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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비세스 메이커 (231)화 (231/251)

231화

넷 다 어찌나 마음이 급했는지, 네 사람 중 세 명이나 비행이 가능한 펫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그쪽으로는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으아아아악…!”

코앞으로 다가온 위험이란 소리 지르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못 하도록 뇌를 마비시키는 힘이 있었다. 그들 역시 소리만 질렀다.

그나마 희연은 떨어지는 와중에 정신을 차렸다. 이런 높이에서 날아다니는 게 한때 일상이었던 존재가 혼자 즐거워하며 두 손을 번쩍 드는 것을 코앞에서 봤기 때문이었다.

“우와!”

“…….”

자신의 몸이 홀홀 잘도 날아가는 솜 인형이라는 것을 잊은 악령이 때문에라도 희연은 정신을 차려야 했다.

홀로 어딘가로 날아갈 뻔했던 인형을 낚아채는 걸 성공한 희연은 뒤늦게 에흐테를 부르려다 입을 다물었다. 지금 같은 속도로 떨어지는 와중에 에흐테를 부르는 건 안 된다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떨어지는 사람 네 명분의 무게를 유니콘이 버틸 리가 없었다!

“…아, 아이, 아이 님!”

희연은 함께 엉켜 떨어지는 중인 흑염의 아이의 망토를 붙잡았다. 에흐테는 사람 네 명분의 무게를 못 견디지만 해골은 못 견뎌도 괜찮았다.

“해골…!”

“오, <오라, 어둠이여>!”

저 밑에서 땅이 갈라지며 해골 무더기가 산처럼 솟아났다.

희연은 저들을 향해 달려드는 해골을 향해 총을 겨누었다. 아직 변경되지 않은 얼음 탄환이 솟아난 해골 무리의 위쪽에 얇은 얼음을 얹었다.

얼음이 얹어진 경사면 위로 내동댕이쳐진 그들은 마치 미끄럼틀을 타듯 밑으로 내려갔다. 제대로 된 길이 아닌 만큼 여기저기 부딪혔지만 길이 매끄러운 덕에 큰 마찰은 일어나지 않았다.

해골로 만든 경사면 전부를 얼리지는 못해 중간부터는 해골들과 한데 엉켰지만 안 죽고 모두 살아남았다.

“아야….”

해골 잔해와 함께 땅을 구른 희연의 입에서는 절로 앓는 소리가 나왔다. 의외로 마음이 여린 모짜렐라는 담력도 여린 듯 소리도 못 내고 아직까지도 굳어 있었다.

그나마 몸 쓰는 게 익숙한 마늘쫑쫑의 회복이 가장 빨랐고, 흑염의 아이는 해골 더미 틈에 반쯤 묻혔음에도 불구하고 빠져나올 생각을 못 했다.

마늘쫑쫑의 도움으로 간신히 몸을 빼내는 흑염의 아이를 본 희연도 비틀거리며 제 발로 일어나다 다시 주저앉았다.

“…….”

어디 가서도 못 해볼 짜릿한 경험이었다. 희연은 이런 경험을 겪을 수 있게 해준 상대를 찾아 고개를 들었다 다시 수그렸다.

반항적인 눈빛을 보내기엔 마리아가 답지 않은 친절을 발휘해 준 것이란 사실이 떠올라서였다.

비록 마리아가 추락까지 책임져 주진 않았지만 살려준 건 맞았다. 폭발에 휘말리는 것과 추락 중 별님을 보러 가는 과정 중 무엇이 더 잔혹한 것인지 우열을 가릴 수 없긴 했지만 말이다.

“살았다….”

희연은 살아남은 것을 감사히 여기며 기뻐만 하자 마음을 굳게 먹었다.

“좋아하지 마.”

“…….”

그리고 마리아는 희연의 마음을 뒤흔들었다. 눈 뜨고 기절한 것 같은 모짜렐라와 비실거리는 희연을 챙겨 든 마리아는 두 사람을 대충 해골 더미 위로 옮겨 앉혔다.

덕택에 보게 된 마리아의 얼굴은 네 사람을 무자비하게 구해 준 사람치고 그리 밝지 않았기에 희연은 조금 의아함을 느꼈다. 마리아는 화를 낼까 말까 고민이라도 하는 것처럼 이를 꽉 물고 있었다.

희연은 그녀 자신은 잘못한 게 없는 것 같다는 생각을 하면서도 본능적으로 느껴지는 위협에 잠시 제 행동을 돌아보는 시간을 가졌다.

사실 희연의 걱정과 달리 마리아는 화가 났다기엔 조금 애매한 상태였다. 희연은 별로 체감하지 않는 상태였지만 그녀는 듀라한의 자폭으로 인해 다른 이들과 함께 몰살당할 뻔했다.

듀라한의 자폭은 최후의 수단인만큼 범위가 넓었고, 강력했다. 근처에 있던 넷 모두 원래라면 피할 수 없던 공격이었다.

재밌는 짓을 하네, 하고 생각하며 구경만 하던 마리아가 나설 수밖에 없었다는 뜻이다. 만약 여기서 몰살 엔딩으로 끝났다면 킹스메이커에게 제법 시달렸을 테니 말이다.

마치 남의 계획대로 자신이 초보나 돌보는 돌봄이 역할을 척척 수행하는 것 같아 마리아는 그 점이 마음에 안 드는 거였다. 그녀의 반항심은 들끓었다.

그런 마리아의 복잡하면서도 단순한 속내를 모를 희연은 끝내 이유를 알 수가 없어 결국 직접 물어보는 것을 택했다.

“화나셨어요…?”

“아니. 그냥 새삼스레 내 성격이 조금 나쁜 편인 건가 하는 생각이 들어서.”

“그렇구나….”

아, 자기 성찰의 시간을 가졌구나. 희연은 깊이 고민하지 않고 마리아의 말을 받아들였다.

빈말로도 성격 좋다는 말은 안 해주는 희연을 마리아는 새삼스러운 눈으로 보았다. 빈말이라도 해야 했나 싶어 희연은 후들거리는 모짜렐라를 붙잡는 것으로 그 시선을 피했다.

“치즈. 치즈. 정신 좀 차려 봐.”

“나 멀쩡해. 흔들지 마.”

말과는 달리 여전히 그는 일어나지를 못해 희연은 진심으로 모짜렐라를 걱정했다. 다행히 모짜렐라는 제 발로 땅을 디디고 있다는 것을 인지하자 오래 지나지 않아 그의 말대로 다시 멀쩡해졌다.

듀라한이라는 관문을 깬 것을 기뻐하며 어느새 폴짝거리기 시작한 일행을 보며 그는 입을 열었다.

“이거 하자고 두 번은 말하지 마라….”

“응….”

하얗게 질린 낯에 대고 그래도 좋게 끝났지 않았냐는 말은 차마 할 수 없었기에 희연은 조용히 긍정만 해주었다. 희연도 두 번은 할 생각 없었다.

***

모짜렐라도 정신 차리고, 파티원들은 듀라한을 해치웠다는 기쁨도 충분히 누리고.

뒤늦게 흑염의 아이가 소환한 해골들을 돌려보내는 것으로 상황을 정리한 끝에 그들은 다시 옹기종기 모여 노인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게 되었다.

노인은 힘겨운 싸움을 치른 그들에게 살려줘서 고맙다며 눈물을 흘리며 인사했다. 마음을 초조하게 몰아붙이던 원인이 없어져서 그런지 노인은 한결 부드러워진 태도로 일행을 대했다.

“그래, 차일드 롤랜드에 대해서 물어봤던가?”

“네!”

드디어 답을 들을 수 있다는 생각에 희연은 조금 들뜬 마음으로 대답했다. 노인은 고심하며 생각한 끝에 잊힌 기억을 끄집어내는 것에 성공했다.

“음… 그때가 언제였는지 잘 기억은 안 나지만은, 이것 하나만큼은 똑똑히 기억하지! 그 꼬마 도련님이 내게 길을 물었고, 나는 모른다고 했어.”

“모른다고 했다고요?”

“그래. 차일드 롤랜드, 그자가 내게 물었던 것은 요정 왕의 탑이 어디 있냐는 물음이었거든. 내 비록 요정 왕의 말을 돌보는 역할을 맡았다지만 그게 요정 왕의 탑으로 가는 길을 안다는 건 아니지 않나.”

그건 그렇다. 희연은 노인의 말에 동의한다는 뜻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대신, 길을 알 수도 있는 자가 있는 위치를 알려주었지. 바로 저쪽, 저쪽으로 쭉 가다 보면 나오는 소를 돌보는 자 말일세. 내가 이 사실을 알려주자 차일드 롤랜드, 그 무뢰한은 들고 있던 검으로 내 머리를 내리쳤네.”

“…네?”

“귀하디귀한 보검이었어. 그 반짝임은 단 한 번도 그릇되게 사용된 적 없다는 듯 정의롭게 눈부셨지. 하! 그럼 뭐하나! 그 검으로 행한 게 내 목을 내리치는 거였는데!”

노인은 두 손으로 목을 감싸 안았다. 당장에라도 귀한 보검이 제 목을 내리치던 순간의 고통이 자신을 괴롭힐지 모른다는 의심하는 것 같은 몸짓이었다.

“뭣 모르는 어린애란 그런 법이지. 일부의 정의, 규칙, 가르침만이 세상의 전부인 줄 아는 것. 책 한 권의 진리가 세상 모든 것의 진리인 줄 아는 것!”

“…….”

“어리석은 차일드 롤랜드. 그자에게는 영원히 안식 따위 없을걸세.”

노인은 담담히 분노를 주워 담았다. 저주인지 안타까움인지 모를 말을 했다.

희연은 몸을 틀어 노인이 가리킨 방향 너머를 눈에 담았다. 말을 돌보는 노인 다음에 만날 자는 소를 부리는 자라 했으니, 새로 상대할 몬스터 역시 그와 관련되어 있을 것이다.

말을 끝낸 노인은 마치 할 일을 다 했다는 듯 지팡이 하나만을 챙겨 끝을 모를 헤맴을 다시 시작할 준비를 했다.

“나는 가보도록 하지. 의미가 있겠냐마는, 움직여야지 뭐 어쩌겠나. 지금은 아니지만 언제나 나를 뒤쫓을 말발굽 소리를 피해 이만 도망가도록 하지.”

“말발굽 소리요?”

이미 다 해치운 이들의 소리를 다시 피한다는 말에 희연은 의아해했고, 노인은 뜻 모를 웃음을 마지막으로 길을 떠났다. 그들에겐 더 이상 아무 볼일 없다는 듯 뒤 한번 돌아보지 않는 모습은 언뜻 매정하다 싶을 정도였다.

한쪽만 깔끔하게 끝내버린 만남이었다. 찝찝한 마무리에 희연은 낯을 찌푸렸다.

하지만 다른 이들, 특히나 이미 여러 번 요정의 무덤 던전을 끝내 본 경험자들은 아주 당연하다는 듯 그런 노인을 배웅했다.

“혹시 공략 본 것 중에 NPC 혼자만 깔끔하게 헤어진다는 내용은 없었어?”

“공략은 던전을 어떻게 깨는지를 설명하는 거지 그런 거 적는 내용이 아니야.”

모짜렐라에게서도 영양가 있는 정보를 얻지 못한 희연은 일단 진행하다 보면 이 찝찝함도 풀 수 있으리라고 믿었다. 그리고 그 믿음은 우연히 대화를 들은 마늘쫑쫑이 확신을 주며 굳세어졌다.

나름 죽음의 길목을 함께 손잡고 갔다 온 동지애인지 마늘쫑쫑은 살아난 이후로 부쩍 희연에게 친근함을 표했다. 슬쩍 귀띔해 주는 내용만 해도 그랬다.

“던전 한번 클리어하고 나면 왜 그런지 알 수 있을 거예요. 저 할아버지가 저렇게 계속 도망 다니는 거 스토리 스포거든요.”

“그래요?”

얘기 들었다고 필요한 정보를 알려주는 모습에 희연은 착하네, 라고 생각했다. 이어지는 마늘쫑쫑의 말만 아니었으면 그녀의 착각은 계속됐을 것이다.

“있잖아요, 우리 이제 친한 거죠?”

“?”

“그러면 이제 쟤가 좀 이상한 짓 해도 봐주실 수 있나요?”

“…이상한 짓이요?”

마늘쫑쫑이 가리키는 쟤는 흑염의 아이였다. 희연은 왜 이제 와 새삼스러운 질문을 하는 건가 싶었다. 첫 만남부터 지금까지 흑염의 아이는 꾸준히 특이했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본 모습들이 아무래도 조금 그렇잖아요. 그런데 학교에서는 진짜 얌전한 애거든요? 쟤가 원래는 안 저러는데 게임만 들어오면 맛이 가서….”

“…….”

마늘쫑쫑은 친해진다면 그 친분 때문에라도 흑염의 아이와 자신을 내치지 못하리라 믿는 눈치였다. 믿음이 굳게 서린 눈을 마주하며 희연은 조금 묘한 표정을 지었다.

어려서 그런가, 작은 계기만 있어도 금방 사람이랑 친해지는구나 하고 생각했지만 모두 희연의 착각이었다. 마늘쫑쫑은 그런 말랑말랑한 정신으로 게임에 임하지 않았다.

그녀는 친분을 이용해서라도 파티를 무사히 끝내겠다 다짐한 아주 강인한 마음의 소유자였다.

“진짜 말만 컨셉충처럼 하는 거지 머릿속까지 컨셉인 건 아니거든요! 쟤 네크로맨서라 쓸모 무지 많아요. 조금만 맞춰주시면…!”

“네에….”

구구절절하긴 했지만 마늘쫑쫑이 말하고자 하는 바는 결국 친구인 흑염의 아이가 좀 이상해도 실력은 있으니 봐달라는 거였다.

이제는 흑염의 아이의 실력을 모르는 것도 아니었기에 희연은 흔쾌히 까지는 아니어도 선선히 고개를 끄덕여 주었다.

“됐다…!”

“됐다!”

마늘쫑쫑만큼이나 방패 전사 강자 역시 굉장히 기뻐했다.

이미 파티를 잡던 상황에서 오직 실력만 보기로 굳게 마음먹은 그는 탈주하는 힐러 없이 이대로 파티가 진행된다는 점만으로도 충분히 행복해했다.

행복의 역치가 무척이나 낮은 모습을 보며 희연은 새삼스레 그가 파티를 하며 참 많은 일을 겪은 사람이구나 하고 생각했다. 대충 모두가 행복한 결과였다.

물론 안 행복한 사람이 뚜렷하긴 했지만 희연은 그 점을 애써 외면했다. 행복하지 않은 라쀠라든가, 라쀠라든가… 트롤 임페리얼 나이츠라든가, 모짜렐라든가.

행복한 사람 수보다 안 행복한 수가 많은 파티였지만 그런 그들에게도 희소식은 있었다. 이전과는 달리 확실한 정보를 바탕으로 이동할 수 있게 되었다는 점이다.

여전히 라쀠를 볼 때면 으르렁거리는 모짜렐라를 붙잡고 희연은 걸음을 재촉하는 방패 전사 강자의 뒤를 따랐다.

“이번만 봐주자, 한 번만 봐주자….”

“뭘 언제까지 봐줘.”

“…그래도 봐주자.”

이동하는 내내 모짜렐라를 살살 달래는 모습이 재밌다는 듯 마리아가 대놓고 바로 뒤에서 비웃긴 했지만 희연은 그 정도는 무난하게 무시할 수 있었다.

어찌 보면 성장이었다. 애초에 완벽한 구석 하나 없는 파티에서 힐러는 정신적 성장을 이룰 수밖에 없었다.

마리아의 비웃음? 자꾸만 뒤로 몸 빼는 힐러와 본분을 잊은 말랑말랑 탱커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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