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4화
달려드는 마리아의 속도가 예상보다도 빨랐기에 모짜렐라는 스킬 시전을 취소하고 뒤로 물러나야만 했다. 익숙하지 않은 숲이라는 배경과 나름 각오했다 해도 무섭게 달려드는 마리아의 모습에 모짜렐라는 조금 주춤거렸다.
그를 봐줄 생각이라곤 조금도 없었기에 마리아는 잠깐의 머뭇거림을 잘 됐다 여기며 곧바로 손을 뻗었다.
쨍그랑…!
“이걸로 다섯 번째.”
쨍! 쨍! 쨍그랑…!
모짜렐라의 머리에 장식되어있던 은화 장식이 순식간에 짧아졌다. 이젠 장식이라고 부르기도 민망한 그것을 보며 마리아는 다시 주먹을 내지르다 도중 손을 펼쳐 모짜렐라를 붙잡았다.
탕…! 탕, 탕, 탕!
“이…!”
“뭐, 욕이라도 해보게?”
모짜렐라를 붙잡아 제게로 향해 저격된 총탄을 모두 막아낸 마리아는 조금 아쉽다는 표정을 지어 보였다.
“팀킬도 제법 좋은 경험이 되었을 텐데. 내 동생 실력이 70레벨 힐러를 한 번에 물 정도는 아니네.”
쨍그랑…!
은화 하나를 더 깬 마리아는 잠시 고민하다 모짜렐라에게서 지팡이를 뺏어 들었다.
“미끼 역할 좋지. 좋은데, 치즈. 그런 건 너 혼자서도 반격하고 이길 자신 있을 때나 하는 거야. 이건 압수. 나중에 찾아. 그리고 거기 서서 내가 나머지 다 처리할 때까지 구경이나 하렴.”
마리아는 모짜렐라의 지팡이를 하늘 높이 날려 보냈다. 무기를 잃은 모짜렐라는 허망하게 마리아의 뒷모습을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자, 그럼….”
마리아는 잠시 멈춰 숨을 고른 뒤 곧바로 총격 소리가 울린 곳을 찾아 달려들었다. 총소리가 났으니 희연일 것이라 예상하면서 말이다.
“응?”
그러나 마리아가 찾아낸 것은 희연이 아닌 료한이었다. 마리아는 익숙한 동생의 얼굴에 의아해하면서도 일단 은화 하나를 남겨두고 연속으로 주먹질했다.
총검 좀 달았다고 근접전을 시도해보는 료한을 비웃으며 마리아는 생각했다.
미끼 역할이 하나가 아니었나?
모짜렐라도 료한도 모두 여기 있다. 그렇다면 남은 하나는….
탕…!
료한을 방패막이로 써먹고 던진 마리아는 방심하지 않고 귀를 기울였다. 과연, 그녀가 일부러 뒤돌지 않고 동생만 바라본 보람이 있게도 다시 익숙한 총소리가 울려 퍼졌다.
탕!
마리아는 살짝 몸을 트는 것으로 나무 뒤에 숨어 공격을 피해냈다. 몸을 낮춘 상태로 그녀는 소리의 근원지를 찾아 이동했다.
그러나 그곳엔 모짜렐라만큼 눈에 띄는 하얀 신관복을 입고 있어야 할 희연이 보이지 않았다. 마리아는 일단 풀잎이 우거진 나무 위로 잽싸게 올라탔다.
탕!
사람은 보이지 않는데 총소리는 가까운 데서 들린다. 마리아는 희연이 은신 스킬을 쓰는 중이란 걸 금세 알아차렸다. 잠시 가만히 서서 주위를 훑어보던 마리아는 어렵지 않게 사람의 흔적을 발견했다.
“거기 있구나?”
다른 곳과 달리 유난히 풀잎이 짓눌린 곳이 있었다.
탕, 탕, 탕, 탕…!
마리아에게 위치를 들킨 걸 알아챈 희연은 거침없이 연사했다. 한 대만 맞춘다는 의지가 다분한 그 모습에 마리아도 주의하며 나무 밑으로 뛰어내렸다.
소리를 죽여야 모습을 숨겨주는 종류의 은신 스킬이었기에 스스로가 시끄러운 소리를 내자 희연의 모습은 점차 드러나기 시작했다.
희연은 이번에도 풀숲 무성한 나무에 바짝 붙어 있었다. 나름대로 뒤가 물리는 것을 조심한 모양이다 여기며 마리아는 저를 향해 뻗어진 총을 붙잡았다.
총과 총을 잡은 양손을 한데 모아 붙잡은 마리아는 손을 나무 위로 꽉 짓누르며 말했다.
“조언 하나 할까? 다음부턴 어쭙잖게 공격하려 들지 말고 바짝 엎드려 숨어. 그게 그나마 네가 가장 오래 사는 수야.”
마리아가 힘주어 잡은 충격으로 희연의 은화는 하나 깨졌다. 어느 정도의 강도에 깨지는 것인지 확인을 마친 마리아는 드디어 이 지긋지긋한 숲을 나갈 수 있겠구나 싶어져 기분이 좋아졌다.
“<탄환 변경>!”
그래서, 그녀는 최후의 발악이라도 하듯 구는 희연에게 조금은 관대하게 굴었다.
“왜, 아까 그 시야 교란 또 해보게? 어디 한 번 해봐.”
마리아는 희연의 손 쪽에 이마를 툭 대며 도발했다.
희연의 총구 위로 떠 오른 것은 불티가 흐르는 마법진, 화염 탄환이었다. 애초에 그녀는 그 안에 든 것이 교란의 춤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도발한 거였다.
총구가 위를 향하고 있는 이상 그녀가 맞을 일이 없다는 걸 아는 건 당연한 거였고 말이다.
탕…!
희연의 최후의 발악은 허공에 미조준된 총을 쏘는 것으로 끝났다. 그렇게 보였다.
마리아는 그 모습에 웃으려다 표정을 굳혔다.
“…….”
그런 마리아의 모습에 희연은 긴장한 것이 티가 나는 얼굴로 꿋꿋하게 입을 열었다.
“수,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말라고 했잖아요….”
“…….”
마리아는 긴말하지 않고 곧바로 시선을 사선으로 내렸다. 그녀의 옷자락에 약간의 그을음이 묻어나 있었다. 마리아는 그것을 지나쳐 조금 더 아래로 눈길을 돌렸다.
무성한 풀숲 사이에 숨겨져 있느라 미쳐 못 본 희연의 발목에는 체인이 휘감겨 있었다.
마리아는 천천히 그 체인을 따라 눈을 굴렸다. 체인은 나무둥치를 반 바퀴 감은 뒤 높다란 나뭇가지 위에 걸렸다. 그리고 기다랗게 이어진 그 끝은 마리아의 등 뒤, 낮은 풀숲이었다.
그 풀숲 아래에는 검은 천을 뒤집어쓴 맹한 얼굴의 인형이 소음기가 부착된 총을 꼭 쥐고 서 있었다. 총의 방아쇠에는 체인이 걸려 있었고 말이다.
마리아는 어렵지 않게 희연의 수작이 무엇인지 알아냈다. 보이는 그대로였기에 생각해 볼 필요도 없었다. 희연은 인형을 거치대 삼아 체인으로 방아쇠를 당겨 마리아를 저격한 것이다.
애초에 미끼는 셋이었던 것이다. 희연, 료한, 모짜렐라. 그들 셋 모두가 미끼였다.
명사수 납셨네.
마리아는 무의식적으로 그런 생각을 했다. 이딴 식으로 자신이 당했다는 게 믿기지 않아서였다.
“하…!”
마리아는 뜻 모를 웃음을 흘렸다. 확실한 것은 그녀가 내기에서 졌다는 사실이었다. 그것도 평균 레벨 71 중 42를 담당하는 희연에게 말이다.
“저….”
상처 난 자존심과 어처구니없는 감정, 흥미로움으로 웃기만 하는 마리아의 모습에 희연은 조금 겁을 먹었다.
마리아가 너무 기분 나쁜 나머지 넋 놓고 웃기만 하는 건가 싶었기 때문이다. 끝내 용기를 갖고 마리아를 불렀지만 마리아는 웃느라 희연의 부름을 듣지 못했다.
희연은 마음 같아선 편히 웃으라며 몸이라도 내빼고 싶었다. 하지만 여전히 그녀의 양손은 마리아에게 붙잡힌 채였다. 도망은 불가했다.
남은 은화의 수를 헤아려 본 희연은 이대로 마리아가 화가 나 손에 힘을 준다 해도 몇 번은 버티겠구나 싶어 잠시 이대로 있기로 결정했다.
마리아가 자신을 다시 기억해 주기를 기다리며 희연이 할 수 있는 건 그녀와 마찬가지로 웃는 마리아의 모습에 섣불리 다가오지 못하는 모짜렐라와 료한에게 자신이 내기에서 승리했음을 어필하는 것 정도였다.
사실 마리아가 무서워서 티를 못 낼 뿐이지 희연은 그녀를 이겨서 상당히 신이 나 있던 참이었다.
눈치 보면서도 이 고난을 함께한 평균 레벨 71 파티원들에게 이겼다 자랑하기 바쁜 희연의 모습에 결국 마리아도 정신을 차렸다.
자신은 레벨 42의 계략에 당했다는 점에 캐삭 해야 하는 한물간 인간인가를 고민하고 있는데, 희연은 그것도 모르고 신이 나 있으니 마리아는 기분이 조금 상했다.
오기 또한 생겼다. 절대 캐삭 안 하겠다고 말이다.
순식간에 생각이 오락가락한 마리아를 모를 희연은 앞을 보라는 모짜렐라와 료한의 손짓을 따라 고개를 돌렸다가 저를 바라보는 집요한 시선에 바짝 굳어버렸다.
“왜, 왜요…?”
“조금 고까워서.”
“…그, 저기… 그을음 자국도 남았는데…. 저희가 내기 이겼는데….”
바들바들 떨면서도 자신의 승리를 주장하는 희연의 모습에 마리아는 조금 인상을 찡그렸다.
“누가 뭐래니? 내가 승패에 굴복 안 하기라도 할까 그래?”
“조금…?”
솔직한 희연의 대답에 마리아는 코웃음을 쳤다.
“어이없어 진짜.”
마리아는 당연히, 가능하다면 승패에 굴복할 생각이 없긴 했다. 희연이 먼저 선수 쳐 말하지 않았다면 시도는 해보았을 것이다.
이미 늦어버린 일에 혀를 차며 마리아는 그제야 붙잡고 있던 희연의 손을 놔주었다. 자유를 되찾자마자 슬그머니 거리를 벌리는 희연은 마리아에게 있어 제 패배의 증거였다.
“젠장….”
패배의 쓴맛에서 쉽게 벗어나지 못하는 마리아의 모습에 희연은 조금 걱정되긴 했지만 당장은 지금의 승리를 만끽하기로 했다.
희연은 그대로 달려가 총을 질질 끌고 오던 악령이를 안아 들었다. 들뜬 마음에 악령이의 두 손을 잡고 빙글빙글 돌았다.
“우리가 이겼어!”
“이겼어!”
악령이는 발을 동동거리며 기쁨을 함께했다. 작전의 일등 공신 악령이를 잔뜩 칭찬해준 희연은 기꺼이 그녀를 믿어주고 함께 미끼 역할을 해준 이들을 찾아 고개를 돌렸다.
모짜렐라는 언제까지 그러나 지켜보는 사람처럼 서 있었고 료한은 마리아를 힐끗거리며 망설이고 있었다.
그런 그들의 머리에 장식된 은화는 각자 하나씩밖에 없었다. 그나마 그것도 마리아가 마지막 길 외롭지 않게 다 함께 보내주마 하고 배려해 주지 않았다면 진즉 깨졌을 물건이었다.
희연과 눈이 마주친 모짜렐라는 어깨만 으쓱거렸다. 그는 승리의 기쁨보다는 이 거지 같은 숲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점이 더 중요했다.
료한은 연신 닉의 눈 역할을 하는 소동물들을 찾았는데, 어지간히 마리아의 보복이 걱정되는 눈치였다. 그 모습에 뒤늦게 들뜬 기분이 가신 희연은 그제야 얌전히 서서 마리아의 입이 열리기를 기다렸다.
마리아는 제게로 향하는 세 쌍의 시선에 인상을 잔뜩 찌푸리긴 했지만, 이 내기가 정말로 끝났음을 그녀의 입으로 인정했다.
“그래, 너희가 이겼다. 됐냐!”
기어이 마리아가 제 성질을 못 이기고 나무 하나를 맨손으로 격파하긴 했지만 이미 내기도 끝난 마당이었으므로 희연은 더 이상 두려워하지 않았다. 다만 거리는 벌렸다. 그건 본능의 문제였다.
“야, 사슬 챙겨.”
슬금슬금 마리아로부터 멀어지던 희연은 모짜렐라의 말에 뒤늦게 제 사슬을 확인했다.
“아, 맞다.”
내내 방치한 바람에 사슬은 잔뜩 늘어지고 꼬인 상태였다. 희연은 급한 대로 나무 위에 걸어둔 부분부터 회수하기 위해 악령이가 들고 있던 총을 받아들여 쭉 잡아당겼다.
“어… 나뭇가지에 걸렸나 봐….”
울창한 마할라틴 숲답게 나뭇가지라고 해도 그 크기가 평범한 나무의 몸통과 비슷한 정도였다. 희연 혼자서는 사슬을 빼내는 데 어려움이 있었다.
보다 못한 모짜렐라가 도와줬지만 힘 스텟으로 할 말이 없는 건 그 역시도 마찬가지였기에, 그저 사슬에 두 사람이 매달린 꼴만 되었다.
그 모습을 보며 마리아는 정말로 자신이 저 애들에게 진 건가 싶어져 조금 괴로워졌다.
***
메우메우의 안내를 받으며 숲에서 나왔을 때, 희연은 익숙한 얼굴을 발견하자마자 망설이지 않고 곧바로 달려 나갔다.
“킹 님!”
“아, 오리 님.”
백희준과 무언가 이야기를 주고받고 있던 킹스메이커는 저를 부르는 희연의 목소리에 가벼운 웃음을 지으며 뒤돌았다. 희연은 들뜬 기색을 감추지 못한 목소리로 킹스메이커에게 자랑했다.
“내기 이겼어요!”
“잘 보고 있었어요. 우리 오리 님, 배운 것도 잘 써먹고….”
“그쵸!”
“많이 기쁜가 보네요?”
평소와는 다른 희연의 반응에 킹스메이커는 아주 조금, 당황했다. 그녀가 생각했던 것보다 희연이 마리아를 이긴 것을 너무 좋아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의외라 생각하긴 했지만 킹스메이커는 이런 식으로 성장 방향을 제시해 나가는 것도 나쁘지 않겠구나 하는 결론을 내렸다.
뉴비 없지와 손잡고 방방 뛰는 희연만큼은 아니었지만 평균 레벨 71 모두 이 내기의 승리를 충분히 기뻐하고 만끽하고 있었다.
모짜렐라는 조용히 혼자 승리의 기쁨을 되새기고 있었고 료한은 백희준의 칭찬을 즐겼다. 숲에서 나온 사람 중 웃지 않는 건 내기에서 진 마리아뿐이었다.
킹스메이커는 조금 더 희연을 구경하다 뚱한 표정을 짓고 있던 마리아에게로 갔다. 마리아는 킹스메이커를 보자마자 고개를 홱 돌려 지금은 별로 이야기하고 싶지 않다는 뜻을 전했다.
“진 게 분해?”
물론 킹스메이커는 알면서도 상대의 뜻을 따라주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