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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비세스 메이커 (234)화 (234/251)

234화

[<라쀠>가 파티에서 탈퇴했습니다.]

시스템 창은 현실을 외면할 시간 따위 없다는 듯 곧바로 잔혹한 사실을 일러 주었다. 희연은 빈자리와 눈앞에 뜬 글귀를 번갈아 바라보며 상황을 받아들였다.

라쀠가 파티를 나갔다. 정확히 표현하면 ‘튀었다’에 가까웠지만, 어쨌든 나갔다.

누가 말리거나 우는 라쀠를 달랠 틈 같은 것도 없었다. 라쀠는 통보와 동시에 파티를 나갔으니 말이다. 우유부단하기만 한 줄 알았던 라쀠의 예상 못 한 단호한 면모가 돋보이는 결과물이었다.

순식간에 비어버린 옆자리에 희연은 두 눈만 동그랗게 떴다. 황당하기도 했고, 자신은 파티를 안 엎으려 그렇게 노력했는데 막상 그 원인이 너무 쉽게 도망가 버려 어이없기도 했다.

당연하게도 남은 이들의 분위기는 박살 났다. 방패 전사 강자는 기어코 일이 터졌구나 하는 얼굴로 제 입을 틀어막았다. 반사적으로 감탄사를 내뱉던 흑염의 아이의 입은 마늘쫑쫑이 잽싸게 틀어막았다.

트롤 임페리얼 나이츠의 반응은 별로 궁금하지 않았고, 희연은 데굴데굴 눈을 굴려 모짜렐라의 반응을 마저 확인했다.

“…….”

어쩌면 라쀠가 통보와 동시에 파티에서 나간 것은 지팡이를 잡은 모짜렐라의 손이 떨리는 것을 봐서일지도 몰랐다. 희연은 갈 곳 잃은 분노에 괜히 휘말릴까 싶어 모짜렐라와 조금 거리를 두었다.

모짜렐라가 약하다고 툭하면 놀리던 악령이도 그의 얼굴을 보더니 희연의 등 뒤로 모습을 감추었다. 살그머니 머리를 내밀었던 넬도 희연의 옷소매 안으로 다시 숨어들었다.

하지만 한 인간과 두 악령이 걱정한 것이 무색하게도 모짜렐라는 괜한 사람이나 악령에게 화풀이할 정도로 비이성이진 않았다. 애써 분노를 잠재운 모짜렐라는 조용히 일의 원흉을 불렀다.

“마리아….”

“음….”

마리아는 의미를 알 수 없는 침음만 흘렸다. 일이 이렇게 된 게 자신의 잘못이라 여기지 않는 얼굴이었다. 더불어 반성도 후회도 하지 않고 오로지 성가시게 되었다 여기는 게 분명했다.

“안 끼어든다고 하지 않았어요? 그런데 기어이 힐러 하나를 나가게 만들어… 요?”

간신히 존댓말을 이어나가는 모짜렐라는 이번 일만큼은 정말 화가 났는지 얼굴이 조금 붉어지기까지 했다. 그의 머리카락이 하늘색이고 옷은 희었기에 그 붉음이 더 눈에 띄었다.

제법 아끼는 길드원이 제 행동에 분노한다는 점에 마리아는 답지 않게 신경을 쓰긴 했다. 희연은 마리아가 사과하는 진풍경을 볼 수 있게 되는 건가 싶었다.

그러나 마리아는 마리아였다. 그녀는 설령 정말로 자신이 잘못한 게 확실한 상황일지라도 상대에게서 사과를 받아낼 사람이었다.

“글쎄. 이걸 내 잘못이라고 해야 할까?”

쭉쭉 늘어나는 치즈라도 보고 싶은지 모짜렐라를 더 열 받게 만들어놓고 마리아는 희연을 붙잡았다.

“자, 우리 대화라는 것을 해보자 오리야.”

“네? 저요?”

갑자기 왜 대화 상대가 자신이 된 건가 싶어 희연은 도움을 요청했다. 이곳저곳으로 시선을 돌리던 희연이 보게 된 것은 어디 뭐라 하는지 들어보자는 태도가 된 모짜렐라와 그녀의 시선을 피하는 파티원들이었다.

마리아는 무섭다 이거지 싶어 희연은 동고동락했던 파티원들에게 조금 배신감을 느꼈다. 그러나 희연은 그 점에 대해 씁쓸함을 느껴볼 새도 없이 제 탓이 아니라 주장하는 마리아의 대화에 휩쓸려야 했다.

“생각해 봐 오리야. 이 파티가 깨진다면 그게 과연 내 탓일까, 아니면 자기 잘못도 모르고 질질 짜다가 통보만 하고 탈주해버린 힐러 탓일까?”

“…….”

둘 다 문제가 아닐까?

자유로운 생각과 달리 희연은 쉽사리 말문을 열지 못했다. 마리아가 답하지 말라고 희연의 입을 손수 닫았기 때문이다. 이럴 거면 왜 대화 상대로 저를 택했나 싶어 희연은 조금 황당했다.

멀어지는 손을 보며 오묘한 표정을 짓던 희연은 한 가지 가설을 떠올렸다.

힐러 하나가 탈주하고 분위기는 회생 불가하게 된 지금, 이 파티에게 남은 미래는 없어 보였다. 그렇다면 당연한 수순대로 파티는 여기서 끝날 것이고, 이르게 던전에서 나온 희연에게 킹스메이커는 물어볼 것이다.

무슨 일 있었냐고. 그리고 희연은 답할 것이다. 마리아가….

그 한마디면 던전 내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더 설명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그리고 킹스메이커는 마리아를 응징할 것이다.

하지만 여기서 희연이 마리아의 궤변에 넘어가 던전에서 나간 뒤 킹스메이커에게 파티가 파탄 난 이유는 오늘 처음 만난 어느 힐러 때문이라고 한다면?

“…….”

그제야 희연은 지금 하는 이 대화는 이후 킹스메이커에게 희연이 마리아는 잘못한 게 없었다 말하게 하려는 게 목적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모짜렐라? 이후 희연이 그녀의 계획대로 굴어준다 해도 모짜렐라가 사실을 말할 수 있으니 같이 작업 치는 거다.

“…나중에 킹 님한테 잘못한 건 라쀠였다고 말하게 하려고 이러는 거죠.”

희연은 작은 목소리로 물었고, 마리아는 생긋생긋 웃으며 입을 달싹였다. 작은 목소리였지만 코앞에 있는 희연은 충분히 들을 수 있는 크기였다.

“이래서 난 눈치 빠른 애들이 참 싫더라.”

“…….”

마리아는 우리 잘 해보자는 듯 희연의 어깨를 툭툭 두들긴 뒤 다시 수작질을 시작했다. 이 이상 눈치 빠르게 굴면 제거해 버릴 거란 뜻이 느껴지는 손길이었다.

“원래 파티에 트롤이 하나만 있어도 사람이 미치는 법이야. 어라, 그런데 그 트롤이 힐러다? 이건 파티 깨자는 얘기거든. 그런데 너희는 그럴 생각이 없었잖아? 그렇지?”

“네에….”

“그래. 얼마나 힘드니. 그래서 나는 기꺼이 너희들의 정신적 피로를 해결해 주기 위해 악역을 맡은 거란다. 자, 봐. 트롤이 없어졌네? 행복한 결과가 너를 기다리고 있어.”

나긋나긋한 어투로 말하는 마리아를 멍하니 바라보며 희연은 대꾸했다.

“정신적 피로가 없어진 대신에 몸이 힘들지 않을까요…? 힐러 수가 줄었는데….”

“어차피 있으나 마나였잖아.”

그건 그렇지….

마리아가 하는 말은 모두 궤변이고 약은 수작질이라고 여겼던 희연이지만 방금 말에는 조금 흔들려 버렸다. 그녀의 말은 모두 곰곰이 생각해 보면 영 틀린 말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희연은 이 이상한 설득을 정말로 받아들여야 하는 건가 싶어 조금 혼란스러워졌다.

라쀠가 조금만 더 조별과제에 성실하게 임하는 조원이었다면 안 넘어갔을 테지만 솔직히, 정말로 그는 있으나 마나인 존재였다.

설득에 마음이 흔들리기 시작한 희연의 모습에 모짜렐라는 혀를 찬 뒤 마리아에게 물었다.

“양심 없어요?”

라쀠가 트롤인 건 맞지만 그렇다고 해서 마리아가 위협으로 트롤을 내쫓았단 사실이 사라지는 건 아니었다. 그로 인해 파티 분위기가 파탄 났다는 것 역시도 말이다.

그런데 마리아는 제 잘못을 끝까지 쏙 빼고 말하고 희연은 넘어가려 하니 모짜렐라는 더 열 받는 거였다.

씩씩거리는 모짜렐라에게 마리아는 가벼운 웃음을 흘리며 당당히 말했다.

“양심? 내가 바로 우리 교단의 양심이자 미래란다 치즈.”

“우와… 암담해라….”

“아까부터 느꼈는데 우리 오리. 이젠 많이 까부네? 아이 귀여워라.”

“으아아….”

희연은 마리아로부터 머리가 터질지 모르는 위협을 받았다. 한참을 희연의 머리를 쓰다듬어주던 마리아는 어깨를 으쓱이며 모짜렐라에게 말했다.

“난 정말 이해가 안 된다. 왜 화가 난 건데? 생각해 봐 치즈. 내 말 중에 틀린 구석은 없잖아? 걔 하나 탈주했다고 뭐가 그렇게 달라지니. 애초에 걔, 기껏해야 비상시에 한 번씩 써먹는 용도 정도였잖아?”

희연은 헝클어진 머리를 대충 넘기다가, 이어진 마리아의 말에 놀라움을 표했다. 마리아는 순식간에 라쀠의 가치를 비상시 한번 써먹는 일회용 정도로 만들어 버렸다.

“뭘 놀라니. 오리 네가 제일 많이 그런 식으로 써먹었으면서.”

“…….”

모짜렐라는 마리아의 말을 부정하지 않았다. 그 역시 마리아의 말대로 라쀠를 그 정도로만 취급했음을 인정하는 눈치였다.

이쯤 되면 라쀠가 불쌍한 것 같다가도 이렇게까지 스스로의 가치를 깎아내렸다는 점에 희연은 조금 대단하다는 생각도 들었다.

마리아는 모짜렐라의 화가 난 것 같던 기세가 많이 줄었음을 눈치채곤 그제야 꽤나 달콤한 제안을 내밀었다.

“하지만. 그래, 네 말대로 내가 끼어든 건 맞긴 하지. 워낙에 못 봐줄 꼴이었으니까 말이야.”

“끝까지 본인은 잘못 없다고….”

“대신 내가 해줄게.”

모짜렐라의 말을 끊고 튀어나온 마리아의 말은 상당히 의뭉스러웠다. 희연과 모짜렐라는 서로를 힐끗거렸다. 마리아의 말이 제대로 이해되지 않아서였다.

“뭐를요…?”

끝내 희연이 먼저 조심스레 질문했고 마리아는 순순히 대답해주었다.

“비상시에나 한번 써먹는 역할. 그거 내가 해준다고.”

“…….”

“나 같은 대단한 인재가 겨우 그런 취급을 받는다는 게 말도 안 된다는 거 나도 알지만, 뭐 어쩌겠어. 우리 꼬마 치즈가 그 건으로 자꾸만 삐졌다고 쫑알쫑알거리는데.”

모짜렐라는 쫑알쫑알거리지는 않았다. 마리아의 단어 선정에 모짜렐라의 손끝이 움찔거렸다. 하고 싶은 말이 많은 얼굴이었다.

하지만 그는 조금 더 이야기를 들어보겠다는 듯 조용히 마리아를 노려보았다.

“어떻게 써먹든 너희 마음대로. 알잖아? 다른 사람도 아니고 나야. 너희가 전부 전멸해도 죄다 다시 살려놓을 수 있는 게 나라고. 버프, 공격, 부활, 치료. 뭐든 좋아. 나한테 부탁할 기회를 줄게.”

“…….”

“잘 생각해 보고 부탁해 봐. 날 써먹을 기회는 딱 한 번이니까.”

마리아는 오만했다. 말투도 그랬고 이 정도로 만족하라 통보하는 눈빛 역시도 그랬다. 그러나 희연은 귀가 절로 솔깃해지는 제안에 저 정도 오만함은 그냥 하나의 매력으로 봐도 되는 게 아닌가 싶어졌다.

마리아의 말대로라면 보스전 때도 보스를 한 대 때려달라고 부탁할 수 있다는 뜻이었다. 마리아의 한 대면 여기 있는 모두가 힘을 모은 것보다 묵직할 게 분명했다.

라쀠가 마리아의 말에 눈물을 흘리며 파티를 나간 것, 그게 정말 나쁜 일이었을까? 나쁜 건 맞는데 자꾸만 기억이 미화되려고 했다.

어쩌면 너무나 손쉽게 끝날지도 모르는 보스전에 벌써부터 화색이 돌기 시작한 희연을 보며 마리아는 짓궂게 웃었다.

“아, 물론 양심적으로 보스 좀 대신 잡아주세요, 같은 건 부탁하지 말자?”

“양심….”

마리아가 양심을 논하다니…! 양심이 없다!

깜짝 놀라는 희연의 반응에 마리아는 다시 한번 희연은 한껏 귀여워해 주는 것으로 공포를 일깨워 주었다.

간신히 마리아에게서 벗어난 희연은 다시 헝클어진 머리를 대충 방치하며 아쉬움을 표했다.

“기왕 해주는 거 통 크게 해주면 어때서….”

그런 희연의 반응에 마리아는 혀를 끌끌 찼다. 희연의 욕심을 비난하는 눈치는 아니었다.

“얘가 뭘 모르네. 여기 보스는 나한테 한방 컷이야.”

마리아의 말에 방패 전사 강자가 화들짝 놀랐다. 그러나 희연은 그쯤은 예상했기에 그저 선선히 고개만 끄덕일 뿐이었다.

“보스 잡은 기여도는 나한테 올 거고 난 스킬 쓰자마자 바로 규칙 위반으로 걸려서 파티에서 쫓겨날 텐데, 보스 잡고 나온 기여도가 공중분해 되는 게 그렇게 보고 싶니?”

“공중분해 되면 어떻게 되는데요?”

“정산할 때 그만큼 까이겠지. 너희가 받을 보상과 함께.”

“아하….”

결국 마리아를 써먹을 단 한 번의 기회는 적당히 조심해서 써야 한다는 뜻이었다. 어떻게 해야 마리아를 잘 써먹었단 소리를 들을까 고민하던 희연은 뒤늦게 다른 이들의 반응을 확인했다.

아무리 마리아라는 패가 좋아도 다른 이들은 탈주한 라쀠 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할지 모르는 법이었다.

“음….”

괜한 걱정이었다. 희연은 주체할 수 없이 자꾸만 올라가는 입꼬리를 곤란해하는 방패 전사 강자의 모습에 웃는 듯 아닌 듯 묘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귀한 인재를 한 번 써먹을 수 있다는 조건은 비단 희연과 모짜렐라에게만이 아닌 다른 이들에게도 달콤하게 들렸던 것이다. 유일하게 기뻐하지 않는 건 흑염의 아이 정도였으나 희연은 그 정도는 괜찮은 것 같다 판단했다.

마리아가 교단의 양심과 미래인 이상 흑염의 아이는 신의 종인 그녀를 열렬히 환영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반면 흑염의 아이의 친구인 마늘쫑쫑은 너무 기쁜 나머지 주먹질을 하고 있었다.

뚝뚝 깎이는 흑염의 아이의 피통을 힐끔 본 희연은 괜찮겠거니 생각하기로 했다.

“자, 그러면 일도 해결됐겠다 이제 그만 다음 구간으로 가 볼까요?”

방패 전사 강자는 눈에 띄게 밝아진 얼굴로 이야기를 꺼냈다. 어찌나 신이 났는지 말의 높낮이부터가 달라졌다.

그나마 라쀠와 가장 친분이 있던 것 같더니, 그 역시 같은 한 번이라면 라쀠보다는 마리아가 더 매력적인 조건이라 여겨 지금의 결과를 기쁘게 받아들인 것 같았다.

한결 가벼워진 발걸음으로 폴짝폴짝 미노타우로스를 키운 남자에게로 가는 방패 전사 강자를 보며 희연도 그제야 슬그머니 발을 뺐다.

이제는 마리아가 자신을 죽이지 않으리라는 확신은 있었지만 귀여움을 빙자한 위협을 받으니 희연은 다시 그녀와 거리를 벌리고 싶어졌다.

“솔직히 마음 같아선 저 네크로맨서도 좀 치우고 싶은 거 아니?”

“…….”

그리고 마리아는 도망가던 희연을 붙잡고 제 속내를 털어놓았다. 희연으로선 별로 알고 싶지 않던 속마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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