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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비세스 메이커 (216)화 (216/251)

216화

마리아의 반응에 어색하게 웃으며 희연은 슬쩍 고개를 돌렸다.

마리아에게 말한 이유가 거짓말은 아니었다. 물론, 정말로 그게 이유의 전부도 아니었고 말이다.

애초에 남의 머리에 총 들이밀고 힐 하는 입장인 희연이 새삼스레 채찍질 좀 한다고 그걸 이상하게 여길 리가 없었다.

희연이 편술을 배우는 걸 망설인 이유는 도저히 킹스메이커처럼 할 자신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잘 못할 것을 아는데 킹스메이커도 그렇고 뉴비 없지도 그렇고 너무 기대를 했다.

그 기대가 꺾일 게 뻔한데 괜한 데에 두 사람이 힘 빼고 신경 쓰는 게 미안했다.

어설프게 시작이라도 하면 두 사람은 지원을 아끼지 않을 것이고 기꺼이 허수아비 역할도 해주리란 걸 잘 알아서, 그래서 희연은 더더욱 시작을 망설였다.

결국 이런저런 이유로 채찍을 배우게 되긴 했지만 말이다. 희연은 씁쓸한 웃음을 짓다 이어지는 마리아의 말에 한숨을 삼켰다.

“신관이 부두 인형 들고 다니는 건 괜찮은가 보지?”

마리아는 희연의 말을 저격으로 받아들인 게 분명했다. 그렇지 않고서야 이런 식으로 대응할 리가 없었다.

“그거는….”

하지만 그에 대해서는 할 말이 없었으므로 희연은 말끝을 흐렸다. 이겼다고 생각했는지 마리아는 금세 기분이 좋아졌고, 놀리는 건지 진심인지 알 수 없는 충고를 했다.

“여긴 악령 없으니까 수집하려면 다른 곳 가렴.”

“악령 수집하는 거 취미 아닌데요….”

“그래? 아님 말고.”

어깨를 으쓱인 마리아는 볼일 다 봤다는 듯 모짜렐라에게로 가 버렸다. 그 뒷모습을 바라보며 희연은 어쩌면 저런 성격은 조금 부러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다.

“잘해야 될 텐데….”

악령이를 꼭 끌어안으며 희연은 부디 이번 파티는 평화롭게 끝나기를 바랐다.

“나를 경배하러 온 것인가 신의 종이여!”

“…너, 나 누군지 안 뒤에도 그런 말 할 수 있는지 보자.”

마리아가 네크로맨서에게 경고하는 것을 보며, 더더욱 정말로 바랐다.

***

[차일드 롤랜드와 두 형이 공놀이를 하고 있었네. 누이 버드 엘렌도 이들과 함께 놀고 있었지.

네 형제 중 공놀이에 가장 푹 빠진 차일드 롤랜드가 발로 공을 차다 신전 너머로 공을 넘겨 버렸네.

버드 엘렌이 신전의 입구를 서성이네. 사라진 공을 찾기 위해. 하지만 형제들이 아무리 기다리고 기다려도 누이는 다시 돌아오지 않았네.

형제들은 누이를 찾기 위해 동쪽으로 갔다가 남쪽으로 가고, 위로도 갔다가 아래로도 가보네.

형제들의 마음은 타들어 가지만, 그들은 어디서도 누이를 찾을 수 없었네.]

눈앞에 떠오르는 스크립트는 앞서 만났던 검은 베일 여인의 이야기와 흡사했다. 사라진 아이, 누이를 찾아 떠난 형제들. 그리고 막내 아이 차일드 롤랜드.

모든 글을 다 읽은 뒤에야 스크립트가 사라졌기에 희연은 뒤늦게 주위 풍경을 보게 되었다. 그녀가 발 디딘 낯선 땅은 언제 어디서 무엇이 튀어나와도 이상할 것 없는 모습이었다.

지평선이 보이지 않는 넓은 부지의 땅은 모두 보랏빛으로 물들어 있었다. 보랏빛이라 할지라도 신비로운 느낌이었던 에흐테흐의 숲과 비교해 봤을 때 이곳은 그저 죽은 땅이라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토지의 영향을 받은 것인지 식물은 검푸른 색이었고 오랫동안 물을 먹지 못한 것처럼 메말라 있었다. 하늘은 희뿌옜다. 탑에 들어서기 전에 보았던 묘지처럼 안개가 자욱하지는 않았지만 이곳 또한 햇살이 드는 따스한 곳은 아니었다.

그런데도 용케 자라난 식물들이 있다면 그때는 그 식물이 무엇을 먹고 자랐는지 의심을 해야 했다. 가령, 일행의 근처에 있는 커다란 나무처럼 색만 좀 검푸른 게 아닌 그 모습도 이상하다면 더욱 말이다.

“무슨 악령 들린 나무 같이 생겼네.”

“…….”

차마 악령이 때문에 솔직한 감상을 입 밖으로 못 내뱉는 희연과 달리 모짜렐라는 꾸밈없는 반응을 보여주었다. 그의 말대로 나무는 괴악했다. 비단 나무뿐만이 아니라 이 주위 풍경이 전부 그랬다.

희연의 어깨에 대롱대롱 매달려 있던 악령이는 악령이란 말에 고개를 들었다가 울상을 지으며 작은 목소리로 소곤거렸다.

“우린 저렇게 안 생겼어…!”

“으응….”

사실 그렇지는 않았다.

희연은 흐릿해졌던 옛 기억을 떠올렸다. 악령이에게 잡아먹힐 뻔했던 좋지 못한 추억이었다.

하지만 과거는 과거, 희연은 애써 진심은 숨기고 악령이의 말에 동의해 주었다. 울먹이는 인형을 잘 달랜 그녀는 조금 더 주위를 살펴보았다.

길 찾기 어려울 거라는 경고대로, 이곳은 상당히 광활했다.

파드의 싱싱 농장은 ‘농장’이라는 콘셉트 때문에 부지가 넓어도 이렇게 텅 빈 것 같이 느껴지지 않았다. 그러나 이곳은 사람의 손길이 닿지 않아서인지 더욱 넓고 황량하게 느껴졌다

검은 베일의 여인이 일러주었던 이곳에 갇혔다는 사람들도 아직 보이지 않았기에 막막한 기분이 들었다.

마리아는 쉽게 안 알려줄 것 같으니 이세인한테 길을 물어봐야 하나 고민하던 희연은 으스스한 배경에 어울리는 웃음소리가 들려와 조금 움찔거렸다.

“후후후… 힘이…, 어둠이 넘쳐흐른다…! 아하하하하핫!”

범인은 아군이었다. 무늬만 파티장이라 해도 엄연히 파티장인 네크로맨서가 저래서 희연은 더욱 막막했다.

“이런 이런. 이리도 잔혹한 모습이라니. 이 나무가 살아있었다면 나의 등장에 초라한 제 모습이 부끄러워 어쩔 줄 몰라 했겠군.”

로얄 임페리얼 나이츠도 여전했고 말이다.

희연은 침착하게 심호흡했다. 네크로맨서는 둘째 치더라도 로얄 임페리얼 나이츠는 그녀 혹은 모짜렐라가 열심히 전담 마크해야 하는 탱커였다. 사심이 들어가서 실수로라도 죽게 만들면 조금 곤란했다.

눈을 질끈 감았다 뜬 희연은 일단 모짜렐라의 의견을 물어보았다.

“누구 맡을 거야?”

“솔직하게 말해?”

“…아니.”

솔직한 심정으론 그냥 때려치우고 싶다는 말이 나올까 싶어 희연은 서둘러 부정했다. 모짜렐라는 아주 깊은 한숨을 내쉬고는 또 다른 힐러인 라쀠를 찾아 고개를 돌렸다.

라쀠는 잔뜩 굳은 얼굴로 근처에 있던 나무 뒤에 숨듯이 서 있었다. 낯가림이 심한 것인지 경계심이 높은 건지, 그는 같은 파티의 일원인 그들에게 지나치게 거리를 두었다.

안 그래도 로얄 임페리얼 나이츠와 네크로맨서라는 험난한 미래가 기다리는데 파티 내 힐러의 불화는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모짜렐라는 라쀠에게 먼저 대화를 시도했다.

“라쀠 님. 우리 힐 분담으로 얘기 좀 나눠야 할 것 같은데요.”

“둘이… 파트너…, 빼고….”

“네? 뭐라고요?”

“저, 저, 저 빼고… 어차피….”

희연은 혹여나 모짜렐라가 작은 초를 울린 것처럼 라쀠를 울리게 될까 싶어 그의 소매를 꽉 움켜쥐고 귓가에 속닥거렸다.

“그래도 저 둘보다는 낫잖아.”

“…그래.”

모짜렐라는 진정하기 위해 심호흡을 반복했다. 그러나 그가 진정하기도 전, 네크로맨서가 기어이 사고를 쳤다.

“어둠의 근원이 나를 부르는구나!”

어둠의 힘이 느껴진다며 어딘가를 향해 달려 나간 것이다. 덩달아 달려 나가는 다른 일행들을 본 모짜렐라는 힐러로서의 소명인지 욕을 하면서도 그들의 뒤를 쫓을 준비를 했다.

“대충 얘기 나눠! 어쨌든 난 메인!”

희연에게 라쀠와의 역할 분담 건을 넘긴 모짜렐라는 네크로맨서를 기절시켜서라도 잡아 오겠다는 의지를 보여주듯 지팡이를 손에 꽉 쥐고 사라진 일행을 찾아 뛰어갔다.

모짜렐라가 따라갔으니 누구 하나 죽어서 오지는 않겠지 생각하며 희연은 라쀠에게 조심히 말을 걸었다.

“라쀠 님은 힐 넣는 게 좋으세요, 아니면 공격하는 게 좋으세요?”

“뭘 말하든… 어차피….”

“…….”

이래서 마리아가 장비만 보고도 상대의 역량을 예측할 수 있어야 한다고 한 걸지도 몰랐다.

희연은 애써 긍정적으로 사고하며 라쀠의 장비를 훑어보았다. 상대가 말을 안 해주면 그녀가 알아서 알아낼 수밖에 없었다.

일단 모짜렐라와 다를 것 없는 발목까지 닿는 로브라는 점에서 라쀠는 희연처럼 뛰어다니는 스타일은 아닌 것 같았다.

무기는 뾰족뾰족한 돌기가 있는 메이스로 힐을 할 때 무슨 모션을 취할지 무척이나 궁금해지는 둔기였다. 무기만 봤다면 모를까 라쀠의 성격까지 고려하니 그가 공격적인 성향인지 아닌지 조금 긴가민가했다.

화려함이 그 물건에 담긴 능력이라 쳤을 때 귀걸이와 목걸이, 팔찌 모두 밋밋하니 딱 40 레벨 대의 물건으로 특색은 없었고, 특이한 점이라 하면 벨트에 투척용 포션이 주렁주렁 매달려 있다는 점 정도였다.

무기만 보면 공격 시 근거리형, 하지만 로브의 형태나 투척용 포션 같은 것을 고려해 보면 접근해서 공격하는 스타일은 아닌 것 같았다.

“…….”

어렵다….

겉모습만 보고도 이렇게 헷갈리는데 여기에 옵션이라거나 인챈트까지 고려하면 끝이 없어 보였다.

몬스터라도 몇 마리 나타나 라쀠가 취하는 행동을 보지 않는 이상 그가 어떤 스타일을 추구하는지 확신할 수 없었다.

곰곰이 생각해 보던 희연은 마침내 결론을 내렸다. 일단 자신이 하고 싶은 역할부터 말한다면 라쀠도 대답을 할 것이라고 말이다.

“저는 힐보다는 공격을 많이 하거든요. 그래서 제가 보조 역할 맡을까 하는데 괜찮….”

“야! 총 들어…!”

“…?”

그러나 그녀가 미처 말을 다 맺기도 전에 익숙한 목소리가 들렸다. 희연은 일단 반사적으로 총을 들었다. 뒤늦게 소란의 원인을 찾아 고개를 돌린 희연은 눈앞에 벌어진 상황에 너무 놀라 입만 벌렸다.

저 멀리서 달려오는 모짜렐라를 포함한 일행의 뒤로 하늘을 뒤덮을 것 같은 밴시 무리가 따라오고 있었다.

어린 소녀, 귀부인, 노파 등 다양한 연령대로 보이는 그들은 일행이 희연이 서 있던 언덕 위로 올라서자마자 일제히 울음을 터트리기 시작했다.

아아아아-

밴시 서넛이 울 때와는 달랐다. 단순히 듣기 괴롭기만 하던 울음은 마치 장송곡처럼 음률을 타기 시작하더니 한층 한층 화음을 쌓았다.

아름다운 노랫소리를 들으면 으레 사람들은 소름이 돋는다는 말을 하곤 했다. 그러나 희연의 팔에 돋은 소름은 단순히 노랫소리가 듣기 좋아 그런 것이 아니었다.

[상태 이상 ‘공포’에 걸렸습니다.]

킹스메이커의 스킬에 휘말렸을 때와 비슷한 느낌이었다. 희연은 덜덜 떨리기만 할 뿐 마음대로 움직이지 않는 제 손과 다리를 한번 보고는 다른 이들의 상태도 서둘러 확인했다.

마리아와 이세인을 제외한 모두가 그녀와 비슷한 상태였다. 심지어 라쀠 외의 이들은 달리다 상태 이상에 걸려 넘어지기까지 했다.

점차 가까이 다가오기 시작한 밴시 무리를 본 희연은 다급하게 모짜렐라를 불렀다.

“치즈, 치즈…!”

“알겠으니까 조용히 해! <디스펠>!”

모짜렐라의 지팡이 위로 반짝이는 둥근 테두리가 둘러지더니 일행을 모두 품을 듯한 거대한 빛의 선이 바닥에도 그려졌다. 땅에 새겨진 훈륜 안으로 햇살 같은 빛이 차올랐다.

포근한 빛이 스며듦과 동시에 몸이 자유로워진 희연은 일단 시간을 끌기 위해 총을 밴시 무리 쪽으로 들어 올렸다.

“<탄환 변경>!”

[탄환이 변경됩니다. 일반 탄환 >> 예광탄]

탕, 탕, 탕…!

사방에서 퍼져 나가는 예광탄의 효과에 밴시 무리는 괴로운 소리를 내며 이리저리 어지럽게 날아다니기 시작했다. 빛을 피해 숨을 곳을 찾는 듯한 몸짓이었다.

눈동자 없이 그저 하얗기만 한 눈이기에 안 먹히면 어쩌나 걱정했던 희연은 예광탄이 효과가 있음에 안도한 뒤 이 말도 안 되는 밴시 수의 원인을 찾아 고개를 돌렸다.

“무슨 짓을 하고 온 거야…!”

이제 막 자리를 털고 일어나던 모짜렐라는 희연의 물음에 억울해 죽겠다는 얼굴로 사건의 전말을 알려주었다.

“저 네크로맨서가 자기 수족을 보여주겠다면서 언데드 소환했다가 어그로 끌렸어!”

“…도대체 무슨 짓을 하고 온 거예요!”

희연은 상대를 바꾸어 같은 질문을 할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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