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9화
물론 데스 나이트들이 바보도 아니고, 자신들의 머리를 밟고 다니는 마늘쫑쫑을 가만두지는 않았다.
마늘쫑쫑을 향해 내뻗는 손길을 막고 엄호하는 것은 그녀를 제외한 나머지 이들의 역할이었다.
방패 전사 강자와 트롤 임페리얼 나이츠는 도발 스킬을 사용해 최대한 적들의 관심을 자신들에게로 돌렸다.
유저는 몬스터와 닿기만 해도 피가 닳는 관계로 희연과 모짜렐라는 번갈아 가며 마늘쫑쫑에게 열심히 치료 스킬을 사용했다.
또한 희연의 경우 무기 특성상 조금 더 정밀한 조준이 가능하고 사정거리가 넓었기에 그녀는 치료보다는 마늘쫑쫑의 발을 붙잡는 손을 치우는 역할을 주로 맡았다. 길을 터는 역할도 말이다.
“오른쪽으로!”
힐러가 가져야 할 덕목에 대해 이야기할 때 이세인에게 답안을 시야라고 내놓은 만큼 모짜렐라는 상황을 보는 눈이 좋았다. 그는 희연을 조종해 최대한 마늘쫑쫑이 가기 쉬운 길을 골라냈다.
한발 앞서 데스 나이트의 손을 치워내는 희연의 공격에 마늘쫑쫑은 뒤에 있을 이들을 믿고 그 길을 따라 달렸다. 몸 자체가 무기라 그런지 미처 처리하지 못한 적의 손길이 있을지라도 그녀는 수월하게 계속 이동했다.
“<이단을 향한 철퇴>! <이단을 향한 철퇴>! <이단을 향한 철퇴>! <이단을 향한 철퇴>!”
희연은 말할수록 혀가 꼬이는 기분을 느끼면서도 스킬을 남발했다. 철퇴의 천사들이 마늘쫑쫑이 갈 길을 개척하는 모습은 멀리서 보면 나름 장관이었다.
총이 하나 더 있는 상태였다면 더 빠르게 길을 낼 수 있었을 거라 아쉬워하며 희연은 조금 더 앞으로 발을 내디뎠다.
이제 슬슬 마늘쫑쫑과의 거리가 멀어졌기에 앞이 잘 보이지 않는 지경이 되었다. 데스 나이트들을 모두 새까맣고 덩치가 커서 조금만 몰려 있어도 작은 벽처럼 시야를 가렸다.
폴짝거리기도 하고 뒤꿈치를 들기도 하는 등 시야를 확보하기 위해 애를 쓰는 희연을 보며 모짜렐라 역시 같은 걱정을 했다.
“위로 올라가야 하는데….”
“위? 크림 부르게?”
에흐테를 다시 부르려 하는 희연에게 모짜렐라는 고개를 저었다.
“아니. 우리 지금 하늘 위로는 못 올라가. 듀라한이랑 괜히 눈 마주쳤다가 대상 순위가 바뀔 수도 있으니까 안 돼. 지금 힐러 하나가 부족한 와중에 괜히 어그로 끌 수는 없어.”
모짜렐라의 단호한 말에 희연은 반사적으로 고개를 들어 흑염의 아이를 확인했다. 그들이 도전과도 같은 계획을 실현하는 동안 그녀는 듀라한의 머리와 도끼를 마치 기예라도 부리는 것 같은 몸놀림으로 피하고 있었다.
물론 위험한 순간들이 있긴 했지만 그때마다 흑염의 아이는 해골들을 소환해 대신 공격을 맞게 하는 등, 나름 요령을 부리며 버티고 있었다.
역시, 어둠에 심취했음에도 불구하고 이 중 가장 높은 레벨을 보유한 사람다운 실력이었다.
흑염의 아이는 조금 더 버틸 수 있을 거라며, 희연은 나름 그녀를 믿어야만 할 수 있는 판단을 내렸다.
희연은 모짜렐라의 경고를 떠올리며 듀라한의 눈에 안 띄되 시야를 확보할 수 있는 방법이 뭐가 있을까 고민해 보았다. 주위에 답이 있지 않을까 둘러보며 말이다.
그들이 마늘쫑쫑처럼 데스 나이트들을 디딤돌 삼을 수는 없었다. 두 사람이 발차기를 해봤자 데스 나이트에게는 타격이 없었다.
그렇다고 키가 큰 방패 전사 강자나 트롤 임페리얼 나이츠의 위로 올라탈 수 있는 것도 아니니 다른 방식으로 시야를 확보해야 했다.
“저기 위는 어때?”
때마침 희연은 두 사람이 올라가기에 적당해 보이는 지점을 찾아냈다.
어그로가 힐러를 제외한 모든 이들에게 쏠린 다소 보기 드문 상황이 아니라면 처음부터 해보자는 말이 안 나왔을 지점이기도 했다.
대부분의 몬스터의 시선이 다른 곳으로 향해 있다는 것을 확인한 모짜렐라는 고개를 끄덕이는 것으로 평소보다 대담히 움직이자는 희연의 의견에 동의했다.
물론 도망가는 라쀠도 붙잡고 말이다. 아무리 없는 셈 치겠다곤 했으나 지금은 힐러 하나가 아쉬운 상황이었다.
“잠, 잠깐만요…! 잠깐만! 저, 저, 저 죽어요! 이렇게 가까이 가면 죽어요!”
지금까지 중 가장 길게 말을 한 라쀠가 제발 놔달라며 발버둥쳤다. 하지만 똑같이 연약한 힐러일지언정 레벨은 훨씬 높은 모짜렐라의 손아귀에서 그가 벗어날 수 있을 리가 없었다.
모짜렐라는 라쀠를 경계선이며 동시에 방어벽 역할을 해주던 해골 병사들 너머로 던져 버렸다.
“으아…! 으아! 으아아악…!”
“와, 잘 싸우는데?”
정말로 라쀠는 잘 싸웠다. 근접전에 재능이 있었는지 메이스를 휘두르며 데스 나이트들 사이에서 열심히 생존해 나갔다.
허리춤에 달아놓은 포션도 쓰고, 스킬도 쓰고. 열심히 하는 모습이 살아남으려 정말 노력하는 것 같아 이제야 참 보기 좋았다.
라쀠의 모습에 제법 만족한 희연은 해골 벽 앞에서 서성거리고 있던 말을 탄 해골 병사의 뒤로 이동했다. 해골 말의 크기가 제법 컸기에 그 뒤편에 올라타는 건 어렵지 않았다.
달그락- 달그락-
갑작스러운 접근에 깜짝 놀란 듯 턱관절을 열심히 딸각거리는 해골 병사를 괜찮다 괜찮다 달랜 희연은 중심을 잡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해골 말을 이루는 뼈가 단단하면서도 사포질을 한 듯 조금 거친 감이 있었기에 발을 디디고 중심을 잡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그러나 혹시 모를 경우를 대비하기 위해 그녀는 총을 들지 않은 손으로 해골 병사의 어깨를 짚었다. 딱딱하고 거친 뼈의 느낌이 생경해 조금 기분이 이상하기는 했다.
높이도 좋았고, 주위에 적의 공격을 막아주는 해골 병사들도 많았으며 데스 나이트들은 듀라한처럼 무기를 집어던지지는 않았다.
희연은 사격하기 딱 좋은 장소를 선정한 것이다. 모짜렐라 역시 희연의 옆, 또 다른 해골 말 위로 올라서며 지팡이를 들었다.
두 사람이 조금 더 적극적으로 개입할 순간만을 기다렸다는 듯 마늘쫑쫑이 발밑에 데스 나이트를 발로 마구 짓밟으며 도움을 요청했다.
“많아요! 많아! 너무 많아서 더 못 가요!”
다급한 목소리는 자신이 여기까지 온 것만으로도 이미 최선을 다했음을 어필했다. 이 이상 듀라한에게 접근하지 못한다고 주장하는 목소리는 호소력이 짙어 엄살이 아님을 증명했다.
조금만 더 깊이 파고들면 듀라한에게 닿을 수 있는 거리였다. 마늘쫑쫑도 그것을 알기에 힘들면서도 섣불리 되돌아오려 하지는 않았다. 그녀도 아까웠던 것이다.
흑염의 아이가 발이 묶인 지금 원거리에서 마늘쫑쫑을 엄호하고 도울 수 있는 건 희연과 모짜렐라뿐이었다.
“치즈!”
희연의 공격은 모두 단일성이었다. 지금 같은 상황에 큰 도움은 주지 못한다.
하지만 모짜렐라는 아니었다. 마리아에게 끌려다니느라 제대로 보지 못했지만 밴시 무리 모두가 사라진 것만은 제대로 본 희연은 간절한 마음으로 그를 불렀다.
“<성전의 정화>…!”
스킬의 재사용 대기시간이 끝나기만을 기다리던 것은 모짜렐라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는 저를 부르는 간절한 목소리에 답이라도 하듯 스킬을 사용했다.
하얀 선이 쭉쭉 그어졌다. 그림이었다. 범위는 데스 나이트 모두를 감쌀 정도, 당연히 일행 역시 그 안에 포함되었다. 면 없이 선만 있는 그림 속 세상은 기이하고 신비로웠다.
어딘가의 건물 내부를 표현한 그림은 범위가 넓은 만큼 실제 어느 장소에 그들을 밀어 넣은 것 같은 감상을 느끼게 만들었다.
정확히 어디를 표현한 곳인지는 모르나 언뜻 보기에도 알 수 있는 건 데스 나이트 같은 언데드 종류의 몬스터가 환영할 만한 배경은 아니라는 거였다.
데스 나이트들의 움직임이 점차 느려졌다. 그에 따라 성전을 재현시킨 그림은 생명을 얻은 것처럼 스멀스멀 움직이더니 제멋대로 새로운 그림을 그려내기 시작했다.
정확한 묘사 하나 들어가지 않았지만 둥근 머리, 펄럭이는 옷을 입고 양팔을 드는 그것들은 사람이었다.
최소한의 표현으로 완성된 사람 그림, 그들은 이곳저곳에서 일어나 손을 들어 올렸다. 데스 나이트 사이에도 있었고, 그려지는 그림의 선으로 이어진 것도 있었다. 희연의 바로 옆에서도 하나 나타났다.
그들을 중심으로 하얀 선이 환한 빛을 내뿜었다. 빛은 선으로 이어지고 이어져 종래엔 그들이 서 있는 지역 일부가 신성한 빛으로 가득할 정도가 되었다.
조금 전에 못 본 게 아쉬웠다는 생각이 절로 드는 광경에 넋을 놓고 보던 희연은 투탕투탕, 상황과 맞지 않는 철갑옷이 울리는 소리에 다시 정신을 차리고 앞을 보았다.
움직임이 느려지고 점차 피가 닳는 데스 나이트들을 걷어차며 마늘쫑쫑이 앞으로 달려나가고 있었다.
희연도 총을 들었다. 시야가 높아지니 비단 마늘쫑쫑의 발을 붙잡는 손뿐만이 아닌 데스 나이트들의 투구 속 눈도 겨냥할 수 있었다.
“조금 더 멀리 있는 적 겨냥해 봐! 사정거리 제대로 봐야 해!”
희연보다 앞서 더 멀리 있는 적에게도 스킬을 사용해 보던 모짜렐라가 인상을 찌푸리며 말했다.
희연은 조금 더 앞으로 몸을 내밀었고, 해골 병사가 슬쩍 말에서 내려 자리를 비켜주었다. 짚을 곳을 잃은 손은 총을 잡는 데 더해졌다.
넘어지지 않기 위해 다리에 힘을 주며 희연은 모짜렐라의 말에 따랐다. 희연의 공격은 듀라한의 바로 앞에 있는 데스 나이트에게도 닿았다.
“안 닿아….”
반면 모짜렐라는 듀라한은커녕 그 주변에 있는 몬스터에게도 공격이 닿지 않았다. 범위 자체가 기본적으로 넓은 <성전의 정화>는 괜찮았으나 그 외에는 힘든 모습이었다.
모짜렐라가 가진 <떡갈나무의 분노>를 위해서는 그들이 더 앞으로 이동하건, 듀라한을 그들이 있는 쪽으로 끌어내건 해야 했다.
전자는 전체적으로 피는 닳았을지언정 아직 바글바글한 데스 나이트 때문에 힘들었다. 해골 병사들이 방벽이 되어준 것처럼 데스 나이트 역시 듀라한을 위한 방벽 역할을 하고 있었다.
“밀어붙일까?”
모짜렐라의 광역 스킬로 데스 나이트들의 HP는 제법 닳았다. 흐릿해지는 그림을 따라 주는 피해 역시 줄어들었지만 단단한 방어력을 자랑하던 그들이 약해진 건 사실이었다.
그래도 나름 튼튼한 트롤 임페리얼 나이츠라도 굴려서 길을 내볼까, 아니면 사슬을 꺼내 하나 남은 총에라도 연결시켜 철퇴의 맛을 빙빙 휘두르며 나아가야 할까 고민하던 희연에게 모짜렐라는 동의를 표했다.
“…듀라한만 잡으면 돼. 밀어붙여.”
“진짜…?”
연약한 본인의 방어력은 고려하지 않는 모짜렐라의 눈에는 독기가 그득해서 희연은 조심스레 물어볼 수밖에 없었다. 먼저 밀어붙이냐고 물은 건 사실이었지만 희연은 반쯤은 그냥 해본 말이었다.
하지만 그는 이미 마음을 먹었다.
“유니콘 꺼내.”
듀라한의 머리와 도끼 때문에 하늘로의 이동은 안 된다 주장하던 모짜렐라가 말을 번복했다. 희연은 그가 정말로 결심했고, 깊이 독기를 품었구나 하는 것을 눈치채고 얌전히 해골 말 위에서 내려왔다.
해골 말 위로 해골 병사가 다시 올라타는 것을 확인한 희연은 에흐테를, 모짜렐라는 크림을 꺼냈다.
“잘 들어. 여기서 네크로맨서가 더 어그로를 끌지 않는 이상 듀라한은 바로 우리를 노릴 거야. 날아다니는 힐러만큼 눈에 띄는 것도 없으니까.”
“그렇지?”
“듀라한 공격에 안 맞으려면 너랑 나랑 최대한 멀리 날면서 어그로를 계속 나눠 가져야 해.”
“그런데 우리 마음대로 될까? 우리한테 별로 관심을 안 가지면….”
“마리아가 그랬어. 최고의 어그로는 힐이다.”
“으응….”
말의 요지는 결국, 번갈아 가면서 힐 스킬을 사용하는 것으로 듀라한의 공격의 혼선을 줘야 한다는 거였다. 고개를 끄덕인 희연은 이참에 피가 뚝뚝 깎여나간 흑염의 아이를 치료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정 어그로 끌기 힘들어진다 싶으면 제물 바치면 그만이야.”
“…….”
독기 품은 모짜렐라는 조금 무서웠다. 희연은 제물이 될 가능성이 높은 트롤 임페리얼 나이츠와 라쀠 쪽을 힐끗 쳐다보다 고개를 돌렸다. 그들의 업보였다.
당연하다면 당연하게도 두 사람의 계획을 모르는 방패 전사 강자는 각자의 펫 위로 올라타는 두 사람을 당황한 얼굴로 바라보았다.
설마 도망가는 건가요? 이 파티 버리는 건가요? 얼굴 가득한 의문은 파티의 존망과 더불어 본인 혼자 남아 이 파티를 책임져야 하는 건가 하는 절망으로 점차 물들었다.
희연은 안심하라는 의미로 손을 흔들어주었다. 그게 우리는 끝났다는 인사인 것만 같아 방패 전사 강자는 더욱 표정이 어두워졌다.
“아.”
그러나 희연은 때마침 새빨갛게 물들어가는 모짜렐라를 보았기에 그 이상 방패 전사 강자에게 신경 써주지 못했다.
모짜렐라는 제 몸이 붉은 액체로 흠뻑 젖은 것을 확인하자마자 크림을 재촉해 듀라한을 향해 날아가기 시작했다. 내내 흑염의 아이만 공격하던 듀라한의 머리와 도끼가 그의 뒤를 쫓았다.
이 틈에 흑염의 아이도 치료할 겸, 모짜렐라가 조금 더 앞쪽까지 날아갈 수 있게 도울 겸 희연은 총을 들었다.
“<치유의 빛>!”
그리고 흑염의 아이는 그 스킬을 피했다.
“…?”
희연은 당황했다. 자신이 잘못 겨냥했을 리 없으므로 이건 흑염의 아이가 멋대로 피한 게 맞았다.
“…<치유의 빛>.”
흑염의 아이는 이번에도 피했다. 힘껏 몸을 굴리며 해골 말 위로 올라탄 흑염의 아이는 태연자약하게 희연을 돌아보았다. 그 무심한 눈과 달리 그녀의 HP는 희연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듯했지만 말이다.
설마….
치료를 거부하는 흑염의 아이에 불길한 생각이 든 희연은 모짜렐라 쪽을 한 번 확인한 뒤 힘껏 외쳤다.
“힐 받아요!”
“더러운 신의 종의 말 따위 내가 들을 것 같은가! 감히 내게 명령하지 마라!”
“뭐라는 거예요 진짜….”
흑염의 아이는 진심으로 지금이 그럴 때라 여기는 걸까? 희연은 낯을 찌푸렸다. 마차를 부술 때만 해도 손발을 맞추는 게 가능하긴 하구나 생각한 게 착각이었나 싶은 발언이었다.
그리 좋아하는 고독한 어둠이 신관한테 치료받지 말라 속살거렸냐 물어보고 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