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뉴비세스 메이커 (194)화 (194/251)

194화

다행히 킹스메이커와 마리아는 결국 합의를 보긴 했는지 얼마 지나지 않아 둘 다 마뜩잖은 표정을 지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무어라 두 사람이 더 이야기를 나눴고 도중 백희준과 이세인이 끼어들며 몇 마디를 더 얹었다. 뉴비 없지도 옆에서 호들갑 떨며 말을 얹었다.

아마도 마리아가 말했던 그 실전이란 것에 대하여 이야기를 나누는 듯했다. 희연은 백희준의 충고를 떠올리며 마리아의 실전 경험자로 보이는 료한과 모짜렐라에게 물어보았다.

“실전이라는 거 많이 어려워요?”

“정확히는 저도 잘 몰라요. 전 게임 하는 동안 최대한 누나랑 안 만나려고 했었거든요. 하지만… 누나는 사람 괴롭히는 걸 좋아해서요…. 힘들 거예요. 무척이나….”

“미쳤어. 그건 그냥 미친 짓이야. 솔직히 말하면 힘든 것도 힘든 거지만 훈련이라는 명목으로 사람 하나 탈탈 털어먹으면서 재미 보려는 게 보여서 삐약 짜증나.”

말하는 강도의 차이만 있을 뿐 두 사람은 같은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희연은 실전을 거부해 마음 상한 마리아가 자신을 가르치지 않는 미래를 생각해 보았다. 그쪽도 고달픈 건 마찬가지일 것 같았다.

“그러면….”

후욱-!

[체력이 5% 미만입니다. 빈혈, 기절 상태에 빠집니다.]

“…?”

희연은 마리아의 실전에서 그래도 별님을 만나러 가는 일은 없지 않냐 물으려던 차였다. 조금 강한 바람이 부나 싶더니 희연은 그대로 쓰러졌다.

“미, 미쳤어 진짜…!”

경악한 모짜렐라의 외침이 들렸다.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알 수 없는 상황에 희연은 아무나 좋으니 누구든 자신의 입에 포션을 물려주기를 바랐다.

“죽으면 안 돼…!”

삐잇…!

토끼 같은 두 악령이 희연에게 매달리며 애처롭게 외쳤다. 그 외침을 들은 것인지 고장 난 것처럼 버벅대던 료한이 희연을 붙잡고 입에 포션을 부어주었다.

점차 차오르는 HP 게이지 바를 바라보던 희연은 상태 이상이 풀리자마자 이런 일이 벌어진 연유에 관하여 료한에게 질문했다.

“누가 저 공격한 거예요…?”

“…죄송해요.”

두서없는 료한의 사과에 희연은 범인이 누구인지 깨달았다. 총을 들어 마저 제 HP를 회복한 희연은 킹스메이커에게 붙잡힌 마리아를 바라보며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몰라 두 눈만 질끈 감았다.

“아니, 스치지도 않았는데 바로 쓰러질 줄 몰랐다니까…!”

“내가 그래서 악세 빼라고 했잖아 마리아.”

“유난 떠는 건 줄 알았지!”

제 강도를 체크하기 위해 마리아가 채찍 좀 휘둘러봤다는 사실을 희연은 유연하게 받아들였다. 다만 스치지도 않았는데 기절까지 갔다는 점은 심각하게 받아들였다.

자리에서 일어난 희연은 주위를 살폈다. 살랑살랑 움직이는 다른 풀과 달리 거센 바람에 꺾인 것처럼 늘어진 풀 길을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었다.

“이 거리였는데도 기절한 거네….”

마리아가 휘두른 채찍과 희연의 거리는 건장한 뉴비 없지가 그 사이에 낄 수 있을 정도였다.

역시 편술은 포기한다고 해야 하나…?

희연은 틈만 나면 바뀌는 두서없는 제 마음에 한숨을 내쉬었다. 이대로면 스스로가 로그아웃을 해서라도 도망갈 것을 알았기에 희연은 용기를 내 마리아 쪽으로 성큼성큼 걸어갔다.

“저기…!”

“?”

“그 시, 실전이라는 거 할게요…!”

일단 시작한 순간부터 도망가는 건 불가능했다. 희연은 죽이 되든 밥이 되든 시작하겠다는 마음으로 마리아에게 외쳤다.

***

“괜찮아.”

므야… 먀아…!

“괜찮대도.”

닉은 아무리 어르고 달래도 눈물을 그칠 줄 모르는 루로의 모습에 결국 손을 뻗었다. 자꾸만 받아주면 버릇 든다는 걸 알았지만 퐁퐁 눈물 흘리는 아기 드래곤을 외면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다.

게다가 그 이유가 제 모습 때문이라는 점이 그의 마음을 더 약하게 만들었다.

마치 기다렸다는 듯 냉큼 닉에게 엉겨 붙은 루로는 서러워 죽겠다는 듯 울먹거렸다. 루로를 토닥여주며 닉은 제 손을 힐끔 바라보았다.

긴 소매에 미처 가려지지 못한 손끝을 시작으로 팔꿈치까지 모두 새까맣게 그슬려 있었다. 마치 헬르벨의 팔이 자미엘의 독에 당했을 때와 비슷한 모습이었다.

닉은 제게 걸린 저주에 얕은 한숨을 내쉬었다. 뭣 모르는 사람이 봐도 알 수 있는 뚜렷한 저주의 모습에 킹스메이커와 뉴비 없지가 어떻게 나올지 걱정이 된 것이다.

더불어 에흐테의 뿔이 다시 필요해진 상황에 닉은 조금 곤란함을 느꼈다. 에흐테의 뿔이 헬르벨의 팔을 치료하며 확실한 치료제라는 사실이 밝혀졌으니 그 사실을 알고 있을 희연이 울상을 지을 게 뻔히 보였기 때문이다.

“역시 아직은 무리였나….”

혼자 퀘스트 해결하겠답시고 나선 결과가 저주라는 점에 닉의 얼굴에는 절로 씁쓸한 미소가 떠올랐다.

어떻게 말해야 희연의 마음이 상하지 않는 선에서 에흐테의 뿔 가루를 조금 얻을 수 있을까 고민하던 닉은 갑작스레 제 앞에 떠오른 시스템 창에 놀라 루로를 도닥이던 손길도 멈추었다.

[길드원의 죽음! 길드원 <눈오리의 돌격> 님께서 별님을 만나러 떠났습니다!]

당혹스러운 소식이었다. 닉은 제가 본 것이 믿기지 않아 길드 관리 창까지 불러와 희연의 죽음을 다시 확인했다.

“?”

[<뉴비세스 메이커>

Lv. 278 <☆>Nick (on)

Lv. 300(Max) <☆>21세기 킹스메이커 (on)

Lv. 300(Max) <☆>느그 집에는 뉴비 없지 (on)

Lv. 300(Max) 우리 강아지는 초코 나는 청산가리 (on)

Lv. 236 내 왼손의 흑염소 (off)

Lv. 228 귀농을 해보자 (off)

Lv. 42 눈오리의 돌격 (on)]

희연은 멀쩡하게 살아있었다. 닉은 조금 전에 받았던 소식을 일종에 시스템적 오류로 판단했다. 그러나.

[길드원의 죽음! 길드원 <눈오리의 돌격> 님께서 별님을 만나러 떠났습니다!]

[길드원의 죽음! 길드원 <눈오리의 돌격> 님께서 별님을 만나러 떠났습니다!]

[길드원의 죽음! 길드원 <눈오리의 돌격> 님께서 별님을 만나러 떠났습니다!]

같은 소식을, 그것도 콕 집어 같은 사람이 죽었다는 소식을 몇 분 단위로 계속 받았을 때는 무슨 일이 생겼구나 짐작할 수밖에 없었다. 그에 닉은 마지막으로 헤어질 당시의 희연의 모습을 자연스레 떠올렸다.

희연은 정말로 자기를 킹스메이커와 뉴비 없지 이 둘 사이에 두고 가 버릴 거냐는 약간의 원망과 애원이 담긴 표정을 지었다. 닉은 역시 그때 떠나면 안 됐던 걸까 싶어져 뒤늦은 후회를 했다.

도대체 무슨 짓을 하고 있는 것인지 그로서는 짐작조차 가지 않았다.

***

닉이 어떤 생각을 가지고 서둘러 돌아오는 길인지 꿈에도 모를 희연은 몇 번 봤다고 익숙해 보이는 풍경에 일어날 생각조차 하지 않고 눈만 깜박였다.

“이방인 님! 놀라지 마시고 저를…!”

꼬마별의 말이 다 끝나기도 전에 희연의 몸 위로 새하얀 빛무리가 쏟아져 내렸다.

[<빛과 소금의 축복>! 빛 한 줌, 소금 한 자밤의 힘으로 부활합니다. 전체 HP의 30%가 회복됩니다.]

[사망 페널티가 감소합니다.]

[6시간 동안 경험치 획득량이 80%로 제한됩니다. 습득한 경험치 중 일정량이 감소합니다.]

새까맣던 공간이 사라지고 다시 머리 위에 드리워진 하늘을 바라보며 희연은 멍하니 말했다.

“이건 훈련이 아니라 훈련을 빙자한 폭력 같은데….”

“그래서 내가 말했잖아. 미친 짓이라고.”

“…….”

희연은 모짜렐라의 말에 부정하지 않고 고개만 돌렸다. 희연을 네 번이나 별님과 만나게 해준 범인 마리아가 킹스메이커에게 응징을 당하고 있었다.

“죽이지 말라고. 우리 오리 님 한 번만 더 죽으면 레벨 다운 된다고.”

“실수…, 실수로 죽인 거라고…!”

그 모습을 보며 희연은 제 상태를 확인했다. 킹스메이커의 계산은 정확했다. 경험치를 뜻하는 게이지 바가 훈련을 시작하기 전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줄어 있었다.

사망 페널티 감소 물약까지 먹었음에도 자꾸만 죽고, 죽고, 죽으니 결국 이 지경까지 오고 말았다. 아까운 경험치를 날렸다는 생각에 희연은 조금 울상을 지었다.

마리아에 의해 몸도 마음도 지쳐 일어날 생각이 없어 보이는 희연을 백희준이 손수 붙잡아 일으켜 세웠다. 희연은 반항하듯 안 일어난다며 버텨보았지만 백희준의 힘 스텟 앞에서는 소용이 없었다.

“치료.”

“그래, 그래.”

어느새 희연의 전용 힐 셔틀이 되어버린 이세인도 이젠 익숙하다는 듯 바로바로 스킬을 사용했다. 애초에 마리아가 희연을 별님에게로 보내버릴 때마다 꼬박꼬박 부활 스킬을 쓴 것도 그였다.

희연은 빠르게 차오르는 HP의 모습에 눈을 질끈 감았다.

“천천히 치료해 주시면 안 돼요?”

“그건….”

이세인이 무어라 말하기도 전에 마리아가 먼저 희연에게 채찍을 휘둘렀다. 어깨에 채찍의 끝이 살짝 닿았다 떨어지자마자 희연의 HP는 빈틈없이 차올랐다.

“치료 다 됐지? 렙따 직전이라니까 이번에는 안 죽게 좀 더 잘해 봐.”

“…….”

왜…, 왜 마리아는 힐러인 걸까…?

희연은 왠지 모르게 서러워져 두 손에 얼굴을 묻었다. 마리아가 힐러가 아니었다면 치료 중이라는 핑계를 대고 쉴 수라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희연의 피통은 작았고 마리아의 힐량은 높았다. 희연은 쉴 새 없이 마리아에게 굴려지고 있었다. 죽이 되든 밥이 되든 해보겠다 한 희연이지만 이런 결과까지 각오한 것은 아니었다.

희연은 어쩌다 일이 이 지경까지 된 것인지 생각해 보았다.

***

마리아도 처음부터 이런 식으로 무자비하고 잔혹하게 희연을 대한 건 아니었다. 그녀도 최소한의 도리는 알았고 레벨 42 신관이라는 게 얼마나 허약한 존재인지 제대로 인지하고 있었다.

더불어 희연이 채찍이라는 무기가 익숙하지 않다는 점도 고려해주었다.

“일단 던져봐.”

그래서 마리아는 실전 전에 희연의 실력을 한번 보자며 이러한 제안을 했다. 희연은 여럿이 자신을 바라본다는 점에서 압박감을 느끼긴 했지만 집요한 금색 시선이 더 무서웠기에 군말 없이 사슬을 연결한 총을 집어 던졌다.

“…다시.”

“저 뭐 잘못했어요…?”

“아니. 그냥 좀 미묘하다고 해야 하나…. 잘 모르겠어서 그런 거니까 다시 던져볼래?”

마리아의 재촉에 희연은 힐끗힐끗 눈치를 보며 총을 다시 회수했다. 그리고 던졌다.

마리아는 묘한 미소를 짓다 킹스메이커에게 물었다.

“가르치라며.”

“응.”

“아니, 가르치라며. 이건 가르치는 수준이 아니라 처음부터 떠먹여 줘야 할 판이잖아. 던져보랬더니 진짜로 냅다 던지기만 하는 애를 데리고 편술을 가르치라고? 그것도 진짜 채찍도 아닌 사슬로 하는 편법을? 너 제정신이야? 진짜?”

마리아의 분노는 어찌 보면 정당했다. 논문 쓰기를 가르치러 왔더니 알고 보니 상대는 한글도 못 뗐다는 소식을 뒤늦게 듣는 것과 비슷했기 때문이다.

그녀의 심정은 황당하다는 말 외에는 설명할 길이 없었다. 킹스메이커도 그 점을 확실히 인지하고 있었으나 그녀는 뻔뻔하게 나왔다.

“그러니까 너를 부른 거지. 설마 자신 없어? 그랬구나. 우리 마리아. 자신이 없으면 자신 없다고 진즉 말하지 그랬어.”

“하…!”

킹스메이커의 가벼운 도발에 마리아는 코웃음 쳤다. 자기가 그딴 도발에 넘어갈 줄 아냐는 표정이었다.

그러고는 희연에게 성큼성큼 걸어오더니 살벌하기 그지없는 기세를 내뿜으며 선언했다.

“우리 친구는 오늘 최소한 내 기준을 통과하거나 편술 관련 스킬 하나 나오기 전까지 게임 못 끌 줄 알아.”

“네…?”

“할 수 있지? 우리 오리 친구는 나 실망시키지 않을 거지?”

킹스메이커의 도발은 효과가 참 좋았다.

그렇게, 희연의 수업은 마리아의 열정을 빙자한 승부욕을 불태우며 시작되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