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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비세스 메이커 (201)화 (201/251)

201화

계획을 세우는 일 자체는 어렵지 않았다.

의견이 많으면 그만큼 다양한 점을 보완할 수 있다는 점에서 좋지만, 초반부터 그러면 사공 많은 배가 산으로 갈 뿐이었다. 하여 그들은 각자 하나씩 계획을 세우기로 하였다.

무어라 하는 사람이 없는 상태에서 의견을 제시하는 건 수월했다. 희연의 경우 이미 앞서 말한 것을 자신의 계획으로 내놓았기에 료한과 모짜렐라가 계획을 다 짜는 것을 기다리기만 하면 되었다.

료한은 걱정이 많고 생각이 많은 성정이었다. 이는 언뜻 보면 단점으로만 보이는 조건이었지만 말을 조금만 바꾸면 그의 조건들은 장점이 되기에 충분했다.

료한은 신중했고, 여러 변수에 대한 대비책도 꼼꼼하게 고려했다. 생각이 많다는 것은 변칙적으로 움직이는 마리아의 예상 경로를 다양하게 예측할 수 있다는 의미이기도 했다.

세 사람은 열심히 계획을 짜며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부족한 점에 대해서는 피드백을 했고 더 나은 방식이 있다면 제안했다. 훌륭한 조별 과제 희망 편과도 같은 모습이었다.

물론 무조건 매끄럽게만 흘러간 것은 아니었다. 플랜 C를 맡은 모짜렐라가 잠깐 조별 과제를 탈출하려는 것처럼 구는 해프닝이 있었기 때문이다.

“즉흥.”

“…….”

모짜렐라가 계획이랍시고 내놓은 결과물이었다. 희연은 그 말을 들었을 때 이게 바로 조별 과제 잔혹사의 서막인가 하는 생각을 했다.

조장의 탈주를 바라보는 조원의 눈빛을 한 희연의 모습에 모짜렐라는 심드렁하게 대꾸했다.

“그렇게 보지 마. 애초에 던전에선 뭐 계획대로 한 게 있었어? 차라리 즉흥적으로 그때그때 맞춰서 하는 게 더 나을 수도 있어. 이쪽도 그렇게 해서 결과 좋았잖아 어쨌든.”

희연은 손을 파닥이는 넬을 보곤 차마 그건 아니라는 말은 못 했다. 어쨌든 결과가 좋은 건 맞았기 때문이다. 희연은 순순히 수긍했다.

“계획이 두 번이나 실패하면 즉흥적으로 움직여야지 뭐….”

“그러니까 C까지 안 가게 잘 해봐야지.”

자리에서 일어난 모짜렐라는 하얀 옷에 묻은 흙을 털다 말고 희연에게 매달린 두 악령 쪽을 바라보았다. 하늘색 눈이 가늘어졌다.

“얘네는 뭐 할 줄 아는 거 없어? 저번에 보니까 땃쥐 미 집어 던지고 그러던데. 그거 이번엔 못 해?”

“아….”

희연은 악령이 쪽을 바라보았다. 악령이는 눈이 마주친 희연에게 고개를 도리도리 젓는 것으로 제 의중을 전했다.

“못한대.”

“못 하는 거야 마리아가 무서워서 안 하는 거야?”

“무서워서 못 하는 거 아닐까…?”

자신 없는 희연의 말에 모짜렐라는 인상을 조금 찡그렸다. 자신은 그리 만만하게 보더니 마리아는 무서워한다는 악령이가 조금 마음에 들지 않는 눈치였다.

희연은 사실 악령이는 무지무지 강한, 힘을 숨긴 악령이라는 사실을 알려줘야 하나 조금 고민했다.

악령이 대신 넬 쪽으로 관심을 바꾼 모짜렐라는 이번에는 조금 기대하는 눈빛을 보냈다. 넬이 원래는 전쟁터를 떠돌던 한 병사였다는 점에서 기대하는 바가 있는 눈치였다.

희연은 그 기대심에 속으로 미리 사과를 전하며 제 손 위에 넬을 올렸다.

“넬은 이런 거 할 줄은 아는데….”

두 손을 활짝 벌린 넬의 몸이 반짝 빛났다. 반짝!

“…플랜 B부터 하자. 료한 님 준비하러 갈 거니까 일어나요. 이거 망하면 우리한테 미래 따윈 없다는 각오로 임해요.”

반짝 빛나는 넬은 애초에 본 적 없다는 듯 구는 모짜렐라의 모습에 넬은 기가 죽어 희연의 소매 사이로 숨어들었다.

희연은 안타까워하면서도 차마 위로는 못 해주고 모짜렐라를 따라 자리에서 일어나야 했다.

***

이전, 마리아가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친절하게 굴었던 첫 만남에서 희연은 그녀로부터 미르그 교단에 대한 단편적인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었다.

교단을 미르그로 옮길 시 시작되는 3개월간의 생존 퀘스트!

암살자가 난무하고, 엄격한 교리에 맞춰 살아야 한다는 압박감을 버텨야 하며, 르센을 따르는 쉬운 선택지에 대한 유혹을 이겨내야 한다는 점에서 인내심까지 요구되는 진로였다.

그리고 마리아는 그 교단의 성녀였다. 암살자를 물리칠 능력, 압박감 따윈 무시하는 배짱, 남의 인내심을 박살 냄으로써 그녀 본인은 여유를 쟁취하는 인성을 갖고 있단 뜻이었다.

희연은 성녀라는 직책에 필요한 조건이 무엇인지 아직 잘 몰랐지만 모짜렐라가 들려주는 마리아의 무용담을 통해 어렴풋이 그녀가 성녀로서 어떤 시간을 보냈는지 알게 되었다.

일단, 알게 된 바로는 마리아는 인간 추적을 잘했다. 성녀의 의무는 이단의 말살이었다.

이전 땃쥐 미에게 쫓길 당시 걱정 많고 생각 많은 료한은 넘어져 구른 희연에게 추적당할 것을 걱정해 그랬냐는 소리를 한 적이 있었다.

사람은 움직이면 필연적으로 흔적을 남겼고, 그건 언제나 붙잡힐 덜미가 되었다. 그리고 그들이 현재 있는 곳은 숲이었다. 그것도 사람의 손길이 닿지 않는 사유지.

사람이 남기는 흔적이 유난히 눈에 띄는 그런 장소였다. 추적의 대가에게 있어 숲에 숨은 대상을 찾기란 식은 죽 먹기일지도 몰랐다.

희연이 그런 생각을 하게 된 것은 그리 멀지 않은 곳에서 무언가 얇고 기다란 것이 바람을 가르는 소리가 울려 퍼졌기 때문이다. 닿지도 않은 살갗이 아파져 오는 것 같은 소리였다.

마리아의 추적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었고, 어느새 그들이 거의 따라잡혔다는 증거이기도 했다. 하지만 그들은 도망가지 않았다.

애초에 도망이 목적이었다면 어설픈 교란용 흔적이나마 남기는 것을 멈추지 않았을 것이다.

커다란 나무둥치 밑에 숨어있던 희연은 숨소리 하나라도 새어나갈까 걱정된다는 듯 바짝 굳은 채 머리만 조금 내밀어 상황을 지켜보았다.

플랜 B, 안전을 추구한 료한의 계획은 이러했다.

직업 특성상 료한은 다양한 부비트랩을 다룰 수 있었고 교묘한 함정도 만들 수 있었다.

물론 레벨 문제로 그렇게 좋은 스킬이라고 할 만한 것은 아닌지라 눈썰미 좋은 이들이 보면 티가 난다는 문제가 있기는 했다.

하지만 그런 단점을 고려하더라도 일단 걸리기만 한다면 무조건 한 대는 유효타로 판정 날 확률이 높았다.

료한은 이 함정을 통해 안전을 꾀했다. 마리아가 함정에 걸리는 동안 그들은 숨어서 지켜보기로 한 것이다. 마리아라는 보스를 어린 시절부터 상대해 본 료한다운 안전한 선택이었다.

이 계획에 있어 가장 큰 문제는 마리아가 자진해서 함정에 걸려줘야 한다는 거였는데, 이는 모짜렐라의 기지로 해결되었기에 준비하는 과정이 그리 어렵지는 않았다.

어쭙잖은 함정 따위 마리아는 순수 힘체민 스텟으로 격파할 거라는 말에 료한은 정말, 온 정성을 다해 준비했다. 그 과정을 몸소 옆에서 지켜본 모짜렐라가 진저리 치며 희연에게 기대하라고 했을 정도였다.

함정 준비도 끝내고 마음의 준비도 끝낸 그들은 일부러 흔적을 남겨가며 마리아의 등장만을 기다렸다. 그리고 지금, 문제의 보스 마리아가 그들이 남긴 흔적을 쫓아 달려오고 있었다.

과연, 인간 추적의 대가 마리아는 멀리서부터 그 기세가 보통이 아니었다.

가여운 닉의 동물들은 벌벌 떨면서도 차마 닉의 눈 역할을 안 할 수는 없었기에 도망도 가지 못한 채 공포의 대상 마리아를 바라보는 중이었다.

희연은 절절하게 그 동물들의 심정에 공감하며 마리아가 다가오는 것을 지켜보았다. 숲의 파괴자와 같이 채찍을 사방에 휘두르며 거침없이 달려오던 마리아는 도중 무언가를 발견하곤 달려오던 것을 멈추었다.

모짜렐라의 기지가 빛을 발한 것이다.

모짜렐라는 어차피 걸릴 거고, 걸리게 할 거니 대놓고 함정이란 게 티 나도록 만들라고 말했다. 료한은 그 말을 착실하게 따랐다.

어떻게 마리아를 함정에 빠뜨리냐 희연이 질문하니, 모짜렐라는 함정 위에 팻말 하나를 설치했다. 팻말에 적힌 문장은 짧았다.

힐러는 힐이나 해.

희연은 처음 그 문구를 보았을 때 이게 되나 싶었지만, 놀랍게도 됐다. 마리아는 팻말을 부숴버리기 위해 함정으로 달려들었다.

희연은 저런 도발 같지도 않은 도발에 진짜로 넘어간다는 점에 놀랐다. 힐러의 자존심이란 정말 알다가도 모를 것이라 생각하며 그녀는 다시 집중했다.

마리아가 함정이 설치된 바닥을 밟는 순간, 평평했던 땅이 훅 파이더니 그 밑에 숨겨져 있던 기다란 창이 무더기로 솟구쳤다.

마리아는 이쯤은 예상했다는 듯 버벅거리는 것 한번 없이 몸을 틀었다. 가벼운 발놀림으로 창의 옆 날을 밟더니 힘차게 뛰어올랐다. 희연은 그녀의 유연함에 혀를 내둘렀다.

그러나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료한은 굉장히 신중하고 걱정도 많은 성격이었기에, 또한 앞서 모짜렐라의 걱정도 있었기에 짧은 시간 동안 마리아를 위해 상당히 많은 것을 준비했다.

주위 나무의 둥치 사이로 숨겨놓은 석궁이 발사되었다. 이제 막 제대로 된 땅에 발을 디디기도 무섭게 마리아는 채찍을 사방으로 휘두르며 화살을 막아냈다.

시야가 고정된 지금의 상황을 노린 함정도 있었다. 하늘에 둥실둥실 떠올라 있던 풍선이 터지며 그 안에 들어있던 작은 화약탄이 쏟아져 내렸다.

마리아는 삐약삐약 소리를 내더니 어느 두꺼운 나뭇가지에 채찍을 휘감으며 뛰어올랐다. 하지만, 혹시 모른다며 료한은 함정 주위에 있는 모든 나무에 기름을 발라두었다.

마리아가 미끄러운 나무 위에서 발을 삐끗한 사이 화약탄에서 튄 불티가 기름 발린 나무에 불을 냈다. 불에 닿는 것도 유효타 판정이었기에 마리아는 중심을 제대로 잡기도 전에 곧바로 나무에서 뛰어내렸다.

땅에 다시 발을 디디기 직전, 마리아는 무언가를 본 것인지 들고 있던 채찍을 먼저 강하게 내리쳤다. 풀숲에 숨겨져 있던 톱날 덫이 일제히 튀어 오르며 꽉 다물려졌다.

마지막인 것처럼 보이는 함정에도 마리아는 끝까지 방심하지 않았다. 그녀는 채찍을 휘두르며 한 바퀴 도는 것으로 제 주위에 있던 덫을 모두 멀리 떨어트렸다. 그건 옳은 판단이었다.

덫에 설치되어 있던 작은 폭탄이 일제히 터지며 소란을 일으켰다. 폭발하는 함정을 뒤로하고 마리아는 영화의 한 장면처럼 다소 멋있는 모습으로 걸어 나왔다.

“야 이, 삐약…!”

그러나 멋있는 모습은 오래 가지 않았다. 연쇄적으로 작동하는 료한의 섬세한 함정 키트는 아직 끝나지 않았던 것이다.

먼 거리에서 일련의 과정을 지켜보던 희연은 자신이 숨죽이고 있었다는 것도 잊고 결국 직접 물어보았다.

“함정을 얼마나 설치한 거예요?”

“준비는 확실할수록 좋은 거니까요.”

“…그렇구나.”

일단은 수긍한 희연은 함정을 준비한 동생도 그걸 다 피해 낸 누나도, 정말 대단한 남매라는 생각을 했다.

결국 료한의 계획은 실패했다. 내심 그녀가 걱정했던 불붙은 나무는 지나가던 메우메우가 구름 같은 제 털에서 비를 내렸기에 진화되었다.

얼결에 비까지 맞은 마리아의 눈에는 걸리기만 하면 다 죽여 버릴 거라는 열정이 그득그득 들어차 있었다. 희연은 무서웠다.

하지만 무서움에 덜덜 떨고만 있을 틈 따위는 없었다.

플랜 B는 실패했고, 원래라면 제법 거리가 있는 만큼 그동안 재정비를 했어야 하지만 열 받을 대로 받은 마리아는 그런 틈 따윈 내어주지 않았다.

질척해진 땅은 마리아의 발을 잡아주지 못했고, 무성한 수풀 따위도 그녀에겐 아무것도 아닌 장애물이었다.

하다못해 물기로 번들거리는 채찍의 손잡이라도 좀 닦으면 좋으련만, 열 받은 마리아는 자신을 전혀 돌보지 않았다.

“숙여!”

모짜렐라는 외침과 동시에 희연과 료한의 머리를 잡아 밑으로 내리눌렀다. 대상을 지정하지 않은 마리아의 채찍질에 다른 숲의 나무보다도 훨씬 두꺼운 몸통을 가지고 있던 마할라틴 숲의 나무들이 일제히 동강동강 잘려 나갔다.

그리고, 잘려 나갈 뻔한 것은 비단 나무뿐만이 아니었다.

쨍그랑…!

각자의 머리 장식에서 은화가 하나씩 깨졌다. 검게 물들어 파스스 흩어지는 철가루를 본 희연은 그게 마치 제 미래인 것만 같아 얼굴이 희게 질렸다.

마리아는 화풀이하듯 한동안 난동을 부렸고 세 사람은 몸을 잔뜩 웅크리며 숨을 죽였다. 잘려 나간 두꺼운 나뭇가지들이 그들 위로 떨어지며 층층이 쌓였기에 다행히 마리아에게 발각되지는 않았다.

셋 중 탱커가 없어 아쉬움을 느꼈던 것이 무색하게도 희연은 지금 상황에 부피 큰 장비를 착용한 사람이 없어 다행이란 생각을 했다.

세 사람은 땅을 기며 나뭇가지 틈새로 몸을 내뺐다. 모두가 얇은 천으로 만들어진 장비를 입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나오면 죽여 버린다 진짜…!”

소리 지르는 마리아를 뒤로하고 그들은 서둘러 그 자리를 벗어났다. 추적의 대가에게서 그리 멀리 도망은 못 간다지만 재정비를 할 시간은 벌어야 했다.

다행히 그들에겐 아직 료한이 설치한 함정이 조금 더 남아 있었다. 마리아가 료한의 함정을 헤쳐 나가고 부숴 나가는 사이 세 사람은 조금 더 깊숙한 숲속으로 이동했다.

그들의 도망은 가장 체력이 약한 모짜렐라가 달리다 넘어질 때까지 이어졌다. 그쯤에선 이미 희연도, 료한도 지친 상태인 것은 매한가지였기에 그들은 잠시간의 휴식 시간을 갖기로 하였다.

지친 상태로는 마리아를 이기기는커녕 견제할 수도 없었다.

한참을 숨을 고른 끝에 먼저 입을 연 것은 료한이었다.

“죄….”

“죄송할 필요 없으니까 다음.”

모짜렐라는 빠르게 땅으로 파고드는 료한을 저지시켰다. 희연도 료한의 잘못은 없다고 여겼다. 애초에, 그 정도 수의 함정도 안 통한 마리아가 반칙인 거였다.

그들은 한동안 말없이 앉아 있었다. 이번에 침묵을 깬 것은 비통함을 담은 조장의 말이었다.

“내가 마리아를 너무 과소평가했나 봐.”

“그건 아니야…!”

여기 있는 셋 중 마리아를 만만하게 여긴 사람은 애초에 아무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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