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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비세스 메이커 (236)화 (236/251)

236화

조금 쉰 듯한 목소리의 웃음소리를 마냥 유쾌하게 받아들이기엔 주위 배경도 노인도 너무 수상쩍었다. 노인은 자신의 모습을 보고 선 이들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다 안다는 듯 굴었다.

“내가 차일드 롤랜드에 대해 이야기했다 해서 겁먹지 말고 놀라지도 말게나. 이 언덕을 올라 내게 질문하는 이들은 모두 같은 것을 묻는데, 모른 척 시침 떼고 있는 것도 이상하지 않나.”

노인은 바위를 짚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등이 살짝 굽어서인지, 아니면 원래부터 노인의 몸집이 왜소한 건지 자리에 앉아 있을 때보다도 작은 존재인 것처럼 느껴졌다.

발치의 바구니를 잡은 노인은 그것을 가장 앞에 서 있던 방패 전사 강자에게 넘겼다.

“한때 이 땅에는 찬란한 영광이 함께했지. 그때부터 지금까지. 모든 게 끝난 지금에 이르기까지 헛되나 응어리지고만 원망의 반복 속을 살아가고 있는 것, 그게 바로 나라네. 본의 아니게 많은 것을 기억하고 만 늙은이이기도 하지.”

주름진 손이 빈 바구니 안을 두들겼다. 하얀 천에서 먼지가 날아올랐다.

“그만큼 어리석기도 해, 나오지 않는 눈물을 기대하며 흘리는 중이기도 하고 말이야. 내 말을 이해하지 못해도 좋아. 이해를 바라고 하는 말이 아니니 말이야.”

“…….”

“하지만 역시 이런 언덕 꼭대기에 혼자 있는 것은 영 외로워서 말이지. 젊은이들이 날 좀 도와주시게나.”

잿빛 망토의 노인은 당연히 그들이 자신을 도와줄 것이라 확신하고 있었다. 심지어는 짓궂은 놀림도 곁들였다.

“나를 빨리 도울수록 차일드 롤랜드도 빨리 만날 수 있을걸세.”

기억이 흐릿하던 다른 이들과는 확연히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는 발언이었다. 희연은 어떻게 돌아가는 상황인 걸까 생각하며 노인의 부탁이 무엇인지 귀 기울였다.

“소를 돌보는 이에게서 들었을지도 모르지만, 나는 원래 암탉과 병아리를 키우는 게 일이었다네. 고 작은 것들 울음소리 듣는 게 나름 내 삶의 낙이었지. 하지만 지금은 기껏해야 쑤시는 뼈마디에 앓는 내 목소리밖에 듣지를 못해.”

“그러면….”

“그러니! 자네들이 이 바구니 안에 내 암탉과 병아리를 다시 담아 데리고 와줬으면 한다네. 암탉은 두 마리, 병아리는 다섯 마리. 이 늙은이가 넘어지며 엎어진 바구니에서 빠져나간 것들의 수지.”

몬스터를 잡아 달라 애원하던 두 사람에 비하면 잿빛 망토 노인의 부탁은 어려운 게 아니었다. 비록 언덕이라는 명칭에 맞지 않게 그들이 오른 땅이 많이 험난하긴 했지만 앞서 한 일들에 비하면 미아가 된 암탉과 병아리 찾기는 쉬운 일처럼 느껴졌다.

게다가 병아리는 노란색이니 잿빛의 땅에서 찾기 무척이나 쉬울 것처럼 느껴졌다.

“병아리….”

노란 솜털 같을 병아리를 상상하던 희연은 조금 전에 들었던 소리를 떠올렸다. 삐약삐약. 모짜렐라가 언덕 오르는 게 힘겨워 내뱉은 줄 알았던 소리가 진짜 병아리 소리였을지도 모르겠단 생각이 들었다.

모짜렐라 역시 같은 생각을 했는지 미묘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

그런데 병아리와 암탉이 정말로 병아리와 암탉일까?

희연은 미노타우로스를 보며 소라 주장하던 남자를 떠올렸다. 어쩌면 병아리도 노란 솜털 같은 모습이 아닐지도 몰랐다.

당장 희연이 게임 초반부터 보았던 싸움꾼 토끼만 해도 귀여운 듯 사나운 듯 오묘한 외양을 가지고 대단한 성질머리를 보여주어 그녀의 악몽으로 자리 잡았다.

병아리도 싸움꾼 토끼에 뒤처지지 않는 모습일지도 몰랐다. 끔찍한 상상을 하던 희연은 결국 참지 못하고 홀홀 웃고 있는 노인에게 질문했다.

“병아리… 어떻게 생겼나요?”

매우 진지하게 물어보는 희연의 모습에 노인은 눈을 크게 뜨더니 이어 낄낄 소리 내어 웃기 시작했다.

“병아리 본 적 없는가? 요만한 솜털이지.”

노인이 말한 요만함은 한 손에 올라오는 자그마한 크기였다. 이번에는 정말로 평범한 병아리인가 싶어 희연은 조금 기대했다. 그리고, 그런 희연에게 모짜렐라는 빼먹은 것을 챙겨주었다.

“암탉도 물어봐.”

“아.”

병아리를 신경 쓰느라 닭 쪽은 깜박하고 말았다. 표정이 굳은 희연을 본 노인은 어깨를 으쓱인 뒤 답을 해주었다.

“원래야 아주 귀여웠다만, 보다시피 여기 땅이 영 좋지 못하지 않나. 애들이 이상한 걸 주워 먹었는지 좀 그렇긴 하다만 바구니에 넣어 올 수는 있을 거네.”

정말 전혀 믿음이 가지 않는 말이었다. 희연은 이번에는 닭이 준보스로 등장하는 건가 싶어 조금 심각해졌다. 닭이 몬스터라니, 전혀 예상이 안 갔다.

준보스 닭이면 날아다니기도 하지 않을까 예상해보던 희연은 어깨를 두들기는 손길에 고개를 돌렸다. 바구니를 달랑달랑 들고 있는 방패 전사 강자였다.

“자, 모두 집중해 주세요!”

일행의 시선을 끈 그는 바구니를 땅에 내려놓으며 계획을 설명했다.

“병아리는 언덕 여기저기에 숨어 있어서 나눠서 찾을 거예요. 암탉은 병아리를 다 잡은 뒤에야 나오니까 따로 찾으려고 하지 않으셔도 되고, 그전까지는 따로 위협은 없으니까 가끔 튀어나오는 몬스터만 조심하시면 됩니다!”

언덕을 뒤져야 한다는 말에 모짜렐라의 얼굴이 조금 핼쑥해졌다. 가끔 몬스터가 튀어나온다는 말에 마냥 안전한 건 아니구나 싶어 희연도 조금 안색이 나빠졌다.

솔직한 두 힐러의 반응에 방패 전사 강자는 어쩔 수 없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 포기하란 뜻이었다.

“자, 그러면… 어떻게 조를 나눌까요…?”

방패 전사 강자의 말이 끝나자마자 희연과 모짜렐라는 재빠르게 서로의 옷깃을 쥐었다. 마늘쫑쫑 역시 흑염의 아이를 번쩍 들어 올렸다.

순식간에 나눠진 조에 방패 전사 강자는 눈물을 머금고 트롤 임페리얼 나이츠 곁에 섰다.

자신이 함께하는 팀원으로서 기피 대상이라는 것을 아는지 모르는지 트롤 임페리얼 나이츠는 거만하게도 방패 전사 강자에게 자신을 잘 따라오고 보좌하라는 소리나 했다.

그들이 나누어지는 것을 지켜보던 잿빛 망토의 노인은 바위의 틈새로 손을 집어넣더니 천이 깔린 바구니 두 개를 더 꺼내왔다. 바구니를 들고 선 방패 전사 강자와 함께하지 않게 된 이들을 위해서였다.

“자, 아가들이 놀라지 않게 조심들 해주시게 젊은이들.”

노인의 당부에 고개를 끄덕인 희연은 조금 신기한 마음으로 바구니를 바라보았다.

주위 풍경도 상황도 화사하고 밝은 것과는 동떨어져 있었으나 바구니를 드니 괜히 소풍 가는 기분이 들었다.

“그러면 제가 이쪽, 마늘쫑쫑 님은 저쪽 위주로, 힐러님들은 저쪽 살펴주세요. 병아리를 모두 모으면 닭 울음소리가 들릴 거니까 그쪽으로 오시면 됩니다.”

각자에게 위치를 지정해준 방패 전사 강자는 홀로 퀘스트를 수행하기로 마음먹기라도 했는지 굳은 결심이 느껴지는 얼굴로 언덕을 내려가기 시작했다.

트롤 임페리얼 나이츠에겐 같이 가자는 말 한마디를 안 했다. 뒤늦게 방패 전사 강자의 뒤를 쫓는 트롤 임페리얼 나이츠의 거만한 표정은 무너져 내려 있었다.

“자, 우리도 가자. 스킬 써라.”

마늘쫑쫑의 경우 방패 전사 강자가 그랬듯 흑염의 아이를 버리고 가거나 하지 않았다. 오히려 적극적으로 제 친구를 써먹었다.

결국 이번 퀘스트의 본질은 미아 찾기이니 해골을 잔뜩 소환할 수 있는 흑염의 아이는 이번에도 제법 활약할 거리가 많았다.

“겨우, 겨우 병아리를 찾기 위해 나에게…!”

물론 협조적이어야 한다는 전제하에 말이다. 희연은 마늘쫑쫑을 믿었다.

“그러면 이제… 우리는 어떻게 찾아야 할까?”

방패 전사 강자처럼 이곳을 여럿 경험한 적도, 흑염의 아이처럼 부하를 소환하는 것도 못 하며 심지어 팀 내에서 가장 비실비실한 사람 둘이 모였다.

희연은 다시 언덕을 내려가며 병아리를 수색한 뒤 올라올 수 있겠냐는 뜻을 담아 모짜렐라를 보았다. 노골적인 그 의미에 상대는 뚱한 표정을 지었고 그 모습에 희연은 저도 모르게 조금 웃고 말았다.

“웃지 마.”

웬일로 마리아도 모짜렐라의 편을 들어주었다.

“그래 웃지 마. 우리 꼬마 치즈 삐진다. 애가 비실비실한 게 잘못은 아니잖니.”

별로 효과는 없었다. 마리아에게 차마 으르렁거리진 못 하고 조용히 노려보기만 하는 모짜렐라를 보며 희연은 그저 웃기만 했다.

“?”

한 성깔 하기론 빠지지 않는 두 사람의 모습을 구경하던 희연은 어깨 부근에서 꼼질거리는 기척에 고개를 숙였다. 악령이가 살금살금 희연의 팔을 타고 이동하고 있었다.

“악령아?”

악령이는 자신을 부르는 목소리를 뒤로하고 잽싸게 바구니 안으로 몸을 집어 던졌다. 안락한 보금자리라도 얻은 듯 눈을 빛내는 모습이 바구니가 제법 탐이 난 듯했다.

바구니 속에 태워진 인형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희연은 소매에서 넬도 나오게 해 바구니에 태웠다. 자그마한 것들이 오밀조밀 함께 있는 모습이 제법 귀여웠다.

“야… 좋냐?”

“아….”

그러던 중 스산히 저를 부르는 목소리에 희연은 어색한 웃음을 지어야 했다. 마리아가 자신을 놀리는 상황에서 홀로 즐거워하던 희연의 모습에 모짜렐라는 배신감을 느끼고 있었다.

하지만 희연으로서도 조금 억울한 것이, 애초에 마리아가 놀리겠다 마음먹은 이상 킹스메이커가 아니고서야 그것을 거부할 수 있는 능력이 그들에겐 없었다.

받아들이거나 반쯤 무시하거나 할 수밖에 없었다. 희연은 조금 고민하다 바구니를 팔에 걸고 양손을 주먹 쥐었다.

“파이팅….”

모짜렐라는 얼굴을 구기는 것으로 제 심정을 보여주었다.

***

모짜렐라보다 낫다만, 희연 역시 힘이 부족하고 그로 인해 근력과 체력이 부족한 건 마찬가지였다.

두 사람은 경험 많은 방패 전사 강자와 와글와글 다니는 게 가능한 흑염의 아이 쪽을 믿고 무리하지 않는 선에서 병아리를 찾기로 결정했다.

다른 파티원들 역시 희연과 모짜렐라가 병아리 수색에 있어 많은 도움이 될 것이라 믿는 눈치는 아니었기에 부담은 없었다.

마리아의 경우 실컷 놀린 뒤 만족했다는 듯 잘 갔다 오라며 두 사람을 배웅했고, 이세인 역시 생긋생긋 웃기만 하고 따로 도움을 주거나 하진 않았다.

두고 갔던 것에 대한 뒤끝인가 하기엔 처음부터 방임주의였던지라 희연도 어색하게 웃는 것으로 답을 대신했다.

그래도 하는 데까지는 열심히 해보자 다짐하며 희연과 모짜렐라는 험난한 언덕길을 오가며 작은 솜털 뭉치 같은 병아리를 찾아 헤맸다.

아무것도 없는 황량한 땅이라 할지라도 바위의 틈새, 흙 밑의 작은 구덩이 같은 것은 있었기에 미아가 된 병아리를 찾는 것은 마냥 쉽기만 한 작업은 아니었다.

조그마한 병아리의 크기를 고려하여 거의 땅을 기듯이 수색하고 다닌 덕에 두 사람의 옷은 흙투성이가 되었다. 안락한 바구니 생활을 즐기던 악령이와 넬도 수색을 도왔지만 별다른 성과는 없었다.

수색의 대가 마리아라면 병아리 찾기도 잘했을 거라는 생각에 그녀가 곁에 없다는 점이 마음이 편하면서도 희연은 아쉬운 마음도 들었다.

바위틈으로 손을 넣고 휘적이다 자리에서 일어난 희연은 흙이 묻은 옷자락을 털며 모짜렐라를 돌아보았다. 그는 거의 눕다시피 한 상태로 나무둥치 밑을 살펴보고 있었다.

“병아리 찾는 거 어렵다….”

멍하니 중얼거리는 희연의 말에 모짜렐라 역시 헝클어진 머리를 쓸며 긍정했다.

처음 병아리 수색을 할 때만 해도 한 마리는 찾겠지 싶었으나 이대로면 희연과 모짜렐라는 빈 바구니만 달랑달랑 들고 돌아가야 할 판이었다.

트롤 임페리얼 나이츠가 두 사람의 빈 바구니를 보고 거만하게 군다면 희연은 실수로 총을 쏠지도 몰랐다. 파티의 안전과 평화를 위해서라도 병아리를 찾아야 했다.

“…혹시 병아리를 찾는 법이 따로 있는 거 아닐까?”

“뭐. 모이 같은 거라도 뿌려보자고?”

“아니 그런 건 아니고… 병아리를 부르는 언어 같은 거…?”

“?”

의아해하는 모짜렐라의 모습에 희연은 조금 멋쩍어하며 답했다.

“욕….”

“…….”

“욕하면 병아리 소리 나오니까… 그거 듣고 오지 않을까 해서….”

물론 그들이 사용하는 욕설의 경우 성인 모드를 설정하지 않은 이들에게만 삐약삐약 소리로 들릴 뿐 일반적인 NPC에게는 욕설로 들렸다. 그러므로 병아리에게도 욕설로 들릴 것이다.

하지만, 내내 땅을 구르다시피 한 이들에겐 가끔 말도 안 된다는 것을 알면서도 끌리는 일이 있는 법이었다.

모짜렐라는 손을 들어 악령이를 가리켰다. 희연은 발치에서 쫑쫑 걸어 다니던 악령이를 안아 인형의 귀를 틀어막았다.

“삐약 삐약, 삐약삐약…?”

모짜렐라의 입에서 맑고 귀여운 소리가 울려 퍼졌다. 두 사람은 침묵하며 기다렸다. 돌아오지 않는 답에 둘 다 이게 뭐 하는 짓이지 싶어 자신들의 행동이 부끄러워지려는 찰나, 드디어 답변이 돌아왔다.

삐약!

작고 여린 소리는 멀지 않은 곳에서 들려왔다.

“…이게 진짜 된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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