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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비세스 메이커 (240)화 (240/251)

240화

“설마. 희준이는 실용성을 보지 디자인은 안 봐서… 하지만 돈이 많으니까 다른 방법으로 해결은 해주지.”

“아, 네.”

희연은 조금 오묘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그렇다면 이세인은 백희준의 돈으로 그녀에게 생색을 내려 한 것인가 싶어서였다.

역시 이야기를 꺼낼 때부터 경계하기를 잘했다 여기며 희연은 어깨에서 힘을 뺐다. 흥미가 식은 것 같은 희연의 반응에 이세인은 아쉽다는 듯 말했다.

“갖고 싶다고 했으면 희준이가 구해줄 텐데. 알잖아. 걔가 원래 좀 자기 주위에 있고 그래서 제 눈에 띈다 싶으면 이것저것 해주는 거. 료한한테도 꽤 좋은 탈것 선물해 준 것 같던데. 너한테는 그보다 더 해주지 않을까.”

“아, 그래요?”

료한의 이야기에는 희연도 반응했다. 너무 료한만 백희준을 좋아라 하는 것 같아 걱정했는데 백희준은 나름 자신이 할 수 있는 선에서 그를 챙겨주는 것 같았다.

료한이 참 기뻐했겠다 싶기도 하고 다행이다 싶기도 해 희연은 조금 안도했다.

표정이 밝아진 희연의 모습에 이세인은 뜻 모를 미소를 짓더니 나룻배를 가리켰다.

“같이 탈래? 이거 여러 명 탈 수 있는데.”

“와 진짜요?”

희연은 냉큼 고개를 끄덕이고 싶은 마음을 애써 참고 먼저 악령이의 반응을 살폈다. 작은 인형은 그녀보다도 더 기대된다는 듯 눈을 빛내고 있었다.

그래도 혼자 이세인과 함께 나룻배를 타는 것은 부담스러웠으므로 희연은 모짜렐라도 같이 타자고 꼬셔 보았다.

“같이 타자!”

“…….”

모짜렐라는 말없이 크림 위에서 내려왔다. 그 역시도 내심 이세인의 나룻배를 타고 싶었던 듯했다. 갑자기 늘어난 승객에도 이세인은 그럴 줄 알았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우와….”

뱃머리 쪽에 자리를 잡은 희연은 제 주위 전부가 화사해진 것 같은 기분에 감탄했다. 던전 안을 맴돌며 익숙해진 주위 풍경이 얼마나 칙칙한 곳인지 새삼스레 느껴졌다.

모짜렐라와 함께 나룻배의 장식 이것저것을 만지며 희연은 무척이나 즐거워했다. 그런 희연의 반응에 짧게 웃은 이세인은 방패 전사 강자를 돌아보며 입을 열었다.

“이만 출발할까요?”

“아, 네!”

이세인의 나룻배를 부럽다는 눈빛으로 바라보던 방패 전사 강자는 지레 찔려 허둥지둥 일행의 선두로 이동했다. 처음으로 이세인이 제게 말을 걸었는데 정작 그는 상대의 탈것을 부러워하고 있었다는 점에서 조금 민망함을 느꼈다.

그 탓에 방패 전사 강자는 묵묵히 앞만 보며 이동을 서둘렀고 다른 이들 역시 그 뒤를 바삐 쫓느라 대화는 단절되었다.

***

“음….”

불꽃을 내뿜으며 스릴 넘치는 스피드를 자랑하는 탈것임에도 불구하고 다른 이들의 속도에 맞춰 스노모빌을 끌던 마리아는 일련의 상황을 모두 지켜본 끝에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삐롱하네….”

근처에 있던 트롤 임페리얼 나이츠가 화들짝 놀랐지만 마리아는 그 점에 대해서는 신경 쓰지 않았다. 트롤은 그녀가 신경 써야 하는 범위 외였다.

마리아는 이세인을 노려보며 머리를 굴렸다.

이세인은 수작인 듯 아닌 듯 짧고 간결하게 희연을 꼬시다 말았다. 희연은 이세인이 남의 돈으로 생색내려 한 건가, 정도의 생각에서 멈추었지만 그녀는 알 수 있었다.

방금 이세인은 탈것으로 남의 집 뉴비를 꾀어내려 한 것이다.

마리아는 자신이 본 것이 흥미롭기도 하고, 아무리 오페라 칭호라곤 하지만 겨우 레벨 50도 못 찍은 애를 꼬시는 법으로 1티어 탈것을 제시한다는 점에서 조금 놀랍기도 했다.

이세인의 탈것은 실용성 없이 오로지 미적인 관상용의 가치만으로 1티어에 오른 탈것이었다. 즉, 비쌌다. 부르는 게 값이었다. 공급이 없었다. 같은 1티어여도 그 가치가 더 높았다.

보통은 무기나 장비로 꼬실 텐데 탈것으로 꾀려 한다는 점에서 이세인이 희연을 잘 파악하고 있다는 것도 알 수 있었다.

마리아가 보기에도 희연은 무기나 장비에는 시큰둥해도 깜찍하고 발랄한 펫이나 오로지 예뻐서 1티어에 오른 탈것을 보면 혹할 것 같은 애였다.

게다가 부담을 느끼려다가도 아닌가 싶게 만들며 치고 빠지는 솜씨도 꽤나 훌륭했다.

과연, 쓸만하다 싶으면 다른 길드의 중축이라 할지라도 죄다 자신의 길드 윈으로 꼬셔가 이세인 작작하라고 사사게에 이름을 올린 인간답다 평하며 마리아는 돌아가는 꼴을 구경했다.

짧은 대화 안에 이세인은 많은 것을 내포했다. 길드 윈에는 희연과 친분 있는 사람이 있으며, 길드장이 1티어 탈것을 주는 등 지원을 아끼지 않을 것이고 특히 길드 생활이 길어질수록 주어지는 것은 더 달콤할 것이다.

길드 차원에서 밀어주겠다는 급의 제안이었다. 그리고 그 제안을 받은 희연은… 아 그렇구나, 정도의 반응을 보였다.

희연이 아 그래요? 와 진짜요? 할 때 마리아는 똑똑히 보았다. 이세인의 안광이 죽는 것을 말이다. 이세인이 파티에 쫓아온 목적 자체가 애초에 남의 집 뉴비 채가기였던 모양이었다.

킹스메이커에게 듣기도 했고, 희연이 직접 말하기도 했기에 마리아 역시 백희준과 희연이 무슨 관계인지는 알았다. 동생이라는 이유만으로 전폭적 지원을 해주는 것과는 거리가 먼 그녀로선 별로 이해되는 바가 아니었지만 돌아가는 상황을 대충 파악할 수는 있었다.

“재밌네.”

그랬기에 마리아는 결심했다. 던전에서 나가면 킹스메이커에게 꼭 이세인이 탈것으로 네 깜찍한 뉴비를 꼬시려 했다 말해주기로 말이다. 그리고 그 배후에는 백희준이 있다는 것 역시도.

그 둘이 싸운다면 마리아는 무척이나 즐겁게 관람할 자신이 있었다.

***

[이 앞은 탈것 소환 불가 지역입니다.]

“도착했네.”

눈앞에 뜬 메시지와 함께 이세인이 한 말에 희연과 모짜렐라는 나룻배 밖으로 고개를 내밀었다.

두 사람을 놀아주겠다며 이세인이 하늘 위로 나룻배를 이끌었기에 그들은 일행과 뚝 떨어져 있었다. 덕택에 두 사람은 잿빛 망토의 노인이 말했던 요정들이 유지 중인 숲의 범위를 눈으로 확인할 수 있었다.

숲이라고 부르기엔 민망한 크기였다. 싱그러운 푸름 또한 존재하지 않았다.

비록 요정 덕에 유지 중이라곤 하나 그렇다고 해서 땅을 구성하는 성분 전체가 바뀌는 것은 아니었기에 숲을 구성하는 나무 역시도 여타 다른 곳에서 보던 나무들처럼 어딘가 기괴하고 음침한 모습을 취하고 있었다.

땅으로 내려온 나룻배에서 내린 희연은 그 기이함을 더 잘 느낄 수 있었다. 형태만 유지했을 뿐 이 숲은 죽었다.

“몇 번을 봐도 참 음침하네요.”

방패에서 내려온 방패 전사 강자 역시 희연과 비슷한 반응을 보였다. 이곳은 정말 무덤이라는 명칭에 어울리는 곳이었다.

“그러면 이제 요정을 찾으면 되는 거죠?”

희연은 티티의 얼굴을 떠올리며 물었다. 이번에 만날 꼬마 요정도 산골 꼬마 요정과 비슷한 성격이라면 찾은 이후 대화하는 과정이 어려울 것 같진 않았다.

잿빛 망토의 노인이 꽃향기를 강조했으니 이번에 만날 꼬마 요정은 꽃을 바탕으로 한 모습이 아닐까 어렴풋이 예상해 보았다.

“자자, 모두 일단은 호수 쪽으로 이동합시다! 요정은 그 주변에 있으니까 지금은 뭐 찾으려고 애쓰지 않아도 됩니다.”

방패 전사 강자는 먼저 앞장서 숲으로 들어갔다. 이미 호수 위치가 어디 있는지 아는 눈치였다.

희연은 그 뒤를 따르며 숲을 조금 더 자세히 훑어보았다.

이동하는 과정에서 그들과 가볍게 부딪친 잔가지는 맥없이 바스러졌다. 나무가 너무 바짝 마른 나머지 약한 충격도 견디지 못해 그런 것 같았다.

호수가 있다면 풀냄새 사이로 물비린내 비슷한 거라도 맡을 수 있어야 했지만, 그런 것도 없었고 대신 바짝 마른 흙냄새만이 느껴졌다.

산골 꼬마 요정들이 살던 숲은 그래도 제대로 된 숲이었던 것에 반해 이곳은 정말 간신히 숲이라는 이름을 유지 중이었다.

“?”

이런 곳에서 정말 티티처럼 마음 여린 꼬마 요정이 살아갈 수 있는 건가 싶어 표정이 굳었던 희연은 앞서 걸어 나가면서 연신 주위를 살피는 방패 전사 강자를 발견하곤 고개를 갸웃거렸다.

뭘 찾고 있는 건가?

그를 따라 희연 역시 주위를 훑어보았지만 눈에 띄는 물건은 없었다. 요정은 호수 주위에 있다 했으니 호수가 보이기 전까지는 따로 찾아야 하는 건 없었다.

설마 길을 잃은 건가? 불길한 생각에 희연은 초조해졌지만 다행히 방패 전사 강자는 제대로 된 길을 찾아냈다. 우거진 수풀 너머로 찰랑이는 물살을 본 희연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저건가 본데.”

괜한 의심을 한 게 미안해 방패 전사 강자를 힐끗거리던 희연은 모짜렐라의 말에 그제야 호수의 정중앙에 홀로 떠 있는 나룻배를 눈에 담았다.

잔잔한 물결만 이는 호수 위의 나룻배는 이세인의 나룻배처럼 화려하지도 화사하지도 않았다. 오히려 아주 낡고 이곳저곳 흠집도 많이 난 것이 당장 가라앉아도 이상할 것이 없는 모양새였다.

노는 어디 갔는지 보이지 않았고, 거리가 거리인 만큼 제대로 보이진 않았으나 나룻배 안에 한 인영이 누워있는 것 또한 확인할 수 있었다.

미동도 없는 것이 단순히 깊은 잠에 빠졌다기보다는 이 숲처럼 죽음을 맞이한 것처럼 보였다.

숲이 숲이라고 부르기엔 조금 작은 것처럼 호수 역시 상당히 작은 편이었다. 흙색이 어두워서 탁해 보일 뿐 물 자체는 깨끗했다.

수면 아래가 선명히 보여 호수 자체가 그리 깊어 보이지 않았다. 옷이 물에 젖는 것을 감안하고 걸어서 나룻배를 끌고 오면 안 되는 건가 하는 생각이 절로 드는 모습이었다.

하지만 희연은 겉모습에 속아 섣불리 호수에 들어간다거나 하는 선택을 하지 않았다.

첫째로, 경험자들이 호수에 가까이 가지 않았기에. 둘째로 이제는 이 게임이 호락호락할 리가 없다는 것을 알기에. 희연은 혹시? 하며 용기 있게 굴지 않았다.

모짜렐라 역시 너무나 평화롭고 깨끗해 보이는 호수에 오히려 꺼림직하다는 반응을 보였다.

슬금슬금 호수에서 멀어지는 두 힐러에 방패 전사 강자는 진정하라는 듯 두 손을 들어 올렸다.

“여기 위험한 거 없으니까 너무들 그렇게 경계 안 하셔도 돼요. 물론 호수에 직접 들어가는 건 안 되지만요.”

주위를 둘러본 방패 전사 강자는 몸을 낮추더니 악령이의 키 정도 될 법한 위치에 손을 가져다 대었다.

“꼬마 요정 크기는 요 정도 되고요. 위치는 땅보다는 나무 밑동을 살펴보는 게 좋아요. 그리고 꽃이다 보니 한 넷 정도가 같이 모여 있는데 활짝 핀 꽃? 그런 식으로 생기지는 않았습니다.”

“꽃처럼 안 생긴 꽃이면….”

“수도사라고 해야 하나… 아무튼 그런 느낌으로 생겼어요.”

“수도사요?”

“딱 보면 알 수 있을 거예요.”

말을 마친 방패 전사 강자는 나눠서 찾자며 먼저 호숫가 주위의 나무를 살피기 시작했다.

희연 역시 움직이면서도 수도사처럼 생긴 꽃은 대체 어떻게 생긴 꽃인가 싶어 조금 고민했다. 그리고 희연의 의문은 오래가지 않아 풀렸다.

정말로 수도사처럼 생긴 꽃이 존재했던 것이다.

“찾았다!”

삣!

그리고 요정을 찾아낸 것은 비슷한 눈높이를 가지고 있는 악령이와 넬이었다.

둘의 부름에 서둘러 달려간 희연은 자신도 모르게 말을 내뱉었다.

“…요정?”

처음에 희연은 그것을 꽃이라고 생각지도 못했다. 그도 그럴 것이 꽃 하면 생각나는 화려한 색감이나 혹은 소담한 이미지와는 거리가 먼 모습이었기 때문이다.

피다 만 꽃의 꽃봉오리 같기도 하고 두터운 나뭇잎을 돌돌 말아놓은 것 같기도 한 그것은 요정 하면 떠오르는 자유로운 이미지와 달리 나무에서 피어난 줄기에 매달려 발이 묶여 있었다.

모자를 폭 눌러쓴 것 같은 모양새가 정말로 수도사처럼 보이기는 했다. 다만 힘없이 축 처진 줄기를 따라 요정이자 꽃으로 추정되는 부분 역시 고개를 푹 숙이고 있었기에 대화가 가능한 것인지 확신할 수가 없었다.

“여기 요정처럼 보이는 꽃 찾았어요!”

그래서 희연은 일단 일행부터 모으고 보았다. 이 중에 한 명은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알고 있을 거라 굳게 믿었다.

희연의 부름에 금세 모여든 일행은 옹기종기 모여 꼬마 요정으로 추측되는 꽃을 살펴보았다. 방패 전사 강자가 활짝 웃으며 희연을 돌아보았다.

“되게 빨리 찾았네요! 얘네가 요정 맞아요!”

그는 근처에 있던 커다란 나뭇잎 한 장을 뜯더니 호수에서 물을 받아왔다. 이곳까지 오며 보았던 식물은 닿기만 해도 바스러지던 것에 비해 요정의 주변에 있는 것들은 그나마 더 생생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나뭇잎에 받아온 물을 조심히 붓자 웅크려있던 꼬마 요정들이 꼼질거리며 움직이기 시작했다. 두건처럼 보이는 둥근 잎 아래 팔처럼 늘어져 있던 잎들이 위로 치켜 올라갔다.

“…….”

넬이랑 닮았다.

팔을 쭉 펴며 기지개하는 꼬마 요정들을 보며 희연은 무의식적으로 생각했다. 그림자 진 두건 안에 동그란 눈들이 깜박이는 것을 보자 저절로 넬이 생각난 건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누구야?”

“누구누구?”

“우리 깨웠어?”

“여기 왜 왔어?”

그리고, 재잘재잘 한 마디씩 내뱉기 시작한 요정들은 아주 귀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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