로 가까이 다가왔다.

“왜 그렇게 겁을 먹어.”

백희준은 희연이 마리아를 보면 바짝 굳어버리는 것을 이해 못 하는 눈치였다.

“무섭잖아…!”

“레벨 낮아서 그렇게 보이는 거야.”

백희준은 희연의 공포심을 무척이나 간결하게 정리시켰다.

“…이런 말만 하는 사람이 진짜 좋아요?”

백희준의 말에 욱한 희연은 초롱초롱 눈을 빛내고 있던 료한에게 물었다. 료한은 희연의 질문에 조금 당황한 듯 머뭇거리다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더니 기어이 백희준의 편까지 들었다.

“일단은 레벨 문제라는 건 객관적인 추론이기도 하고….”

“콩깍지….”

료한은 그런 거 아니라며 부정했지만 희연은 믿지 않았다.

10년의 사랑을 백희준 한 사람에게 갖다 바친 료한에게 객관성을 기대하기란 이미 불가한 일이라는 걸 그녀는 잠시 잊고 있었다. 속으로 혀를 쯧쯧 찬 희연은 사람 하나 제대로 홀린 백희준에게 투덜거렸다.

“그런 말만 하지 말고 제대로 된 해결법을 알려주면 안 돼? 그렇게 말한다고 내가 당장 레벨을 올릴 수도 없는 건데….”

“이참에 제대로 말해보던가. 너 레벨이 대체 몇이야? 료한이랑 같이 던전 돌았다는 것치곤 저번에 보니까 방어력이 너무 낮은 것 같던데.”

“…료한 님은 몇인데?”

레벨 이야기가 나오면 희연은 눈치를 볼 수밖에 없었다. 다만 마담의 도발 아닌 도발에 흥분한 모짜렐라가 이제 75를 찍었다는 말을 직전에 들었기에 희연은 료한도 그 정도 되려니 짐작하기는 했다.

료한은 백희준에게 인정받고 싶은 욕구가 있는 것 같았고, 그 욕구를 충족시킬 수 있는 가장 쉬운 방법은 레벨이었기 때문이다.

“96이요.”

“…네? 왜요?”

“네?”

희연은 조금 바보같이 물어볼 수밖에 없었다. 레벨 좀 높겠거니 예상했다지만 료한은 모짜렐라보다 레벨 20은 더 많았고, 희연과는 2배 넘게 차이가 났다. 이게 가능한 일인가 싶어 희연은 모짜렐라를 돌아보았다.

“미쳤네, 밥도 안 먹고 게임만 했나….”

모짜렐라도 감탄하고 있었다. 희연은 료한이 특별한 거지 자신이 너무 게을렀던 건 아니라고 생각하려 했지만 그러기엔 또 모짜렐라도 희연과 30레벨 넘게 차이가 났다.

희연은 자연스레 백희준의 시선을 피했다. 차마 96레벨 뉴비를 키워낸 인간 앞에서 50도 못 찍었다는 말을 할 수가 없었다.

그러나 눈을 피하는 희연의 모습만으로도 백희준은 그녀의 레벨이 형편없다는 것을 눈치챌 수 있었다.

백희준은 희연이 킹스메이커가 손수 애지중지 키우는데도 저렇게까지 자신 없어 하는 레벨을 유지 중이라는 점에 놀랐고, 도대체 뭘 하고 다녔길래 레벨도 못 올린 건가 싶어 조금 걱정도 되었다.

설마하니 질 나쁜 인간들에게 찍히기라도 해서 제대로 던전이나 사냥, 레이드 같은 것도 못 돌고 그래서 리본이나 만들면서 시간을 죽이나 싶었던 것이다.

그런 백희준의 걱정과 달리 희연은 무척이나 바쁘게 돌아다니고 만족스러운 시간을 보냈지만, 그에게 있어 게임을 제대로 즐긴다는 증거는 레벨이었다.

레벨이 만족도라 생각하는 백희준의 얼굴은 자연스레 심각해졌다.

“장비만 보면 80은 찍은 것 같은데….”

“…….”

백희준의 안목은 정확했다. 킹스메이커가 만들어준 유구한 긍휼의 신성 사제복 세트는 딱 그 정도의 레벨이 원래 요구 값이었다. 이대로면 백희준이 제 레벨까지도 알아낼 것만 같아 희연은 서둘러 입을 열었다.

“어쨌든! 지금 중요한 건 내 레벨이 아니잖아…!”

“레벨이 왜 안 중요해.”

“실전이라는 게 뭔지나 알려줘!”

“그건….”

백희준은 말끝을 흐리다 아직까지도 킹스메이커에게 반항 중인 마리아를 힐끗 바라보았다.

“아직 정확하게 정한 건 아니야. 애초에 지금 마리아 쪽에서도 널 가르칠지 말지 확실하게 정하지 않았고.”

“안 정했다고…?”

“어. 돈 준다고 해서 일단 오기야 했다만 자기가 왜 누굴 가르쳐야 하냐고 하던데. 조언이라면 모를까 제대로 붙잡고 가르치는 건 귀찮아서 싫다고.”

상황이 묘하게 흘러가고 있었다. 돈은 굴복의 수단이 아닌 합의점을 보게 해주는 것일 뿐이라 하던 마리아의 말은 사실이었다. 그녀도 돈이라고 해서 무조건 좋다 받아들이는 건 아닌 듯했다.

어쩌면 그것조차 핑계고 사실은 희연이 선구자라 가르치기 싫다고 하는 걸 수도 있었다.

희연은 곰곰이 생각해보았다. 마리아의 입에서 그래도 실전이라는 단어가 나오긴 한 것을 보면 아예 가르칠 생각이 없는 것 같지는 않았다. 물론 가르친다는 명목으로 조금 괴롭혀서 선구자 자리에서 내려오게 할 속셈일 가능성도 생각해 두기는 해야 했다.

이리저리 재고 따져보느라 절로 표정이 굳는 희연의 모습을 보며 백희준은 느릿느릿 말을 이었다.

“…네가 선구자로 계속 있고 싶고, 메인 퀘스트를 깨고 싶으면 마리아가 내미는 시험을 통과해.”

“어…?”

“배울 수 있을 때 제대로 배워.”

그 충고를 마지막으로 백희준은 희연에게서 등을 돌리곤 이세인과 존성대명이 있는 쪽으로 돌아갔다.

희연은 백희준이 자신이 선구자라는 걸 알고 있다는 점에 놀라 붙잡을 생각도 하지 못하고 눈만 동그랗게 떴다. 도리어 희연보다 더 펄쩍 뛰는 반응을 보여 준 건 모짜렐라였다.

“저 사람 뭐야! 뭔데 윈의 길마가 너 선구자인 거 알아?”

“오빠.”

“…뭐?”

희연은 머뭇거리다 손을 들어 차례로 료한과 마리아를 가리켰다.

“남매.”

그리고 자신과 백희준을 번갈아 가리켰다.

“남매….”

“…?”

혼란스러워하는 모짜렐라를 보며 희연은 조금 멋쩍게 웃었다. 백희준이 어떻게 희연이 선구자임을 아느냐 하는 문제는 나중에 집에서 물어보던가 해도 될 문제였다.

지금은 모짜렐라에게 이것은 결코 더러운 혈연주의의 적폐 모임이나 가족 모임이 아니라는 것을 잘 설명해야 할 때였다.

“뭐야, 그럼 세인이 너한테 기초 가르치겠다고 왔던 것도….”

“오빠가 보냈대. 킹 님이 먼저 요청한 것도 있긴 하지만….”

“너희 길마가 굴복시켜서 데리고 온 거라고 생각했는데….”

“?”

혈연주의 적폐보다 미묘하게 더 나쁜 쪽을 상상한 모짜렐라를 보며 희연은 킹스메이커의 명성이 어느 정도인 것인지 궁금해졌다. 일단 왕실 쪽에서 망나니라 칭하는 것 정도는 무척이나 친근한 단어 선정인 것 같기는 했다.

모짜렐라를 보며 어색하게 웃던 희연은 말수 없는 료한 쪽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사실… 전 킹 님이랑 료한 님이 남매 사이가 아닐까 생각했어요.”

“네? 저랑 그 누나가요?”

“마스커레이드 때 킹 님이 료한 님 나이를 알고 있기도 했고 남동생도 있다고 하셔서….”

료한은 답지 않게 질색하는 기색을 감추지 못하며 말했다.

“서하 누나 남동생은 저보다 나이 많아요.”

“서하…?”

“저 누나 이름이에요.”

료한이 가리킨 쪽에 있는 건 마리아와 킹스메이커였다. 제 누나를 두고 하는 설명은 아니었으니 자연스레 그 이름의 주인이 누구인지는 판별이 났다.

희연을 따라 킹스메이커를 보았으나 뚱한 표정을 짓고 있던 모짜렐라가 질문했다.

“그런데 저 둘, 언제까지 저러는 거야?”

누가 누구의 가족인지 원래 아는 사이였는지 조금도 궁금하지 않다는 투였다.

“둘 다 져주는 성격은 아니라서요.”

담담한 료한의 목소리에는 이런 상황을 많이 겪은 사람 특유의 초연함이 담겨 있었다. 료한은 마스커레이드에서 킹스메이커를 봤을 때도 싫어했고 땃쥐 미에게 쫓기다 마리아를 봤을 때도 싫어했다.

그때의 모습들을 자연스레 떠올린 희연은 저 두 사람의 싸움에 료한이 등 터지는 새우 역할을 했던 건가 싶어져 안쓰러운 표정을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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