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7화
삐약 소리를 낸 장본인인 모짜렐라는 어이없다는 듯 오묘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희연은 그런 그를 놔두고 병아리를 찾아 소리의 근원지로 뛰어갔다.
하지만 사람의 기척에 도망이라도 간 것인지 희연이 소리가 난 곳으로 도착했을 때는 이미 노란 솜뭉치는 보이지 않았다.
“내가 찾아줄게!”
“응?”
아쉬워하는 희연의 얼굴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악령이가 손을 번쩍 들며 외쳤다. 갑자기 적극적으로 변한 악령이의 태도에 희연은 의아함을 느꼈지만 인형은 바동거리며 자신을 놔달라 재촉할 뿐이었다.
희연은 악령이의 능력을 떠올렸다. 작은 인형은 어떻게 봐도 그리 믿음직한 모습은 아니었으나 그 안에 담긴 악령은 제법 강력했다. 자미엘에게도 한 방 먹일 만큼 말이다.
이번에도 뭔가 보여주려는 건가 싶어 희연은 기대하는 마음으로 악령이를 놔주었다.
“찾았어?”
“쉿!”
뒤늦게 희연이 있는 곳으로 달려온 모짜렐라가 물었고, 희연은 조용히 하라며 손을 입에 가져다 댔다. 큰소리를 내면 방해가 될 뿐이었다.
“악령이가 찾아준대.”
“…걔가?”
모짜렐라는 넬이 마리아에게 반짝 빛남으로써 도움이 됐던 일을 잊은 것인지 썩 믿음직하지 못하다는 표정을 지어 보였다. 희연은 한번 믿어보라 말한 뒤 모짜렐라를 잡아끌어 몸을 낮추었다.
악령이는 그 짧은 다리로 열심히 걸었는지 어느새 제법 먼 거리까지 이동했다. 몸이 가볍고 말랑말랑해서인지 작은 인형은 제법 높은 바윗길도 아무렇지 않게 폴짝폴짝 잘 뛰어다녔다.
“진짜 찾으려나 봐…!”
“어, 그래.”
성큼성큼 좁은 보폭으로 나아가던 악령이는 어느 바위 틈새에서 멈추더니 그 안으로 머리를 집어넣었다. 짧은 다리가 허공에 들려 바동거렸다.
“저기 있나 봐! 저기 있나 봐!”
“…….”
마침내 악령이가 틈 안에서 빠져나오더니 자리에 앉았다. 희연의 위치에선 인형의 뒷모습만 보였기에 뭘 하고 있는 것인지 제대로 보이지 않았다.
“놓친 건가?”
“…쟤 뭐 하고 있는 것 같은데?”
“그러게…?”
악령이는 꼼질거리며 무언갈 하고 있었다. 이런 곳에서, 이런 상황에 갑자기 주저앉아서 할 만한 것이 뭐가 있나 싶었던 희연은 제 어깨를 타고 살그머니 나온 넬을 보자마자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야…?”
악령이를 믿고 우리 함께 조용히 있자 주장한 사람은 분명 희연이었다. 그러나 그녀는 소리가 새어 나가는 것은 신경도 안 쓰고 뛰어 내려가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본 모짜렐라가 할 수 있는 건 황당하다는 듯 상대를 부르다 함께 일어나서 뛰어 내려가는 거였다.
“악령아? 악령아…!”
희연은 바윗길을 내려오자마자 악령이를 낚아챘다. 볼록 튀어나온 인형의 볼을 본 희연의 표정이 굳었다.
“…악령이 아.”
“…….”
“아.”
“…아.”
마지못해 벌어진 인형의 입에서 작은 솜뭉치가 튀어나왔다.
삐약!
떨어질 뻔한 병아리를 잡는 데 성공한 희연은 바들바들 떠는 작은 솜뭉치를 모짜렐라에게 넘긴 뒤 악령이를 돌아보았다. 악령이는 제 잘못을 아는지 눈을 데굴데굴 굴리고 있었다.
“자…, 설명해 볼래?”
“…병아리가 추울까 봐.”
마음이 따뜻해지는 변명이었다. 입에 넣지만 않았다면 믿어주고 싶었을지도 모르나 희연은 고개를 저으며 병아리의 심정을 대변해 주었다.
“병아리는 차라리 춥길 바라지 않았을까…?”
모짜렐라의 품 안에서 병아리가 덜덜 떨고 있는 것은 추워서가 아니라 먹힐 뻔한 두려움 때문일 것이다.
결정적으로 이곳은 눅눅하고 끈적한 기후이지 안 추웠다. 물에 젖으면 재채기도 하는 인형의 몸이면서 주변 환경을 못 느꼈을 리 없었다.
희연은 배신당한 제 마음에 조금 슬퍼지기도 하고 황당하기도 해 결국 한숨을 내쉬었다. 넬도, 뱀도, 밴시도 먹는 악령이인데 너무 믿고 말았다.
그러나 눈치를 보다가도 순진무구하게 웃고 마는 악령이를 보노라면 경계하지 않은 자신이 잘못한 거지 먹는 게 본능인 악령이 잘못한 일인가 하는 다소 편향된 생각이 들고는 했다.
희연 역시 이런 식으로 계속 봐주면 안 된다는 생각은 들었지만 잘못했다는 듯 눈치 보는 맹한 얼굴에 대고 쏘아붙이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다.
결국 그녀는 한숨을 내쉬다 인형을 안아 들었다. 과정이 조금 문제였지만 어찌 됐건 간에 악령이 덕에 병아리를 찾은 건 맞았으니 잘못을 감안해 주었다.
물론 다음에도 이러면 그때는 정말로 혼이라도 내자 속으로 다짐하기는 했다.
“…찾는 게 어려울 수밖에 없긴 했네.”
이제야 떨림이 조금 가라앉은 병아리를 보며 희연은 왜 그리 찾기 어려웠는지 납득했다. 병아리는 제 주인인 잿빛 망토의 노인처럼 잿빛의 털을 가지고 있었다.
보송보송한 솜털이란 점은 일반적인 병아리와 같긴 했지만 색이 색이다 보니 찾기 어려웠던 것이다. 희연은 병아리의 등을 조심히 쓸어보았다. 보들보들했다. 닉이 좋아할 것 같은 감촉과 귀여움이었다.
희연이 낯선 병아리를 귀여워하는 것을 기다려준 모짜렐라는 그녀의 손이 떨어지자마자 바구니 안으로 병아리를 들여보냈다.
덮개가 없는 바구니였기에 사람과 인형이 무서운 병아리가 도망가면 어쩌나 희연은 조금 걱정했지만, 다행히도 병아리는 바구니 속이 제 안락한 보금자리라 여긴 것인지 동그랗게 몸을 말고 얌전히 자리를 잡았다.
넬이 그런 병아리에게로 가 제 몸보다 커다란 털 뭉치를 꼬옥 안아주었다. 같은 아픔을 겪은 탓인지 유대 관계를 맺은 듯싶었다.
“나도 바구니….”
“…….”
희연은 조금 고민하다 악령이도 바구니 안으로 들여보내 주었다. 악령이가 병아리와 넬을 한데 모아 끌어안은 모습이 올망졸망해 아닌 것을 알면서도 사이가 좋아 보였다.
“같이 넣어놔도 되는 거야?”
“아마도….”
자신 없는 희연의 목소리에 모짜렐라는 감시라도 하듯 악령이에게서 눈을 떼지 않았다. 그 눈빛을 악령이는 가볍게 무시했지만 희연은 무시하지 못하고 괜히 말을 걸었다.
“다른 쪽은 얼마나 찾았을까?”
“우리보다는 많이 찾았겠지. 각각 경험 많은 인간들이 꼈는데 우리보다 못했으면 그건 다 트롤, 그 새끼 때문인 거고.”
“응….”
희연은 방패 전사 강자 쪽만큼은 파티의 안녕과 평화를 위해서 최소 두 마리를 찾았기를 바랐다.
“내가 들고 갈게.”
“그러든가.”
꼬기오오옭-!
모짜렐라에게서 희연이 바구니를 막 받아들인 찰나, 두 사람은 낯설지 않은 짐승의 울음소리를 들었다. 아주 커다랗고 우렁찬 소리였다.
“…들었어?”
“어.”
닭 울음소리 탓인지 얌전히 악령이에게 안겨있던 병아리도 이리저리 고개를 돌리기 시작했다. 당황스러운 상황에서도 우렁찬 닭의 울음소리는 계속 울려 퍼졌다. 마치 제 울음소리를 듣고 찾아오라 일러주는 것 같았다.
희연과 모짜렐라는 무어라 더 대화를 나누지 않고 곧바로 소리의 근원지를 찾아 달리기 시작했다. 그들이 있는 위치와는 완전히 반대되는 곳에서 소리가 들렸다.
빙 둘러서 가는 것보다는 언덕을 넘는 게 거리상 더 빨랐기에 그들은 헉헉거리면서도 착실히 언덕을 올랐다. 모짜렐라가 아주 많이 힘들어했다.
“잡아줄까?”
“앞에, 앞에 봐…!”
희연의 도움을 거절한 모짜렐라는 악과 깡이 느껴지는 얼굴로 지팡이에 몸을 의지해 언덕을 올랐다. 마침내 두 사람이 언덕 너머로 발을 내디딘 순간, 누구 하나 먼저라 할 것도 없이 동시에 감탄을 내뱉었다.
“와….”
“하….”
모짜렐라의 감탄은 헛웃음에 가까웠다. 희연은 그런 모짜렐라의 반응이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그도 그럴 것이 눈앞에 펼쳐진 풍경은 여러모로 놀라웠기 때문이다.
일단 그들이 닭의 울음소리를 들었을 때부터 예상했듯 새로 나타난 존재는 닭이었다. 정확히는 닭 두 마리. 병아리처럼 색이 잿빛으로 물들어진 닭 두 마리가 사이좋게 언덕을 뛰어놀고 있었다.
여기까지만 해도 두 사람이 놀란 이유가 정말로 병아리 다음에 닭이 나타났다는 점에 대한 황당함이라 볼 수 있었지만, 이미 이번 던전을 통해 다양한 경험을 한 둘은 겨우 닭이라는 존재로는 더 이상 놀라지 않게 되었다.
놀란 이유는 다름이 아니라, 닭이 컸다. 조금 많이 컸다. 아니, 그냥 컸다.
희연은 이게 맞는 건가 싶었다. 뭘 쪼아 먹는지 고개를 숙이고 있던 닭이 고개를 들자 이젠 그들이 언덕을 넘기 전 있던 장소에서도 볼 수 있을 만큼 더 커다래졌다.
“…….”
닭이 보스의 기운을 흘리며 나타났다는 점에서 우스울 수도 있었지만 희연은 웃지 못했다. 두 마리의 닭은 희연이 지금까지 본 몬스터 중에 제일 세고, 무섭게 생겼기 때문이었다.
성격은 나쁠지라도 외향적으로는 무서운 특징이 없던 자미엘과 마리아, 뭘 해보기 전에 쓰러트렸던 귀여운 하급 골렘. 그리고 이곳에 오기 직전 상대했던 스산한 구석이 있긴 했으나 나름 멋있긴 했던 듀라한까지.
닭이 보스라는 점에서 희연은 이제야 제 레벨 대에 맞는 보스가 등장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들면서도 조금도 미화된 구석이 없는 커다란 닭이라는 점에서 현실적인 공포를 느꼈다. 부릅뜬 눈이 무서웠다.
“완전 세 보여….”
“어… 세 보이네….”
모짜렐라 역시 희연과 비슷한 반응을 보였다.
희연은 시야를 내려 닭이 쪼아 먹던 것의 정체를 확인했다. 그건 땅에 박힌 트롤 임페리얼 나이츠였다.
뭐 하다가 땅에 박히게 된 것인지 정말 궁금했지만 모짜렐라가 저 꼴을 보면 다시 삐약거릴까 봐 희연은 그 사실을 구태여 알려주지 않았다.
잠시 고민하던 희연은 총을 들어 오른쪽에 있는 닭을 겨냥했다. 탕! 짧은 총소리가 울리자 밑에서 우왕좌왕 닭들에게 안 밟히려 뛰어다니던 파티원들도 두 사람을 발견했다.
두 팔을 들고 휘적거리는 방패 전사 강자의 모습으로 보아 두 사람을 정말 기다렸다는 걸 알 수 있었다.
“겉모습이랑 다르게 약하네.”
“응?”
옆에서 들리는 목소리에 희연은 다시 시선을 모짜렐라에게로 돌렸다. 그는 손을 들어 희연이 겨냥한 닭의 머리 위를 가리켰다.
[Lv. 36 수상한 것을 먹어버린 닭]
기나긴 이름과 함께 닭의 HP가 눈에 들어왔다. 희연은 생각보다 많이 들어간 대미지에 놀라 눈을 크게 떴다.
“왜 약하지…?”
저렇게 세게 생겼는데?
자신도 모르게 강해진 건가 싶어 희연은 제 정보를 확인했다. 여전했다. 어떻게 된 일인가 싶어 의아해하던 희연은 익숙한 목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너희 여기서 뭐 하니? 빨리 가서 잡아.”
“아… 마리아, 님….”
닭의 울음소리를 듣고 구경 온 것인지 마리아와 이세인이 나란히 나타났다. 희연은 두 사람이 사이좋게 나타날 수도 있단 점에 놀라워하다가 입을 열었다.
“생각보다 닭이… 약해서요.”
“닭은 원래 약해. 너 설명 제대로 안 봤지.”
마리아는 친절하게도 희연의 고개를 손수 닭 쪽으로 돌려주었다. 닭의 HP에 정신이 팔려 놓친 점을 희연은 그제야 알아차렸다.
“레벨이 안 높네요?”
“닭치고는 높은 거지. 그리고 애초에 뭐 좀 잘못 먹은 닭이 강하면 얼마나 강하다고 여기서 겁먹고 있어.”
비주얼적으로 인상 깊어서 그렇지 결국 근본은 닭이었다. 희연은 크기만 보고 닭을 너무 대단히 취급한 건가 싶어 조금 민망해졌다.
하지만 땅에 박힌 트롤 임페리얼 나이츠를 두 마리의 닭이 번갈아 가면서 쪼는 것을 보고는 닭은 원래 위험한 동물이 맞다는 결론을 내려버렸다.
“총이라 다행이다….”
원거리 무기의 대표 격인 제 총을 보며 감사의 마음을 가진 희연은 아쉬운 대로 다시 초보자용 권총을 꺼내 들어 닭 두 마리에게 각각 총을 겨누었다.
“<탄환 변경>.”
[탄환이 변경됩니다. 마법 탄환 >> (마법)빙결 탄환]
결과적으로 말하자면 두 마리의 닭은 냉동 닭이 되는 것으로 대단한 위엄을 두르고 나온 준보스 치고는 시시하게 끝났다.
본질은 닭이니,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