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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비세스 메이커 (239)화 (239/251)

239화

***

우여곡절 끝에 그들은 잿빛 망토의 노인이 있는 언덕으로 돌아가는 데에 성공했다. 일행이 언덕을 오를 때부터 자리에서 일어나 지켜보고 있던 노인은 자신의 목소리가 들릴 정도로 그들이 가까워지자 부쩍 밝아진 목소리로 그들을 반겼다.

“다들 고생이 많았구먼.”

노인의 시선은 유난히 퀭해진 트롤 임페리얼 나이츠에게로 고정되어 있었다. 희연이 보기에도 그의 상태는 영 아니었다.

바동거리는 닭 때문도 있었겠지만 그를 시들게 한 가장 큰 원인은 마리아의 핀잔이었다. 마리아는 트롤 임페리얼 나이츠가 자신의 길드 소속이 아님에도 혀를 끌끌 차며 나약하다고 못마땅해했다.

희연은 여러 의미로 언덕의 미아 찾기 퀘스트가 끝나서 다행이라 여기며 마리아로부터 바구니를 받아들었다.

키워주던 사람을 알아본 것인지 병아리들은 삐약삐약 구슬프게도 울며 어서 자신들을 내려달라 재촉했다.

냉큼 바구니부터 내려놓은 트롤 임페리얼 나이츠와 달리 희연은 조금 아쉬워하며 바구니를 땅에 내려놓았다.

병아리와 닭 두 마리에게 둘러싸인 노인은 즐거운 듯 힘 빠진 웃음소리를 내며 하나하나 손에 올려놓고 상태를 살펴보았다. 어디 다친 곳은 없나, 오동통하던 몸이 홀쭉해지지는 않았나 살피는 손길이 정성스러웠다.

한참을 살핀 끝에 노인은 눈이 다 접힐 정도로 웃어 보이며 그들을 돌아보았다. 굳이 이야기를 듣지 않더라도 노인이 내놓은 과제를 아주 훌륭히 완수했음을 알 수 있는 모습이었다.

내심 닭을 냉동 닭으로 만들어 그것에 대한 영향을 받지 않을까 걱정했던 희연에게도 참 다행인 일이었다.

“참으로 고맙네. 고마워.”

“아닙니다 어르신! 그러면 이제….”

“그래, 그래. 차일드 롤랜드, 그 젊은이를 만날 수 있게 길을 터줘야지.”

잿빛 망토의 노인은 바구니 안에 다시 병아리와 닭을 들인 뒤 느릿느릿 이야기를 시작했다.

“보다시피 이 땅은 모든 게 황폐해져 아무것도 남지 않은 것처럼 보이지마는, 이런 땅에도 나무가 자라고 요 작은 것들이 뛰어다니는 것처럼 아직까지 멀쩡한 곳 역시 존재한다네.”

“그러면 거기에 차일드 롤랜드가 있는 거예요?”

노인은 희연에게 빙그레 웃음 지으며 말을 이었다.

“그곳은 숲이지. 중앙에는 선선한 바람이 불고 늪처럼 깊고 질척이는 호수가 있지. 그리고 한 젊은이가 나룻배를 타고 잠이 들었네. 자네들이 찾는 우리의 차일드 롤랜드가.”

노인은 방패 전사 강자를 돌아보았고, 그는 잽싸게 지도를 꺼내 내밀었다. 역시 경험이 많은 티가 났다.

지도를 받아 든 노인은 품 안에서 얇은 목탄을 꺼내더니 무언가 표식을 새겨 넣었다.

“자, 여기로 가보시게나.”

희연은 고개를 내밀어 지도에 무슨 변화가 있나 확인했다. 지도에는 전에는 보지 못했던 새로운 표시가 새겨져 있었다. 차일드 롤랜드가 있는 호숫가 있는 숲의 위치인 듯했다.

“가는 김에 내가 호숫가에 깜빡하고 놓고 온 빨랫감도 가져다주면 좋고.”

“예! 알겠습니다!”

힘찬 방패 전사 강자의 대답이 마음에 든다는 듯 노인은 다시 힘 빠진 웃음소리를 내뱉었다.

“?”

이제 드디어 이 던전의 시작이나 다름없는 차일드 롤랜드를 만날 수 있을 거란 생각에 조금 기대하는 마음이 들던 희연은 제 옷소매를 당기는 손길에 고개를 돌렸다.

범인은 옷소매에 대롱대롱 매달린 악령이었다.

“왜?”

악령이를 안정적으로 안아 든 희연은 물었고, 악령이는 충격적인 답변을 들려주었다.

“있잖아… 먹어도 돼?”

“…뭐를?”

맹한 인형의 집요한 시선이 잿빛 망토 노인에게로 향했다.

병아리의 맛을 보고 누네띠네를 애피타이저 삼으며 입맛이 돌기 시작한 것인지 악령이는 무시무시한 소리를 너무 아무렇지 않게 물어왔다.

병아리에 이어 사람까지 먹어도 되냐 물어오는 모습에 희연은 이제라도 악령이를 교육해야 하는 건가 싶어 조금 혼란스러워졌다.

더욱이 문제가 되는 것은 악령이의 말을 잿빛 망토의 노인 역시 들었다는 점이다. 노인은 눈을 크게 뜨고 악령이를 보고 있었다.

“죄송합니다…!”

서둘러 사과한 희연은 악령이를 짧게나마 교육했다.

“사람은 먹으면 안 돼… 우리 음식만 먹기로 하자….”

애원에 가까운 희연의 말에 악령이는 고개를 갸웃거리더니 알 수 없는 소리를 했다.

“하지만 나는 사람 먹는다고 한 적은 없는데.”

“…?”

사람이 아니면 병아리를 먹고 싶다고 한 거였을까? 희연은 자신이 오해했던 건가 싶어 고개를 갸웃거렸다.

하지만 여전히 악령이의 시선은 발치의 병아리들이 아닌 노인에게로 향해 있었다. 꽤나 집요했기에 착각할 수가 없었다.

희연은 잿빛 망토 노인의 눈치를 살폈다. 처음 보는 인형이 자신을 사람 취급도 안 하고 먹을 것 취급을 했다는 점에 불쾌함을 느꼈을까 싶어서였다.

하지만 노인은 놀란 것도 잠시, 어느새 잔잔한 미소를 지은 채 악령이를 바라보고 있었다. 마치 어린아이의 재롱을 보며 웃음 짓는 인자한 할머니를 연상케 하는 모습이었다.

화가 난 것처럼은 보이지 않았기에 희연도 조금은 안심했지만, 여전히 이곳을 나가면 악령이를 킹스메이커의 앞에 앉혀놓는 한이 있더라도 제대로 교육해야겠다고 다짐했다.

악령이는 다가올 미래도 모르고 입맛만 다셨다.

“아참, 그러고 보니 이걸 말해주는 걸 잊을 뻔했구먼.”

“?”

뜻 모를 눈빛으로 악령이를 바라보던 노인이 손뼉을 치며 입을 열었다. 정말로 깜박 잊은 사실을 전해주는 사람처럼 보이지는 않았다.

“나룻배의 젊은이를 깨우기란 쉬운 일이 아니지. 선선히 부는 바람, 지지배배 우는 새소리와 수풀 소리는 잠이 솔솔 오게 하는 것들이니 말이야. 더군다나 고단한 길을 걷는 젊은이라면 더더욱이 잠의 유혹에서 벗어나고 싶지 않은 법이지. 이것 참, 헛걸음하게 할 뻔했구먼 그래.”

희연은 방패 전사 강자의 반응을 살폈다. 그는 새로운 정보에 놀라지 않았고 오히려 당연하다는 태도로 이야기를 듣고 있었다.

어쩐지, 웬일로 그가 갈 길을 재촉하지 않는다 싶었는데 원래부터가 이런 식으로 노인이 남은 정보를 알려주는 것이 순서인 듯했다.

“그럼 어떻게 해야 차일드 롤랜드를 깨울 수 있을까요?”

“그거야 요정들의 도움을 얻으면 아주 쉬운 일이지.”

요정?

방패 전사 강자와 노인의 대화에 귀 기울이던 희연은 익숙한 종족명에 집중했다.

페어리부터 픽시, 브라우니 등 다양한 요정족을 만난 적이 있는 만큼 희연은 요정이란 말에 더욱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었다.

“그거 아나? 예로부터 호숫가는 요정들의 놀이터였다네. 특히나 꼬마 요정들이 자주 놀러 오곤 했지.”

꼬마 요정이면 브라우니다. 산골 꼬마 요정들을 떠올린 희연은 황폐한 이 땅을 살아가고 있을 요정들의 성격을 짐작해 보았다. 아마도 겁이 많을 것 같았다.

오만하며 강인하고 인간에게 적대적인 페어리, 경계는 하는데 그만큼 장난기 넘치는 픽시. 그리고 애잔할 정도로 무해하고 겁 많으며 사랑이 넘치던 꼬마 요정들.

티티를 떠올린 희연은 벌써부터 이런 땅에서 살아가고 있을 요정들에게 조금 안쓰러운 마음을 갖게 되었다.

“땅이 이렇게 된 이후로 많이들 떠나게 되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아온 땅을 버리지 않고 남기를 택한 요정들 역시 있다네. 그 요정들 덕택에 그나마 그곳의 호수와 숲이 아직까지도 형태를 유지하고 있는 것이지.”

“…….”

“그 아이들의 도움을 받을 수 있다면야 나룻배 안의 젊은이를 깨울 수 있을걸세. 원래 향기로운 꽃향기는 거센 물살에도 끄떡없는 자를 무너트리는 법이니까 말이야.”

“꽃향기요?”

“달큼한 꽃향기는 물비린내로도 가릴 수 없는 법이지.”

이야기를 마친 노인은 이제 더 이상 자신은 할 말이 없다는 듯 병아리와 닭을 데리고 가더니 다시 바위에 기대어 앉았다.

그들이 차일드 롤랜드와 함께 노인이 두고 왔다던 빨랫감을 가지고 오기 전까지는 아무 반응도 해주지 않을 것 같은 고요함이 노인의 주위를 맴돌았다.

“자, 그러면 이제 가볼까요!”

그리고 방패 전사 강자의 입에서 익숙한 말이 나왔기에 희연은 이곳에 더 이상 남은 볼일이 없다는 걸 알게 되었다.

“돌아올 때야 언덕 밑에서부터는 다시 걸어와야 하지만 지금 당장은 펫 꺼낼 수 있으니까 다들 준비해 주세요!”

흑염의 아이는 익숙하게 하나둘 밴시와 해골 말을 소환한 뒤 그 둘을 합쳐 자신과 마늘쫑쫑의 것을 만들었고, 방패 전사 강자와 트롤 임페리얼 나이츠도 각자의 펫을 소환했다.

희연 역시 에흐테를 소환했다. 그리고 모짜렐라도 크림을 소환했다. 이젠 라쀠가 없으니 굳이 불편하게 희연의 뒤에 타지 않겠다는 의지가 아주 잘 느껴지는 모습이었다.

반짝반짝 성스럽게 빛나는 새 크림은 소환된 게 기쁜지 예쁜 날개를 팔락이며 모짜렐라의 주위를 맴돌았다. 이런 어두컴컴한 곳에서 크림은 상당히 눈에 띄는 존재였기에 다른 파티원들의 시선 역시 크림에게로 고정되었다.

“어… 모짜렐라 님… 펫이 있네요…?”

“네.”

“아니 그럼 아까는 왜… 아닙니다.”

방패 전사 강자는 묻고 싶은 게 많은 눈치였지만 마리아 쪽을 힐끗 쳐다보더니 결국 입을 다무는 것을 선택했다.

그러나 모짜렐라가 크림도 있으면서 희연과 에흐테를 함께 탐으로써 좁아터진 방패 위를 라쀠와 함께 타야 했던 일이 못내 섭섭하게 느껴지긴 했는지 그는 연신 구슬픈 눈빛을 보냈다.

혹여나 그 구슬픈 눈빛이 제게로도 향할까 싶어 시선을 돌린 희연은 때마침 그들처럼 탈것, 혹은 펫을 소환 중인 마리아와 이세인을 보게 되었다.

펫과 탈것이 필수인 장거리 이동 시 두 사람은 함께하지 못했었기에 희연은 그들이 무엇을 소환하는지 본 적이 없었다.

뉴비 없지는 얻어 타고 다녔고 킹스메이커는 번잡스러운 게 싫다는 듯 낫을 타고 다녔지만 닉은 드래곤이었다. 드래곤!

자연스레 희연의 기대심 역시 드높아질 수밖에 없었다. 레벨 높은 마리아와 이세인이 과연 무엇을 소환해낼지 몹시도 기대되었다.

그렇게 희연의 기대심 속에서 마리아가 소환한 것은 일단 펫이 아닌 탈것이었다. 그리고… 게임 세계관이랑 안 맞는 것 같은 탈것이었다.

“…?”

멋있긴 했다. 희연의 기대심 역시 충족은 되었다. 그러나 너무 뜬금없는 물건의 등장에 희연은 오묘한 표정을 짓게 되었다.

“왜, 기대했던 바가 아닌가 봐?”

“네… 조금….”

마리아의 물음에 멍하니 대답하면서도 희연은 그녀의 탈것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아무리 게임 내 자유도가 높아도 그렇지 이렇게 뜬금없는 물건까지 탈것으로 제공해 주어도 괜찮은 건가 싶었기 때문이었다.

마리아의 탈것은 스노모빌이었다. 눈밭에서 타는 그것 말이다.

그것도 게임 내 세계관의 기준에 맞춘 옛것이 아닌 현대식, 거기에 둥실둥실 하늘도 날고 있으며 왠지 모르게 강력한 한 방의 폭탄도 날릴 것 같은 부품이 매달린 그런 스노모빌이었다.

멋있긴 멋있었다. 조금, 위험한 전쟁 무기처럼 보이는 게 문제였을 뿐이다.

마리아는 역시 탈것도 자기 같은 것을 끌고 다니는구나 싶어 놀란 것도 잠시, 희연은 담담히 사실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반면 이세인 역시도 자기 같은 탈것을 소환했는데, 그의 성격적 측면보다는 입만 다물고 있으면 가장 완벽한 힐러처럼 보이는 얼굴에 어울리는 탈것이었다.

연한 색의 기다란 나룻배는 마리아의 스노모빌처럼 둥실둥실 떠 있었다. 나룻배를 꾸민 다양한 하얀 꽃과 연둣빛 이파리, 베일 같은 얇은 천이 낭만적이었고 일종의 효과인 것인지 작은 나비가 꽃잎과 함께 주위를 날아다녔다.

그 위에 올라탄 이세인이 노를 툭 건드려 조금 움직이자 투명한 물살과 함께 작은 꽃망울이 활짝 피며 흩어지는 효과가 발동했다.

화사하기 그지없는 이세인의 탈것을 보며 희연은 생각했다. 탐난다! 부러운 것을 넘어 탐이 났다.

홀린 듯이 보는 것은 비단 희연뿐만이 아니었다. 심지어 흑염의 아이마저 어둠과는 아주 먼 탈것임에도 불구하고 눈을 빛내고 있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이세인은 희연에게 굉장히 유혹적인 말을 내뱉었다.

“이거 갖고 싶어 희연아?”

마치 긍정의 답을 내놓으면 당장이라도 줄 것 같은 다정한 어투였다.

하지만 희연은 오히려 이세인이 그런 식으로 나왔다는 점에서 정신을 차렸다. 이세인은 얼굴처럼 다정하고 선량한 사람이 아님을 떠올린 것이다.

그는 마리아와 더불어 아주 실력 있는 힐러였고, 그건 인성을 의심해봐야 하는 사유가 되었다. 그게 아니더라도 그는 이미 전적도 있었다.

반사적으로 악령이를 꽉 끌어안으며 희연은 경계심을 표했다. 그런 희연의 반응에 이세인은 조금 섭섭하다는 듯 표정을 흐렸다.

“갖고 싶다고 했으면 희준이한테 전해주려 했지.”

“오빠가 만들어준 거예요?”

백희준이 이런 예쁘고 화사하고 화려한 것을 만든 것도 모자라 그걸 친구에게 선물까지 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희연은 조금 경악했다.

다행히 사실무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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