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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비세스 메이커 (235)화 (235/251)

235화

“잘한다고 했으면서 왜요…?”

“진짜배기라고 해봤자 컨셉충이잖아. 난 컨셉 잡고 노는 애들이 싫더라.”

마리아의 취향은 그러하구나. 희연은 대충 고개만 끄덕거렸다. 흑염의 아이도 마리아가 취향이지는 않을 것이다.

“그리고 봐봐. 쟤가 자꾸 내 신경에 거슬리게 굴어.”

“우와… 그렇구나….”

희연은 이쯤 되니 조금 궁금해졌다. 마리아는 왜 자신에게 고자질을 하는 걸까, 하고 말이다. 이후 사고를 쳐도 자신이 앞서 말한 것을 떠올리며 킹스메이커에게 잘 말하라는 압박인 걸까 싶었다.

하지만 생각과는 별개로 제 어깨를 꽉 쥔 마리아는 무서웠기에 희연은 그녀가 말한 대로 흑염의 아이 쪽을 바라보긴 했다.

희연과 눈이 마주치거나, 희연이 힐 스킬을 써주거나 할 때면 신의 종, 명령하지 마라, 대충 그런 종류의 말을 하던 흑염의 아이가 이번에는 색다른 반응을 보여주었다.

아무래도 희연의 뒤에서 채찍에 손을 올리는 마리아 때문인 것 같았다. 자신을 위협하는 마리아의 눈빛에 흑염의 아이는 어둠이 정화되는 기분을 느낀 듯했다.

“크윽…! 회개를 강요할 셈인가….”

“넌 또 왜 그래?”

흑염의 아이를 바라보는 마늘쫑쫑의 눈이 차가웠다. 희연은 자신 역시 비슷한 시선이지 않을까 싶었다.

“봤지? 처음에는 안 그랬으면서 어느 순간부터 눈 마주치면 쟤 저러더라?”

“네에….”

“성녀로서 내 주 업무는 회개가 아니라 이단의 말살인데 말이야.”

그 점이 마음에 안 들었던 건가…?

희연은 흑염의 아이를 바라보던 시선을 고스란히 마리아 쪽으로 돌렸다. 흑염의 아이처럼 어둠에 심취한 것도 아니면서 마리아는 항상 그보다 더했다.

“아, 말하고 나니까 좀 끌리네. 말살.”

“…….”

역시 진실과 악의의 신의 성녀다운 발언이었다.

희연은 조용히 한숨을 내쉬다 입을 열었다.

“여기서 또 누구 하나 마리아… 님 때문에 죽거나 파티 떠나면 그때는 킹 님한테 말할 거예요.”

나름 협박을 하는 모양새에 마리아는 재밌다는 듯 굴었다.

“이젠 협박도 할 줄 알고… 다 컸네? 나랑 1:1로 아레나에서 만나도 되겠다?”

“아레나… 면…?”

들어봤는데 뭐였더라?

관심 있게 둔 주제가 아니라 희연이 기억을 더듬는 시간이 길어지자 마리아가 먼저 입을 열었다.

“…모르면 됐다.”

놀리는 것도 상대가 뭘 알아야 가능하다는 걸 마리아는 새삼스레 깨달았다. 희연의 빠릿빠릿한 반응을 즐겼던 것이기에 미적지근한 답은 마리아의 의욕마저 꺾어 버렸다.

“너도 참….”

눈앞의 뉴비가 난 아무것도 몰라요 같은 얼굴을 하고 있을 때면 마리아는 킹스메이커는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걸까 조금 궁금해지곤 했다.

고이고이 키워 걸출한 인물로 만들 계획이라기엔 그 대상은 그녀가 보기엔 상당히 생각 없이 플레이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희연이 마리아의 생각을 알았다면 펄쩍 뛰며 자신이 얼마나 게임에서 열심히 살아남았는지 열변을 토했을 것이다.

“?”

“힘내라.”

“…?”

저를 물끄러미 바라보다 갑자기 응원하는 마리아의 모습에 희연은 의아함을 느꼈다. 조금 수상하게까지 느껴졌다. 그러나 상대는 의문을 풀어주지 않았다.

아레나라는 것 하나 못 알아들은 게 이런 반응까지 나올 일인가 싶어 어이없기까지 했다.

희연의 혼란스러움은 방패 전사 강자가 일행을 부를 때까지 계속되었다.

“모두 여기 와서 같이 들을까요? 다음 구간으로 갈 힌트를 주시겠다네요! 하하하!”

그것 좀 모를 수 있지, 그거 하나 못 알아들었다고 그런 반응을 보이나 싶어 마리아를 힐끗힐끗거리던 희연도 그 부름에 합류했다.

눈에 띄게 밝아진 방패 전사 강자의 뒤로 미노타우로스를 키운 남자가 서 있었다. 그는 미노타우로스에 대한 애도가 끝난 것인지 한결 가벼워진 얼굴을 하고 있었다.

일행이 모두 모이자 그는 곧바로 본론을 이야기했다.

“자네들이 궁금해하던 것이 차일드 롤랜드라는 이를 아느냐는 거였던 것 같은데, 맞소?”

“네! 혹시 기억나는 게 있으신가요?”

부쩍 넉살 좋아진 방패 전사 강자가 연신 생글거리며 답했다. 남자는 기억을 더듬는 듯 눈을 지그시 감았다.

“음… 신기할 정도로 흐릿한 기억이긴 하지만, 청년의 길에 들어선 젊은이를 만난 적이 있긴 하다오. 하지만 앞서 말했듯 나도 그때가 언제인지 정확히 기억나지 않아 괜한 말을 하는 게 아닌가 싶어 걱정되는데….”

“아니에요! 아닙니다! 말씀해 주세요!”

남자는 스스로의 말에 믿음이 없는 듯 미심쩍은 표정을 지으면서도 방패 전사 강자의 재촉에 못 이겨 입을 열었다.

“청년이 내게 물었지. 요정 왕의 탑이 어디 있는지 아느냐고 말이오. 그래서 나는 모른다 했고, 대신 알 만한 사람이 있는 곳을 가르쳐 주었소.”

남자는 손을 들어 어딘가를 가리켰다. 한때는 푸른 풀잎이 살랑거렸을 테지만 지금은 황량하기만 한 언덕이 늘어진 땅이었다.

“마주 엉킨 커다란 두 그루의 나무가 환영해 주는 언덕 위로 올라가면은, 암탉을 키우는 노파를 만나게 될 것이라 했다오. 그녀는 곧잘 요정 왕의 탑에 가곤 했으니 분명 알 것이라 했소. 그리고 나는….”

말을 끊은 남자는 어딘가 멍한 얼굴로 제 손을 들어 목을 감싸 안았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그는 상념을 떨치듯 고개를 저었다.

“자네들도 노파에게 가보시오. 그 청년이 내 말대로 했다면 자네들도 원하는 것을 손에 넣을 수 있을 것이오.”

남자는 그 말을 끝으로 더는 대화하고 싶지 않다는 듯 손을 내저으며 몸을 틀었다. 앞서 노인이 그랬듯 그 역시 목적지를 알 수 없는 곳을 향해 천천히 발걸음을 떼었다.

멀어지는 남자의 모습을 바라보며 희연은 생각했다. 노인도 남자도 차일드 롤랜드를 떠올리고 나면 표정이 좋지 못하다고 말이다.

사라진 누이와 형제를 구하기 위해 용감히 나선 차일드 롤랜드. 함께 사라져 버린 가여운 차일드 롤랜드. 어쩌면 그게 전부가 아닐지도 몰랐다.

희연은 노인의 말을 떠올렸다. 차일드 롤랜드가 자신을 죽였다던 말. 그 말이 사실일지도 모르겠단 생각이 들었다.

남자가 떠나기 직전 했던 행동을 떠올리며 희연은 똑같이 목을 더듬어 보았다. 그런 희연의 모습에 마리아는 그녀의 어깨를 툭 건드렸다.

“어차피 마지막 가면 다 알게 되니까 괜히 미리 머리 쓰지 마. 궁금하면 빨리 진행이나 하렴.”

“네에….”

희연은 마리아의 말 일부는 긍정하며 발을 뗐다. 푸른 풀잎은 모두 시들고 썩어 사라졌지만 나무는 알 수 없는 것으로부터 영양분을 얻어 싱싱하지는 않을지언정 살아남았다.

그러나 그 수는 많지 않았기에 남자가 말한 나무를 찾기는 어렵지 않을 터였다.

덜 회복이 된 이들은 포션을 마시고, 다른 이들 역시 장비를 훑는 등 짧은 정비를 마친 파티는 새로운 구간으로 넘어가기 위해 이동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발을 뗀 지 얼마 되지 않아 희연은 모두가 까먹은 듯 짚지 않는 문제를 떠올리게 되었다. 그에 따라 희연의 걸음이 조금씩 느려졌다.

“왜. 빨리빨리 가자 오리야.”

곧바로 마리아의 질책이 날아왔다. 희연은 머뭇거리다 입을 열었다.

“아직 안 왔는데….”

“누구. 이세인? 뭘 걱정하고 그러니. 알아서 잘 쫓아올 거라고 굳게 믿고 나도 버리고 갔으면서. 이번에도 마찬가지일 거라고 믿어줘야지?”

“…….”

뒤끝 길다….

희연은 새롭게 알게 된 마리아의 특징에 애매한 웃음만 흘리고는 다시 앞을 보았다. 마리아의 말은 다소 많이 공격적이긴 했으나 틀린 말은 아니었다.

그리고 실제로 그들이 언덕을 찾아 나선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이세인이 나타나 그들과 합류했다. 그들이 다음 구간으로 가기 위해 어느 길을 택할지 다 알고 있었다는 듯한 모습이었다.

자신을 버리고 떠난 일행에 대하여 그는 별말 하지 않았다. 다만 조용히 마리아를 노려보기는 했다. 희연은 싸우지만 않길 빌며 앞만 바라보았다.

***

마주 엉킨 나무 두 그루. 처음 남자에게서 그 설명을 들었을 때 희연은 조금 추상적인 설명이라고 생각했다.

엉킨 나무라는 게 어떤 식으로 배배 꼬였다는 것인지 영 감이 잡히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걱정한 것이 무색하게도 애초에 요정의 무덤 지역은 나무가 많은 지역이 아니었다.

대충 멀리서 봤을 때 나무다 싶은 것이 나란히 같이 있으면 그게 바로 마주 엉킨 나무 두 그루였다.

둥근 언덕은 많았지만 그중 나무라고 할 법한 것이 나란히 있는 언덕은 하나뿐이었다.

나무 밑에는 길처럼 보이는 흔적도 남아 있었다. 주위에 다른 곳보다도 흙이 곱다거나 흙에 파묻히지 않고 굴러다니는 암석이 많다는 점에서 한때는 물이 흐르던 골짜기가 아니었을까 짐작해 볼 수 있었다.

그들은 그 길을 따라 걸었다. 매끄러운 흙과 암석 탓에 쉬운 길은 아니었으나 골짜기 길 외 다른 곳이 더 오르기 험난했기에 다른 선택지가 없었다.

심지어 언덕 부근은 펫 소환이 불가한 지역이었기에 그들은 튼튼한 자신들의 다리만 믿고 언덕을 올라야 했다.

삐약-

“…?”

언덕 오르는 게 유난히 힘겨운 모짜렐라의 헉헉거리는 소리만 들리던 와중 상황에 맞지 않는 맑고 귀여운 소리가 들렸다. 희연은 지팡이에 의지해 언덕을 오르던 모짜렐라를 돌아보았다.

“욕했어?”

“…했나?”

너무 힘든 나머지 모짜렐라는 자신이 입 밖으로 속내를 내뱉었는지 긴가민가한 눈치였다. 희연은 정말 힘든가 보다 싶어 그를 걱정했다.

다행히 모짜렐라가 완전히 지쳐 쓰러지기 전에 그들은 언덕의 꼭대기에 도착했다.

모짜렐라만큼은 아니어도 희연 역시 힘든 건 마찬가지였기에 그녀는 언덕을 다 오르자마자 몸을 숙이고 숨을 골라야 했다. 눅눅한 습기가 가득한 공기가 사람을 더 지치게 만들었다.

“찾았다….”

그래서 희연은 바위에 기대어 앉은 인영을 발견했을 때 진심으로 기뻐했다. 만일 이곳에 아무도 없었다면 앞에 줄줄이 늘어선 언덕을 모두 돌아볼 뻔했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희연이 안도하는 정도라면 모짜렐라는 숫제 감사의 기도라도 할 법한 기세였다. 어지간히 언덕 오르는 게 힘들었던 모양이었다.

“힘 스텟 몇인지 물어봐도 돼?”

“물어보지 마.”

모짜렐라가 힘들어서 정신 못 차리는 지금이라면 전부터 궁금했던 것을 알아낼 수 있을 줄 알았지만, 그는 몸만 힘든 것이지 정신까지 나약해진 게 아니었다.

희연은 아쉬워하며 새로운 NPC를 면밀히 살폈다.

그나마 안개는 없던 이전 지역과 달리 언덕 위는 안개가 자욱했다. 그만큼 공기는 눅눅했고 습기 탓에 끈적해지는 피부는 사람의 신경을 거슬리게 만들었다.

바람 한 점이 간절해지는 환경에서 새로운 NPC는 잿빛 망토를 걸치고 있었다. 안에 입은 옷차림은 평범했지만 그 망토 탓에 괜히 수상해 보이는 인상이었다.

옆에 놔둔 바구니는 안쪽에 색실로 수를 놓은 하얀 천이 깔려 아기자기했고 가죽 신발은 오래되어 보였지만 깨끗했다.

습기로 눅눅해진 건 비단 공기뿐만 아니라 흙 역시 마찬가지인데 이런 언덕을 거닐었던 사람의 신발답지 않게도 말이다.

희연은 제 신발을 힐끗 바라보았다. 신발뿐만 아니라 바짓단에도 진흙이 조금 묻어나 있었다.

점차 걸음이 느려지는 일행을 따라 희연도 모짜렐라와 함께 걸음을 멈추었다. 섣불리 다가가지 않는 일행을 발견한 잿빛 망토의 노인은 주름진 손을 들어 그들을 불렀다.

“젊은이들. 나를 만나러 온 것 같은데 무엇하여 망설이시나. 어여 오시게. 그렇게 서 있으면 누가 잡아갈지도 몰라.”

괜스레 으스스한 말에 희연은 목을 쓸며 뒤를 돌아보았다. 그녀의 뒤에는 마리아와 이세인이 서 있었다.

무서운 것으로 따지면 어디 가서 뒤처지지 않는 마리아였지만 그녀가 제 뒤에 서 있다고 생각하니 희연은 조금 안심이 되었다. 마리아를 제치고 희연을 습격할 만한 적이 이곳에는 없을 것 같아서였다.

슬슬 움직이기 시작하는 다른 이들을 보며 희연도 조심히 발걸음을 뗐다.

“만나서 참 반갑네, 젊은이들.”

가까이에서 본 잿빛 망토의 노인은 서늘하고 수상쩍어 보이던 분위기와 달리 굉장히 평범한 외양을 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녀는 불안해하지도 않았고 슬퍼하지도 않았다. 유유히 흘러가는 안개처럼 그 자리에 존재하고 있었다. 앞서 만났던 NPC들과는 또 다른 모습이었다.

“차일드 롤랜드의 행방을 물으러 온 게지?”

심지어는 차일드 롤랜드의 이름을 먼저 꺼냈다. 희연은 놀란 마음에 눈을 크게 떴다. 잿빛 망토의 노인은 그런 희연의 반응이 재밌다는 듯 킬킬 웃음을 흘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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