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8화
고민하다가도 금세 좋아라 하는 희연을 보며 킹스메이커는 역시 운영을 거지같이 해도 귀여운 게 끼어 있으면 어떻게든 돌아가는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보기 좋은 떡이 맛도 좋다는 말이 있긴 하지만, 그 말이 이 자리에서까지 통하는 건 아니었다.
희연이 충분히 즐길 때까지 기다려 준 킹스메이커는 그녀가 닉에게 매달린 고양이를 만져보려 시도할 때쯤 주의를 주었다. 혹여나 고양이에게 마음을 뺏긴 희연이 편지를 고양이에게 맡길까 걱정이 되었던 것이다.
“오리 님, 편지는 새한테만 맡기는 게 좋아요.”
“네? 왜요?”
고양이나 강아지, 다람쥐가 전해주는 편지를 몹시도 기대했던 희연은 킹스메이커의 말에 이유를 아직 듣지 않았음에도 실망한 기색을 보였다.
그러나 이어지는 킹스메이커의 말에는 묘한 눈빛으로 고양이를 돌아볼 수밖에 없었다.
“고양이한테 편지를 맡겼다간 분실될 확률이 98%거든요.”
“…?”
편지 분실이 있다는 점만으로도 희연은 황당했다. 하지만 이어 편지 받기를 기대하면 안 될 것 같은 고양이의 분실 확률에 놀라 앞의 것은 잊고 말았다. 98%면 애초에 편지를 전달해 줄 생각이 아예 없는 수준이었다.
닉에게 엉겨 붙은 앙증맞은 고양이를 전과 다른 눈으로 보는 희연에게 킹스메이커는 자세한 설명을 들려주었다.
“참고로 강아지는 60%, 다람쥐는 50%.”
“…….”
“장난으로 하는 말이 아니라 진짜예요. 그래서 정말로 중요한 걸 우편으로 보낼 때는 인편, 그러니까 NPC를 고르거나 새를 골라야 하는 거고요.”
NPC는 우편 외에 말을 전달할 수 있지만 그 대신 여행 경비를 챙겨줘야 한다는 추가적인 설명을 멍하니 듣던 희연은 무릎을 코끝으로 툭툭 치는 느낌에 고개를 숙였다.
꼬리를 살랑대는 강아지가 같이 놀자고 눈을 빛내고 있었다.
“…그러면 얘네들은 왜 여기 있는 거예요?”
“기분 좋으라고?”
“그렇구나….”
확실히 귀여워서 기분이 좋아지기는 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상하지만 나름대로 납득하려던 희연을 깨운 것은 대화를 지켜보고 있던 모짜렐라였다.
“넌 그 말을 믿어?”
“믿지는 않지….”
“애초에 우편 배달하는 게 일인 애들이 왜 분실을 하냐고! 그것부터가 이상하잖아!”
모짜렐라의 지적에 희연은 킹스메이커를 힐끔 바라보았다. 그녀는 어깨를 으쓱이더니 의외로 상세한 이유를 알려주었다.
“고양이는 배달시키면 자기 가고 싶은 데서 놀다 오는 경우가 많거든요. 그래서 분실도 잦고, 애초에 가기 싫으면 출발을 안 하니 배송 시작이 안 되기도 하고요.”
“아.”
“다람쥐는 배달하러 가는 길에 도토리 까먹다 정작 챙겨야 하는 호두 껍데기를 잃어버리고, 마지막으로 강아지는… 이런 식인 거죠.”
킹스메이커는 희연과 닉의 사이에서 이리저리 폴짝이고 있는 강아지를 가리켰다. 강아지의 목에는 붉은색 가방이 걸려 있었다.
“봐요. 편지 배달 안 가고 사람이랑 눈 마주치면 놀아달라고 하잖아요.”
“…….”
강아지는 놀아 달라 재촉하다 타깃을 뉴비 없지로 바꾸었다. 뉴비 없지는 기꺼이 두 팔을 활짝 벌렸다. 서로 좋다 얼싸안는 둘을 가리키며 킹스메이커는 부가적인 설명을 들려주었다.
“이러다가 괜한 사람 손에 편지가 들어간 적도 있어요 옛날엔. 그렇지?”
킹스메이커는 꽤나 게임을 오래 한 이들에게 동의를 구했다. 현재 본인도 강아지의 우편배달을 열심히 방해하는 입장이면서 뉴비 없지는 격렬하게 긍정했다.
마리아나 이세인도 그리 다른 반응은 아니었다. 희연이 보기에도 편지를 빼돌리는 건 상당히 쉬워 보이기는 했다.
지금도 뉴비 없지와 뒹구는 강아지 외 다른 강아지들도 닉에게 놀자며 가까이 접근한 상태였다. 테이머 특성 때문으로 보였는데, 만일 닉이 나쁜 마음만 먹는다면 순식간에 몇십 개가 넘는 우편을 빼앗을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런 희연의 생각이 사실이라는 것은 이세인이 들려준 이야기로 증명되었다.
“옛날에는 일부러 길드 내 테이머 부캐를 여럿 만들어 편지를 갈취하는 일도 잦았어.”
“와….”
“우리가 그랬다는 건 아니고. 그런 길드가 많았다는 뜻이니까 그런 눈으로 보지 말아줄래, 희연아?”
“네에….”
가끔가다 옛적의 이야기를 들을 때면 희연은 그 시절은 참 꿈도 희망도 없던 시절이구나 하는 생각을 하곤 했다. 솔직히 말해 희연은 그 많은 문제점을 다 껴안고 있었으면서 아직까지도 게임이 망하지 않은 점이 신기했다.
아무리 고쳐 나갔다곤 해도 불합리한 구석이 한두 개가 아니었는데 아직까지도 가장 사랑받는 게임이라는 점이 그녀는 때때로 놀라웠다.
희연은 편지 갈취도 가능하다는 등의 그런 문제가 있었음에도 게임이 섭종 안 했냐는 말을 최대한 돌려서 말했고, 깜짝 놀란 뉴비 없지는 서둘러 말문을 열었다.
“아니에요 오리 님! 그래도 지금은 그 부분 다 패치됐어요!”
“그러면 이제 편지는 못 뺏는 거예요?”
“그건 아니지만….”
“?”
정말 어떻게 아직까지 게임이 운영되는 거지? 대놓고 그런 의미가 담긴 표정을 짓는 희연의 모습에 멋쩍어하던 것도 잠시, 뉴비 없지는 긍정의 에너지가 넘칠 것 같은 표정을 지어 보였다.
“대신, 이젠 수신인 아닌 사람이 우편 열면 폭발합니다!”
“…그래요?”
그것참 화끈한 해결법이었다. 희연은 어쨌든 악용 가능성을 배제시킨 패치라는 점은 인정했다.
“그건 왜 말 안 해줘? 폭발하면서 우편 내용물까지 같이 날아가잖아.”
“쉿, 조용히 하자 마리아.”
킹스메이커에게 제지당한 마리아처럼 잠시간 침묵을 지키던 희연은 동물들에게서 눈을 떼고 이야기했다.
“…전 그냥 추가금 내고 사람 고용하는 거로 할게요.”
“주문서만 넣는 거고, 도박이도 도시 내에 있을 텐데. 사람보단 새한테 우편 맡기는 게 비용적인 측면도 그렇고 효율도 더 나아요 오리 님.”
“비용보다는 다른 게 더 신경 쓰여서요….”
씁쓸한 얼굴로 대답하는 희연의 모습에 킹스메이커는 왜 괜한 말을 했냐며 마리아를 조금 타박했다. 마리아는 들은 척도 하지 않았다.
쯧, 혀를 찬 킹스메이커는 다시 친절한 미소를 지어 보이며 희연에게 설명해 주었다.
“마리아의 말 때문에 오해의 소지가 다분하지만, 오리 님. 새는 믿어도 돼요.”
“그렇구나….”
“정말인데. 새 같은 경우엔 ‘훈련이 무척이나 잘 되어 있는 전령조’, 이런 컨셉을 갖고 있거든요. 그래서 안전해요.”
성의 없이 대답만 잘하던 희연은 부가적인 설명에 궁금증이 일어 고개를 바로 했다. 전령조라는 말을 듣고 보니 또랑또랑한 모습을 보여주는 새들이 다른 동물들과 조금 다르게 보였다.
편지를 받고서도 딴짓하기 바쁜 다른 동물들과 달리 새들은 곧바로 밖으로 날아갔다. 전령조라는 호칭이 잘 어울리는 모습이었다.
킹스메이커의 말이 사실임을 인정하면서 희연은 동시에 의문이 들었다.
“그런데 왜 새만 그런 거예요?”
“그거야 여기 있는 전령조들은 원래 모두 전쟁 때 쓰였던 애들이니까요.”
예상 못 한 이야기였다. 희연은 멍하니 킹스메이커의 말에 집중했다.
“에빌론의 전쟁, 그건 이 도시가 만들어진 기본 배경이라 여러 퀘스트에서 그 흔적을 볼 수 있잖아요. 당연히 이런 식으로도 그 흔적이 남는 거죠.”
“…….”
“초기의 에빌론은 정말 아무것도 없어서 우리가 자제를 옮기고 건물도 만들고 성벽도 쌓고 해야 할 정도였어요. 그때 만들려고 한 것 중 하나가 동물 보호소였죠.”
전쟁이 끝나고 많은 것이 남았고, 그것들 중 다수는 전쟁 외에는 별로 효용성이 없는 것들이었다. 그중엔 전령조들도 있었다. 비단 전령조뿐만이 아니라 그 외에도 터전을 잃고 떠도는 동물들이 무척이나 많았다.
사람 탓에 터전을 잃었으니 사람이 책임을 져야 했다. 그러나 작은 마을 에빌론에선 그 동물들을 돌볼 형편이 되지 못했다. 사람이 사람을 돌보기에도 바빴기 때문이었다.
그러니 돈을 벌어들일 수단 하나 없는 마을에서 책임감만으로 동물 보호소를 만든들 그것이 제대로 돌아갈 리가 없었다. 그 사실을 아는 건 비단 유저뿐만이 아니었다.
“그걸 반대한 게 바로 에빌론에서 유배당한 귀족, 지금의 행정지구 직원들이었죠. 귀족이라 배운 게 있는 만큼, 죄책감만으로 만들어진 보호소가 제대로 돌아가지 않으리라는 것도 제대로 알고 있었거든요.”
행정지구 직원들은 이방인들, 즉 유저들에게 자문했다. 머나먼 곳에서 왔기에 이곳과는 다른 다양한 것을 보고 들으며 살아온 그들에게 가장 나은 해결책을 함께 고민해달라고 하였다.
“여러 의견이 나왔어요. 채택되는 의견 제시자에겐 제법 후한 보상이 돌아갔거든요. 그중 가장 큰 보상을 건 게 오리 님도 아는 레이였어요.”
“어떤 보상을 걸었는데요?”
“그 당시면 모두가 공평하게 초보자였던 시절이었죠. 그리고 레이가 내건 건 초보자 마을에선 절대 구하지 못할 물건이었고요.”
유배당한 귀족의 소지품이었다. 변변치 않은 것들뿐이었고, 그래야만 했다. 그러니 당시 레이는 자신이 내놓을 수 있는 가장 큰 것을 내놓은 거였다.
“그래서인지 실용적인 의견도 제법 됐죠. 그중 채택된 게 바로 전령조를 이용한 우체국을 만드는 거였어요. 우체국을 이용하는 유저들에게서 돈을 벌어들이고 그 돈으로 우체국을 운영하면서 동물들을 돌보는 식으로요.”
“그러면 여기 있는 다른 동물들은….”
“우체국에 사는 애들이라 우편배달부라고 같이 불리는 거죠. 나름 훈련도 해서 아주 가끔 우편배달에 성공하기도 하고요.”
“그랬구나….”
애틋한 눈빛으로 동물들을 바라보는 희연과 모짜렐라의 모습을 보며 킹스메이커는 조금 고민했다. 아직 뒷이야기가 남았던 것이다.
희연에게 들려준 이야기는 킹스메이커가 초보 마법사 지팡이를 들던 시절의 이야기였다. 무척이나 오래된 이야기라는 뜻이었다.
그 당시 지금의 희연과 모짜렐라처럼 애틋한 눈빛을 하고 동물들을 보던 이들도 이제는 우편배달부로서 조금은 실용적이게 패치해도 되지 않냐 건의를 넣을 정도의 시간이었다.
그러나 이런 이야기는 조금 슬프고 여운이 남게 끝내도 되었다. 킹스메이커는 역시 말하지 말자 결정했지만 마리아의 입은 자유분방했다.
“옛날에 얘네 보고 울던 애들 이젠 얘네 제대로 배달 좀 하게 패치 좀 하라고 게시판에서 울지 않나?”
“마리아….”
“왜?”
킹스메이커는 조용히 한숨만 내쉬었다. 이미 마리아의 말에 희연과 모짜렐라, 덩달아 뉴비 없지까지 눈물이 쏙 들어간 것 같은 얼굴을 하고 있었다.
이렇게 된 거 그냥 제대로 마무리하자 싶어 킹스메이커는 굳이 이야기하지 않았던 사실까지 희연에게 들려주었다.
“얘네 패치될 일은 없어요. 유저 관련은 패치하기 쉽지만 그 외에는 건들기 쉽지 않은 구조거든요.”
“아, 네에….”
이미 감정이 사그라들어서인지 희연은 그쪽으론 영 관심 없다는 태도를 보였다. 킹스메이커는 조금 아쉬움을 느꼈다.
“왜요?”
“응?”
그리고, 킹스메이커가 그 아쉬움을 곱씹어 볼 틈도 주지 않고 모짜렐라가 그 이유를 물었다. 킹스메이커는 까칠하던 마리아의 길드원이 제게 말을 걸었음에 아주 잠시 흥미로움을 느꼈다.
“글쎄요?”
하지만 그녀의 친절함은 한정되어 있었고, 애초에 그녀는 굳이 남의 집 뉴비에게까지 친절을 발휘해야 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다.
그러나 모짜렐라는 그런 킹스메이커의 반응에 전혀 개의치 않았다. 도리어 희연을 재촉함으로써 킹스메이커가 누구에게 약한지 아주 잘 안다는 태도를 보여주었다.
킹스메이커는 이것 봐라, 하는 생각을 하며 일단은 친절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희연이 그녀를 보았기 때문이었다.
“궁금해요 오리 님?”
“조금…?”
“그럼 알려줘야죠 당연히.”
모짜렐라가 물어볼 때는 귀찮아서 대충 넘겼던 것뿐이지 막상 설명하고자 하면 별 내용 없는 이야기였다.
메르헨 호라이즌이 수없이 많은 불합리한 점과 거지 같은 운영, 창의성 없는 반복 이벤트에도 불구하고 사랑받는 가장 큰 이유를 설명하기 좋은 단어는 섬세함이었다.
스토리, 주민들, 상호관계. 나비 효과라고도 볼 수 있는 이방인들이 쌓아가는 이야기의 결실. 때때로 내가 행한 행위가 어떤 식으로라도 돌아오는 것을 볼 때면 많은 이들은 매료되었다.
가장 큰 장점을 망칠 수는 없는 노릇이니 게임사에선 최대한 이 세계에 간섭하지 않고자 하였다.
“물론 필요할 때는 나서기는 하지만 가능한 현실이랑은 분리시켜서 진행하려고 해요. 예시를 들자면 파드의 말랑소?”
“말랑소요?”
“프로그램을 건드려서 파드 옆에 말랑소를 붙인 게 아니라 GM 당근이 아기 소를 파드한테 데려다준 거거든요. 최대한 그런 식으로 노력하는 편이죠. 솔직히 소 한 마리 정도는 그냥 패치로 해결해도 되지 않나 싶기는 하지만요.”
킹스메이커는 실용성 없다 말했지만 희연에게는 신기하기만 했다. 계기가 어찌 됐든 희연이 좋아하는 것 같자 킹스메이커도 나름 기분이 좋아졌다.
정작 이 이야기를 꺼내게 한 장본인 모짜렐라는 싱겁다는 반응을 보였지만 말이다.
“아, 물론 예외는 있어요. 게임사 쪽에서 나서지 않으면 안 될 정도의 오류가 나는 경우요. 아무래도 흔한 경우는 아니지만요.”
“오류요?”
“하지만 이건 나중에 알아야 재미있을 테니까 비밀이에요.”
잔뜩 궁금하게 만들었으면서 킹스메이커는 짓궂게 웃기만 했다.
뉴비 없지라도 꼬셔서 알아낼까, 아니면 말해 줄 때까지 기다릴까 고민하던 희연에게 킹스메이커는 이곳에 온 이유를 상기함으로써 이 이야기는 여기까지라 선을 그었다.
“그러면 이제 주문서를 작성해 볼까요. 오리 님? 볼일 빨리 해결하고 던전 돌러 가야죠!”
“네에….”
솔직히 말해 희연은 킹스메이커가 말을 돌리는 이유가 정말로 나중의 재미를 위해서인지 아니면 던전 때문인지 헷갈렸다. 일단, 후자의 이유가 더 커 보이긴 했다.
킹스메이커의 기대만큼이나 희연은 새로운 던전이 걱정되긴 했지만 어떻게든 될 것이라 믿으며 편지를 작성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