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뉴비세스 메이커 (199)화 (199/251)

199화

놀라운 건 모짜렐라도 이세인의 의견에 동의한다는 점이었다. 고개를 끄덕거리고 있는 그의 모습에 희연은 심적으로 거리감을 느꼈다.

동시에 희연은 자신이 배움의 과정을 너무 쉽게 생각하는 바람에 지금의 나약한 태도를 보이는 것은 아닌가 하는 약간의 걱정도 들었다.

가벼운 마음으로 임한 것은 아니나 모짜렐라나 이세인을 보니 희연은 절로 그런 생각이 들었다. 마음을 굳게 먹자 다짐한 그녀는 다시 이세인의 수업에 집중했다. 비록 표정은 죽상이었지만 말이다.

“사실 이렇게 지식으로만 배워도 실전에 들어가면 반은 기억 안 날 거야. 특히 레이드 같은 경우엔 규칙이 조금 바뀌기도 하니까.”

“규칙이요?”

“스킬의 쿨타임이 모두 바뀌어.”

“…왜요?”

“한 번 쓰면 30분 뒤에나 쓸 수 있는 스킬은 필드라면 모를까 레이드를 할 때는 적절하지 않으니까. 물론 예전엔 레이드를 할 때도 필드 규칙이 적용되긴 했는데 쿨타임 문제로 말이 많이 나왔거든. 재수 없으면 레이드 한 번에 8시간을 보내곤 했으니까. 그래서 개편되었어.”

개편이라 함은 좋게 바뀌었다는 뜻이다. 하지만 희연은 이 예상 못 한 소식을 마냥 기뻐할 수 없었다. 이세인의 말대로라면 이후 레이드 참여 시 희연은 스킬 쿨타임도 전부 다시 외워야 했다.

아직까지도 스킬을 많이 써야 하는 상황이면 스킬 창을 열고 쓰는 희연에게 그 이야기는 기껏 공부하고 시험장에 들어갔더니 범위가 전부 뒤바뀌었다는 것과도 같은 발언이었다.

절망하는 희연을 보며 모짜렐라를 혀를 끌끌 찼다. 미리미리 레이드를 안 가보고 미룬 희연의 게으름을 탓한 것이다.

그러나 그녀 덕택에 이세인의 강좌를 들을 수 있게 된 것이므로 모짜렐라는 나름 위로도 해주었다.

“하다 보면 금방 외워.”

“그렇구나….”

그것참 많은 위로가 되었다. 희연의 표정은 절로 뚱해졌다.

“친구 말이 맞아. 하다 보면 금방 외울 거야 희연아. 일단 실수하지 않게 이 표시는 기억해놔. 이게 뜨면 힐이 공격이 됐다는 뜻이니까 조심해야 해.”

이세인은 지팡이 끝으로 바닥에 직직 무언가를 그렸다.

“…?”

“다 그린 거예요?”

이세인의 그림을 보며 희연은 고개를 갸웃거렸고 모짜렐라는 직접적으로 물어보았다. 이세인은 당당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림이….”

“쉿.”

모짜렐라의 입을 막은 희연은 이세인의 그림을 보며 무엇을 표현하려 한 것인지 고민해 보았다. 일단 과거, 이세인에게 포스터를 그려달라 했던 여덟 살 백희연은 결과물을 보곤 정말 울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람?”

“거미 아니야?”

“거미보다는 돈벌레 같은데….”

일부러 작게 속닥거린 희연과 모짜렐라의 배려가 무색하게도 이세인은 그 이야기를 모두 다, 너무 잘 들었다. 이세인은 제 그림을 다시 보며 그렇게 못 알아볼 그림인가 하는 생각을 했다.

끝내 이세인은 두 사람이 그림을 못 알아보는 이유를 그림에 해당하는 버프를 실제로 본 적이 없어 그렇다는 결론을 내렸다.

“잠깐만 기다려 얘들아.”

이왕 가르치는 김에 제대로 하자는 마음이 생긴 이세인은 적절한 학습 자료를 구하기 위해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림에서 눈을 뗀 희연과 모짜렐라는 이세인이 뭘 하려는 건가 싶어 그의 움직임을 따라 고개를 돌렸다.

이세인은 차례로 킹스메이커와 존성대명을 데리고 다시 돌아왔다. 하지만 뉴비 없지가 닉의 팔을 꼭 잡고 킹스메이커를 따라왔고, 백희준과 료한도 존성대명을 따라왔기에 결과적으로는 격리당한 마리아를 제외한 모두가 한자리에 모였다고 봐야 했다.

희연을 보자마자 닉에게 안겨 있던 악령이는 희연에게 안아달라며 팔을 뻗어왔다. 하지만 아직 수업이 끝나지 않은 관계로 어떤 위험이 남아있을지 모를 상황이었기에 희연은 고개를 저을 수밖에 없었다.

희연의 거절이 익숙하지 않은 악령이는 조금 시무룩해졌다.

그 모습에 마음 아파하는 희연을 발견한 킹스메이커는 어서 빨리 둘을 재회시켜주기 위하여 이세인을 재촉하였다.

“왜 오라고 한 거야?”

“말로만 설명하기에는 조금 어려워서요. 역십자 저주 좀 걸어줘요. 그리고 대명이 너는 허수아비 역할 좀 해.”

역할을 부여한 이세인은 희연과 모짜렐라에게 조금 더 자세한 설명을 들려주었다.

“역십자 스킬은 두 가지가 있어. 순교, 그리고 저주. 순교는 버프 스킬이니까 나중에 스킬을 얻게 되면 직접 써보도록 하고, 일단은 저주부터 확인해보도록 하자. 이번엔 마리아가 스킬을 사용하지 않기로 해서 몰라도 될 것 같지만 알아두면 결국엔 좋은 일이니까.”

이세인은 친절하게도 희연과 모짜렐라를 손수 킹스메이커의 앞으로 대령했다.

낫을 들어 올리는 킹스메이커의 모습에 두 사람 다 움찔거리며 뒤로 물러나려 했지만 이세인에게 붙잡혀 있었으므로 도망은 불가했다.

“괜찮아요, 괜찮아. 아픈 거 아니에요, 오리 님. <역십자의 저주>.”

희연은 가만히 시스템 창이 뜨기를 기다렸다. 디버프에 대한 설명을 제대로 보기 위함이었다. 하지만 어찌 된 일인지 시스템 창은 나타나지 않았다.

스킬에 안 걸린 건가 해서 제 머리 위를 바라본 희연은 검은 기류에 휘감긴 채 뒤집힌 십자가 아이콘을 발견했다.

“…….”

머리 위에 뜬 것과 이세인이 그린 그림을 번갈아 바라보던 희연은 경고와 같은 이세인의 부름에 퍼뜩 고개를 바로 했다.

“희연아.”

“네에….”

“대명이한테 힐 스킬 한 번 걸어볼래? 희연이 친구도 같이 해 봐.”

희연과 모짜렐라는 시키는 대로 착실하게 스킬을 사용했다. 두 사람이 선택한 스킬은 쿨타임이 가장 짧은 <치유의 빛>이었다.

“와….”

원래라면 대상을 하얗게 빛나게 만드는 스킬 이펙트가 검은색으로 바뀌어 나타났다. 그것을 본 희연은 짧은 감탄사를 뱉으며 제 총과 존성대명을 번갈아 바라보았다.

“어때 대명아?”

“어? 어… 음…, 우. 와. 피. 가. 정. 말. 닳. 았. 잖. 아? 대. 단. 한. 걸!”

삐걱거리는 대답에 희연과 모짜렐라의 얼굴에는 절로 실망한 기색이 떠올랐다.

그 모습을 본 뉴비 없지는 저가 더 마음이 아파 와 눈물을 삼켰다. 만약 허수아비 역할을 맡은 게 그였다면 그는 제 뺨을 쳐서라도 두 뉴비를 실망시키지 않았을 것이다.

뉴비 없지만큼은 아니었지만 존성대명의 어설픈 연기에 실망한 것은 이세인 역시 마찬가지였다.

잠깐 표정이 굳었던 이세인은 존성대명을 밀어낸 뒤 설명을 잇는 것으로 방금 전에 있었던 일을 애써 묻고자 하였다.

“…역십자 상태일 때는 아군한테 치료 스킬을 걸면 위험하겠지?”

“별로 안 위험한 것처럼 보이는데요.”

“위험한 거 맞아.”

불퉁하게 대꾸하는 모짜렐라를 웃으며 달랜 이세인의 얼굴 위로 설핏 피로가 엿보이기 시작했다.

여기서 희연까지 모짜렐라처럼 말했으면 이세인은 존성대명을 한 대 때려줘서라도 힐러도 위험하다는 것을 몸소 보여주었을 것이다.

하지만 애초에 희연은 존성대명에게 총을 들이밀 때부터 그에게서 이런 반응이 나올 것이란 걸 어느 정도 예상했기에 상처받거나 하지 않았다. 정말로.

그러나 약간의 아쉬움이 남는 건 사실이었기에 희연은 이왕 저주에 걸린 거 서로 힐을 걸어보자며 모짜렐라를 꼬셨다. 존성대명의 반응에 뚱해진 모짜렐라는 희연의 제안을 냉큼 받아들였다.

둘 모두 위협적인 힐러라는 것에 대한 꿈이 있던 것이다.

“료한 님도 할래요?”

모짜렐라는 평균 레벨 71중 96을 담당하는 료한이 외롭지 않도록 그에게 제의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아뇨 저는….”

료한은 직접적으로 거절하는 대신 백희준 쪽을 힐끔 바라보았다. 백희준에게 1대 1로 강습받을 수 있는 지금의 시간을 조금 더 즐기고 싶은 눈치였다.

희연은 그 모습에 어쩔 수 없이 질색했다. 수능 공부를 백희준에게 배운 희연은 백희준이 얼마나 지독하게 사람을 가르치는지 잘 알고 있었다. 일단 머릿속에 욱여넣으라던 이세인의 발언도 애교로 보일 정도였다. 그걸 즐기는 듯한 료한이 그녀는 이해되지 않았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료한만의 즐거운 백희준과의 1대 1 강습은 내내 격리되어있던 마리아의 난입으로 끝을 맺었다.

“도대체 수업이 언제 끝나!”

마리아의 인내심은 예상한 것보다는 길었고 조금 더 배움의 시간을 갖고 싶던 희연에겐 짧았다.

희연은 이제는 정말 결전의 시간이구나 하는 심정에 일단 이세인을 붙잡았다.

“저주 없애 주세요. 그리고….”

“마리아 상대할 때 팁은 없냐고 물어보고 싶은 거야?”

“…네.”

“안타깝지만 그런 건 없어 희연아. 솔직히 말하면 팁 좀 준다고 너희 셋이 마리아를 이길 것 같지도 않고.”

“…….”

“대신 죽지 않게 나도 나름 노력해 볼게.”

“?”

마리아의 시험을 보는 건 희연을 포함한 평균 레벨 71인데 이세인이 노력을 하겠다는 말이 나왔다.

그의 말이 무슨 뜻인지 이해 못 했던 희연은 마리아의 재촉으로 마할라틴 숲의 경계선까지 이동한 다음에야 그 의미를 알게 되었다.

“규칙 알려줄 테니까 잘 들어. 이제부터 이 숲에서 너희들이랑 나랑 내기를 할 거야. 너희는 아까 말한 대로 누구라도 좋으니 유효타를 날려 봐. 난 악세 뺄 거고, 스킬도 안 쓸 거야.”

여기까지는 조금 전에 들은 설명과 같았다. 중요한 것은 이후 마리아의 입에서 나오는 말이었다.

“그리고, 훈수 모드. 테이머의 시야 공유 스킬로 내가 너희를 죽이는지 아닌지 이 인간들이 감시할 거고, 이세인이 보다가 정 위험하다 싶으면 힐 스킬을 써줄 거야.”

최소한의 안전장치는 마련한 실전 수업이란 뜻이었다. 희연은 그래도 마리아가 양심이 있고 킹스메이커가 안전의 개념을 알고 있었구나 싶어 안도했다.

“가장 중요한 건 이거지. 숲에 들어가기 전에 이세인이 너희한테 예비 목숨 열 개를 챙겨줄 거야. 그 열 개를 다 쓰고 기어이 나한테 한 대 더 맞아서 이세인이 힐 스킬을 쓰게 만드는 사람이 하나라도 나오는 순간 내기는 끝이야.”

“…….”

“그리고 너 유니콘 금지.”

“네? 저만요? 왜요?”

에흐테를 꺼내는 게 금지라는 말에 희연은 깜짝 놀랐다. 그도 그럴 것이 이곳은 숲이었다. 무성함과 험한 것이 카나리아 숲과는 비교 못 할 마할라틴 숲.

유니콘 없이 뚜벅이로 뛰어다니라는 건 희연에게 그냥 마리아에게 잡힐 때까지 애써보라는 말밖에 되지 못했다.

“유니콘은 신성한 동물이라 그거 공격하면 내가 페널티 먹어서 안 돼.”

하지만 마리아는 의외로 타당한 이유를 댔다. 희연은 그런 페널티가 있었는지 몰랐기에 사실 확인을 위해 킹스메이커 쪽을 바라보았다.

“진짜구나….”

“너 생각보다 사람 말 잘 안 믿는구나? 뭐 어쨌든, 우리 치즈랑 내 동생도 펫 있으니까 얻어 타면서 다녀.”

“내 펫은 1인 탑승인데요.”

“내 동생 거 같이 타고 다녀.”

사소한 문제 따윈 빨리빨리 넘기는 마리아의 모습에선 어서 빨리 이 지루한 수업의 끝을 보고 싶다는 심정이 담겨 있었다.

닉의 시야 공유 스킬을 위해서도, 이세인이 멀리서 힐을 해주기 위해서도 마리아를 제외한 모두가 파티 상태가 되어야 했다. 파티장은 킹스메이커였다. 그녀는 차례차례 파티 초대를 했다. 인원수가 많았기에 그것도 제법 일이었다.

그사이 이세인과의 수업이 끝났음을 직감한 악령이는 닉의 품에서 빠져나와 희연의 다리에 매달렸다. 그런 악령이의 머리 위에는 넬이 얌전히 앉아 있었다.

뒤늦게 인형이 제 다리에 매달렸음을 알아차린 희연은 재빨리 파티 초대를 수락한 뒤 악령이를 떼놓기 위해 애를 써야 했다.

“같이 가면 위험해.”

“아니야, 아니야.”

“뭐가 아니라는 거야….”

곤란해하던 희연은 이 이상 악령이의 고집을 꺾지 못하리란 걸 알았기에 결국 인형을 안아 들었다.

모짜렐라는 몸집이 커다래진 크림을 꺼내 올라탔고 료한 또한 커다란 순록을 꺼내더니 그 위로 올라탔다. 희연은 이 와중에 처음 보는 순록이 너무 커다래 조금 놀랐다.

주위를 서성거리며 순록을 구경하는 희연을 본 료한은 혹시나 하는 마음에 조심스레 물어보았다.

“혼자 올라올 수 있어요?”

“저 승마 스킬 있어요!”

료한의 순록 위로 올라탄 희연은 미리 총을 꺼내든 뒤 빈 홀스터 안으로 악령이와 넬을 집어넣었다. 나름대로 준비를 끝낸 셋의 모습을 보며 마리아는 여유롭게 말했다.

“우리 요정님께서 훈수 모드 키는 걸 기준으로 딱 10분 줄 거야. 멀리 도망가든가 머리 굴려보든가 알아서 해봐. 결과는 어차피 같겠지만.”

“그런데 마할라틴 숲의 몬스터가 나오면 그건 어떻게 해요?”

“평균 레벨 71이면 그 정도는 잡을 수 있잖니.”

“…….”

희연은 마리아가 다 알고서 저렇게 말하는 건가 싶어 고개를 갸웃거렸다. 왜 료한이 제 누나를 질색팔색하며 싫어하는지 조금 알 것 같았다.

“위험하다 싶은 몬스터는 미리 다른 곳으로 보낼 테니 걱정 안 해도 돼요.”

다행히 이 중에는 친절한 요정 닉이 있었다. 내심 희연과 같은 것을 걱정했는지 모짜렐라도 료한도 닉의 말에 안도하는 기색을 보였다.

필요한 설명은 이제 모두 끝났다.

마리아는 평균 레벨 71 따위 얼마든지 이 숲에서 찾아낼 수 있다는 자신감을 보여주듯 뒤돌아서는 것으로 그들이 어느 방향으로 가는지 보지 않겠다는 뜻을 보여주었다.

이세인이 지팡이를 들어 올린 것도 그때쯤이었다.

“<드라크마의 축복>.”

[드라크마의 축복! 반짝이는 은화에 담긴 빛의 힘이 치명적인 위협으로부터 몸을 보호해줍니다.]

처음 듣는 스킬의 등장에 희연은 호기심을 보였다. 이세인이 건 축복은 열 개의 은화가 엮인 머리 장식이 씌워지는 방식으로 모습을 드러냈다.

제 머리 장식은 볼 수 없었기에 희연은 앞에 앉은 료한의 머리 장식을 보는 것으로 만족해야 했다.

이세인의 축복을 마지막으로 모든 준비를 마쳤다 생각했는지 닉도 그제야 자신이 맡은 바를 다하였다.

“…<시야 공유>.”

평균 레벨 71과 마리아를 제외한 모두에게 닉의 스킬이 걸린 순간, 료한과 모짜렐라는 각자의 펫을 이끌고 마할라틴 숲으로 진입을 시작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