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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비세스 메이커 (224)화 (224/251)

224화

착각이 아니라는 듯 하나둘, 불덩어리 같은 눈을 가진 말들이 소환되기 시작했다. 흥분한 듯 거친 기색을 보이는 말들은 누가 보아도 그들을 공격할 의지가 다분해 보였다.

상황이 좋지 못하다. 희연은 곤란함을 느끼며 주위를 둘러보았다. 그들이 서 있는 곳은 허허벌판 한가운데였다. 지형지물을 이용한 싸움이 불가했다. 이런 곳에선 뒤에서 힐만 넣을 수 없었다.

방패 전사 강자가 괜히 이제부턴 탱커가 지켜주는 게 불가능하다고 한 게 아니었다.

희연의 불안감에 맞추어 소환된 말들은 느릿느릿 걷기 시작했다. 흥분한 것이 느껴지는 투레질 소리가 사방에서 들리기 시작했다. 그들은 포위당했다.

그리고, 노인의 이야기는 아직 끝난 게 아니었다.

“그래그래 맞아. 나는 쫓겨 다니는 중이었다네. 내가 돌보지 못한 말과, 내가 돌보지 못한 말 탓에 분노한 기사님들에게 말일세! 아주 오랫동안, 무척이나 오랫동안! 내가 왜 이 꼴로 헤매고 있던 건지 잊을 정도로 오랫동안!”

마치 누군가의 조종을 받듯 그들 주위를 선회하던 말들 사이로 새로운 존재가 소환되기 시작했다.

두터운 판금 갑옷, 해진 망토. 건틀렛을 낀 손마디는 하얀 백골이며 그 손에 들린 검은 기이할 정도로 커다랬다. 얼굴을 가린 투구 속 눈은 말들과 마찬가지로 불덩어리 같았다.

[Lv. 64 <약화된 데스 나이트>]

“이 머릿속에서 반복되는 소리와 심장을 오그라들게 만드는 두려움에서 벗어나게 된다면, 자네들이 묻는 것에 대해 떠오를 듯도 하군!”

노인의 기억을 떠올리게 하기 위해선 지금 그들을 둘러싼 모든 몬스터를 해치워야 한단 뜻이었다.

“와….”

희연은 왜 이 요정의 무덤 던전이 인기 없는 곳인지 깨달았다. 이건 불합리했다. 몬스터의 수가 너무 많았다. 의미 없는 감탄사가 절로 나올 만큼 말이다.

“믿습니다 위대한 네크로맨서 님…!”

더불어 그녀는 왜 방패 전사 강자가 파티를 구하는 과정부터 힘을 들임에도 불구하고 흑염의 아이와 함께하는 것을 포기하지 않았는지도 알게 되었다.

수량 싸움. 이 정도 수의 몬스터를 수월하게 상대하기 위해선 아군을 소환해 낼 수 있는 네크로맨서가 있어야 했다. 압도적인 실력으로 이 일대 전부를 에워싼 듯한 몬스터를 해치우는 사람이 있지 않은 이상 말이다.

누가, 무슨 생각으로 이런 던전을 만든 것인지 희연은 진심으로 궁금했다. 물론 혼란스러워하는 사람이 있다면 지금의 상황에 기뻐하는 사람도 있긴 했다.

방패 전사 강자의 응원에 신이 난 흑염의 아이였다.

“감히 내게…!”

그 뒷말은 더 안 들어도 됐다.

흑염의 아이는 이미 소환한 뒤 데리고 다녔던 해골 병사들을 먼저 내보내는 것으로 그들이 서 있을 공간을 늘렸다. 항상 그러했듯 앞으로 뛰어나가며 그녀는 스킬을 사용했다.

“<오라, 어둠이여>!”

땅이 갈라지며 해골 병사들이 하나둘 소환되기 시작했다. 희연은 아슬아슬하게 코앞까지 갈라진 땅의 흔적을 바라보다가 고개를 돌려 주위를 살폈다.

난전은 이미 시작되었다. 희연이 잠시나마 여유를 즐길 수 있는 건 흑염의 아이가 소환한 해골 병사들이 몰려드는 데스 나이트들을 막아내는 일종의 방어벽 역할을 해주어서였다.

아직까지 합쳐지지 못하고 연약한 모습 그대로인 해골 병사들은 땅을 구르고 서로 엉키며 뼈의 벽을 만들어 내 그들을 지켜주었다.

하지만 진화하지 못한 해골 병사들인 만큼 그들이 몸을 바쳐 만들어 낸 벽은 그리 튼튼하지도 드높지도 못해 침입을 완전히 막아내지 못했다.

기동성 좋은 말이 적이라는 것도 그들에게 불리하게 작용했다. 말은 가벼운 몸놀림으로 벽을 뛰어넘었다. 데스 나이트들은 힘으로 해골 벽을 부수었다. 그때그때마다 해골 병사들이 그들에게 매달렸지만 효과가 썩 좋지는 않았다.

근접전. 지금 그들은 직업에 상관없이 모두가 근접전을 했다. 벽을 부수고, 넘으며 접근한 몬스터는 상대의 직종에 관계 없이 달려들었으니 말이다.

일반적으로 뒤편에 서 있는 것이 기본인 원거리 딜러와 힐러들에게 결코 좋지 못한 상황이었다.

희연은 저를 향해 달려오는 데스 나이트를 조준하며 스킬을 외쳤다.

“<회개하세요>!”

스킬창에 명시되지만 않을 뿐 힐러가 걸어 다니는 어그로라는 걸 모르는 사람은 없었다. 희연 역시 해골 벽을 넘어설 때마다 유난히 제 쪽으로 달려드는 몬스터가 많다는 것이 착각이 아님을 알았다.

그나마 희연은 일단 제게 달려드는 몬스터만 제대로 눈에 담으면 그다음은 수월했기에 제법 잘 버틸 수 있었다.

하지만 해골 벽만 믿고 언제까지 벽을 넘은 몬스터만 상대하며 시간을 끌 수는 없었다. 그들은 그나마 안전이 확보된 지금 조금 더 적극적으로 적을 물리쳐야 했다.

문제는 그들의 직업과 이곳 던전의 특수함에 있었다. 현재 적에게 유의미한 타격을 입히는 건 희연과 흑염의 아이뿐이었다. 다른 이들은 간신히 대치만 할 뿐 적의 수를 줄이지 못했다.

요정의 무덤은 힐러가 필수인 던전이었다. 정확히 말하면 무기에 성 속성 버프를 걸어 줄 수 있는 힐러가 필수였다.

그리고 현재, 그게 가능한 건 단 한 명뿐이었다.

희연은 저를 향해 달려드는 말 몬스터의 공격을 피하며 주위를 둘러보았다. 각 잡고 몬스터를 조준할 필요는 없었다. 눈에 담은 것만으로도 희연의 손이 알아서 이리저리 움직였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이미 마리아에게 들켰기에 희연은 자신의 패시브를 적극적으로 활용했다. 이세인이 조금 걸리긴 했지만 그쪽은 백희준이 알아서 하리라 믿었다.

그러나 아무리 희연이 기본적으로 언데드 몬스터에게 강하고 훌륭한 사격 솜씨를 가졌다 한들 모든 공격 한 번에 몬스터가 쓰러지는 것은 아니었기에 전체적인 수에 큰 영향을 주지는 못했다.

이런 난전에 있어 흑염의 아이 다음으로 가장 많은 도움이 될 마늘쫑쫑의 활약을 위해서는 모짜렐라의 버프가 필요했다. 그것이 이 정신없는 상황 속에서도 희연이 모짜렐라를 찾는 이유였다.

시기적절하게 스킬을 사용하는 것을 한 번도 놓친 적 없는 모짜렐라가 버프를 사용하지 않고 있다는 건 그럴 만한 일이 있다는 뜻이었다.

과연, 희연의 예상대로 모짜렐라는 버프 스킬을 못 걸만한 상황이었다.

“치즈…!”

모짜렐라는 자신을 공격하는 데스 나이트의 검을 지팡이로 막고 있었다. 그의 힘 스텟을 생각하면 기적이나 다름없는 모습이었다. 물론 그의 팔은 가여울 정도로 덜덜 떨렸고 HP는 뚝뚝 떨어지고 있었지만 말이다.

뒤로 물러나 곧바로 공격하면 될 일이었지만 모짜렐라가 섣불리 움직이지 못하는 이유는 그의 바로 뒤에 쭈그려 앉은 라쀠가 제 허리춤에 걸어놓은 물약을 이리저리 뒤지고 있어서였다.

“그냥 공격하라고요! 평타라도 날려!”

“자, 잠깐…! 잠깐만…!”

“공격 안 할 거면 좀 일어나라고!”

물약을 찾을 시간에 흉기나 다름없는 메이스를 휘두르면 될 것을, 라쀠는 얼굴을 마주 보고 공격할 자신이 없다는 듯 멀리 돌아가는 해결책을 찾고 있었다.

모짜렐라를 공격하는 데스 나이트를 눈에 담은 희연은 총을 들어 올렸다. 방아쇠를 당기기 직전 악령이가 다급하게 희연을 향해 외쳤다.

“뒤!”

“아.”

희연은 앞으로 성큼 뛰며 곧바로 뒤를 돌았다. 데스 나이트의 검이 방금 전까지만 해도 그녀가 서 있던 땅에 박혔다.

“<회개하세요>!”

탕…!

살짝 열린 투구의 안, 불덩어리 같은 눈을 노린 총은 정확히 명중했다. 기사 몬스터답게 약화된 데스 나이트는 약화라는 수식이 무색하게도 단단한 편이었지만 눈까지 단단한 것은 아니었다.

더불어 희연은 자신보다 더 높은 레벨을 가진 적을 상대로 공격력이 높아지는 패시브 <내 이름은 오목눈이>를 가지고 있었다.

파티원의 레벨 평균으로 몬스터 레벨이 책정되는 이런 던전에선 제법 유리한 조건을 갖고 있는 셈이었다. 더불어 악령이 덕에 뒤통수 맞을 걱정도 없으니 첫 난전임에도 불구하고 희연은 꽤 선전했다. 킹스메이커가 봤다면 감동했을 것이다.

“궁극의 어둠을 보여주마…!”

흑염의 아이도 어쨌든 잘했다.

방패 전사 강자나 마늘쫑쫑은 아직 제대로 된 공격만 가하지 못한다 뿐이지 밀리는 건 아니었고, 트롤 임페리얼 나이츠는 신전 직업 고유 패시브 어둠 저항이 없었다면 큰일 났을 실력으로 아득바득 버티고는 있었다.

대충 주위를 훑으며 파티원들의 상태를 확인한 희연은 제게로 달려드는 데스 나이트를 해치운 뒤 양손에 든 총을 동시에 들어 일행에게로 겨누었다.

“<등불의 천사>, <치유의 빛>!”

[스킬 <등불의 빛>을 사용합니다. 자신을 포함한 파티원의 HP를 회복시킵니다.

‘빛 아래 사라지는 것은 없으니’]

[스킬 <치유의 빛>을 사용합니다. 단일 대상의 HP를 회복시킵니다. ‘작은 빛이 타오르는 순간’]

난전 중 탱커는 제 역할을 다하지 못할지언정 힐러는 해야 했다. 물론 일일이 체크할 자신은 없었으므로 희연은 도트 힐 스킬을 사용했다.

총이 두 자루란 건 이럴 때 참 좋은 거였다. 거의 동시라고 할 수 있는 시간에 스킬을 두 개나 사용할 수 있었으니 말이다.

트롤 임페리얼 나이츠에게 도트 힐 외에 추가적인 힐 스킬을 날린 희연은 모짜렐라가 있는 위치를 찾아 주위를 둘러보았다.

그러나 기껏 위치를 확인한 것이 무색하게도 그 잠깐 새에 모짜렐라는 모습을 감추었다. 슬슬 약해진 해골 벽을 뚫고 우르르 들어온 적들에 휘말린 것이다.

희연은 모짜렐라를 믿었다. 상황이 결코 좋지 못하고, 그에게는 라쀠라는 짐도 함께하고 있긴 했으나 버티고 있을 게 분명했다.

“에흐테…!”

그렇다면 희연이 해야 할 건 모짜렐라의 구출이었다. 개인적인 친분을 제외하더라도 힐러부터 구하는 게 정답이었다. 만약에 모짜렐라가 별님을 만나러 떠나면 라쀠는 바로 그 뒤를 이을 것이고 그렇게 된다면 파티에 남는 힐러는 희연 하나밖에 없게 된다.

그런 끔찍한 상황이 일어나지 않도록 그나마 손이 남는 그녀가 움직여야 했다.

아직 소환을 해제하지 않아 그녀 주위를 서성이고 있던 에흐테가 곧바로 희연에게로 와주었다. 이제는 익숙해진 몸놀림으로 그녀는 한 번에 에흐테의 위로 올라탔다.

지금까지는 주위에 적이 워낙 많아 섣불리 에흐테 위로 올라탈 수 없었지만 지금은 아니었다. 적어도 에흐테 위에 올라탈 수 있을 정도로는 주위를 정리했다.

낌새를 알아차린 몬스터가 다시 몰려들었지만 희연이 예광탄을 쏘는 게 먼저였다. 차단된 시야에 허우적거리는 몬스터들을 뒤로하고 그녀는 에흐테를 하늘로 몰았다. 땅을 박차고 날아오른 유니콘을 붙잡을 수 있는 몬스터는 이곳에 없었다.

넓은 시야를 확보한 희연은 서둘러 모짜렐라를 찾았다. 밑에서는 덩치 큰 몬스터들에 의해 가려진 바람에 찾을 수 없었던 그녀의 친구를 하늘에선 쉽게 발견할 수 있었다.

모짜렐라는 대단하다는 감탄이 절로 나올 만큼 아직까지도 아득바득 버티고 있었다. 코앞에 있는 데스 나이트를 지팡이로 막아내면서 저를 향해 달려드는 다른 몬스터에게는 스킬을 날렸다.

그 탓에 바로 앞에 있는 몬스터를 처리하지 못하고 있긴 했으나 그는 그 이상 제게로 몬스터의 접근을 허용하지 않고 있기도 했다.

희연은 일단 짐을 덜어주기 위해 그를 향해 달려드는 몬스터부터 차례로 처리했다.

하늘 위에서는 넓은 시야와 자유로운 공격이 가능하다는 장점이 있지만, 동시에 몬스터의 약점인 눈을 노리지 못하는 단점도 있었다. 덕분에 희연이 몬스터를 잡는 속도는 밑에 있을 때보다는 느려졌다. 그만큼 스킬도 더 많이 사용해야 했다.

“후우….”

그녀가 모짜렐라를 노리던 몬스터 대부분을 정리할 때쯤엔 입안이 말라 텁텁함을 느낄 정도였다. 힘든 건 사실이었지만 희연은 동시에 자신이 이뤄낸 결과물에 나름 뿌듯함도 느꼈다.

이제, 아까부터 힐러랑 힘겨루기를 하는 다소 양심 없는 저 데스 나이트만 처리하면 되었다.

“<이단을 향한 철퇴>!”

탕…!

적에게 쏘아진 하얀 총알은 도중 깨지며 그 안에서 하얗고 작은 철퇴를 든 천사를 소환했다. 적을 향해 쏘아져 나가는 천사의 자태는 위풍당당했고, 그 기세를 담아 데스 나이트의 머리를 철퇴로 내리쳤다.

쾅-!

투구가 찌그러질 만큼의 위력이었다. 당연하다면 당연하게도 데스 나이트는 잠시 비틀거렸다. 빈틈이 생겼다.

“치즈!”

희연의 목소리와 바로 코앞에서 천사에게 폭행당한 데스 나이트를 본 모짜렐라는 빠르게 상황을 파악했다.

그는 곧바로 뒤로 물러나더니 아직까지도 바닥을 기어 다니고 있던 라쀠를 붙잡아 방패 전사 강자 쪽으로 집어 던졌다. 희연이 주위 몬스터를 정리해 줬기에 가능한 행동이었다.

“어어…?”

물론 희연은 당황했다. 그녀가 모짜렐라를 부른 이유는 이 틈에 데스 나이트를 해치우건, 뒤로 피하건 하란 의미였지 라쀠를 던져 버리라는 뜻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조금 거친 방식으로 라쀠의 안전을 챙겨 준 모짜렐라의 눈은 독기가 그득했기에 희연은 나중에라도 혹시 사심을 갖고 던졌냐고 물어보지는 말자 다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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