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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비세스 메이커 (232)화 (232/251)

232화

“아, 맞아. 저 궁금한 거 있는데.”

거기에 더해 희연은 언제 자신이 마리아라는 존재를 그리도 꺼려하고 피해왔는지 잊은 사람처럼 서슴없이 질문도 던졌다.

마리아는 한층 강인해진 정신력이 마음에 든다는 듯 어디 한번 질문해 보라며 고개를 까닥였다.

“듀라한 잡는 법이요. 우리가 쓴 방법이 없는 방법도 아닌 것 같던데 왜 안 알려졌던 거예요?”

“안 알려진 건 아니야. 너희 같은 초보들이나 모르지 레벨 좀 높은 애들은 알음알음 다 알고 있거든.”

“그럼 왜….”

“왜 검색하면 안 나오냐고?”

마리아는 짓궂은 웃음을 흘렸다. 이번에도 비웃는 거에 가까운 웃음이었다.

“어느 멍청이가 그걸 다 말하고 다니니? 재미없게.”

“…누굴 위한 재미요?”

“나 같은 사람을 위한 재미.”

그러니까, 레벨 낮은 이들이 고생하는 것을 보며 낄낄거리는 고렙에 성격 나쁜 마리아 같은 사람을 위한 재미 때문에 정보를 독식하고 통제한다는 소리였다.

마리아의 말에 조금 충격받은 희연은 자신이 정신적으로 성장하려면 아직 한참 멀었구나 하고 느꼈다. 힐러의 정신적 성장이 정말로 인성의 문제라면 사실 성장 안 해도 되지 않을까 싶기도 했다.

“근데 그거 아니? 너 고생하는 거 보면 킹도 은근 좋아하는 거. 걔도 재밌어서 그러는 거야.”

“우와 그렇구나아….”

정말 궁금하지 않으면서도 내심 희연도 짐작하고 있던 이야기였다.

짧은 시간 만에 온몸의 기를 쪽 빨린 사람처럼 비실비실해진 희연은 그 이상 마리아와의 대화를 이어가길 포기했다.

마리아랑만 붙으면 좋은 결과물을 본 적이 없는 것 같은 희연의 모습에 모짜렐라는 혀를 끌끌 찼다. 희연은 그거 하지 말라는 경고의 뜻으로 모짜렐라의 옆구리를 팔꿈치로 찍었다.

게임 내에서 인연을 갖게 된 이 중 가장 최약체에 해당하는 이답게 그거 한번 맞았다고 모짜렐라는 비틀거렸다. 당연히 마리아는 그런 모짜렐라를 놀려먹었다.

“세상에 치즈… 알고는 있었지만 너 너무 약하다.”

“조용히 해요.”

마리아의 관심이 저를 비껴갔다는 사소한 점에 만족하며 희연은 일행의 뒤를 따랐다. 마리아의 타깃이 된 모짜렐라에겐 다행히도 노인이 일러주었던 다음 NPC와의 만남까지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아, 찾았다!”

새로운 NPC의 등장에 일행은 기뻐했고 마리아도 모짜렐라를 놔주었다.

일행이 떠드는 작은 술렁임에 고개를 돌리는 남자는 바로 직전에 만났던 노인보다는 나은 행색이었다. 다만 무슨 일이 있는 것인지 절벽 아래를 내려다보는 그에게선 초조한 기색이 느껴졌다.

희연은 앞서 만났던 노인의 경우를 떠올리며 혹시 이번 NPC도 몬스터에게 쫓기고 있는 걸까 하고 생각했다. 귀를 기울여 봤지만 아직 주위는 조용했다.

“누구시오? 어찌 이런 허허벌판 아무것도 없는 곳까지 다 오셨소?”

남자는 그들의 정체를 물으면서도 연신 절벽 아래쪽을 힐끗거렸다. 영 그들에게 집중하지 못하는 모습이었다.

“안녕하세요! 저희는 차일드 롤랜드를 찾고 있는데요. 혹시 보신 적 있으실까요?”

이번에도 앞으로 나선 것은 방패 전사 강자였다. 그러나 남자는 자신의 곤란함에 정신이 팔린 나머지 그의 이야기를 전혀 귀담아듣지 않았다.

“모르오, 모르오, 난 아무것도 모르오. 그러니 정신 사납게 굴지들 말고 갈 길들 가시구려. 나는 지금 내 목숨 하나 보전하기도 여의찮소.”

앞서 만난 노인과는 제법 다른 반응이었다. 남자는 차일드 롤랜드라는 이름에 반응하지 않았다. 잘못 찾아온 게 아닐까 하는 걱정까지 들게 만드는 무심함이었다.

그나마 희연을 안도시키는 것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방패 전사 강자가 끈덕지게 남자에게 말을 건다는 점이었다. 눈앞에 있는 남자가 다음 구간으로 넘어가게 해주는 NPC가 아니라면 나올 리 없는 정성이었다.

“저희가 도와드리겠습니다…!”

“자네들이?”

남자는 미심쩍다는 얼굴로 그들을 돌아보았다. 차례차례 일행을 훑는 눈에는 의심이 가득했다.

그러나 이내 그들 외엔 자신의 곤란함을 해결해 줄 수 있는 사람이 없다는 판단을 내렸는지 남자는 마지못한 얼굴로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나를 도와만 준다면야 차일드 롤랜드? 내가 아는 내에서 최대한 기억을 떠올려 알려주도록 하겠소. 물론 자네들이 나를 도울 수 있을까 싶다만은….”

의심이 많은 남자는 그 뒤로도 혼자 한참을 꿍얼거렸지만 끝내 자신의 이야기를 천천히 말하기 시작했다. 조금은 두서없던 노인의 말과 달리 그의 말은 제법 정갈하게 정리되어 있었다.

덕분에 희연은 요정의 무덤 던전의 배경에 대해 조금 더 자세히 알 수 있게 되었다.

“일단은 내 소개부터 해야겠지. 자네들은 저 먼 대륙 끝에서 볼 수 있다는 바다를 본 적 있소? 나는 한때 그 바다만큼이나 푸르게 울렁이던 이 초원에서 소를 돌보던 자였소. 요정과 인간이 공존하는 땅 출신답게 나는 자연과 어울리는 법을 알았기에 언제나 내 할 일을 잘 해낼 수 있었지.”

남자는 성실하게 일해 사람들에게 신뢰를 받았다. 그는 게으름을 부리지 않았기에 언제나 같은 나날을 보냈다. 어찌 보면 재미없고 지루한 일상이었지만 남자는 반복되는 일상에 만족했다.

“하루하루 시끄럽고, 얼굴 모를 신을 모시는 광신도들끼리 매일 서로를 이단이라 부르며 전쟁을 일으키던 바깥과 달리 이곳은 언제나 평화로웠지. 다만, 언제까지고 동떨어질 수 없는 것도 사실이었소.”

바깥의 전쟁은 요정의 땅까지 영향을 미쳤다.

“솔직히 말하면 그때 일이 잘 기억나지는 않소. 온갖 무기를 들고 이 땅에 쳐들어온 이들이 나와 같은 사람이었다는 것만은 확실하지만 말이오. 뭐라더라. 뭘 찾으러 왔다고 했는데. 그들은 무자비하게도 할 줄 아는 거라곤 소를 돌보는 것밖에 없던 나를 짓밟으며 행진했소.”

남자는 풀밭에 쓰러진 채 아름답던 요정의 왕국에 침입한 병사들의 행진을 지켜만 보아야 했다. 그리고 정신을 잃었고, 다시 눈을 떴을 땐 죽어버린 땅처럼 변한 이곳을 헤매게 되었다.

“처음에는 혼란스럽기도 하고 끝내 내가 광신도들이 말하던 지옥에 오게 된 건가 싶기도 하였소. 하지만 이내 그게 아니라는 걸 알게 되었지.”

“…….”

“비록 내가 기억하는 풍경이라곤 하나 남지 않았지만 이곳이 내가 나고 자란 나의 고향이라는 것을 어찌 모르겠소. 한낱 날짐승도 저가 태어난 곳은 기억한다는데.”

남자는 씁쓸한 미소를 지으며 손으로 땅을 쓸었다. 손에 묻어나는 검은 흙을 보는 눈에 원망이 서렸다.

“이제 어찌해야 하나. 어쩌다 이렇게 된 것일까. 참 많은 생각을 했던 것도 같은데, 사실 이렇게 생각을 말로 주고받는 것도 나는 참 오랜만이라는 걸 지금 깨달았소.”

몸을 일으킨 남자는 절벽 아래를 바라보았다. 희연도 앞으로 걸어 나와 그 밑을 내려다보았다.

그들이 서 있는 곳은 이제 보니 절벽이라고 하기엔 낮고 언덕이라고 하기엔 높은 위치였다. 남자가 내려다보는 밑에는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았다. 아직은 말이다.

“나는 쫓기고 있었소. 그것도 상대가 사람도 아니기에 대화조차 할 수가 없었지! 게다가 나를 쫓는 것이 무엇인지 아시오? 다름 아닌 내가 정성껏 돌보던 내 소들이라오!”

검은 안개가 넘실거리며 무언가를 소환하기 시작했다. 희연은 점차 형체가 잡혀가는 몬스터를 보며 오묘한 표정을 지었다.

“광신도들의 저주에 걸린 게 틀림없지! 이름 모를 여행객들에게 이런 부탁하기란 참 쉽지 않았다는 것을 부디 알아주기 바라오. 부디, 부디 내가 자식처럼 키워온 소들이 더 이상 악한 기운에 휘둘리지 않게 해주시오.”

결국 남자의 부탁 역시 노인의 부탁과 같았다. 다른 점은 몬스터의 종류가 바뀌었다는 점 정도였다. 소환된 몬스터 무리를 물끄러미 바라보던 희연은 결국 궁금증을 참지 못하고 질문했다.

“소들의 모습이 저런 건 광신도의 저주라는 걸 받아서인가요?”

“무슨 소리오? 겉모습만큼은 내가 애지중지 키우던 시절과 똑같아 내 마음이 더욱 이리 아린 것이오.”

“…아, 그렇구나.”

한 박자 늦게 대답한 희연은 다시 밑을 내려다보았다.

[Lv. 66 약화된 미노타우로스]

애지중지 키운 소가….

희연은 고민했다. 요정의 땅에서 나고 자라서일까. 남자는 정말로 소의 기본적인 외향이 밑에서 어슬렁거리는 몬스터 모습이라 여기는 듯했다.

적어도 희연이 아는 소는 두 발로 서서 돌아다니지도 않았고 터질 것 같은 근육을 갖고 있지도, 무장을 하지도 않았다.

그렇다고 이 게임 내 모든 소가 저 모습이라고 하기엔 희연은 이미 말랑소를 만난 적이 있었다. 게다가 이름부터가 미노타우로스였다. 소가 아니었다 저건.

애틋한 눈으로 미노타우로스를 바라보는 남자를 보며 희연은 조금 혼란스러워졌다. 요정 세계는 약한 자는 살아남을 수 없는 치열한 곳이었던 걸까? 그래서 소도 저런 걸까?

“저걸 돌봤다고? 진짜?”

모짜렐라 역시 희연과 비슷한 생각을 한 듯 믿을 수 없다는 얼굴로 중얼거렸다.

하지만 혼란스러운 건 혼란스러운 것이고 그들은 할 일을 해야 했다. 뚜렷한 방법이 제시된 퀘스트니 망설일 것도 없었다.

“자, 자. 미노타우로스를 보고 놀라신 건 알지만 우리가 해야 하는 건 똑같습니다! 다행히 이번 구간에선 소환된 몬스터만 해치우면 되고요, 전처럼 준보스도 없으니까 마음 놓으셔도 됩니다!”

유경험자인 방패 전사 강자 역시 예상 못 한 위협은 없다 증명해 주었다. 희연은 애틋하다 못해 눈물을 흘리기 시작한 남자를 힐끗거리다 무기를 들었다.

바로 옆에 밑으로 내려갈 수 있는 샛길이 있긴 했지만 원거리 공격이 가능함으로 그녀는 굳이 밑으로 내려갈 필요가 없었다.

“…?”

그러나 희연은 스킬을 내뱉지 못했다. 뒤에서 뻗어 나온 손이 그녀의 입을 틀어막았기 때문이었다.

희연은 눈을 동그랗게 뜨다 눈만 굴려 뒤쪽을 힐끗거렸다. 이런 짓을 할 사람은 이곳에서 한 명뿐이었다.

“좀 기다려 볼래 오리야?”

퍽 다정하게 들리는 목소리와 달리 입을 틀어막은 손아귀는 훌륭한 힘 스텟을 자랑하듯 단단했다. 희연은 압사당하기라도 할까 싶어 잽싸게 고개를 끄덕였다.

희연을 놔준 마리아는 샛길로 걸어 나가려던 일행 몇몇도 붙잡아 원래 자리에 내려주었다. 모두가 의아한 얼굴로 자신을 보는 상황에서도 마치 그 시선을 즐기듯 방긋방긋 웃는 마리아를 보며 희연은 불길함을 느꼈다.

“그거 아니? 난 제법 참을성이 있는 편이야.”

“네? 누가 그런….”

누가 그런 편파적인 평가를 했을까. 당혹스러운 말에 속에 있는 진심을 내뱉을 뻔했던 희연은 스스로 입을 막는 것으로 자신의 목숨을 구했다.

희연을 지그시 바라보던 마리아는 됐다는 듯 코웃음 치더니 마저 말을 이었다.

“하지만 이 파티를 보고 있으려니 인내심의 한계를 느끼는 게 한두 번이 아니라서 말이지. 적어도 거슬리는 걸 하나 이상 치우지 않으면 내가 이 파티를 박살 낼 것 같아 참 고민이 깊었어.”

어쩜 저런 말을 하는데 전혀 허세처럼 보이지가 않을까?

희연은 마리아의 발언에 함께 긴장하기 시작한 파티원들을 보며 조금 감탄했다. 아직까지 크게 뭔가를 한 적이 없던 것 같은데 모두가 본능적으로 그녀가 위험인물인 걸 감지했다.

파티가 터질 위험에 덜덜 떨기 시작한 방패 전사 강자를 보며 희연은 곤란하단 표정을 지어 보였다. 마리아의 말이 놀랍지는 않았다.

그녀 또한 모르고 있던 것은 아니었다. 파티가 진행될수록 마리아의 인내심이 점차 바닥나고 있다는 걸 말이다.

마리아는 스스로가 참을성이 있다고 했지만 희연이 보기에 마리아의 인내란 불붙은 폭탄의 끈과 같았다. 닳는 게 빨랐다. 마지막은 터졌다. 안 터져도 위험해 보였다.

그리고 현재, 마리아가 가장 거슬려 할 만한 것이라면….

“야.”

“네, 네, 네에…!”

파티명에서도 암시되어 있는 딜 안 넣는 힐러 라쀠였다.

“어디 가니. 쓸데없이 힘 빼지 말자 우리.”

마리아는 가볍게 라쀠를 들어 절벽 바로 앞에 갖다 놓았다. 라쀠는 도망갈 생각도 못 하고 제 미래를 예견한 듯 덜덜 떨기만 했다.

그런 라쀠를 물끄러미 바라보며 마리아는 입을 열었다.

“내가 약속했지?”

“네, 네?”

“너 말고. 오리야? 너한테 하는 말이야.”

갑자기 거론된 제 이름에 희연은 조금 움찔거리며 놀랐다. 하지만 놀란 것과 별개로 희연이 최근 들어 마리아와 한 약속이라곤 하나밖에 없었기에 그녀가 이야기하는 게 무엇인지는 금방 알아차렸다.

마리아의 비전. 오늘 이 파티에서 최고의 딜러가 되는 방법에 관한 이야기였다.

“…….”

설마 그 방법을 보여주는 예시로 라쀠를…?

공격에 대한 욕심이 없지 않아 있었지만, 비록 라쀠는 여전히 탐탁지 않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같은 파티원을 연습 대상으로 써먹을 생각이 희연에겐 조금도 없었다.

지레짐작한 희연은 깜짝 놀라 마리아를 먼저 만류하고 보았다.

“저기…! 아무리 그래도 같은 파티인데 공격하는 건 좀!”

“이건 또 무슨 소리일까….”

마리아는 대놓고 이게 무슨 헛소리일까 하는 표정을 지어 보였다.

그 모습에 희연은 자신이 실수했음을 인정했다. 그랬다. 아무리 마리아라 할지라도 같은 파티의 일원을 고작 연습용으로 써먹지는 않았던 것이다.

당황하는 희연을 두고 마리아는 비죽 웃음을 흘리더니 알 수 없는 명령을 내렸다.

“됐고. 오리야? 이세인한테 멀리 가보라고 말해 봐. 가능하면 아주 멀리. 우리가 처음 이동된 장소쯤? 그리고 30분쯤 뒤에 나타나라고.”

“…….”

“빨리.”

앞서 마리아의 인성을 크게 의심한 죄가 있던 희연은 거절도 못 하고 이세인만 힐끗힐끗 쳐다보았다.

자신에게 눈치 주는 마리아와 자신의 눈치를 보는 희연의 모습에 이세인을 깊은 한숨을 한 번 내쉬고는 순순히 자리를 비켜주었다.

“30분쯤 뒤에 올게.”

“네에….”

마리아는 떠나는 이세인을 보며 대놓고 만족스럽다는 듯 미소를 지었다. 희연은 대체 얼마나 대단한 비전이기에 이세인을 내쫓기까지 하는 걸까 싶어 이젠 조금 기대하는 마음이 생겼다.

더불어 반쯤 방치된 라쀠의 미래에 대해서도 궁금증이 일었다.

“일단 처리하기 전에 확실히 하곤 가야겠지? 말해 봐 치즈. 네가 보기엔 지금 파티에 힐러가 몇인 것 같니?”

“…….”

“맞아. 둘 같은 셋이지.”

모짜렐라는 한마디도 안 했는데, 마리아는 그의 마음의 소리를 대변했다. 다른 파티원들을 한 번 쭉 훑어 부정하는 이가 있는지 살펴본 마리아는 마지막으로 라쀠를 돌아보며 방긋 웃음 지었다.

“네 몫이 있다는 걸 어디 한 번 증명해 봐.”

그러고는 라쀠를 밀었다. 절벽 아래로. 가차 없이!

“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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