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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비세스 메이커 (197)화 (197/251)

197화

닉은 희연의 불신에 곤란하다는 표정을 짓다 천천히 설명했다.

“겉모습만 비슷한 거지 자미엘의 독이랑은 다른 거예요. 더 약한 거기도 하고요.”

확실히, 자미엘의 독에 당했던 헬르벨보단 훨씬 상태가 좋아 보였기에 희연은 닉의 말이 사실인가 싶어져 조금 긴가민가한 표정을 지었다.

고민하던 희연은 인벤토리를 열어 레몬에게서 받은 사탕을 꺼냈다. 헬르벨에게도 효과가 있었던 만큼 닉의 말이 사실이라면 그에게서는 그 이상의 효과를 볼 수 있으리라 생각한 것이다.

하지만 닉은 이번에도 고개를 저었다.

“다시 구하기 어려운 거니까 아껴놔요. 당장 에흐테의 뿔이 필요한 만큼 급한 것도 아니고요.”

반복된 거절에 희연은 조금 시무룩해질 뻔했지만 이어지는 닉의 말에는 조금 밝아진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아프면 제일 먼저 말할게요.”

“꼭 말해야 해요!”

닉에게 약속을 받아낸 희연은 이렇게 된 거 역시 마리아를 설득해 보자 하는 마음으로 몸을 틀었다. 그러다 키가 작아 미처 보지 못한 킹스메이커와 부딪혀 뒤로 넘어질 뻔했다.

“조심해야죠.”

뒤로 넘어지던 희연을 가볍게 일으켜 세운 킹스메이커는 잠깐 희연을 물끄러미 바라보더니 마치 힘내라는 것처럼 어깨를 툭툭 두들겼다.

“?”

“어차피 하기로 했던 거니까 원망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오리 님.”

“뭘요…?”

킹스메이커의 입에서 직접적으로 원망하지 말라는 말이 나왔다. 희연은 더없이 불길해졌다.

그런 불길함이 실체를 갖듯 마리아가 성큼성큼 다가오기 시작했고 그 모습에 희연은 반사적으로 킹스메이커를 붙잡고 그녀의 뒤로 몸을 숨겼다.

그래봤자 킹스메이커의 키가 작은 탓에 희연은 마리아와 얼굴을 맞대야 했다. 마리아는 희연을 보며 당당하게 외쳤다.

“너희 요정 님 왔으니까 이제 실전 할 거야!”

본격적인 실전을 하겠다는 말 자체는 그리 놀라운 내용은 아니었다. 다만 그 실전이라는 것에 닉이 필요하다는 듯이 말하는 마리아의 말에 희연은 의문을 느꼈다.

“닉 님은 왜…, 아니 그 전에 닉 님 치료부터 해주시면 안 돼요?”

자미엘의 독보다 하위 저주라는 것처럼 닉이 말하기도 했고, 킹스메이커는 마리아의 의견에 동의한 것도 같았기에 닉의 치료가 급한 일이 아니라는 건 알 수 있었다.

하지만 실전 통과보다도 닉의 팔 치료가 먼저라는 게 희연의 생각이었다.

마리아가 치료를 거부한다면 에흐테를 불러와야 했다. 희연은 마리아가 거절할 거라면 빨리 거절하기를 바라며 물었다.

그에 마리아는 예상 못 한 조건을 희연에게 내걸었다.

“네가 내 실전 통과하면 너희 요정 님 치료해 줄게.”

“…치사해….”

희연은 마리아가 무서운 것도 잊고 대꾸했다.

다행인지 아닌지, 마리아는 비난 같지도 않은 가벼운 비난은 들은 척도 안 하는 사람이었다. 희연의 말은 자연스레 무시당했다.

“…….”

닉의 손이 걸린 일이었다. 유니콘의 뿔이라는 차선책이 있긴 했지만 에흐테의 입장까지 고려해 보면 희연은 마리아의 제안을 거부할 수가 없었다.

실전에서 살아남는 것이 최대 목표였던 희연은 갑자기 올라간 난이도에 절로 표정이 안 좋아졌다. 그런 희연을 마치 놀리기라도 하는 것처럼 마리아는 두루뭉술한 이야기를 꺼냈다.

“그렇게 죽상 지을 필요 없어. 적어도 죽더라도 외롭게 죽지는 않게 해줄 테니까.”

“…?”

의아해하는 희연을 앞에 두고 방긋 웃던 마리아는 누군가를 찾아 고개를 들었고, 희연도 그 시선을 따라 눈을 굴렸다. 마리아가 찾은 것은 모짜렐라였다.

눈치 빠른 모짜렐라는 자기에게로 향하는 시선에 뭔지도 모르면서 도망부터 치려 했지만 눈치가 빠른 건 마리아도 마찬가지였다. 가여운 꼬마 치즈는 발을 떼기도 전에 마리아에게 붙잡혔다.

“어디 가니? 감히 내 길드에 있으면서 내 방식이 아닌 이세인의 방식을 따르는 우리 괘씸한 치즈?”

“지금 그 얘기를 왜….”

“자, 친구랑 같이 손잡고 실전 뛸 준비는 됐니?”

“내가 왜요!”

갑작스러운 통보에 기겁하며 왁왁거리는 모짜렐라를 가뿐히 무시하며 마리아는 료한에게도 가까이 오라 손짓했다. 료한은 제 누나의 부름에 질색하면서도 가까이 다가왔다.

희연과 모짜렐라, 료한까지 다 모은 뒤에야 마리아는 그 실전이란 것에 대하여 제대로 설명을 해주었다.

“모르는 애가 둘이나 있으니 설명해 주자면, 내가 하는 실전이란 날 상대로 살아남는 걸 뜻해.”

“네…?”

“쉿, 설명 중이잖아. 질문은 나중에 하고 들으렴. 어쨌든 마침 우리가 있는 곳이 마할라틴 숲이잖아? 이 숲에서 너희는 나로부터 도망치고 살아남으면 되는 거야. 참 쉽지?”

급작스러운 생존 서바이벌 소식에 놀란 희연은 붙잡고 있던 킹스메이커를 보며 이 말이 사실이냐는 눈빛을 보냈다. 킹스메이커는 웃기만 했다. 희연은 또 킹스메이커가 조금 미워질 뻔했다.

“물론 평균 레벨 71인 너희가 얼마나 연약하고 하찮은지 나도 잘 알고 있어.”

말이 좋아 평균 레벨 71이지 료한이 96이고 희연이 42였다. 평균값에 근접한 사람은 모짜렐라밖에 없었다.

“하나하나가 약해빠진 너희지만 머리가 셋이면 나름 좋은 결과가 나올지도 모르잖아? 그래서 너희 셋 다 함께 실전을 하기로 결론이 난 거야.”

“난 한다고 한 적…!”

“물론 살아남기만 하는 거면 재미가 없지. 그렇게 하면 끝나지도 않을 거고.”

모짜렐라의 입을 막은 상태로 마리아는 희연을 집요하게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딱 한 대. 날 한 대라도 공격하면 너희들 승리야.”

“…….”

그 한 대 때리는 게 되나…?

마리아를 상대로 한 대 때리기라는 요행이 가능한가 생각해보던 것도 잠시, 이어지는 마리아의 말에 희연은 다시 집중했다.

“난 악세도 뺄 거고, 스킬도 사용 안 할 거야. 물론 실전 중에 본의 아닌 실수로 내가 너희를 전부 몰살시킬 수도 있어. 솔직히 난 평균 레벨 71들 상대로 봐주는 법은 잘 모르거든.”

“…….”

“괜찮아, 안 죽여 안 죽여. 말이 그렇다는 거지 설마하니 내가 너희를 죽이겠어?”

이미 네 번 죽고 한 번은 미수로 끝난 희연은 마리아의 말을 믿을 수가 없어 불신의 표정을 지었다. 마리아는 조금도 개의치 않아 했다.

“나 감시하려고 여태껏 저 요정님도 기다렸잖아. 요정님이 훈수 모드 해줄 거야.”

“훈수 모드요…?”

“나중에 들으렴.”

대강 중요한 것들에 대한 설명을 끝낸 마리아는 그제야 모짜렐라를 놔주었다. 풀려난 모짜렐라는 혹여나 마리아에게 또 붙잡힐 것이 염려되었는지 냉큼 희연이 있는 쪽으로 피신했다.

킹스메이커를 믿어서라기보다는 희연의 옆에 붙어 있으면 그녀 때문이라도 킹스메이커가 나서서 보호해 줄 거라는 걸 알아서 나온 다소 약은 행동이었다.

최소한의 안전을 스스로 쟁취한 모짜렐라는 조금 전 말하다 제지당한 말을 다시 꺼냈다.

“내가 그걸 왜 하는데요! 난 할 생각 없다고요!”

희연이야 본인의 입으로 하겠다 외친 것도 있고 닉의 치료도 걸린 만큼 마리아의 서바이벌 실전에 최선을 다해야만 했지만 모짜렐라에게는 애당초 자진해 지옥 길로 들어설 이유가 없었다.

그러나 마리아라고 해서 이 점을 몰랐을 리도 없었고, 이 계획을 세운 공범자 킹스메이커도 몰랐을 리 없었다. 희연은 모짜렐라도 료한도 이 서바이벌에 참여할 수밖에 없으리란 걸 미리 예지했다.

마리아는 달콤한 간식으로 아이를 꼬여내는 듯한 목소리로 말했다.

“이 시험 통과하면 앞으로 네가 이세인 방식대로 루트 타도 터치 안 할게.”

모짜렐라는 간단하게 함락당했다.

하지만 마리아에게는 료한이라는 다소 설득하기 어려운 고비가 남아 있었다. 료한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마리아는 자신도 정말 많은 걸 포기한다는 듯한 표정을 지으며 입을 열었다.

“네가 이기면… 명절에 집 간다.”

“…거짓말.”

“한서하가 보증하는 약속이야.”

료한은 눈을 동그랗게 뜨고 킹스메이커를 바라보았다. 킹스메이커는 그 시선에 기꺼이 웃으며 약속했다.

“안 가겠다고 버티며 묶어서라도 너희 집에 배달해 줄게.”

마리아가 명절에 집에 간다는 것이 확실히 크나큰 보상이었는지 료한에게선 반응이 나왔다.

하지만 자진해서 괴롭힘의 구덩이에 들어가기에는 조금 부족한 보상이었는지 곧바로 그러겠단 답은 나오지 않았다.

그러나 희연은 료한 역시 모짜렐라처럼 얼마 안 있어 함락되리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지금 이 서바이벌 실전 계획의 공모자 목록에는 한 명이 더 있었기 때문이다.

“하면 좋을 것 같은데.”

“…할게요.”

백희준이었다. 

백희준의 말 한마디에 끝나버린 료한을 보며 희연은 속으로 혀를 끌끌 차긴 했지만 내심 마리아의 실전을 혼자 하지 않아도 된다는 점에서는 안도하긴 했다.

친구들을 함께 지옥 속으로 끌고 간다는 점에서 비록 양심이 조금 아프기는 했지만 말이다.

희연과 달리 아플 양심도 없던 마리아는 주먹구구식이기는 했으나 나름 제 계획대로 돌아가는 것 같은 상황에 제법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고, 포식자의 웃음을 입에 건 마리아의 모습에 희연은 조금 걱정이 되었다.

모짜렐라나 료한에게 내건 조건으로 보아 마리아는 이번 실전을 조금도 봐줄 생각이 없어 보였다.

흔한 성장 서사의 클리셰인 쪼렙 셋이 힘을 합쳐 마리아의 빈틈을 파고들어 승리하는 결말?

그런 건 다 악당 쪽에서 봐줘야 가능한 이야기였다. 그리고 마리아는 빈틈을 내어주기는커녕 그들에게 위기, 절망, 고뇌, 포기를 가르칠 사람이었다.

아무리 액세서리를 빼고 스킬을 쓰지 않는다고 해도 평균 레벨 71 셋이서 마리아라는 보스를 상대하는 건 다소 무리가 있었다.

게다가 조합도 문제였다. 료한은 딜러고 희연과 모짜렐라는 힐러였다. 탱커는 아무도 없었다.

실상 마리아에게 한 대라도 맞으면 평균 레벨 71은 모두 즉사이니 탱커의 의미가 없다고는 하지만 희연은 이런 조합으로도 보스를 상대해도 되는 건가 싶어 마음이 편치 않았다.

마리아는 본인이 변칙의 대가라 그런 것인지 지금껏 배운 것을 모두 무용하게 만들어버릴 가능성이 높았다.

더불어, 희연은 아직 마리아나 이세인에게서 제대로 배운 것이 아무것도 없었다.

채찍질 조금 배운 지금 상황을 성장했다고 보기란 어려웠다. 심지어 그것도 맞는 쪽의 입장이 되어서 집중해 보라는 식으로 배운 거였다.

한 대만 맞추면 된다고는 하지만 조금 전, 마리아가 봐주는 상태였음에도 희연은 단 한 번을 마리아 저격에 성공한 적이 없었다.

물론 그럴 엄두도 못 낸 것이 문제의 가장 큰 원인이긴 했지만, 설령 희연에게 만용이 넘쳤다 해도 마리아는 레벨 50도 못 찍은 힐러의 공격을 쉽게 수용해 줄 사람이 아니었다.

그런 희연의 걱정을 알고 있다는 듯 킹스메이커는 걱정 말라며 웃어 보였다. 그녀는 현실을 모르는 사람이 아니었다.

“지금 상태로 오리 님이 마리아랑 붙는 건 너무 무모하다는 거 알고 있죠?”

“네….”

“마리아도 양심이라는 게 있어요.”

“…그래요?”

“그럼요! 애가 조금 철이 없고 반항심이 높아서 그렇지 다루기 어려운 건 아니거든요.”

보통 이럴 땐 심성이 착하다고 하지 않나…?

거짓 없이 솔직한 킹스메이커의 모습이 당혹스럽긴 해도 저렇게 말할 때는 그래도 해결책이 있는 거구나 싶어져 희연은 조금 안도했다.

“벼락치기 할 시간은 주기로 했죠.”

“벼락… 치기요?”

그러나 그 해결책이라는 것이 희연에게는 그리 와닿지 않았다.

공부 좀 한다고 마리아를 상대할 수 있을 것 같지는 않았기에 희연은 실망한 티를 감추지 못했다. 킹스메이커는 희연의 반응에도 굴하지 않고 고개를 저었다.

“오리 님은 레이드를 해본 적이 없기 때문에 보스를 상대할 때 힐러가 어떻게 해야 하는지도 잘 몰라요. 그렇죠?”

“그렇죠….”

“물론 진짜 보스랑 보스 마리아는 많이 다르긴 하겠지만, 레이드 경험이 있었다면 마리아를 상대하기에 더 좋았을 거라는 것도 사실이에요.”

킹스메이커의 말은 결국 경험의 부족을 지식으로라도 채워보자는 의미였다. 그 지식을 전수해 줄 사람이란 당연하게도 이세인이였고 말이다.

속성으로 배우는 이세인의 정석 힐러 보스 레이드 강좌에 진심으로 기뻐한 건 그를 존경하는 모짜렐라뿐이었다.

희연은 너라도 기뻐해서 다행이다, 하며 씁쓸하게 웃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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