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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비세스 메이커 (211)화 (211/251)

211화

“어… 오리 님 친구분?”

뉴비 없지는 무척이나 당혹스럽다는 얼굴로 모짜렐라를 불렀지만, 모짜렐라는 대꾸 없이 빠른 속도로 다시 내려갈 뿐이었다. 땅을 짚고 선 그의 다리는 덜덜 떨리고 있었다.

그 모습을 멀뚱멀뚱 바라보던 희연은 일단 총을 들어 제 발목을 붙잡은 손을 때려서 치워냈다.

몬스터가 아닌 무덤가라는 이곳 지역의 특징, 혹은 깜작 이벤트 같은 것이었는지 아쉽게도 경험치를 준다거나 하지는 않았다.

갑작스럽게 붙잡히는 바람에 놀라긴 했지만, 자세히 본 흙투성이 손은 조금 조잡한 구석이 있었기에 희연은 모짜렐라처럼 덜덜 떨지는 않았다.

축 처진 손을 들어 자세히 훑어보기까지 하는 희연의 모습을 보며 킹스메이커는 상당히 의외라는 생각을 했다. 그녀가 기억하는 희연과의 첫 만남은 정체불명 몬스터에게 쫓기며 덜덜 떨던 퍽 불쌍한 모습이었기 때문이었다.

“오리 님은 이런 거 안 무서워요?”

“네? 별로…. 계속 살아서 움직였으면 무서웠을 것 같긴 한데 이건 조금, 너무 가짜 같아서….”

“퀄리티가 부족하면 안 무섭다는 거네요?”

희연이 무섭다며 도망이라도 가면 어쩌나 이곳으로 오는 내내 내심 걱정했던 킹스메이커는 다행이라 생각하다 모짜렐라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녀가 우려하던 상황은 다른 쪽에서 벌어지는 중이었다.

“치즈. 이게 무서워? 이게?”

“안 무섭거든요? 그냥 싫은 거라고 몇 번을 말해요!”

“누가 봐도 무서워하고 있는 것 같은데?”

“아니라고!”

마리아가 알아서 하겠지 싶어 킹스메이커는 다시 희연에게 고개를 돌렸다.

“설명해 주려 했는데 먼저 봤네요.”

“이거요?”

축 처진 손을 흔들거리는 희연에게 고개를 끄덕이며 킹스메이커는 손을 내밀었다. 희연에게서 조잡한 몬스터 손을 받아 든 그녀는 곧바로 그것을 멀리 내던졌다.

“말했죠? 요정의 무덤은 인기가 없다고. 이런 것만 봐도 그 이유를 알 수가 있죠. 쉼터도 없고, 이런 쓸모없는 이벤트나 있고. 여기 오는 애들 중에 훌륭한 인품을 기대할 수 있는 애도 없고.”

“단점투성이네요….”

“하지만! 이런 곳이라 할지라도 장점은 있어요. 다른 어느 곳보다도 여기가 힐러에게 유리한 던전이라는 거예요.”

몬스터의 기본 속성이 언데드, 악인 이곳은 그에 상응하는 어둠 저항이 기본 패시브인 신관에게 더없이 좋은 사냥터였다. 물론 성기사에게도 말이다.

“물론 여기서 힐러는 암묵적으로 힐만 하지 말고 딜도 하라는 규칙이 있긴 하지만요. 그래서 보통 이곳에서 파티를 하면 힐러를 셋 정도 데리고 가는 일이 잦아요. 메인 힐러, 서브 힐러. 그리고 딜힐 포지션까지 해서요.”

“메인 힐러도 공격해야 한다는 거죠?”

“맞아요. 그리고 오리 님은 전형적인 서브 힐러 아니면 딜힐 포지션이죠. 여기 이 친구는 메인 힐러고요. 하지만 하던 것만 하면 솔직히 훈련이라고 할 수 없겠죠?”

마치 모짜렐라를 제치고 메인 힐러 자리를 잡으라고 하는 것 같은 말에 희연은 서둘러 입을 열었다.

“하, 하던 거라도 일단 제대로 익혀야 하지 않을까요…?”

“물론 지금은 그렇죠. 일단 1트는 익숙한 방식으로 할 거니까 걱정 안 해도 돼요.”

걱정된다. 희연은 한숨을 내쉬다 모짜렐라 쪽을 힐끔 쳐다보았다.

여기 오기 전까지만 해도 더없이 믿음직했던 그녀의 친구는 아직까지도 요리조리 주변을 훑으며 무언가 새로운 게 나오지는 않을까 경계하고 있었다.

던전 안으로 들어서면 믿을 구석은 모짜렐라밖에 없으리라 생각한 희연에겐 낭패였다. 앞으로 나올 몬스터도 발목을 붙잡은 손 같은 유령과 공포 같은 테마일 텐데 모짜렐라가 겁이 많았다.

지금까지 봐 온 몬스터처럼 유령 테마라도 귀여울 거라 믿었던 희연은 조금 전에 보았던 조잡한 손을 떠올리고는 고개를 저었다. 손만 봐도 안 귀엽다는 걸 알 수 있었다.

던전의 몬스터가 어느 정도로 무섭게 생겼을까 생각해 보던 희연은 게임을 한 첫날 보았던 나뭇잎 몬스터를 떠올렸다. 그녀가 지금껏 본 것 중에 가장 무서웠던 몬스터였기 때문이었다.

만약에 그런 거라도 나오면 모짜렐라는 정말 기절할지도 몰랐다. 메인 힐러의 기절이라는 끔찍한 상상을 한 희연은 질색하며 킹스메이커에게 먼저 확인을 해보았다.

“여기 몬스터는 어떻게 생겼어요?”

희연은 제발 귀엽다고 말해 주기를 바랐다.

“몬스터요? 대체로 귀엽지는 않지만 멋은 있죠.”

“멋… 이요?”

멋진 몬스터라는 것이 희연은 영 상상이 가지 않았다. 그나마 희연이 상대해 본 적 중 귀여운 구석 하나 없고 멋있는 쪽이라 할 만한 건 악마 자미엘 정도였다.

설마 여기서 그런 악마가 나오는 건가 싶어 오묘한 표정을 짓는 희연의 모습에 킹스메이커가 손을 들어 뉴비 없지를 가리켰다.

“이런 느낌이죠.”

“없지 없지!”

진즉 희연의 이해를 돕기 위해 투구를 꺼내 쓴 뉴비 없지는 나름의 멋스러운 포즈를 취하는 친절도 보여주었다.

평소와 똑같은 갑옷 차림이었지만 화려한 투구 하나를 쓴 것만으로도 그에게선 진중한 분위기가 흘렀다. 얼굴이 안 보여서 그런 듯했다.

비록 행동은 조금 장난스러웠지만 망토와 함께 흔들리는 투구의 긴 술 장식은 그를 멋있고 강한 몬스터처럼 보이게 만들었다.

“기사 몬스터가 나오는 거예요?”

“기사도 나오고, 다른 것들도 나오죠.”

저 정도면 모짜렐라가 무섭다며 도망가는 일은 없을 것 같아 희연은 안도했다. 만약 모짜렐라가 희연의 이러한 생각을 알았더라면 지금 누굴 겁쟁이로 보는 거냐며 버럭 소리를 질렀을 것이다.

희연도 그 사실을 알았기에 구태여 모짜렐라에게 참 잘 됐다, 같은 기운을 북돋을 말은 하지 않았다.

“아, 그런데 목이 잘린 상태로 등장하는 몬스터도 있긴 해요.”

“…….”

“성인 모드 아니면 그렇게 잔인하게 보이지는 않으니까 괜찮아요.”

“그래요…?”

희연은 다행이라 생각했다. 물론 모짜렐라가 성인 모드가 아니어야 한다는 전제 조건이 있기야 했지만 그 정도는 무서운 거 싫은 그가 알아서 했으리라 믿었다.

큰 문제를 해결한 희연은 한결 짐을 덜었다는 표정을 지어 보였고, 킹스메이커는 잘 됐다 호응해준 뒤 다시 설명을 이어 나갔다.

이곳은 쉼터가 없었고 그에 따라 친절한 설명이 기재된 표지판 또한 없었기에 킹스메이커의 설명은 평소보다도 친절했고 자세했다.

“던전 출입 조건은 레벨 25 이상, 파티의 최대 인원수는 9명이에요.”

“서문 쪽 던전이랑 같네요?”

이쯤 되는 레벨대의 던전은 모두 조건이 비슷하구나 하는 생각을 하며 희연은 고개를 끄덕였다.

“최대 인원이 아홉이지만 여기는 구성원을 성기사랑 신관으로 도배하면 꼭 그 인원 다 안 맞춰도 된다는 점이 장점이라면 장점이에요.”

“어둠 저항 스킬 때문이죠?”

“맞아요. 여기서 신전 직업은 공격력이 기본 두 배 적용이니까요.”

공격력 두 배라는 말에 희연은 눈을 빛냈다. 기대하는 바가 명확한 그 모습에 킹스메이커는 조금 웃었다. 그렇게 마음대로 일이 돌아가지 않으리라는 걸 아직 잘 몰라 보이는 반응이 그녀의 눈에는 마냥 귀여웠다.

속으로 심심한 위로를 보내며 킹스메이커는 마저 설명했다.

“그리고 이번 파티에는 이세인이랑 마리아만 같이 들어갈 거예요.”

“…와아.”

하필 그 둘을 붙이다니. 희연은 킹스메이커의 선택에 표정을 관리하지 못했다.

“여기는 파티원 내 레벨 편차가 40 이상 차이가 나면 안 되는데, 저 둘은 가르치는 입장이라 편법을 써먹을 수 있어요. 하지만 나나 없지, 길마님은 엄연히 파티의 딜러, 탱커, 서포터 역할이잖아요. 안 돼요, 안 돼.”

단호한 말에 희연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애초에 편법이 있단 걸 알기 전에도 파티원 내 레벨 편차가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기에 포기는 빨랐다.

그런 희연에게 마리아는 어깨동무를 걸더니 진정한 힐러로 만들어주겠다는 말을 했다. 희연은 마리아의 야심 찬 말에 대꾸하지 않고 고개만 돌렸다.

그러다 이세인을 보게 되었는데, 그는 잔잔히 웃고만 있었다. 그래서 희연은 이쪽도 그리 다른 생각을 하는 건 아니구나 하는 사실만 깨닫게 되었다.

애써 현실을 외면하고픈 희연에게 킹스메이커는 흘려들을 수 없는 이야기를 했다.

“주의해야 할 점은 역시 여기 있는 애들 중에 인성에 문제 있는 애들이 많다는 건데… 이것도 사실 나쁘지만은 않아요.”

“어느 점에서요…?”

“서로 예의를 차리지 않아도 된다는 상황은 생각보다 유용하거든요. 잘만 써먹으면요.”

“그렇구나….”

그러한 상황에서 킹스메이커는 도대체 무슨 짓을 저질렀던 걸까?

어쩔 수 없는 호기심이 생기긴 했지만 어느새 투구를 벗은 뉴비 없지의 얼굴이 희게 질려가는 것을 보고는 희연은 궁금해하지 않기로 하였다.

다만 함무라비 길드와 비슷한 내용일 것 같단 것쯤은 예상할 수 있었다.

옛 함무라비 길드의 길드장 킹스메이커는 대략 중요한 내용은 다 들려주었다 생각했는지 그제야 던전으로 진입하는 방법에 대한 것을 일러주었다.

쉼터도 없어 사람을 찾기 힘든 안개 자욱한 이 묘지에서 어떻게 파티를 맺고 던전에 입장해야 하나 걱정하던 희연에게는 상당히 중요한 정보였다.

“아까 오리 님 발을 붙잡은 손이 나온 비석의 옆을 보면 등불이 하나 있을 거예요.”

“이거요?”

킹스메이커의 말대로, 낡은 등불 하나가 비석 옆에 놓여 있었다.

그것을 들어 올리자 녹슨 걸쇠에서 듣기 싫은 소리가 났는데, 마치 누군가의 울음소리 같기도 해 희연은 걱정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모짜렐라를 돌아보아야 했다. 모짜렐라는 그 시선에 조금 찌푸린 표정을 지었다.

“이 비석 주위에 굴러다니는 건 전부 부싯돌이에요. 이걸로 이 안에 불을 붙여주면 던전으로 가는 길을 안내받을 수 있죠.”

“처음 하는 사람은 엄청 헤매는 구조네요?”

“아. 사실 선행 퀘스트 하면서 얻어야 하는 정보예요.”

건너뛰어서 희연이 몰랐던 거지 그리 불친절한 구조는 아니라는 뜻이었다. 조금 멋쩍어하던 희연은 일단 등불을 다시 내려놓은 뒤 부싯돌 두어 개를 집어 들었다.

낡은 등불의 깨진 유리막 안에는 심지가 짧은 촛대 하나가 꽂혀 있었다. 조금은 어설픈 손짓으로 불을 붙인 희연은 기대하는 눈빛으로 등불을 바라보았다.

“어?”

희연은 자신이 잘못 본 건가 싶어 등불을 좀 더 얼굴에 가까이 가져왔다. 안개의 서늘함을 물리치기엔 너무나 작은 불빛을 품은 초가 조금씩이지만 움직이고 있었다.

흘러내리는 촛농이 둥글게 뭉치더니 두 눈이 되었고 입이 되었다. 안 그래도 울퉁불퉁 모양이 고르지 못했던 몸통은 녹으며 더욱 자유분방해지더니 양쪽으로 손 비슷한 것을 내밀었다.

작은 불꽃과 함께 살아난 작은 초가 동그란 눈으로 희연을 올려다보았다.

예상하지 못한 변화에 희연은 깜짝 놀라 눈을 크게 떴다.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꼼지락거리는 초는 무척이나 귀여웠다.

“귀엽다….”

꼬물거리는 초를 신기해하던 것도 잠시, 희연은 이어지는 초의 반응에 당혹스러움을 느꼈다.

“으앙….”

갑작스럽게도 작은 초가 엉엉 울기 시작한 것이다. 똑똑 떨어지는 촛농 눈물을 보며 희연은 저러다 다 녹아서 사라지는 게 아닌가 싶어 걱정이 되었다.

희연의 눈에는 머리에 붙은 불이 그것을 재촉하는 것처럼 보였다.

“불이라도 꺼줘야 하나?”

“그러면 이 초는 죽어요 오리 님.”

“아….”

하마터면 큰일 낼 뻔한 희연은 얌전히 등불을 내려놓았다. 뭣 모를 때는 차라리 가만히 있는 게 낫겠다는 판단을 내린 것이다.

그런 희연의 행동이 옳다는 듯 울기만 하던 작은 초가 다른 반응을 보이기 시작했다. 작은 초는 깨진 유리막 안에서 조심히 나오더니 어딘가를 향해 달려 나가기 시작했다.

크기가 크기인 만큼 속도는 느렸고 안개의 습기를 머금어 축축한 흙에는 촛농 자국이 남았다. 설령 놓친다 해도 그 자국을 쫓아가면 된다는 걸 알 수 있었다.

“느린데.”

물론 단점은 느리다는 거였다.

모짜렐라의 말을 들은 것인지 작은 초는 깜짝 놀란 표정을 지으며 뒤를 돌아보았다. 눈에서 떨어지는 촛농이 점차 많아지는가 싶더니 작은 초는 몸을 옆으로 뉘고는 굴러가기 시작했다.

“으아아앙….”

작고 가냘픈 울음소리가 점차 멀어지는 것을 느끼며 희연은 모짜렐라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뭐. 왜. 내가 뭐!”

“난 아무 말도 안 했는데….”

“눈으로 욕하고 있잖아!”

물론 참 매정하구나 하는 생각을 하긴 했다. 고개를 바로 한 희연의 귀에는 때마침 킹스메이커와 마리아의 대화가 들렸다.

“재촉하는 법을 아는 친구네?”

“훌륭한 힐러의 자질이지.”

두 사람의 태평한 대화를 통해 이게 틀린 방법이 아니라는 게 증명되긴 했지만 대신 모짜렐라의 인성은 시험대에 올랐다.

“오리 님 친구분, 차가워라….”

뉴비 없지는 놀리는 것인지 진심인 건지 알 수 없는 반응을 보였고 귀여운 것을 좋아하는 닉도 그리 긍정적인 반응은 아니었다.

절정은 이세인이었다.

“굳이 울려야 할 필요는 없었는데.”

존경하는 대상의 일침은 확실히 원래가 성격 나쁜 두 사람의 말보다 효과가 좋았는지 모짜렐라의 얼굴은 일그러지기 시작했다.

물론 희연은 누가 누굴 비난하나 하는 생각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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