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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비세스 메이커 (242)화 (242/251)

242화

“이거다….”

딱 봐도 그녀 자신이 꼬마 요정들에게 처음 들고 간 꽃과는 생김새가 다른 꽃이었다. 희연은 곧바로 함께 꽃을 찾아 헤매느라 흙투성이가 된 인형을 안아 들고 꼬마 요정들에게로 뛰어갔다.

“찾았어!”

주목 나무의 열매를 먹고 있던 꼬마 요정들이 반색하며 희연을 반겼다.

“우리의 친구! 어서 와!”

“정답이야! 정답!”

“네가 그리웠어 마리골드!”

“우리 앞에 묻어 줘! 묻어 줘! 우리 눈으로 매일 볼 수 있게!”

희연은 꼬마 요정의 요구대로 그들 바로 앞에 마리골드를 심어주었다. 샛노란 빛의 꽃은 기분 탓인지 요정들의 앞에 심어주자 더욱 생기 있어 보였다.

“새로운 친구가 또 오고 있어!”

“빨라 빨라!”

“?”

손을 털던 희연은 꼬마 요정들의 말에 고개를 들었다. 기다란 망토 자락이 흙투성이가 된 흑염의 아이가 그녀의 뒤에 서 있었다.

“어….”

흑염의 아이의 손에는 갈색의 줄이 그어진 하얀 꽃, 아스포델이 들려 있었다. 앞서 검색해서 보게 된 이미지와 꼭 닮은 꽃이었기에 착각할 수가 없었다.

“이 몸을 경배하라 요정들!”

“경배 안 할래! 그치만 우리 친구로 인정은 해줄게!”

“빨리 우리 앞에 묻어줘!”

“마리골드 옆에 묻어줘!”

“빨리빨리!”

희연은 자리에서 비겨주었고 흑염의 아이는 그녀가 그랬듯 들고 온 꽃을 마리골드 옆에 묻어주었다.

“?”

그리고 희연은 보았다. 흑염의 아이의 망토 자락에 매달려 있는 작고 하얀 것들을 말이다.

“해골…?”

“훗… 이 몸의 위대한 힘에 감복했나 보지?”

흑염의 아이의 말은 못들은 체한 희연은 몸을 낮춰 해골들을 조금 더 자세히 훑어보았다. 크기는 햄스터 정도로 모두 양쪽에 뿔이 난 짐승의 뼈 가면을 쓰고 있었다.

낡은 천을 옷 삼아 두른 그들의 몸통 역시 뼈로 이루어져 있었으며 낯을 가리는 것인지 아니면 자신들을 보는 시선이 쑥스러운 것인지 흑염의 아이의 망토 속으로 숨어드는 모습이 제법 귀여웠다.

“이래서 빨리 찾았던 거구나.”

흑염의 아이는 요 조그만 해골들을 이용해 주목도, 아스포델도 남들보다 빠르게 찾아냈던 것이다. 언제 소환한 것인지 모르겠지만 확실히 쪽수로 유리한 고지를 차지할 수 있는 네크로맨서가 이런 과제일수록 유리한 직업인 건 확실했다.

“어둠의 힘에 매료되나 보지?”

“아뇨.”

확인을 마친 희연은 남은 것들도 금세 찾을 수 있겠다 싶어 안도하며 몸을 일으켰다. 때마침 경험 많은 방패 전사 강자에게서도 반응이 나왔다.

“찾았다!”

방패 전사 강자의 손에는 작은 묘목이 들려 있었다. 작고 동글동글한 열매가 매달린 묘목. 사이프러스였다.

냉큼 달려온 그는 꼬마 요정들에게 확인을 받은 뒤 희연과 흑염의 아이가 그랬듯 꼬마 요정들의 시야에 닿는 곳에 묘목을 심었다.

그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며 희연은 입을 열었다.

“그러면 이제 남은 건 로즈마리네요?”

“…….”

벌써 넷 중 셋이나 찾아냈다는 점에 밝아졌던 방패 전사 강자의 얼굴이 다시 어두워졌다. 다른 것들은 모두 나왔는데 로즈마리 하나만 빠졌다는 건 이유가 하나밖에 없었다.

“꽃이… 안 핀 로즈마리를 찾아야 할 것 같네요….”

이번만큼은 요행을 바랐던 희연도 낯이 어두워진 건 마찬가지였다.

그녀는 주위를 둘러보았다. 어두컴컴한 숲, 그리고 밝은색은 아닌 로즈마리. 심지어 그들 중엔 식물을 구별하는데 능통한 사람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당장에 희연만 해도 바로 옆에 묻혀있는 식물을 로즈마리라고 한다면 맞는 것 같다고 할 판이었다. 이 숲에는 로즈마리와 닮은 식물이 너무 많았다.

“향이라도 맡으며 돌아다녀야 하나….”

뼈만 있는 해골 병사들이 냄새를 맡을 수 있을 것 같진 않았으므로 이번만큼은 그들의 도움을 바라기도 힘들었다.

“다들 이제 로즈마리만 찾으면 되니까 조금만 더 힘냅시다!”

애써 밝은 목소리로 상황을 알리는 방패 전사 강자도 골치 아프다는 기색을 완전히 감추지 못했다.

다시 흩어지기 시작한 일행을 보며 희연은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일단 근처에 있던 로즈마리를 닮은 식물을 가리키며 꼬마 요정들에게 물었다.

“로즈마리?”

“땡!”

큰일 났다. 내심 진짜 로즈마리가 아닐까 싶었던 희연은 단호한 대답에 표정을 흐렸다. 오늘 안에 찾을 수는 있는 과제인가 싶었다.

삣! 삐…!

“넬?”

정말로 마리아라는 기회를 써먹어야 하는지, 아니면 이번에도 이세인의 도움을 구해야 하는지 고민하던 희연은 익숙한 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어디서 뭘 하다 온 것인지 나뭇잎을 대롱대롱 매달고 온 넬이 희연의 옷자락에 매달려 있었다.

“따라오라고?”

희연의 물음에 열심히 고개를 끄덕인 넬은 어딘가를 향해 날아가기 시작했다. 희연은 혹시 하는 생각에 서둘러 그 뒤를 쫓았다.

그렇게 작은 악령을 따라 수풀을 헤집고 들어간 지 얼마 되지 않아 희연은 아주 강한 향을 맡게 되었다. 박하 향과 비슷하면서도 톡 쏘는 매운 느낌은 없는 그런 향이었다.

넬은 어느 식물 위에 앉아 희연을 바라보았다. 희연은 그 식물과 넬을 번갈아 바라보며 멍하니 중얼거렸다.

“아나토….”

아나토가 병사의 무덤을 찾을 때 꽃 대신 품에 안고 온 것이 무엇이었는지 희연은 그제야 생각났다. 로즈마리였다. 꽃 한 송이 피지 않은 푸른 줄기의 로즈마리.

그날 희연은 다른 것들을 신경 쓰느라 아나토가 들고 온 것에는 그리 많은 시선을 두지 않았다. 눈에 띄는 구석 하나 없는 그 수수한 식물에 눈을 떼지 못했던 건 무덤의 주인인 병사, 넬뿐이었다.

넬은 저가 사랑하는 이름이 거론되자 기쁘다는 듯 동그란 눈을 접으며 웃어 보였다.

삐!

다른 것이라면 모를까, 로즈마리만큼은 아무리 눈에 띄지 않아도, 설령 구석에 숨겨져 있다 해도 넬은 찾아낼 자신이 있었다.

살그머니 자리를 비켜주는 넬에게서 시선을 못 떼던 희연은 작은 팔을 파닥이며 재촉하는 모습에 못 이겨 천천히 로즈마리를 채집했다.

작은 화분에 심으면 딱일 것 같은 낮은 키의 로즈마리였다. 희연은 그것을 조심히 받쳐 들어 꼬마 요정들에게로 갔다.

저들끼리 재잘재잘 수다를 떨던 꼬마 요정들이 희연을 돌아보았다. 그들은 전처럼 크게 기뻐하지도 활발하게 굴지도 않았다.

마지막 친구를 만났다는 점에 참고 있던 감정이 북받치기라도 한 것처럼 방울방울 눈물을 흘렸다.

“드디어 다 모였다….”

“우리가 다시 만났어.”

“그리웠어 친구들….”

“우리가 마지막까지 지켜보고, 지켜줄게.”

희연은 가져온 로즈마리를 심어놓은 다른 꽃과 묘목 옆에 함께 심어주었다. 한데 모아 놓은 꽃과 나무는 공통점이라곤 하나 없어서 조잡한 꽃다발처럼 보이기도 했다.

하지만 보이는 건 중요한 게 아니었으므로 희연은 그저 한데 모인 꽃들을 보며 가볍게 미소 짓고 말았다.

이제 다른 이들도 불러야겠다 싶어 몸을 틀던 희연을 꼬마 요정들이 불러 세웠다.

“잠깐! 기다려!”

“…?”

희연은 의아해하면서도 기다려주었고, 꼬마 요정들은 저들끼리 심각한 듯 대화를 주고받더니 가장 위의 줄기에 있던 요정이 대표로 말을 전했다.

“너… 우리랑 좋은 친구가 될 것 같아!”

“…응?”

예상하지 못했던 말에 희연은 당황스러움이 고스란히 드러나는 표정을 지어 보였다. 하지만 꼬마 요정들은 팔짱을 끼고 고개만 끄덕일 뿐이었다.

“처음부터 알 수 있었어! 우리가 친구가 될 거라는 걸! 느낌이 왔거든!”

뭐라 반응해줘야 할지 알 수 없어 데굴데굴 눈만 굴리던 희연의 앞에 낯선 문구가 떠올랐다.

[<요정의 친구>]

[업적 효과 : 자연이 머무는 땅에 발을 디딜 시 마법과 관련된 스킬의 공격력이 5% 증가하며 적 공격 시 2%의 확률로 속박 마법이 발동합니다.]

“아… 이거….”

힐두르의 퀘스트를 하며 받게 된 업적이었다. 하지만 지금 상황에 나오기엔 업적의 이름과 달리 그 효과는 공격적인 용도일 뿐이었다.

[조건을 달성했습니다. 업적의 숨겨진 효과가 추가됩니다.]

[<요정의 친구>

숨겨진 효과 : 당신을 향한 요정의 호감도 상승!]

어쩐지! 이름이랑 다르게 공격적이기만 하더라!

희연은 눈을 동그랗게 뜨고 빠르게 문구를 읽어 내렸다. 아마도 여기서 말하는 조건이란, 요정의 호감도가 아닐까 싶었다. 그것도 업적을 받은 뒤에 달성해야 하는 호감도 말이다.

힐두르와의 만남 이후 다른 요정들을 만난 적이 없었기에 설마하니 이런 게 숨겨져 있었을 줄은 몰랐다.

호감도 상승이라니 좋은 거겠지 여기며 희연은 다시 꼬마 요정들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그들은 눈을 반짝반짝 빛내며 희연을 바라보고 있었다.

“흠흠, 우리한테 집중해줄래?”

“응?”

“원래는 이렇게 막 주는 거 아닌데, 우리가 친구가 된 기념으로 특별히 줄게!”

“특별히!”

꼬마 요정들이 잔뜩 젠체하며 넘긴 것은 넓적한 나뭇잎을 겹겹이 겹쳐 얇은 풀줄기로 묶어놓은 주머니였다. 꼬마 요정들이 워낙에 힘겹게 들고 있었던지라 희연은 일단 그것을 받아들였다.

무게는 가벼웠고 나뭇잎 안쪽으로 살짝 물컹거리는 감촉이 느껴져 그녀로서는 이게 무엇인지 감히 짐작할 수가 없었다. 요정이 줬으니 이상한 건 아니겠지 하고 믿을 뿐이었다.

“풀어 봐도 될까?”

“물론이지!”

조심스럽게 물어본 희연이 민망해질 정도로 꼬마 요정들은 오히려 왜 어서 빨리 자신들의 선물을 확인 안 하냐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위험한 건 확실히 아니겠구나 싶어 희연은 그제야 나뭇잎을 묶고 있던 풀줄기를 풀어냈다. 풀자마자 느껴지는 단내에 먹을 건가 싶었던 희연은 안에 담긴 것이 강렬한 붉은색인 것을 보고는 반사적으로 움찔거렸다.

물컹거렸는데 붉기까지 하니 나온 무의식적인 반응이었다.

그러나 꼬마 요정들이 엄연히 높은 호감도를 바탕으로 쥐여 준 선물이었다. 희연은 티티를 떠올리며 덮은 나뭇잎을 다시 치워 내용물을 확인했다.

“…이거 주목 나무 열매? 그거 맞지?”

“응!”

나뭇잎 안에 담겨 있던 것은 으깨진 주목 나무 열매로, 희연이 느낀 물컹함은 그저 덜 으깨진 열매의 감촉이었을 뿐이었다.

생각보다 시시한 정체에 미묘한 웃음을 지은 희연은 일단 꼬마 요정들에게 고맙다는 인사부터 전했다.

조금 이상한 설명이긴 했지만, 제 친구의 일부를 이렇게 선물로 준다는 점에서 꼬마 요정들이 희연을 정말로 친근하게 여기고 있다는 건 확실해졌다.

그나마 멀쩡한 열매를 몰래 빼먹는 악령이를 힐끗 바라본 희연은 일단 남은 열매를 다시 잘 감싸 풀줄기로 묶었다. 그새 손이 붉은색으로 물든 악령이도 호숫가에서 씻고 오라고 땅에 내려주었다.

꼬마 요정들은 꼭 안고 있던 주목의 묘목을 희연 쪽으로 내밀었다.

“이제 주목도 저기에 묻어 줘!”

“마지막으로 호숫가의 물을 한 번씩 부어주면!”

“우리가 주문을 외워줄게!”

“요술 주문! 원하는 대로 모든 것이 이루어지는 주문!”

희연은 그들이 바라는 대로 해줬다. 주목을 묻어주었고, 앞서 방패 전사 강자가 그랬듯 커다란 나뭇잎에 물을 길어 와 요정들의 친구에게 뿌려주었다. 겸사겸사 꼬마 요정들에게도 말이다.

차가운 물방울을 맞은 요정들의 까르르 웃는 소리는 신기하게도 숲 곳곳으로 퍼져나가 희연이 따로 부르지 않았음에도 그녀의 일행은 일이 모두 끝났음을 알게 되었다.

하나둘 모이기 시작하는 이들 모두가 흙투성이인지라 다들 얼마나 열심히 숲을 헤매고 다녔는지 알 수 있었다.

“로즈마리 찾았어요?”

“네!”

방패 전사 강자는 희연의 답에 감동받은 얼굴로 입을 틀어막았다. 감동받아 울기라도 할 것 같은 모습이었다. 갈수록 그의 행복의 역치는 정말 낮아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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