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0화
“하아….”
모짜렐라에게로 돌아간 1순위를 다시 뺏어와야 하는데 치료 대상이 협조하지 않아 희연은 조용히 한숨만 내쉬었다.
빗나간 치료는 치료로 쳐주지 않는지 듀라한은 모짜렐라에게만 지극한 관심을 보였다.
“…….”
희연은 물끄러미 총을 내려다보며 고민했다. 치료만 하면 되는 거 아닐까 하고 말이다. 수단과 방법은 중요한 게 아닐지도 몰랐다.
그녀는 물리 공격력이 그리 높은 편이 아니었다. 그러니 물리적인 치료를 해도 흑염의 아이는 치료될지언정 별님을 보러 가지 않을 것이다.
아니다. 생각해 보면 물리적인 치료의 경우 아프기만 할 뿐이지 물리적 대미지까진 입진 않았다. 역시 물리 치료가 답인 것 같았다.
힐러는 성격 버리게 된다는 말의 의미를 몸소 느껴보던 희연은 결심하고 총을 잡은 손에 힘을 주었다. 손가락은 방아쇠에 걸려 있지 않았다.
공격적인 기세가 된 희연을 본 흑염의 아이는 알 수 없는 웃음을 실실 흘렸다. 그 모습에 조금 울컥한 희연은 접근이 불가하다면 악령이라는 반칙을 써서라도 맞추고 말겠다며 의지를 불태웠다.
하지만 그런 희연의 의지는 얼마 가지 않았다. 모짜렐라가 분노로 공포를 잊은 것처럼 그녀 역시 황당함에 분노를 잊은 것이다.
“아이 님…!”
“이 몸의 위대함에 감복하라…!”
흑염의 아이는 뛰어내렸다. 해골 말에서, 밑으로! 듀라한 쪽으로 말이다!
희연은 순간적으로 생각했다. 네크로맨서는 해골을 다루니까 해골처럼 튼튼한가…? 물론 아니었다.
모짜렐라를 신경 쓰느라 바빴던 듀라한의 머리는 흑염의 아이를 보지 못했다. 희연을 제외하고 흑염의 아이의 이상 행동을 가장 먼저 알아차린 것은 마늘쫑쫑이었다.
당연했다. 간신히 듀라한의 몸통에 가까이 접근한 그녀의 앞으로 흑염의 아이가 똑 떨어졌으니까 말이다.
“으아아악…!”
듀라한의 몸통으로 주먹을 내지르려던 마늘쫑쫑은 시커먼 물체가 코앞에 떨어지자 무척이나 놀랐다. 그게 제 친구이고, 떨어진 위치가 듀라한의 몸통이라는 것을 보고는 경악했다.
듀라한의 머리를 지팡이로 쳐내던 모짜렐라도 그 비명에 고개를 돌렸다가 뭐라 말로 설명하지 못할 표정을 지었다.
뒤늦게 에흐테를 이끌고 그들 곁으로 이동한 희연은 순식간에 일어난 일에 대해 뭐라 설명해야 할지 몰라 입을 다물기로 했다.
네크로맨서면서 다소 물리적인 방법으로 듀라한의 몸통을 쓰러트리는 데에 성공한 흑염의 아이가 비틀거리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둘의 충돌은 듀라한에게는 큰 피해는 아니었고 흑염의 아이에겐 치명적인 피해를 남겼다.
비틀거리며 일어나는 흑염의 아이의 모습에 희연과 마늘쫑쫑은 앓는 소리를 냈다.
방금의 공격으로 모짜렐라는 색이 빠졌고 흑염의 아이는 다시 듀라한이 신경 쓰는 인물 1위로 선정되었다. 검은 망토라 티가 나지 않았지만 머리카락을 타고 뚝뚝 떨어지는 붉은 액체는 선명했다.
희연은 듀라한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흑염의 아이가 흘리는 피가 듀라한의 선택을 받아서가 아닌 듀라한을 들이박는 바람에 흘리는 피인가 의심이 들었던 공격이었다.
하지만 방어력 때문인지 듀라한은 요란하게 구른 것치고 제법 멀쩡한 모습을 보였다. 코앞에 제 관심 대상이 있음에도 눈에 띄는 반응 역시 하지 않았다. 그렇다면 도끼와 머리는?
희연은 곧바로 고개를 돌렸다. 뒤늦게 정신을 차린 모짜렐라도 마찬가지였다. 얼결에 같은 방향을 보고 눈도 마주친 두 사람은 동시에 무기를 들었다.
몸통은 얌전할지라도 도끼와 머리는 흑염의 아이를 노리고 날아오고 있었다.
“<이단을 향한 철퇴>!”
“<철퇴>!”
철퇴의 천사가 각각 도끼와 머리를 하나씩 맡아 멀리 쳐버렸다.
여전히 흑염의 아이의 이상 행동이 이해되진 않았으나 희연과 모짜렐라는 지금의 기회를 놓치지 않기로 했다.
스킬 적중을 실패할 수가 없는 거리였다. 흑염의 아이가 어그로를 끌어 준 덕에 걸어 다니는 어그로는 역할에서 자유가 되었다. 두 힐러는 듀라한의 몸을 향해 무기를 돌렸다.
몸을 틀며 희연은 인벤토리 속에서 망가진 총 대신 초보자 시절에 쓰던 기본 권총을 꺼내 들었다. 아쉬운 대로 써먹기엔 나쁘지 않은 선택이었다.
“<떡갈나무의 분노>! <안식의 레퀴엠>!”
“<장미 화환의 비둘기>, <나무 위의 친구>!”
하얀 나무뿌리에 감싸인 듀라한의 몸통을 눈물을 흘리며 노래하는 천사가 끌어안았다. 비둘기가 날아올랐고, 듀라한이 그들에게 그리했듯 까만 갑옷으로 둘러싸인 몸이 붉게 젖어 갔다.
“마늘 님!”
“네…!”
마늘쫑쫑은 듀라한을 향해 내달리며 두 주먹을 맞부딪혔다. 그러자 그녀의 두 손 위로 붉은 전류 같은 것이 약하게 흐르기 시작했다.
묶여 있고, 온갖 디버프를 먹은 보스몹이었다. 이렇게 입에 떠다 먹여주는 수준으로 준비된 보스는 없었다. 마늘쫑쫑은 조금 신이 난 기색으로 듀라한의 몸통에 주먹을 내질렀다.
쾅…!
단단한 갑옷이 움푹 들어갔다. 마늘쫑쫑은 거기서 그치지 않고 발을 들어 올렸다. 듀라한을 구성하는 갑옷이 이번에도 우그러졌다.
격투가는 따로 스킬을 사용하지 않았다. 모든 스킬이 패시브, 직업의 특성이었다. 오로지 몸만 움직이고 따로 계산할 게 없는 마늘쫑쫑의 공격은 점차 속도가 빨라지고 위력도 더해졌다.
희연은 빠르게 닳기 시작한 듀라한의 HP와 갈수록 볼품없어지는 갑옷을 보며 백희준의 충고를 떠올렸다. 무기를 바꾸라고 했다. 격투가들이 쓰는 쪽으로.
“…….”
그녀는 앞으로도 무기를 바꾸지 말자 다짐했다. 우그러지는 갑옷을 보니 백희준이 정말 무슨 생각을 하고 말했는지 모르겠단 생각만 들었다.
아무리 그녀가 가끔 실수로 사람을 총으로 치긴 했지만, 그래도 저런 식으로 주먹질하면서 힐이라고 주장하는 건 아니었다.
비록 조금 전만 해도 물리 치료됴 치료로 쳐도 되는 것 아닌가 싶었지만, 그래도 ‘치료>물리’의 목적이 성립해야 된다는 생각을 못할 정도도 아니었다.
진로에 대한 짧은 고민을 끝낸 희연은 기본 권총을 다시 인벤토리에 던져 넣었다. 말도 많고 탈도 많았지만 역시 총이 좋은 것 같았다.
고민을 끝낸 희연은 에흐테의 소환을 해제하고 밑으로 내려갔다. 아직까지도 듀라한과 부딪힌 피해로 정신을 못 차리고 비틀비틀거리는 흑염의 아이를 낚아챘다.
딱-!
“아…!”
“아, 실수. <치유의 빛>.”
희연은 몇 번 더 스킬을 써서 고생 많은 흑염의 아이의 HP를 착실히 치료해 주었다.
HP가 부족하면 자동으로 생기는 상태 이상으로 인해 마음대로 못 움직이는 그녀의 모습은 지금까지 희연이 본 모습 중 가장 얌전했고, 그래서 마음에 들었다.
치료가 끝난 후 흑염의 아이는 제 머리며 어깨, 등을 어루만질 뿐 불만을 토로하거나 새로운 돌발 행동을 하지 않았다. 희연은 만족했다.
“됐다…!”
때마침 마늘쫑쫑 쪽도 상황이 정리됐다. 그녀는 쓰러진 듀라한의 몸통 위에서 승리의 기쁨으로 폴짝거리고 있었다. 철퇴의 천사들이 처리한 머리와 도끼도 돌아오지 않고, 데스 나이트들도 하나둘 쓰러지기 시작했다. 그들은 승리를 확신했다.
비록 정석적인 던전 공략법을 따르지 않아 마찰이 있었지만, 데스나이트를 전부 해치우고 지칠 대로 지친 상태에서 듀라한을 해치우는 것보다는 효율적인 결과물이었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점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공했다는 것이었다.
“와! 이게 진짜 되네요? 솔직히 망할 줄 알았는데!”
마늘쫑쫑은 흥분해서 외쳤다. 눈은 반짝반짝 빛나고 있었지만 말하는 것으로 보아 듀라한이 쓰러지기 직전까지도 별로 믿음이 없었던 듯했다.
희연은 그 마음을 충분히 이해했으므로 군말 없이 함께 기뻐하기만 했다.
“왜 그래?”
그리고 유일하게 기뻐하는 내색을 비추지 않는 이가 한 명 있었다. 모짜렐라였다. 그는 굉장히 미심쩍다는 얼굴을 하고 있었다.
“아니, 그냥… 별거 아니겠지.”
“치즈, 그거 알아? 사람을 화나게 하는 방법은….”
“저 듀라한.”
모짜렐라는 더 들을 필요 없다는 듯 희연의 말을 끊었다. 희연은 조금 입을 삐쭉거리다 모짜렐라의 손을 따라 고개를 돌렸다. 마늘쫑쫑의 손길과 발길이 아주 잘 느껴지는 모습으로 탈바꿈된 검은 갑옷이었다.
이제는 움직이지 않아서인지 듀라한의 잔재는 살아있다기보단 그저 몸을 움직이게 만들던 유령이 빠져나간 빈껍데기처럼만 보였다.
“이거? 왜?”
“우리가 원래 공략대로 안 해서 그런가?”
“응?”
“왜… 안 사라지지?”
“…어?”
생각해 보면 모짜렐라의 의문은 참 당연한 거였다. 모든 몬스터는 죽을 경우 따로 퀘스트를 받지 않는 이상 전리품을 남기고 사체는 사라졌다.
던전의 경우엔 마지막에 보상을 모두 몰아서 주기에 전리품조차 남기지 않았다. 가령 앞에서 본 밴시나, 지금도 빠르게 사라지고 있는 데스 나이트처럼 말이다.
“…아직 안 죽었나?”
“으아악!”
조심스러운 희연의 질문에 마늘쫑쫑은 끈질긴 것에 대한 경멸의 눈빛을 하며 듀라한의 갑옷에 새로운 자국을 만들어냈다.
깡깡거리는 소리가 나는 게 이젠 정말 커다랗고 속이 빈 깡통이라도 두들기는 것 같았다. 그러나 마늘쫑쫑이 질색하며 끝장을 본 것이 무색하게도 듀라한의 흔적은 그대로였다.
머리도, 무기도, 심지어 타고 다니던 말도 사라졌는데 몸만 그대로라 못 본 체하고 지나칠까 싶다가도 그래도 준보스라는 점이 마음에 걸렸다.
뭐라도 있으니까 이렇게 남은 거 아닐까 하고 말이다.
“우리한테 주는 선물…?”
“이건 선물이 아니라 쓰레기잖아.”
“아! 퀘스트 아이템 아닐까… 아닌데. 이런 거 뒤에서도 필요 없었는데. 진짜예요! 저 여기 던전 여러 번 왔었는데 이런 거 필요 없었어요!”
“이 몸의 위대함에 굴복한 흔적이군.”
“그건 아니겠죠?”
“그럴 리가.”
“그거 아니야.”
그들은 듀라한의 갑옷을 둘러싸고 옹기종기 모여 이야기를 나눴지만 정답이라고 할 법한 이야기는 나오지 않았다. 희연은 모짜렐라가 지팡이로 듀라한의 흔적을 콕콕 찌르는 것을 보며 입을 열었다.
“원래 공략대로 하면 듀라한은 어떻게 되는데?”
“몰라. 전체적으로 훑느라 그렇게 자세히는 못 봤어.”
그가 모른다면 유경험자인 마늘쫑쫑에게서 들으면 됐다. 희연은 고개를 돌렸고 시선을 받은 마늘쫑쫑이 천천히 설명하기 시작했다.
“어… 원래는 땅이 갈라지고 지진 나면서 막 빛이 터지고 폭발처럼 큰 소리도 나고….”
장황한 설명을 이어나가던 마늘쫑쫑의 얼굴은 점차 굳어졌다.
“아… 저런 색으로 빛이 나는데….”
“저런 색?”
무의식적으로 마늘쫑쫑의 시선을 따라간 희연도 저런 색이 무엇인지 알게 되었다. 이리저리 찌그러진 갑옷의 틈새로 기이한 보랏빛이 어른거렸다.
“…아까 폭발한다고 하지 않았어요?”
“…넵.”
“그러면 이제….”
터지겠네…?
뒷말은 이어지지 않았다. 희연이 미처 말을 다 끝맺기도 전에 다른 이들 역시 이 이후에 벌어질 일을 깨달은 것이다.
마늘쫑쫑은 제 친구를 챙겨 몸을 내뺐다. 앞으로 달려가는 것을 좋아할지언정 민첩 스텟은 형편없는 네크로맨서를 챙긴다는 점에서 참 영리한 선택이었다.
그리고 희연을 붙잡은 건 모짜렐라였다.
“<깃털 걸음>!”
그에게는 마늘쫑쫑과 같은 힘과 민첩은 없었지만 레벨로 얻어낸 스킬은 있었다!
모짜렐라의 스킬로 희연이 그와 함께 이동하고, 거의 동시에 두 사람과 비슷한 지점으로 마늘쫑쫑과 흑염의 아이가 이동한 순간, 멀리서 날아온 하얀 채찍이 그들을 한데 묶으며 휘감았다.
“으아…!”
손수 땅에 묻기도 했고, 상대도 해봤기에 희연은 이 물건의 주인을 바로 알아보았다.
희연은 발이 붕 뜨는 것을 느꼈다. 에흐테나 루로의 등 위에 탈 때와는 다른 느낌이었다. 그녀의 자유의사 없이 하늘을 난다는 것은 정말 무서운 일이었다.
“으아아아악!”
누구의 비명인지 구별할 필요는 없었다. 모두가 비명을 질렀으니 말이다.
쾅-!
마리아의 힘으로 한껏 날아오른 그들의 밑에서 듀라한은 최후의 발악이자 한때 악령이의 잘못된 꿈이기도 했던 자폭을 시작했다.
빙글빙글 돌아가는 시야며, 제 머리카락과 더불어 함께 시야를 방해하는 다른 이들의 머리카락에 희연은 밑에서 벌어지는 상황을 제대로 파악하기 어려웠다.
하지만 워낙에 폭발의 범위가 넓고 요란했기에 어지러운 시야로도 자신들이 얼마나 위험한 상황이었는지는 알 수 있었다. 더불어 그들이 폭발만 피했다 뿐이지 추락의 위기에선 벗어나지 못했다는 것 또한 알게 되었다.
계속해서 떠올라 인간이 가장 공포심을 느끼는 높이가 어디인지 알게 될 것만 같아 나오던 비명은 이어 또 다른 공포심으로 더 소리를 키우게 되었다.
“치, 치즈, 치즈, 치즈…! 방어막! 방어막! 방어막…!”
“아직 쿨타임 안 돌았어!”
폭발의 위협에서 파티원을 구해준 마리아가 과연 추락의 위기에서도 구해줄까?
희연은 이미 답을 알고 있었다. 장비 강화 성공률보다 더 낮은 확률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