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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비세스 메이커 (226)화 (226/251)

226화

소리가 가까워질수록 적의 인영 또한 선명해졌다.

또한, 마치 배경이라도 되는 듯 그 뒤를 따르는 것의 정체도 알 수 있었다. 그건 여섯 마리의 말이 이끄는 커다란 마차로 감히 무시할 수 없는 위용과 존재감을 내뿜었다.

밴시의 울음소리는 그 마차 안에서 들려왔다.

아직 데스 나이트를 다 해치우지도 못한 상태에서 밴시의 울음소리를 등에 단 준보스급 몬스터가 나타났다. 긴장했을지언정 놀라지 않는 일행의 모습은 이게 당연한 전개라는 것을 뜻했고, 그에 희연은 자신의 레벨로 이곳에 와도 됐던 걸까 뒤늦은 의심이 들었다.

아무리 봐도 아닌 것 같았다.

희연의 머릿속엔 기뻐하며 그녀를 이곳에 보낸 킹스메이커의 얼굴이 아른거렸다. 희연은 애써 피어오르는 원망을 다잡으며 적의 정체를 확인하기 위해 눈을 굴렸다.

외관은 데스 나이트처럼 기사였다. 데스 나이트보다 커다랗고 정교해 보이는 검은 갑옷을 입은 기사의 어깨에는 묵직한 망토가 휘날렸다.

어깨에 두른 검은 띠에는 이루어낸 공이 무엇인지 보여주는 훈장이 가득 매달려 있었고, 타고 있는 말 역시 다른 말과 달리 판금 갑옷을 입고 있었다.

그러나 수많은 특징에도 불구하고 가장 눈에 띄는 점은 역시 상대의 목 위, 머리가 없다는 거였다. 기사가 탄 말 역시 머리가 없었다. 둘 모두 누군가 검으로 내린친 듯 깔끔하고 검은 단면을 가지고 있었다.

말의 머리는 어디로 갔는지 알 수 없는 한편 기사의 머리는 그가 손수 챙겨 옆구리에 끼고 다녔기에 행방을 부러 찾을 필요가 없었다.

투구의 검은 술 장식이 상대가 기사 중에서도 제법 직급이 있던 이라는 것을 보여주었다. 눈만 드러내는 유형의 투구였던 데스 나이트와 달리 몸과 목이 분리된 기사의 투구는 하관이 드러나 있었다.

거무죽죽한 피부, 웃음을 머금은 입. 위험한 분위기를 물씬 풍기는 기사를 집요하게 바라본 끝에 희연은 상대의 이름을 알아냈다.

“90….”

희연과 거의 두 배 차이가 나는 레벨이었다. 꼬박꼬박 앞에 붙는 약화된이라는 수식은 별로 의미가 없었다.

느릿느릿, 마치 마차를 호위라도 하듯 느린 걸음으로 그들에게 걸어오던 듀라한은 어느 순간 행진을 멈추었다. 듀라한의 뒤를 따르던 마차 역시 멈추었다.

분노한 말도, 데스 나이트도 모두 두 눈에 불덩어리를 머금었다. 그리고 그건 듀라한의 뒤를 따라오는 마차 역시 마찬가지였다.

다만, 다른 점은 마차에는 얼굴도 눈도 없다는 거였다. 그래서인지 마차는 몸체 전부가 불타오르고 있었다. 그 안에 갇힌 희끗희끗한 존재들은 불에 타는 것이 괴롭다는 듯 창을 두들기며 울부짖었다. 밴시의 울음이었다.

마차에 시선을 빼앗겼던 희연은 이윽고 듀라한이 움직이기 시작하자 그쪽에 다시 집중했다. 한 손에는 자신의 머리를 든 기사가 다른 손에는 사형수의 목을 베는 참수대와 같은 커다란 도끼를 들었다.

도끼의 날은 말을 탄 듀라한의 키만큼이나 커다랬다. 그 커다란 날의 끝이 하늘을 가리켰다. 툭, 툭. 마치 박자라도 맞추듯 천천히 내려왔다. 그 끝은 그들 일행을 가리켰다.

끝내 듀라한이 들고 있던 도끼의 끝을 완전히 땅으로 늘어트리는 순간, 내내 긴장을 풀지 않고 새로운 적을 응시하던 방패 전사 강자가 트롤 임페리얼 나이츠를 붙잡고 일행의 가장 앞으로 달려들었다.

“준비, 준비…!”

아아아아악…!

밴시들의 비명 같은 울음은 신호였다. 불타오르는 마차가 마찬가지로 불구덩이 같은 말들에 의해 속도를 높였다.

듀라한을 지나 그들을 향해 일직선으로 달려드는 마차는 설령 지금의 공격을 피한들 끝까지 쫓아오리란 집요함을 담아 바퀴를 굴렸다.

달려오는 도중 마차를 끌던 여섯 마리의 말은 줄이 풀려 사방으로 흩어졌지만, 그럼에도 마차의 속도는 줄지 않았다.

멀리서 있을 때도 그 크기가 크리라 짐작했던 마차는 마치 달려오는 와중 저를 태우는 불을 흡수하듯 점차 몸집을 불렸다.

데스 나이트들이 그들 주위를 에워쌌다. 도망가지 못하게 하듯 통로를 막았다. 길을 내어 준 곳은 단 하나. 그들을 향해 달려오는 마차를 마주 볼 수 있는 곳뿐이었다.

피하는 것은 안 된다. 피할 수 없다. 이 공격을 막고, 살아남는 것만이 이번 공격에 대응할 유일한 방법이었다.

그리고 이 공격을 막아낼 사람은 이미 정해졌다. 탱커인 방패 전사 강자와 트롤 임페리얼 나이츠. 희연이 신경 써야 하는 건 달려오는 마차의 공격이 아니었다.

방패 전사 강자는 말했다. 디스펠을 준비하라고. 그 뜻은 저 마차 안에서 울부짖는 밴시가 단순히 배경음을 위해 있는 게 아니라는 소리였다.

언제 밴시가 튀어나올지 모르는 상황에서 모짜렐라와 둘이 일행을 치료하는 건 불가능했다. 희연은 이중 유일하게 모든 스킬 쿨타임이 차 있는 상대를 찾아 고개를 돌렸다.

사람은 고쳐 쓰는 게 아니라지만 이런 상황에서는 안 고쳐져도 써먹어야 했다.

“라쀠 님 등불의 천사!”

“드, 등불… <등불의 천사>…!”

그래도 콕 집어서 시키니 시키는 대로 하기는 했다. 희연은 그 정도만 해도 지금의 위기 상황은 벗어날 수 있으리라 판단했다.

마치 그런 희연의 희망처럼 모두의 머리 위로 여섯 장의 날개를 활짝 편 등불이 떠올랐다.

희연은 파티창을 열어 라쀠의 레벨을 다시 확인했다. 그녀와 비슷한 레벨이었다. 스킬도 비슷하다는 걸 의미했다.

“디스펠에 집중해! 라쀠 님…!”

불안하다는 듯 뒤를 돌아보는 모짜렐라를 앞으로 밀어낸 희연은 주춤주춤 뒤로 물러나던 라쀠를 붙잡아 제 옆으로 끌고 왔다.

“제가 스킬 쓰면 강자 님한테 똑같이 써요!”

라쀠한테 제대로 대답을 들을 틈 같은 건 없었다. 마차의 창문이 깨졌다. 비명과 울음을 내지르던 밴시들이 마차를 탈출하며 그들에게 디버프를 걸었다.

“<디스펠>…!”

모짜렐라가 스킬을 사용했을 때, 불에 타오르는 마차는 그들의 바로 앞에 있었다. 두 탱커가 방패를 들었다. 아직 제대로 맞부딪히지도 않았건만 그들의 HP가 빠르게 닳기 시작했다.

이미 스킬을 사용하는 중인 모짜렐라가 다른 스킬까지 쓸 여유는 없었다. 라쀠는 무조건 희연과 함께 스킬을 사용해야 했다. 희연은 집중하라는 의미로 라쀠를 방패 전사 강자 쪽으로 밀었다.

“<치유의 손길>! 스킬 써!”

“치, 치, <치유의 손길>…!”

[스킬 <치유의 손길>을 사용합니다. 단일 대상의 모든 HP를 회복시키며 일정 시간 동안 상태 이상 내성, 능력치 증가, 마법 내성 능력이 향상됩니다.

‘찬미 받아 마땅한 이들에게’]

새하얀 천사가 각자 두 탱커를 끌어안았다. 다행히 라쀠는 실수하지 않았다. 그러나 치료했다고 끝나는 게 아니었다. 마차와 탱커들은 이제 막 맞부딪혔을 뿐이었다.

방패 전사 강자와 트롤 임페리얼 나이츠는 악을 쓰며 마차를 방패로 막아냈다. 마차를 태우는 불길은 탱커를 제외한 이들에게도 영향을 끼쳤다.

[상태 이상 ‘화상’에 걸렸습니다. 초당 10의 대미지를 입습니다.]

특히나 희연에겐 끔찍한 추억을 떠올리게 만드는 공격이었다.

그러나 화상 대미지로 12초 만에 죽던 그때와 지금을 비교할 수 있을 리가 없었다. 대미지 10 정도는 가뿐히 무시할 수 있는 배짱이 생긴 희연은 조금씩 닳는 HP를 외면했다.

어차피 지금 치료해 봤자 화상의 원인을 완전히 제거하지 않으면 의미가 없었다. 마차의 불을 꺼야 했다. 이 중 마법사 직군이 하나라도 있었다면 물 마법 같은 걸 사용할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희연은 아쉬움을 느꼈다.

“<치유의 빛>. 스킬 써요.”

“<치유의 빛>….”

라쀠와 함께 두 탱커를 치료하는 것 자체는 어렵지 않았다. 모짜렐라 역시 합류했기에 수월하기까지 했다.

하지만 딱 거기까지. 힐러는 치료만 해야 했고 탱커는 발을 떼지 못했다.

근접 딜러인 마늘쫑쫑은 마차에 가까이 가지도 못했고 흑염의 아이가 해골 벽을 이루는 병사들 일부를 움직이게 해 마차를 붙잡았지만 그들은 금세 녹아내렸다.

설마하니 이런 식으로 두 탱커가 마차를 막을 때까지, 혹은 불에 타고 있는 마차가 재가 될 때까지 기다리기만 해야 하는 건가 싶었다.

“…….”

그도 아니면 마차의 불을 끈다거나….

희연은 물끄러미 제 총을 바라보았다. 그녀는 제법 다양한 종류의 탄환을 가지고 있었고, 비록 물 속성의 탄환은 없었지만 비슷한 게 하나 있었다.

“<탄환 변경>.”

[탄환이 변경됩니다. 마법 탄환 >> (마법)빙결 탄환]

혹시나 하는 마음에 일단 탄환을 변경하였으나 희연 또한 조그만 탄환 몇 발로 거대한 불덩어리나 다름없는 마차의 불을 진압할 수 없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래도 혹시나 하는 마음에 희연은 아직까지도 힘차게 돌아가는 중인 마차의 바퀴 쪽으로 몇 발 쏘아보았다.

아주 잠깐, 바퀴가 얼어붙었다. 그러나 얼음은 불길에 순식간에 녹아 물 자국 같은 흔적도 못 남기고 사라졌다.

빙결 탄환이 영 효과가 없는 건 아니었다. 이를 알아낸 것이 작은 소득이라면 소득이었지만, 탄환으로 얼릴 수 있는 범위를 늘리는 방법이 있지 않은 한, 별 소용없는 것도 사실이었다.

“…….”

하지만 마차를 얼리는 게 아니라 다른 커다란 걸 얼려서 마차에 던진다면 어떨까?

커다란 얼음이 불에 닿으면 녹아 물이 될 것이다. 작은 건 소용없다. 하지만 마차보다 훨씬 커다란 얼음이라면 그건 해볼 만할지도 몰랐다.

희연은 서둘러 주변을 둘러보았다. 흑염의 아이가 소환한 해골 병사들, 그리고 데스 나이트들 너머 보이는 건 깊이 뿌리 내린 나무와 땅과 한몸이나 다름없는 바위 정도였다. 무언가를 얼려 던질 만한 건 없었다.

아쉬운 대로 데스 나이트라도 얼려서 던져봐야 하나? 던질 수 있나? 몇 개를? 얼마나? 한 번에? 나눠서?

여러 가지 의문 끝에 희연은 또다시 새로운 의문을 느꼈다. 꼭 적을 얼려야만 하는 건가?

트롤 임페리얼 나이츠와 라쀠가 짜증이 나서 든 생각이 아니었다. 불협조적인 적을 얼리는 것보다 협동이 가능한 아군을 이동시켜서 얼리는 게 더 쉽다는 판단을 내린 거였다.

그리고 그들 파티엔 얼려도 문제가 없는, 사람이 아닌 존재들이 있었다. 얼마든지 다시 소환할 수 있는 존재가 말이다.

“아이 님…!”

슬금슬금 또다시 뒤로 몸을 빼기 시작한 라쀠를 다시 앞으로 던지며 희연은 흑염의 아이를 찾았다. 홀로 하늘에 떠 있던 그녀가 희연의 부름에 시선을 내렸다.

흑염의 아이가 협조적인 편은 아니었으나 그녀 또한 던전을 깨기 위해선 최소한의 협력이 필요하다는 걸 알고는 있었다.

해골 병사들을 힐러들의 호위로 보냈을 때의 판단이 지금도 유효하기를 바라며 희연은 손을 들었다. 그녀가 가리킨 곳은 마차의 위였다.

“해골 소환 좀 해주세요! 많이! 잔뜩! 이왕이면 한 덩어리처럼 엉킨 상태로!”

구체적인 희연의 요구 사항에 흑염의 아이는 조금 인상을 찌푸렸다.

“감히 이 몸에게 명령을 하다니….”

“명령 아니라 부탁!”

“그 부탁! 들어주마…!”

흑염의 아이는 정말, 어려운 듯하면서도 다루기가 참 쉬운 사람이었다. 동시에 눈치를 안 볼 뿐이지 없는 게 아니었다.

“<오라, 어둠이여>!”

불타오르는 마차 위로 검보랏빛의 마법진이 새겨졌다. 허공에 새겨진 불길한 색의 마법진은 기이한 빛을 흘리더니 이어 반으로 찢기며 그 사이로 아무것도 걸치지 않은 해골 무더기를 쏟아냈다.

그들은 느릿느릿 추락했다. 아직 완전히 소환되지 않아 마법진 안에 있던 다른 해골 병사들과 엉켜 있었기 때문이다.

해골 병사들이 떨어지기 전 일을 끝내야 한다는 생각에 초조해하던 희연에겐 다행인 일이었다.

희연은 흑염의 아이 쪽을 힐끗 보았다. 흑염의 아이는 희연의 총 위로 맴도는 얼음 결정과 푸른 마법진만 보고도 그녀가 무엇을 하려 하는지 눈치챈 듯했다.

정말 의외의 대상과 손발이 맞는단 생각에 희연은 기분이 묘했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당장의 급한 일을 해결해야 했으므로 희연은 감상을 떨쳐내고 마차 위 해골 무더기에 집중했다.

희연은 숨을 참고 총을 들었다. 저것들이 모두 떨어지기 전에 모두 총으로 맞혀 거대한 얼음덩어리로 만드는 건 순전히 그녀의 몫이었다. 숨 쉴 틈 같은 게 있을 리가 없었다.

탕! 탕! 탕! 탕! 탕…!

사크룸 루파라, 킹스메이커와 합법 도박이 만들어낸 합작품인 소드 오프 샷건은 그 이름값을 하듯 아름다웠고, 더없이 훌륭한 무기였다.

희연은 그 훌륭한 무기를 단 한 번도 극한까지 몰아붙여 사용해 본 적이 없었다. 잘못 쏘는 일이 없는 만큼 방아쇠를 당기는 횟수 역시 줄었기에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그래서 희연은 몰랐다. 아무리 좋은 총이라 할지라도 연사를 무한정 버텨내는 총이 없다는 걸. 그리고 그건 사크룸 루파라 역시 마찬가지였다.

총구의 끝이 과열되었다. 경고하듯 붉게 달아오른 색만 봐도 알 수 있는 사실이었지만 얼음을 만드는 데 온 정신을 쏟던 희연은 그것을 보지 못했다.

쾅…!

“…!”

마지막 한 발. 꽁꽁 언 거대한 얼음 위로 쏘아진 총알을 마지막으로 희연의 손에 있던 두 자루의 샷건 중 하나가 큰 소리를 내며 총구에서 작은 폭발을 일으켰다.

“은근 손 많이 가네, 우리 오리는.”

희연이 무리한 사격을 할 때부터 지켜보던 마리아가 타이밍에 맞추어 그녀의 손을 발로 차 총을 떨어트리게 하지 않았다면 제법 뼈아픈 대미지를 입었을 것이다.

“어…, 어? 어…?”

바닥에 빙그르르 도는 총은 새빨갛게 달아오른 총열의 열을 식히듯 하얀 김을 내뿜었다. 희연은 당혹스러움을 감추지 못한 얼굴로 그것을 보았다.

희연의 머릿속에 떠오른 생각은 하나뿐이었다.

큰일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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