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8화
희연은 혼자 준보스를 두 마리나 처리했다는 점에 기뻐해야 할지, 하필이면 처음으로 해치운 준보스가 닭이라는 점에 실망해야 할지 혼란스러워 일행에게 합류하기 위해 움직이면서도 오묘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일행의 HP는 요란스럽게 닭의 공격을 피하던 것에 비해 모두 나쁘지 않은 상태였다. 정말로 닭은 약했고 그저 그 외모만으로 모두를 압도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는 결과물이었다.
땅에 박힌 트롤 임페리얼 나이츠를 뽑던 방패 전사 강자가 희연에게 잘했다며 칭찬을 했기에 희연은 더욱 이 결과물이 황당했다.
“왜 안 잡고 다들 피하고만 있던 거예요…?”
닭 두 마리는 트롤 임페리얼 나이츠가 탱커답지 않은 방어력을 믿고 몸으로 들이박아도 잡을 수 있을 정도로 약했다.
희연의 물음에 방패 전사 강자는 민망해하며 잡고 있던 트롤 임페리얼 나이츠의 머리에서 손을 뗐다.
“아유 이것 참, 그게 말이죠. 원래 닭 상대할 때도 성 속성 부여 버프가 필요해서….”
“아이 님도 잡을 수 있는 거 아니었어요?”
“그게….”
방패 전사 강자는 직접 설명을 들으라는 듯 한 발짝 물러났다. 희연은 마늘쫑쫑에게 매달려 있는 흑염의 아이의 모습에 고개를 갸웃거렸다.
흑염의 아이는 집요한 시선에 천천히 말문을 열었다.
“닭의 눈빛이 사악했다…!”
“설마 동질감을 느꼈어요?”
“헛소리! 그건 악마의 눈빛이었다!”
“…….”
숭배 대상이라 공격을 못 하겠다고 한 건가?
혼란스러워하는 희연의 반응에 흑염의 아이를 업고 있던 마늘쫑쫑이 간결한 진실을 알려주었다.
“얘 그냥 닭 무서워서 공격 못 한 거예요.”
“…아하.”
희연은 동의의 의미로 고개를 끄덕였다. 솔직히 커다란 닭은 그녀가 봐도 무서웠고, 현재 얼려져 있는 상태임에도 불구하고 무서운 건 똑같았다.
어둠의 숭배자 흑염의 아이일지라도 충분히 무서워할 만했다.
그나마 레벨도 낮고 실질적인 능력도 닭이라 공격이 잘 통해 무리하지 않았음에도 희연의 공격이 잘 먹혔을 뿐이었다.
“…그런데 닭도 같이 데리고 가야 하는 거 아니에요?”
잿빛 망토 노인의 요구는 암탉 두 마리와 병아리 다섯 마리를 다시 데리고 와달라는 거였다. 희연은 눈을 데굴데굴 굴려 상황을 파악했다.
닭에게 공격당하던 난리 통에도 파티원들이 놓치지 않은 바구니에는 희연과 모짜렐라가 찾아내지 못한 병아리가 사이좋게 두 마리씩 들어가 있었다.
희연이 들고 있는 바구니의 병아리가 제 가족을 알아보고 고개를 번쩍 치켜들었다. 다른 바구니 속 병아리들도 마찬가지였다.
병아리는 해결되었다. 그렇다면 닭은?
희연은 경험 많은 방패 전사 강자를 바라보았고 그는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모두 준비해 주세요.”
“뭐를요…?”
그는 답해주지 않았다. 다만 고양이 손이라도 빌리겠다는 심정인지 급하게 트롤 임페리얼 나이츠를 다시 뽑아내기 시작했다.
흙투성이 꼴로 땅을 구르는 트롤 임페리얼 나이츠를 보며 희연은 준비하라는 일이 심각한 일인지 아닌지 긴가민가해졌다.
정말로 심각한 일이라면 트롤 임페리얼 나이츠가 그렇게 큰 도움이 될지 알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방패 전사 강자가 준비하라고 한 일은 손 하나가 급한 일이 맞았다.
닭을 얼린 얼음이 깨졌다. 여타 다른 몬스터처럼 사라지지 않은 거대한 닭의 크기가 점차 작아지나 싶더니 두 동물은 살아나 땅을 뛰어다니기 시작했다.
“…?”
닭이 다시 살아난 거? 노인에게 데리고 가야 하니 그럴 수 있었다. 크기가 작아진 거? 뭘 잘못 먹은 것일 뿐이니 그럴 수 있었다.
희연이 당황한 것은 닭이 너무 생생하고 자유롭게 뛰어다니기 시작했다는 점이었다.
“자 이제 저 닭을 잡으면 됩니다.”
병아리도 손수 잡았으니 닭 역시도 손수 잡아라, 정말 공평한 퀘스트였다.
클 때나 작을 때나 여전히 위협적으로 부릅뜬 눈을 보며 희연은 조심히 닭에게 가까이 가보았다.
“차, 착하지…?”
꼬끼오!
안 착했다. 닭은 사람이 자신에게 접근하자마자 두 날개를 활짝 펴고 덤비기 시작했다.
“으와악…!”
달려드는 닭을 피해 도망가던 희연이 확신할 수 있는 하나는 방금 비명 지른 사람은 그녀가 아니라는 점 정도였다.
희연은 가장 안전해 보이는 곳 즉, 마리아의 뒤로 모짜렐라와 함께 숨은 채 앞쪽 상황을 훑으며 파티원들에게 기대를 걸었다. 경험 있는 이들이 닭 역시도 잘 잡아 줄 것이라 믿은 것이다.
그러나 닭의 눈빛이 사악해 공격 못 했다던 흑염의 아이의 이야기를 떠올리며 희연은 그 기대를 버렸어야 했다. 닭이 무서운 것은 경험이 없건 많건 똑같았던 것이다.
희연에게 옷자락이 잡힌 마리아는 옷 늘어난다며 그녀를 타박하다 돌아가는 꼴에 어이없다는 듯 헛웃음을 흘렸다.
“어째 클 때보다 더 무서워하는 것 같다?”
“안 무서우세요…?”
“심약하기는.”
곧장 날아온 타박에 마리아는 닭도 안 무서운 걸까 싶어 희연은 닭보다 마리아가 조금 더 무서워졌다. 이 사람에게 과연 무서운 게 존재하기는 한 것인가 싶었기 때문이었다.
심지어 이세인 역시 날뛰는 닭을 꺼리며 웃는 얼굴로 몸을 빼고 있는데 마리아는 바로 코앞에 닭이 날아와도 꿈적도 하지 않았다.
안 무서운 척을 하는 것도 아니었다. 마리아가 가만있는 이유는 실수로 닭을 쳐서 별님의 곁으로 보내버릴까 봐 손을 못 대는 거였다.
그 강인한 모습에 희연은 안전지대로 마리아의 뒤를 선택하길 정말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닭 안 무서우신 거면 잡아주시면 안 돼요?”
“나라는 인재를 써먹을 기회를 겨우 닭 잡기로 날리겠다고?”
감히 자신을 겨우 그딴 일에 써먹을 거냐며 마리아는 희연을 노려보았다. 날로 먹는 건 좋아도 너무 하찮고 급 낮은 일에는 움직이기 싫은 눈치였다.
희연은 자신이 감히 실언을 했다 비는 것으로 마리아의 분노를 빠르게 잠재웠다.
마리아의 도움을 받는 건 포기한 희연은 뭐 쓸 만한 거라도 없나 싶어 인벤토리를 뒤져보았고, 미끼로 써먹을 만한 물건을 찾는 것에 성공했다.
“악령아!”
희연의 부름에 고개를 든 악령이는 그녀의 손에 들린 것을 보고는 반사적으로 입을 벌렸다. 꼭 어미 새에게 밥 달라고 조르는 아기 새 같은 모습이었다.
“아니, 이거 네 거 아니야….”
몹시도 실망한 악령이는 맹한 얼굴로도 제 심정을 모두 표현해냈다. 그 탓에 희연은 조금 마음이 미어졌지만 다음을 기약하며 악령이에게 도움을 구할 수밖에 없었다.
“닭 앞으로 던져줘!”
조금 삐쭉이긴 했지만 악령이는 희연의 부탁을 착실히 들어주었다. 검은 기류에 휩싸인 누네띠네 하나가 이리저리 뛰어다니며 건강함을 뽐내던 닭 앞으로 떨어졌다.
코앞에 떨어진 먹이의 유혹에 두 마리의 닭은 날개를 접고 땅을 쪼기 시작했다.
사실 내가 굽고 싶었던 건 이 썩어 빠진 세상이었단다의 작품은 이번에도 먹는 것 외의 용도로써 훌륭히 활약했다!
누네띠네를 하나 더 꺼내 악령이의 입에 물려 준 희연은 마늘쫑쫑에게 업혀 있는 흑염의 아이에게 손을 흔들었다.
“지금! 못 잡겠으면 해골 불러요!”
기다란 제 옷자락을 혹여나 닭이 물어 챌까 싶어 잔뜩 몸을 웅크리고 있던 흑염의 아이는 희연의 목소리에 그제야 제 주특기인 해골 소환을 시작했다.
“<오라, 어둠이여>….”
혹여나 제 목소리가 닭을 부르는 원흉이 될까 싶어 소리 죽여 스킬을 쓰는 모습이 지금까지 보여준 모습과는 완전히 상반되었다. 정말로 닭이 무서운 듯했다.
아무튼, 흑염의 아이가 소환한 두 해골 병사가 가냘픈 팔로 든든하게 닭을 대신 잡아준 덕에 그들은 닭이 주는 공포에서 벗어날 수 있게 되었다.
해골 병사에게 잡혀 이송되는 닭을 보며 희연도 그제야 붙잡고 있던 마리아의 옷을 놔주었다. 마리아는 빳빳하던 제 옷이 잔뜩 주름졌다는 이유로 희연의 머리를 다시 손수 귀여워해 줬고, 희연은 익숙한 공포를 다시 겪어야 했다.
“병아리는 한쪽에 몰아넣고 나머지 바구니에 닭 한 마리씩 넣으면 될 것 같네요!”
그러나 마리아 역시 희연을 온종일 붙들고 있을 생각은 없었다. 그녀는 방패 전사 강자가 리더십을 발휘하자 가보라며 희연을 놔주었다.
“야… 너 머리 좀 정리해….”
“괜찮아, 괜찮아.”
헝클어진 머리를 대충 넘기는 희연의 모습을 보다 못한 모짜렐라가 대신 그녀의 머리를 정리해 주었다. 정리라고 해봤자 사람 꼴로 보일 정도로만 만들어주는 정도였다.
마리아가 꼬인 심사를 표현하는 새로운 방법에 모짜렐라는 심란한 표정을 지었다. 언제든 같은 꼴이 될 수 있다고 여겼는지 모짜렐라는 괜스레 자신의 긴 머리카락을 만지작거렸다.
희연의 머리카락과 모짜렐라의 머리카락은 기장이 비슷했기에 결과물 역시 비슷할 것이 분명했다.
자신보다 마리아와 앞으로 함께할 시간이 길 모짜렐라에게 희연은 심심한 위로를 보냈고, 모짜렐라는 기만하지 말라며 성질을 부렸다.
두 사람이 투닥거리며 싸우는 동안 다른 파티원들은 병아리를 한곳에 몰아넣었다. 훗날의 모습이 두려워지기는 하나 지금만큼은 아주 얌전하고 귀여운 병아리가 옹기종기 모인 것을 보며 그들은 기뻐했다.
희연 역시 작은 솜뭉치 같은 동물이 모인 것을 보며 소소한 기쁨을 느꼈다. 티를 안 낸다뿐이지 모짜렐라 역시 그 모습을 보며 귀여워하기란 마찬가지였다.
바구니를 가까이 내민 희연은 씩씩하게도 다른 친구들이 있는 바구니로 넘어가는 병아리를 보며 잔잔히 미소지었다. 귀여웠다.
흑염의 아이의 경우 병아리 역시 꺼리는지 힐끗힐끗 바라보기만 할 뿐 가까이 다가오지는 않았는데, 아무래도 살아서 움직이는 작은 생명체 자체를 어려워하는 모양이었다.
그녀는 해골을 시켜 닭 두 마리를 남은 바구니에 한 마리씩 옮겼다. 끝까지 직접적으로 만지지도 가까이 다가가지도 않으려는 모습이 치열해 보일 정도였다.
“자, 그러면… 누가 닭 바구니를 들고 갈까요?”
“…….”
바구니 안에 있으니 이젠 얌전하다마는 그렇다고 해서 부담스러워지지 않은 건 아니었다. 희연은 저도 모르게 방패 전사 강자의 시선을 피하며 한 발자국 물러났다.
이왕지사 짐을 들어야 한다면 그녀는 솜털 덩어리들이 바글바글 들어있는 쪽을 택하고 싶었다. 그리고 그건 모두가 같은 마음이었다.
가능하면 닭을 잡아 준 해골 병사들이 남은 운송과정에서도 힘을 써 주면 좋으련만 흑염의 아이가 이미 진저리치며 그들을 돌려보낸 뒤였다.
긴급 상황일 때야 어쩔 수 없이 불렀을 뿐, 그렇지 않을 때까지도 제 수족과 같은 병사를 쓰는 것은 거부한 것이다. 직접 만지는 것도 싫고 간접적으로 만지는 것도 싫은 모양이었다.
“…….”
“…….”
과연 누가 닭을 맡을 것인가 눈치 싸움을 하던 그때였다.
“뭣들 하는 거야?”
서로 힐끗힐끗 눈치 보는 상황을 답답하게 여긴 마리아가 난입했다. 그녀는 마치 싸우지 말라는 듯 병아리가 들어있던 바구니를 낚아채 갔다.
여기저기서 절로 아쉬움의 소리가 흘러나왔다. 고민거리를 없애주는 게 아닌 고민거리 외의 것을 없애버린다는 점에서 과연 마리아다웠다.
“와….”
그리고 희연은 또 다른 이유로 감탄이 나왔다.
색만 특이하게 여겨졌던 병아리들이 마리아의 손에 들어가자 갑자기 엄청난 힘을 숨긴 교단의 비밀 병기처럼 느껴졌던 것이다.
말해봤자 또다시 마리아에게 머리가 잡힐 것 같아 입 밖으로 내뱉지는 않았지만 마리아는 희연의 눈빛에서 불순함을 읽기라도 한 듯 살벌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희연은 그 시선을 피하며 입을 열었다.
“닭은… 나이츠 님이 드는 게 좋을 것 같아요.”
“나를 지목하는 이유가 있나 레이디?”
물론 그가 마음에 들지 않는 트롤이라 지목한 건 아니었다. 희연은 나름 타당한 이유를 내밀었다.
“그거야 어쨌든 힘은 제일 좋을 테니까요. 그리고… 기사도 정신?”
물론 가장 힘 좋은 건 방패 전사 강자고 트롤 임페리얼 나이츠에게 있는 건 기사도 정신은 아니었다. 그러나 그는 컨셉충. 기사도 운운에 자신의 컨셉을 지키기 위해 그는 고개를 끄덕였다.
“멋지다 기사님!”
“할 수 있다 기사님!”
희연의 의도를 알아차린 마늘쫑쫑과 방패 전사 강자 역시 바람을 넣었고, 그렇게 해서 닭 두 마리 모두 트롤 임페리얼 나이츠의 손아귀에 들어가게 되었다.
꼼지락거리고 간간이 울기도 하는 닭과 최대한 멀어지고 싶다는 마음이 표현된 듯 트롤 임페리얼 나이츠가 마치 허수아비처럼 바구니를 멀리멀리 들긴 했지만, 희연은 믿었다. 그 정도는 그가 사랑하는 기사도로 극복할 수 있을 거라고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