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8화
듀라한은 묵직한 도끼를 집어 던질 때 보여준 괴력으로 자신의 머리 역시 무척이나 빠르고 강력하게 집어 던졌다. 노리는 것은 아직까지도 해골 말 위에 다시 오르지 못한 흑염의 아이였다.
이미 한 번 총이 과열되었다. 하나는 폭발까지 했다. 남은 총 한 자루를 불안하게 보는 것은 희연으로선 어쩔 수 없는 반응이었다. 아까보다 식긴 했어도 여전히 열감이 남아 있었기 때문이었다.
혹시 모를 불상사를 대비해 가능한 적은 횟수로 듀라한을 상대해야 했다. 희연은 눈을 부릅떴다. 완전히 듀라한의 머리를 치워버리는 건 힘들지 몰라도 경로를 바꾸는 것 정도는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이단을 향한 철퇴>…!”
이제는 제법 익숙한 철퇴의 천사가 듀라한의 머리를 날리러 힘차게 날아올랐다. 철퇴와 투구. 철로 이루어진 것들이 부닥치며 경쾌한 소리를 냈다.
땅…!
“…반칙이잖아!”
철퇴의 천사는 제 할 일을 다 했다. 잘 해냈다. 그러나 지켜보던 희연은 반사적으로 외쳤다.
철퇴의 천사에 의해 경로가 틀어졌던 듀라한의 머리는 갑자기 입을 벌리더니 불을 뿜어냈다. 그 불을 에너지 삼아 다시 흑염의 아이 쪽을 향해 날아가는 것을 봤으니 희연의 반응은 어찌 보면 당연한 거였다.
자유 의지를 가진 듯 부메랑처럼 왔다 갔다 하는 도끼보다도 불을 뿜는 머리가 희연에겐 반칙처럼 느껴졌다.
하지만 분해하고만 있을 수 없었다. 경로를 트는 방식이 통하지 않는다면 공격을 하는 본체를 잡아야 한다.
듀라한의 머리를 공격해 봤자 의미가 없다. 보통 살아있는 것이 적일 경우 머리와 심장이 약점이라는 건 기본적인 상식이나 애초에 듀라한은 머리와 몸이 이미 분리된 언데드 몬스터였다.
머리도 무기로 써먹는 언데드 몬스터의 심장이 팔딱팔딱 생동감 있게 뛰고 있을 것 같지는 않았다. 그렇다면 머리도, 심장도 아닌 듀라한의 약점은 무엇일까?
애초에 언데드 몬스터는 다른 몬스터 보다도 특징이 많아 어찌 보면 특별한 종이었다. 특정 직업군의 공격이나 성속성이 부여되지 않은 무기에는 타격을 받지 않는 것부터가 그랬다.
더불어 데스 나이트 같은 경우는 의외로 눈이 약점이었다. 번뜩이는 안광일 뿐이라 생각한 불덩어리 같은 눈이 말이다.
그렇다면 듀라한 역시 예상하지 못한 부위가 약점이거나, 그도 아니면 따로 공격하는 법이 있는 걸지도 몰랐다.
머리가 따로 노니 눈은 약점이 아니다. 그렇다고 해서 몸 쪽에 약점을 드러내는 갑옷의 틈새 같은 것도 없다.
준보스라도 어쨌든 보스 몬스터급이니 쉽게 무찌를 수 있도록 약점을 대놓고 드러내지 않는 듯했다. 그러나 희연은 남의 약점을 간파하는 스킬을 가지고 있었다.
“강자 님…!”
스킬을 사용하기 전 희연은 먼저 확인부터 했다. 데스 나이트를 상대하느라 바삐 움직이던 방패 전사 강자가 중간에 손을 흔드는 것으로 듣고 있음을 표했다.
희연도 데스 나이트와의 싸움을 도우며 그에게 외쳤다.
“듀라한한테 약점이 따로 있어요?”
“약점이요?”
의아하다는 얼굴로 희연을 돌아본 방패 전사 강자는 새삼스레 희연이 요정의 무덤 던전이 처음이라는 것을 깨달은 표정을 지었다.
그에 희연은 자신의 질문이 그렇게 이상했던 건가 하고 생각했다.
“듀라한은 약점을 따로 없고, 대신 공략법이 존재해요!”
“공략법이요?”
“여기 있는 데스 나이트부터 다 해치우는 거예요! 그때까지 제거 대상 1순위는 안 죽고 버텨야 하는 거고요!”
데스 나이트부터 다 처리해야 한다. 그 말에 희연은 뒤늦게 이 싸움의 기이한 점을 알아차렸다. 듀라한은 가만히 있었다.
정확히 말하면 데스 나이트를 지휘하고 도끼와 머리를 던질지언정 몸은 가만히 그들과 거리를 벌렸다. 가까이 오지 않았다.
“…….”
희연은 총을 들고 앞으로 뛰어나갔다. 데스 나이트와 힘겨루기하고 있던 방패 전사 강자의 바로 뒤로 가 그의 상대였던 몬스터의 투구 속으로 총을 집어넣었다.
탕…!
방패 전사 강자에게 순간이나마 여유를 만들어 준 희연은 곧바로 질문을 이어나갔다.
“데스 나이트 다 죽이면 정확히 어떻게 되는 거예요?”
“네? 어… 데스 나이트 잔해가 듀라한이랑 합쳐지면서 그때부터 듀라한 하나만 상대하게 되는데요…. 아! 흑염의 아이 님이 해골들 합칠 때랑 비슷하다고 보면 돼요.”
희연에게 답해준 방패 전사 강자는 다시 몬스터를 상대하러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희연은 곰곰이 생각했다.
듀라한은 머리가 약점이 아니다. 이 난전 속에서 머리는 날릴지언정 몸은 안전한 곳에 둔다는 점에서 약점이 반대로 몸일 가능성이 높았다.
흑염의 아이가 소환했던 해골들이 서로 합쳐지며 더 강해진 것처럼 데스 나이트의 잔해가 듀라한의 몸이라는 약점을 보완하는 역할을 하는 거라면….
애초에 이 싸움은 데스 나이트를 무시하고 듀라한의 몸부터 쳐야 하는 게 맞는 거 아닌가?
그러나 일행 모두가 당연하다는 듯이 듀라한은 뒤로 하고 데스 나이트부터 잡는 것에도 이유는 있을 터였다. 희연은 잘못된 자신의 판단으로 인해 감당 못 할 일이 일어날까 싶어 섣불리 움직이지 않았다.
대신, 답을 알 만한 사람에게로 고개를 돌렸다.
“데스 나이트가 아니라 듀라한 몸부터 처리하는 게 맞아요?”
“…글쎄.”
“맞구나!”
이세인은 답 해주지 않았고 마리아는 의뭉을 떨었다. 미묘하게 올라가는 마리아의 입꼬리를 보며 희연은 확신했다.
“데스 나이트가 아니라 듀라한의 몸부터 해치워야 하는 거예요!”
희연은 곧바로 일행에게 이 사실을 알렸다. 그러나 모두가 그녀의 말에 미심쩍은 표정을 지었다. 심지어 모짜렐라마저 마찬가지였다.
잠시 뒤로 물러난 모짜렐라는 희연을 붙잡고 설명했다.
“듀라한은 데스 나이트부터 치우고 해치워야 하는 거야.”
듀라한을 해치울 때는 데스 나이트부터. 그것이 너무나 당연한 상식이라는 투였다.
“…왜?”
“왜냐니. 봐. 지금 상태로 듀라한 해치우겠다고 달려가면 어떻게 되겠어. 어그로 다 끌고 일 대 다수로 밀리는 게 어떤 건지 경험하고 싶은 게 아닌 이상에야 그런 짓을 왜 해. 그리고 애초에 지금 나온 요정의 무덤 공략법도 다 이런 식으로 한다고….”
모짜렐라는 말끝을 흐렸지만 뜻은 명확했다. 모두가 반대하는 근거도 없는 계획을 실행하지 말라는 거였다.
“…….”
머뭇거리던 희연은 근거를 제시했다.
“마리아가 맞다고 했는데도?”
“…진짜?”
“정확히 말하면 그렇다고 말한 건 아닌데… 물어보니까 확실하게 답 안 해줬어!”
마리아의 성격을 희연보다도 잘 아는 모짜렐라의 얼굴에 고민 어린 기색이 떠올랐다. 무작정 아니라고 하지 않는 것으로 보아 그 또한 희연의 의견이 가능성 있는지 생각해 보는 듯했다.
“…맞다고 해도 문제야. 우리 중에 원딜이라고 하나 있는 건 네크로맨서야. 그것도 지금 처치 대상 1순위라 도움이 안 되고. 그리고 애초에 마법사라고 해도 저기까진 마법 못 날려.”
“나는? 나도 공격 범위 넓어!”
“공격력이 부족하잖아.”
“…꼭, 원딜이어야 하는 건 아니잖아.”
“?”
희연을 따라 시선을 돌린 모짜렐라는 조금 오묘한 표정을 지었다.
“…내가 원딜을 거론한 이유는 우리 레벨 중에 데스 나이트 무리를 다 건너뛰고 듀라한한테 접근하는 게 가능한 사람이 없어서야. 접근한다 해도 해치울 수 있단 확신도 없고.”
“버프랑 힐 스킬을 다 몰아서 넣어줘도? 나 디버프 스킬도 있어! 여기서 저기까지 닿아!”
“…….”
“여기 힐러만 셋인데…!”
“하나는 양심적으로 빼.”
“…사실 그것도 감안하고 말한 거야.”
“…….”
일 대 다수 싸움이 가능한 딜러의 발이 묶인 상황이었다. 모짜렐라도 희연의 말이 가능성만 있다면 충분히 실행해 볼 만하다는 건 알았다.
문제는 공략법을 읽기만 한 자신도 희연의 말을 안 믿었는데, 이미 여러 번 지금의 방식으로 던전을 공략한 이들이 순순히 모험을 강행할 것인가 하는 문제였다.
한참을 고민한 끝에 모짜렐라는 결론을 내렸다.
“…힐러가 까라면 까야지.”
“너 방금 되게….”
“시끄러워.”
희연의 입을 막은 모짜렐라는 별로 탐탁지는 않으나 보고 배운, 마리아의 방식을 채택했다.
성큼성큼 앞으로 걸어간 모짜렐라는 일행에게 통보했다.
“듀라한부터 공격할 거예요.”
“네? 네? 아니, 갑자기 모짜렐라 님까지 왜… 그러다 우리 다 죽어요…!”
“마늘 님이 듀라한 공격해 주세요. 엄호해 드릴 거고, 모든 힐, 버프 다 집중시킬 거예요.”
“저요? 진짜로 그거 하시게요? 저 옛날에 그거 하다 죽었는데….”
“네. 할 거예요.”
“이런 제멋대로 행동이라니. 이런 건 조금 경우 없….”
“넌 조용히 해. 발언권 없어.”
권력을 휘두르는 힐슬아치나 다름없는 모짜렐라의 모습에 파티원들은 당황했고, 마리아는 뒤에서 웃었다. 무척 즐거워 보였다.
마늘쫑쫑은 이 이야기를 꺼낸 범인인 희연을 간절한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이건 아니라고, 제발 했던 말을 주워 담아 달라는 눈빛이었다.
“…파이팅.”
모짜렐라가 나서서 힐슬아치 역할을 맡아 준 와중에 혼자 빠질 수는 없었다. 희연도 뻔뻔하게 굴기로 했다.
라쀠는 없는 것과 다름없었으므로 파티의 모든 힐러가 도박을 하겠다 주장한 것과 다를 게 없었다. 힐러 없으면 제대로 돌아가지 못하는 게 파티인 이상, 방패 전사 강자도 마늘쫑쫑도 눈물을 머금고 이 작전을 따라야 했다.
“되게… 서로를 믿으시나 보다…. 모짜렐라 님도 처음에는 막 반대하시는 것 같더니….”
힘없는 마늘쫑쫑의 말에 모짜렐라는 어깨 한 번 으쓱이고 말았다. 하지만 희연은 알았다. 현재 파티 내에서 모짜렐라가 정말로 믿는 사람은 없다는 걸 말이다.
그는 그 자신을 믿는 거였다. 마리아라는 인간한테 시달려 온 지난날의 자신을 말이다.
솔직히 말해 희연은 현재 이 파티에서 동료가 된 파티원을 진심으로 믿는 사람은 아무도 없으리라고 생각했다. 원래부터 알던 사이인 희연과 모짜렐라, 마늘쫑쫑과 흑염의 아이 같은 관계가 아니라면 말이다.
당장 그녀만 해도 그나마 모짜렐라를 믿었지 그 외에는 별로 믿음이 없었다.
그런 만큼 다른 파티원들이 그녀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을 때도 당연한 일이라고 여겼다. 이렇게나마 힐러라는 권력을 휘둘러 일을 진행시키는 게 신기할 정도였다.
그러나 사지로 달려나가는 역할을 맡은 마늘쫑쫑은 현재 믿음이 없다 못해 상황이 불합리적으로 느껴질 수 있었기에 희연은 그녀에게 줄 만한 근거 자료를 수집하기로 하였다.
“<사냥꾼의 직감>.”
[스킬 <사냥꾼의 직감>을 사용합니다. 일정 시간 동안 상대의 약점이 표시됩니다.
‘단 한 발의 총알이 가져가는 목숨은 누구의 것인가’]
희연의 예상대로, 듀라한의 약점은 몸이었다. 또한 의외의 것을 보게 되었는데 데스 나이트들은 따로 약점 표기가 뜨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데스 나이트의 약점이 눈이라고 생각한 희연은 그 점에 조금 놀랐다. 눈이 약할 뿐이지 약점은 아니라는 뜻이었기 때문이다.
“…연결된 건가?”
더불어 현재 표시된 점이 하나밖에 없다는 건 데스 나이트들의 진짜 약점은 듀라한, 즉 듀라한과 데스 나이트들은 애초에 이어져 있었다는 뜻이 된다.
약점 간파 스킬이 있는 사람이 아니면 애초에 알 수가 없는 구조였다.
“듀라한 몸이 약점 맞아요! 저 약점 보는 스킬 있거든요!”
어찌 됐건 마늘쫑쫑에게 해줄 말이 생겼다. 내내 죽상을 하고 있던 마늘쫑쫑도 희연의 말에 조금 신뢰가 생겼는지 방금 전과는 다른 눈으로 듀라한을 보았다.
“…저 안 죽게만 해 주세요!”
마침내, 울분이 차 있기는 했지만 마늘쫑쫑도 동의했다.
“안 죽게 할게요! 꼭!”
희연은 다짐하며 총을 들었다. 마늘쫑쫑은 이를 악물고 달려나갈 준비를 했다.
듀라한에게 가는 길을 데스 나이트들이 모두 막고 있는 지금, 마늘쫑쫑이 써먹을 수 있는 길은 하나뿐이었고, 민첩과 힘에 스텟을 투자해야 하는 직업 격투가를 가진 마늘쫑쫑만이 시도라도 해볼 수 있는 일이었다.
“<촛불의 숨결>!”
“<천사의 날개깃>, <검의 노래>! 지금!”
“마늘쫑쫑 님 여기로!”
방패 전사 강자가 방패를 내밀었다. 마늘쫑쫑이 그 위로 올라탔고, 방패는 힘차게 휘둘러졌다. 방패 전사 강자의 힘을 발판 삼아 뛰어오른 마늘쫑쫑이 발을 내디딘 것은 데스 나이트의 머리 위였다.
“으아아아아악…!”
마늘쫑쫑은 지금의 심정이 뚜렷하게 느껴지는 소리를 지르며 데스 나이트들의 머리를 징검다리 삼아 듀라한을 향해 뛰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